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0월 4일 필자는 평양에 있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을 수행한 청와대 출입기자단의 일원으로서 겪어본 평양은 거대한 사이비종교 성지 같았다. 양복차림의 남자들과 울긋불긋한 치마저고리 차림의 여자들이 연도에 쏟아져 나와 광기어린 동작으로 조화(造花)들을 흔들어대는 낯선 모습은 반가움보다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그 며칠 동안의 경험과 관찰은 북한이 여타지역을 수탈하여 온존하는 `평양공화국`임을 충분히 느끼게 했다.
그때 동행했던 수행단의 꽤 많은 분들과 `북한`에 대한 착각과 오해를 각성하게 됐다는 공감을 나눴던 기억이 난다. 통일에 대한 무수한 낭만적인 담론들이 얼마나 어리석고 위험한지를 절실하게 깨닫게 된 계기였다. 막연했지만, 그때 그 뭔가 억지춘향 같은 야릇한 미심쩍음은 두고두고 현실이 되고 있다. 2013년 거칠게 몰아쳤던 노무현 대통령의 NLL 대화록 논란은 참 씁쓸하게 다가왔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또 다시 참여정부의 `대북정책 그림자` 귀신에 휘말려들고 있다. 10·4남북정상회담 이후 유엔북한인권결의안 `기권` 표결에 앞서 우리 정부가 북한에 의견을 물어봤느냐 아니냐가 논란의 핵심이다. 논란은 참여정부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의 회고록을 통해 증언이 나오면서 시작됐다. 팩트(Fact)의 진위를 넘어서는 감정적 공방이 치열하다.
새누리당은 이정현 대표가 문재인 전 대표를 겨냥해 “북한과 내통한 것”이라고 직격탄을 쏜데 이어 연일 파상공세다. 한동안 `그 때의 남북관계 분위기가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식의 `상황론`으로 맞서던 문재인 전 대표 쪽은 돌연 전략을 바꾼 듯하다. 새누리당의 공격을 거칠게 되받기 시작한 것이다. 급기야는 까마득히 흘러간 `북풍`, `총풍`까지 들먹거리며 `역(逆) 색깔론`으로 대거리하고 있다.
무릇 다툼이 벌어질 때, 누가 먼저 본질에서 벗어나 감정적으로 대응하느냐가 옳고 그름의 기미가 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무래도 문재인 전 대표 쪽이 불리해 보인다. 문 전 대표나 더민주당의 대응은 이치에 맞지 않는 대목이 많다. 문 전 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 뜬금없이 “노무현정부에 배우라”고 한다든지, 더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날아가는 방귀를 잡고 시비한다”는 식으로 반응하는 것은 동문서답이다.
문제의 핵심은 송민순의 기억이 사실에 부합하는지 아닌지 여부다. 최소한, 송민순이 참여정부 때 외교를 통괄했던 통일외교안보정책실 실장이었고, 외교통상부 장관이었다는 점에서 신빙성이 인정된다고 봐야 할 것이다. 국가주권과 연동된 이 중요한 문제를 `역 색깔론`으로 초점을 흐리거나 `날아가는 방귀` 취급을 해서는 안 된다.
문 전 대표의 최측근인 김경수 의원이 소방수로 나섰다. 하지만 청와대 회의에서 문 전 대표가 처음에는 결의안에 대해 찬성 입장이었다는 부분이나, 결정 후 정부 입장을 북한에 전달했다는 대목은 여전히 불씨다. 최소한 문 전 대표의 `우유부단` 이미지를 증폭시키는 효과를 피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기권` 표결에 앞서 북한에 의견을 물어봤다는 증언이 만약 사실이라면 이는 그야말로 소도 웃을 코미디다. 비유하자면, 마치 범행을 일삼고 있는 도둑놈에게 “지명수배를 할까요, 말까요?”하고 물어보는 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논란을 정부여당이 길게 끌고 가거나 부풀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수 차례 경험했듯이, 상대방의 쓰레기통을 줄기차게 걷어차는 정치는 `역풍`을 불러오기 십상인 까닭이다.
이른바 `햇볕정책`으로 통칭되는 김대중·노무현정부의 낭만적인 `통일론`은 처참한 실패로 귀결됐다. 2007년 그때 평양을 함께 다녀온 참여정부 인사들은 과연 무슨 깨달음을 얻었을까. 지금은 또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송민순 자서전 파동을 지켜보면서 착잡한 마음이 더욱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