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펫을 깔았다. 아이들 호흡기에 좋지 않다고 해서 한동안 수납장 속에 넣어 두었었다. 정해진 공간에 넣기 바빠 카펫의 형편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구석진 곳에 넣기 위해 여러 번 겹접었다. 오랜만에 펼쳐 놓으니 판판하지 않다. 접혔던 선이 선명하다. 자근자근 눌러서 가라앉히려 해도 조금 지나면 등허리가 불룩 튀어나온다. 울룩불룩한 카펫 위를 아이들이 뛰어다닌다. 그 등쌀에 이리저리 밀릴까 봐 소파 발을 빌어 한 귀퉁이씩 눌러 놓았다. 식구들이 번갈아 가며 등도 대주고 엉덩이로 따뜻하게 품어줘야 할까 보다. 며칠은 그렇게 달래야지.
달래야 할 것은 카펫만이 아니다. 요즘 내 마음이 마음이 아니다. 며칠 밤을 뜬눈으로 새웠다. 오래 접혔던 카펫을 펼친 것처럼, 아무리 혼자 삭히려 해도 쉽지 않다. 올해로 결혼 십이 년째인 나는 그동안 부부싸움이 한 손에 꼽을 정도였다. 남편의 성격이 느긋하고 참을성이 많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싸움을 피하고 싶은 내 마음도 물론 한몫했다. 내 어릴 때, 부모님은 자주 말다툼을 했다. 늘 작고 사소한 것들로 누가 옳으니 그르니 티격태격했다. 그런 모습을 보고 나는 결혼하면 절대 싸우지 않으리라, 특히 자식 앞에선 그러지 말자고 다짐했었다.
그 다짐이 조금씩 무너지더니 며칠 전엔 새벽이 될 때까지 목소리 높여가며 싸움을 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둘째 아이가 아직도 한글을 깨치지 못한 것이 꼬투리가 되었다. 남편은 모든 것이 내 잘못이라고 했다. 급기야 시어머니는 자신을 일곱 살에 학교에 들어갈 수 있도록 잘 가르쳤다면서, 나와 비교하기까지 했다. 언성이 높아질 만하자 남편은 아이들 잘 때까지 기다리자고 했다.
아이들이 잠들자 남편은, 요즘의 내 모습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면서 다시 말을 꺼냈다. 결혼 전의 다소곳하던 모습은 다 어디 갔냐고 했다. 자신이 상상하고 기대했던 현모양처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어 실망스럽다며 한숨을 토했다. 그의 말은 틀리지 않다. 난 현모양처와는 거리가 멀다. 남편이 원하는 모습에 나를 맞추려고 했을 뿐이다. 수납장에 맞춰 카펫을 접어 넣듯이.
십 년이 한계였나 보다. 나는 참아 왔던 말들을 쏟아놓기 시작했다. ‘자기는 하루가 멀다하고 늦게 들어오면서, 어쩌다 내가 약속이 있어 나가면 왜 빨리 들어오라고 시간을 정해 주느냐, 그러지 마라. 내가 시댁에 하는 만큼 당신은 처가에 했느냐, 똑같이 해라. 내 하는 것의 반만 해도 사위 잘 봤다고 동네 소문이 날 것이다. 둘째가 한글 모르는 것도 내 탓만 하지 마라, 아이들 교육을 엄마 혼자 하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아빠도 참여해서 같이 키우자….’ 카펫이 등허리를 곧추세우며 수납장 속에서의 시간을 성토하듯이 나는 남편에게 가슴속에 접어두었던 이야기들을 풀어놓았다. 꼬깃꼬깃해진 채 쏟아져 나온 말들은 남편 앞에서 파르르 떨고 있었다. 남편은 얼버무리듯 그만 자자며 자릴 피했다.
나는 잠이 오지 않았다. 사람들에게는 마음의 크기를 재는 자기만의 자가 한 개씩 있지 않을까? 남편을 만나면서 나는 재단사가 되었다. 그 사람의 마음에 내 마음을 대보곤 했다. 모양이 맞지 않아도 가위질은 차마 못 해 이리저리 내 마음을 겹접었다.
‘접었다’라는 표현이 맞다. 내 생각은 접어서 마음속 수납장에 넣어 두었다. 색종이는 접어서 비행기로 날리고 예쁜 꽃을 피워 빛나게 할 수도 있지만, 마음은 접으면 다른 일을 할 수가 없다. 마음 접었다함은 거의 포기했다는 거나 마찬가지니까.
사람의 마음도 그렇다. 제때제때 풀어야 한다. 작은 생채기라 해서 돌보지 않고 접어두었더니 나도 모르는 새 가슴 한켠에 쌓였나 보다. 그런 상처쯤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나아질 거라 여겼다. 내색하지 않으니 남편 또한 내가 어떤 불만이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싸우지 않겠다는 애초의 내 다짐이 오히려 문제를 만든 셈이었다. 카펫에 누워 남편과 못다한 이야기를 나눠야겠다. 싸움이 아닌 대화를 말이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카펫의 구겨진 자리가 펴지듯 내 마음도 편안해질 것 같다. /김순희(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