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山)처럼 거대한 댐도 작은 쥐구멍 하나로 무너질 수 있다는 말은 참이다. 작금 파선(破船)이 목전에 다다른 새누리당을 보면 정말 그렇다. `최순실 게이트`에 휘말려 항로를 잃은 선장 한 사람 때문에 난파선 신세가 된 새누리당이 부서지는 배 위에서 막장드라마를 펼치고 있다. 그동안 박근혜 대통령을 호가호위(狐假虎威) 해오던 친박계가 긴 침묵을 깨고 드디어 입을 열었다. 참다못해 민심을 좇기로 작심한 비박계를 향해 연일 악담을 퍼붓는다.
이정현 대표를 비롯한 친박 지도부는 사퇴요구를 악착같이 거부한 채 입을 다물고 살았다. 비박계가 당을 살려보자고 궁여지책으로 꾸린 `비상시국회의`에 부글부글 끓던 친박계가 김무성 전 대표의`대선 불출마` 선언과 탄핵동참에 격앙하고 있다. 친박계 이장우 최고위원은 김무성 전 대표를 향해 막말을 쏟아내며 의원직 사퇴, 새누리당 탈당에다가 정계은퇴까지 마구발방 험구를 퍼부었다.
무소속 김용태 의원, 남경필 경기도지사와 정두언을 비롯한 전직 의원 8명 등 탈당파들은 27일 국회 의원회관 회동을 갖고 “공범 역할을 했던 새누리당은 해체하라는 것이 민심”이라는데 의견을 모았다. 이들은 올 정기국회 안에 탄핵 절차를 마무리한다는데도 공감을 나눴다. 정치권에서는 새누리당의 분당(分黨)이 초읽기에 들어갔다고 보는 시각이 늘고 있다. 때에 따라서 여당은 `새누리당` 간판만 남게 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돈다.
지난 25일 발표된 한국갤럽의 여론조사는 박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한 주 전보다 1%포인트 하락한 4%, 부정적 평가는 3%포인트 상승한 93%라는 비보를 전했다. 한국갤럽이 대통령 지지율 조사를 시작한 1988년 이후 가장 낮은 지지율이라는 끔찍한 해석도 붙었다. 대구·경북에서 평균치 아래인 3%에 그쳤다는 지역별 조사는 충격이다. 끈질기게 `묻지마 지지`를 지속해온 지역민들의 쓰라린 배신감이 발동하고 있다는 증좌다. 새누리당 긍정평가도 박 대통령 지지율과 동반 하락해 더불어민주당의 3분의1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제3당`이라는 굴욕을 당하고 있다. 민주당 34%, 국민의당 16%, 새누리당 12%, 정의당 7% 순이다. 이쯤 되면 새누리당은 이제 국민들 사이에서 서서히 잊혀져가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박 대통령이 온갖 의혹을 뒤집고 국민신뢰를 회복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정상적인 이성작동이 아니다.
이제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일은`보수(保守)`의 리모델링이나 단순한 부활이 아니다. 체제 좀 손질하고 몇 사람 영입하고 문패 바꾸는 분칠 수준의 개혁으로는 민심을 되찾기란 어림없다. `보수`는 철저히 죽어야 비로소 다시 태어날 수 있다. 때 묻은 모습 그대로 부활해봤자 희망이 없긴 마찬가지다. `헤쳐모여` 방식으로 완전히 새로운 틀을 짜는 것이 옳다. 시대정신을 반영할 정의롭고 당당한 큰 그릇을 만들어내야 한다.
`부자들을 위한 정당`이라는 비아냥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권위주의의 잔재들을 깡그리 털어내야 한다. 3류 패거리정치로 유치한 정쟁만을 탐닉하는 정당이 돼서는 안 된다. 국민정서와 동떨어진 오만방자한 책략일랑 모두 버려야 한다. 인물 중심이 아니라 정책중심 정당이 돼야 한다. 당내 민주주의는 철두철미 신봉돼야 한다. 무엇보다도 사통팔달 막힘없는 소통이 만개하는 정당이 돼야 한다.
보수주의(保守主義)는 이 땅의 평화와 번영, 그리고 민주주의를 지켜온 중심사상이다. 피땀 흘려 가꿔온 빛나는 이념을 비선실세의 농간에 놀아난 한 지도자의 어불성설 통치행위 의혹으로 아주 허물어뜨릴 수는 없다. 시대가 요구하고 있는 가치,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동력을 바탕으로 재탄생하는 것이 바른 길이다. 충성을 하더라도 국가에 하는 것이 옳고, 순장(殉葬)을 자처해도 국민들을 위해 하는 것이 맞다. 보수정당의 위태는 곧 대한민국의 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