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송리 북천수의 사계절을 들었다. 다들 숲이라 이름 붙일 때 이곳은 수(藪)라 불렀다. 수풀, 덤불이라는 뜻의 수이다.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게 느껴져 매일 한 시간 이상 걷자고 마음먹고 찾아간 곳이다. 몸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한 해였다.
북송리 북천수, 소나무 숲의 이름이 특별하다. 다른 고장에도 있을 테지만 포항은 동네 숲을 많이 간직한 도시다. 선비가 지와 예를 갖추듯 푸른 동해와 깊은 계곡까지 겸비했다. 해안선이 길어서 바람을 막고자 방풍림으로 해송을 길게 심었고, 동네마다 둘레에 나무를 심어 가꿨다. 내 어릴 적 학교 소풍 장소였던 송도 솔밭과 기계 서숲, 여인의 숲, 청하 관송전, 덕동숲, 언뜻 기억나는 곳만도 이만치이다.
두내, 양촌, 천방, 큰동네, 건너각단 등으로 불리던 자연마을들은 1914년에 통합되어 북송리가 되었다. 북송리에 북천수가 있는 것이 아니라 북천수가 있어서 북송리라는 이름이 생긴 것이다. 결국, 솔숲이 행정구역 통합을 이루어낸 셈이다. 정월 대보름날 마을 사람들은 이 숲의 제당에서 동제를 지낸 후 마을 앞산에서 산제를 지낸다. 이때 전년도에 묻어둔 간수의 상태를 보고 그해의 길흉화복을 점치는 풍습이 있다. 이처럼 북천수는 수해방지림인 동시에 방풍림의 역할을 해 왔으며, 오랜 기간 마을 주민들의 신앙적 대상이 되었기 때문에 문화적·역사적으로 매우 가치가 큰 마을 숲으로 인정받아 2006년 3월 28일 천연기념물 제468호로 지정되었다. 조선 후기에 제작된 ‘흥해현지도’와 1938년 조사된 ‘조선의 임수’에 이 숲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한국지명총람’에 의하면, 조선 철종 때 흥해 군수 이득강이 북천에 제방을 쌓고 4리에 걸쳐 숲을 조성하였는데 현재는 그 일부만 남아 있다. 숲의 길이가 2천400m, 너비는 150m인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광복 직전에 일본인들이 크게 훼손하여 대부분의 노송이 잘리는 운명에 처한다. 그 이후로도 수십 년 동안 무단벌목, 방치에 따른 주민 생활오물 투여, 농경지 개발 등으로 인하여 북천수는 숲으로서의 고유한 모습을 거의 잃게 되었다. 그러다가 2005년에 전통마을 숲 복원사업으로 일대 정비를 거치면서 오늘날의 형태로나마 남을 수 있게 되었다. 현재 규모는 길이 1천870m, 너비 70m(천연기념물 지정구역 면적은 21만1천923㎡)로 조성 당시 규모에는 못 미치지만 그래도 상당 정도 회복되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송림은 4곳으로 하동 송림, 예천 금당실 송림, 안동 하회마을 만송정 그리고 북천수이다.
이 숲은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숲 가운데 세 번째로 긴 숲으로 알려져 있다. 수종은 소나무와 곰솔이다. 소나무는 뿌리가 깊게 자라기 때문에 방풍림으로 제격이라고 한다. 소나무의 줄기는 붉은색을 띠고 곰솔은 검은색이다. 검은 솔이라 부르다 곰솔이 되었다 한다. 두 나무를 정확히 구분하는 방법은 새순을 보는 것이다. 소나무의 새순은 줄기와 같이 적갈색이나 곰솔은 회백색을 띤다.
숲 가장자리에 서부초등학교가 자리했다. 학교 둘레에 소나무가 가득한 걸 보니, 오래전에는 이곳도 북천수의 영역이었을 것이다. 양덕동에 사는 민영 선생님은 아이들을 숲에서 뛰놀게 하려고 이 학교에 보낸다. 자신의 차가 없어서 아이 둘을 데리고 버스를 타고 포은도서관 앞에서 흥해로 가는 차로 갈아탄다. 서부초는 1, 2교시 합쳐서 수업하고 쉬는 시간이 30분이다. 점심시간에도 얼른 밥을 먹어치우고 밖에 나가려고 한다. 아이들은 숲에서 곤충도 관찰하고 솔방울도 주우며 산책을 즐긴다. 민영 선생님이 매일의 수고로움을 겪으면서도 이 학교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가 북천수라고 했다.
숲 옆을 흐르는 곡강천을 옛날에는 북천이라 불렀다. 북천변에 심은 나무 북천수는 이제 거대한 마을 숲이 되어 주민들의 휴식 공간이다. 서부초에서 아이들을 키우듯, 숲에는 자연 발아유도지 4곳을 설정하여 유목들이 자랄 수 있도록 하였다. 아름드리 둥치가 숲의 과거라면 솔방울이 뿌리내려 서로 키가 다른 어린 소나무들이 숲의 미래다.
/김순희(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