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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독식(勝者獨食)` 정치는 끝났다

등록일 2017-02-14 02:01 게재일 2017-02-14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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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재휘 논설위원
▲ 안재휘 논설위원

13세기 초 세계적인 대제국을 일궈낸 칭기즈칸(Chingiz Khan)의 성공요소를 분석하는데 있어서 기마부대를 동원한 상상을 초월한 `속도`와 신속한 `정보망`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말을 타고 달려오는 몽골군이 워낙 빨라서 철갑옷을 입은 서양의 느린 군사들은 미처 칼을 뽑을 시간조차 없이 속수무책 짓밟혔다`는 말까지 있다.

인류사회에서 `정보`를 빠르게 수집하고 활용하는 능력의 독점은 오랫동안 권력을 유지하고 확장하는 원동력이었다. 오늘날도 `정보독점`과 `속도경쟁력`은 권력경영은 물론 경제의 영역에 이르기까지 성공의 필수요소로 지목된다. 정치인들이 끼리끼리 독점하고 있는 정보를 이용해 정적을 제압하는 수법으로 권력을 키우는 일은 여전히 비일비재하다.

자유·평등·비밀선거라는 절차로 국민들이 승자에게 권력을 위임하는 형식은 민주주의가 자랑하는 가장 주요한 정치제도다. 지구상의 많은 나라들이 다수결(多數決)로 지도자나 집권당을 뽑는 방법으로 민주주의를 영위한다. 대개의 경우 패자는 일정기간 승자에게 권력을 모두 넘기고 묵묵히 따른다. 최선은 아니지만 그나마 그런 방식이야말로 부작용과 혼란을 최소화하는 길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정치사 역시 `독재` 혼란을 거듭한 연후에 국민들이 자기 손으로 지도자를 뽑는 제도를 정착시키면서 `민주국가`의 틀을 발전시켜왔다. 패자들은 `다수결`제도가 갖는 차선(次善)의 가치를 믿고 한동안 패배의 비애를 곧잘 견뎠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국민들은 게임이 끝나도 패배를 쉽게 승복(承服)하지 않는 습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우리 대통령선거사의 그림자를 들여다보면 결과에 대한 불복(不服) 의식의 진폭이 증대된 사이클을 발견하게 된다. 그 파장은 평화적 정권교체라는 또 하나의 민주주의 진전을 이룩하는 동안 오히려 깊어졌다. 부작용은 단지 국회 안에서 무한대로 증폭된 육박전 정치행태에 국한되지 않는다. 오늘날 `광장`으로 뛰쳐나온 시민들 사이에까지 그 변질은 틈틈이 박혀 있다.

그 핵심 원인은 무엇일까. 첫째는 더할 나위 없이 보편화된 자유와 평등의 신장과 연관돼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을 성마르게 한 진짜 이유는 `지식`과 `정보`의 보편화에 있다. 디지털 기술의 혁명과 매스컴의 눈부신 발달이 세상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이제 절대 권력자와 일반 국민들이 확보한 `지식`과 `정보` 수준의 간극이 결코 크지 않다.

세상이 이렇게 바뀌었는데 오늘날 정치권이 여전히 케케묵은 관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권력을 독점하려는 미련한 싸움을 지속하고 있는 것은 넌센스다. 권력을 독점하겠다는 `승자독식(勝者獨食)` 의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선거에서 이긴다한들 누구든 무진고난을 모면키 어렵다. 사람들이 더 이상 승자에게 모든 것을 주는 그 논리의 부실을 참지 않기 때문이다. 조기대선을 상정하고 벌어지는 선거 국면에서 `연립정부(聯政)` 이야기가 흐드러지고 있다. 일부 대선잠룡들은 내놓고 `연정`의 당위성을 설파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곤경에 처한 것도 따지고 보면 누군가의 권력독점을 더 이상 인내하지 않게 된 민심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우매함에서 비롯됐다고 볼 여지가 있다.

정치권에서 돌아보아야 할 대목은 `연정` 뿐만이 아니다. 차제에 `권력구조`는 물론 금과옥조처럼 여겨온 `소선거구제` 같은 `승자독식`을 보장하는 모든 장치들을 혁신의 도마 위에 올려놓아야 한다. `속도`와 `정보력`이 보편화된 시대에 많은 것을 아주 빨리 알아낼 수 있게 된 사람들은 권력독점을 잠시도 참지 않는다. 권력은 이해관계가 아니라 정책을 중심으로 나눠 가져야 세상이 조용하다. 나라를 두 쪽 낼 듯한 기세로 나날이 가열되고 있는 탄핵 찬반집회가 그런 급변을 상징한다. 대중은 이제 독식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가 비록 칭기즈칸이라고 할지라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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