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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은 틀렸다

등록일 2014-05-13 02:01 게재일 2014-05-13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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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재휘 서울본부장

이 시대 최고의 스타지식인으로서 유명세를 누려온 도올 김용옥(金容沃) 한신대 석좌교수는 지난 2012년 총선 직전 한 라디오에 출연해 `쥐새끼`라는 용어를 풍자적으로 동원, 이명박 정권을 모질게 힐난했다. 그는 “임금이 어질지 못하면 모든 사람이 어질지 못하게 되고, 임금이 인해야 비로소 국민들이 인하게 된다”는 고전을 인용하면서 “쥐새끼라는 게 자기 닥치는 대로 갉아먹고 도망치니까 우리가 쥐새끼를 싫어한다”고 말해 청취자들을 어이없게 만들었다.

한동안 조용하던 그가 청천벽력 같은 세월호 비극으로 어지러워진 민심을 파고들며 또다시 교졸한 개인기를 펼쳐 파문을 빚고 있다. 김 교수는 최근 한 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세월호 참변의 전 과정을 직접적으로 총괄한 사람은 박근혜 한 사람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통령의 하야와 국민봉기를 선동하는 구호도 서슴지 않았다. “국민들이여! 더 이상 애도만 하지 말라! 분노하라! 거리로 뛰쳐나와라!”라는 과격한 용어로 독자들을 자극하기도 했다.

6.4 지방선거를 저만큼 앞둔 시점에 터진 세월호 침몰 사고는 단순히 정부여당의 정치적 재앙이라는 의미를 훨씬 뛰어넘는 희대의 참극이다. 상상을 초월하는 횡액 앞에서 국민들은 오래도록 속울음을 삼키고 있다. 세계 8위의 무역대국이 된 대한민국에서 어째서 이런 말도 안 되는 대형 참사가 일어나는가. 사고발생 이후 한없이 허우적대는 정부의 대응능력과 끊임없는 잡음들은 또 무엇인가. 형언키 어려운 아픔 속에서 국민들은 참사의 원인들을 곰곰 헤아리리다가, 각자의 적당주의와 무질서의 적폐들을 발견하고 스스로 가슴을 치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정해진 지방선거일이 시나브로 다가오면서 세상 온갖 부조리를 상대방의 허물로 몰아 때리는 정치인들의 못된 삿대질 버릇이 도졌다. 아마도, 선거일이 임박할수록 처절하게 반성하고 대안을 내놓아야 할 사명을 망각한 채 더욱 격렬한 멱살잡이 꼴불견을 펼칠 듯하다. 이미 추모행사에 섞여들어 `박근혜 퇴진` 구호를 목청껏 외쳐대는 불순한 풍경마저 늘고 있다. 정치를 좀 안다는 어떤 인사들은 `청와대가 세월호 침몰 사고를 틈타 정권에 부담을 준 악재들을 다 털어내고 있다`는 냉혹한 해석을 내놓는다. 새 정권 등장 이후 불거진 국정원 대선개입과 채동욱 전 검찰총장 사찰, 국정원 간첩사건 증거조작 사건 등 모든 골칫거리들을 일순에 비껴가고 있다면서 약 올라 못 견뎌하기도 한다.

세월호 참극의 뿌리는 결과지상주의에 함몰돼 온갖 협잡에 물들어 살아온 우리 모든 가치관의 모순에 정확하게 맞닿아있다. 지금 우리가 경계해야 할 일은 서로 상대방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자기변명`에 빠지는 한심한 짓거리다. 본질을 벗어난 뒤죽박죽 선거판이 예고되면서, 이번 지방선거는 최악의 선거가 될 공산이 커졌다. 그악한 선동전으로 표심의 물꼬는 형편없이 왜곡될 것이고, 그 참담한 결과는 갈 길 바쁜 지역발전 여정에 고약한 암초로 남을 확률이 높다. 냉철해야 할 유권자들의 이성과 평정심은 진도 앞바다에서 일어난 참극으로 너무 많은 상처를 입었다.

사고를 예방하지 못한 책임으로부터 통치자가 온전히 자유로울 도리는 없겠지만, `모든 책임은 박근혜 대통령이 져야 한다`는 도올의 판단은 틀렸다. 그의 주장이 `참`이 되려면 최소한 `그 이전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는 조건이 성립돼야 한다. 세월호 참극은 오래전부터 모든 곳에서 시작됐고, 여야 정치인과 지식인을 비롯해 국민 그 누구도 원인으로부터 자유로울 자격이 없다. 한때 현란한 학구열로 사람들에게 많은 감동을 주던 도올이 마치 흑백논리에 갇혀 세상을 천박하게 재단하는 패당주의의 아류들처럼, “국민들이여! 거리로 뛰쳐나와라!”하고 떠드는 모습은 참으로 곤혹스럽다. 형편없이 무너진 대한민국의 국격 앞에서 무한한 부끄러움으로 대안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건강한 석학(碩學)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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