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이 동래현 노비 출신의 궁중기술자 장영실(蔣英實)에게 `상의원 별좌`라는 녹봉도 없는 벼슬을 주려고 하자 조정이 시끄러웠다. 반대하는 중신들이 많았지만, 세종은 약간의 `가능성`을 언급하는 일부 대신들의 논리를 전격적으로 차용하여 임용을 단행했다. 그렇듯, 세종의 인재발탁 기준은 가문이나 학파, 출신지역은 물론 반상(班常)의 신분마저 뛰어넘었다. 세종의 용인술에는 오직 하나의 가치, `그 일을 해낼 수 있느냐`만이 중심에 있었다.
세월호 참사 여파 속에서 이렇다 할 쟁점이 없던 6.4지방선거 정국 한복판에 `안대희` 변수가 던져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정홍원 국무총리 후임으로 하마평에 오른 여러 인물들 중에 안대희 전 대법관을 낙점했다. 곧바로 안 후보자에 대한 정치권과 언론의 냉혹한 검증이 시작됐다. 그가 지난해 개업한 변호사 사무실의 과다수임료 문제가 가장 먼저 도마에 올랐다. 스스로 `관피아` 척결을 으뜸사명으로 내세운 새 국무총리 후보자가 정작 자신은 전형적인 전관예우 `법피아`의 행태를 보인 게 아니냐는 이중성 논란이 난해한 덫으로 등장했다.
`안대희 전 대법관`의 등용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그는 이미 지난 대선 때 박근혜 캠프에 깜짝 등장함으로써 세간의 관심을 끌었었다. 그러나 선거 도중에 한광옥 전 청와대비서실장의 중용에 맞서 박 대통령과 갈등을 빚었다. 그랬던 그였기에, 이번 국무총리 내정은 뜻밖의 카드라는 해석이 있다. 반면에 때때로 상상을 초월하는 반전 용인술로 주위를 놀라게 하는 박 대통령의 인사스타일을 감안하면 충분히 있을 법한 결정이라는 분석도 없지 않다.
어찌됐건, `안대희 총리후보자`를 바라보는 뭇사람들의 시선이 예사롭지 않다. 일찌감치 그를 차기 대권잠룡 반열에 올려놓는 `대망론`에서부터, 대통령에게 쏟아지는 온갖 포화를 대신 맞다가 결국 무너지고 말 `방탄용 총리`로 전망하는 `비관론`에 이르기까지 복잡한 스펙트럼을 이룬다. 안대희 총리후보자 발탁에 대한 갑론을박은 이제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6.4지방선거의 중요한 논점 하나를 형성하고 있다. 정치권의 공방을 통해서 불가피하게 대두될 정부혁신 방안에 대한 국민적 공감지수가 민심의 물꼬를 가르는 결정적인 변수가 될 여지가 있는 것이다.
지금은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이 된 도종환 시인의 시구(詩句)처럼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세상에 없다. 이 세상의 어느 지도자가 있어 완전무결한 인물일까. 다양한 가치관과 이해관계 속에서 천차만별의 평판을 안고 살아야 하는 지도자로서 난관을 어떻게 극복하느냐 하는 것은 온전히 당사자의 몫이다. 돌이켜보면, 역사상 그 어떤 정치지도자도 시련을 겪지 않고 거목이 된 사례는 없다. 온갖 풍상을 어떻게 견디고 대응하느냐에 따라 인물의 수준과 됨됨이가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법조인 안대희는 이제야 비로소 정치의 영역에서 휘몰아치는 매운 눈보라 앞에 벌거벗고 선 셈이다. 그가 정말 세월호 참사로 드러난 대한민국의 참담한 병폐들을 속속들이 도려내고 갈아치울 탁월한 인재인지 아닌지 혹독한 검증의 무대에 올랐다. 이미 제기된 몇몇 합리적인 의심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가 안대희의 장점과 가치를 평가해주고 그 효용가치를 살 것이냐 말 것이냐의 판가름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청와대는 머뭇거리지 않고 국무총리 임명동의를 위한 청문요청서를 국회로 보내는 등 강력한 임명 의지를 보이고 있다. 위대한 성군인 세종대왕이 구사한 용인술의 핵심인 `그 일을 해낼 수 있느냐`는 관점으로 볼 때 `너무 잘 드는 칼` 안대희 후보자는 난마의 한 매듭을 풀어줄 적임자인 것만큼은 분명하다. 소용돌이치는 민심의 바다 저 아래쪽에 그 비답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