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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에 관한 오해

등록일 2014-07-15 02:01 게재일 2014-07-15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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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재휘 서울본부장

청나라 황제 건륭제(乾隆帝)가 한밤중 잠행을 나섰다가 자금성 앞 시장에서 유일하게 문을 연 이름 없는 한 만두가게를 찾았다. 건륭제는 주인에게 혼자 문을 연 이유를 물었다. 주인은 “혹시라도 자금성을 찾는 백성이 있어 허기를 채우지 못하고 발길을 돌린다면 장사치의 도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건륭제는 며칠 뒤 이 가게에 자필 편액을 선물로 보냈다. `도성 내 유일한 곳`이란 의미의 `두이추(都一處)`는 260년이 넘도록 지금도 성업 중이다.

조선시대 군주의 `미복잠행(微服潛行)`은 민생을 살피기 위해 평상복 차림으로 무예별감 같은 경호원을 대동하고 은밀히 다니던 일종의 소통수단이었다. 왕들은 미복잠행으로 백성들의 생활을 살펴 고충을 해결해주거나 국정운영에 반영했다. 성종(成宗) 임금이 미복잠행 중에 청계천 광교에서 순박한 경상도 숯장수 김희동을 만나 감탄하여 벼슬을 내린 일화는 유명하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상소(上疏)`라는 방법으로 꽉 막힌 상달(上達)의 문을 두드렸다. 선비들이 올린 상소는 승정원을 거쳐 국왕에게 전달되었는데, 특히 성균관 유생이 올린 상소에는 국왕이 직접 답변하는 것이 관례였다. 물론 대부분의 백성이 왕의 얼굴을 알지 못했던 시대의 일들이긴 하지만, 권위주의가 철옹성 같던 그 시대에도 `소통`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증명해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지난 10일 오전 청와대에서는 모처럼 의미 있는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박근혜 대통령 초청 형식으로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여야 원내대표들과 정책위의장들이 나란히 참석하는 회동이 있었다. 환한 모습으로 예정보다 훨씬 긴 시간 국정현안을 논의한 이 날의 만남은 지난해 9월16일 국회 사랑채에서 박 대통령이 김한길 당시 민주당 대표와 가진 `어색한 만남`과는 뚜렷한 대조를 이뤘다.

오랜 세월 `대립`과 `갈등`을 증폭시키며 실망을 누적해온 우리 정치의 고질병을 치유하는 유일한 방법은 `소통`이다. 집권 2년차 중반을 넘기도록 국무총리 하나 제대로 세워내지 못할 만큼 곤경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박근혜정부가 난관을 헤쳐 나갈 최상의 비책도 `소통`이다. 문제는 `소통`에 대해 정치인들이 갖고 있는 지극히 구시대적인 고정관념이다. 소위 `영수회담`이라는 명목으로 여야 우두머리들이 회동날짜 정해놓고, 물밑에서 사전에 주고받을 물목 다 정리한 다음 만나서 사진이나 찍는 시대착오적인 `소통`개념에 많은 정치인들이 여전히 절어있다.

지금은 야당의 공동대표로 있는 안철수의 정치적 입신 국면은 `소통`의 새로운 가치를 명명백백 입증한다. 안철수는 오직, 젊은이들의 소소한 고민과 설익은 견해들을 진지하게 들어주는 행위 하나만으로 국민적 스타가 되고, 삽시간에 대권주자 반열에 올랐다. 그 과정을 생생히 지켜보고서도 `소통`의 참의미를 깨닫지 못하는 기성 정치지도자들의 답답한 모습에 국민들은 짜증이 나 있다.

`소통`은 일방적인 `설득`이 아니다. `소통`은 가시적인 `성과`를 전제하는 성마른 만남이 아니다. 쌍방의 `양보`를 조건으로 하는 고답적인 대좌는 더더욱 아니다. 모든 `소통`은 `경청`에서 시작된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들어주다보면 불현듯 지혜가 보이는 마법과 같은 것이다. 미복잠행이 유효한 시대가 아니라 하더라도, 대통령이 민생현장을 찾아 경청하는 일은 잦을수록 좋다. 정치지도자들의 지속적이고 허심탄회한 대화와 만남은 꼬인 정국을 풀어가는 첩경이다.

성악가 출신의 `소통전도사` 김창옥의 말은 음미해볼 가치가 있다. “마음의 문을 꽁꽁 걸어 잠근 사람과 소통하는 방법은 따로 있다. 먼저 내 마음 가장 깊숙이 있는 문을 활짝 여는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의 상처, 열등감 등 부족하고 모자란 부분을 드러내는 것이다. 나를 지키던 그 문이 바로 사람들과 만나고 세상과 만나는 소통의 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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