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히 예견됐던 일이지만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안 의결 이후 정치권에 곧바로 새판짜기 신호탄이 울렸다. 새누리당 탈당파의 신당 창당 움직임을 필두로 새로운 대한민국 디자인을 위한 정치권 요동이 시작된 셈이다. 박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로 친박(친박근혜계) 세력들이 소멸 위기를 맞고 있는 가운데 새누리당을 탈당한 남경필 경기지사와 김용태 의원이 새누리당의 해체를 주장하며 `신당창당`을 선언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시작으로 그동안 시야를 불투명하게 했던 대권시계가 어느 정도는 윤곽을 드러내면서 정치인들의 조바심은 깊어졌다. 탄핵심판이 정치권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한 분석 역시 첨예해졌다. 크게는 일련의 사태가 정계재편에 어떤 변수로 작동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다. 정당구조는 어떻게 재구성될 것인지, 앞으로의 정치역학은 또 어떻게 형성돼 갈 것인지에 대한 예측이 암산되기 시작한 것이다.
진보세력에게 박근혜 대통령의 도중하차는 외견상 정권을 잡을 수 있는 더 없이 좋은 기회다. 그러나 굴곡의 우리 정치사가 증명하듯이 정치는 반드시 그렇게 빤한 공식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상식을 깨고 예상을 뒤집는 것이 바로 정치다. 정치 환경의 변이특성을 잘 알고 있는 야당이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닿아있을 것이다. 언제나 그렇듯 권력의 정상으로 가는 길은 결코 그리 만만하지 않다.
`최순실 사태`가 빚어낸 대한민국의 거대한 촛불시위를 단순히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반기(反旗)로만 평론하는 것은 청맹과니 해석이다. 다수 국민들의 격동을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한국정치`에 새로운 시대를 열고자하는 절박한 희원이 잉태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시위현장에서 뭇 정치지도자들이 비토를 당하는 해프닝이 곧바로 이를 입증한다. 시위 군중들의 심중에는 “확 바꾸자! 그러나 너는 대안이 아니다!”의 메시지가 오롯하다.
물론 시위를 주도한 인물들 중 소위 `전문 시위꾼`들은 흔들린 민심을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가려는 작위의지를 갖고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으로 볼 때 그들의 뜻대로 돼가기는 커녕 자칫 역풍을 불러올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또다시 가장 큰 변수는 민심의 향배다. 변수가 깊어진 그 어떤 정치지형의 변화도 민주주의의 가장 큰 원칙 안에서 형성돼갈 것이라는 전망인 것이다.
보수정치가 어떻게 달라지느냐가 주요 함수 중 하나다.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 갖은 구태의 핵심에 섰던 정치모리배들을 배제하는 일이 우선이다. 보수정치가 묵은 때를 벗기기 위해서는 뼛속까지 달라져야 한다. `수구꼴통`의 면모를 청산하지 못한 그 동안의 행태로는 절대로 궁극적 변화를 바라는 민심에 다가갈 수 없다. 조금 심하게 말하자면, 지금까지의 보수정치는 골조까지 다 부숴 내던지고 온전한 재료로 다시 만들어야 한다.
얼마 전 불거진 `반기문 신당(新黨)`설은 탄핵정국을 뒤흔들 가장 강력한 태풍예보다. 아직까지 우리 정치권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그가 여전히 국민들의 여망을 가장 많이 받는 현실은 극적 상황반전 가능성을 충분히 함유한다. 문재인 카드가 `대통령 탄핵`이라는 꽃밭에서조차 여전히 대세를 타지 못하고 있는 환경이 더욱 그렇다. 다만, 반기문 카드의 부상(浮上)을 수구세력들이 부활의 기회로 삼으려는 무모한 발상은 차단돼야 한다.
새누리당 탈당파가 시동을 건 신당창당 선언이 보수정치의 혁신을 바라는 새로운 바람의 진원이 되기를 기대한다. 한 달 남짓 남은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귀국이 불러올 정치적 파장 안에서 소금역할을 다함으로써 이 땅에 제대로 된 `합리적 보수` 또는 `건강한 중도`의 민심을 두루 아우르는 새로운 정치혁명의 밀알이 되기를 바란다. 성패를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어쨌든, 한국정치의 블랙홀이 될 `반기문 신당`은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