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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륵(鷄肋)’의 저주

등록일 2020-03-08 20:15 게재일 2020-03-09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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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휘 논설위원
안재휘 논설위원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옥중서신은 낭보인가, 비보인가. 4·15 총선을 저만큼 앞두고 제1야당 미래통합당을 비롯한 보수진영이 미묘한 기류에 빠져들었다. 옥중 메시지가 발표될 시점만 하더라도 길조(吉兆)로 여겨졌었다. 그러나 ‘통합’에 골몰하다가 ‘혁신’을 놓칠 위험성을 해소하지 못한 보수 세력에게 ‘계륵(鷄肋)’으로 붙박인 소위 ‘태극기 부대’라는 친박의 한계는 조금도 해소되지 않았다. 그 딜레마가 불러올 혼돈을 막아내는 일은 여전히 난제다.

박 전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보수 단일대오를 촉구함으로써 2016년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에 불복하며 세(勢)를 불린 친박계 및 태극기세력의 힘이 빠지는 분위기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의 ‘힘을 합치라’는 메시지를 해석하는 깊이에 대한 차이가 빚어내는 변수는 변함없이 살아있다.

태극기세력은 일단 박 전 대통령의 뜻을 따르겠다고 밝히면서도 미래통합당에 선거연대 및 후보단일화 방안을 내라고 요구해 지분을 탐닉하는 모습을 보였다. 통합당 황교안 대표는 태극기세력의 지분 요구에는 선을 긋는 동시에 선거연대는 향후 검토해보겠다고 밝혔다.

통합당 내 공천 심사에서 탈락한 원조친박 윤상현 의원을 비롯한 일부 친박계 의원들은 공천관리위원회(공관위) 결정에 불복, 무소속 출마 강행 의지를 밝혔다. 크게 들여다보면 이런 현상은 결국, 친박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몇 년을 질질 끌려온 미래통합당의 핵심 고민거리가 그대로 남아있음을 증명한다.

당장 여권인사들을 비롯한 진보언론들이 ‘도로 새누리당’이라는 빨간 딱지를 들고 설치기 시작했다. 중도 민심을 확보하지 않고는 승세를 창출해낼 수 없는 미래통합당에 이 같은 현상은 치명적일 수 있다.‘수구꼴통’ 이미지를 벗어나지 않고서는 도무지 미래를 개척할 수 없는 숙명을 뻔히 알면서도 적절한 이정표를 창출해내지 못해온 통합당의 업보가 적나라하게 노정되고 있는 판이다.

총선을 앞두고 공관위가 겉으로라도 혁신 의지를 보이는 척한 덕분으로 중도 표심이 정권 심판론에 동조하며 서서히 통합당 쪽으로 이동하는 조짐이 일어난 것은 사실이다. 그런 판에 박 전 대통령의 옥중서신이 복잡하게 작용하면서 혼선이 빚어지고, 통합당에 합류한 한 청년정당마저도 ‘도로 새누리당’ 조짐을 우려하는 성명을 내놓는 등 심상치 않은 흐름이 일고 있다.

복잡미묘한 상황 속에서 통합당 공관위의 공천 과정도 요상하게 흘러가고 있다. 옥석을 구분하는 기준이 오리무중일 뿐만 아니라, 반드시 중도 표심을 일궈내야 하는 사명에도 충실한지 석연치 않다.‘혁신’을 핑계로 계파정치를 오히려 강화해오던 수상한 구시대적 역학 작용이 재연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짙어지고 있다. 또 다른 오만(傲慢)의 그림자마저 어른거린다. 상식의 경계를 넘나드는 복잡 미묘한 새로운 권력 게임은 어쩌면 보수 민심이 그동안 걱정하면서도 삼켜왔던 ‘계륵’의 저주인지 모른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옥중서신은 낭보인가, 비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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