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청와대발 개헌 물꼬가 터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24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임기 내에 헌법 개정을 완수하기 위해 정부 내에 헌법 개정을 위한 조직을 설치해 국민의 여망을 담은 개헌안을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이어서 “국회도 빠른 시간 안에 헌법개정 특별위원회를 구성해서 국민여론을 수렴하고 개헌의 범위와 내용을 논의해 주시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박 대통령은 개헌추진 배경과 관련 “1987년 개정되어 30년간 시행되어온 현행 5년 단임 대통령제 헌법은 과거 민주화 시대에는 적합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몸에 맞지 않는 옷이 됐다”며 “이러한 변화를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 갈 새로운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 동안 정치권 안팎의 개헌론 주장들을 주시해온 박 대통령은 지난 추석연휴 마지막 날 구체적인 준비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언급처럼 개헌은 이제 피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가 됐다. 현행 헌법은 세월이 흐르면서 달라진 새로운 세상을 미처 담아내지 못해 갖가지 모순과 부작용의 원천이 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여야 정치권은 대통령의 깜짝 제안에 적이 당황한 모습이다. 여당은 환영하는 반응인 반면 야당 쪽은 대통령의 개헌 추진이 담고 있는 노림수를 헤아리느라고 분주하다.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의 `물개박수`를 연상시키는 반응이 인상적이다. 대표적인 개헌론자 중 하나인 김 전 대표는 “이 정권이 출범한 이후 오늘이 제일 기쁜 날”이라는 격한 감동을 내놨다. 김성원 새누리당 대변인은 “대통령이 그동안 여러 경로로 개헌에 대한 여론을 청취한 것”이라면서 “이번 정기국회에서부터 개헌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 시기적으로도 매우 적절하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야당의 시선은 결코 곱지 않다. 윤관석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국회 브리핑에서 “측근비리 돌파를 위한 정략적 개헌 논의는 동의하기 어렵다. 갑작스런 대통령의 개헌논의 제안은 난데없다”면서 거부감을 피력했다. 손금주 국민의당 수석대변인은 “대통령의 임기 내 개헌 추진 입장을 표명한 것은 환영한다”면서도 “대통령의 뒤늦은 개헌론 제기가 정권차원 비리를 은폐하는 수단으로 사용돼선 안 된다”고 경계심을 드러냈다.
야당의 시각에서 보면 최근 기하급수로 부풀고 있는 측근비리 의혹을 덮기 위한 국면전환용 카드로 읽을 여지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개헌에 대한 정치권 전반의 판단은 이미 `하루빨리 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기울어 있다. 임기 말 추진동력이 가당할까 의구심은 있지만 박 대통령의 선언은 시기적으로 아주 늦은 것도 아니다. 그 의도를 지나치게 비뚜루 보는 것은 온당치 않다.
이 시점에 정말 중요한 것은 인식의 냉정함이다. `개헌`은 결코 우리가 안고 있는 온갖 시름들을 해결해줄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파당마다 사람마다 동상이몽(同床異夢)으로 구구각각인 개헌방향과 내용으로 인한 갈등을 조정하는 작업도 지난하기 짝이 없다. 잘못 건드렸다가는 온갖 불협화음을 폭발시켜 국민들을 사분오열시키는 사달이 날 수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민주적 절차는 철저히 지켜야 한다. 그러나 질질 끌고 가서는 절대로 안 된다. 쇠뿔을 단김에 빼듯이, 거침없이 추진해가야 한다. 지금 이 판국에 `개헌`을 정략적으로 밀어붙이는 행위나 무턱대고 막아서는 행동 모두 국익을 저해하는 고약한 망발이다. 누군가 대선국면과 맞물려 사리사욕을 꾀하려는 이가 있다면 우리는 결코 용서해서는 안 된다. 누가 뭐라고 해도, 헌법은 대한민국의 품격과 국민 삶을 규정하는 초석이기 때문이다.
김성태 새누리당 의원의 “대통령과 정부가 내년 4월 12일 보궐선거일을 개헌투표일로 삼아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는 주장에 흔쾌히 동의한다. 시계(視界) 제로의 캄캄한 바다로 나서는 개헌호(號)의 순항을 간절히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