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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에 넘긴 두 권의 책

등록일 2012-08-23 21:45 게재일 2012-08-23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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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재영 시인

여름이 손을 흔들고 있다. 이번 여름은 런던 올림픽에 출전한 우리 선수들의 시원한 금메달 소식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더위로 고생했다. 갈증의 유혹에 찬물을 들이켰음에도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금세 찬물을 찾게 되었으니 말이다.

더위를 쫓기 위한 피서는 개인마다 독특한 체험에서 얻은 방법을 동원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아직도 조상들의 피서법을 따라 죽부인과 부채를 곁에 두기도 하고, 어떤 이는 책이 많은 도서관으로 떠나기도 했다. 모처럼의 휴가를 맞은 직장인은 황금 같은 시간을 보다 즐겁고, 알차게 보내기 위해 나름대로의 피서지를 찾는다.

몇 년 전부터 더위를 이기기 위한 방법으로 한여름이면 `그리스 로마 신화`와 `삼국유사`를 곁에 두고 있다.

두 책은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흥미를 갖고 읽을 수 있는 책으로 인물 중심, 사건 중심으로 부분부분 넘겨보아도 무방한 책이다.

신화는 고대인의 사유나 표상이 반영된 신성한 이야기. 우주의 기원, 신이나 영웅의 사적(事績), 민족의 태고 때의 역사나 설화 따위가 주된 내용이다. 이렇게 볼 때 세계사에 있는 많은 이야기의 출발은 신화에서 출발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인생은 짧고 예술을 길다`란 명제보다 한 단계 위에 `예술은 짧고 신화는 길다`란 문장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는 제우스, 제우스의 아내 헤라, 포세이돈, 아폴론, 아테나, 아르테미스 등 수많은 신이 등장한다. 신뿐만 아니라 수많은 영웅들도 등장한다. `판도라의 상자`, `시지포스의 신화` 등에서는 측은지심을 갖게 한다.

그리스 신화를 읽다보면 그 역사성과 풍부한 상상력에 깜짝 놀라게 된다. 기원전 2천년 경의 이야기들이 구전으로 내려오다 B.C. 800년 경 호메로스에 의해 기록된 것이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다. 이것에 바탕을 둔 그리스 신화는 국경을 벗어나 오늘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시사(示唆)한다.

고야가 그린 `자식을 삼키는 크로노스`처럼 그리스 신화는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창작의 밑불이 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는 지역에 따라 다양하게 구전되었다. 이런 이야기들을 불교적 시각에 바탕을 두고 일연 스님이 기록한 책이 `삼국유사(三國遺事)`다. 삼국유사는 김부식(富軾)이 편찬한 `삼국사기(三國史記)`와 더불어 현존하는 한국 고대 사적(史籍)의 쌍벽으로 알려진 책이다. 야사(野史)로 우리의 단군신화도 기록되어 있는 소중한 책이다.

오늘날 경제성장에 따른 지역성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작업으로 삼국유사의 어느 부분이 새롭게 인용되기도 하고, 신화적으로 부각되기도 한다.

그 대표적인 일이 포항지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연오랑 세오녀` 사업일 것이다. 서기 157년 신라 제8대 아달라 이사금 때에 있었던 일의 기록이다. 그 중 한 대목을 인용하면

“내가 이 나라(일본)에 온 것은 하늘이 시킨 일이니 이것으로써 하늘에 제사를 지내면 될 거요.”

즉 연오가 일본 땅에 머물자 신라 땅에 빛이 없어졌을 때 찾아온 신라 사자(使者)에게 비단을 주며 한 연오의 말이다.

최근 되돌아오지 않겠다는 연오의 오래 전 이야기를 무시하고 `연오랑과 세오랑`을 이곳에 모셔오는 곳이 많은 것 같다. 신화의 나라 그리스엔 그 신화에 어울리는, 기원전부터 존재한 유물유적이 많다. 그렇다고 그것이 그리스 인들에게 오늘의 신으로 새롭게 인식되지는 않는다.

역사적 기록물이 상품 가치로써 부각되는 것은 어느 순간 그 가치가 빛을 잃을 때 무너지게 된다. 더위 속에 읽은 신화에서 우리 지역의 `연오랑 세오녀` 이야기는 해석자들의 시각에 따라 각도가 달라지는데 아무래도 좀 더 그 추이를 지켜봐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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