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국가에서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는 `선거제도`는 기원전 508년 경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 실시된 도편추방제(Ostrakismos)가 그 기원으로 돼있다. 패각추방(貝殼追放)이라고도 불리는 이 제도는 아고라(광장)에 시민들이 모여 독재정치가(僭主:참주)가 될 우려가 있는 사람의 이름을 질그릇 조각이나 조개껍질에 써서 투표하게 하는 방식이었다. 투표결과 그 수가 6천을 넘으면 그 사람을 10년 동안 국외에 추방하는 매우 살벌한 제도였다.
오늘날 빈번히 실시되는 선거결과를 분석해보면 현대인들은 `회고적 투표`보다는 `전망적 투표`를 하는 경향이 뚜렷하게 늘고 있다. 즉 정당과 후보자에 대해 `과거에 어떻게 해왔는가`보다는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를 더 많이 살핀다는 것이다.
이는 선거에 나선 정당이나 후보자들이 상대방에 대한 비판의 수위를 결정하는 일을 매우 예민하게 만든다. 아울러 선거 때마다 무리한 공약을 남발토록 하는 고질적 표(票)퓰리즘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세월호 참사 충격 속에서 치열하게 전개돼온 지방선거 투표일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지방선거는 집권당이 무조건 불리할 것이라는 일방적인 전망 속에서 시작됐다. 선거초반 분위기로는 야당의 `정권심판론` 서슬에 여당이 무조건 참패하리라는 예상이 대세였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 하락에도 야당이 반사이익을 취하지 못하는 현상을 들어 최소한 야당이 압승하는 사태는 없을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기도 했다.
지난달 말 이틀 동안 실시된 사전투표의 투표율 11.5%를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 연령대별 투표율은 20대 이하가 16.0%로 가장 높았고, 60대 12.2%, 50대 11.5% 등의 순이었다. 70대 이상(10.0%)과 40대(10.0%), 30대(9.4%)의 투표율은 평균치를 밑돌았다. 이 결과를 놓고 여야 정당들이 서로 자기네가 `위태롭다`며 엄살작전을 펴는 것을 보면, 이번 선거가 얼마나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는지를 충분히 짐작하게 한다.
`자유선거`는 민주주의의 근간이다. 투표는 유권자가 나라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만천하에 각인시키는 성스러운 행사라고 할 수 있다. 자기가 가진 정치적 권리를 특정 대리인에게 잠시 위탁하는 엄숙한 의식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미 역사를 통하여 국민들이 자신의 권리를 올바로 위임하지 않을 경우 어떤 비극이 일어나는지를 누누이 목격했다. 지도자를 잘못 뽑는 일이 국민 개개인에게 얼마나 심각한 손실로 돌아오는지도 생생하게 겪었다.
투표소 앞에서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꼭 되새겨야 할 일이 있다. 무엇보다도 이번 선거는 `지방선거`라는 사실이다. 그렇잖아도 `지역이 골고루 잘 사는 나라`라고 말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우리 지방자치의 현실을 생각하면 정말 잘 뽑아야 한다. 이번 지방선거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도 냉정한 판단과 이성적인 투표가 필요한 선거다. 세월호 비극의 교훈은 결코 잊지 말아야 하지만, 감성에만 휘둘리는 것은 옳지 않다. 참다운 지역발전의 역군이 누구인지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순서다.
선거제도의 기원이 된 `도편추방제`의 내용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오늘날 선거제도가 품고 있는 가치를 상회하는 깊은 의미가 있다. 패각선거는 `10년간 해외추방`이라는 냉혹한 처결을 전제로, 어떤 주요인물에 대한 `독재가능성`을 판별하는 지혜로운 `전망적 투표`였던 것이다. 없는 이야기까지 지어내어 유권자들을 선동하는 일이 즐비한 오늘날 선거풍토에 소중한 교훈을 던져준다.
유권자의 자존심을 진정으로 지키기 위해서 우리는 `누가 더 잘 할 것인가`를 살피고, 또 살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