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르릉, “형수님, 전데요. 엄마가 독사에 물려서 119 불러서 병원으로 가고 있대요. 같이 가실래요?” 시동생과 함께 병원으로 가는 길에 목 뒤가 당겨오며 머리가 아파 미칠 지경이다. 독사가 내 머리를 물은 것 같았다. 병원에 도착하니 어머님은 그새 치료를 끝내고 병실에 계셨다. 어디 물리신 거냐고 여쭈니 오른손 중지를 보여주셨다. 퉁퉁 부었을 줄 알았는데 워낙 마르신 분이라 그런가, 다행히 붓기가 없었다.어머님은 내가 결혼하고부터 봐왔지만 흥분해서 일을 그르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어지간한 일은 속으로 삭이고 혼자 해결하셨다. 둘째 아들과 큰며느리가 궁금한 눈빛으로 옆에 서 있으니 천천히 입을 떼셨다. 산에 동네 친구분들과 나물을 하러 가셨단다. 나물 따라 자꾸 오르다 뭔가 손이 따끔해서 가시에 찔렸나 하고 장갑을 벗어보니 이빨 자국이 선명해서 독사에게 물렸다는 것을 직감했단다. 그래서 바로 옷핀으로 마구 찔러서 피를 내고 그것도 모자라 입으로 피를 빨아 뱉고를 반복하고 운동화 끈을 끊어서 손가락에 묶었단다. 병원에 오니 의사 선생님이 응급처치를 잘해서 다행이라고 칭찬하셨단다.산속 깊은 곳이라 내려오면서 바로 전화하면 119가 기다릴까 봐 산을 거의 내려오면서 여기쯤이면 기다리지 않아도 될 시간이겠지 싶어 그때야 전화를 걸었단다. 그러고선 그래도 병원을 가는데 몸빼바지는 예의가 아니라고 집에 가서 바지 갈아입고 의료보험카드 챙겨서 구급차를 탔다고 했다. 정말 대단하신 분이시다.그 말끝에 시동생 “어지간하면 화장도 하고 오지 그랬노, 엄마?” 어머님은 누워서도 종일 뜯은 나물 상할까 봐 걱정이셨다. 그때 시동생에게 동서가 전화를 걸어왔다. 어머님을 문 뱀이 무슨 뱀이냐고 묻자 “뱀이 뭐 이름표 달고 다니나, 이따가 엄마한테 인상착의 물어볼게.”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이다.자주 돌아가신 어머님 생각이 나지만, 특히 봄에 내 곁을 다녀가시는 듯하다. 쑥 뜯을 시기가 오면, 산에 고사리가 필 무렵, 오천 장날 난전에 할머니들이 봄나물을 내놓고 파는 것을 보면 더 선명하게 어머님 얼굴이 떠오른다.묵밭두댁이, 무시나물, 참뜯까리, 우산나물, 산초나물, 재피나물, 콩대가리나물, 취나물, 쑥, 두릅, 고추나물, 달래나물, 부지깽이나물, 어름순(국수나물), 꽃나물, 어머님과 2006년 산에 가서 뜯은 나물들이다. 어머님 입에서 나는 소리를 그대로 적어본 것이라서 표준말도 아니고 정확한 풀 이름은 따로 있을 것이다.그해 봄, 어머님이 독사에 물리신 거다. 남편이 저녁 야간 당번을 마치고 퇴근하면서 어머니 병문안을 가잔다. 낮에 갔다 왔지만, 아이들이 할머니 궁금하다고 해서 또 따라나섰다. 할머니가 독사에 물렸다니까, 아홉 살인 둘째가 “뱀한테 물렸으면 진짜 큰일인데 다형이다.” 다행이란 말을 처음 배웠는지 ‘다형’으로 들은 것 같다. 독사는 독이든 뱀인데 다른 종류인 줄 아는 둘째. 모든 게 서툰 녀석이 “아버지, 음료수라도 사서 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이런다. 제법 컸구나 싶다.어머님이 좋아하시는 요구르트, 홍삼 사탕, 초콜릿을 사 들고 갔다. 병실에 도착하니 밤 10시라 불 끄고 주무시는 어머니를 깨워서 한참 재롱떨다가 왔다. 손자 둘이 왔더니 평소에 9시 전에 주무시는 분이 기분이 좋으신지 오래 견디셨다.그 손자가 16년이 지나 다 커서 자기가 자신을 책임지는 진짜 어른이 되었다. 멀리 안성에 첫 살림을 내주었다. 3월에 기다리던 첫 월급을 받았다. 어엿한 직장인이 된 모습을 어머님이 보셨다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아마 살림 내는 날 반찬까지 이것저것 해주시며 멀리까지 따라가 보셨으리라. 보내놓고 자주 안부를 물으셨으리라. 첫 월급으로 산 빨간 내복 선물로 받고 눈물지으셨으리라. 장가보내도 되겠네 하시며 둘째 손을 잡으셨으리라.봄이라 더 어머님 생각이 간절하다. /김순희(수필가)
2022-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