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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아주 작은 습관의 힘

김현욱 시인예전에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알람을 아침 7시로 맞췄다. 요즘은 6시 30분으로 맞춘다. 30분 일찍 일어나 명상을 하려고 노력한다. 거창 붓다선원에서 배웠다. 명상 중에 으뜸은 아침 명상인 게 분명하다. 멍한 상태라 숨 보기가 잘 된다. 잠결이라 그런가 보다. 몇 달 그렇게 아침 명상을 하고 나니 알람이 울리면 자동으로 어정쩡하게 평좌를 틀고 앉는다. 처음에는 10분도 버거웠는데 이제는 30분도 가뿐하다. 아침 명상을 하면 하루가 든든해진다. 출근할 때 마음이 즐겁다. 미운 사람이 좋은 사람이 되는 신비한(?) 체험을 한다. 아침 명상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잠자리에 들기 전에 꼭 책을 읽는다. 30분일 때도 있고 1시간을 넘을 때도 있다. 클래식 FM을 틀면 안락의자에 앉아서 책을 읽겠다는 나만의 의식이다. 960쪽에 이르는 홍익희 교수의 문명으로 읽는 종교 이야기도 매일 밤 30분씩, 1시간씩 읽어나가니 벌써 절반을 넘겼다. 직장인이 독서를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는 것이다. 티끌 같은 시간이 쌓여 태산 같은 독서가 된다. 경험상 자투리 시간과 잠자리에 들기 전이 책 읽기 가장 좋은 시간이다.습관(習慣)이란 말이 재미있다. 습(習)은 둥지에서 어린 새가 날기 위해 날개를 계속 퍼덕이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관(慣)은 마음 심(心)에 꿸 관(貫)자를 더한 한자다. 즉, 날기 위해 어린 새가 퍼덕거린 날갯짓이 마음에 꿰인 듯 익숙해졌다는 뜻이다. 날마다 반복하여 익숙해져서 자기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하는 행동이 바로 습관이다. 습관은 신호, 반복 행동, 보상이라는 고리로 움직인다. 알람이 울리면, 평좌를 틀고 명상을 하고, 행복한 하루를 시작한다. 클래식 FM이 들리면, 책을 읽으면서 밑줄을 긋고, 나중에 공책에 밑줄을 정리하며 뿌듯함을 느낀다.안동금연센터에 4박5일간 금연 캠프를 다녀왔지만 나는 아직 담배를 끊지 못했다. 전자담배는 일종의 절충인데 냄새가 조금 덜 난다는 것 말곤 역시나 백해무익하다. 흡연을 하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면, 담배를 꺼내 들고 밖으로 나가 피운다. 피우면서 만족과 안도감을 느낀다. 니코틴이 뇌로 흡수되는 기전을 금연센터에서 똑똑히 보았지만, 흡연이라는 신호→반복 행동→보상이라는 고리에서 좀처럼 벗어날 수가 없다.제임스 클리어가 쓴 아주 작은 습관의 힘에 따르면 자신이 원하는 행동의 변화보다는 정체성 변화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한다. 이를테면, 지인이 담배를 권할 때 “괜찮습니다. 금연 중입니다” 보다는 “괜찮습니다. 전 담배를 피우지 않습니다”가 습관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책에서는 정체성을 바꾸는 습관의 네 가지 법칙을 소개한다. ‘분명하게 만들어라’, ‘매력적으로 만들어라’, ‘쉽게 만들어라’, ‘만족스럽게 만들어라’가 그것이다.습관이 운명이다. 오복(五福)보다 독서, 운동, 명상, 글쓰기, 악기연주 같은 습관을 들이는 게 더 낫다.

2019-10-13

딱딱이 박수와 바보 음악가

김도형아시아퍼시픽해양문화연구원 이사오페라는 화려하다. 호화 배역과 웅장한 무대, 장중한 음악은 관객들을 매료시키는 힘이 있다. 티켓값도 비싸 일반인들은 엄두를 내지 못한다. 평생에 오페라 한 번 보지 못한 사람이 대다수이다. 그런 까닭에 오페라 무대의 성악가는 머나먼 별나라의 외계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화려한 오페라 무대에서 내려와 그늘진 곳을 찾아다니며 클래식을 선사하는 성악가가 있다. 사연은 이렇다. 성악가는 어느 날 치매를 앓고 있는 어머니를 찾아가 노래를 불렀다. 중학생이던 그가 대도시로 성악 레슨을 받으러 가던 첫날, 이웃에게 빌린 지폐를 손에 쥐어주던 어머니였다. 어느덧 아들은 외국 유학을 마치고 세계적인 성악가로 성장해 어머니 앞에 섰지만, 어머니는 치매에 걸려 있었다. 아들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어머니는 흥얼흥얼 따라 불렀다.그 순간 성악가는 강한 영감을 느꼈다. 평소 음악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깊이 고민하던 그는 어머니를 통해 음악의 치유능력을 확인하고, 어머니가 머무르고 있는 치매병동처럼 소외된 곳을 찾아다니며 클래식을 전하겠다고 다짐했다. 전국 방방곡곡 그를 찾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고, 그 횟수가 지난 2004년부터 지금까지 무려 1천800여 회에 이른다.강원도 농촌의 한 예식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성악가와 동료 10여 명이 고생 끝에 찾아갔는데 청중은 고작 20여 명에 불과했다. 많은 청중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맥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성을 다해 노래를 불렀고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공연을 마친 후에 한 할머니가 어린 손자의 손을 잡고 찾아와서는 성악가에게 꼬깃꼬깃 접은 만 원짜리 한 장을 건넸다. 그리고는 손자에게 좋은 노래를 들려줘 너무 고맙다며 깍듯하게 인사를 했다. 성악가는 차마 거절할 수 없는 귀한 티켓값이었다.한센인들의 쉼터인 안동 성좌원에서는 이런 일도 있었다. ‘경복궁 타령’, ‘오 솔레 미오‘ 등을 부르자 박수소리가 쏟아졌다. 그런데 박수소리가 왠지 이상했다. ‘딱딱딱’ 하는 묘한 소리가 섞여 있었다. 알고 봤더니 팔순의 할머니가 노래에 감동을 받아 손에 피가 날 정도로 힘껏 박수를 쳤는데, 한센인의 손이어서 박수소리가 일반인들과는 달랐던 것이다. 성악가는 할머니의 손을 잡아주고 싶었지만 한사코 손을 피하는 바람에 따듯하게 안아주었다.성악가도 힘든 고비를 만날 때가 있다. 그때마다 할머니들을 떠올리며 위안과 용기를 얻는다. 그들을 위해 떠난 여정이건만, 그들로부터 힘을 얻는 아름다운 역설인 것이다.김병종 서울대 미대 교수는 그 성악가를 일컬어 ‘극장을 떠난 바보 음악가’라 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극장을 떠나 그늘진 곳을 찾아다니며 음악으로 나눔을 실천하는 것은 바보이기에 가능한 까닭이다. 김병종 교수도 ‘바보 예수’ 연작으로 유명하다. 그러고 보면 천재가 세상을 바꾼다는 얘기는 일면의 사실일 뿐, 세상은 잇속에 능하지 않은 우직한 바보들이 바꾸고 있다. 그 가려진 진실을 독자들과 함께 굳게 믿고 싶다. 바보 음악가는 포항 출신의 바리톤 우주호임을 밝혀둔다.

2019-10-06

홍콩의 시위에서 바라본 우리나라는!

서정목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지난 1960년대에서 90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은 고도의 경제성장 시대였다.어렵고 힘들었던 그 시절 홍콩영화는 일반인들이 쉽게 접할 수 있었던 오락물로 큰 인기를 누렸다. 60년대에서 70년대를 거쳐 80년대까지 홍콩영화는 한국의 극장가에서 주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당시 홍콩영화는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위안거리였고, 만화경같은 존재였다. 해외여행 자유화가 실시되지 않았던 시절, 아니 해외여행 자유화가 있었다 해도 갈 돈이 없었던 시절, 이소룡, 성룡, 왕조현에서 주윤발, 장국영으로 이어지던 홍콩 영화는 당시 해외를 간접적이나마 볼 수 있었던 몇 안되는 창구였다.그러다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이 이루어지고 일국양제라는 타이틀 아래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하나의 국가 안에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라는 서로 다른 두개의 체제가 공존하게 되었다.홍콩의 주권 반환 후 50년간 중국은 외교와 국방에 대한 주권을 부여하고 홍콩은 자치권을 가지기로 하였다. 그러나 중국영향 하의 공산주의를 두려워한 수십만 명의 홍콩인들이 캐나다, 호주, 미국 등지로 이민을 떠났다. 이 시기를 전후해서 홍콩영화는 과거의 영광을 누리지 못하고 쇠퇴하고 만다. 홍콩의 경제도 이전과 같이 활성화되지 못하였다.이러한 홍콩이 요즘 난리를 겪고 있다. 오늘날 홍콩의 시위를 바라보노라면 데자뷔(deja vu)를 느끼도록 한다.우리나라가 70년, 80년대 민주화투쟁을 겪으면서 경험한 것이다. 최근 홍콩의 시위는 홍콩범죄인 인도법이 발단이다. 이는 홍콩에서 범죄자를 중국대륙으로 송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법으로 홍콩에서 대만, 중국, 마카오 등 역외에서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해 해당 국가에 신변을 인도할 수 있도록 하는 취지이다. 하지만 중국 정부에 반대하는 인권운동가나 반체제 인사들을 중국으로 인도하는 데 악용될 소지가 크므로 홍콩시민들은 이 법안에 반대하고 있다. 결국 홍콩에 대한 중국의 간섭이 심화되고, 홍콩의 자유가 억압될 수 있다는 것이 홍콩시민들을 시위로 나서게 하는 것이다. 홍콩은 과거 약 150여년간 식민통치이기는 하지만 영국령으로서 민주주의를 경험하였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하는데 15번이나 지났으니 홍콩인으로서의 민주화의 열망은 당연할런지도 모른다.우리에게 눈을 돌려보자. 진보와 보수의 갈등, 일본의 수출규제, 장관 인사청문회 등의 문제로 현재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도 시끄럽기 짝이 없다. 하지만 우리가 완벽하지는 않지만 지금까지 이룩해 놓은 산업화와 민주화의 토대 위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대결구도는 역설적으로 민주화를 보여주는 지표가 된다.‘여’가 ‘야’가 되고 ‘야’가 다시 ‘여’가 되고, 음지가 양지가 되고 양지가 음지가 될 수 있는 나라. 누구는 평생 ‘여’만 하고, 누구는 평생 ‘야’만 하면 불공평하지 않는가? 정책으로 평가받고, 표심으로 선택받을 수 있는 우리나라는 그래도 좋은 나라인 게다.

2019-09-22

당신이 잘 있으면, 저도 잘 있습니다

김현욱 시인‘한 달에 한 권 읽기’ 책모임에서 8월의 책으로 한동일 교수의 라틴어 수업을 읽기로 했다. 한동일 교수는 한국인 최초의 바티칸 대법원 로타 로마타(Rota Romana) 변호사다. 로타 로마나 변호사가 되려면 유럽의 역사와 교회법, 라틴어와 기타 유럽어까지 능통하고 합격률이 6∼7%에 불과한 자격시험을 통과해야 한단다. 학교에 있으면서도 영어 울렁증 때문에 원어민과 마주치면 쭈뼛거리기 일쑤인 나 같은 범인은 상상조차하기 어렵다. 영어, 불어, 독일어도 아니고 까다롭고 복잡하기로 악명 높은 라틴어라니.라틴어, 하면 고등학교 때 읽은 스탕달의 적과 흑이 떠오른다. 치정(癡情) 소설이었지만, 아름다운 심리 묘사가 탁월했다. 주인공 쥘리앵 소렐은 가난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마을 신부에게 라틴어를 배우며 야망을 키운다. 1830년대 당시 프랑스에서 성직자가 되려면 라틴어는 필수였다. 쥘리앵은 뛰어난 라틴어 실력으로 베리에르 시장인 레날 씨의 라틴어 가정교사로 들어간다. 그곳에서 레날 부인과 운명적 사랑에 빠지지만, 신분 상승을 꿈꾸던 쥘리앵은 정략결혼을 선택하며 파국을 맞는다. 스탕달의 적과 흑을 읽으면서 ‘라틴어’는 출세의 문을 열기 위한 열쇠로 내게 각인되었다.그런 선입견 때문인지 한동일 교수는 어떤 출세(?)를 위해 라틴어를 공부했을까 색안경을 끼고 읽다가 점점 자세를 고쳐 앉았다. 현대판 쥘리앵의 라틴어 성공담이 아니었다. 지혜로운 삶의 태도에 관한 책이었다. 서강대학교 학생뿐만 아니라 타 학교 학생과 교수들, 일반인들까지 최고의 명강의라고 치켜세운 것은 그가 어려운 라틴어를 쉽게 가르쳤기 때문이 아니라 라틴어를 통해 삶의 자세와 태도에 관해 조언했기 때문이다.이를테면, “시 발레스 베네, 발레오.(Si vales bene, valeo), 당신이 잘 있으면 나도 잘 있습니다.”라는 로마인들이 편지를 쓸 때 애용하던 첫 인사말을 소개하면서 이렇게 조언한다.“타인의 안부가 먼저 중요한, 그래서 ‘그대가 평안해야 나도 안녕하다’는 그들의 인사가 문득 마음 따뜻하게 다가옵니다. 내가 만족할 수 있다면, 내가 잘 살 수 있다면 남이야 어떻게 되든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요즘 우리의 삶이 위태롭고 애처롭게 느껴집니다. (중략) 내 작은 힘이나마 필요한 곳엔 더불어, 함께 하겠다는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주위에 대한 관심을 버리지 않는다면, 삶이 지금보다 훨씬 좋아질 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어도 적어도 더 나빠지지 않을 겁니다. 아니, 지금보다 조금은 좋아지지 않을까요?”태도나 마음가짐에 따라 행복을 가져올 수 있다 라는 뜻의 라틴어 ‘베아티투도(beatitudo)’처럼 한동일 교수는 라틴어 수업 내내 “사랑하라, 그리고 네가 하는 싶은 것을 하라!”라며 우리의 어깨를 다독인다. 라틴어 수업을 읽으며 손난로처럼 따뜻했던 고등학교 시절의 은사님을 떠올렸다.“당신이 잘 있으면, 저도 잘 있습니다.”

2019-09-15

상처와 무늬 그리고 김종원

김도형 아시아퍼시픽해양문화연구원 이사상처 많은 나무가 아름다운 무늬를 남긴다는 말이 있다. 사람의 경우는 어떨까? 상처 없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상처를 입지만 그 고통을 견디며 살아가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모든 상처가 아름다운 무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상처가 아름다운 무늬가 되고 세상에 향기를 전하는 삶은 극히 드물다.포항 동빈동에 흰색의 아담한 목조건물 하나가 있었다. 따듯한 정감과 품위를 느끼게 한 그 건물은 선린병원이었다. 선린병원은 단순히 하나의 병원이 아니다. 파란만장한 현대사와 개인사가 씨줄과 날줄로 엮여 있다. 전쟁으로 초토화돼 수많은 전쟁고아들이 길거리를 헤매고, 홀로 된 산모들이 흐느끼고 있는 포항에서 그들을 치료하고 섬기는 사명이 선린병원의 뿌리다. 그 사명을 깨달아 병원을 헌신적으로 이끌고 키운 사람이 김종원이다.그는 1914년 평안북도 초산군에서 태어나 평양의전을 졸업하고 평양의대 소아과에서 근무했다. 6·25전쟁이 터지고 월남해 대구 동산기독병원에 있던 중 전쟁고아들을 무료 진료하는 미해병대 기념 소아진료소가 포항에 만들어지면서 진료소를 이끌 적임자로 추천을 받게 된다. 그는 온몸을 바쳐 전쟁고아뿐만 아니라 오갈 데 없는 산모들의 진료를 맡았다. 한국 최초의 모자보건 활동을 펼친 것이다. 이 진료소는 김종원의 정성이 밑거름이 돼 선린병원으로 성장하게 된다. 그는 의사로서 얼마든지 편하게 살 수 있었지만 30년 된 텔레비전과 냉장고를 사용하는 무소유의 삶을 살았다.그의 삶에는 깊은 상처가 있었다. 남쪽으로 올 때 북에 세 아들이 남아 있었다. 피난 올 때 갓난아기였던 넷째 아들은 경기고 진학을 위해 서울 하숙집에 머물다가 연탄가스에 중독돼 숨을 거뒀다. 2007년 3월 김종원이 영면하자 조문 행렬이 끊이지 않았고, 하관식 때 그의 품에서 자란 많은 고아들이 눈물을 흘렸다. 포탄의 웅덩이에서 놀던 고아들은 북에 두고 온 그의 아이들로 보였겠지만, “예수님의 다른 모습이었는지도 모른다”고 선린병원 원장 이임사에서 고백했다. 김종원은 감내하기 힘든 상처를 견뎌내며 이웃들에게 감동의 인술을 펼쳤다.인산(仁山) 김종원의 삶은 성산(聖山) 장기려의 삶과 여러모로 겹친다. 장기려는 1911년 평안북도 용천군에서 태어나 경성의전을 졸업하고 일본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전쟁통에 월남한 후 부산 영도에 병원을 세워 피난민을 무료 진료했고, 국내 최초의 의료보험조합을 만들어 가난한 사람들도 치료받을 수 있는 기틀을 만들었다. 그 또한 이산가족이었다. 월남하면서 아내와 네 자녀는 북에 두었고, 차남만 데리고 부산에 정착했다. 노년에 병고에 시달리면서도 집 한 칸 없이 소외된 사람들을 섬긴 작은 예수였다.배금주의가 횡행하는 시대, 인산과 성산의 삶은 인간의 상처와 그 상처를 극복하면서 만들어간 무늬의 의미를 묻게 한다. 부산에는 장기려를 기념하는 센터가 있고, 곳곳에 그의 자취가 남아 있다. 포항에서 김종원의 흔적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선린, 그 아름다운 이름으로 초토에서 버림받은 이들을 보살핀 동빈동에 그의 고귀한 삶을 기리는 작은 표지석이라도 하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2019-09-08

아이들의 삶과 연결하기

김현욱 시인계절의 변화는 칼날처럼 어김없다. 뜨거웠던 여름이 가고 풍요로운 가을이 온다. 달콤한 여름방학을 보낸 아이들은 개학하고 2학기를 시작했다. 9월이 되면 학교와 도서관, 각종 단체에서 독서, 문화행사가 풍성하게 열린다. 포항시립도서관은 ‘2019 바다로 나온 도서관’을 준비 중이다. 포항문인협회는 덕수동 수도산에서 제20회 재생백일장을 연다. 포항문화재단과 포항시립미술관에도 행사가 풍성하다. 참 볼 것 많고 갈 데 많은 9월이다.방학 중에 동료 선생님들을 만나 ‘한 학기 한 권 읽기’에 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동료 선생님들은 학창 시절에 책 읽어주는 선생님을 만난 적이 없었다. 1990년대의 학교 도서실은 열악했고, 형식적인 독서교육을 받았다. 학창시절에 만난 선생님들은 책 이야기는 별로 하지 않았다. 오로지 성적과 입시, 대학 이야기가 전부였다. 그런 시절을 거쳐 교사가 된 우리는 지금, 여기에 있는 아이들과 ‘한 학기 한 권 읽기’를 한다. 독서 강연을 갔다가 만난 어떤 젊은 교사는 “독서 교육 꼭 해야 하나요? 아이들이 스스로 읽게 놔두면 안 되나요?”라고 항변했다. 틀린 말도 아니다. 문제는 그렇게 말한 담임 선생님과 1년 동안 함께 지낸 아이들이 스스로 책을 찾아 읽을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학창 시절에 만난 선생님에게서 무얼 배웠느냐를 기억하지는 못한다. 남는 것은 그때 그 선생님들의 태도다. 나를 어떻게 대했던가. 우리에게 어떻게 대했던가. 그 선생님은 무엇을 소중히 여겼던가.2학기에 한 학기 한 권 읽기를 어떻게 꾸려나갈 것인가에 관한 얘기를 나누다가 한 선생님이 말했다. “2학기에는 아이들과 동시집을 같이 읽으려고 해요. 요즘 아이들은 시를 잘 안 읽어요. 방학 때 동시집을 읽다 보니 그동안 내가 알던 시와 다르더라고요. 아이들의 삶이 잘 드러나서 아이들도 좋아할 거 같아요.”정치든 예술이든 삶과 동떨어진 것은 사상누각(砂上樓閣)일 뿐이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학교에서 배우는 것과 아이들의 삶이 분리된 지는 오래다. 시험이 끝나면 쓰레기장에 교과서와 문제집이 수북하게 쌓인다. 학기별로 학년별로 필요 없는 것들, 수명을 다한 것들이다. 거기다 4차 산업혁명 운운하며 뭔가를 새로 배우지 않으면 큰일 날 것처럼 호들갑을 떤다. 시험만 치면 필요 없는 것들을 배우느라 인생의 가장 빛나는 시절을 낭비한다.진정한 배움은 자신의 삶과 연결될 때 가치가 있다. 학창 시절에 행복한 독서 경험은 아이들의 삶에 큰 흔적을 남긴다. 첫 키스 같은 책 한 권은 평생을 간다. 한 학기 한 권 읽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의 삶과 연결하는 것이다. 누구나 그렇지만 삶의 대부분은 평범하고 사소한 일들을 바탕으로 흘러간다. 대통령이라고 아이돌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먹고 자고 일하는(배우는) 게 전부다. 특별할 것 없는 자신의 일상 속에 우주의 영원한 진리가 있다. 우리가 애타게 찾아 헤매는 행복이 있다. 세발자전거에서 두 발 자전거로 옮겨가기 위해 매주 고군분투하는 딸과 자전거 관련 그림책을 읽으며 삶과 배움이 다르지 않음을 깨닫는다. 나는 기다립니다 그림책을 함께 읽으며 자신이 진정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성찰해보는 게 배움이다. 삶이 배움이고 배움이 삶이어야 한다. 그날 우리가 모여서 나눴던 고민의 대부분은 아이들의 삶과 배움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였다.

2019-09-01

다산(茶山)의 독서법, 초서(抄書)

김현욱 시인여름휴가 동안 정독(精讀)하고, 초서(抄書)한 책 목록은 다음과 같다. 염은열 교수의 유배, 그 무섭고도 특별한 여행, 정민 교수의 한밤중에 잠이 깨어, 김윤규 교수의 다산, 장기 유배 문학 산책, 이상준 향토사학자의 영일 유배 문학 산책, 김옥애 작가의 봉놋방 손님의 선물, 정찬주 작가의 다산의 사랑, 박석무 교수의 다산 정약용, 유배지에서 만나다, 이소정 작가의 우리 조상의 유배 이야기 등이다.염은열 교수의 유배, 그 무섭고도 특별한 여행에 나오는 조선판 오렌지족, 대전별감 안도환의 유배 이야기가 흥미진진했다. 한양의 밤(?)을 주무르던 안도환이 조선의 3대 유배 섬 중 한 곳인 추자도로 유배되어 온갖 고초를 겪는 모습에 몇 번이나 웃음을 터뜨렸는지 모른다. 안도환이 지은 유배가사 만언사는 요즘으로 치면 베스트셀러였다. 안도환의 유배 이야기가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제법 인기가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김옥애 작가의 봉놋방 손님의 선물은 다산이 강진 주막 봉놋방에서 중국 주흥사가 지은 천자문 대신에 아학편이라는 교재를 손수 만들어 제자들을 가르친 이야기다.책을 읽다가 모르는 것이 나오면 밑바닥까지 다 캐내는 독서법이 정독이라면, 필요한 것을 가려 뽑아 따로 정리하는 독서법을 초서라고 한다. 다산은, “책을 초록(抄錄: 글이나 문장 따위에서, 필요한 대목만을 가려 뽑아 적음. 또는 그 기록)해 적는 것은 한 모서리를 들어 세 귀퉁이를 뒤집는 방법”이라면서, 아들 학유에게, “기왕 닭을 기른다면 모름지기 백가(百家)의 책 속에서 닭에 관한 글들을 베껴 모아 차례를 매겨 계경(鷄經)을 만들어보는 것도 좋겠다”라고 당부했다.여름휴가 동안 읽은 책들의 공통점은 ‘다산’과 ‘유배’, ‘경상도 장기’였다. 다산이 경상도 장기에 220일 동안 유배되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1801년 3월 9일, 다산은 경상도 장기에 도착한다. 장기에 머물던 220일 동안 다산은 130수의 시와 이아술, 기해방례변, 촌병혹치 등의 책을 남긴다. 특히, 인간 정약용의 면모를 엿볼 수 있는 130수의 시는 경상도 장기만의 소중한 자산이다.다산이 아들 학유에게 시켰던 것처럼, ‘다산’과 ‘유배’, ‘경상도 장기’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여러 책에서 필요한 문장과 구절, 낱말, 유배 정보 등을 220일이라는 공책을 만들어 따로 정리했다. 시간과 공간으로 목차를 만들어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보니 “한 모서리를 들어 세 귀퉁이를 뒤집는 방법”이라는 다산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았다.사람은 누구나 ‘첫-’을 잊지 못한다. 다산에게 경상도 장기는 첫 유배지였다. 요즘으로 치면 청와대 비서실에서 근무하다가 하루아침에 죄인이 되어 유배를 온 신세였다. 다산의 인간적인 모습을 경상도 장기에서 만날 수 있다. 그 옆에 한 소년이 있었을 것이다. 다산의 경상도 장기 유배 동화 220일은 다산의 독서법, 초서 덕분에 그 뼈대를 점차 잡아가고 있다.

2019-08-25

관찰하는 사람

김현욱 시인사다리차가 들어온다. 뒤따라 이삿짐차가 들어온다. 주차 된 차를 빼달라고 인부들이 휴대폰을 들고 분주히 오간다. 하나둘 차가 빠지면 사다리차가 튼튼한 지지대를 내린다. 사다리차가 겹겹이 접혀있던 사다리를 펴 올린다. 7층 베란다 난간을 겨눈다. 난간에 담요를 덮는다. 수신호를 주고받으며 위치를 맞춘다. 짐을 올릴 사다리차 바닥이 몇 번 오르락내리락한다. 이삿짐차 문이 열리고 짐이 쏟아져 나온다. 짐이 올라간다. ‘아, 이사를 왔구나!’ 누가 이사 왔는지는 모른다. 저 사람들은 인부들이다. 저기 저 위 베란다에 있는 아주머니가 주인인가? 책이 많은 걸 보니 집에 학생이 있거나 공부를 하는 사람이다. 화분도 제법 자리를 차지한다. 초등학생이 타는 자전거와 킥보드도 보인다. 집에 초등학생이 있는 모양이다.이상은 우리 아파트에 이사 풍경을 관찰한 글이다. 그냥 무심히 보아 넘기기도 하지만 어느 날은 이렇게 대놓고(?) 관찰한다. 그러다 운 좋게 시를 몇 편 얻기도 한다. “이사// 이른 아침부터/ 베란다 밖으로/ 사다리차 바구니가/ 오르락내리락/ 고개 내밀어 보니/ 침대 냉장고 장롱 텔레비전…./ 부지런히 내려가는/ 이삿짐들/ 여태/ 누가 살다/ 누가 가는지 몰랐는데/ 짐이 이사 가네/ 짐만 살다 가네.//’, ‘인사// 분리수거장 앞에// 낡은 장롱/ 깨진 벽거울/ 다리 한쪽 부러진 식탁/ 주저앉은 소파/ 둘둘 말아 놓은 전기장판/ 칠 벗겨진 옷걸이/ 빨간 끈에 묶인 전집/ 내려앉은 책장/ 녹슨 세탁기// 잘 있다 간다고/ 인사도 못하고 간다고/ 친구네 대신/ 그렇게 한 이틀 서 있었습니다.//”관찰(觀察)이란 사물이나 현상을 주의하여 자세히 살펴본다는 뜻이다. 주의(注意)는 마음에 새겨 집중한다는 말이고, 살피다는 두루두루 자세히 보고 따지고 헤아린다는 말이다. 하지만 인간은 관찰보다는 익숙한 판단을 따른다. 다음 글을 읽어보자. “캠릿브지대학의 연결구과에 따르면, 한 단어 안에서 글자가 어떤 순서로 배되열어 있는가 하것은 중요치 않고, 첫번째와 마지막 글자가 올바른 위치에 있것는이 중하요다고 한다. 나머지 글들자은 완전히 엉진망창의 순서로 되어 있지을라도 당신은 아무 문없제이 이것을 읽을 수 있다. 왜하나면 인간의 두뇌는 모든 글자를 하나하나 읽것는이 아니라 단어 하나를 전체로 인하식기 때이문다.”글자가 엉망진창의 순서로 나열되어 있지만, 대부분은 별 탈(?) 없이 읽을 것이다. 관찰하지 않고 자동적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루트번스타인의 생각의 탄생에서 13가지 창의성 도구 중 가장 첫 번째로 나오는 것이 바로 ‘관찰’이다. 이 책에는 위대한 관찰자들이 나오는데, 화가 조지아 오프키는 “나는 그전에도 천남성을 많이 보아왔지만 그 꽃을 그렇게 집중해서 들여다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작곡가 이고르 스트라빈스키는 “음악은 우리에게 ‘그냥 듣는 것’과 ‘주의 깊게 드는 것’을 구분하도록 한다.”고 말했다.미술 선생님이었던 피카소의 아버지는 피카소에게 비둘기 발만 반복해서 그리도록 시켰다. “열다섯 살이 되자 나는 사람의 얼굴, 몸체 등도 다 그릴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비둘기 발밖에 그리지 않았지만 어느 때는 모델 없이도 그릴 수 있었다.” 피카소는 한 사물을 유심히 반복적으로 관찰함으로써 다른 것들도 묘사할 수 있게 되었다.관찰은 모든 창의성의 시작과 끝이다. 관찰은 인내가 필요하다. 후천적 연습이 필요하다. 세상 모든 순리가 그리하듯 “관찰은 쓰지만, 그 열매는 달다.” 삶에서도 관찰은 중요하다. 붓다가 설했다. “분명한 지혜를 가지고 관찰하는 사람은 괴로움에서 멀리 떠나게 된다.” 나는 분명 관찰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2019-08-11

시 암송 수행평가

김현욱 시인“뱀, 쥘 르나르, 너무 길다.” “섬, 정현종,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반성, 함민복, 늘 강아지 만지고 손을 씻었다, 내일부터는 손을 씻고 강아지를 만져야지.” “파랑새, 한하운,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 되어 푸른 하늘 푸른 들 날아다니며 푸른 노래 푸른 울음 울어 예으리, 나는 나는 죽어서 파랑새 되리.” “지푸라기, 임보, 낟알을 다 뜯기고 만신창이로 들판에 버려진 지푸라기 그러나 새의 부리에 물리면 보금자리가 되고 농부의 손에 잡히면 새끼줄이 된다.”서울 동도중학교는 전교생이 졸업할 때까지 시 100편을 외우는 전통이 있다. 일주일에 한 편씩이니 학년마다 33편 내외를 암송한다. 기사에 따르면, 동도중학교 전교생의 80% 정도가 시 100편을 외우고 졸업한다. 1999년부터 시작해 올해로 14년째다. 시 암송 프로그램을 도입한 박찬두 국어 교사는, “수행평가 점수를 확정해야 하는 중간, 기말고사를 앞두고는 암송 확인을 받으려는 학생들의 줄서기가 교무실 앞부터 복도까지 길게 이어진다”고 말했다.시 암송으로 유명한 나라는 독일과 프랑스다. 독일과 프랑스는 초등학교 때부터 시 암송을 시킨다. 시 암송 노트가 따로 있다. 매주 시 한 편을 나눠주고 시를 외우게 한다. 독일과 프랑스는 고등학교 때까지 최소 100여 편의 시를 외워야 졸업을 할 수 있다. 독일과 프랑스의 국력은 모국어를 사랑하고 모국어의 정수를 획득한 문화 국민의 힘에서 나온다. 미국의 사립 명문학교, 중국의 사립 명문학교에서도 시 암송은 빠지지 않는 지도자 양성의 핵심 프로그램이다.시암송국민운동본부 문길섭 대표는 시를 400편쯤 암송하는 시 암송 전도사다. 시 암송을 하면 좋은 점이 너무 많다고 한다. “친구나 애인처럼 언제 어디서든 만날 수 있고 뇌세포를 활성화해 치매를 예방하고 마음의 여유를 갖게 하고 불면증을 사라지게 하고 자투리 시간을 소중한 시간으로 만들어주고 마음이 힘들 때 위로와 희망을 주고 글쓰기와 말하기의 수준을 높여주고 상상력과 창의력을 길러주고, 세상만물을 늘 가슴에 품게 해준다.”2008년 죽장초등학교에서 아이들과 시 암송을 시작하면서 깨달은 것 중에 한 가지는 시 암송이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시 암송을 통해 특정 교과 성적을 향상하겠다는 얄팍한 계산은 참으로 어리석다. 시 암송은 그 자체가 목적이고 자신의 삶과 관계를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거룩한 행위였다. 마치 경전을 암송하는 구도자처럼 말이다. 아이들이 꼭 암송했으면 싶은 시가 몇 편 있는데 그중에 정현종 시인의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도 그중 한 편이다.“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정현종, 그래 살아봐야지/ 너도 나도 공이 되어/ 떨어져도 튀는 공이 되어// 살아봐야지/ 쓰러지는 법이 없는 둥근/ 공처럼, 탄력의 나라의/ 왕자처럼// 가볍게 떠올라야지/ 곧 움직일 준비 되어 있는 꼴/ 둥근 공이 되어// 옳지 최선의 꼴/ 지금의 네 모습처럼/ 떨어져도 튀어 오르는 공/ 쓰러지는 법이 없는 공이 되어.”시 암송을 학급에서 실천하려던 어떤 교사는 일부 학부모의 민원(?)에 시달려야 했다. 이유인즉슨, 안 그래도 외워야 할 게 너무 많은데 아이에게 또 다른 부담을 준다는 것이다. 암기는 하면 할수록 질린다. 시험 끝나면 뒤도 안 돌아보고 갖다 버리는 문제집 같은 것이다. 암송은 하면 할수록 가슴이 벅차오른다. 아이의 영혼에 인류 대대로 전해 내려온 언어와 문화의 에센스가 그득 차오른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을 수 없다. 열정을 가진 교사가 아이들의 가슴에 뜨거운 불꽃을 옮긴다.교사로 근무하면서 아이들과 시 암송을 하고 매일 아침 글기지개를 쓰고, 매주 주제를 정해 시를 쓰고, 그림책을 읽어주고, 시 암송 축제를 열 수 있었던 에너지는 ‘그저 그러는 게 좋아서!’였다. 서울 동도중 학생들은 시 암송 수행평가 때문에 당장은 애를 먹겠지만 훗날 시 암송 덕분에 웃는 날이 분명 있을 것이다.

2019-08-04

수도산에게 미안하다

김도형 아시아퍼시픽해양문화연구원 이사높아야만 산이 아니다. 수려해야만 산이 아니다. 도심에서 멀리 떨어져야만 산이 아니다. 낮은 산도 있고, 밋밋한 산도 있고, 도심 깊숙이 들어와 있는 산도 있다.영남의 소금강(小金剛)이라 불리는 내연산, 금세라도 날개를 활짝 펼치고 하늘로 날아오를 듯한 비학산, 원효와 자장, 혜공 등 고승들의 재미난 옛이야기를 품고 있는 운제산, 그리고 동대산, 도음산, 천마산, 봉좌산, 형산 등 포항에는 크고 작은 산들이 은은히 펼쳐져 있다. 이 산들과 이어져 도심에는 수도산, 학산, 양학산 같은 낮은 산들이 나지막이 엎드려 있다. 도심의 낮은 산들은 도심 밖 높은 산들보다 사람들과 더 친숙하기 마련이다.“사람들이 서로 미워서 잡아죽일 듯 / 이빨을 갈고 손톱을 세우다가도 / 칡넝쿨처럼 머루넝쿨처럼 감기고 어우러지는 / 사람사는 재미는 낮은 산만이 안다 / 사람이 다 크고 잘난 것만이 아니듯 / 다 외치며 우뚝 서 있는 것이 아니듯 / 산이라 해서 모두 크고 높은 것은 아니다 / 모두 흰 구름을 겨드랑이에 끼고 / 어깨로 바람 맞받아치며 사는 것은 아니다” - 신경림 ‘산에 대하여’중에서포항사람들의 가장 친근한 벗은 수도산이다. 산이라 하기에 겸연쩍은, 마을 뒷동산 같은 곳이다. 수도산은 원도심인 중앙동과 덕수동을 비롯해 우창동, 용흥동 등에 두루두루 걸쳐져 있다. 원래 백산(白山)이라 불렀으나, 조선 세조의 왕위 찬탈에 항거한 모갈(茅葛)거사가 은둔하며 곡기를 끊고 순절한 후부터 모갈산이라 불렀다. 일제 강점기에 상수도를 시설할 때 배수지(配水池)를 이 산정에 설치한 연유로 수도산이라 했고, 해지는 서쪽에 있다 하여 서산이라 부르기도 한다.수도산에는 수많은 추억이 무늬져 있다. 포항사람 치고 이 산에 추억 한 자락 묻어두지 않은 사람이 없다. 산책로가 되기도 하고, 운동장소가 되기고 하고, 백일장과 사생대회의 마당이 되기도 하고, 은밀한 사랑의 장소가 되기도 한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수도산 밑자락 철로에도 수많은 사람들의 애틋한 사연이 묻혀 있다.이 산은 그런 까닭에 늙은 어머니의 가슴처럼 편안하고 아련하다. 왠지 마음이 허전한 날이면 이 산에 올라 멀리 호미곶에서부터 영일만, 제철공장, 동빈내항, 도심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영일만을 천천히 빠져나가는 배 한 척이 눈에 띄면 멀리 길 떠나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떠올리게 된다.포항의 작가 손춘익의 대표작인 ‘어린 떠돌이’에서 서산 밑 가난한 동네에 사는 주인공도 무시로 수도산에 올라 영일만을 내려다본다.“나는 그 옹달샘 곁에 오도카니 앉아 먼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가없이 넓은 바다에는 흰 돛단배가 서너 척 한가롭게 떠간다. 그러고 보니 그곳은 워낙 내 자리였다. 어느 날이고 틈만 나면 그곳에서 살다시피 했다. 기쁘면 기쁜 대로 또 슬프면 슬픈 대로 나는 으레 그곳을 찾아 하염없이 먼 바다를 바라보곤 했다. 한 마리 외로운 짐승처럼.”작품 속 옹달샘은 서산, 곧 수도산에 있다. 그렇다. 수도산에 올라 영일만을 물끄러미, 하염없이 바라보는 것, 그것은 그 자체로 가장 포항다운 풍경의 하나이다.지난 2013년 봄날의 큰 산불은 수도산에 깊은 생채기를 남겼다. 자연의 복원력 덕분에 산은 원래 모습을 되찾고 있지만 상처는 곳곳에 남아 있다. 굳이 산불 후유증을 떠나서라도 수도산은 방치돼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시민들의 추억과 그리움, 꿈이 아로새겨져 있는, 늙은 어머니 같은 저 키 낮은 산은 그렇게 상처를 안고도 말없이 도심을, 영일만을 내려다보고 있다. 이제 그 품속에서 자란 사람들이 저 산을 정성으로 보살펴야 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2019-07-28

앞선 출발(head start)

김현욱 시인지난주 포항교육청 영재교육원 초언어반 학생들과 ‘내가 뽑은 신문 기사 원! 투! 쓰리!’ 활동을 했다. 방법은 간단하다. 30분 동안 각자 구해 온 신문을 꼼꼼하게 읽는다. 읽다가 끌리는 기사가 있으면 체크를 해둔다. 신문을 다 읽은 후 체크해 둔 기사를 가위로 오린다. 스크랩한 신문 기사 중 내 성향과 관심사를 충족하는 기사 3개를 고른다. 4절지에 ‘내가 뽑은 신문 기사 원! 투! 쓰리!’라고 제목을 쓰고, 그 아래 보기 좋게 기사를 배치하고 풀로 붙인다. 그 기사를 뽑은 이유나 소감을 빈 곳에 간략하게 적는다. 돌아가면서 ‘내가 뽑은 신문 기사 원! 투! 쓰리!’를 친구들에게 발표한다.학생들이 가져온 신문은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경향신문, 매일경제신문, 한겨레신문, 경북매일신문, 경북일보, 어린이동아 등으로 다양했다. 그중에 가장 많았던 것은 보수 성향의 조선일보였다.학생들에게 손석춘 선생의 ‘신문 읽기의 혁명’(2015)이라는 책을 소개하면서 말했다.“보수성향의 신문만을, 진보성향의 신문만을 오랫동안 구독한 사람은 각각의 신문이 제시하는 사고의 틀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갇히게 된다. 낙숫물이 바위에 구멍을 내는 이치다. 일례로, 우리는 이스라엘과 아랍 중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친이스라엘 성향을 갖고 있다. 세계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유태인과 서방의 언론은 아랍권에 비해 서로 친화적이다. 서방의 언론이 제공하는 친이스라엘 성향의 기사들이 국내에 그대로 소개되면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세뇌가 된 것이다.”‘내가 뽑은 신문 기사 원! 투! 쓰리!’ 활동을 하고 난 후 학생들에게 소감을 물었다.학생들은 신문 읽기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재미있었다고 했다. 교과서와 문제집, 학습지에 익숙한 학생들에게 신문은 새로운 관점을 갖게 한다. 서양에서는 신문 읽기 능력을 ‘앞선 출발(head start)’이라고 한다. 어릴 때부터 신문 읽기 습관을 들이면 다양한 배경지식과 세상을 보는 눈을 기를 수 있다.한국직업능력개발원에서 11년간 ‘신문 독서 읽기와 학업 성취도 및 취업’을 조사했다.2004년 당시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일반계 및 전문계) 4천 명을 대상으로 벌인 결과다. 신문을 구독하는 가정의 고등학생이 구독하지 않은 가정의 학생들보다 수능에서 과목별로 6∼8점이나 높았다. ‘300인 이상의 대기업과 공기업·외국계 기업의 정규직’의 취업률도 신문을 구독한 고등학생이 32.2%, 구독하지 않은 고등학생은 26.5%였다. 월평균 임금도 신문을 구독하는 고등학생이 10만 원 많았다. 고전·문학과 같은 인문학 서적을 많이 읽은 고등학생의 수능 점수가 높았고, 독서량이 같을 때는 신문 구독 고등학생의 수능 점수가 더 높은 것으로 나왔다.신문 활용 교육(NIE)이 학교 현장에서 더욱 활발해져야 한다.‘내가 뽑은 신문 기사 원! 투! 쓰리!’ 신문 활용 수업을 주 2∼3회 정도는 지속해야 비판적, 창의적 사고력을 키울 수 있다. 무엇보다 학생들이 신문 읽기를 재미있어 해야 한다. 몰입은 ‘재미’를 딛고 일어선다. 신문 읽기가 재미있고 습관이 되기 시작하면 신문의 편집과 성향, 이면(裏面)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그때 비로소 비판적, 입체적 신문 읽기를 할 수 있다. 특정 신문의 편집을 읽을 수 있다. 정치, 경제, 사회, 국제 정세의 관계와 이면을 다양한 관점에서 살펴 볼 수 있다.신문 읽기는 학생들의 학업성취도 향상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과 세상을 바로 보고, 더 나은 인생을 선택할 수 있는 튼튼한 토대가 된다. 투자 대비 수익률이 가장 높은 인생의 주식은 바로 ‘신문 구독’이다. 2만원도 채 안 되는 돈으로 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인생 공부가 바로 ‘신문 읽기’인 것이다.

2019-07-21

비경쟁 독서교육

김현욱 시인독서 교육의 목표는 평생 독자를 기르는 것이다. 한 학기 한 권 읽기의 목표도 학생들이 독서를 즐기는 평생 독자로 자라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다.하지만 대한민국 국민의 독서 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평생 독자를 기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짐작하게 된다. 초등 저학년은 문턱이 닳도록 도서관을 드나들지만, 고학년이 되면 발길은 뚝 끊긴다. 중·고등학교를 거쳐 성인이 되면 독서율은 급격하게 감소한다. 입시 지옥을 거치며 책은 거들떠보기도 싫어지는 것이다.2018년 기준, 세계 독서율 1위인 핀란드의 대표적인 독서교육은 자녀가 어릴 때부터 부모가 책을 읽어주는 것이다. 학교에서는 교사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준다. 공공 도서관에는 연령별, 주제별 다양한 책 읽어주기 프로그램이 쉴 새 없이 열린다. 이는 핀란드가 독서와 독서 동기를 촉진하는 내재적 동기 부여를 성인과 아이들에게 잘하고 있다는 뜻이다.캠번은 언어 학습의 조건 중에 학생들을 독서에 참여시키는 필수 요소로 ‘몰입’과 ‘시범’을 들었다. ‘기대, 책임, 사용, 유사성, 반응’도 간접 조건에 속한다.이는 ‘보상’, ‘경쟁’, ‘효용’ 등과 같은 외적 동기 부여가 아니라 내재적 동기이기 때문에 훨씬 더 효과적이고 지속적이다. ‘몰입’, ‘시범’ 같은 내재적 동기 부여는 독서에 대한 학생들의 긍정적인 태도를 고양시킨다. 무엇보다 독서교육의 궁극적인 목표인 ‘평생 독자’ 양성에 가장 효과적이다.안타깝게도 수많은 한국의 교사들은 새 학년이 되면 어김없이 교실 환경판에 독서오름길이나 독서인증제, 독서사다리 같은 ‘경쟁’과 ‘보상’의 외적 동기를 이용한다. 독서 지도를 위해 외적 동기인 ‘보상’, 다른 학생과의 ‘경쟁’, 독서의 ‘효용성’을 강조하는 것이다.굿과 브로피(Good, Brophy·1987)는 “보상은 수행의 질보다는 노력의 수준을 자극한 데 더욱 효과적”이라며, “보상은 매력적이거나 흥미로운 과업보다는 지루하거나 불쾌한 작업에 더 사용된다”고 지적했다.지루하거나 불쾌한 작업에 효과적인 것이 바로 보상이다. 아울러, ‘보상’은 학생들의 개인차를 고려해야 한다.‘경쟁’은 학교에서 널리, 오랫동안, 강력하게 쓰였다. 경쟁 요소를 도입한 독서 프로그램, 이를테면, 독서 골든벨, 독서 토론대회 같은 프로그램은 ‘평생 독자’를 기르려는 독서교육의 목표와는 방향이 다르다. 보여주기 행사, 보도 자료용 행사로 남을 가능성이 많고 사실 그래왔다. 경쟁은 반드시 승자와 패자를 만든다. 입시 경쟁으로 학교가 지옥이라는 학생들에게 독서마저도 경쟁하게 만드는 일은 참으로 어리석고 비인간적인 짓이다. 다행스럽게도 최근에는 학교 안팎에서 비경쟁 독서교육이 회자되고 있다.‘보상’, ‘경쟁’보다는 책 읽는 교실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독서 동기를 높이는 첫 걸음이다. 교사는 인내심을 가지고 편안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교실 분위기 조성에 힘써야 한다.핀란드의 독서교육은 교육부나 독서단체에서 주도하지 않는다. 핀란드의 부모는 자녀가 어릴 때부터 불문율처럼 책을 읽어주고 책과 가까이 지내도록 배려한다. 교사는 교실에서 활발하게 책을 읽어주고 편안하게 책을 읽을 시간과 환경을 제공한다. 공공 도서관은 부모와 아이들이 다양한 독서프로그램에 참여하도록 유도하고 지원한다.올 초 OO 공공도서관에서 모집한 저학년 독서회(책 읽어주기 프로그램) 모집 정원은 15명이었다. 인터넷 접수 10초 만에 15명 접수가 완료됐다. 대기자가 속출했고 인터넷이 다운됐다. 그만큼 독서프로그램에 대한 수요가 많다는 뜻이다. 일회성, 보여주기 식 행사가 아닌 학부모와 아이들이 상호 소통하는 유기적인 독서 프로그램이 더 많아져야 한다. 학교 도서관은 매년 가을 무렵에 독서행사(독서주간)를 연다. 17년 동안 봐 왔지만, 시기나 내용이 천편일률이다. 공공도서관이든 학교 도서관이든 이제 변해야 할 때다.

2019-07-07

아리,랑

김현욱 시인“조선인들에게 아리랑은 쌀과 같은 존재로 언제 어딜 가도 들을 수 있습니다. 조선인들은 즉흥곡의 명수입니다. 완성된 곡이나 음계 없이도 노래를 아주 잘 합니다.”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푸른 눈의 미국인 선교사, 호머 헐버트(1863∼1949)의 말이다. 헐버트는 1896년 2월, 영문 월간지 ‘한국소식’에 문경아리랑을 서양음계로 처음 채보해 공개했다.아리랑은 출처도 기원도 어원도 불분명하지만, 남과 북을 통틀어 모두 60여 종 3천600수가 전한다. 그중에 정선아리랑과 밀양아리랑, 진도아리랑을 3대 아리랑으로 친다. 정선아리랑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나를 넘겨주오.”, 밀양아리랑은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고개로 날 넘겨주소.”, 진도아리랑은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 응 응 아라리가 났네.” 후렴구가 반복된다.정선아리랑은 강원도 대표 민요로 ‘아라리’라고도 불리며, 메나리조 가락의 애잔한 후렴구가 특징이다. 밀양아리랑은 경상남도 지방에서 전승되며 빠르고 경쾌한 세마치 장단이 특징이다. 진도아리랑은 전라남도 일원에서 불리며 육자배기 토리로 기교성이 뛰어나다. 이처럼 아리랑은 각 지역마다 장단과 구성음이 다르지만, 후렴구는 기억하기 쉽다. 아리랑은 두 줄 시에 두 줄 후렴만 붙이면 어떤 가사든 아리랑이 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아리랑과 관련된 해프닝 하나. 대학 시절 국악 수업 중에 장구 치면서 정선아리랑을 부르는 실기평가가 있었다. 학점 F를 서슴없이 날리는 괴짜 국악 교수라 다들 긴장했는데 나 역시도 마른 침을 삼키며 장구채를 집어 들고 정선아리랑을 부르려 했다. 그런데 내 입에서 흘러나온 것은 어이없게도 밀양아리랑이었다. 교수가 황당한 표정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던 게 아직도 기억난다.‘매천야록’에 따르면 고종 때 궁궐에서 아리랑을 불렀다는 기록이 나온다. 각 지역의 아리랑은 경복궁 중수 작업 동안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전국 각지에서 부역하러 온 민초들이 가족과 고향을 그리워하며 아리랑을 불렀던 것이다. 일제 강점기 조선의 영화감독이자 배우였던 나운규(1902∼1937)는 영화 ‘아리랑’을 제작했다. 1926년 단성사에서 첫 상영을 했는데, ‘아리랑’은 일제강점기 항일정신과 민족의 애환을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아리랑’의 주제가로 쓰였던 아리랑은 본조아리랑이었다. 강원도 지역의 ‘자진아라리’의 곡조를 경기도식 ‘경토리’로 바꿔 표현한 것이다. 서양 음악을 공부했던 김영환이 서양식 오음계로 아리랑의 곡조를 편곡했다. 오늘날 가장 대중적으로 불리는 아리랑이다. 아리랑의 ‘아리’는 과연 무슨 뜻일까? 성기완 시인이 한겨레 신문(2016년 5월 21일)에 발표한 아리랑의 ‘아리’ 해석 시도가 이채롭다. 성기완 시인은 러시아 바이칼 호수의 알혼 섬, 몽골 초원, 백두대간 등지에 발견된 여러 문헌에서 ‘아리’의 기원을 찾았다. 광개토대왕릉비에 한강은 ‘아리수(阿利水)’라고 적혀 있다. ‘아리’는 ‘크다’는 뜻의 옛 우리말이라고 한다. 몽골어로 ‘아리’는 ‘깨끗하고 성스러운’이라는 뜻이란다. 성기완 시인은 ‘아리땁다’, ‘아리다’, ‘아름다움’도 ‘아리’의 파생적 쓰임이라고 봤다. 아리랑의 ‘아리’는 ‘깨끗하고, 성스럽고, 존재하고, 아름답고, 아프고(스리고), 알고, 깨닫고, 느낀다’라는 뜻을 지닌 실로 어마어마한 말이다. 오늘날 아리랑은 응원가부터 합창, 관현악 등으로 다양하게 연주되고 있다. 아리랑은 ‘아리’가 가진 넓고 깊은 뜻처럼 변화무쌍한 변주와 편곡이 가능한 열린 노래이다.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현재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 수는 약 250만 명, 2028년에는 50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추산한다. 단일이 아닌 다문화 대한민국에서 ‘아리랑’은 또 어떤 모습으로 우리를 아우르고 달래줄까?

2019-06-30

그 많던 정어리는 어디로 갔을까

김도형 아시아퍼시픽해양문화연구원 이사물 반 정어리 반이었지.지역의 한 원로는 일제강점기 포항을 회고하다가 포항 앞바다에 정어리가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며 눈에 힘을 주며 말했다. 정어리는 기름이 많은 생선이어서 기름을 짜내 산업용이나 군사용으로 많이 썼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임진왜란 때면 모를까, 생선 기름을 근대의 대규모 전쟁에 썼다는 얘기는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았고 한동안 잊어버렸다.한 학자의 소개로 근래 이기복의 논문을 읽고 난 후 망각의 바다 저편으로 사라졌던 정어리는 암청색 몸을 빛내며 뇌리속으로 들어왔다. ‘경상북도수산진흥공진회(1935년)와 경북 수산업의 동향’(《역사와 경계》 2009년 12월)이라는 제목의 논문이다. 공진회(共進會)는 품평을 겸한 박람회를 뜻한다. 이 논문은 1935년 당시 수산업을 중심으로 포항에서 전개되는 역동적인 상황을 묘파하고 있다.“10일간 열린 이 수산공진회는 출품인원 1천884명(3천46점), 관람인원 5만9천642명으로 포항 전역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박람회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녔던 1935년 경상북도수산진흥공진회는‘수산’이라는 산업적 주제, ‘포항’이라는 지역적 제한성 때문에 연구사적으로 간과되거나 무시되었다. 필자는 그 산업적 주제, 지역적 제한성이 역설적으로 관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논문의 머리말은 호기심을 자극하고도 남았다. 대체 1935년 포항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1935년에 이르러 수산제조품 수요가 급증해 일본 당국은 산업적인 대응이 필요했고, 이를 배경으로 일본인들의 주도로 대규모 공진회가 개최된 것이다. 당연히 일본인들의 잔치가 된 공진회의 수상품 목록을 보면, 식용으로 청어와 고등어, 비식용으로 정어리 기름과 비료가 다수를 차지했고, 통조림 제조 등에 큰 비중을 두었다. 특히 이 수산제조품은 일본·만주 등으로 보내기에 유리했다고 필자는 밝히고 있다. 요컨대 경북수산공진회는 포항을 중심으로 경북지역 수산물의 수탈을 극대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열렸던 것이다.그제서야 나는 원로의 얘기에 머리를 끄덕였다. 20세기 초반 정어리 기름은 산업용, 군사용으로 폭넓게 활용됐다. 특히 세계대전의 주범인 일본과 독일에게 정어리 기름은 아주 요긴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세계 최고의 정어리 어획량을 자랑하던 노르웨이를 점령한 독일군은 막대한 양의 노르웨이산 정어리를 군용 통조림과 군수용 기름으로 활용했다고 한다. 동해안에서 풍년을 이뤘던 정어리도 노르웨이산 정어리와 같은 운명이었다. 포항과 교류가 많았던 함경북도 청진이 정어리의 대량 어획과 가공을 기반으로 1944년 인구(18만4천여 명) 규모에서 조선 4위의 도시로 팽창한 것도 흥미로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일제강점기, 동해는 일본의 내해(內海)였고, 식민의 바다였다. 호미곶등대를 포함해 일제강점기 한반도 연안에 점점이 세워진 등대는 일본이 바다를 무대로 수탈을 손쉽게 하기 위한 식민지배의 인프라이다. 조선사람의 운명처럼 동해안의 어류도 일본의 손아귀에 있었다. 정어리처럼 활용도가 높은 어류는 남획을 피할 수 없었고, 독도 강치의 멸종은 그 극적인 사례다.포항은 한적한 어촌이었다가 제철공장이 들어오면서 비약적인 성장을 하게 되었다는 얘기를 간혹 듣는다. 일면의 사실일 뿐, 포항 역사의 깊이를 모르고 하는 얘기이다. 비록 수탈의 아픈 역사이기는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바다를 배경으로 역동적인 움직임이 있었고, 그것은 지금까지 이어지며 생생한 역사의 파노라마를 만들어내고 있다. 넓은 들판과 산맥, 형산강과 영일만을 배경으로 주옥 같은 얘기가 펼쳐지는 천일야화의 지역이 포항이다. 시 승격 70주년, 그 빛나는 구슬과 옥을 솜씨 있게 꿰는 안목과 정성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이다.

2019-06-23

태극기 그리는 방법

김현욱 시인2015년 7월 4일, 국세공무원교육원에서 9급 세무직 공무원 면접이 치러졌다. 일부 면접관들이 응시생들에게 ‘애국가 4절을 불러보라’, ‘국기에 대한 맹세를 외워봐라’, ‘태극기 사괘가 무엇이냐’ 등의 질문을 했다고 한다. 지금까지 전해진 태극기 중 가장 오래된 태극기가 무엇이냐는 질문이 없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참고로 가장 오래된 태극기는 ‘데니 태극기’다. 구한말 고종이 미국인 외교관 데니에게 하사한 것이다. 태극 문양이 조금 다르지만 색과 사괘까지 지금의 태극기와 거의 흡사하다.당시 공무원시험 정보를 나누는 인터넷 카페에서는 대체로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 많았다. 전 박근혜 대통령이 영화 ‘국제시장’ 속 국기 하강식 장면을 두고 ‘애국심’을 얘기했고, 당시 황교안 국무총리는 법무부 장관 시절 ‘애국가 4절을 완창’ 못하는 신임 검사들에게 ‘나라 사랑의 출발은 애국가’라고 질타했던 것이 불과 몇 년 전이다. 인사혁신처에서는 “스펙 위주가 아닌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 크고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실현하겠다는 의지와 능력을 갖춘 인재를 선별해 뽑겠다”고 공언하면서 “적어도 공무원이 되려는 이에게 국가에 대한 충성심, 국민에 대한 봉사의식을 환기시킬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하긴, 2016년에 성인문해학교에 입학했던 예순의 어머니와 작년에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한 딸아이가 동시에 ‘태극기 그리기’와 ‘애국가 4절까지 외우기’ 숙제를 가져왔다. 한국에서 ‘배움의 출발은 애국가와 태극기’인 것이다. 일제 강점기 때 ‘나라 없는 설움’을 당한 선조들에게 태극기와 애국가는 가슴 뭉클한 조국의 상징이고 울림이었을 것이다. 태극기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1882년 일본에서 발행한 ‘시사신보’에서 찾을 수 있다. 일본에 수신사로 갔던 박영효는 고종의 명을 받아 태극기를 그렸는데, 그가 묵었던 숙소 고베의 니시무라 여관에 태극기를 걸어놓았다. 그것을 일본인 기자가 그려 신문에 게재한 것이 최초의 기록이다. 애석하게도 당시 박영효가 그린 태극기는 국내에 없다. 그것을 2008년 영국의 국립문서보관소에서 발견한 한철호 교수가 국내에 소개했다. 태극이 회전하는 방향과 모양, 사괘의 색이 푸른색에 가까운 것이 지금과는 조금 다르다.고종이 태극기의 존재를 공표한 것은 1883년이다. 태극기를 널리 알리기 위해 우표를 활용했다. 1884년에 나온 최초의 우표인 ‘문위우표’에는 태극 문양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다. 태극기는 중심에 위치한 원형의 ‘태극’에서부터 시작된다. ‘태극’이라는 말은 ‘주역’에 나온다. 하늘과 땅이 생기기 이전의 상태를 ‘태극’이라고 한다. ‘태극’의 기원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지만, 형태와 의미에서 중국과는 다르다. 중국의 ‘태극도설’에 나온 태극은 동그라미가 여러 개 있고, 반으로 갈라져서 흑백으로 나누어져 있다.전남 나주 복암리 고분군에서 ‘태극무늬 나무상자’가 발견됐다. 관청에서 공문서를 받고 보낼 때 봉투처럼 사용했던 것이다. 7세기 초 백제 사비시대 때 것으로 추정되는데 중국 태극의 최초 기록보다 무려 400년이나 앞선다. 신라에서는 태극이 세 갈래로 갈라진 삼태극 모양을 많이 그렸다. 경주 미추왕릉에서 발견된 보검과 감은사지 장대석에 새겨진 게 삼태극이다. 한국 최초의 주자학자 안향을 기리기 위해 세운 합호서원의 외삼문에 삼태극이 그려져 있다.태극기에서 하나의 괘는 세 개의 효가 모인 것이다. 하나로 이어진 것을 양효(陽爻), 나눠진 것을 음효(陰爻)라고 한다. 우리는 대자연의 원리를 담은 건곤이감(乾坤離坎)의 사괘를 사용한다. 세 개의 양효가 있는 ‘건’은 하늘, 세 개의 음효가 있는 ‘곤’은 땅, 가운데 하나의 음효가 있는 ‘이’는 불, 가운데 양효가 하나 있는 ‘감’은 물을 상징한다. 태극기를 그릴 때 ‘건곤’, 하늘과 땅이 만나는 대각선의 중심에서부터 그림을 시작해야 한다. 그 중심점을 기준으로 태극과 건, 곤을 그려야 한다. 오랜만에 태극기를 한 번 그려보면 어떨까?

2019-06-16

고르디우스의 매듭

김병래수필가·시조시인고대 소아시아의 프리지아라는 도시국가에는 왕이 없었는데, 이륜마차를 타고 오는 첫 번째 사람이 왕이 될 거라는 신탁이 있었다. 어느 날 농부의 아들이었던 고르디우스가 이륜마차를 타고 나타나자 사람들은 그가 바로 신탁이 말하는 사람이라고 믿고 왕으로 추대했다. 왕이 된 고르디우스는 자신이 타고 온 마차를 신전에 바치고 복잡하게 매듭을 지어 신전기둥에 묶어두었다. 그것을 본 사제가 신탁을 받아,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푸는 자가 아시아 전역을 통치하는 지배자가 되리라”고 예언을 했다. 나중에 알렉산더 대왕이 아시아 원정길에 그곳을 지나다가 고르디우스의 매듭에 관한 얘기를 듣고는 자신이 풀어보려고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자 단칼에 매듭을 베어버렸다. 중국에도 이와 비슷한 고사가 있다. 남북조(南北朝)시대 북제(北齊)의 창시자 고환(高歡)은 아들을 여럿 두고 있었는데, 이 아들들의 재주를 시험해 보고자 한 자리에 불러서 뒤얽힌 삼실 한 뭉치씩을 나눠주고 풀어보라고 하였다. 다른 아들들은 모두 엉킨 실타래를 풀어보려고 진땀을 흘리고 있는데, 양(洋)이라는 아들은 잘 드는 칼 한 자루를 들고 와서는 헝클어진 삼실을 싹둑 잘라버렸다. 쾌도난마(快刀亂麻)란 고사성어가 생겨난 유래다.두 이야기가 다 힘의 논리로 문제를 해결한 예가 되겠지만, 한편으로는 발상의 전환을 의미하기도 한다. 엉클어진 실타래를 풀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풀려고 하면 할수록 오히려 더 엉클어지기 마련이어서 더 이상 풀리지 않는 곳에서는 과감하게 잘라버리는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을. 세계의 골칫거리가 되고 있는 북핵문제도 마찬가지다. 그 매듭을 풀어보겠다고 제법 호기롭게 출발한 트럼프와 문제인 정권이 뭔가 실마리를 찾는 듯하더니, 하노이회담 결렬과 최근의 미사일 도발로 다시 원점으로 돌려진 형국이다. 이제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생각을 하게 된다. 북한의 김정은이 과연 핵을 포기할 것인지, 아니라면 그가 핵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것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우선되지 않고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가 없을 것이다. 만약 김정은이 핵무기를 완전히 포기하기만 한다면, 미국과 유엔의 대북제재가 풀릴 것이고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원조와 지원이 있을 것이다. 거기다가 개혁과 개방의 길로 나간다면 머지않아 세계 최빈국의 굴레를 벗어나고 기아에 허덕이는 인민들의 삶은 풍족해질 것이다. 그런데 왜 김정은 한사코 그것을 가로막는가. 그 까닭을 먼저 알고, 그 사실을 전제로 하지 않고는 대화든 협상이든 다 속임수이고 부질없는 짓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북조선 70년 역사는 철저하게 김일성 일족의, 김일성 일족에 의한, 김일성 일족을 위한 역사였다. 유엔에도 가입을 한 국가의 형식을 갖추었다고는 하나 내용상으로는 김일성 일족을 신격화한 사이비종교집단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그것을 공고히 하려고 전 인민을 유아기 때부터 철저하고도 집요한 세뇌교육으로 모조리 꼭두각시 맹신도로 만들어 놓았다. 북조선의 인민이란 오로지 당과 수령을 위해 목숨 바쳐 충성하는 것만이 존재 이유가 되는 것이다.김정은이 죽어도 핵을 포기하지 못하는 까닭이 바로 거기에 있다. 신격화된 백두혈통의 절대존엄에 대한 회의나 불신은 곧 세습독재체제의 붕괴를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동시에 햇빛정책이니 달빛정책이니 하는 우호적인 정책이 먹혀들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핵무기의 폐기는 물론 남북통일 문제도 김정은 체제가 건재하는 한 엉클어진 삼실뭉치요 고르디우스의 매듭일 수밖에 없다. 대화니 타협이니 하는 상식적인 방법으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다. 기아에 허덕이는 북녘 동포들을 구하고 통일을 앞당기기 위해 김일성 일족의 세습체제를 무너뜨릴 쾌도난마의 해결책은 과연 무엇일까.

2019-06-02

지역의 근본과 미래는 어디에 있는가?

김도형 아시아퍼시픽해양문화연구원 이사지난 20일 부산 영도구에 있는 국립해양박물관에서 흥미로운 사진 전시회가 열렸다. 해양 전문잡지인 ‘The OCEAN’에 게재된 사진 중 일부를 선별해 기획 사진전 ‘ONE WORLD ONE OCEAN’을 개최한 것이다. 국립해양박물관과 잡지 발간 주체인 한국해양수산개발원이 공동 주최한 이번 사진전에는 △어업, 그리고 바다음식 △해양강국으로 가는 길 △해양문화 탐방의 바닷길 △신북방·신남방 바다길 등 4가지 주제에 70여 점이 선을 보였다.전 세계 푸른 바다에서 역동적으로 펼쳐지는 다양한 삶과 문화, 풍경을 담은 사진은 관람객들에게 색다른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다.‘해양 전문 융·복합 미디어와 오션 소프트파워의 창출’을 주제로 한 사진전 오프닝 토크쇼도 잡지 편집위원들과 관객들 간에 격의 없는 소통의 장이 됐다.종이 잡지는 사멸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디지털 문명이 도래하면서 수많은 종이 잡지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2015년 1월 창간된 ‘The OCEAN’이 11호까지 발간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이채롭다. 비용 등의 부담 때문에 반년간으로 발간된다는 아쉬움이 있지만, 해양 융·복합 플랫폼으로서 그 소임을 충실히 감당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The OCEAN’은 우리 사회에서 그 가치에 비해 조명을 충분히 받지 못하고 있는 오션 소프트파워 담론을 생산, 전파한다는 데 종요로운 의미가 있다. ‘바다의 나라 포르투갈’이 특집으로 실린 11호부터는 중요 기사 몇 편을 추려 해양수산부 홍보실과 함께 유튜브 영상 등으로 제작하게 된다. 이제 ‘The OCEAN’도 시대 흐름에 발맞춰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확장을 도모하며 독자들과의 접촉면을 넓히게 된 것이다.시선을 지역으로 돌려보자. 포항은 시 승격 70주년을 맞이했다. 70주년이라는 의미 있는 나이테가 만들어지면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고, 가야 할 길을 내다보는 사색과 숙고가 필요하다. ‘지방의 소멸’이라는 유령이 대한민국을 배회하고 있다. 거의 모든 대한민국 지방 도시가 존립을 걱정해야 하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포항도 예외라고 할 수 없다. 70주년을 기념하는 축포도 필요하지만, 지방에 드리운 짙은 그림자를 거둬내고 보다 나은 도시의 미래 청사진을 시민들이 공유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포항의 근본은 바다’라는 한 원로의 말이 떠오른다. 1970년대 초반 포항에 제철공장이 건립되기 전에 포항의 주된 먹거리는 바다였다. 거친 파도와 거센 바람이 몰아치는 바다에서 사투를 벌이며 고래와 상어, 정어리와 고등어, 꽁치 등 숱한 어류를 거둬 올리고, 김과 미역 등을 채취해 살림을 꾸려 나갔다. 원양어선을 타고 망망대해로 나간 사람도 많이 있었다. 머구리는 사라졌지만 해녀들은 여전히 해안선 곳곳에서 자맥질을 하고 있다. 철강도시가 된 이후로도 수산업은 포항의 변함없는 정체성이자 경제의 활력소이다. 동해안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죽도 어시장이 그 생생한 현장이다. 미래 청사진은 근본을 떠나 만들 수 없다. 지역의 미래를 다층적·입체적으로 분석하고 전망해야 하겠지만, 204㎞의 해안선을 떠날 수 없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이런 맥락에서, 지역의 근본인 해양수산 담론을 지역 스스로 생산하고 전파할 때가 됐다. 네트워크를 통해 타 기관의 힘을 빌릴 수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지역의 핵심 담론은 지역 스스로 생산할 수 있는 역량과 환경을 갖춰야 한다.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지역의 대학과 기관, 매체가 힘을 모은다면 길은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다. 바다는 넓고 깊다. 무한한 잠재력을 품고 있는 보고이다. 그 잠재력을 얼마나 끌어 올리느냐에 지역의 미래가 걸려 있다. 그 길은 지역 스스로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시 승격 70주년, 지역의 근본과 미래가 바다임을 잊지 말자.

2019-05-26

아, 경험(aha experience)

김현욱 시인직장 선배가 한숨을 쉰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딸이 연기를 하겠다고 결심했단다. 대도시에 있는 연기학원에 딸을 데려갔다 데려와야 한단다. 듣고 보니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중학교 때 연극을 시작했는데 몇 번 무대에 서고, 크고 작은 상을 받더니, 결국 이렇게 됐다.”선배는 고생도 고생이지만 하나밖에 없는 딸이 험한 가시밭길을 가려고 하는 게 안타까운 모양이었다. 나는 언젠가 읽은 매슬로우의 ‘절정경험’이 떠올랐다.“무대에서 절정경험을 했기 때문에 쉽게 포기안 할 겁니다. 원하는 대로 밀어주세요.”심리학자 아브라함 매슬로우는 절정경험을 “인간의 최상의 순간들, 삶에 있어서 가장 행복한 순간들, 황홀, 환희, 행복, 큰 기쁨 등의 경험들”이라고 말했다. 매슬로우는 이 짤막한 신비의 순간들을 자아실현의 경험으로 보았다. 왜냐하면, 그런 경험들은 삶을 가치 있게 만들고 사람들의 내적 분열, 사람 사이의 분열, 사람과 세계 간의 분열 등을 치유함으로써 삶을 정당화시키기 때문이다. 마르틴 루터는 하느님을 엄격한 존재로만 알았다. 성서를 다시 읽으면서 하느님은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자기도 모르게 “아!”하는 탄식을 질렀다고 한다. 이것을 ‘아! 경험(aha experience)’이라고 하는데, 루터의 ‘아! 경험’은 매슬로우의 ‘절정경험’처럼 인생에서 가장 큰 기쁨을 경험하는 일이다.필자는 중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 골방에 앉아서 첫 소설을 썼다. 200자 원고지 70매쯤 되는 엉성한 단편소설이었다. 태어나서 처음 써 본 소설이었고, 끝까지 써 본 소설이었다. 한 달 동안 원고지 앞에 앉아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고를 반복하며 알 수 없는 희열과 시간이 왜곡되는 경험을 했다.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 마지막 문장을 쓰고 소설에 마침표를 찍었을 때 느낀 기쁨과 성취감은 아직도 생생하다.고등학교 때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과 이문열의 ‘사람의 아들’, 박일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같은 책을 밤새워 읽다가 창으로 새벽이 밝아오는 것을 바라보며, 커다란 행복과 환희를 느끼곤 했다.유시민의 ‘공감필법’이란 책에도 루터의 ‘아! 경험’, 매슬로우의 ‘절정경험’과 상통하는 ‘결정적 순간!’이 나온다.“여러분은 혹시 그런 경험이 있으신가요? 책 읽다 말고, 도저히 계속 읽을 수가 없어서, 읽던 책을 가슴에 댄 채 ‘아’ 하고 한숨을 내쉬는 경험 말입니다. 여자분들이 보통 그렇게 하지요. 이런 순간을 자주 경험하셔야 합니다. 감정이 너무 강하게 일어나서, 그걸 가라앉히기 전까지는 텍스트를 더 읽어갈 수 없는 그런 순간을 누리자는 겁니다. 저는 이것이 공부와 독서의 ‘결정적 순간’이라 믿습니다. 남자들은 조금 다르게 행동하더군요. 책을 가슴에 붙이는 게 아니라 읽던 페이지가 아래로 향하게 엎어둡니다. 위를 보면서 ‘후’ 내쉰 다음, 창문을 열거나 마당엔 나가서 담배를 물어요. ‘끊어야 할 텐데…….’ 이러면서요. 그렇게 감정을 추스르고서는, ‘대박이야’ 이러면서 또 책을 봅니다. 바로 이거예요. ‘결정적 순간!’ 이런 순간을 체험하지 못하는 인생은 불행한 겁니다.”긍정심리학의 대표적인 연구자인 칙센트미하이 교수는 우리의 행동과 감정을 조절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우리 삶의 주인이 된 듯한 느낌을 경험할 수 있다고 했다. 칙센트미하이 교수는 그것을 ‘최적 경험’이라고 했는데 ‘아! 경험’, ‘절정경험’, ‘결정적 순간’과 같은 맥락이다.‘아! 경험’을 해보지 못한 사람은 불행하다. 학교와 학원을 쳇바퀴처럼 돌고 도는 우리 아이들은 언제 ‘아! 경험’을 해보나?

2019-05-19

오사자연(吾師自然)

류영재 포항예총 회장요즘은 아침마다 자동차를 뒤덮은 노란 송홧가루를 털어내는 일이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 송화는 곤충을 이용하여 수분하는 여느 꽃들과는 달리 풍매화인데, 바람이 일 걸 알고 꽃을 피우는지 꽃이 필 걸 알고 바람이 부는지는 모르나 솔 꽃이 한창인 시기에 부는 봄바람은 유별나게 극성스럽다. 이도 자연의 섭리일 것이다.한때 ‘금수저’라는 말이 유행했다. 부자 부모를 둔 덕으로 고생하지 않고 풍족하게 잘 먹고 잘 사는 계층을 이르는 말이다. 반대가 ‘흙수저’다. 바삐 사느라 한 번도 스스로 무슨 수저인가를 따져본 적은 없지만, 세간의 기준으로 보면 필자는 분명 흙수저다. 가난하였으나 안분지족하셨던 부모님 모습을 추억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한데 새삼 무슨 수저타령이겠는가마는 퇴직을 한 지금까지 노후를 위한 저축이 없으니 내심으로 약간은 걱정이 된다. 그래서 나름 궁리한 것이 전원생활이다. 도심이 지척이니 전원이라 말하기는 좀 민망하지만 어귀에 들어서면 개구리 울음소리가 제법 요란한 산자락 마을이니 전원임에 틀림없다. 그렇지만 여느 사람들처럼 공기 좋은 곳에서 여유롭게 노후를 즐기자는 의미로 선택한 전원생활이 결코 아니다. 집이 없던 시절에도 월세를 내는 작업실은 늘 따로 있었으니 집에 작업실을 두면 절약이 되겠다는 연구 끝에 결행한 것이다. 시골에 주택 겸 작업실을 소박하게 짓고 보니 아파트처럼 관리비를 따로 낼 필요도 없고, 작업실 월세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어서 일견 괜찮은 선택인 것같다. 그러나 만만치 않은 일 또한 한두 가지가 아니다.장단점을 제대로 파악하자면 적어도 사계절은 겪어봐야 될 것이다. 이사하고 이제 두 계절을 지났으니 아직은 많은 시행착오를 겪을 것이므로 속단하긴 어렵지만, 오래토록 문명의 그늘에서 살던 사람에게 자연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정도는 느낀다. 추운 날 아침이면 출근이 바쁜 시간에 차창에 붙은 성에를 제거해야하는 당혹스런 일도 있고, 거실의 창을 열면 신선한 공기와 함께 불청객인 벌레들도 함께 덤벼들기 일쑤다. 봄철이면 사방에 지천으로 피는 꽃들이 황홀경을 연출하지만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는 필자는 꽃피는 봄이 괴롭기도 하다. 환경의 변화에는 적응기간이 필요하다.사람 뿐 아니라 식물들의 몸살도 생각보다 심각하다. 아파트에서 함께 살던 식물들이 자연과 한 발 더 가까워지면서 오히려 시름시름 앓기도 하고, 심지어 때 아니게 잎을 내리더니 죽어버린 화분도 있다. 초임지의 제자가 선물한 작은 화분을 십여 년간 애지중지 키웠는데, 좋은 햇살을 보이려 이삼일 밖에 두었더니 잎을 내리고 시름시름 하여 다시 들여놓고 온갖 정성을 다해도 결국 안타깝게 죽고 말았다. 문명에 길들여진 생물에게 자연은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음이다. 이 모두가 자연의 가르침이다.햇살 좋은 날, 모처럼 가까운 곳에 있는 식물원을 찾았다. 오월의 식물원은 짙어지는 신록과 늦은 봄꽃이 대비를 이루어 장관이었다. 식물원 한켠에 걸린 현수막에 ‘오사자연…’이란 구절이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식물원의 새소리를 들으며 원장님께 물었다.“선생님, 까치가 색이 곱다고 길조로 알려져 있지만 곡식을 해치므로 해충을 잡아먹는 까마귀보다 해로운 새라는데 맞습니까?”“까치가 곡식을 먹으면 얼마나 먹는다고….” 즉각 대답하시며 중국에서 있었다는 일화를 얘기하셨다. 연속으로 큰 흉년이 들자 참새들이 곡식을 먹는다하여 대대적인 참새 소탕령이 내려졌고, 참새들이 사라지자 해충들이 기승을 부려서 농사가 더욱 황폐해지자 결국은 러시아에서 참새를 수입하는 소동이 있었다는 얘기다. 세상의 생명에는 다 존재이유가 있는 법이다.오사자연(吾師自然), 자연이연(自然而然)이라 하던가.

2019-05-12

‘운명’과 ‘기적’ 사이

서수백 대구가톨릭대 교수·한국어문학부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에게 한국어 공부가 어떠냐고 물으면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하는 말이 있다. “어렵지만 재미있어요”이다. 그렇다. 한국어는 어렵지만 재미있는 언어다.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어려워하는 이유 중 하나가 한국어는 비슷한 말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얻다’와 ‘받다’, ‘인간’과 ‘사람’, ‘모든’과 ‘온갖’, ‘놓다’와 ‘두다’, ‘달리다’와 ‘뛰다’, ‘한가하다’와 ‘여유롭다’, ‘바라보다’와 ‘쳐다보다’ 등등 수많은 유의어들을 구별하여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 외국인들에게는 복잡하고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한국어의 묘미에서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언어에 민감하고 섬세한지를 알 수 있다.한국어 단어 중 ‘운명’과 ‘기적’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두 단어의 명확한 의미 차이를 말하기가 쉽지 않다. ‘운명’이 ‘그렇게 되도록 정해져 있는 것’이라면 ‘기적’은 ‘그렇게 되리라고 예상치도 못하였던 것이 이루어진 것’이다. ‘운명’과 ‘기적’이 모두 ‘사람이 어찌할 수 없는 신의 섭리’라는 뜻이라면 두 단어는 유의성이 충분하다.이 세상에 ‘운명이나 기적 따위는 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생(生)에 ‘운명’의 가혹함과 ‘기적’의 짜릿함은 함께 존재하는 듯하다. 그래서 ‘사필귀정(事必歸正)’, ‘인과응보(因果應報)’, ‘전화위복(轉禍爲福)’이란 말도 우리의 운명 같은 인생, 기적 같은 인생에서 생겨난 말일 것이다. 삶에서 ‘운명 같은 일’은 곧 ‘기적 같은 일’이 될 때가 참으로 많은 듯하다.‘기적’은 대부분,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운명’으로 귀결되고 그것은 현실적인 결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러나 때때로 사람들은 감당할 수 없는 가혹한 현실을 ‘운명이었다’라고 단정해 버리기도 하고, 누구도 헤아리지 못하는 인내와 노력의 현실을 ‘기적이다’라고 그 가치를 평가절하하기도 한다.2002년 월드컵 축구대회 4강 진출은 ‘신화(神話)’라고 할 만큼 큰 ‘기적’이었다. 그러나 그 기적같은 결과는 히딩크 감독의 뛰어난 지략(智略)과 선수들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데 우리 스스로 한 목소리를 내었다. ‘한강의 기적’도 마찬가지다. 살고자 했던, 살리고자 했던 우리 모두의 힘이 있었던 것이다.얼마 전 치러진 창원 지역 ‘4·3 보궐 선거’는 또 한번 삶의 ‘운명 같은 일’, ‘기적 같은 일’을 생각하게 했다. 나는 정치적인 해석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창원 성산구는 고(故) 노회찬 의원의 지역구이기도 해서인지 왠지 관심이 더 갔다. 늦은 시간까지 박빙(薄氷)의 투표차를 지켜보다 가슴 졸이는 심리적 스트레스를 피해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4·3 보궐선거는 여야(與野)의 무승부 결과’라는 보도를 보았다. 박빙의 상황에서 역전(逆轉)이 일어난 것이다. 당락(當落)을 결정한 표차는 단 504표다. 선거 전부터 알려진 여론조사의 결과와 달랐다. 당선 결과에 대한 정의당 의원들의 세리머니(ceremony)가 여느 선거 때와는 달라 보였다.내 감정이 너무 이입되어서일까? 그들은 ‘기적’과 ‘운명’을 가슴 깊이 체감한 듯했다. 그리고 현실을 잘 살아가고자 하는 다짐도 보였다. ‘운명’과 ‘기적’ 속에 수많은 해석을 하며 깨닫고 다시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하였을 것이다.우리는 ‘운명’과 ‘기적’ 사이에서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그 속에 우리가 장담할 수 있는 ‘운명’이나 ‘기적’은 없다. ‘운명’과 ‘기적’이 ‘현실’의 반의어도 아니다. 때문에 현실을 살아가는 가운데 ‘운명’과 ‘기적’을 삶의 ‘핑계’나 ‘행운’쯤으로 여기며 그것으로 자신의 삶을 합리화해서는 안 될 것이다. 현실을 충실히 잘 살아낼 때 진정으로 ‘운명’과 ‘기적’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운명’과 ‘기적’의 체험이 우리를 날마다 살아가게 하는 힘인지도 모를 일이다.

2019-0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