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슬살이의 요체는 `두려워할 외(畏)` 한 글자뿐이다. 의(義)를 두려워하고, 법을 두려워하고, 상관을 두려워하고, 백성을 두려워하며 마음속에 늘 두려움을 간직하면 혹시라도 방자하게 될 것이 없으니, 이로써 허물을 줄일 수 있다.”
다산 정약용의 이 말은 `국민을 두려워해야 민심을 얻을 수 있다`는 진실을 관통한다. 지봉유설(芝峯類說)에 나오는 `백성이 비록 무지하더라도 그들을 속일 수 없다`는 대목과도 맞닿는다.
정초 대한민국 정치마당에 `표(票)퓰리즘`과 `험구`의 난장(場)이 펼쳐지고 있다. 무허가 험담공장들이 난립하기 시작했고, 무책임한 뻥 공약들이 여기저기 날아다니고 있다. 일찌감치 불붙은 대선전(大選戰) 화약 냄새가 코를 찌른다. 자고새면 사진 박혀 나오는 `출마선언`이 봇물을 이룬다. 입지후보가 많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경쟁`이 있어야 경쟁력이 생기는 법이다. 우리는 왕왕 오류를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 치열한 경쟁을 택해 왔다. 그러나 작금 정치권에서 분별없이 벌어지고 있는 구닥다리 행태는 국민들의 근심을 뭉텅뭉텅 보탠다. 자기 상품을 자랑하며 소비자들의 관심을 끌어야 하는 기본적인 도의(道義)마저 저버리고 남의 물건을 마구발방 헐뜯는 반칙을 일삼고 있다. 국제무대에서의 일을 마치고 돌아와 대선전 후보입지를 다지고 있는 반기문 전 사무총장이 으뜸 먹잇감이다. 그를 `적장`으로 상정한 정치패들의 `티 뜯기` 의지는 투철하다.
인천공항 입국과정에서 빚어진 열차표 자판기에 지폐 두 장을 한꺼번에 넣으려던 실수는 `물정 모르는` 인사로 몰아가는 단골소재(素材)로 악용된다. 꽃동네에서의 턱받이 해프닝은 개그 프로그램의 패러디 소재로까지 등장했다. 제1야당의 대표가 반기문의 일거수일투족을 연일 논평하는 모습은 싸구려 정치수준을 상징한다. 그러구러 이번 대선 역시 `욕 잘하는 정당`의 후보가 이기는 `구설(口舌) 공화국`의 비극이 재연될 공산이 커지고 있다.
우리를 낙담하게 하는 진짜 참상은 어떻게든 표를 훑어내려는 심산에서 나오는 무리한 공약경쟁에서 잉태된다. `젊은 표`를 낚아채고 싶은 성마른 욕심이 `군복무` 관련 공약으로 나타났다. 남경필 경기지사는 2023년 모병제 도입을 주창해왔다. 문재인 전 민주당대표는 현재 21개월인 복무기간에 대해 “18개월은 물론이고 더 단축해 1년까지도 가능하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이재명 성남시장은 장사꾼 흥정하듯 `10개월 복무`를 부르댔다.
뻥 공약에 관한 한 `청년배당`과 무상시리즈 등 기본소득을 앞세운 이재명 시장이 단연 으뜸이다. 그는 “국가예산 50조~60조원으로 1인당 100만원씩, 가구당 300만원씩을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본격적인 `표(票)퓰리즘`과 `험구` 난사는 이제 비로소 시작일 것이다. 민심을 긁어모으려고 오만 약속을 걸터듬는 꿀 발린 독극물들은 한없이 쏟아질 것이다.
민초들의 감성에 불을 질러내려는 정치꾼들의 민심방화(民心放火) 행위의 뿌리에는 국민들에 대한 폄훼의식(貶毁意識)이 있다. 그들의 생각 속에서 `국민`이란 그저 적당히 속이면 넘어가는 어리석은 존재일 따름인 것이다. 대한민국 정치의 기형적 풍토를 종식시키기 위해서는 선거일 딱 하루만 `주인` 대접 받고 만족하는 유권자들이 깨어나야 한다. 선거철만 되면 나타나는 민심방화범들의 음모를 철저히 감시하여 솎아내야 한다.
민심에 불질러놓고, 돌아앉아 앞으로 챙길 권력 장부만 들여다보는 저질 정치꾼들의 국민멸시 행위를 더 이상 용납해서는 안 된다. 주인이 주인답기 위해서 갖춰야 할 첫 번째 덕목은 주인의 자존심을 능욕하는 일체의 행위를 차단하는 일이다. `두려워할 외(畏)` 글자를 깡그리 망각한 저 정치모리배들의 오만방자한 불장난을 방치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비방과 모략으로 만들어진 정치에 또 다시 미래를 맡겨서는 결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