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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구도심 재생 왜 필요한가?

▲ 안병국포항대학교 세무부동산계열 겸임교수 도심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성장하고 발전하는 인간의 생애 주기처럼 변화를 반복한다. 우리나라 지방도시의 구도심은 1970년대부터 시작된 주택공급 정책으로 택지개발 사업이 일반화된 가운데 경제적 논리에 따라 기존 도심이 아닌 주변녹지를 훼손해 개발됨으로써 쇠퇴를 거듭했다. 이로 인해 기존도심은 심각한 공동화현상이 있어났으며, 그나마 도심이 가지고 있던 전기, 통신 , 가스, 상하수도 등의 인프라마저 효율적으로 이용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지방도시의 구도심 활성화 방안에 대해 많은 학자들의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구체적 연구성과는 도시특성을 고려한 도시행정과 개성있는 도시개발, 거점성장전략에서 중심지 개발전략으로의 전환, 도시 숙원사업을 해결하기 위한 예산편성과 그 자율성 확대, 지방도시개발기금의 확보 등의 대안이 제시돼 있다. 일본은 중심시가지 활성화법을 만들고, 중심시가지 활성화 추진실을 운영해 도심 활성화에 힘을 쏟고 있다. 미국도 스마트한 성장 정책(Smart Growth)과 살기 좋은 지역사회 창조 정책(Livable community initiative) 등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많은 방안들이 실행됐을 때 과연 기대하는 효과가 이루어질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포항시의 도심 저발전 요인을 살펴보면 인구가 늘어나지 않거나 만족하지 못한 증가세에 머물러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시행정적 발상으로 도시외곽지역에 경쟁적으로 신시가지를 조성하거나 조성할 기틀을 도시관리계획을 통해 마련해오고 있다.이로 인한 첫 번째 문제점은 도시인구가 지속 유입되거나 높은 인구 압력 때문에 항상 공간부족이나 주택 교통 환경 등 구조적 불합리성이 상존하는 수도권과는 달리 인구유입이나 성장의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점이다. 도시의 외연 확장도 시청사 이전 등의 도시내부 자원이 단순하게 이동함으로써 구시가지의 공동화현상을 심화시켜오고 있다. 두 번째는 도시가 성장함에 따라 상업기능과 업무기능이 강화되게 마련이다. 따라서 주거기능이 퇴보하는 것은 자연적 현상으로 상주인구(야간인구)가 낮아지고, 다양한 도심기능의 퇴락을 포항시의 구도심은 경험하고 있다. 세 번째는 환경시대의 지방도시 발전전략이 대부분 생태도시나 친환경도시를 표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심을 여러 개의 핵으로 나누어 도시공간 구조를 개편해 추진해오고 있는 것이 문제다. 네 번째는 신시가지 개발에 따른 행정과 업무기능이 나누어짐으로써 구도심기능의 경쟁 및 한 도시를 이끌어가는 주도기능을 상실했다. 다섯 번째는 도시토지 이용의 비효율성 증대를 들 수 있다. 포항시 뿐만 아니라 지방도시의 대부분이 도심부라고 하더라도 중심도로변의 일부 구간을 제외하면 개발밀도가 매우 낮아 저밀도 개발상태에 놓여 있다.포항시는 구도심의 경제구조가 취약해 구도심부 주거지역의 대부분이 용적률 100% 이내이고,상업지역도 중심을 제외하고 주변부 평균층이 2층 이하의 낮은 상태에 놓여 있다. 이처럼 도심 토지이용의 효율화가 선행되지 못한 채 추진되는 신시가지 조성은 전체적으로 포항시에 도심부 토지이용의 미개발이라는 딱지를 붙여 놓고 있다. 구도심부는 오랜 세월에 걸쳐 쌓아온 도시문화의 거점이며, 도시의 얼굴로서 한 도시의 정체성을 형성해 온 중요한 부분이므로 활성화가 도시의 경쟁력 회복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만큼 중요한 도시정책이 되어야 한다.더욱이 미래의 도시 사회가 고령화 사회로 진전됨에 따라 장애가 없는 도시공간 조성을 통한 노인복지 사회 조성의 일차적 대상지는 기반시설의 정비가 가장 잘된 구도심인 만큼 고령화 사회를 위한 개발 잠재력도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2013-01-10

경청하는 사람들의 시대

▲ 정석수 신부·성요셉복지재단 상임이사톰 피터스(Tom Peters) 교수는 20세기는 말하는 자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경청하는 사람들의 시대가 될 것이라 했다. 귀담아 듣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지적하고 있다. 1960년대와 1970년대 미국의 많은 기업들이 고객의 말을 듣지 않고, 직원의 말을 듣지 못하고, 나아가 주주들의 말을 듣지 못하는 증세에 빠지면서 내리막을 걸었다. 1980년대 미국 대표 기업이라 할 수 있는 IBM도 고객의 엄청난 불만과 불평에 조금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이때 루 거스너(Louis Gerstner)의 리더십은 질문을 하며, 그 답에 경청함으로써 다시 IBM을 되살렸다. 그는 고객들에게 “당신들은 자랑스러운 빅 블루(IBM의 애칭)를 회생시킬 방안을 알고 있습니다. 저에게 그 방안을 들려주십시오”라고 물었던 것이다.오늘날 삼성은 엄청난 성과물을 내고 있다. 그 동기가 어디에 있을까 생각해 본다. 아마도 `경청`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이병철 회장이 이건희 회장에게 그 휘호를 남겼기 때문만이 아니라 실제로 듣는 자세와 숙고하여 정리하는 능력을 가졌을 것이라 여긴다.칭기스칸은 비록 이름도 쓸 줄 모르지만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면서 현명해지는 법을 배웠다. 입부터 열어 온갖 담론이 판을 치게 할 것이 아니라 `귀가 보배`라는 우리 속담을 되새겨 이청득심(耳聽得心)이 되었으면 좋겠다.“이스라엘아, 들어라”고 말씀하시는 하느님은 먼저 인간의 아우성을 들어주셨기에 출애굽의 역사가 있었고, 가난한 이와 과부 및 고아와 비천한 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하느님의 모습을 시편에서 발견할 수 있다.그러나 인간의 비극은 경청하기를 싫어하는데 있다. 많은 결혼 상담자와 신경정신과 의사들은 `경청`은 허물어진 관계를 돌이킬 최고의 처방이라 한다. 경청 후에 하는 말 한 마디는 천금처럼 울림이 있다. 이 울림을 받아들일 줄 모르면 그 관계는 심각한 현상에 빠지게 된다.대선 기간 한 표의 주권을 행사하기 위하여 절대다수의 국민들은 귀담아 들으면서 온몸으로 한 표로 말하였다. 단순히 51.6%와 48%로 나눌 것이 아니라 통합이라는 대의에 귀담아 들어 하나 되는 대한민국을 지향하되 변화에 대한 갈망에 귀를 닫아서는 안 될 것이다.그런데 며칠이 지났다고 변화에 대한 열망에 찬물을 붓는 일들이 있었다. 특권을 내려놓겠다던 정치권은 국민의 어떤 목소리를 들었고, 무엇을 숙고하고 있는가? 무노동 무임금을 시행하겠다고 한 것과 의원 연금 제도 개선은 결국 허공으로 날아가고 말았다.요한복음 사가는 “왜 내 말을 깨닫지 못합니까? 하느님에게서 난 이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습니다”라고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 이 말씀을 정치권에 대입하면 “왜 국민의 말을 깨닫지 못합니까? 국민에게서 권리를 양도받은 이들은 국민의 목소리를 듣습니다”라고 해야할 것이다.많은 전문가들이 당선자에게 한 마디씩 전하고 있다. 대니얼 골먼(Daniel Goleman)은 `감성 리더십`에서 경청의 최고 미덕으로 조직 내부의 불필요한 적대감과 불안감을 없앤다고 했다. 당선자는 경청으로 여성적 감성 리더십을 발휘해 사회적 갈등에서 적대감과 불안감을 앞으로 가는 발전적 요소로 승화시켜 주기를 바란다. 경청하는, 거대한 용광로를 만들어 새 정부 출발부터 다음 세대로 이어질 사회적 쇳물을 만들어 갔으면 한다.

2013-01-08

축복의 말을 훈련하라

▲ 서임중포항중앙교회 담임목사 대한민국 18대 대통령 선거도 끝났다. 여야의 치열한 경쟁을 국민의 한 사람으로 지켜보면서 참으로 자괴감에 얼굴을 들 수 없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을 선출하는 과정에 여야 대변인은 물론 지지층이 쏟아내는 치졸스럽고 듣기 거북한 말들을 들으면서 `아직도 우리 대한민국의 선진화는 멀었구나`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던 것이다. 나라를 이끌어 가야할 정치세력들이 서로에게 건네는 말이 왜 저리 파괴적이고, 마음에 상처를 주는 말들뿐 일까 개탄스러웠다.말은 우리를 일으켜 세우기도 하고 무너뜨리기도 한다. 낫게도 하고, 병들게도 한다. 파괴하기도 하고, 건설하기도 한다.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불행하게도 하고, 행복하게도 한다.더 좋은 삶을 위해 우리는 말을 축복의 말로 바꾸는 훈련이 필요하다. 두려움의 말을 담대한 말로, 비판하는 말을 적극적인 말로, 저주하는 말을 축복하는 말로, 시기하는 말을 칭찬하는 말로, 부정하는 말을 긍정적인 말로, 안 된다는 말을 된다는 말로, 모난 말을 부드러운 말로 바꾸는 훈련이 필요하다.그것은 곧 자기 자신의 삶을 축복으로 이끄는 것이다.말은 화살과 같다. 화살은 쏘면 어디엔가 박히게 된다. 말은 입에서 나오면 반드시 사람의 생각과 마음에 박히게 된다. 내가 한 말이 박힐 곳이 없을 때 그 말은 다시 내게로 돌아와 내 심장과 내 삶의 중심에 박힌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그렇기에 우리는 반드시 축복의 말을 하는 훈련이 돼 있어야 한다. 누에가 명주실을 300m 스스로 뽑아 자기를 둘러싸 번데기가 되듯이 우리가 하는 말은 그 말하는 대로 나의 환경을 만들어 내가 그 환경에 싸여버리는 것을 안다면 우리는 축복의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내가 한 말은 나의 행동을 이끈다. 내가 하는 말은 먼저 나의 뇌세포에 박힌다. 뇌는 척추를 지배한다. 척추는 행동을 지배한다. 결국 내가 한 말은 뇌에 전달되어 나의 행동이 되는 것이다. 역사는 “할 수 있다”는 말을 한 사람들에 의해 움직여 왔다.말에는 그 말한 대로 행동하게 하는 힘이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뇌에 부정적인 말을 주입시키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 축복이다.말은 그 말한 대로 성취되는 신비로움이 있다. 나는 전국·세계 여러 곳을 다니면서 우리 교회 자랑을 했다. 장로님 자랑, 권사님 자랑, 교인 자랑을 했다. 전국의 모든 교회 성도들이 포항중앙교회를 부러워하게 됐다. 가보고 싶은 교회로 손꼽히게 됐다. 놀라운 것은 우리 교회가 점점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말한 대로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가정도 기업도 직장도 국가도 마찬가지다.데일 카네기는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없다”, “잃었다”, “한계가 있다”는 말을 전혀 하지 않았다는 유명한 말을 했다. 안 된다고 말하면 안 된다. 된다고 말하면 된다. 그것이 말의 위력이다.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너무 부정적인 말에 길들여져 왔다. “그건 할 수 없다”, “너 같은 것이 뭘 한다고”, “보나마나 실패할 거야”, “그래서 되겠나?”, “말세야 말세” “뭐 되는 게 있어야지”, “에이 될 대로 되라지 뭐”, “당신 잘한 거 뭐 있어?”, “그 사람 어떻게 믿나” 이같은 부정적인 말은 우리 생활 주변에서 언제라도 들을 수 있는 말들이었다.성경에는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고 했다.축복의 말을 할 수 있도록 언어 훈련을 해야 한다.

2013-01-07

경북도, 성별영향분석평가 정책 개선전략

▲ 박은미 경북여성정책개발원 성별영향평가센터장경북은 2005년부터 성별영향분석평가사업을 추진해 오면서 사업별로 다양한 정책개선안을 제시했지만, 이를 적용하고자 하려는 노력은 부족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매년 권역별로 찾아가는 성별영향분석평가 순회 교육이나 평가 우수기관 및 우수사례 선정과 시상을 통해 제도의 공감대는 형성되고 있지만, 정책개선안 도출과 적용을 위한 다양한 주체들의 참여와 협력은 미흡한 실정이다. 따라서 지역 전문가, NGO 활동가, 의회 의원, 행정담당자 등과 공유해 정책개선 중심의 성별영향분석평가 적용 방안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 즉 다양한 영역의 주체들이 참여하고, 협력하는 네트워크 구축이 필요하다. 수직적 집행구조에서 탈피하여, 다양한 실행주체들을 참여시키고 이들과의 신뢰와 협력을 증진해 나아가야 하며, 향후에는 수평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3단계 전략이 필요하다.1단계에서는 실질적인 목표달성을 위해서는 기관이 수행하는 모든 정책과정에 성별영향분석평가를 통합할 수 있도록 성 평등 목표를 수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경북도 여성정책관의 적극적인 노력이 요구된다. 경북도와 시군의 사업수행 부서 및 여러 참여기관들에 대한 감독을 적절히 수행하고, 실행주체들 간의 원만한 의사소통을 유지해 나가야 한다. 실행주체들의 활동을 필요에 따라 조정하거나 경쟁과 협력의 균형을 유지하도록 해야 하고, 특정 실행주체의 역량(정보와 능력) 부족을 보완하는 노력도 해야 한다.그리고 경북지역에서 발굴된 젠더 전문가의 풀은 여전히 협소하므로 경북도내 대학과의 연계를 통한 전문가 개발 노력이 필요하다. 또 대구와 부산·울산·경남 등 인근지역의 전문가집단을 활용할 수 있는 광역 네트워크를 개발하는 것도 필요하다.이외에도 여성NGO의 역할이 성별영향분석평가 정책개선 실행의 핵심 변수이다. 성별영향분석평가 추진과정에서 여성NGO들은 성인지적 시각에서 정책을 모니터링하고, 관련 여성들의 의견을 수집하고 표출하는 기능을 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경북도-전문가-NGO로 이어지는 성별영향분석평가 정책개선 삼각연대 거버넌스 구축이 필요하다.2단계에서는 정책영역의 행위자들과 연계하는 단계적 전략이 필요하다. 여기서는 삼각연대의 구축과 함께 강조돼야 할 실행주체는 지방의회다. 지방의회는 성별영향분석평가 인프라 구축에 있어 불가결한 행위자이기 때문에 거버넌스 구축에 가장 우선적인 관심을 두어야 한다. 지방의회 내 성별영향분석평가 전문가를 배치될 수 있도록 지원인력을 구성해야 하며, 의회활동의 기조와 방향을 결정하는 주요 고위직에 여성의원 참여를 확대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언론과 정책수혜자와 같은 정책개선 실행 주체들과 연계하는 네트워크 확장을 추진해야 한다.3단계에서는 수평적 네트워크를 구축, 경북 성별영향분석평가 정책개선 실행 거버넌스를 완성할 수 있다. 이 단계에서는 성별영향분석평가와 성인지예산제도를 효과적으로 연계하는 제도적 방안이 강구돼야 한다. 성 주류화의 핵심 수단인 두 제도가 효과적으로 운영돼 지역의 성 주류화 추진을 위한 거버넌스가 제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두 제도를 효과적으로 연계해 성별영향분석평가의 결과를 예산에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경북은 우선적으로 다양한 주체가 참여하는 성별영향분석평가제도 운영을 위한 성별영향분석평가위회를 구성·운영하기 위한 법적 근거(조례)를 만들고, 다양한 주체들이 성인지적 관점에서 대상과제를 선정하고 정책개선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위원회를 제대로 운영하는 것이 필요하다.

2013-01-03

5.42㎏ 노랑눈썹솔새가 1천550㎞를 날아가는 힘

▲ 김현욱 시인어느덧 2012년 임진년(壬辰年)이 저물고, 2013년 계사년(癸巳年)이 밝아오고 있다. 연이은 총선(總選)과 대선(大選)으로 탈도 많고 말도 많았던 2012년이었지만 시간은 그저 마음 없이 흐르는 모양이다.지난 19일은 `52:48`이라는 이 절묘한 인간의 이합집산(離合集散)에 대해 궁리해보다 결국은 그 합이 100이라는 데에 결론이 모였다. 백(百)은 완전함을 뜻한다. 혹자는 `1천400만의 민심이 울고 있다.`라고 했지만, 그것이 다른 `1천600만의 민심은 웃고 있음`을 전제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52:48`로 갈라져 나뉜 그들은 결국 가족이거나 친족이거나 동료거나 이웃이거나 선량한 시민일 뿐이다.세포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분열해야 한다. 분열이란 갈라져 나뉨을 뜻한다. 정치도, 경제도, 문화도 그렇게 발전한다. 분열이라는 뜨거운 대립과 융화의 과정을 거쳐 다시 화합하고 상생할 수 있다. 불화(不和)와 화합(和合)이라는 글자를 찬찬히 들여다본다. 화(和)는 음(音)을 나타내는 禾(화)와 수확(收穫)한 벼를 여럿이 나누어 먹는다는(口) 뜻을 합(合)하여 `화목하다`를 뜻을 가진 형성 문자다. 쉽게 말해서 밥을 잘 나눠 먹으면 화합하고, 그렇지 못하면 불화한다는 말이다. 이보다 더 명쾌하고 적확한 `정치`가 어디 있겠는가. 모쪼록 새 대통령이 불화와 화합의 명료한 이치를 깨달아 화합과 상생의 새 대한민국을 열어 주길 간곡히 바랄 뿐이다.그런 의미에서 노랑눈썹솔새의 비행(飛行)에 눈길이 간다. 100짜리 동전 무게와 비슷한 노랑눈썹솔새가 중국 헤이룽장성에서 무려 1천550km를 날아 전남 신안군 흑산도에 도착했다고 지난 16일 국립공원관리공단 철새연구센터에서 밝혔다. 노랑눈썹솔새는 그 거리를 불과 20여 일 만에 날아왔다고 한다. 중국 연구기관이 9월 초·중순쯤에 이동 경로를 추적하기 위해 이 새의 다리에 가락지를 달아놓은 덕분에 밝혀진 것이다. 노랑눈썹솔새는 오호츠크 해 연안과 러시아, 중앙아시아에서 번식하다가 겨울에는 파키스탄, 인도, 대만, 중국 남부에서 월동한다. 번식지에서 월동지로 날아가는 과정에 전남 신안의 흑산도에 머문 사실이 이번에 확인된 것이다.5.42g 노랑눈썹솔새가 1천550km를 날아가는 힘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것은 겨울 하늘을 `V`자로 떼 지어 날아가는 대표적인 겨울 철새 기러기로 설명할 수 있다. 기러기들이 `V`자로 날아가는 데는 과학적인 이유가 있다. `V`자의 꼭짓점부터 서로 날개를 퍼덕이며 공기의 저항을 감소시켜 뒤따르는 새가 더욱 손쉽게 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거친 맞바람을 가르면서 날아야 하므로 가장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곳이자 천적에 노출될 확률도 가장 높은 곳인`V`자의 꼭짓점은 누가 맡을까? 놀랍게도 구성원 전체가 번갈아 가면서 꼭짓점 자리를 맡는다고 한다. 앞장선 새가 지쳐 뒤로 물러나면 뒤에 있던 새가 앞으로 나아가 꼭짓점을 맡는다. 뒤따르는 새들은 힘을 북돋아주기 위해 마치 구령을 넣듯이 일정한 간격으로 소리를 낸다. 때때로 대형을 이탈하는 새가 생기면 뒤따르던 새가 다가와 주의를 주거나 깃을 밀치며 함께 날아가도록 도움을 준다. 심지어 병에 걸리는 새가 생기면 가족이나 동료 두세 마리가 함께 이탈하여 아픈 새를 돌보고 다시 날아오른다고 한다.결국, 5.42g 노랑눈썹솔새가 1천550km를 날아가는 힘의 비밀은 `함께, 더불어, 같이`에 있는 것이다. 아프리카 속담에 `빨리 가고 싶으면 혼자 가고, 멀리 가고 싶으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다. 갑자기 2012년이 2천12km로 보인다. 미우나 고우나 우리 대한민국 국민이 함께 기고, 걷고, 날아온 길이요, 역사다. 다시 2013년, 2천13km의 대장정이 밝았다. 지금까지 그래 왔듯이 `함께, 더불어, 같이` 걸어갈 것이다. 누구도 낙오하지 않고 누구도 독존하지 않고 나란히 승리의 `V`자로 의연히 날아갈 것이다.

2012-12-31

새 대통령에 바라는 또 하나의 제안

▲ 김영문 한동대 교수새로 선출된 대통령에 바라는 일들이 많을 것이다. 기업인이든 근로자든 서민이든 그 바라는 바는 지역과 세대와 소속된 직종 등에 따라 다양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북한의 대남 심리전과 이에 노골적으로 호응해 남남갈등을 극대화시킬 종북 세력들의 준동에 철저히 대비했으면 한다. 박근혜 후보 핵심 공약 중 하나인 국민대통합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새 대통령 당선에 대해 세계 주요국 정상들의 당선 축하 서한이 잇따르고 있는 마당에 유독 북한 매체만 차분한 논조를 유지하고 있다. 새로운 정부의 구체적인 대북정책을 지켜본 후 대응하겠다는 의도일 것이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 개입하려던 북한은 차기 정부가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다고 생각될 때 종전과 같은 정치 심리전을 이용한 제 4세대 전쟁의 수위를 높여 갈 것이다. 제 4세대 전쟁이란 소총에서 기관단총으로 발전한 제 1, 2세대 전쟁이나 기동력을 중시하며 상대방의 지휘통제 체제를 무너뜨리는 제 3세대 전쟁과는 또 다른 전쟁개념이다. 제 4세대 전쟁은 정치 심리전을 이용해 총 한방 쏘지 않은 채 상대를 내 의지대로 끌려오게 하는 전쟁이다. 이러한 심리전은 주변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여성 등 다양한 네트워크와 연결돼 대중을 선동하며, 다대다 방식으로 대량동원도 할 수 있는 전쟁양상이다. 북한의 4세대 전쟁은 남한 내 종북세력을 대리인으로 이미 수행되고 있지만 아직 국민들은 잘 알아채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이번 대선에서 패배한 쪽 지지자들의 아쉬움과 애석함을 자극해 분노하게 함으로써 시작할 지도 모른다. 이런 불만 세력들은 종북매체나 사이버공간 또는 SNS를 비롯한 온갖 방법을 동원한 저질선동으로 허위·막말이란 기름을 만나게 되면 폭발적으로 불타오르게 되며, 그 불길은 남남갈등을 극대화시키고, 정부를 무력화시키기도 한다.국민들은 이명박 대통령 집권 초기, 100여 일간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대규모 촛불집회로 국정운영이 한 발자국도 진척되지 못하고 뿌리 채 흔들렸던 파동을 기억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초기에는 반미감정을 이용했는데, 박근혜 정부에는 또 어떤 이슈로 나라를 혼란에 빠뜨릴 것인가? 지금은 태풍전야 처럼 고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지난 2010년 3월 26일에 있었던 천안함 폭침을 북한은 `남한정부의 날조극`이라고 억지주장, 남남갈등이 야기된 사실을 경험한 바 있다. 그리고 북한의 주장에 동조한 남한 내 일부 친북좌파 약 38개 단체는 공동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의 조사결과를 인정할 수 없다`는 내용의 공동기자회견을 가지기도 했으며, 참여연대는 15개 안보리 이사국에 의문자료를 제출하며 적극 호응했다. 이 때문에 세계의 전문가들이 함께한 합동조사단의`북한소행`이라는 발표에 대해 남한국민 약 30% 정도와 정치권까지도 믿으려 하지 않으려 했던 사실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그 당시 북한은 남한 주민들의 ID와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해 국내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허위사실을 퍼뜨리면서 남남갈등을 조장했다. 북한은 1990년대 초반부터 국가전략 차원에서 전문 해커를 양성해서 현재 약 3만여명의 사이버 전사들이 활동하고 있었기에 이번 대선에서도 많은 활동을 했으리라 추정된다.개표결과에 의문을 제기하는 아고라, 박근혜 당선인 비하발언 연예인, 정부의 각종사업 민영화 문제제기, 공지영의 나치정권 운운 등 남남갈등을 부추기기 시작할 기미들이 보인다.유언비어 흑색선전 등 법을 벗어난 선전선동은 발본색원해야 한다. 철저히 뿌리를 뽑아 이 땅위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해야 한다. 남남갈등을 조장하는 것은 국기문란 행위로서 국민 통합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선진 대한민국 진입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2012-12-28

막 내린 대선, 탄력적인 공동체정신 발휘해야

▲ 김부환 유럽경제문제연구소장전국 각 지역을 뜨겁게 달궜던 18대 대통령선거도 막을 내리며 새누리당의 박근혜 당선자를 탄생시켰다. 박 당선자는 51.6%의 득표율을 기록했으며, 첫 여성대통령, 첫 부녀 대통령, 41년만의 과반 대통령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청와대 입성을 준비하고 있다. 박 당선자는 정권교체가 아니라 `시대의 교체`를 외치면서 전국을 누볐지만 박 당선자의 말대로 `시대의 교체`는 18대 대선과정과 결과를 조금만 뒤돌아 봐도 가슴이 철렁할 정도로 절실한 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벌인 피 튀기는 사투를 생각하면 누가 당선되든 대한민국은 싹둑 두 동강이가 나버릴 것 같다.정치평론가는 물론 모든 국민들이 정치평론가가 돼버린 지금, 이제 누구나가 통합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하지만 그 통합의 시작과 끝은 도무지 머리에서 밑그림 조차도 그려지지 않는다며 다들 두려워하고 있다. 과연 그런 것까?많은 것들이 있지만 하나만 짚고 넘어가야겠다. 흔히들 이번 대선을 두고 모두들 보수와 진보의 대격돌이라고 단언했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나 단편적이고, 편의적인 편 가르기식 발상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싶다. 새누리당에 한 표를 던진 유권자들 중에는 진정한 균형감각을 가진 미래지향적인 진보성향의 유권자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민주통합당에 한 표를 행사한 사람들 중에서도 진정한 보수의 가치를 인정하는 유권자들 역시 적지않다는 걸 알아야 한다.누구나 알고 있는 것들이지만, 영남유권자들 대부분 보수며, 호남유권자들이 대부분 진보라는 등식은 어처구니없는 것들이 아니겠는가. 따라서 시대를 교체하는 새로운 통합의 가능성은 얼마든지 존재한다는 것이다. 마침 새누리당에서도 상황에 맞는 복지와 경제민주화를 공약으로 걸고, 복지인프라 구축과 함께 성장잠재력의 탄력도 놓치지 않으려는 의지를 다지며 단계적인 발돋음을 준비하고 있다니 지켜볼 일이다.어쨌든 우리는 세계인들이 주목하는 경제규모로 지금 여기까지 달려왔다. 선진국 문턱을 목전에 두고 있다는 얘기다. 남부 유럽 일부국가 등 중진문턱에서 각종 딜레마에 빠져 제자리에 머물고 있는 나라들이 많다. 선진 진입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이기도 하다. 선진국에 대한 뚜렷한 정의는 없지만, 일반적으로 1인당 국민소득이 일정(3만 불) 이상 이어야 하고, 동시에 국민들 서로가 소통할 수 있는 사회적 인프라를 갖춘 나라로 정의할 수 있다.선거판이든 자본주의 시장(市場)경제에서든 승자와 패자가 있기 마련이다. 승자든 패자든 서로가 인정하면서 공존을 모색해야 한다. 그것이 진정 국민들이 절실히 바라는 마음일 것이다.서로가 인정하는 열린 공존의 자세가 절실한 시점에서 우리사회에서 너무나 쉽게 얘기하는 기존의 진보와 보수의 개념을 새롭게 정의해 나가면 어떨까 싶다. 병아리가 알을 부수고 새롭게 태어나려면 안에서 병아리도 쪼고, 밖에서 어미닭도 동시에 서로가 쪼아야 한다. 18대 대선이 막 내린 지금, 여야 모두 새롭고 탄력적인 공동체정신이 그 어느 때 보다 절실해 보인다.

2012-12-27

그라운딩

▲ 조현명시인 나는 종종 마음이 답답할 때 산을 올려다보곤 한다. 산의 정기와 산이 가진 변화와 풍경을 느끼며 마음에 힘을 얻곤 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 산을 바라다 보는 것을 지나 나를 알아채가는 과정이다. 산을 바라보고 있는 나와 산은 떨어져있는 듯하지만 어느새 마음에 들어와 하나가 된다. 이렇게 산과 내가 동일한 지점에 이를 때 그 지점에서 우리는 자신을 알아챈다. 내가 잘못돼 가는지 잘 돼 가는지를 말이다.주변을 돌아보면 많은 사람들이 `뿌리 뽑혀 있는 것(uprootedness)`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것을 본다. 그 사람들은 언제나 다리의 떨림(불확실성, 염려)을 가지고 있다. 두 다리는 실제로 사람의 뿌리이기 때문이다. 다리를 통해서 사람은 땅에 뿌리내려져 있는 것이다. 그러니 사람들은 불안하면 안절부절하고 일어서서 서성거리거나 앉아있더라도 가만히 발을 땅에 붙여놓고 있지 못한다. 그것은 매우 불안하다는 증거가 된다. 그러한 자신을 알아채기란 매우 힘든 일이지만 그런 자신을 알아채고 심호흡을 하며 발을 땅에 붙이려고 자신을 다시 돌아보는 일, 그것을 우리는 접지(grounding)라고 하자.예수는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한복음14:27)`고 말했다. 이것은 접지의 차원을 넘어서 있다. 죽음과 온갖 고통과 모욕행위 앞에서도 평안히 십자가를 지고 간 그이의 평안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어느 누가 죄 없이 억울한 죽음을 당하면서도 평안을 가질 수 있을까. 자신을 버리는, 그래서 모든 것을 다 내어주는 희생이었기 때문에 접지의 차원을 넘어섰던 것이다.다시 평안이란 단어로 돌아가 생각해보자. 우리민족의 염원은 평안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사를 `안녕`, `잘 지내`, `별 일 없지` 등으로 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배부르고 등 따신 것, 호의 호식하는 것, 별 탈 없이 잘 지내는 것 이런 것이 소박한 우리네 소원인데, 그만큼 불안하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사고가 주변에 있다는 의식 때문에 가지고 있는 염려일 것이다. 이런 염려 속에서도 평안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예수의 평안을 받아들일 것이 아니면 그라운딩으로부터 시작할 일이다.그라운딩을 하려면 다리를 어깨넓이 만큼 벌려 서서 가만히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라. 내 마음의 의식을 발꿈치에서부터 그 주변을 알아챈다고 생각하라. 무릎, 허리, 가슴, 머리 그 위까지 다 알아채어라. 이런 과정만 해도 나는 땅에 접지된다. 접지된다는 것은 편안해지고 안정감을 되찾는다는 말이다. 이런 상태에서는 어떤 방해꾼도 나를 넘어뜨리지 못할 것이다. 여기서 `나를 알아챈다`는 말은 매우 깊은 뜻을 가지고 있다. 결국 내 몸과 그 주변을 모두 의식 속으로 불러들이라는 뜻, 나의 존재에 대해 그 기반에 대해 잊어버리지 않고 다시 떠올리라는 뜻일 것이다.얼마 전, 아들이 모 대학의 수시전형에 원서를 넣고 면접을 보러갔다. 그런데 면접을 보고 나온 아들의 얼굴이 어두웠다. “완전 망쳤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때 내 마음엔 퍼뜩 후회가 지나갔다. `그라운딩을 알고 있으면서 가르치지 못했구나. 이 바보가 그걸 가르쳤어야지.`녀석은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질문에 긴장하면서 갑자기 안정을 잃고 뿌리가 뽑혔던 것이다. 중요한 질문에 평정을 잃고 횡설수설하고 나니 면접관이 “네 논리가 틀렸다”라고 정곡을 찌르는 것이 아닌가. 아들은 중심을 더 잃고 홍당무가 됐다고 한다. 합격자 발표를 앞둔 일주일 동안 아들녀석은 그라운딩을 못하고 안절부절 이리뒤척 저리뒤척 뿌리내리지 못하고 서성거렸다. 다행히 합격증을 받아 안정을 되찾기는 했지만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미리 그라운딩을 가르쳤다면 훨씬 나았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2012-12-21

미생물산업은 국가 성장의 원동력이다

▲ 김완규농촌진흥청 농업미생물과장 미생물은 현미경을 통해서만 관찰이 가능한 미세한 생물로서 생명체가 있는 곳이면 어디에나 존재하며, 미생물이 없이는 동물과 식물의 생존이 불가능하다. 미생물은 일반적으로 진균, 세균, 바이러스, 원생동물, 조류 등을 포함하며, 지구상에서 현재까지 발견된 종은 20만여 종이나, 실제로는 500만여 종이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미생물의 일부 종류는 인간을 비롯한 동물과 식물에 각종 질병을 유발하고, 음식물을 상하게 하는 등 해로운 역할을 하지만 해로운 종류는 1% 미만이다. 99% 이상의 미생물은 자연생태계에서 분해, 생성, 물질순환 등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며, 유익한 역할을 하고 있다. 미생물은 동물과 식물의 내부에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수로 존재하면서 생명유지에 필요한 대사작용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미생물은 또한 인간의 의식주 생활에 사용되는 제품 생산의 주역으로서 발효식품 생산, 의약소재 개발, 물질 및 에너지 생산 등의 산업공정에도 매우 유용하게 이용되고 있다.미생물을 기능적 특성에 의해 구분하면 병원미생물, 환경미생물, 산업미생물, 식품미생물, 농업미생물 등으로 나누어지며, 각 기능적 분류군별 주요 특성 및 관련 산업분야에 대해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병원미생물은 동물과 식물에 질병을 일으키는 해로운 존재로서 인류의 역사와 함께 퇴치돼야 할 대상으로 연구돼 왔으며, 병원미생물로 인한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하기 위한 제약 산업이 발달하고 있다.식품미생물은 빵, 음료, 주류, 장류, 젓갈류 등의 발효를 통한 식품 생산에 주역을 담당하고 있으며, 인류의 식생활에 필수적인 존재로서 발효식품 산업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환경미생물은 자연생태계에서 분해, 생성 및 변환의 기능을 수행하여 환경복원 및 환경정화 처리에 이용되고 있으며, 환경산업 공정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산업미생물은 대사작용을 통해 새로운 물질을 생성함으로서 발효공정, 생물변환, 바이오에너지 생산 등에 관여하고 있으며, 각종 산업제품 생산에 크게 이용되고 있다.농업미생물은 퇴비의 부숙, 발효, 작물의 생육 및 면역 증진, 길항 및 항생, 토양 내 양분가용화 등의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친환경 농산물 생산 및 농업환경 개선에 이용되고 있다. 또한 가축의 음용과 사료 발효를 통한 소화율 개선, 면역 증진, 악취 제거 등의 기능을 가지고 있어 고품질 축산물 생산에도 널리 이용되고 있다.미생물산업의 시장 규모는 전 세계적으로 400억 달러 이상이고, 국내에서는 4조5천억 여원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규모의 미생물산업 시장은 지속적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우리나라의 미생물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국내의 다양한 생태계에 존재하는 미생물자원을 많이 수집하여 장기적으로 안전하게 보존하면서 특성 및 기능을 밝히고, 산업적 이용을 위한 연구 개발을 지속적으로 수행해야만 한다. 지속적인 미생물 자원의 확보와 연구 개발을 통한 미생물산업의 발전은 궁극적으로 국가 성장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2012-12-20

감사로 행복한 호미일출

▲ 이정옥 포항시축제위원장지금부터 40여년 전, 70년대 학교를 다녔다면 `고미안운동`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이 있을 것이다.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안녕하십니까?의 첫글자를 딴 일종의 생활예절 교육이었다. 얼마나 인사를 하지 않았으면 이런 운동을 다했겠는가. 상대방의 도움을 받으면 `고맙습니다.`, 상대방에게 실수를 했을 경우, `미안합니다`, 누구를 만나든지 먼저 `안녕하십니까?` 인사하는 습관을 위한 이 `고미안운동`은 결국 하다 말았나 보다. 그 후 여전히 우리는 생활 속의 작은 인사습관에 인색하다. 먹고 살기에 바빠서, 무엇이든지 빨리빨리 성취하고, 초과달성해야 하는 전국민적 조급증이 세계적으로 경이적인 경제성장을 이루긴 했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잃은 것도 많다. 동방예의지국, 염치를 지고의 가치로 여기는 선비다움을 잃고 무뚝뚝만 남았다.국가마다 길거리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표정이 매우 다름을 느끼는 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일일이 어느 특정 국가를 거명하기엔 뭐하지만, 어쨌든 우리나라 사람들의 표정은 다른 나라에 비교해서 상대적으로 상당히 경직되어 있다. 무표정에 가까운 정도가 아니라 잔뜩 화난 표정의 얼굴들만 있는 듯하다는 느낌이 많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선뜻 다가가기 힘들고, 조심스럽지 않을 수가 없다. 자칫 잘못해서 발이라도 밟는 실수라도 해서, `미안합니다`라고 말하려하면 `미안하다면 다야?`라며 일전불사할 기세의 얼굴 표정들이다.한때 혼자 실험을 해 본 적이 있다. 속담 `웃는 얼굴에 침 뱉으랴`를 믿었다. 속담은 오랜 세월 민중들의 삶이 비유와 상징으로 축적된 지혜가 아닌가. 길거리에서나, 시장에서나, 버스나 지하철에서, 언제 어디서나 눈 마주치는 사람에게 미소를 던졌다. 그렇다고 결코 추파는 아니었다. 백에 백 사람 미소를 되돌려줬다. 진짜다. 지금 당장 실험해 봐도 좋다. 실험 결과 `웃는 얼굴에 침 뱉으랴`는 명제는 진리였다. 그 후 나는 누구에게나 눈 마주치면 입꼬리를 살짝 끌어올리는 습관이 생겼다. 실로 나이가 들면서 입주위의 근육이 탄력을 잃었다. 그저 입을 다물고만 있어도 자연히 입꼬리는 처져 화난 표정을 만든다는 것을 사진을 보면 안다. 분명 난 화나지 않았는데 사진 속의 내 모습은 영락없이 화가 잔뜩 난 사람의 전형적 표정이다. 참 보기 싫다. 그 후부터는 의식적으로 입꼬리를 위로 올리는 표정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웃으면 남들에게도 행복해보이고, 날 보는 이 역시 행복해진다면 더 나을 것 아니겠는가. 힘들지 않은 일이다.올 초부터 포항에서 감사나눔운동을 열심히 해왔다. 행복도시 포항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포항이 시작한 실천운동이었다. `감사하며 사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는 탈무드의 명구처럼, 감사하면 행복진다는 명제를 운동처럼 불 지폈다. 예전 70년대의 고미안운동이 생활예절 교육이었다면 이 감사나눔운동은 행복하기 위한 운동이다. 공무원부터 시작해서, 시민단체, 학교 등등으로 불길같이 번져나가고 있음을 목도하고 있다.실로 우리네 삶에 감사할 일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크고 거창한 행운이 아니라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 바로 감사해야 할 일인 것을 우리가 미처 모르고 있었던 것일 뿐이었다. 아니, 알면서도 그것을 말로 표현할 줄 몰랐을 뿐이었다. 표현하지 않은 사랑은 사랑이 아니듯 감사하다 말로 표현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감사가 아닌 것.개인의 작은 습관이 모이면 공동체의 관습이 되고, 그것이 세월의 힘을 얻으면 문화가 된다. 지금 `감사합니다`가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습관이 되면 시민들의 관습이 되고, 언젠가는 포항의 아름다운 문화가 될 것이 분명하다. 올해 호미곶에서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행복한 새해를 꿈꾸는 호미일출의 장관을 준비한다.

2012-12-14

관용과 배려의 조화 `똘레랑스 안동` 꿈꾼다

▲ 김부환 유럽경제문제연구소장미래지향적인 안동의 스타일과 색깔은 과연 무엇일까. 최근 안동에서 시민과 각계 전문가들이 새롭고 살기 좋은 도시 공간 창출을 위한 `안동 도시 디자인 포럼`을 개최했다. 도시경영에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유도하고 다양한 의견과 함께 아이디어를 창출해 안동발전에 밑거름이 되겠다는 취지로 개최된 이 포럼은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는 고유색을 도시디자인에 적극 활용돼야 한다는 의견과 안동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던져주는 첫 이미지, 도심은 방문자에게 보여주는 전시효과보다 주민의 쾌적한 삶이 우선돼야 한다는 등 다양한 의견들이 쏟아졌다.신도청시대와 신도시 건설을 앞두고 있는 시점 등을 감안하면 여간 의미 있는 포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도시디자인이란 너무나 중요한 것들을 함축하므로 이웃을 넘어 해외에 이르기까지 눈을 돌려볼 필요가 있다.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멋진 도시들을 만날 수 있다. 언뜻 보면 유럽의 많은 도시들이 모두가 멋진 중세풍으로 하나같이 아름답다고 감탄하기 일쑤다.큰 변화없이 같은 모습으로 지어진 도시건물들이 너무나 고풍적으로 아름답다는 것이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모든 도시들은 찬란한 역사적 전통을 이어가지만, 세월의 흐름에 따라 강산이 변하듯 자연적 변모에 가까울 만큼 느리게 진화한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다. 모두가 같은 모습으로 중세풍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는 듯하지만, 실상 크고 작은 모든 도시들은 제각기 틀린 모습으로 은은한 문화의 향기를 뿜어낸다. 시간을 두고 세밀하게 관찰해 보면 각자의 정체성을 조화 있게 은밀히 드러내고 있음을 알게 된다.흔히들 멋지고 작은 유럽의 도시들로는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 아일랜드의 더블린, 덴마크의 코펜하겐, 에스토니아의 탈린, 스페인의 바르셀로나 등을 꼽고 있다. 이 도시들은 유럽의 주요 대도시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규모도 적고 지명도도 떨어진다. 이들 도시에는 융합적인 건축기술이 큰 몫을 하고 있는데, 빠뜨릴 수 없는 것은 그 지역의 고유한 문화와 정체성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고유한 문화와 정체성은 일찍부터 발달한 완벽에 가까운 지역자치제도와도 관련이 있다. 호반의 도시, 산업의 도시, 종교의 도시 등등의 정체성은 물론 생활수준까지 도시에서 풍겨나지만 인접한 이웃도시와도 결코 모나지 않게 조화를 이루며 서로의 품격을 높여 간다. 이웃도시 뿐만 아니라 얼굴을 마주하는 이웃과의 집과 건물에서도 예외 없이 조화를 이룬다.이것을 가능케 하는 키워드는 과연 무엇일까? 건축과 도시디자인에도 똘레랑스(관용과 배려)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어느 도시나 지역이든 그 지역만이 가진 귀한 삶의 흔적과 문화가 녹아 있다. 이 같은 점들은 한국, 특히 신도시와 함께 신도청 시대를 맞이하는 안동지역에 던지는 메시지의 의미와 연관성이 있다. 다른 도시와의 조화를 이루면서 미래지향적인 정체성을 드러내는 신도청, 신도시의 고민은 계속 이어져야 한다. 그 고민 중에서 생략할 수 없는 것은 바로 `똘레랑스 안동`이다.타도시를 배려하며 흔적 없이 안동을 드러내면서 품격을 갖추는 것. 비록 어렵더라도 관용과 배려의 조화에서 안동의 품격을 높여가야 한다는 차원에서 주지할 필요가 있는 시점이다.

2012-12-10

위령의 달에 생각들

병원에서 원목신부로 근무하면서 많은 환자들을 만났다. 어느 날 휠체어를 타고 오신 분인데 젊었을 때 하고 싶었던 일이었다며 어려운 이웃을 위해서 사용하라고 성금을 주셨다. 삶의 끝자락에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성찰을 하는 삶을 보여준 것이다.또 한 분은 가족에게도 안구의 각막을 기증하자며 권하던 분이다. 이미 전신에 암이 펴져 이웃에게 도움이 될 것이 없지만 다행히도 각막에는 이상이 없어서 앞을 볼 수 없는 이들에게 도움이 된다며 웃으시던 분이다. 그분의 기증으로 두 분의 안과 환자가 다시 빛을 보게 됐다.“누구나 다 가는 길”이라며 다윗은 임종을 앞두고 아들 솔로몬에게 담담하게 죽음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 줬다. 예외 없는 죽음에 이르는 길이지만 그 삶의 마지막 모습은 제각각 다른 모습을 띤다. 그렇지만 임종자들을 가까이 하면서 하나의 동일한 모습을 발견했다. 그것은 누구나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성찰의 자세를 지닌다는 점이다.자신을 돌이켜 보는 것이 가장 인간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공자의 제자 증자(曾子)는 하루를 마무리 할 때, 세 가지 기준에서 자신을 살폈다. 첫째 다른 사람(가장 가까운 가족부터)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았는가. 둘째 친구와 이웃에게 신뢰를 얻으며 살았는가. 셋째 오늘 배운 것을 내 몸에 익혔는가. 오일삼성(吾日三省)의 자세를 실천한다면 자신의 생에 마지막까지 성장하는 아름다운 모습이 될 것이요, 이웃과의 관계에서 신뢰가 쌓일 것이다.가까운 이웃이라 할 수 있는 일본과 먼 이웃이라 할 수 있는 독일은 과거에 대한 태도가 확연히 다르다.1971년 폴란드의 바르샤바에서 독일총리 빌리 브란트(Willy Brandt)의 사과이후 일관된 자세를 통해 진심이 다가오지만 일본의 속내는 그렇지 않게 느껴진다. 나가사키의 평화 박물관에서 원폭에 대한 자료에서 일본의 속내를 알게 해 주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은 원래 독일을 겨냥한 미국 맨허튼 계획인데, 그것이 떨어졌다는 식으로 표현돼있었다. 일일의 성찰과 일사의 성찰은 이웃과의 관계에 대한 신뢰와 희망의 바로미터가 될 수 있겠다.햄릿 킨타나(Hamlet Quintana)는 “한 마디 말로 불을 밝히고 장미꽃을 피우는 이가 있고, 말 한 마디로 영혼의 끝까지 다다르며 꽃을 키우고 멋진 꿈을 꾸게 하며 포도주를 익게 한다”고 했다. 빌리 브란트의 침묵의 한 마디는 세상에 용서와 화해의 물결을 일으켰지만 우경화되어가는 지도층 행동은 장미꽃을 피우기엔 여전히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르네 바르자벨Rene Barjavel)은 “사랑의 부재보다 더 큰 죽음은 없다”고 했다. 오히려 더 넓은 자세로 이웃을 포용해 시인 베르길리우스(Vergilius Maro)의 말대로 사랑으로 모든 것을 이겨내었으면 한다.죽음을 앞에 두고 가족과 화해하는 모습은 감동적이다. 그간 쌓여온 짐을 털어버리는 것과 아울러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어느 방송에서 군대생활이후에 처음으로 모친에게 편지를 쓰고 낭독하는 소리를 들었다. 사랑한다는 말보다 의견이 달라 싸운 것에 대한 소회와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표현하지 못했던 자신을 돌이켜 보며 사랑을 고백하는 아들의 진심은 듣는 이로 하여금 가슴에서 눈물이 솟구치게 했다.그처럼 죽음의 자리에서 사랑을 나누는 것은 더욱 의미가 있다.일상의 작은 일에서 서로 사랑을 표현하는 나날이었으면 한다. 그러면 언젠가 삶의 마지막 자리에서 서로의 아름다움을 추억하는 별리의 시간이 될 수 있을 테니까.

2012-11-30

자전거 천천히 달리기

▲ 조현명 시인10여년 전 교내 체육대회에 `자전거 천천히 달리기`란 종목이 있었다. 그 종목에 내리 3년 우승한 게 K군이었다. 나중에 담임교사에게 들어보니 그는 입학 후 부적응학생으로 무기력하며,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 학생이었다. 그러나 1년에 1번 열리는 교내 체육대회 자전거 천천히 달리기를 기다리며 지루하고 힘겨웠을 야간자율학습과 수업시간들을 견뎠다는 이야기다. 그 녀석의 입으로 그 이야기를 직접 들었을 때는 우습기도 했지만 진실해서 마음에 담아뒀다. 그가 졸업해서 어떤 삶을 사는 지는 모른다. 그러나 이것 하나만으로도 그가 행복과 기쁨을 만들어갈 줄 아는 사람이라는 생각, 그래서 어떤 곳 어떤 상황에서도 기쁘고 즐거운 것을 찾아서 그것으로 어려움을 지우고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자전거 천천히 달리기는 세상의 바쁘고 분주하게 쫓아가는 삶을 조롱하는 종목이다. 무엇보다도 빠르게 달리도록 설계된 기계를 가지고 천천히 달리라니 역설이다. 이것이 언제부터인가 슬그머니 사라져버렸다. 참 좋은 종목이었는데….K는 누구보다 느린 것을 좋아하는 아이였는지 모른다. 그래서 수업시간에 꾸벅꾸벅 졸고, 게으르고 나태한 모습으로 읽혔지만 속에는 빛나는 알곡들을 채우고 있었던 기쁨의 소유자였는지도 모른다. 철학과 깊이는 천천히 가는데서 나오는 게 아닌가 말이다. 나는 오늘도 천천히 가려고 하는 아이들 틈에서 그들을 이해하고 싶다. 오히려 그들의 편에 서서 핑핑 돌아가는 세상을 비웃고 싶다. `좀 천천히 가면 어때! 거기 진리가 있을지 모르잖아!`라고 위로해주면서….미국 뉴욕 주에 있는 알바니 프리스쿨에 제시라는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은 학생이 전학왔다. 제시의 어머니는 마약중독자였다. 일곱 살에 형이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죽었다. 사실상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던 삼촌 역시 프리스쿨에 다니는 동안 죽었다. 제시는 충동적이고, 공격적이며, 우울과 슬픔, 고통, 불안, 분노 등을 늘 주변에 표출하는 아이였다. 프리스쿨은 제시에게 `일 년 정도 아무런 학습활동 없이 지낼 수 있다. 학교에서 네가 원하는 대로 해라`는 지침을 줬다. 학습시간표와 끊임없는 평가의 압력으로부터 해방되고, 행동 감시로부터 해방된 제시는 다른 아이를 괴롭히고 마음대로 하는 아이가 되는 듯했지만 점차 주변학생들의 제지로 스스로 훌륭한 학생이 돼 간다. 제시는 품행이 나아지기 시작했으며, 불규칙하게 참석하던 수업에 흥미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제시에게 학교수업에 참가해야하는 절실한 의미가 생겨났고, 결국 짧은 시간안에 그동안 뒤처져있던 학력을 극복할 수 있었다.우리나라의 어떤 학교가 학생을 두고 `어떤 수업도 할 필요가 없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학력이 뒤처진 학생의 부모에게 `더 이상 걱정하지 말고 내버려 두세요`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학생이 학습에 스스로 투자할 마음을 먹기만 하면 언제든지 학습 진도를 따라가는 성과를 거둘수 있다는 신념을 가진 학교가 얼마나 될까. 그저 자전거 천천히 타기의 우승자였던 K군처럼 학생 스스로 치유되기를 바라는 것은 학교 스스로 교육력의 한계를 드러내는 일이다. 이미 학교는 이보다 더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학생들의 등교거부와 학교폭력, 상시로 욕지거리를 하는 부정적 언어문화, 자살·불안·분노에 사로잡힌 신경증에 걸린 아이들이 늘어나는 추세다.미국의 프리스쿨은 `자전거 천천히 달리기`와 같은 철학을 가진 학교라는 생각이 든다. 경쟁사회에서 오히려 거꾸로 편하게 내려놓기를 권유하는 학교이니 말이다. 이런 철학이 바탕을 이루게 된다면 우리 교육의 한계를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2012-11-23

가을에는 책과 함께

▲ 손진대 영문학 박사진부한 표현이기는 하지만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니까, 이번 가을은 리딩(reading)과 라이팅(writing)으로 책의 세계에서 보내보자. 리딩은 우리의 세계를 확장해 주고, 생각을 넓게, 또 깊게 해주며, 우리의 어휘력을 풍부하게 해준다. 라이팅은 마음 속 깊이 지니고 있는 우리의 삶에 대한 내면의 생각을 정리하는 기회를 준다. 다른 사람의 글을 읽을 때 그냥 읽지 말고, 글을 쓴 사람이 어떤 생각으로 그런 어휘를 사용했는지 어휘 하나하나의 선택을 눈여겨 살펴보아야 한다.책을 읽지 않으면 실력이 뒤떨어지게(backslide) 된다는 연구가 있다. 리딩(reading)은 반드시 학생들이 직접 선택한(self-selected), 재미있는 리딩(enjoyable reading)을 하도록 해야 한다. 즉 재미로 읽는 독서(pleasure reading)가 영어읽기 실력을 높이는 것이다. 자유롭게 직접 자신이 원해서 읽으면(free voluntary reading) 읽기 성적이 올라간다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점은 리딩 점수가 올라간 것보다는 학생들이 읽기를 좋아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책이 많은 환경에서 책을 쉽게 접할수록 (access to books) 학생들이 책을 많이 읽게 되고, 책을 읽기 싫어하는 학생들도 주위에 책들이 많으면 책 읽기를 좋아하는 학생으로 바뀐다.지겨운 일반적인 독후감(book report)은 강요하지 말고, 대신 읽은 책 내용을 친구나 형제와 토론하도록 해보자. 여러 소그룹의 학생들이 똑같은 책을 똑같이 읽고 함께 토론하고 느낀 점을 같이 써보는 것(reading log)이 더 의미가 있다. 집이나 도서관에 책이 많이 있는 환경을 접하도록 만들어주고, 리딩 자체에 대해 자녀가 긍정적인 태도(positive attitude toward reading)를 가지도록 격려하고, 자녀가 책을 읽는 재미를 발견하고, 리딩 자체를 좋아하도록(love of reading), 그래서 리딩에 푹 빠지도록(hooked on reading) 하고, 자녀가 자신감 있고 능숙한 독서가가 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필자가 강조하고 싶은 점은 학생들이 읽은 책의 내용에 대해 비판적(critical) 판단력으로, 곰곰이 되새겨 숙고해 보며(reflective), 그 느낌을 자신 있게 글로 써 보아야 된다는 것이다.리딩은 우리의 어휘력(vocabulary)을 증가시키고, 우리의 작문 스타일(writing style)을 발전시키며, 우리의 세계를 이해하고, 타인의 생애에 대해서도 배우고, 우리 자신의 삶을 더 이해하게 도와준다.자녀들에게만 책을 읽으라고 하지 말고 온 가족이 시간을 내어 책을 읽자. 부모가 책을 읽는 모습을 자녀들에게 보여줘야 리딩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자녀들에게 줄 수 있다. 부모들은 TV를 보고 있으면서 자녀들에게는 책을 읽으라고 하면 설득력이 없다. 책 읽는 일을 패밀리 액티비티(family activity)로 포함시키자. 얼마나 많은 책을 읽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책을 읽고 난 뒤 무엇을 생각하는지(thinking), 그리고 그 책 내용에 대해 얘기해 보고 써보는 일(communication)이 중요하다. 학생들이 읽은 책의 내용에 대해 비판적(critical) 판단력이 있고, 숙고해 보며(reflective) 그 느낌을 자신 있게 글로 써 보아야 한다. 저자(author)에 대한 연구(research)도 해 보고, 저자의 의도(author`s intent)에 대해서도 글로 써보도록 하는 것이 글쓰기의 좋은 예가 될 것이다.

2012-11-15

대선주자 `자이텐 벡셀`의 경영학을 생각할 때

▲ 김부환 유럽경제문화연구소장여당 박근혜 후보와 야권의 단일후보가 맞붙을 경우, 누가 승산이 있을까. 많은 여론조사에 의하면 용호상박이요, 초박빙이자 오리무중이다. 야권의 문재인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 중 누가 경쟁력이 있고, 누구로 단일화가 돼야 할 것인지에 대한 여론 또한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다. 그런데 세 사람 모두가 공약을 내걸며 자신만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디자인할 수 있을 거라고 단언하고 있다. 추종자와 지지자들도 대선 후보자 못지않게 저마다 자신만만하다.이제 한해가 저물어 가는 연말을 맞이하게 된다. 서유럽 독일 뮌헨 등지의 베네딕트 수도원 등지에서는 이맘때면 의미 있는 수도회가 열린다. 수도회는 기업 경영자들을 중심으로 사회의 리더들이 많이 참여하는데, 현실적이면서도 구도적이고, 참회적인 성격을 띤다. 속세의 경영자를 위한 세미나가 왜 하필이면 수도원에서 이루어질까? 유럽의 많은 기업들이 연구하고, 현대와의 접목을 시도하려는 이른바 `베네딕트 모델`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뭘까? 중세 중반의 수도원은 기업과 유사한 점이 많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일반 기업과는 달리 종교적인 임무와 사회적 의무를 동시에 띠었다는 점이다. 베네딕트 수도원은 공동체의 규율을 정하고, 엄격한 운영 방침에 따라 수도원을 운영했다. 나중에는 농업뿐만 아니라 상업과 제조업에도 관여했는데, 적자를 기록한 수도원에는 어김없이 퇴출 명령이 떨어졌다.유럽의 많은 기업인이 베네딕트 모델을 연구하고 있다.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 열리는 베네딕트 수도원의 수도회에 참가한 독일 및 유럽 각지에서 온 경영자들은 “너 자신을 먼저 해고하라.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도 책임을 주어 일을 수행토록 해보라”는 등의 말들을 되새기며 묵상한다.텔레비전도, 전화도, 라디오도 없다. 수녀들과 함께 묵상하면서 평상시에 행한 자신들의 업무에 대해 깊은 비판과 자성의 시간을 가진다.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동료를 보면서 무엇을 생각했는가? 어떤 동료가 해고 됐을 때, 혹은 자신이 원했던 위치를 가로챘을 때 어떤 생각을 했는가?독일에는 `자이텐 벡셀(Seiten Wechsel)`이라는 말이 있다. 영어로 옮기면 사이드 체인지(side change). 축구 등의 구기 종목에 쓰이는 이 용어는 경영학에도 쓰이고 있다. 축구 경기에서 상대 수비 진영을 교란시키는 중요한 전략 중 하나가 측면돌파다. 축구에서 한 측면만을 공격하는 것보다 양 측면을 번갈아 공격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자이텐 벡셀`에는 훨씬 포괄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균형잡힌 눈길로 좌우를 번갈아 보기, 나와 상대를 번갈아 보기, 바뀐 입장에서 서로를 깊이 이해하자는 역지사지의 지혜까지 포함돼 있다. 사실 말이 쉽지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 보는 것만큼 어려운 것도 없다.왜 느닷없이 `자이텐 벡셀`을 이야기하는 것일까? 18대 대선이란 큰 게임이 코앞에 있다. 이제 저마다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낸 정치공약과 함께 화려한 토론들이 펼쳐질 것이다. 그러나 많은 국민과 유권자들은 과연 어떤 모습을 진정 보고 싶어 할까? 공약은 기본이다. 거기에 플러스알파가 깊이 배어 있어야 한다. 깊은 성찰과 고뇌, 그리고 자숙의 태도 말이다. 그런 태도라면 국민이 믿어주지 않겠는가. 그 정도면 공약에도 땀과 눈물이 어느 정도까지는 스며있을 것이라고.

2012-11-08

사람을 바꾸는 말

▲ 조현명 시인자존감에 대해 연구를 진행한 하버드대 조세핀 킴 교수는 어릴 때 부모로 부터 `괜찮아 잘될거야`, `네가 가진 것에 감사하렴`, `너는 내게 정말 소중해` 라는 말을 들으면서 성장했다고 한다. 자존감은 자기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말하는데,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서 높은 자존감을 가졌지만 부모나 주변사람들과 관계하면서부터 자존감에 상처를 입고, 자존감이 낮아지기도 한다. 그래서 돌이킬 수 없이 낮아진 자존감으로 사회에 물의를 일으키는 범죄자가 되거나 자신을 부정하고 죽음에 이르는 자살을 선택하기도 한다.조세핀 킴 교수에 의하면 높은 자존감을 가진 아이들이 그렇지 않는 아이보다 학습능력이나 사람들과의 관계 등 다양한 면에서 높은 능력을 나타낸다고 한다. 이토록 중요한 자존감을 우리는 왜 몰랐던 것일까. `너 게임 하지 말고 공부 좀 하렴`,`성적이 이렇게 밖에 되지 않은 걸 보니 이제껏 놀았던 결과야`, `너는 누굴 닮아서 이렇게 밖에 못해` 이런 말들을 아이들을 향해 마구 해대었던 자신이 부끄럽다.하버드 학생들이 어린 시절에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을 적어보라고 하자 거의 대부분 `Everything is going to be OK` 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우리말로 옮기자면 `다 괜찮을 거야`라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학생들에게 조사를 해보니 제일 많이 들은 말은 `공부 열심히 해라`라는 것이었다. 이래서 우리나라의 청소년 자살률이 높은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게 된다.`말이 씨가 된다`는 우리나라 속담이 있듯이 자라나는 아이들을 향해 말을 잘 해야겠다. 우스개로 하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도 있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잘 살게 된 것은 다름이 아니고 옛날 우리네 어머니들이 아이들이 코를 찔찔 흘리는 것을 옷소매나 나뭇잎 따위를 대고 `흥흥 ,흥 해라`라고 하는 바람에 그렇다는….긍정적인 말은 사람을 움직인다. 에모토 마사루는 인간의 생각이 물에 전달되고, 물을 얼려 그 결정의 모양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아름답거나 추하거나 변화가 있다는 실험 결과를 책 `물은 답을 알고 있다` 에 발표해 널리 알려진 사람이다. 그는 물에 기도를 하거나 종이에 글자를 적어서 물을 담고 있는 용기에 두르면 특별한 효과가 일어난다고 실험적으로 주장했다. 사람의 몸은 70%가 물이라고 한다. 에모토 마사루에 따르면 주변에서 주어지는 말과 언어에 의해 사람은 계속 변화되는 존재다. 긍정적인 말과 부정적인 말에 의해 천국과 지옥을 왔다 갔다 하는 존재, 하루에도 몇 천 번 아름다워졌다가 추해졌다가 왔다 갔다 하는 존재 라는 말이다.나는 오늘도 나를 건강하게 하고, 즐겁게 하는 말과 글귀를 찾아 나선다. 말과 글이 나의 마음을 기쁘게 할 뿐만 아니라 내 몸의 물들을 아름다운 결정체로 바꾸어준다니 삶의 가치를 높이는 가장 훌륭한 비결이다. 좋은 시나 좋은 글귀를 만나면 오래오래 즐거움이 머문다.내가 요즈음 책상 앞에 붙여놓고 즐거운 마음을 갖는 글귀는 `낯빛이 음울하지 아니하며, 명랑하여 기쁨이 샘솟는 자`이다. 1920년대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나온 교회학교 교사의 자격 중 하나인데, 마음에 깊은 울림이 있어 벌써 6개월 넘게 간직하고 있는 말이다. 또 하나는 `정서에 좋은 과자`이다. 아들과 같이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렀을 때 일이다. 아들은 뻥튀기 과자를 골라들었다. 내가`너 생각보다 소박하구나. 뻥튀기를 골라드는 건 좀 의외인데`라고 하자 `아빠 이건 정서에 매우 좋은 과자야`라고 했다. `정서에 좋은 과자`란 말이 갑자기 마음을 환하게 열었다. 뻥튀기를 그렇게 생각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뭔가 새롭게 규정해주는 울림이 있는 문구였다. 그 뒤부터 나도 뻥튀기 과자를 좋아하게 됐다. 입에 한 조각 떼어 바스락거리면서 `음, 정서에 좋은 과자`라고 생각하면 정말 내 마음이 순화되고, 스트레스가 다 날아가고 기분이 좋아진다. 이처럼 긍정적인 말들은 사람을 바꾼다.

2012-11-01

세종대왕이 위대한, 사소한 이유

▲ 박현수 시인·경북대 교수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의 위대함은 누구나 다 느끼고 인정하는 바이다. 나는 첫 아이의 이름을 지을 때 고민을 하면서 세종대왕의 위대함을 새삼스럽게, 그리고 뼈저리게 느끼게 됐다. 나는 첫아이의 이름을 순수한 우리말로 짓겠다고 다짐했다. 이름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삶이 가장 온전하게 담겨 있는 고유어로 짓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이름에는 들으면 그 의미를 바로 알 수 있게 해주는 자명함이 있다. 가령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朴赫居世)라는 이름도 당시 사람들이 부르던 `불구내(弗矩內)`의 음차로 알려져있다. `밝은 누리`를 뜻하는 `밝은뉘`의 음을 번역한 것이 혁거세이며, `박`이라는 성은 우리말 `밝`을 임시로 표기한 것이다. `밝은뉘`를 한자 `혁거세`로 표기하고 부르는 것은, 영어가 대세가 된 지금으로 치자면 영어로 `브라이트 월드(Bright World)`라 표기하고 부르는 것과 같다. `혁거세`나 `브라이트 월드`와 달리 `밝은뉘`에는 그냥 들으면 그 뜻을 알 수 있는 자명함이 있다.순수 우리말로 이름을 지으면 한자를 외워야 하는 불필요한 노력도 없앨 수 있다. 당연히 오행(五行)에 따른 돌림자를 쓰지 않아도 된다. 족보에 따르면 내 이름의 `수(洙)`(물 이름 수)가 돌림자인데, 이는 오행의 수(水)를 반영한 것이다. 오행의 순서가 `목(木)-화(火)-토(土)-금(金)-수(水)`이니, 아버지의 돌림자는 금(金)을 반영한 `종(鍾)`이었다. 그러다 보니 쇠 금자의 경우 가문마다 현(鉉: 솥귀 현), 석(錫: 주석 석), 철(鐵: 쇠 철), 호(鎬: 냄비 호), 진(鎭: 누를 진), 은(銀: 은 은) 등이 사용된다. 이런 경우에는 이름의 자명함은 물론이고, 한 사람의 개성이나 그에 대한 존중이 부족하다.첫아이가 태어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우리말 사전과 각종 시집을 뒤져 몇 가지 이름을 지었다. 가슴 한편으로 뿌듯함을 느꼈다. 그러나 아이의 탄생을 축하하러 온 형들의 충고가 잇따르면서 뿌듯함은 곧 불안감으로 바뀌었다. 형들은 너무 별나게 하지말고 보통 사람들처럼 한자어로 이름을 짓는 게 좋다고 충고했다.그래도 나는 순우리말 이름을 선택했다. `아름답고 예스럽다`는 말에서 `예`를 따오고, `슬기롭다`에서 `슬`을 따와서 `예슬`이라 지었다. 일말의 불안감 때문에 한자어와 비슷한 맛이 나게 지은 셈이다. 동사무소 직원이 “한자는 없냐”고 할 때 마치 죄지은 사람처럼 조그맣게 “예”라고 대답하고, 겨우 출생신고를 마쳤다. 그런 후에도 나는 `아이의 이름이 너무 낯설고 어색해서 놀림감이 되면 어쩌나`하는 불안감을 떨치지 못했다. 그러다 인터넷에서 `박예슬` 이름을 검색하고 나서는 불안감을 깨끗이 떨쳐버렸다. 세상에, `박예슬`이란 이름이 그렇게도 흔할 줄이야. 흔하다는 사실에서 위안을 얻은 경우는 이때가 처음이었다.우리말로 아이 이름 하나 짓는 데도 이처럼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세종대왕이 새로운 문자를 만드는 일은 얼마나 큰 고난의 길이었을까. 한글 창제를 반대한 사람들은 지금까지 한자를 쓰며 잘 살아왔는데, 새 글자를 만들어 외교문제를 일으킬 필요가 있느냐고 했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니었다. 한자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세종대왕으로서는 한글이 없어도 문자생활을 하는 데 아무런 불편이 없었다. 오로지 백성들의 편의를 위해서 만든 것이다. 훈민정음 서문에 `내 이를 위하여` 하고 주어를 분명하게 밝힌 것도 이 때문이리라. 바로 여기에 세종대왕의 위대함이 있다.나는 여기서 대왕의 더 위대한 업적은 새로운 시도를 마음껏 할 수 있는 시대를 만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새로운 시도 앞에 장벽을 쌓아놓지 않은 사회, 새로운 문으로 들어가기에 문턱이 없는 시대, 그런 열린 시대를 만든 것이야말로 세종대왕의 위대함을 웅변하는 게 아닐까. 아이 이름 짓는 것처럼 사소한 일이건, 새로운 글자체계를 만드는 위대한 일이건 말이다.

2012-10-26

나무에서 배우는 경영지혜

▲ 손경옥 포항성모병원장우리병원 주위에는 나무가 많다. 출퇴근하면서, 산책하면서 나무에 대하여 생각을 참 많이 하게 된다. 계절의 변화에서 보면 봄이 오면 새싹을 틔우고, 여름이면 화려한 꽃을, 가을이면 결실을, 겨울이 오면 잠시 성장을 멈춘 채 휴식을 통해 새로운 성장을 준비한다. 나무의 생명력을 유지하는 순환은 어디에서 시작되고 끝나는지 알 수는 없지만 끊임없이 그것을 이어가는 나무는 나에게는 위대한 스승이고, 닮고 싶은 모델이며, 부족한 나에게 경영의 지혜를 많이 가르쳐 준다. 우선 우리병원의 소중한 정원사 공대구 아저씨의 움직임에서 많은 힌트를 얻는다.첫째로 가지치기다. 나무를 가꾸는 과정 중 가장 중요한 것이 가지치기이다. 진정한 의미의 가치치기는 단순히 죽은 가지를 쳐내는 것이 아니다. 가지가 너무 무성하면 열매를 맺는데 지장이 있고, 자원은 한정돼 있기에 성과를 창출하고 있더라도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가지치기는 무엇일까, 우리병원에 있어 가지치기는 무엇일까 생각해본다.둘째는 거름주기다. 거름은 토양이나 식물을 크게 변화시키지 않으면서 성장을 촉진시키는 요소다. 공대구아저씨는 나무가 아픈 것을 귀신같이 안다. 가뭄이 계속될 때 아저씨가 물을 주고나면 그제야 하늘도 눈치 채고 비를 내려준다. 나에게 있어서 거름을 준다는 것은 무엇일까? 스스로 휴식을 취하며 자신을 사랑하는 것부터이다. 직원들에게 자긍심과 보람을 느끼도록 활력을 불어넣는 것과 일상생활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작은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다.셋째는 토양 일구기이다. 토양을 일구는 것은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데 꼭 필요한 요소다. 독자적인 철학과 사상의 토양을 가꾸려면 정체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 존재이유와 고유한 업무에 대해, 그리고 이 시대가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고, 병원의 핵심가치와 비전이 고객들에게 신선하면서도 바르다는 평가를 받아야 병원은 지속생존을 보장받을 수 있다.우리는 하나하나이지만 외부에서는 병원이라는 숲을 바라볼 것이다. 이 큰 숲이 생명을 이어가려면 다양성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 단일문화로 강하게 결속되어 있는 조직이 우수한 것 같지만 경쟁이 치열해지고, 위기가 왔을 때는 곤경에 처하게 된다. 그러나 다원화된 조직이 다양하게 결속돼있다면 더 좋은 성과를 내고, 발전의 폭이 두텁고 단단하다.또 상호 공생해야 한다. 생명이 생겨나기만 하고 소멸하지 않는다면 숲은 건강하게 자랄 수 없다. 숲을 이루는 모든 동식물은 아무런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치열한 생존경쟁을 하고, 결국 숲의 모든 구성원들이 상생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 공생을 위한 소통문화, 상호신뢰, 협력적인 조직문화를 만들어나가야 한다.끝으로 회복력이다. 병원이 살아남으려면 위기가 닥쳤을 때 생존하는 법을 익히는 것이 중요하다. 위험을 극복할 수 있는 조직내성이다. `한사람은 모두를 위해, 모두는 한사람을 위해서`(One for all, All for one)가 중요하다. 지난 볼라벤 태풍 때 커다란 나무가 태풍을 견디어내는 것을 보았다. 거센 바람이 몰아칠 때 모든 나뭇잎은 바람 부는 방향으로 모두가 하나를 위해, 하나는 모두를 위해 버티는 것을 보았다. 본인의 일에만 신경 쓰지 않고 한 명은 전체조직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전체는 한명을 위해 하나가 되어 도와주는 것을 나무에게서 배웠다. 이 가을에 자신을 돌아보며 주위를 둘러보며, 한 단계 성숙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겠다. 함께하는 동료들에게도 진정한 나무가 되고 싶다.

2012-10-25

책을 발간하려는 사람에게

▲ 하재영 시인밤 이슥토록 시를 읽었다. 도회지 고층 아파트라 그런지 가을밤인데도 귀뚜라미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여러 권의 시집을 늦도록 넘기며 많은 생각을 했다. 그 중 예순 넘은 나이에 시 공부를 시작해 고희를 넘긴 분의 시도 읽었다. 삶의 후반부에 머문 그분의 시는 젊은이들의 장기라 할 실험정신은 없었지만 살아온 지난날들의 애환을 작품에 고스란히 담으려 노력했다.많은 사람들이 나이 들어 하고 싶은 것 중의 하나가 `자서전`격인 책을 묶고 싶어 한다. 물론 능력이 될 때 가능한 일이지만 자신이 쓰지 못하면 누군가를 통해 대필까지 하여 발간하려 한다. 노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들의 지난 삶이 몇 권의 소설이 되고, 드라마가 된다고 들려준다. 어찌 보면 일제강점기를 거쳐 남북전쟁을 겪은 우리나라 사람치고 파란만장한 삶을 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그렇다고 모두가 책을 낼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다. 자비 출판이라 하더라도 책을 내는 데는 경제적 문제부터 시작해 여러 가지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이다.그럼에도 옛날과 비교한다면 요즘은 책 내기가 쉽다.컴퓨터 출현으로 누구든지 자신의 이야기를 자판으로 두드리고, 저장하고, 다시 꺼내 퇴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판에 뛰어든 사람들의 단골 메뉴가 선거를 앞두곤 책 발간과 함께 출판기념회를 연다. 자신을 홍보할 뿐만 아니라 정치적 후원금을 모을 수 있기 때문이다.책을 묶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떠오른다. 책은 자신의 이름을 오랫동안 남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중의 하나다.책을 발간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시 읽기를 권하고 싶다. 시는 산문과 달리 많은 것을 함축한다. 장구하게 긴 이야기를 풀어놓는 것도 좋지만 그것보다 긴 이야기를 몇 줄로 요약할 때 글은 아름답다. 짧은 시 한 편에는 책 한 권의 내용도 담을 수 있다. 함축된 문장으로 빚은 시는 병원을 찾은 환자에게 처방하는 약처럼 인간의 마음을 후련하게 해주는 카타르시스도 있다.그것과 함께 자신의 진솔한 삶을 책으로 엮으려는 사람들에게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꼭 들려주고 싶다.“노란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안타깝게도 나는 두 길을 갈 수 없는/한 사람의 나그네 오랫동안 서서/한쪽 길이 덤불 속으로 꺾여 내려간 데까지/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보았습니다/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선택했습니다/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거기에는 풀이 더 우거지고 사람이 걸어간 자취가 적었습니다/하지만, 그 길을 들어감으로 해서/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입니다만” - 후략.풀이 더 우거지고 사람이 걸어간 자취가 적은 길을 선택함으로써 모든 것이 달라졌다는 시는 우리에게 많은 회한과 아쉬움을 갖게 한다. 모든 사람들이 살아오면서 경험했을 것이다. 내가 그 때 이것을 선택하지 않고 저것을 선택했다면….한층 길어지고 깊어지는 가을밤이 우리 곁에 있다. 맑은 종소리 같은 시 한 편 가을밤 가운데 촛불처럼 켜보자. 정신이 맑아지면서 우리의 영혼에 이슬처럼 영롱한 물방울이 맺힐 것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지는 온갖 출판물로부터, 언론을 통해 듣게 되는 사회 폭력으로부터 시는 우리의 마음을 평화롭게 할 것이다. 그런 것들이 더 좋은 자신의 책을 발간하는 힘이 될 것이다.

2012-10-12

북한이 다시 도발을 한다면

▲ 김영문 한동대 교수북한이 다시 도발을 감행할 것인가? 대선을 앞둔 국민들의 중요 관심사 중 하나이다. 북한은 1953년 휴전협정 이후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주요도발 221회를 비롯해서 2660여회의 도발을 자행해 왔다. 북한의 도발패턴은 지금까지 유화-공세-도발을 번갈아 되풀이하는 형태로 이어졌다. 이를 볼 때 2009년 2차 핵실험 이후 유화기에 이어 2010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의 도발기를 거치면서 다시 지난 2년간 도발 없는 유화기에 있는 것으로 보아 지금은 공세기에 접어든 것이 아닌가 추측해 본다.북한의 도발 가능성을 예측해 보면 3대 세습이 공고히 되기까지 올 수 있는 정치적인 불안감과 신경제 조치 후 개선되지 않는 경제난으로 인한 내부불만을 외부로 전환하려는 대내적인 측면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대선을 앞두고 있는 미국에 군사적 긴장을 격화시킴으로써 미·북 평화협정과 같은 대북정책 전환을 위한 대외적인 측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김정은 정권이 강력한 인권유린을 이용한 공포정치를 통해 사회 통제력이 강화되고 있는 것이나 그 어느 때보다도 한미동맹관계가 돈독하게 유지되고 있는 현실 하에서는 이러한 도발을 예측할 수는 있지만 다소 설득력이 부족한 것 같다.그러나 대선을 앞둔 현 시점에서 북한은 대남공갈과 남남갈등 유발을 목적으로 도발할 것이라는 예측이 가장 크게 대두되고 있다. 도발을 이용한 전쟁 공포감의 조장은 현 집권여당의 대북정책이 잘못된 것으로 비난받게 하므로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후보선출의 분위기 조성에 한 몫 할 것이다. 그리고 전쟁공포감으로 인한 남남갈등은 정부정책을 불신하는 정부와 국민 간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국민과 국민 간의 이념갈등으로 확산될 것이며 북한의 정책을 무조건적으로 옹호하는 친북세력이 합세함으로써 천안함 폭침사태 이상의 극심한 남남갈등으로 확대될 것이다.최근 들어 북한어선이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6차례나 잇달아 침범하더니, 지난 달 29일에는 북한 국방위원회 정책국 대변인이 남한이 `북방한계선`을 견지하므로 한반도 서부해역의 정세가 일촉즉발의 전쟁국면에 놓여있으며 `연평도 불바다`를 다시 한번 만들려는 것이라고 공갈적인 발언을 했다.이를 볼 때 혹 북한이 재도발의 명분을 쌓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북한의 대남적화 전략의 방향은 남한사회 내 민족해방과 인민정권 수립을 통한 민주주의 혁명과업 완수에 두고 있다. 그리고 김정은 북한국방위 제1위원장이 올 1월1일 노동당 산하 대남기구인 반제민전(반제민족민주전선)에 내린 대남명령 1호는 `올해 남한의 총선과 대선에 적극 개입하려는 의도`를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를 볼 때 자신들이 유리한 입장을 만들어 갈 필요에 따라 도발을 시도할 이유가 충분하다.만약 북한이 또다시 도발을 감행한다면 우리 군은 이제 그 어떤 종류의 도발도 강력히 응징해야 한다. 그리고 국민들은 이러한 군을 신뢰하고 적극적으로 힘을 실어줘야 할 것이다.진정한 안보는 전쟁이 두려워 돈 주고 쌀 주고 달래는 것이 아니라 무력에는 무력으로 당당하게 대응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국가안보가 무너지면 국가존립의 기본적가치가 없어지는 것이다. 안보의식을 고취시키는 일은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일인 것이다.필사즉생이라 하지 않는가. 안보만큼은 국민 모두가 죽기를 각오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응할 때 지킬 수 있는 것이다. 그래야 이 땅에 북한의 도발이 발을 붙이지 못할 것이다.

2012-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