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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주호영’과 ‘김종인’

안재휘 논설위원각종 선거에서 연전연패하고 있는 제1야당 미래통합당은 해마다 시고 떫고 맛없는 과일만 생산하면서도 아무것도 바꾸지 않는 한심한 과수원에 비유된다. 참으로 기막힌 것은, 혁신의 핵심인 과수(果樹)의 품종개량에는 관심이 없고 바보처럼 소비자들의 입맛이 다시 돌아오기만을 고대한다는 것이다. 시대에 뒤떨어진 허접한 고목들마저 용기 있게 베어내지 못하는 모습이 딱하기 그지없다.미래통합당 새 원내대표에 5선의 주호영 의원(대구 수성갑)이 선출되면서 제1야당의 새로운 길이 주목받고 있다. 제일 큰 관심은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체제’ 도입 여부다. ‘정족수 미달’ 작전이라는 유치한 몽니 수법을 동원해 상임전국위원회를 무산시킨 정치꾼들의 행태는 절망적인 구태였다. 총회 격인 전국위가 김종인 비대위를 용인하는 결정을 내렸으니 더더욱 같잖은 작태 아니었던가.내외부에 산재한 문제들을 톺아보면 통합당은 일부 당내 명망가들의 장난질이 난무할 ‘자강론’ 따위의 대안으론 어림없어 보인다. 주호영과 김종인이 투톱(Two top) 형태로 이끌면서 역할분담을 하는 게 바람직하다. 원내대표 주호영은 공룡이 돼버린 여당을 상대하는 일만으로도 버겁고 또 버거울 것이다. 시대에 맞는 이념좌표를 설정하여 당을 혁신하고, 미래비전을 만들고, 새로운 인재들을 끌어모으는 일은 김종인 비대위에 맡기는 게 옳다.190석을 헤아리는 의석을 거느리고 연일 으르릉거리는 골리앗 여당의 가공할 힘에 맞설 지혜를 양치기 소년 ‘다윗의 역사’에서 배워야 한다. 다윗이 골리앗을 쓰러트리기 위해 들고 나선 무기는 양을 지킬 때 쓰는 지팡이와 물매, 그리고 돌 몇 개뿐이었다. 물리력으로 민주당을 막아서겠다는 구닥다리 발상일랑 아예 접어야 한다. 철저하게 ‘정책 정당’으로 거듭나야만 한다.통합당이 다시 민심을 얻기 위해서는 이념좌표 설정부터 새롭게 해야 한다. 진작부터 ‘중도실용’, ‘진보 우파’ 등의 대안 담론들이 쏟아지고 있었지만, 그동안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썩은 고목들이 떠들어대는 ‘꼴통보수’의 퀴퀴한 이론에 함몰돼 자멸의 뻘밭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이제는 바꿔야 한다. 아니, 지금 못 바꾸면 정말 끝장이다.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인 ‘인권’과 ‘자유’의 가치를 더이상 진보 진영의 전유물로 넘겨줘선 안 된다.주호영은 국민을 감동시킬 최고의 정책들을 단단한 조약돌로 들고 나서서 골리앗 민주당의 급소를 정확하게 겨냥해야 한다. 김종인은 지혜의 칼을 움켜쥐고 시장이 진작 퇴출한 맛없는 과일들이나 생산하는 철 지난 과목(果木)들부터 모조리 베어내고, 새로운 이념좌표를 세우는 품종개량 작업부터 해야 한다. 그래야 미래통합당이 비로소 ‘미래’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완전히 달라진 정치지형 속에서, 주호영의 슬기로운 대응과 김종인의 용단이 빈사 상태의 제1야당을 잘 살려내길 기대한다. 많은 이들이 지난 4·15총선 선거운동 마지막 유세장에서 보았던 노정객 김종인의 뜨거운 눈물을 기억한다.

2020-05-10

피론(Pyrrhon)의 돼지들

안재휘 논설위원‘승자의 손에는 꿈이 가득하고, 패자의 주머니에는 욕심이 가득하다’는 말이 있다. ‘승자는 넘어지면 앞을 보고, 패자는 넘어지면 뒤를 본다’는 말도 있다. 지난 4·15총선에서 대승을 거둔 더불어민주당은 넘치는 힘을 주체하지 못하는 모습이고, 미래통합당은 당권 쟁취 가능성 저울질 속에 ‘김종인’ 추대냐 아니냐를 놓고 연신 파열음이다. 당분간 제1야당에서 무슨 희망의 싹수를 보기란 어렵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늘고 있다.민주당에서 일어난 ‘개헌론’ 돌개바람은 결코 허투루 볼 일이 아니다. 송영길 의원을 필두로 일부 당선자들의 입을 통해서 우후죽순 터져 나온 개헌론은 ‘대통령 중임제’에서 ‘토지공개념’, ‘이익공유제’에 이르기까지 휘발성 높은 개헌 화두들을 담고 있다. 정세균 국무총리마저도 “개헌은 앞으로 1년이 골든타임”이라며 부채질을 했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20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를 열어 국민 100만 명 동의를 조건으로 하는 ‘국민발안 개헌안’ 처리를 모색 중이다.청와대와 민주당 지도부가 일단 제동을 걸었다.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의 정책 세미나에 참석한 민주당 이인영 원내대표는 기자들에게 “개헌추진과 관련해 우리 당, 지도부 내에서 검토한 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 역시 “청와대와 정부는 전혀 개헌을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못 박았다.그러나 집권당의 개헌론이 소멸했다고 볼 여지는 없다. 코로나19의 가공할 여파가 걱정인 판국에 개헌 논란 과열로 인한 민심이반을 우려한 작전상 후퇴로 읽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미래통합당의 어질더분한 안팎 사정이 조기에 정돈될 가망이 전혀 없는 판국이니, 서두를 이유가 없다는 생각일 것이다.절체절명의 위기국면이 이어지고 있는 미래통합당은 아직 배가 부른 모습이다. 위기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지부터 의심스럽다. 총선참패의 충격을 획기적인 혁신의 전환점으로 승화시키기는커녕 여전히 구닥다리 권력 쟁패만 탐닉하는 양상이다. 김종인을 비대위원장으로 추대해 극적인 반전을 꾀하자는 측과 전당대회를 통해 자강(自强)의 길을 가야 한다는 측이 맞서 8일로 예정된 원내대표 선거의 정중동 패싸움에 함몰돼 있다.나라도 그렇고 통합당도 그렇다. 바다 한가운데서 큰 폭풍우를 만난 선박 신세다. 그런데, 아수라장이 된 배 위에서 식식거리고 잠을 자거나 먹을 궁리에만 빠진 천하태평 돼지들이 너무 많다. 이문열의 소설 ‘필론의 돼지’(‘피론의 돼지’ 또는 ‘필론과 돼지’로 통용)는 무도한 각반(脚絆·폭력집단의 상징)들의 횡포를 방관하는 비겁한 군상들을 통해 사회의 모순을 꼬집는다. 하버드대 교수 야스차 뭉크(Yascha Mounk)는 자신의 저서 ‘위험한 민주주의’에서 “자유민주주의 수호자들이 현상 유지를 선호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상 포퓰리스트들과 싸워 이길 수 없다”고 단언한다. 미래통합당은 아직도 ‘수구꼴통’ 땟국물이 줄줄 흐르는 ‘낡은 보수’ 각반에 미련이 남아 있는 것 아닌가.

2020-05-03

김종인과 ‘TK 정치’

안재휘논설위원골동품 수준의 기계부품들로 가득한 낡은 공장 하나가 있다. 지붕까지 새고 기둥과 벽에 금까지 가 있는 데다가 기계들은 잇달아 고장 나고 부서지고 수시로 멈춰 서곤 한다. 구닥다리 생산품은 소비자들로부터 외면당하고, 무시당한 지 오래됐다.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는 무능한 관리자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조금씩 사주는 일부 소비자들을 믿고 공장 경영권에만 매달린다.총선에서 참패를 당해 초토화되다시피 한 당을 추스를 구원투수로 지명된 김종인 전 선거대책위원장을 놓고 미래통합당이 시끌벅적하다. 김 전 위원장이 언론 인터뷰에서 ‘무기한·전권’ 요구를 시사하자 반발하고 있다. 논란 확산에 김종인은 “임기, 언제든 그만둘 것”이라며 한발 물러선 상태다.전쟁터에서 근근이 살아남은 다선의원들을 중심으로 무소불위(無所不爲) 권한을 용납할 수 없다며 볼멘소리를 낸다. 선의로 해석하자면, 당내 민주주의를 지키고 싶은 순정, 제1야당의 자존심이 뭉개지는 데 대한 분노의 표출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논리 속에 ‘자기 정치’ 욕심의 발로는 정녕 추호도 없을 것인가.경남에서 대구로 날아와 무소속으로 당선된 홍준표 전 대표가 거품을 물었다. 비대위 카드를 찬성하던 그는 김종인이 자신을 겨냥해 “시효가 끝났다”고 잘라 말하자 표변했다. 홍준표는 지난 1993년 동화은행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김 전 위원장의 전력을 소환해 수사 당시의 장면까지 시시콜콜 묘사하며 막말에 가까운 비난을 퍼붓고 있다.역설적이게도, 홍준표의 구상유취한 행태는 미래통합당이 왜 이대로는 안 되는 건지, 그 퀴퀴한 실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김종인이 던지는 화두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과하다 싶을 수 있지만, 그 메시지는 대단히 적확하다. ‘70년대 생 경제전문가가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상징하고 있는 미래지향적 의미를 음미할 필요가 있다.그냥 자기들끼리 해보겠다는 통합당 일부 중진들의 심사는 도대체 뭔가. 21대 총선에서 지역구와 비례대표의 통합당 득표율에서 민주당과의 차이가 고작 8%라고 우쭐대는가. 문재인 대통령 국정 지지도가 62%를 훌쩍 넘고, 민주당 43%·통합당 22%로 나타난 갤럽의 지지도 조사결과는 어떻게 설명할 참인가. 오해하지 마시라. 41%, 그거 통합당 좋아서 찍은 표 아니다.굳이 김종인이 아니더라도 미래통합당은 ‘창조적 파괴’ 말고 길이 없다. 지금이야말로 ‘TK 정치’의 역할이 중요하다. ‘꼴통보수 본산’ 이미지를 완전히 털어낼 기회이기도 하다.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한다. 다수 국민이 품고 있는 ‘중도실용 정치’에 대한 갈망에 주목해야 한다. ‘보수’가 살길은 ‘중도실용’으로 재무장하는 외길뿐이다. ‘TK 정치’가 먼저 치고 나가야 한다. 지난 4·15총선은 ‘보수’와 ‘TK’가 이제 대한민국의 주류가 아님을 충분히 증명했다. 담대한 설계도를 놓고 ‘보수정치’의 낡은 공장을 철저히 때려 부숴야 한다. 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의 시간이 왔다.

2020-04-26

‘보수’를 버려야 ‘보수’가 산다

안재휘 논설위원‘보수’는 끝났다. 변질하고 퇴락한 그 낡은 가치는 국민으로부터 드디어 멸종 선고를 받았다. ‘보수’ 본산을 자임한 미래통합당 정치세력은 수술이 급박한 환자의 환부에 분홍색 머큐로크롬 잔뜩 발라놓고 요란스레 굿판만 벌이다가 망신당하고, 드디어 경각에 다다른 중환자 꼴이다.그렇게 망가진 지금 순간마저 서푼 어치도 안 되는 권력 놓고 서로 주도권을 잡겠다고 아우성치는 구제 불능 바보들의 대행진 군상은 참으로 딱하다.4·15총선 성적표는 참혹하다. 썩어 문드러진 ‘꼴보수’ 간판 부여안고 격랑의 바다에 대책 없이 뛰어든 구닥다리들은 이제 정치생명마저 위태로운 난민 몰골일 따름이다. 초유의 실패작으로 끝난 보수 농사 판은 완전히 갈아엎는 게 정답이다. 수치심 내팽개친 채 추한 권력의 욕망을 널름대는 철면피들은 또 뭔가.민주당의 압승은 민주당이 잘해서 나온 결과가 아니라는 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코로나19에 대한 성공적인 대처가 결정적 승인이라는 해석도 100% 공감하기 어렵다. 미래통합당에 대한 지독한 불신이 민주당 승리로 이어진 결과로 풀이하는 게 맞다. 4·15 총선 정당별 득표율은 민주당 49.9%, 통합당 41.5%로 불과 8.4% 차이였다. 지역구 의석을 163대 83으로 가른 것은 소선거구제의 맹점 때문이다.김무성·홍준표 등의 공천을 굳이 배제한 황교안의 처사는 졸렬한 패착이었다. 그러나 대구에서 무소속 당선된 다음 황교안을 욕하고 차기대선 출마를 떠들어대는 홍준표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엔 또 한 번 경기가 날 지경이다. 홍준표를 당선시킨 대구 민심은 황교안의 공천이 잘못됐다는 경고, 딱 거기까지다. 그게 무슨 홍준표의 대선후보 특허권이라도 되는 양 설치는 것은 망발이다.우리 사회의 이념 패러다임은 확실히 바뀌었다. ‘보수’는 이제 더 이상 기득권층도 지배계층도 아니다. 국민은 이제 ‘자유 우파’니, ‘보수’니 하는 구호만 들어도 진저리를 친다. 그들을 그렇게 만든 건 진보세력이 아니라 바로 수십 년 째 ‘보수’를 무슨 금과옥조처럼 되뇌면서 제대로 된 미래비전 하나 못 내놓은 우매한 보수 지도자들이었다.미래통합당은 기초공사부터 새로 하는 전면 재건축에 들어가야 한다. 누누이 강조해온 이야기이지만, 이념좌표부터 새롭게 설정해야 한다. 건전한 중도실용 이념으로 클릭 이동을 해야 한다. 청년들을 정치 중심에 세워야 한다. ‘방탄소년단’에 코 웃음치고, ‘기생충’을 이념의 눈으로 폄하하는 따위의 가치관으로는 안 된다. 눈속임 리모델링으로는 어림도 없다. 모조리 다 때려 부수고 기초공사부터 새로 해야 한다. 그 기초공사가 바로 이념좌표의 재설정이다. 수구꼴통 민심에 묶인 발목의 족쇄를 미련 없이 풀어헤쳐야 한다.시대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꼰대 짓’만 거듭하는 일을 더 이상 지속해선 안 된다. ‘보수’를 버려야 ‘보수’가 산다. 미련을 가질 이유가 없다.

2020-04-19

황당한 두 ‘전쟁’

안재휘 논설위원범여권 최고의 궤변 기술자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4·15 총선 결과를 ‘민주당 180석’으로 예측했다. 대중이 이기는 쪽에 줄 서고 싶어 하는 밴드웨건(Bandwa gon·편승효과)을 노린 꺾기 기술에 들어간 모양새다.선거 막바지 미래통합당은 화들짝 노란 표정이다. 당초 130석이 목표라고 밝혔던 제1야당 통합당은 민주당 대승론에 “섬뜩한 일을 막아야 한다”며 언더독(Underdog·동정표) 전략을 이어갔다. 여론조사 공표일 직전까지 발표된 각종 조사 결과를 보면 여당의 강세는 역연했다. 다만 각 지역구 지지율 트랜드(흐름)에서 많은 야당 후보의 상승세 또한 감지된 것도 사실이다.섣불리 예단할 상황은 아니지만, ‘코로나19’ 비상사태를 충분히 활용하면서 체면 불고하고 두 개의 통발(비례 위성 정당)까지 장만한 민주당의 작전은 일단 성공적으로 읽힌다. 반면에 통합당은 호재들을 하나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총선 너머 대선까지 함수로 놓고 휘두른 황교안 대표의 서툰 공천작업부터 패착이었다.이번 총선은 소득주도성장 파탄·조국 사태·공수처법·탈원전·386 집권세력의 위선과 몰염치·통일정책 혼선·국민 분열 심화 등 문재인 정권의 기록적인 실정(失政)에 대한 예리한 심판이어야 맞다. 그러나 민주당은 잃었던 호남을 전면장악하고 전염병 사태를 극적으로 이용해 민심 틀어쥐기에 성공하고 있다.한국은 세계적인 ‘코로나19’ 창궐 사태에서 확실히 남다른 대응을 보여주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상들은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잘 대응해왔는지를 반증한다. 우리의 선방은 의료시장의 오랜 자유경쟁과 전면적 의료보험이 길러낸 수준 높은 의료기술, 그리고 의료진의 놀라운 헌신성과 온 국민의 감동적인 의병 정신이 합작해낸 결과물이다.그런데 그 열매들은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 몽땅 가로채어 독차지하고 있다. 중국인 입국을 끝내 차단하지 않은 미심쩍은 아집을 포함하여 ‘코로나19’ 대응에 있어서 이 정부가 잘못한 일은 한둘이 아니다. 오죽하면 진보 논객들마저 문 대통령이 ‘야당 복’에다가 ‘코로나 복’까지 타고났다고 찬탄하고 나설까. 문 대통령의 지지도는 50%를 훌쩍 넘어서서 고공행진 중이다.우리가 겪고 있는 ‘코로나19’와 ‘21대 총선’ 두 전쟁의 양상은 황당하기 짝이 없다. 선거기간 내내 전국을 운동복 입고 혼자서 달음박질하고 다닌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의 예언은 끔찍하다. 민주당이 승리할 경우 정부·여당은 “윤석열 검찰총장을 끌어내리기 위해 온갖 공작과 술수를 다 동원”하고, “현 정권의 권력형 비리 의혹이 묻힐 것”이라는 내용이다. 정말 그의 예언대로 된다면 이 나라의 미래는 실로 절망적이다. 표심은 이미 다 갈렸고, 이제 샤이(shy)보수의 선택만 남았다. 대략 25%로 헤아려지는 부동층 가운데 숨어있다는 7~12%가량의 샤이보수는 과연 움직여줄 것인가. 총선의 본질인 ‘견제와 균형’ 정신은 막판에라도 살아날 것인가 궁금하다.

2020-04-12

‘개돼지’ 딱지 떼기

안재휘 논설위원교육부 정책기획관이던 나향욱 씨는 취중 실언으로 극심한 고초를 겪는 안타까운 인물이다. 그는 지난 2016년 7일 서울 종로의 한 식당에서 진보언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민중은 개돼지다. 99%에 해당하는 민중은 먹고살게만 해주면 된다”고 망언한 것으로 보도돼 파면당했다. 재판에서 겨우 승소해 강등 복직했지만, 여전히 참담한 처지에 놓여 있다.‘개돼지’라는 말이 갖는 모욕적 이미지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폭풍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촛불집회 현장의 단골 선동 문구의 하나로 등장했었다. 그런데 4·15총선 선거가 시작된 이래 ‘개돼지’라는 말이 정치권에 또다시 등장했다. 각기 동원하는 용도는 다르지만 이제 정치권에서 ‘개돼지’ 용어가 상대방을 공격하는 논리에 동원되는 일은 흔하다.인천을 방문한 유승민 미래통합당 의원은 코로나19 사태가 블랙홀이 된 선거판을 지적하며 “상스러운 표현이지만, 우리 국민은 절대 ‘개돼지’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도 정치권의 법인세 감면 주장에 대해 “‘개돼지’ 취급당하며 말라버린 낙수에 더 이상 목매지 말자”고 목청을 높였다.정치권이 써먹는 ‘개돼지’는 유권자들을 흥분시키려는 단골 선동언어가 됐으나, 정작 천박한 행태로 보면 정치권의 의식 자체가 더 의심스럽다. 이번 선거전에 나타난 ‘위성 정당’ 논란만 해도 그렇다. 제1야당을 배제하고 만든 준연동형비례대표제는 1당독재 국가에서나 존재하는 위성 정당들을 양산했다. 급조된 통발 정치는 국민을 ‘개돼지’로 여긴 추악한 만행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다.여당의 막강 대권 주자 이낙연 선관위원장의 “비난은 잠시지만 책임은 4년간 이어질 것”이라는 말을 들으며 문득 떠올랐다. 나향욱이 인용했다는, 영화 ‘내부자들’에 등장하는 대사다. “어차피 대중들은 ‘개돼지’들입니다. 뭐하러 ‘개돼지’한테 신경을 쓰시고 그러십니까. 적당히 짖어대다가 알아서 조용해질 겁니다” 정치꾼들의 진짜 속마음이 대략 이런 수준 아닐까.패거리 의식에 찌들어 자기편이면 무조건 칭찬하고, 아무리 좋은 일이어도 상대편의 언행은 비틀고 물어뜯는 극단적인 내로남불 행태야말로 진짜 ‘개돼지 행각’이다. 국민의 시시비비(是是非非) 정신을 모조리 증발시킨다는 측면에서 이 나라의 정치인 팬덤 현상은 비극이다. 그 폐해가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는 4·15총선 양상은 이 나라 민주주의의 위기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총선을 앞둔 유권자들의 고통은 모름지기 ‘물고문’ 수준이다. 누군가를 선택해야 하는 일 자체가 고역이다. 하지만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이번에 우리는 지혜로운 ‘개돼지 우리’ 탈출기를 써야 한다는 사실이다. 권력층의 오만방자한 행태를 엄중히 심판해야 한다. 쏟아지는 포퓰리즘의 우박 세례를 이겨내고 이 ‘개돼지’ 굴욕 딱지를 확실하게 떼어내야 한다. 우리는 결코 ‘적당히 짖어대다가 알아서 조용해지는’ 하찮은 하등동물이 아님을 증명해야 한다.

2020-04-05

‘몰염치’ 공화국

안재휘 논설위원4·15총선 전쟁이 시작됐다. 죽기살기식 혈투가 예상되는 이번 총선의 으뜸 화두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코로나19’다. 감염공포와 미래에 대한 불안, 일상 파괴의 고통에 찌든 국민을 홀리려는 정부와 여야 정당들의 ‘국고 빚 퍼 돌리기’ 경쟁이 가관이다. 40조니 100조니 하고 불러대는, 감도 안 잡히는 천문학적 금액이 시장판 야바위놀음을 뺨치게 한다. 비극은 그 나랏돈을 메꿀 방안에 대해서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준연동형비례대표제’라는 낯선 이름의 선거제도가 이 나라 정치의 골치아픈 애물단지가 됐다. 우후죽순 급조된 비례대표 전용 정당들은 물고기를 홀리려고 된장 발라 물속에 던진 통발들을 연상케 한다. 투기성 통발 선거야말로 국민을 피라미로 보는 대표적인 국민모독 정치행태다. 비례대표 선거 참여 정당이 35곳으로 확정되면서 정당투표용지가 48.1cm 길이가 됐다니, 유권자들은 더욱 헷갈리게 됐다.총선을 앞두고 벌어지는 정치권의 온갖 소란스러운 행각들을 보노라면, 이 나라 정치꾼들은 국민을 자기들 잔꾀에 무한히 놀아나는 하등동물 취급하는 게 분명하다. 대놓고 위성 정당을 만든 미래통합당의 행태를 무조건 괜찮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여권의 타락한 짬짜미 4+1 다수의 횡포에 눌려 어쩔 수 없이 구경만 하고만 준연동형비례대표제에 대항하여 통합당이 위성 정당 ‘미래한국당’을 만든 속내에는 그나마 동정의 여지도 있다.그러나 집권 더불어민주당의 겉 다르고 속 다른 술수가 뚜렷한 위성 정당 놀음은 역겨움까지 부른다. 통합당의 위성 정당에 대해 오만 험구들을 다 동원하던 민주당은 재야 진보 인사들이 주축인 ‘정치개혁연합’마저 따돌리고 ‘더불어시민당’을 비례대표 플랫폼으로 만들었다. 항간에는 ‘경찰차를 빼앗아 타고 도둑질 하는 꼴’이라는 풍자까지 나올 지경이다.그런데 그렇게 끝난 게 아니었다. 검찰에 기소된 전 청와대 요인까지 고삐 잡은 ‘열린민주당’은 또 뭔가. 부동산 투기 장난질이 들통나서 여당의 공천마저 보이콧된 전직 청와대대변인에다가 조국 아들에게 허위 인턴증명서 떼준 혐의를 받아 재판 중인 비서관까지 거기 얼굴 들이밀고 독설을 뿜어대고 있다. 김의겸의 ‘언론개혁’ 주장도 가소롭지만, 현 검찰을 쿠데타 세력으로 몰아 살생부까지 내돌리는 황의석의 행동은 혀를 차게 만든다.민주당 공동 선대위원장이기도 한 이낙연의 ‘치욕은 잠깐이지만 책임은 4년’이라는 말 속에 민주당의 추접스러운 본심이 다 들어있다. 청와대와 집권 더불어민주당의 온갖 정치 장난질은 번번이 허깨비 취급이나 당하는 제1야당 미래통합당과 황교안 대표의 수치이기도 하다. 민심을 갈라치며 국민을 능욕하는 권력자들의 ‘몰염치’ 행태가 목불인견인데도, 야당의 난장 공천까지 겹쳐 대안마저 마땅치 않은 국민은 참으로 고달프게 됐다. 투표할 때만 겨우 잠깐 ‘주인’ 노릇을 한다던가, 유권자들이 그 찰나의 ‘주인’ 행세라도 제대로 할 채비를 갖춰야 할 텐데…. 과연 잘 돼가고 있나.

2020-03-29

‘야당 복(福)’

안재휘 논설위원“문재인 대통령은 확실한 ‘야당 복(福)’이 있는데, 보통 복이 아니라 천복(天福)이다.”지금은 민생당 소속인 박지원 의원이 지난해 11월 초 한 라디오 방송에 나와서 한 말이다. 박 의원은 박찬주 전 대장 영입 과정에서 황교안 대표가 보여준 태도와 관련해서는 “양손에 떡을 들고 한쪽만 먹어야 하는데 두 개 다 먹으려고 하니까 두 개 다 놓치는 꼴”이라고 비웃기도 했다.최근 미래통합당의 TK(대구·경북) 공천 후폭풍 소용돌이를 지켜보노라면 새삼 ‘문재인 대통령의 야당 복(福)’ 이야기가 떠오른다. 제아무리 김형오 공천관리위원장이 독자적으로 한 것처럼 해도, 공당의 공천에 대한 책임은 어디까지나 당 대표의 몫이다. 황교안 대표는 왜 이런 이상한 TK 공천을 추구하거나 방관했을까. 아니라고 말하고 싶겠지만, 섣불리 대권을 염두에 두고 고장 난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공천 결과를 뜯어보는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친황(親黃·친황교안)으로 분류되는 인사들이 약진했다고 평가하지도 않는다. 통합당이 TK 지역에서 또다시 ‘공천학살’이니, ‘막장 공천’이니 하는 뒷말을 폭발시키는 것은 근본적으로 당의 지향점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준도 없고, 절차도 불투명한 상태에서 낙하산 공천 장난질까지 시도된 것으로 읽힌다. 무엇보다도 한심한 패착은 TK 유권자들의 자존심을 전혀 고려대상으로 여기지 않았다는 점이다.‘문재인 비난’과 ‘통합 웅변’만으로 되는 선거판이 아니다. 국민의 관심은 욕설 능력도, 닥치고 통합의 만용도 아니다. 첫 번째가 수구꼴통의 이미지를 완전히 벗어던지고 미래로 나아갈 혁신 의지가 있느냐의 문제이고, 다음은 도덕성과 실력, 경륜을 갖춘 인재들을 고루 품는 대안 정당으로서의 역량이 있느냐의 문제다.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헐뜯는 일 말고 황교안 대표가 대체 무엇을 보여주었는지 뚜렷하게 기억나지 않는다는 지적들이 흐드러졌다. 미래통합당의 21대 총선공천이 막바지에 다다른 가운데, 공천 배제(컷오프)된 현역의원과 예비후보들이 잇달아 무소속 출마를 선언하면서 TK 선거판세가 오리무중으로 치닫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대구 전 지역구에서 후보를 냈다. 3분할 구도라면 승산이 있다는 계산일 것이다.이번 총선은 당연히 집권당에 대한 심판이어야 맞다. 그러나 선거일이 가까워지면서 여당은 자신만만하게 청와대 출신들을 일선에 전진 배치하고, 그토록 꺼리던 비례 정당도 염치 접어놓고 착착 진행하고 있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여전히 집권당 후보의 선전(善戰) 현장이 수두룩하다.공천에서 감동을 주기는커녕 내분 양상까지 보이는 제1야당의 자충수가 총선 판세에 변수로 떠오를 조짐이다. 지난해 12월 초 영국의 총선이 그랬듯이 현대인들은 집권당에 대해 맹비판을 퍼부으면서도 믿음을 얻지 못한 야당은 또 절대로 안 찍는 실리적 표심이 강하다. ‘하늘이 내린 복’이라는 문재인 정권의 ‘야당 복(福)’은 또다시 작동할 것인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2020-03-22

‘계륵(鷄肋)’의 저주

안재휘 논설위원박근혜 전 대통령의 옥중서신은 낭보인가, 비보인가. 4·15 총선을 저만큼 앞두고 제1야당 미래통합당을 비롯한 보수진영이 미묘한 기류에 빠져들었다. 옥중 메시지가 발표될 시점만 하더라도 길조(吉兆)로 여겨졌었다. 그러나 ‘통합’에 골몰하다가 ‘혁신’을 놓칠 위험성을 해소하지 못한 보수 세력에게 ‘계륵(鷄肋)’으로 붙박인 소위 ‘태극기 부대’라는 친박의 한계는 조금도 해소되지 않았다. 그 딜레마가 불러올 혼돈을 막아내는 일은 여전히 난제다.박 전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보수 단일대오를 촉구함으로써 2016년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에 불복하며 세(勢)를 불린 친박계 및 태극기세력의 힘이 빠지는 분위기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의 ‘힘을 합치라’는 메시지를 해석하는 깊이에 대한 차이가 빚어내는 변수는 변함없이 살아있다.태극기세력은 일단 박 전 대통령의 뜻을 따르겠다고 밝히면서도 미래통합당에 선거연대 및 후보단일화 방안을 내라고 요구해 지분을 탐닉하는 모습을 보였다. 통합당 황교안 대표는 태극기세력의 지분 요구에는 선을 긋는 동시에 선거연대는 향후 검토해보겠다고 밝혔다.통합당 내 공천 심사에서 탈락한 원조친박 윤상현 의원을 비롯한 일부 친박계 의원들은 공천관리위원회(공관위) 결정에 불복, 무소속 출마 강행 의지를 밝혔다. 크게 들여다보면 이런 현상은 결국, 친박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몇 년을 질질 끌려온 미래통합당의 핵심 고민거리가 그대로 남아있음을 증명한다.당장 여권인사들을 비롯한 진보언론들이 ‘도로 새누리당’이라는 빨간 딱지를 들고 설치기 시작했다. 중도 민심을 확보하지 않고는 승세를 창출해낼 수 없는 미래통합당에 이 같은 현상은 치명적일 수 있다.‘수구꼴통’ 이미지를 벗어나지 않고서는 도무지 미래를 개척할 수 없는 숙명을 뻔히 알면서도 적절한 이정표를 창출해내지 못해온 통합당의 업보가 적나라하게 노정되고 있는 판이다.총선을 앞두고 공관위가 겉으로라도 혁신 의지를 보이는 척한 덕분으로 중도 표심이 정권 심판론에 동조하며 서서히 통합당 쪽으로 이동하는 조짐이 일어난 것은 사실이다. 그런 판에 박 전 대통령의 옥중서신이 복잡하게 작용하면서 혼선이 빚어지고, 통합당에 합류한 한 청년정당마저도 ‘도로 새누리당’ 조짐을 우려하는 성명을 내놓는 등 심상치 않은 흐름이 일고 있다.복잡미묘한 상황 속에서 통합당 공관위의 공천 과정도 요상하게 흘러가고 있다. 옥석을 구분하는 기준이 오리무중일 뿐만 아니라, 반드시 중도 표심을 일궈내야 하는 사명에도 충실한지 석연치 않다.‘혁신’을 핑계로 계파정치를 오히려 강화해오던 수상한 구시대적 역학 작용이 재연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짙어지고 있다. 또 다른 오만(傲慢)의 그림자마저 어른거린다. 상식의 경계를 넘나드는 복잡 미묘한 새로운 권력 게임은 어쩌면 보수 민심이 그동안 걱정하면서도 삼켜왔던 ‘계륵’의 저주인지 모른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옥중서신은 낭보인가, 비보인가.

2020-03-08

무능하고 뻔뻔한, 그러나 교활한

안재휘 논설위원괴질 바이러스 ‘코로나19’가 대한민국을 문자 그대로 아작내고 있다. 영남의 핵심 대구와 경상북도가 불행과 혼돈의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애먼 희생양들의 숫자에 얼이 빠질 지경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물 건너 아득한 중국 땅 한복판 우한(武漢)시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영상으로나 보던 비극이 순식간에 이 나라 핵심도시 대구에서 펼쳐지고 있다. 도대체 왜 이런 참극이 벌어진 것인가.우리는 오랫동안 피땀으로 경제부흥도 일구고 민주화도 이룩해낸 자랑스러운 나라다. 그러나 그 번영의 자존심과 명예가 한순간 와르르 무너지고 있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무능하고 뻔뻔한, 그러나 교활한 한 정권의 어리석음 때문이다. 집권 이래 ‘촛불혁명’이라는 과장 수사법을 주문처럼 되뇌며 정치보복에만 끈질기게 매달린 문재인 정권은 모든 허물을 ‘남 탓’으로 둘러대 왔다.대통령은 오직 광신적 확증편향에 중독된 비정상 지지자들에 초점을 맞추고 실정(失政)을 거듭해오던 와중이다. ‘우한 폐렴’을 ‘신종 코로나’로, ‘코로나19’로 이름을 거듭 바꿔가며 갈팡질팡할 때부터 이상했다. 대한의사협회 최대집 회장의 의학적 처방인 ‘중국인 입국 전면차단’ 성명을 ‘박사모 회원의 정략’이라며 귀 밖으로 밀어냈다.인터넷에는 소위 ‘문빠’라는 이름의 극성 지지자들이 신천지와 새누리당을 엮어서 ‘코로나19’가 미래통합당의 계략이라고 욱대긴다. 유시민이라는 여권 최고의 궤변가는 대구시장과 경북지사의 등에 흉악한 모략의 비수를 꽂았다. 시종일관 ‘중국인 입국 차단’은 실익이 없다고 버티던 문 대통령은 “초기라면 몰라도”라고 말해 처음으로 ’전면차단’의 정책적 가치를 인정했다.‘시거든 떫지나 말고 얽거든 검지나 말라’는 속담이 있다. 작금 이 나라의 정치 풍속도가 꼭 그 짝이다. ‘무능’보다 100배 더 큰 죄(罪)는 국민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고도 사과조차 제대로 안 하는 ‘뻔뻔한’ 죄다. 이 나라의 위정자들 제발 사진 찍고 쇼하자고 대구로 달려오는 짓 하지 마시라. “정부의 힘으로는 확산 못 막는다”고 고백하고 행동수칙을 제시하며 국민의 협조를 호소한 싱가포르 리셴룽(李顯龍) 총리의 정직한 담화가 부럽다.불이 났으니 불부터 끄고 봐야 한다는 주장 틀린 말 아니다. 그러나 그 말은 나라 꼴 이렇게 개차반 만들어 놓은 당사자들이 내놓을 언변은 못 된다. 세기적 괴질 바이러스 ‘코로나19’ 퇴치 문제를 전염병에 대한 지식이라곤 상식 수준밖에 없는 정치꾼들이 정략적으로 주물러 터트린 행위 자체가 악마적 사태다. “사회적 격리를 위한 민주시민의 자율적 통제가 답”이라며 “즉시 과학자 TF팀을 꾸려 전권을 맡기자”는 포스텍 송호근 석좌교수의 제안은 백번 옳다. ‘의학적 처방’을 외면한 죄를 뉘우치기는커녕 ‘신천지 때려잡기’와 ‘대구 모욕하기’라는 교활한 수작으로 ‘정치적 이득’만 탐닉하는 집권세력은 제발 좀 그 흉계부터 접으시라.

2020-03-01

‘홍위병’이 거지 같아요

안재휘 논설위원마오쩌둥(毛澤東)은 1958년부터 의욕적으로 시작한 대약진운동이 무려 4천500만 명의 아사자(餓死者)를 내며 실패한 일로 실권한다. 그러나 그는 1966년 ‘프롤레타리아문화대혁명’을 제창한 뒤 철없는 어린 학생들을 동원해 망국적 ‘홍위병(紅衛兵)’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권좌에 복귀했다. 이 동란은 이후 10년 동안 중국 사회를 초토화하면서 무려 150만~200만 명의 애꿎은 목숨을 앗아갔다.현대정치에서 최고 권력자의 맹목적 추종자들을 ‘홍위병’이라고 일컫는 배경에는 이 같은 비극적 역사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을 만났던 충남 아산 전통시장의 한 반찬가게 주인을 향한 강성 친문(親 문재인) 지지자들의 행태가 참혹한 홍위병 역사를 돌이키게 한다. 서민의 언어로 문 대통령에게 “(경기가) 거지 같아요”라고 한 가게주인 여성은 무참히 조리돌림을 당했다. 개인신상이 털리고. 상호명과 주소에 휴대전화 번호까지 모조리 공개되는 등 혹독한 ‘불경(不敬)의 죗값’을 물어야 했다.친문 지지자들의 도를 넘은 행태는 분야를 가리지 않는다. 개그맨 이용진 씨는 작년 2월 방송에서 문 대통령을 ‘문재인 씨’라고 지칭한 일로 “대통령을 어떻게 ‘씨’라고 부르냐”는 비난 폭탄 세례를 받았다. 한 영상제작업체는 문 대통령의 영화 ‘기생충’ 아카데미상 수상 축전을 비판했다가 친문 지지자로부터 뭇매를 맞고 사과문을 올려야 했다. 김정은 국방위원장을 ‘최고 존엄’이라며 신성불가침으로 여기는 세계적 불량국가 북한의 우스꽝스러운 행태를 따라 배운 것도 아닐 터인데, 어찌 이 나라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흔히 ‘대깨문(대가리가 깨져도 문재인)’, ‘문빠’라고 불리는 이들 강성 친문 세력들은 치유 불가능한 확증편향(確證偏向)의 노예들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의 온갖 부도덕성이 폭로돼도 날마다 서초동에 모여서 ‘조국 수호’를 외치며 근육 자랑을 펼친 이들도 이 부류들로 유추된다. 문 대통령을 ‘황제’로 섬기는 듯한 그들은 지금 민주당 총선공천 국면에서 또다시 무지막지한 힘자랑을 뻗치기 시작했다는 소식이다.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뒤늦게 문 대통령이 반찬가게 주인의 말을 “서민적이고 소탈한 표현”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다른 청와대 관계자는 대통령의 말이 “지지층에 대한 말씀이 아니다”라고 못 박아 광신도들의 일탈을 말린 것은 아님을 굳이 강조했다. 이쯤 되면 지난 대선 때 비문(非文) 인사들에게 달린 악성 댓글을 ‘양념’이라고 표현했던 문 대통령의 인식이 조금도 변하지 않았음이 자명하다. 몰지각한 지지행태를 이성으로 다스리지 못하는 그 소아적(小我的) 사리사욕이 머지않아 돌이킬 수 없는 허물이 될 수 있음을 정말 모르는 것일까. 광신을 방치하는 정치는 국민을 망치고 역사를 더럽힌다. 지성을 내팽개친 광신도들, 불치의 확증편향에 빠진 ‘대깨문’과 그 기생(寄生) 지식인들에게 진솔한 서민의 언어로 한마디 들려주고 싶다. “‘홍위병’이 정말 거지 같아요.”

2020-02-23

‘오만방자(傲慢放恣)’ 증후군

안재휘 논설위원4·15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한껏 예민해지고 있다. 여야 정당 지도부의 일거수일투족에 서로 감정적인 반응을 보이면서 날 선 비난의 언어 포탄들을 쏘아대기 시작한 모습이다. 지금의 추세로 볼 때 올 총선은 유례를 찾기 힘든 과열 양상을 빚을 개연성이 높다. 첨예해지고 있는 ‘문재인 정권에 대한 심판’ 전선으로 인해 총선이 죽기살기식 권력 쟁탈 대전으로 번져갈 공산이 커졌기 때문이다.지난해 ‘조국 대란’으로 촉발된 진영 간 극한대결에 이어 청와대의 울산시장선거 불법개입 혐의가 드러나면서 양상이 급변했다. 급기야는 ‘대통령 탄핵’ 구호까지 쏟아지면서 여권은 ‘정권 위기’를 실감하는 듯하고, 야권은 민주주의 위기론을 화두로 ‘정권심판론’의 화염을 무한대로 늘려가는 몸짓이다. 처음에는 될까 싶은 마음이 깊게 들지 않았던 중도보수 통합작업도, 비록 아직은 외형 갖추기 수준일망정 성사돼가는 형국이다.현재 시점에서 예상되는, 올 총선을 좌우할 가장 큰 변수는 무엇일까.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여야, 공수(攻守)를 불문하고 가장 큰 변인은 ‘오만방자(傲慢放恣)’ 지수가 될 것으로 예측된다. 2중대 3중대와 함께 야당의 존재가치를 깔아뭉개며 정치보복만을 탐닉해온 정권의 행태는 겸양(謙讓)을 온전히 상실한 자만(自慢)의 끝판이었다. 조국 사태나 유재수 감찰 중단, 그리고 울산시장선거 청와대 개입 의혹 역시 그 뿌리의 성격은 다르지 않다.아직은 미지수로 남아있지만, 아무래도 수상한 금융 비리 풍문에 이르기까지 국민적인 의혹은 모두 정권의 자가당착에 직결돼 있다.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듯한 임종석 전 비서실장의 검찰청 앞 훈계 발언은 염치를 모르는 권력의 이중성을 상징한다. 어찌 보아도 집권 더불어민주당은 선거전 초입에서 오만한 이미지에 발이 묶일 공산이 높다.그러나 게임이 이렇게 간단하면 얼마나 좋으랴. 정치사의 그림자를 톺아보면, 결코 그냥 그렇게만 흘러가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닥치고 통합’ 형태의 이합집산 로드맵을 따라가고 있는 중도보수 통합의 속살은 많은 위험성을 내포한다. 통합은 있고, 혁신이 없다는 판단이 드는 순간 ‘폭망’으로 갈 수밖에 없다.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는 명분만으로는 태부족하다. 대안세력으로서 인정받지 못하면 진보 민심의 결집만 촉발할 따름이다.‘미래통합당’은 제대로 된 혁신, 미더운 미래비전 깃발을 내놓아 민심을 감동시키지 못하면 성공하지 못한다. 국민들의 변별력은 이제 외눈박이 수준이 아니다. ‘부패’와 ‘무능’ 모두를 함께 볼 줄 아는 건강한 두 시력을 되찾고 있다. 범보수진영의 ‘어떻게 해도 이긴다’는 방자한 심사는 벌써 싹수를 내밀고 있다. 육두문자투성이인 가짜 김지하 시인의 글을 SNS에 퍼 날라 뭇매를 맞고 있는 한국당 민경욱 의원의 일탈은 그 어리석은 기류를 엿보게 한다. 여야를 불문하고, 이기고 싶으면 ‘오만방자’의 마수(魔手)를 끊어낼 준비부터 단단히 하는 게 옳다.

2020-02-16

타조의 밀명(密命)

안재휘 논설위원꿩은 다급하면 머리를 풀숲에 처박는 습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눈에 세상이 안 보이면, 세상도 자기를 못 볼 것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타조 역시 맹수를 만나면 모래 속에 머리를 처박는 것으로 소문나 있다. 17세기 아프리카에 당도한 탐험가들은 타조가 위협을 느꼈을 때 머리를 감추는 반응을 목격했다는 기록이 있다.조류와 포유류처럼 태생부터 환경 인지력을 가진 개체의 경우 유체시절에는 자기중심적으로 환경을 인식하기 때문에 ‘내가 못 보는 건 상대도 못 본다’는 방식의 지각을 한다고 한다. 프랑스어에는 ‘불편한 진실’을 애써 외면하려는 아둔한 짓을 일러 ‘타조 행세를 한다’라는 말이 있다. 대략 ‘꿩은 머리만 풀 속에 감춘다’는 우리 속담과 의미가 다르지 않을 것이다.무더기로 기소된 청와대의 2018년 6월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 관계자들 공소장의 국회 제출을 거부한 추미애 법무부 장관에 대한 정치권 논란의 파장이 심각하다. ‘잘못된 관행’이라며 하필이면 청와대 관련 공소장부터 제출을 막은 추 장관의 행태를 놓고 호사가들은 ‘다급해서 머리를 풀숲에 처박은 어리석은 꿩’에 빗댄다.결국 추 장관의 결정은 오히려 공소장에 대한 국민의 관심을 최고조로 끌어올렸고, 언론에 의해 전문(全文)이 공개됐다. 비장한 문투로 작성 제출된 72쪽 분량의 공소장을 읽어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혀를 찬다. 박근혜 정부를 ‘국정농단’의 죄목으로 잔인하게 단죄해온 이 정부가 저지른 일이라곤 도무지 믿기지 않을 만큼 범죄혐의 내용이 험악하다.사람들 복장을 더욱 터지게 하는 대목은 도무지 앞뒤가 안 맞는 추 장관의 거듭된 변명이다. 실정법을 장관의 훈령으로 뒤집은 것부터가 명백한 하자인데, 하다 하다 안 되니까 공소장 공개 자체가 ‘위헌’이란다. 이 나라가 언제부터 헌법재판소장도 아닌 법무장관이 ‘위헌’여부를 결정하는 나라가 됐나. 사건을 담당해온 수사팀들을 공중 분해하다시피 해놓은 횡포도 그렇거니와, 추 장관이 욱대기는 ‘사법 정의’는 도무지 합법적이지도 양심적이지도 않다.여당에서마저 ‘긁어 부스럼’이라는 비판이 대두되면서, 추 장관의 정치 행보가 주목거리다. 과거 추미애 의원이 국회에서 공소장을 흔들며 핏대를 세우던 여러 편의 동영상을 보면 볼수록 자꾸만 모래밭에 머리를 처박은 타조의 모습이 연상된다.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들을 사법처리할 적에는 입도 벙긋 안 하던 ‘피의자 인권’을 자기들 범죄 수사에만 적용하는 극단적인 후안무치는 멀쩡한 정신으로 견뎌주기가 참으로 벅차다.하긴, 모래 속에 머리를 처박는 타조의 행동을 놓고 ‘진동을 느껴 도망칠 방향을 찾는 지혜’라는 다른 주장도 있으니 좀 더 두고 볼 일이다. 대한민국이 언제부터 고작 이런 수준의 어설픈 권력 농단으로 점수를 따서 국무총리도 되고, 대통령도 되는 나라였던가 싶다. 필경 타조가 은밀히 받아들었을 밀지(密旨)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 궁금하고 또 궁금하다.

2020-02-09

‘진중권’과 ‘윤석열’

안재휘 논설위원명재상으로 이름 높았던 백사 이항복의 10대손이자 초대 부통령을 지낸 성재(省齋) 이시영(李始榮) 선생은 명문의 후예답게 선비로서의 기상이 높았다. 이승만 정권의 국정농단을 보다 못한 그는 1951년 ‘대국민 성명서’를 발표한 뒤 국회에 사임서를 제출하고 홀연히 권부를 떠났다.이시영의 성명서는 신랄하다. “정부 수립 이래 지금까지 고위 직위에 적재적소 인재가 등용된 것을 별로 보지 못했다. 탐관오리가 가는 곳마다 날뛰어 국민 신망을 상실하고 정부의 위신을 훼손하고 국가의 존엄을 잃어 신생 민국의 장래에 암영을 던지고 있으니 어찌 가슴 아픈 일이 아닌가? 나랏일이 틀려도 시비를 거는 자조차 없다”권력 핵심을 향해 촌철살인의 명검(名劍)을 휘두르고 있는 진보 논객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와 살아있는 권력에 예리한 법치의 창끝을 들이밀다가 코너에 몰린 윤석열 검찰총장의 고난이 깊다. 좌파 인사들은 대체로 두 사람에게 ‘배신자’ 이미지를 덧칠하기에 여념이 없다.우리 역사 속에서 자신을 발탁한 임금을 향해 ‘곧은 소리’를 펼치다가 수난을 당한 참 선비는 드물지 않다. 때로 그들은 역적으로 몰리기도 하지만, 역사는 그 인물에 결코 ‘배신자’ 딱지를 붙이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그들이 사람에 충성하지 않고 나라에 충성했기 때문이다. 선비의 길, 공직의 길이 어찌해야 하는지는 역사에 다 나와 있는 셈이다.진영을 불문하고 진중권의 한마디 한마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그의 말에는 뭇 지식인들에게서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엄정한 선비의식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의 논리에는 천박한 패거리 의식에 찌들어 자기가 신봉하는 진영에 맞춤식 궤변을 줄기차게 상납하는 비겁한 곡학아세(曲學阿世) 무리와는 확연히 다른 뭔가가 있다.법을 집행하는 검사 윤석열을 향한 진보 진영의 ‘배신자’ 논리는 사람에 충성해온 케케묵은 구시대적 폐습의 시궁창에 인식의 뿌리를 드리우고 있음을 스스로 반증한다. 현직 검찰총장 윤석열이 대권후보 여론조사에서 2위를 했다는 뉴스는 착잡하다. 구상유취한 진영논리 뻘밭 속에서 얼마나 우리 국민이 답답하고 갑갑했으면 그를 대안으로 떠올렸을까 짠한 심정마저 든다.하버드대 정치학과 스티븐 레비츠키 교수와 대니얼 지블렛 교수의 베스트셀러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 나오는 거의 모든 참상이 나라 안에서 펼쳐지고 있는 시절에 진중권과 윤석열을 함부로 ‘배신자’로 낙인찍는 일은 가당치 않다. 비난하는 자들이야말로 비겁한 지식인이요, 민주주의의 배신자요, 역사의 죄인 아닌지 성찰해야 한다. 신봉해온 사상이 오류로 판명 날 때, 소속한 집단이 끔찍하게 오염될 때, 제왕적 권력을 청산하기는커녕 오히려 황제적 권력을 휘두를 때 ‘좌충우돌’하면서 비판하고 저항하는 것을 역사는 결코 ‘배덕(背德)’으로 기록하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 법을 수호하려는 검찰총장이 매일 지하 주차장을 통해 출퇴근해야 하는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다.

2020-02-02

‘참붕어’ 죽이기

안재휘 논설위원4·15총선을 저만큼 앞두고 여야 정치권이 본격적인 레이스에 돌입했다. ‘1호 공약’이네, ‘인재영입’이네 하고 터져 나오는 뉴스가 선거철에 다다랐음을 한결 실감 나게 하고 있다. 총선 시장은 조만간, 나라 곳간 사정은 염두에 두지 않은 온갖 선심 공약들로 폭포를 이룰 것이다. ‘진보’의 기치를 걸고 있는 여당이 먼저 치고 나갈 것이고, ‘보수’ 야당 또한 울며 겨자 먹기로 따라 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 될 공산이 크다.안철수가 돌아왔다. 정계 복귀를 선언한 그는 앞서 지난 6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미지 조작에만 능하고 민생 문제 해결보다는 국민 세금으로 자기편 먹여 살리기에만 관심이 있다”는 말로 현 집권세력을 비판하는 촌철살인의 어법을 구사한 바 있다. 정치권 포퓰리즘의 시발점은 대중은 대의(大義)보다는 소리(小利)를 좇는다는 확신이다. ‘소금 먹은 놈이 물 켠다’는 속설은 그들의 굳건한 신앙이다.이미 이 나라의 청년들은 그냥 청년이라는 사실만 같고도 정부로부터 공돈을 받는다. 말하자면, 지지세력이 될 확률이 높은 유권자에게 ‘복지’ 내지는 ‘수당’이라는 나랏돈 봉투를 만들어 퍼주고, 국민은 그 보은으로 부지불식 간에 해당 정치세력에게 권력을 몰아주는 악순환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는 것이다. 그 메커니즘에서 나라의 미래, 후세들이 짊어져야 할 과도한 조세 부담 따위는 고려요소가 되지 못한다.더불어민주당은 교통사고로 장애를 갖게 된 사회복지 전문가·전직 소방관·출산과 육아로 경력이 단절된 스타트업 기업대표 등을 차례로 영입했다. 자유한국당은 목발 짚고 탈북했거나 체육계에서 미투 선언을 했던 인사들을 영입 인재로 발표했다. 선거 때마다 나타나는 단골 패션쇼인 만큼 새삼스러울 것은 없다. 기자들 앞에서 당 대표와 사진 찍어가며 온갖 찬사를 늘어놓는다. 그리고는 끝이다. 1회용 광고모델 콘테스트보다도 못한 쇼 정치다.공천 시즌이 지나면서 몇몇은 ‘전략공천’이라는 이름으로 지역구 선거에 나가거나 전국구 순번을 타게 될 것이다. 미안한 이야기지만, 그렇게 정치권으로 시끌벅적 영입된 인재들이 이 나라 정치발전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는 감동적인 증거는 없다. 십중팔구 유권자들의 표심을 현혹하는 데 써먹는 선전용 포장지로 효용을 다하는 존재들이다.정당들은 그런 ’영입 쇼’ 행위를 ‘물갈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그건 ‘물갈이’가 아니다. 진정 ‘물갈이’를 할 의지가 있다면, 참신한 인재들 데려다가 분 발라 앉히고는 그 지명도와 명성만 발라먹은 뒤 거수기 놀음이나 시키는 행위는 중단돼야 한다. 차고 넘치는 국가적 난제를 해결할 의제(議題)와 대안을 공모하는 방식으로 정책을 중무장해 도대체 뭘 하려고 하는지, 어떻게 할 수 있는지 비전을 밝히는 일부터 먼저 하는 게 맞다. 그래서 유권자들이 추잡한 가짜정치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이끌어주는 게 백번 옳다. 비극적 ‘참붕어’ 죽이기 레이스가 안타깝다.

2020-01-19

엇나간 민주주의의 찢어진 실루엣

안재휘 논설위원진보 정치학계의 대표적 학자인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지난달 초 한 학술회의 기조 강연에서 “한국 민주주의 위기의 본질은 한국 진보의 도덕적, 정신적 파탄”이라며 “한국의 진보파가 이해하는 직접민주주의는 보는 각도에 따라 다를 뿐 ‘전체주의’와 동일한 정치체제”라고 비판했다. 그는 모든 국정운영의 중심에 놓은 적폐청산 드라이브가 민주주의의 기본원리인 삼권분립과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실현될 수 없도록 만드는 패러독스라고 지적했다.정권 중심부를 향해 사정(司正)의 칼끝을 겨누던 윤석열 검찰총장의 수사팀 핵심 간부들이 모조리 전보 인사조치를 당했다. ‘검찰개혁의 일환’이라는 포장술이 동원됐지만, 당위성이라곤 전혀 없는 핑계로 들린다. 4월 총선이 그리 멀지 않았는데도 정권이 겁 없이(?) 던진 인사폭탄을 놓고 해석이 봇물을 이룬다. 청와대가 검찰의 칼날이 얼마나 무서웠으면, 얼마나 뒤가 구리면 이렇게 무리수를 두겠느냐는 말조차 나돈다.문재인 정권 초반 서울중앙지검장으로 파격 발탁된 윤석열은 죽은 권력, 지나간 정권에 대해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펼친 정치보복의 첨병이었다. 그는 보수 정권 전직 대통령 두 사람을 모두 영어(囹圄)에 잡아 가두었다. 그러나 지난해 검찰총장으로 발탁된 이후, 조국 등 여권 인사들의 의혹에 대한 수사를 시작하면서부터 일순간 판이 거꾸로 뒤집혔다.윤석열은 토사구팽(兎死狗烹)의 낭떠러지 끝에 내몰렸다. 지난 정권 때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명언을 남긴 윤석열은 이 정권에서 ‘정무 감각 없기는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는 인상적인 말을 또 남겼다. 그는 자신이 불의를 수사하는 사냥개로서 우직한 본능을 지닌 검찰임을 자인한다. 박근혜도 문재인도 그를 잘못 알기는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아니, 광화문에서 패 갈라 상반된 함성을 펼치는 군중들 모두 윤석열을 오해하며 아전인수의 섬에 함께 갇힌 것은 아닐까.문재인 정권이 이렇게 막 나갈 수 있는 배경은 무엇일까. ‘조국 대란’이 제아무리 나라를 뒤집어 놓아도, 무도한 검찰 무력화(無力化) 공작에도 문재인 지지도는 국민 절반, 여당 지지도는 제1야당의 두 배를 유지한다. 그들이 악착같이 추구해온 ‘선악 갈라치기, 보수세력 궤멸 의지’를 앞세운 끈덕진 진영대결·청백전 정치는 성공하고 있다. 국민의 ‘옳고 그름’ 판단력을 퇴화시키려는 목적에 기어이 도달하고 있는 것이다.하버드대 정치학과 교수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은 공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오늘날 민주주의는 장군들이 아니라 선출된 지도자들, 즉 대통령·총리의 손에서 죽는다. 시민들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완전히 이해했을 땐 너무 늦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그 위기 신호로 ‘심판매수’, ‘비판자 탄압’, ‘운동장 기울이기’, ‘무조건적 반대’, ‘권한 남용’, ‘반국가 세력 낙인찍기’ 등을 든다. 엇나간 민주주의의 찢어진 실루엣 앞에 이 나라 민주주의는 점점 더 위태로운 벼랑길로 치닫고 있다.

2020-01-12

유승민·안철수, ‘비워야’ 보인다

안재휘 논설위원지난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사는 유망정치인들의 사욕이 민심을 어떻게 난도질하는지를 드러내는 아픈 교훈을 남긴다. 외유 생활을 끝내고 돌아온 김대중(DJ)과 군사독재정권 치하 국내에서 반독재 투쟁을 지속해온 김영삼(YS) 두 사람의 욕심 충돌은 국민의 민주화 열망을 구렁텅이에 빠트렸었다. 당권·대권을 다 거머쥐려는 YS와 당권을 확보하려는 DJ는 결국 민의를 배신하고 대선에 모두 출마해 군사정권 연장을 헌납하는 참담한 결과를 빚고 말았다. 그날의 역사에는 ‘죽 쒀서 개 주었다’는 비탄 딱지가 따라붙어 있다.4·15 총선을 저만큼 앞두고 정치권에 폭풍주의보가 떴다. 여야 정당들은 일찌감치 총선체제로 전환되고 있고, 100일 전쟁을 채비하는 이합집산이 분주히 모색되고 있다. 유승민을 비롯한 바른미래당 위원들은 탈당을 결행하여 ‘새로운보수당’ 창당에 몸을 실었다. 때마침 유럽을 거쳐 미국에 가 있던 안철수가 정치 복귀를 선언해 새로운 변수로 떠올랐다. 정권의 무능과 야권의 무기력이 또다시 정치권 한복판에 ‘중도(中道)’ 화두를 불러세우는 중이다.20대 총선의 결과는 분명히 여소야대(與小野大)였다. 그러나 임기 말로 다가오면서 국회 구성은 ‘4+1’ 등장으로 여대야소(與大野小)로 뒤집혔다. 국민이 만들어준 세력 판도를 정략에 빠진 정치꾼들이 임의로 뒤집어버린 셈이다. 이는 분명히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뒷거래다. 선거에서 내린 국민의 명령을 인위적으로 조작해 바꾼 것이나 다름이 없다. 무엇보다도 소중한 ‘중도’ 민심의 씨앗을 말살한 횡포는 용서 못 할 중대범죄다.설 전에 돌아올 예정인 안철수의 행보는 아직 오리무중이다. 손학규의 ‘뻐꾸기 알’ 놀음에 만신창이가 된 유승민은 ‘새로운보수당’이라는 새 간판을 장만했다. 2년 전 유승민과 안철수가 야심 차게 추구했던 ‘개혁적 보수, 합리적 진보’라는 중도실험은 일단 실패했다. 유승민이 굳이 당명에다가 ‘보수’라는 개념을 넣은 것도 어정쩡한 ‘중도’의 위험성에 대한 고통스러운 경험의 산물로 읽힌다.문제는 안철수가 ‘보수’라는 단어를 극도로 싫어했었다는 증언이다. 안철수에게 변화가 있지 않다면, 선택지가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전히 진보 민심을 등에 업고 중도영역을 개척하는 것이 정치행로 이정표라면, 안철수의 귀국은 보수정치에 또 다른 위협이 될 따름이다. 더욱 강력한 4+1 또는 5+1이 보수정치의 말살을 넘어 민주주의를 통째로 위협할 개연성마저 있다.힘을 키우기 위해서는, 누군가 들어올 자리를 먼저 비워주는 게 지혜다. 유승민은 비워놓고 있는가. 안철수는 얼마나 비우고 돌아오나. 우리 정치사가 명료하게 알려주는 교훈은 뚜렷하다. 비우는 자에게 길이 보인다. YS와 DJ처럼 또다시 스스로를 비우지 못해 역사에 죄를 짓는 길을 갈 것인가. 참다운 ‘중도’ 민심을 개척해 양극화의 지옥에서 좀처럼 헤어나지 못하는 이 나라 정치를 선진화해줄 시대의 참 리더는 과연 누구인가.

2020-01-05

타락한 ‘다수결’

안재휘 논설위원‘왜 사람들은 다수에 복종하는가? 더 많은 도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일까? 아니다. 더 많은 힘을 가졌기 때문이다’ 블레즈 파스칼(Blaise Pascal)의 ‘팡세’에 나오는 이 말은 민주주의가 채택하고 있는 ‘다수결(多數決)’ 의사결정 방식의 한계를 정확하게 짚어낸다. 다수결은 어디까지나 결정이 시급한 안건에 대해 만장일치 처리가 어려울 때 선택하는 ‘차선’의 방안임을 우리 정치권은 완전히 망각하고 있다.다사다난했던 2019년을 마무리하면서 대한민국 국회는 낯설고 해괴한 장면을 잇달아 연출하고 있다. 사상 최초로 게임의 룰인 선거법까지 여야 합의가 아닌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우격다짐으로 올린 것 자체가 무리수였다. 집권 더불어민주당은 ‘교섭단체’중심 국회운영 전통을 깨고, ‘4+1’이라는 얄궂은 짬짜미 ‘바꿔먹기’식 협잡 꼼수를 서슴지 않았다. 엉뚱하게도 필리버스터에 부득부득 뛰어든 여당 의원들의 한심한 저질 코미디는 또 뭔가. 결과론적이지만 호남의 분열정치는 대성공을 거두고 있다.‘흩어지면 살고 뭉치면 죽는다’는 역설이 호남정치에 정확하게 먹혀들고 있다. 물론 보수정당이 전혀 대안이 못 되는 호남에서나 가능한 이야기일 것이다. 호남에서는 민주당 싫으면 민주평화당 찍으면 되고, 그도 싫으면 대안신당 찍으면 된다. 그런데 영남에서는 한국당 싫은 사람은 민주당 찍는다. 그러니 정치공학적으로 볼 때 앞으로도 영남 보수정치는 성공할 개연성이 높지 않다.이래저래 영남의 보수정치는 퇴락해가고 있다. 민심의 소재가 어디에 있는지 헤아리는 일에 무디기 짝이 없는 자유한국당이 문제다. 오랜 세월 기득권층이 되어 누리기만 한 탓에 돌발변수에 대응하는 능력마저 퇴화했다. 스스로 변화하는 일에도 서툴기 짝이 없다. 서푼 어치도 안 되는 패잔권력 부여잡고 연장하는 일에만 매달리는 이 모습대로라면 앞으로도 영 가망이 없을 조짐이다.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한 정치인들의 결사체라고 자부해온 더불어민주당이 앞장서서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모습은 가슴이 아프다. 그들은 소수 야당 시절 그토록 눈물 콧물 흘리며 아니라고 외쳤던 꼴통 보수 독재세력의 횡포를 그대로 재연하고 있다. 아니, 긴 세월 서럽게 당하는 동안 배운 기법까지 총동원한 그들의 다수 독재는 훨씬 더 교묘하고 악랄하다.누더기를 넘어서 걸레가 된 선거법이 파생할 혼란에, ‘검찰 개혁’이라는 포퓰리즘으로 거짓 포장된 무소불위의 공수처(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법이 빚어낼 파열음이 또 얼마나 많은 국론분열과 패싸움 난장을 펼쳐낼 것인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그러나 정말 무서운 것은 ’타락한 다수결’의 몸쓸 관성이 ‘양보와 타협’의 덕목을 모조리 망가뜨리면서 이 나라 정치를 얼마나 더 피폐하게 만들 것인가 하는 대목이다. 파스칼의 말을 의역하면, 다수는 그저 ‘힘이 있다’는 뜻이지 ‘옳다’는 것은 아니다. 하고 싶은 대로 하더라도 부디 ‘우리는 옳다’고 말하지는 마시라. 멀쩡한 정신으로 국민노릇하기 참으로 힘든 세모(歲暮) 풍경이다.

2019-12-29

‘꼼수’냐, ‘묘수’냐

안재휘 논설위원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50년 집권론’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 이 대표가 처음 그 말을 했을 때 많은 이들이 뜬금없는 희망가이거나 오만한 발언 정도로 여겼다. 그런데 지난해 울산시장선거를 앞두고 청와대가 나서서 야당 후보의 공약사업을 물 카드로 만들고, 경찰을 동원해 파렴치범으로 몬 정황이 드러나면서 얘기가 달라지고 있다. 최근 뜨거운 뉴스로 떠오른 이 논란의 ‘협잡’ 의혹은 이해찬이 무슨 자신감에서 그런 장담을 해왔는지를 짐작하게 한다.작년 울산시장선거에서 당시 시장이던 한국당 김기현 후보와 현 시장인 민주당 송철호 후보는 각각 ‘산업재해 모(母)병원’과 ‘공공병원’ 건립 공약을 내걸고 경쟁했다. 선거일을 불과 보름 앞두고 정부는 ‘산재 모병원’에 예비타당성 조사 불합격 판정을 내렸고, 송철호가 시장으로 당선된 후 올 1월 ‘공공병원’을 예타 면제사업으로 선정한 데 이어 지난달 KDI의 사업 적정성 검토까지 완료했다. 도대체 무슨 뒷구멍 꼼수 장난질이 펼쳐지고 있는 것인가.경찰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으로 시작된 이 사안은 수사의 단초가 된 첩보가 청와대발이라는 사실이 본질이다. 송병기 울산시 경제부시장의 메모에 따르면, 송철호는 후보가 되기 전부터 청와대 인사들을 만나 선거 관련 논의를 한 정황이 뚜렷하다. 당내경선 상대였던 임동호를 주저앉히고 송철호를 단독 전략공천하기 위해 청와대 참모들을 비롯한 정권 실세들이 합동작전이 펼친 것으로 의심되는 정황도 역력하다.선거법 개정과 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법을 둘러싼 여야의 정쟁은 비상식의 난장(亂場)이다. 집권당은 교섭단체 중심이 아닌 마음에 맞는 초록 동색들을 아울러 ‘4+1’이라는 희한한 협의체를 앞세워 입법을 강행하고자 들이밀고 있다. 친여 군소정당들이 비례대표 의석을 더 확보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주는 대가로 대통령 친위부대 공수처를 바꿔먹는 뒷거래를 시도하고 있는 셈이다. 공수처는 민변 소속 변호사들이 장악할 수상한 옥상옥 사법기관이다.그런데 한국당이 회심의 일격을 가했다. ‘비례 한국당’이라는 위성정당 맞대응 반전 카드다. 이미 외국에도 사례가 있다는 이 기습반격에 그동안 의기양양하던 여권(與圈)은 허를 찔린 듯 당황한 기색이 완연하다. 민주당·정의당 할 것 없이 차례로 나서서 ‘꼼수’라며 바짝 흥분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객관적으로 보면, ‘4+1’ 꼼수를 되받아친 자유한국당의 꼼수는 역설적이게도 절묘한 ‘묘수’로 작용하고 있는 형국으로 읽힌다.‘꼼수 공화국’의 냄새 나는 시궁창 드라마에 청와대가 어김없이 등장하는 이 얄궂은 현상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청와대 모든 비서관실에 붙어 있다는 ‘춘풍추상(春風秋霜)’ 액자를 모조리 뒤집어 달아야 할 판이다. 거룩한 본뜻은 산산조각이 나고 ‘남을 대할 때에는 서릿발처럼, 자신을 대할 때에는 가을 봄바람처럼’으로 의미가 물구나무를 서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민주주의가 점점 더 위태로워지고 있다.

2019-12-22

‘4+1’…협잡 정치의 끝판왕

안재휘 논설위원‘제1야당’이 사라졌다. 아니, 멀쩡히 살아남아서 삭발·단식·장외집회 등 한국 정치문화의 오만가지 극한투쟁 박람회를 열고 있지만, 여당과 그 위성 세력들에 의해 치욕스러운 ‘좀비’ 취급을 받고 있다. 참다운 정치가 사라진 자리에 목불인견(目不忍見) 협잡들이 판을 친다. 국민의 행복과 나라의 미래는 안중에도 없고 오직 권력 유지와 확대에만 혈안이 된 정치꾼들의 악취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이 나라 정치에는 ‘교섭단체’라는 제도가 있다. 20석 이상의 국회의원 의석을 확보한 정당을 ‘교섭단체’로 인정하여 각 정당 지휘부들이 모여서 국민 여론을 반영해 국정을 논하고 타협하고 결정하는 시스템이다. 그런데 이제 여당과 뜻이 맞는 정치 패거리들끼리 따로 모여서 주요 결정을 내리는 형태로 변질하고 있다. 이른바 ‘4+1 협의체’라는 듣도 보도 못한 모임이 대한민국 국회의 상원(上院) 노릇을 하는 꼴이다.잘잘못을 따지자면 제1야당 자유한국당의 허물이 크다. 박근혜 정권의 비극적 종말 이후 한국당은 스스로 ‘좀비’ 정당으로 전락해간 측면이 있다. 국민이 그토록 보고 싶어 하는 ‘반성’도 ‘책임’도 실천하지 못했다. 오늘날 한국당의 가없는 추락은 딱 죽어야 할 때 ‘못 죽은 죄’, 아니 ‘안 죽은 죄’의 업보다. 땅에 떨어진 씨앗이 흙 속에서 다시 살아나려면 썩어서 흙과 동화될 준비가 되어야 하는데, 그들은 도무지 낯두꺼운 권력의 화신처럼 굴었다.‘4+1 협의체’는 제1야당을 보기 좋게 따돌리고 내년도 예산안을 후다닥 처리하면서 실력을 넉넉히 과시했다. 이제 남은 것은 패스트트랙의 선거법과 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법안만 처리하면 되는 상황이다. 딱한 허수아비 제1야당은 국회 본회의장 정문 앞이나 광화문에 나가 소리나 질러댈 따름이다. ‘목숨 걸고 싸우겠다’고 부르대지만 민심은 구경꾼 자리에서 움쩍도 하지 않는 판이다.연동형 비례대표제도와 석패율제도 등 복잡한 방정식을 놓고 ‘4+1 협의체’에 참여한 군소정치 패거리들은 각자 유불리를 따져 권력 나눠먹기 몽니 게임에 열중하고 있다. 그들의 언행 이면에 진정한 ‘애국’은 종적을 감춘 지 오래다. 의석 몇 자리 더 훔쳐내자고 선거제도와 공수처법을 바꿔먹는 짓은 역사에 대죄(大罪)를 짓는 일이다. 현재의 공수처법안이 통과되면 검찰은 무력화되고 옥상옥 공수처가 현직 대통령의 미친개가 되어 좌파독재 시대를 열어젖힐 공산이 크다.지난 1905년 11월 20일 ‘황성신문’에 실린 장지연 선생의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이 떠오른다. ‘저 돼지와 개만도 못한 소위 정부의 대신이란 자들이 영달과 이익만을 바라고….’ 공자께서는 논어 위정(爲政)편에서 무리를 지어 사익을 취하는 소인배 짓거리에 대해 이렇게 일갈했다. ‘군자는 두루 친하되 결탁하지 않지만(君子周而不比), 소인은 결탁하되 두루 친하지 않는다(小人比而不周).’ ‘4+1’…. 저 협잡 정치의 끝판왕을 막아낼 묘책은 정녕 없는가.

2019-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