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현욱 시인·달전초 교사지난 16일, 또 하나의 소중한 생명이 세상을 등졌다. 미처 피우지 못한 아름다운 꽃봉오리가 처참하게 바닥으로 떨어진 것이다. 소식을 접하고 할 말을 잃었다. 어째야 할까, 어째야 할까. 이 땅에 부모와 교사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모든 이들은 가슴을 칠 것이다. 어째야 할까, 어째야 할까.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대중매체를 탓해야 할까, 성적과 외모지상주의, 물신주의를 탓해야 할까. 그것도 아니면 지난 몇 달간 관련 부처에서 내놓은 언 발에 오줌 누는 식의 지린내 나는 대책을 탓해야 할까. 정말 어째야 할까, 어째야 할까. 경쟁과 배제, 권위와 억압의 논리로 교육현장을 황폐화한 정부 관료들이 사퇴하면 이런 가슴 치는 일이 좀 줄어 드려나 어쩌려나.`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제 2조 제1호를 보면 학교폭력의 정의가 명시되어 있다. “학교폭력이란 학교 안이나 밖에서 학생 사이에 발생한 상해, 폭행, 감금, 협박, 약취(훔치거나 빼앗음), 유인, 명예훼손, 모욕, 공갈, 강요 및 성폭력, 따돌림,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음란, 폭력 정보 등에 의하여 신체, 정신 또는 재산의 피해를 수반하는 행위를 뜻한다” 요약하자면, 학교폭력의 유형에는 언어·심리적 유형과 신체·물리적 유형, 집단 따돌림이 있다.언어·심리적 유형에는 언어적 모욕, 별명 부르기, 험담하기, 빈정거리거나 조롱하기, 나쁜 소문 퍼뜨리기, 위협하기, 음란한 눈빛과 몸짓,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것, 카페나 학교 게시판에 협박하는 글 등이 포함된다. 신체·물리적 유형에는 고의적으로 건드리거나 시비 걸기, 때리거나 폭행, 장난, 하고 싶지 않은 일을 강요하는 것, 물건을 이용해 상해를 입히는 것, 돌 던지기, 침 뱉기, 돈이나 물건 감추기, 돈이나 물건 등을 빼앗는 것 등이 있다. 집단 따돌림에는 고의적인 따돌림, 사이버 폭력, 친구를 도우려는 행위를 막는 것, 소지품을 버리거나 감추는 것, 책상을 숨기는 것 등이 해당한다. 이 글을 보고 `저런 것도 학교폭력의 범위에 들어가는구나!` 놀란 독자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저렇게 사소해 보이는 행동들이 소중한 한 생명을 차가운 사지로 내몰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2004년에 제정된`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은 학교폭력에 관한 기준은 제시하고 있지만 `예방`의 측면보다는 `사후처리`가 중심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학교폭력 사건이 일어나면 어떻게 처리할까, 피해자는 어떻게 보호하고, 가해자는 어떻게 처벌할 것인가에만 집중된 것이다. 학교폭력 문제가 발생하면 신속하게 처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절실한 것은 `예방교육과 생활문화 개선`이다.일례로 학교폭력 대응 매뉴얼에 따르면 담임교사가 학교폭력 사실을 알고도 학교에 신고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의 부모가 원만히 해결하도록 했다면 어떨까? 명백한 위법이다. 이러한 사안이 발생했을 때 법률에 따르면 `학교폭력 현장을 보거나 그 사실을 알게 된 자는 반드시 신고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 이런 경우는 어떨까? 어떤 학생이 친구가 듣기 싫어하는 별명은 몇 번 부르고 이상한 소문을 퍼트리는 행동을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법률에 따르면 그 학생을 학교폭력자치위원회에 보고해야 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학교는 어떻게 될까?사실 학교폭력은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비리와 폭력, 불공정과 무한경쟁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다. 학교 차원에서 해결할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와 관계기관에서는 연일 선무당 사람 잡는 식의 험악한 굿판만 벌이고 있다.벌써 얼마나 많은 못다 핀 꽃송이가 하릴없이 바닥으로 떨어지는가! 어째야 할까, 어째야 할까. 하! 채 꽃 피우지 못한 어린 영혼들의 명복을 빈다.
2012-04-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