우리 속담에 `외상이라면 소도 잡아먹는다`는 말이 있다. 뒷일은 어떻게 되든지 생각하지 않고 우선 당장 좋으면 그만인 것처럼 무턱대고 행동함을 비유적으로 이른다.
정치권의 공약(公約)은 신용도가 낮은 외상거래다. 선거판이 벌어지면 정치꾼들은 난전장사치처럼 장밋빛 청사진들을 들고 와서 유권자들 앞에 푸짐하게 늘어놓는다. 뭇 정치인들은 우리 유권자들이 그 약속의 실현가능성을 따지는데 미욱하다는 약점을 정확하게 꿰고 있다. 더 달콤한 미래를 제시하는 후보에게 번번이 휘둘리는 유권자들은 그들의 만만한 밥이다.
19대 대선을 1년여 앞둔 시점에서 소위 `잠룡(潛龍)`이라고 불리는 여야 정치인들이 슬슬 몸 풀기를 시작했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는 이미 당내에서의 경쟁 따위는 건너뛰기라도 한 것처럼 세몰이에 나선 모습이다. 그는 지난 6일 교수 500명을 발기인으로 하는 매머드 정책캠프 `정책공간 국민성장` 창립 심포지엄을 성대하게 치렀다. 문 전 대표의 이날 기조연설은 추상적인 용어의 나열 속에 과거의 진보 의제 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들렸다. 여전히 `어떻게(How)`가 쏙 빠진 뜬구름이어서 `포퓰리즘`의 서막이라는 불길한 느낌을 주었다. 여권(與圈)에서 가장 활발한 사람은 남경필 경기지사다. 광폭행보를 보이고 있는 그는 수도이전·모병제 도입·핵무장 준비·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등 휘발성 강한 이슈들을 파상적으로 던지고 있다. `대한민국 리셋(Reset)`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그의 논리에도 온전히 공감할 수 있는 `어떻게(How)`는 잘 안 보인다. 더민주당 소속인 박원순 서울시장 역시 신발끈을 조여매는 낌새다. 그는 지난 5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경찰이 시위진압을 위해 소화전 물 쓰는 것을 앞으로 허용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박 시장의 언급은 편 가르기 인기발언에 강한 그의 주특기가 유감없이 발휘된 인기영합주의의 산물이다.
잠룡이라고 일컬어지는 일부 유력 정치인들의 언행에 미구에 닥칠 강력한`포퓰리즘` 쓰나미의 전조(前兆)가 얼비친다. 아마도, 선동전술에 강한 진보진영이 앞장 설 것이고, 보수진영 역시 국민들을 꼬드기기 위한 온갖 꽃그림에 몰두하게 될 것이다. 셈법에 도통 미숙한 유권자들은 조만간 거친 공약(空約)의 해일 속에서 혼미해질 것이다.
역대 대통령 누구도 과잉공약 후폭풍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무리한 약속들의 여파로 버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정작 가장 큰 피해자는 그들에게 외상으로 권세를 주고 `뺑덕어멈 외상 빚 걸머지듯` 힘겹게 살아내야 하는 국민들이다.
`포퓰리즘`을 근절할 방법은 있다. 호주나 뉴질랜드·네덜란드 등은 법률을 근거로 정치권 공약에 따른 재정소요를 정부부처나 출연연구기관이 객관적으로 추계해 선거 직전에 공표한다. 유권자들은 정밀한 계산기를 들고 정치권 공약에 대해서 시시콜콜 따져본다. 당연히 정치인들의 헛공약은 발붙일 여지가 없고, 국민들이 부도난 수표 때문에 곤경에 처할 일도 없다.
우리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지난 2012년 2월 19대 총선을 앞두고 공약 사전검증시스템을 도입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태생적으로 선거중립 위반 논란에 휘말리기를 꺼려하는 선관위의 특성과 `포퓰리즘` 없이는 도저히 못사는 정치꾼들의 꿍꿍이셈이 묵계로 작동하면서 4년이 넘도록 감감무소식이다.
이제 용단을 내려야 한다. 국민들의 오감을 휘저어 권력을 거머쥐고는 `나 몰라라` 궤변만 일삼는 저질 정치꾼들을 묵과할 수 없다. 수상한 외상거래 끝에 국민들이 번번이 `고슴도치 외 따 지듯이` 피눈물 쏟으며 사는 일은 종식돼야 한다. 추상같은 `공약 사전검증 제도`로 저 무지막지한 `포퓰리즘` 쓰나미를 막아내야 한다. `외상으로 소 잡아먹는` 어리석음일랑 이제 뚝 멈춰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