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을준 대통령소속 사회통합위원회 경북지역협의회 위원·경영학박사인간은 왜 사회를 이루고 살아갈까? 왜`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라고 했을까? 물론 그것은 인간이 사회라는 공동체생활을 영위하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것에 비해 인간이 생활하는데 더 큰 편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경영학의 대가인 짐 콜린스는 “인류 역사상 최고의 발명은 사회의 창안(social invention)이다” 라고도 했다. 그래서 우리는 사회·경제적인 발전과 함께, 그 규모도 지속적으로 확대되면서 도시화·수도권화 그리고 지구촌화로까지 발전했고, 더 나아가 우주촌의 시대로 갈 것이다. 이와 같이 사회는 인간들에게 더 큰 가치와 편의성을 도모하기 위해 탄생됐지만, 지금의 우리 사회는 모두의 사회가 아니라, 반쪽도 안 되는 구성원의 사회 즉, 사회 구성원의 25%(4분의 1) 수준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편중되고 왜곡된 사회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이 사회의 구성원들 간에는 경제적 편중, 정보·지식의 편중, 권력과 권한의 편중 등의 심화로 더 큰 갈등과 더 깊은 이해적 충돌이 일고 있는 것이다. 남북·동서 간 이념의 심화, 기득권자와 비기득권자 간 갈등, 진실과 거짓의 논쟁 등 모든 측면에서 사회적 문제가 첨예하게 대두되어 사회적 긍정의 본질이 왜곡되고 있다.이 사회는 구성원 모두에 필요성이 있고 대중이 행복할 때, 그 진정한 가치가 있다. 사회적 기득권자 20%가 판을 치면 80%는 불만을 갖게 되고, 10%의 경기나 게임에서 승리한 자만 대우 받는다면 90%의 패자는 설 자리가 없는 불행한 사회가 된다. 또 내가 상대방을 이기려고만 하고 우월적인 위치만을 추구한다면, 그 사람은 평생 불행한 삶을 살아갈 것이다. 우리는 생산과 소비가 유기적으로 잘 연관될 때 경제가 좋아진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맹자의 어머니가 맹자에게 좋은 교육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 세 번 이사한 일)라는 말과 같이 좋은 이웃이 나에게 도움이 된다. 즉, 자기 자신과 상대방간에 소통하고 좋은 관계는 윈-윈(win-win) 관계가 되지만, 나만 잘나고 나만 이득 보는 관계는 윈-루즈(win-lose) 혹은 루즈-루즈(lose-lose) 관계가 된다.인간의 궁극적인 목적은 즐겁고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 즐거움과 행복은 윈-윈 하는 사회에서 가능하다. 이는 경제력, 가정환경, 많이 배움 등 외부 요인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 간에 긍정의 소통을 통해 내면의 성취감, 인정감, 만족감으로 일어난다. 즉, 상대방에겐 존경심을 자신엔 겸손의 자세로 대하면 존경심은 상대에게 2배가 되고 자신에 대한 만족감 또한 2배가 된다. 이것은 상호간에 무형의 가치가 발생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서로가 중요한 선물을 받은 꼴이다. 선물을 받아 기분 나빠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 무형의 선물은 한번 받으면 영원히 사용할 수도 있고, 정성만 있으면 언제나 누구에게나 기분 좋게 줄 수 있는 것이다.20세기 최고의 리더인 젝 웰치는 “세계최고의 기업인 GE를 20년간 경영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구성원들의 보이지 않는 마음의 벽과 조직의 벽을 허무는 것”이라고 했다고 한다. 우리들이 겪는 사회적 갈등은 마음의 벽을 허무는 소통의 문제이다. 자신이 먼저 마음의 문을 열고 내가 먼저 주변에 따뜻한 손을 내밀 때, 우리 사회는 루즈-루즈(lose-lose)가 아닌 윈-윈(win-win) 사회가 될 것이다.
2012-0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