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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닭찌짐

등록일 2022-01-16 20:01 게재일 2022-01-17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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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처럼 생긴 청송의 닭불고기.

언니들이 드라이브하자고 나를 싣고 달렸다. 신광을 지나 구불구불한 동네 길을 지나 기계로 향했다. 기계가 종착지인가 했더니 산을 넘어 죽장에 다다랗다. 계곡에 물이 얼었다. 커다란 김장배추 절이는 것으로 보이는 깊은 다라이에 아이들을 싣고 삼촌쯤으로 보이는 두 사람이 줄을 달아 얼음을 지치고 있다. 놀이공원에 바이킹을 타는 듯한 아이들의 표정이 멀리서도 보였다. 그곳이 종착지인가 했더니 더 깊은 산속으로 차를 몰았다. 입암서원을 지나 산을 넘으니 청송으로 접어드니 썰매장 가득 사람들로 붐볐다. 추운 날을 기다렸다는 듯 사람들은 얼굴에 웃음꽃을 머금었다. 우리는 그곳도 그냥 지나쳤다. 가다 보니 아름드리 소나무가 지키는 동네가 나타나고, 사과나무가 병풍처럼 둘러쌌다. 낮게 엎드린 산의 능선이 공룡의 등허리를 닮아서 어느 시대 즈음에 이곳에 어슬렁거리던 티라노사우루스를 상상했다.

그렇게 두 시간을 달려 언니들의 선택지는 누룽지불백숙 맛집이었다. 구불구불 돌아서 오니 어디인지 모르겠다가 차에서 내리니 자주 지나치던 곳이었다. 영양에 가려고 영덕-상주 간 고속도로에서 내리자마자 만나는, 약수로 백숙을 하는 집들이 어깨를 맞대고 손님을 부르는 그 동네였다. 점심시간을 조금 지나 갔더니 한산했다. 백숙, 닭불고기 두 개 다 먹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세트메뉴가 있었다. 밑반찬 상이 차려졌다. 샐러드, 겉절이, 장아찌 사이에 정체 모를 무침 하나가 놓였다. 한 입 먹으니 사과무침이었다. 사과가 많이 나는 청송다운 반찬이다. 상주에 가면 감말랭이 무침이 있듯이 말이다. 매콤한 사과가 입맛을 돋우어 배가 더 고파졌다.

언니들이 추천한 집이라 물에 빠진 고기 싫어하는 나는 닭불고기가 무척 궁금했다. 밑반찬으로 초요기를 하는데 전 한 접시가 나왔다. 닭불고기란다. 그렇게 말해주지 않았다면 김치전인가 할 만큼 겉모양이 닮았다. 젓가락으로 한 점 뜯어 먹으니 닭 맛이 느껴졌다. 불 향이 더해져 자꾸 손이 갔다. 닭찌짐 같다고 했더니, 언니들이 그게 뭐냐고 물었다.

어릴 적 제사가 있는 날이면 할아버지는 마당에 판을 벌였다. 먼저 칼을 갈고 제사에 쓰일 고기 손질을 하셨다. 소고기, 돔배기를 비롯한 생선을 장만해 부엌의 며느리에게 보내고 드디어 닭을 꺼냈다. 살이 많은 다리와 가슴은 따로 쪄서 상에 올리고, 그 나머지 날개, 목 따위 닭의 모든 부위를 도마에 놓고 다지셨다. 닭 뼈가 세다며 칼이 오래 도마 위를 오갔다.

그렇게 할아버지의 역할이 끝난다. 그때부터는 집안 여자들이 맡는다. 뒤집은 솥뚜껑이 뜨겁게 달면 제일 먼저 배추전를 부친다. 차례로 갖가지 전이 구워질 때쯤, 할아버지의 닭 손질이 끝나 배달된다. 다진 닭고기는 고기가 서로 붙을 정도의 밀가루만 섞어 기름을 두르고 지진다. 이것을 닭찌짐이라 불렀다. 다졌지만 닭의 잔뼈와 오도독뼈가 존재감을 버리지 않아 씹는 식감이 남달랐다.

안동이 고향인 내가 닭찌짐을 열심히 설명해도 모두 처음 듣는 음식이라고 했다. 책을 읽다가 모르는 낱말이 나오거나, 음식 이름인데 처음 접하는 것이라 상상이 가지 않을 때, 그때마다 물어보는 척척박사님이 있다. 오늘 딱 맞게 집으로 초대해 주셨다. 정갈하게 내온 팥죽을 한 그릇 맛있게 먹은 후, 닭찌짐 이야기를 하니, 지인의 경주 할머니 댁에서도 제사 음식으로 썼다고 했다. 쇠고기 섭산적이 귀해 닭고기로 대신해서 만들었다는 이야기와 안동은 종가가 많아서인지 제사 장부터 고기 손질까지 남자가 참여해서 보기 좋다는 칭찬도 얹어주었다.

청송에서 우리 앞에 놓인 닭불고기가 붉은 양념이라면, 제사 음식이었던 닭찌짐은 고춧가루 없이 누르스름했다. 물론 식감이 완전히 달라 같은 음식이라고 하면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오랜 칼질이 무색해질 터이니 모양만 닮은 걸로 하자. 그나마 뒤따라 나온 누룽지백숙이 늘 먹던 백숙보다 한 단계 위라 닭찌짐보다 한 수 아래인 닭불고기도 인정해주기로 했다. /김순희(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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