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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자존감의 비밀

▲ 김현욱 시인·달전초 교사지난 2008년 2월 방송된 EBS 다큐프라임의 인간탐구 대기획 5부작 `아이의 사생활`은 아이를 둔 부모와 현장의 교사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아동기에 대한 치밀하고도 과학적인 실험과 검증은 그동안 품어왔던 여러 가지 궁금증을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 이후 방송에서 다루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보충해 책으로도 발간했는데 비단 부모나 교사가 아니더라도 인간에 대한 호기심이 있다면 누구나 밑줄 그으면서 되새겨야 할 내용이 가득하다. 1부는 아이의 타고난 개성과 두뇌 발달, 두뇌 능력에 따른 효과적인 양육법을 소개한다. 2부는 아들과 딸이 다른 이유와 아이의 두뇌 성향을 눈여겨보는 법, 남녀의 특성에 맞는 교육법을 짚어준다. 3부는 아이의 강점지능과 약점지능 찾는 법과 강점지능을 키우는 비결을, 4부는 아이 나이에 따른 도덕성 발달과 아동기 도덕성 교육의 중요성을 비롯해 도덕성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꼼꼼하게 짚어준다. 마지막으로 5부는 스스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아이, 즉 자존감이 높은 아이로 키우는 양육법을 소개하는데 이 부분이 매우 중요하다.`인간의 짧은 생애에서 작은 상처 하나가 성격을 바꿀 수도 있고, 지나치는 경험이 삶의 태도를 결정짓기도 한다. 아이의 거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단 하나의 비밀, 가장 사소한 것 같지만 가장 깊숙한 곳에서 인간을 조종하는 자존감에 대한 이야기`라고 서문에 밝혀놓았듯이 자존감이 아이의 인생에 미치는 영향력은 실로 대단하다. 전문가들은 다양한 실험과 검증을 통해서 자존감이 왜 중요한가를 밝히고 있는데 실험의 결과는 놀라웠다.미술치료학자 매코버의 자화상 그리기 실험. 12명의 초등학생에게 스스로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 즉 자화상을 그려보게 했다. 그림을 그리는 방법과 종이, 도구는 아이가 결정하도록 했다. 도화지는 16절지, 8절지, 4절지를 준비했고, 그리기 도구는 파스텔, 크레파스, 물감, 색연필, 연필, 매직볼펜 등으로 제공했다. 실험이 시작되자 아이들은 각자 종이와 도구를 골라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어떤 아이는 커다란 종이를 선택해서 자신을 커다랗고 진하게 그리는 반면 또 어떤 아이는 작은 종이에 연필의 가는 선을 이용해 희미하게 그렸다. 두원공과대학 아동복지학과 홍은주 교수는 이런 아이들의 그림을 이렇게 설명했다.“신체 외모는 8~12세 아이들에게 가장 영향을 미치는 요소다. 아이들이 그린 `자신의 모습`에는 자신에 대한 신체에 대한 이미지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 자아를 어떻게 느끼는지도 함께 담겨 있다. 아이들의 그림은 어떤 크기의 종이를 선택했는지, 그리고 그 안에 어떤 모습으로 어떤 크기로 자신을 묘사했는지, 그리고 어느 정도 진하게 아니면 흐리게 힘없이 그렸는지, 다양한 색을 사용했는지, 운동성이 어떤지 등 전체적인 인상을 함께 관찰하게 된다”자존감이 높은 아이의 그림은 밝은색을 이용해 자신을 크고 또렷하게 그리는 반면, 자존감이 낮은 아이는 작고 희미하게 자신을 그렸다. 자신을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아이와 자신은 보잘것없다고 생각하는 아이가 존재하는 이유는 아이들이 가진 `자존감`의 차이 때문이다. `자존감`이란 말 그대로 `자기 스스로를 존중하는 마음`을 뜻한다. 전문가들은 아이에게 자존감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고 말한다. 심지어 미국 하버드대학 조세핀 킴 교수는 “자존감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핵심 요소 중 하나다. 자존감은 학업뿐 아니라 삶의 거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준다”라고 강조한다.그렇다면 아이의 자존감은 어디서 오고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 그 해답은 부모에게 있다. 아이는 부모의 거울이다. 부모의 자존감은 그대로 아이에게 이어진다. 그래도 잘 모르겠다면 당장 도서관으로 달려가 책을 펴보기 바란다.

2012-05-04

멘토가 필요한 글로벌 인재 육성

▲ 손진대 영문학박사 지금의 교육정책은 입시교육을 탈피해 학생을 글로벌 인재로 키우는 것이다. 이를 반영하듯이, 대학과 사회가 원하는 인재상이 바뀌고 있다. 학교 공부만 잘하는 전형적인 모범생보다 창의성과 리더십, 외국어 능력을 갖춘 글로벌 인재가 각광을 받는다. 입시 제도가 날로 복잡해지는 것도 새로운 기준에 부합하는 글로벌 인재를 찾기 위한 과정인 셈이다. 대다수 학생과 학부모가 무엇을, 어떻게 공부해야 할 지 불안해 하고 있다. 명문대를 가기 위한 성적 위주의 공부는 사교육으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학교를 잠자는 교실로 만들고 있다. 이제는 우리가 어떤 인재를 키울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따라서, 학생들의 공부 방향을 잡아주고 글로벌 역량을 키워줄 멘토가 필요하다.성적 위주의 공부만 한 학생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하여, 이제는 교실 환경도 창의적 인재를 기를 수 있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고 대입제도 역시 입학사정관제가 도입돼 학생의 잠재력과 인성 등을 보고 뽑을 수 있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그러나 글로벌 역량으로 꼽히는 토론, 리더십, 창의력 등을 키우기 위해서는 학교 교육에만 의존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사회 각 분야 전문가의 멘토링 프로그램, 기업의 재능 기부 프로그램들이 인기를 모으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이런 추세에 맞춰 학부모와 학생들의 학원 선택 기준도 달라지고 있다. 입시 변화를 좇아가며 공부할 내용만 짚어주는 학원보다 학생에게 구체적인 비전을 수립하게 한 뒤 학습에 동기를 부여하는 곳으로 몰리고 있다. 무엇을 공부하라고 알려주는 대신 공부를 왜 해야 하고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알려주는 곳이 인기를 끌고 있다.막연하게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해 구체적인 체험을 해봄으로써 창의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역량에 이를 때 비로소 비전이 확립될 수 있다. 또한, 학부모와 교육기관은 학생들이 창의적인 사고의 수준에 도달할 수 있도록 세분화된 창의, 리더십 활동을 지원해야 할 것이다.교육 현장에 있는 전문가들은 자녀의 비전과 진로에 대한 고민, 그를 위한 교육환경변화에 대한 인식과 공감 등 학부모에게 절실한 주제에 대해 진솔하게 소통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아울러 학부모와 100% 소통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이다.글로벌 역량으로 탄탄한 영어 실력을 빠뜨릴 수 없다. 단순한 문제 풀이와 암기식 영어 교육을 탈피하고 영어 토론 등을 도입해 차별화된 커리큘럼과 글로벌 리더들에 관한 글을 읽고 토론하는 디베이트(Debate)수업과 세계 명사들의 연설문을 활용해 말하기 능력뿐 아니라 자신감까지 함양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 등이 일선 교육현자에서 적용해 볼 것을 필자가 제안하는 학습방법일 수 있다.최근 NEAT(국가영어능력시험)가 대두되면서 영어 말하기와 쓰기 능력이 강조되는 추세다. 토론 수업 확대와 영어 내신 서술형 문항 출제 비율 의무화, NEAT시행, 대학 수시전형 확대 등 최근 중요시되고 있는 말하기와 쓰기 평가시험 대비를 위한 표현력을 향상하기 위한 프로그램도 도입하고 있다. 디베이트(Debate)수업은 기본적인 말하기 능력 개발에 초첨을 맞췄고, 비판적 말하기,쓰기 특강은 생각을 표현하는 능력을 키워준다. 다양한 주제에 대한 읽기를 통해 배경지식을 습득하고 말하기와 글쓰기 활동으로 연계해 표현력을 개발하는 영어읽기 등은 요즘 학생과 학부모들이 원하는 부분을 담고 있다.NEAT 등 교육정책의 변화에 따라 교육 기업에 대한 학생과 학부모의 요구사항도 계속 변화하고 있으며 교육정책이 어떻게 변하든 간에 학생들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게 기본 역량을 키워주는 데 주목해야 할 때이다.

2012-05-02

좁쌀 한 알 장일순

▲ 김현욱 시인·달전초 교사6학년 국어 3단원은 토의 수업 시간이다. 모둠별로 토의 주제를 정하고 각자 역할을 나눠 맡았다. 일주일쯤 시간을 주니 대개 파워포인트를 만들어 와서 발표를 하는데 어느 모둠의 토의 주제가 `친구들이 존경하는 인물은 누구일까?`였다.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요즘 아이들이 존경하는 인물은 위인전과 스타 사이에 존재한다. 뽑힌 위인으로는 세종대왕, 유관순, 장영실, 안중근, 이순신이 있었다. 현존하는 스타로는 축구선수 메시, 수영선수 박태환, 개그맨 유재석, 스케이터 김연아 등이 나왔다. 그런데 문제는 가장 존경하는 인물 1위에 `없다!`가 뽑힌 것이다. 많은 아이들이 “존경하는 사람 없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존경(尊敬)이란 우러러 받들다는 뜻이다. 삶의 모델로 삼아 우러러 받들 사람이 한 사람쯤 없다면 그 사람의 인생은 얼마나 막막할까? 더군다나 자라나는 이 아이들이 뽑은 가장 존경하는 인물 1위에 `없다`가 뽑힌 것을 보니 마음이 참 헛헛했다.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책 한 권을 선물 받았다. 한 번 읽어보라고 지인이 준 것인데 별 기대 없이 책장을 넘겼다. `장일순이 누구지?` 하며 말이다. 그런데 그날 밤 오랜만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중고등학교 때 밤새워가며 읽었던 헤세의 `데미안`과 박일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신선한 충격을 줬다면 장일순의 사상과 생애가 담긴 `좁쌀 한 알 장일순`은 깊은 울림과 감동으로 다가왔다. `왜 여태껏 이 분을 몰랐을까?`라는 후회와 부끄러움이 들 정도로. 장일순의 생애와 이력은 독자의 몫으로 돌린다. 책에 실린 그분의 말씀 몇 가지를 소개하는 것만으로도 지면은 모자랄 테니까.어느 잡지사 기자가 장일순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어째서 `조 한 알`이라는 그런 가벼운 호를 쓰십니까?” 장일순이 그 말을 듣고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나도 인간이라 누가 뭐라 추어주면 어깨가 으쓱할 때가 있어. 그럴 때 내 마음 지그시 눌러주는 화두 같은 거야. 세상에서 제일 하잘것없는 게 좁쌀 아닌가. `내가 조 한 알이다`하면서 내 마음 추스르는 거지”장일순은 강연할 때 질문을 많이 했다. `지도자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으로 단체장을 모아놓고 강연을 할 때였다. “이 세상에서 가장 고마운 분이 누굽니까?” 어머니라는 대답이 나왔다. “어머니라고 하셨는데, 왜 그분이 고맙습니까? 밥을 해주시기 때문이지요. 똥오줌을 닦아주시기 때문이지요. 청소를 해주시기 때문이지요. 어머니라고 뻐기기 때문에 고마운 게 아니라는 말씀이에요. 여러분은 각 단체의 대표입니다. 장입니다. 그러나 거기 앉아 대접받으라고 장이 아니에요. 거기서 어머니 노릇을 하라는 장입니다. 아셨어요?”외국의 한 기자가 장일순을 찾아와 물었다. “혁명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장일순이 말했다. “혁명이란 따뜻하게 보듬어 안는 것이라오” 기자가 놀랍다는 듯이 물었다. “그런 혁명도 다 있습니까?” “혁명은 새로운 삶과 변화가 전제돼야 하지 않겠소? 새로운 삶이란 폭력으로 상대를 없애는 게 아니고 닭이 병아리를 까내듯이 자신의 마음을 다 바쳐 하는 노력 속에서 비롯되는 것이잖아요? 새로운 삶은 보듬어 안는 정성이 없이는 안 되지요”장일순은 드라마 작가 홍승연에게 글씨를 써주면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추운 겨울날 저잣거리에서 군고구마를 파는 사람이 써 붙인 서툴지만 정성이 가득한 군고구마라는 글씨를 보게 되잖아? 그게 진짜야. 그 절박함에 비하면 내 글씨는 장난이지. 못 미쳐!”상원사란 절이 있어 거기에 들렀는데, 대웅전 안의 불상을 향해 장일순과 지학순이 합장을 하고 공손히 절을 했다. 지학순은 천주교 원주교구의 주교고, 장일순은 평신도다. 이상하게 여기고 물었다. “천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어째서 불상을 보고 절을 해요?” 장일순이 껄껄 웃었다. “이 사람아, 성인이 저기 앉아 계시는데 어찌 우리 같은 소인이 허리를 굽혀 절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장일순은 1994년 “내 이름으로 되도록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우주로 돌아갔다. 장일순의 장례 미사가 거행됐던 원주시의 봉산동 천주교회는 3천의 조문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고 한다. 현재 장일순을 존경하고 기리는 사람들이 뜻을 모아 세상을 밝히고 있다. 존경하고 따를만한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2012-04-27

못다 핀 꽃 한 송이

▲ 김현욱 시인·달전초 교사지난 16일, 또 하나의 소중한 생명이 세상을 등졌다. 미처 피우지 못한 아름다운 꽃봉오리가 처참하게 바닥으로 떨어진 것이다. 소식을 접하고 할 말을 잃었다. 어째야 할까, 어째야 할까. 이 땅에 부모와 교사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모든 이들은 가슴을 칠 것이다. 어째야 할까, 어째야 할까.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대중매체를 탓해야 할까, 성적과 외모지상주의, 물신주의를 탓해야 할까. 그것도 아니면 지난 몇 달간 관련 부처에서 내놓은 언 발에 오줌 누는 식의 지린내 나는 대책을 탓해야 할까. 정말 어째야 할까, 어째야 할까. 경쟁과 배제, 권위와 억압의 논리로 교육현장을 황폐화한 정부 관료들이 사퇴하면 이런 가슴 치는 일이 좀 줄어 드려나 어쩌려나.`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제 2조 제1호를 보면 학교폭력의 정의가 명시되어 있다. “학교폭력이란 학교 안이나 밖에서 학생 사이에 발생한 상해, 폭행, 감금, 협박, 약취(훔치거나 빼앗음), 유인, 명예훼손, 모욕, 공갈, 강요 및 성폭력, 따돌림,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음란, 폭력 정보 등에 의하여 신체, 정신 또는 재산의 피해를 수반하는 행위를 뜻한다” 요약하자면, 학교폭력의 유형에는 언어·심리적 유형과 신체·물리적 유형, 집단 따돌림이 있다.언어·심리적 유형에는 언어적 모욕, 별명 부르기, 험담하기, 빈정거리거나 조롱하기, 나쁜 소문 퍼뜨리기, 위협하기, 음란한 눈빛과 몸짓, 수치심을 느끼게 하는 것, 카페나 학교 게시판에 협박하는 글 등이 포함된다. 신체·물리적 유형에는 고의적으로 건드리거나 시비 걸기, 때리거나 폭행, 장난, 하고 싶지 않은 일을 강요하는 것, 물건을 이용해 상해를 입히는 것, 돌 던지기, 침 뱉기, 돈이나 물건 감추기, 돈이나 물건 등을 빼앗는 것 등이 있다. 집단 따돌림에는 고의적인 따돌림, 사이버 폭력, 친구를 도우려는 행위를 막는 것, 소지품을 버리거나 감추는 것, 책상을 숨기는 것 등이 해당한다. 이 글을 보고 `저런 것도 학교폭력의 범위에 들어가는구나!` 놀란 독자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저렇게 사소해 보이는 행동들이 소중한 한 생명을 차가운 사지로 내몰 수도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2004년에 제정된`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은 학교폭력에 관한 기준은 제시하고 있지만 `예방`의 측면보다는 `사후처리`가 중심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학교폭력 사건이 일어나면 어떻게 처리할까, 피해자는 어떻게 보호하고, 가해자는 어떻게 처벌할 것인가에만 집중된 것이다. 학교폭력 문제가 발생하면 신속하게 처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절실한 것은 `예방교육과 생활문화 개선`이다.일례로 학교폭력 대응 매뉴얼에 따르면 담임교사가 학교폭력 사실을 알고도 학교에 신고하지 않고 자체적으로 가해 학생과 피해 학생의 부모가 원만히 해결하도록 했다면 어떨까? 명백한 위법이다. 이러한 사안이 발생했을 때 법률에 따르면 `학교폭력 현장을 보거나 그 사실을 알게 된 자는 반드시 신고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 이런 경우는 어떨까? 어떤 학생이 친구가 듣기 싫어하는 별명은 몇 번 부르고 이상한 소문을 퍼트리는 행동을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법률에 따르면 그 학생을 학교폭력자치위원회에 보고해야 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학교는 어떻게 될까?사실 학교폭력은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비리와 폭력, 불공정과 무한경쟁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다. 학교 차원에서 해결할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와 관계기관에서는 연일 선무당 사람 잡는 식의 험악한 굿판만 벌이고 있다.벌써 얼마나 많은 못다 핀 꽃송이가 하릴없이 바닥으로 떨어지는가! 어째야 할까, 어째야 할까. 하! 채 꽃 피우지 못한 어린 영혼들의 명복을 빈다.

2012-04-20

개처럼 살지 않는 방법

▲ 김현욱 시인·달전초 교사강신주의 책을 몽땅 구해 읽었다.`철학, 삶을 만나다`부터 `철학적 시 읽기의 괴로움`까지 지난 몇 달간 열독(熱讀)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대학 시절, 철학 개론을 들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칸트가 어쩌고 저쩌고, 니체가 어쩌고 저쩌고…. 노 교수의 강의는 그야말로 시곗바늘에 쇳덩어리를 매달아 놓은 듯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고문과 같은 시간을 견디기 위해 시집이나 소설을 뒤적거렸다. 몇몇은 강의실을 빠져나가 영화를 보러 가기도 했고 대리출석도 빈번했다. 그렇게 나의 첫 철학수업은 허망하게 막을 내렸다. 각인이란 참으로 무섭다. 이후 철학을 보는 내 시선이 힐난에 가까워진 것이다. 삶과 유리된 쓸데없는 없는 학문이라는 생각마저 들었으니 오죽했으랴. 그때 노 교수는 미처 몰랐거나 잊어버렸던 모양이다. 철학이든 삶이든 문학이든 `나와 우리`의 `지금, 여기`의 문제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모든 게 허망하다는 것을.강신주의 철학은 분명 `지금, 여기`의 철학이다. 엄청난 시공간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니체를 라캉을 임제를 이지를 장자를 레비나스를 우리 앞에 한 명씩 불러 앉힌다. 그들과 강신주와 독자가 삼자대면하는 형국이다. 특히, `철학이 필요한 시간`에서는 48명의 철학자를 만나 볼 수 있다. 그들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들의 음성이 `지금, 여기`의 `나와 우리`에게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어린아이는 사람의 처음 모습이고, 동심은 사람의 처음 마음이다. 처음에는 견문이 귀와 눈으로부터 들어와 우리 내면의 주인이 되면 동심이 없어지게 된다. 자라나서는 도리가 견문으로부터 들어와 우리 내면의 주인이 되면서 동심이 없어지게 된다. 이러기를 지속하다 보면, 도리와 견문이 나날이 많아지고 아는 것과 깨닫는 것이 나날이 넓어진다. 이에 아름다운 명성이 좋은 줄 알고 명성을 드날리려고 힘쓰게 되니 동심이 없어지게 된다. 또 좋지 않은 평판이 추한 줄 알고 그것을 가리려고 힘쓰게 되니 동심이 없어지게 된다”윗글은 이지(李贄, 1527~1602)의 책 `분서`에 실린 `동심설`이다. 이지는 자신의 책에 `분서(焚書)`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름 그대로 `태워버릴 책`이라는 뜻이다. `분서(焚書)`는 벗들의 물음에 대한 답장으로 당대 학자들의 폐단을 적나라하게 비판하는 글로 채워져 있다. 이지의 원래 이름은 재지(載贄), 호는 탁오(卓吾)이다. 유불선(儒彿仙)과 이슬람교, 서구의 기독교까지 두루 통달했던 이지는 급진적 반봉건사상으로 명나라의 저주받은 철학자, 이단으로 불렸다. 그가 왜 당대에 철저하게 소외당하고 이단으로 불렸는지는 아랫글을 보면 알 수 있다.“유불선은 모두 같은 이름일 뿐입니다. 공자는 사람들이 명성을 좋아하는 줄 아셨기에 명교로 그들을 유인하셨고 석가는 사람이 죽음을 무서워한다는 걸 아셨기에 죽음으로 그들에게 공포를 주셨고 노자는 사람이 생을 탐하는 줄 알았기에 불로장생으로 그들을 유인했습니다. 모두 부득이해 우선은 권도로 명색을 세우고 그것으로 후인들을 교화하고 유인했지만, 그것이 진실은 아니었습니다”당대 학자들의 측면에서 본다면 비분강개할 말이다. 하지만 이지의 핵심은 성리학적 교조주의자들이 만들어 놓은 공맹의 우상화에 대한 경고였다. 이지는 무엇보다 개인의 자유와 이데올로기에 대한 저항을 강조했다. 이지가 동심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나는 어려서부터 성인의 가르침을 읽었으나 성인의 가르침을 제대로 알지 못했으며, 공자를 존경했으나 왜 공자를 존경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알지 못했다. 그야말로 난쟁이가 광대놀음을 구경하다가 사람들이 잘한다고 소리치면 따라서 잘한다고 소리를 지르는 격이었다. 나이 오십 이전의 나는 정말로 한 마리의 개에 불과했다. 앞의 개가 그림자를 보고 짖으면 나도 따라서 짖어댔던 것이다. 만약 남들이 짖는 까닭을 물으면 그저 벙어리처럼 쑥스럽게 웃기나 할 따름이었다”나이 오십 이전의 나는 정말로 한 마리의 개에 불과했다, 라는 구절에서 숨이 턱, 막힌다. 앞의 개가 짖으면 따라 짖었던 개 한 마리. 그 개 한 마리가 바로 나였구나, 생각하니, 어디 개구멍으로 숨고 싶어 몸서리가 쳐진다.

2012-04-13

우리 아이 `독·토·글`습관 기르기

▲ 김현욱 시인·달전초 교사 저 지난 수요일, 2012학년도 학부모 교육 설명회가 달전초등학교 강당에서 열렸다. 작년과는 다르게 저녁 시간을 이용해 학급별로 학부모와 상담을 했다. 직장에 다니는 학부모를 위한 배려였는데 기대 이상으로 많은 어머니가 찾아주셨다. 예나 지나 자녀교육에 대한 높은 관심을 실감할 수 있었다. 마지막 차례에 `우리 아이를 위한 독토글 습관 기르기`라는 주제로 학부모에게 강연한 내용을 독자 여러분께 소개하고자 한다.`독토글`이란 `독서, 토론, 글쓰기`의 줄임말이다. 요즘 교육의 세 가지 화두라고 할 수 있는데 사실 공부의 시작과 끝이 `독토글`에 다 있다. 어릴 때부터 `독토글` 습관을 길러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재산을 많이 남겨주기보다 `독토글` 습관 몇 가지 심어주는 게 더 값진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 아이에게 `독토글` 습관을 어떻게 하면 제대로 심어줄 수 있을까?먼저 독서를 보자. 책 읽기를 즐기는 아이,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스스로 책을 찾아 읽는 아이로 만들려면 무엇보다 학부모의 두 가지 실천이 필요하다. 첫째는, 어릴 때부터 꾸준히 책을 읽어주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꾸준히 책을 읽어준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는 눈빛부터가 다르다. `하루 15분, 책 읽어주기의 힘`의 저자 짐 트렐리즈는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시작하여 열네 살이 될 때까지 읽어주라고 조언한다. 읽기 연령과 듣기 연령이 같아지는 때를 열네 살로 볼 때, 최소한 이때까지는 읽어줘야 하고, 또 읽어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현재 미국의 명문대학교에서 입학사정관으로 활동하고 있는 톰 파커는 자녀의 성적에 급급해하는 부모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이 세상 최고의 SAT(미국 대학수학능력시험의 하나) 준비는 아이가 어릴 때부터 침대 머리맡에서 책을 읽어 주는 것이다. 아이가 행복을 느끼면, 스스로 책을 읽기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다”둘째, 평소 책 읽는 부모의 모습을 자녀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아이는 부모의 모든 것을 따라 하기 마련이다. 가사와 직장에 시달리느라 책은커녕 잠잘 시간도 모자란다고 하소연하는 부모가 많지만 독서습관이 자녀의 미래를 결정짓는 중요한 척도라고 생각한다면 결코 게을리할 수 없을 것이다. 가장 좋은 형태는 `공부하는 부모`다. 공부하는 부모 옆에 공부하는 자녀가 있고, 책 읽는 부모 옆에 책 읽는 자녀가 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말이 기실 그런 뜻 아니겠는가!토론습관은 어떻게 기를 수 있을까? 여기에서의 토론은 넓은 의미의 토론이다. 디베이트를 포함한 토의, 협의까지를 포함한다. 토론습관을 기르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경청`과 `대화`다. 경청이란 귀 기울여 주의 깊게 듣는다는 뜻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귀담아들어 주는 부모가 있다는 건 아이에게 큰 행복이다. 왜냐하면 경청은 아이의 자존감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자존감이 높은 아이는 무슨 일이든 주도적으로 참여한다. 경청을 잘하는 가정은 거실이나 식탁에 텔레비전 소리나 침묵이 아니라 `대화`가 넘친다. 신문 기사 중에 아이의 관심을 끌 만한 기사를 스크랩해서 돌려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경청이다. 경청은 대화를 부르고 대화가 끊이지 않는 가정의 아이는 토론에도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토론이란 결국 형식을 가진 대화일 뿐이다. 토론 기술을 배우는 것은 차후의 문제다.마지막으로 글쓰기 습관을 기르기 위해서 소개한 것이 `글기지개, 시암송, 칭찬과 격려`다. 글기지개는 우리 반 아이들이 매일 조금씩, 꾸준히 쓰는 글쓰기 공책을 가리킨다. 일종의 `하루 5분 글쓰기 운동`인 셈인데 하루도 거르지 않고 조금씩, 꾸준히 글 쓰는 습관을 들일 때 유용한 방법이다. 어쩌다 일기는 아이들에게 부담을 주는 글쓰기가 돼버렸다. 일기보다는 짧고 간편하면서 글과 그림, 낙서까지도 허용하기 때문에 글 쓰는 부담이 적다는 게 글기지개의 장점이다. 시 암송의 효과는 일일이 거론할 필요도 없겠다. 학급에서 실천해보니 아이들이 먼저 좋을 줄 안다. 어떤 글이든 칭찬과 격려로 다독이면 아이들은 자신감을 얻는다. 자녀의 행복을 진정으로 바란다면 독토글 습관을 유산으로 물려주길 바란다. 부모가 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유산이 아닐까 싶다.

2012-04-06

토론하는 가족

▲ 김현욱 시인·달전초 교사아이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부모다. 평범한 자녀를 천재로 키워 낸 칼 비테는 3살을 전후로 아이의 성품과 능력이 대부분 형성된다고 믿었다. 교육심리학에서도 아이의 3살 전후를 매우 중요한 시기로 여긴다. 그렇다고 칼 비테가 무분별한 조기교육을 강조한 것은 아니다. 아이의 발달시기에 맞는 적기교육과 가정교육을 중요시했다. 그런 의미에서 아이의 생각하는 능력이나 말하는 능력, 글쓰기 능력은 학교나 학원에서가 아니라 가정에서 거의 결정된다. 아이의 장래는 가정교육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나는 학교가 끝나면 집으로 돌아와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할아버지는 언제나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셨다. 내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으며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하셨다. 그럴 때마다 난 내 이야기들이 정말 중요한 것처럼 느껴졌다” `생각을 부르는 이야기 1`에 나오는 글이다. `내 이야기를 평소 귀담아들어 주는 사람이 부모`라면 그 아이의 자아존중감은 높을 것이다. 여러 실험을 통해 밝혀졌듯 자아존중감이 높은 아이가 모든 방면에서 우수한 능력을 발휘한다. 또한 말문이 트이면 생각이 트이고, 생각이 트이면 문장도 트이게 마련이다. 어릴 때부터 아이가 책을 좋아하게 하려면 부모가 책을 읽어주는 방법이 가장 좋듯이, 아이에게 토론능력을 키워주고 싶으면 자녀의 말을 귀담아 들어주는 것이 가장 좋다. 자녀의 말을 귀담아들어 주는 부모라면 분명 가족 간에도 대화는 자연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서로의 얘기를 잘 들어주고 그것으로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가족이라면 누구나 재미있고 쉽게 활용할 수 있는 `역할토론`을 권장하고 싶다. 찬반토론이 의견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한 주장과 근거의 토론이라면 역할토론은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의 처지와 상황에 맞게 대화를 나누는 것을 말한다. 어떤 사건이나 상황으로 인해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대립하는 경우, 또는 특별히 갈등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경우, 재미있는 상황이 펼쳐지는 경우, 각자 책 속의 인물이 되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일종의 역할극이요 상황극이다. 아이들은 교실에서 역할극 하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찬반토론은 딱딱하고 어렵게 느껴지지만 역할토론은 일상생활에서 늘 하는 대화처럼 편안하고 재미있다.역할토론은 논리가 아니라 `상황`과 `역할`이 중심이다. 논리가 부족하더라도 역할토론에서는 각자 상황에 맞는 다양한 말이 가능하기 때문에 소극적이거나 독서량이 부족한 아이도 쉽게 할 수 있다. 가정에서 자녀의 토론능력을 기르는 데 있어서 역할토론처럼 좋은 방법은 없다. 거실에서 나누는 간단한 역할토론은 따로 토론교육을 받지 못한 부모에게도 좋은 경험이 된다. 단, 아이들과 역할토론을 할 때 부모가 성급하게 핵심을 말하거나 결론을 제시해서는 안 된다.마지막으로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는 주장을 만드는 6가지 원칙`에 대해 알아 둘 필요가 있다. 1950년대에 영국의 톨민 박사가 정리한 것으로 3단 논법보다 매우 쓸모 있는 논리 전개 방법이다. 김병원 박사는 이를 `실용 논리`, `6단 논법을 통한 토론`, `신세대 토론`이란 이름으로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했다.6단 논법이란 ①평소 토론 가능한 주제의 안건에 대해 ②자신의 결론을 내리고, 그 결론에 이르게 된 ③이유를 찾아 그것을 제시하고 ④이유의 옳음을 설명하고 ⑤나의 결론에 반대되는 의견이나 생각을 따져 그것이 비논리적임을 보여주고 ⑥예외를 정리하는 것으로 끝난다. 6단 논법에 따라 생각하고 정리하고 말하는 습관을 들이면 누구나 토론의 달인이 될 수 있다.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듯 저절로 되는 건 없다. `경청`, `대화`, `역할토론`, `6단 논법` 등을 통해 거실과 식탁에서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 행복한 `토론하는 가족`이 되어보시길.

2012-03-23

포항시 원북(One Book)은?

▲ 김현욱 시인·달전초 교사아는 사람은 이미 알겠지만 올해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정한 `독서의 해`다. 지난 9일 서울역에서 최광식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양성우 한국간행물윤리위원장의 대대적인 선포식이 있었다. 2012년을 `독서의 해`로 선포하고 생활 속 독서의 정착을 위해 국가 차원의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게 행사의 요지다. 독서의 해 추진위원장은 문용린 서울대 교수가, 홍보대사는 이외수 작가가 맡았다.독서의 해 캐치프레이즈는 `책 읽는 소리, 대한민국을 흔들다`이며 `하루 20분씩 1년에 책 12권 읽기`, `책 선물하기 운동`, `주5일 수업제와 연계한 도서관, 서점 가기` 등 다채로운 독서운동이 전개될 것이라고 한다.독서의 해에 맞춰 한국교육방송 EBS가 가장 먼저 팔을 걷어붙였다. EBS FM은 평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9시, 밤 10시부터 10시 50분까지 하루 12시간을 책 낭독 프로그램으로 채운다. 평소 필자처럼 `오디오 북`을 즐겨 듣는 독자라면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EBS FM 편성표를 꼭 챙겨놓기 바란다.사실 국가 차원의 `독서의 해` 선포는 조금 늦은 감이 있다. 지난해 대한민국 성인의 연평균 독서량은 11.9권이다. 한 달에 채 한 권이 안 되는 독서량이다. e-book과 스마트폰을 비롯한 전자기기를 이용한 독서 통계가 빠져있기는 하지만 매우 우려할만한 수치다. 이대로 가다가는 `독서`란 초등학교 때만 경험하는 특별한 놀이로 기록될까 봐 심히 걱정스럽다.국가 차원의 독서운동도 필요하지만 정작 우선돼야 할 것은 `책 읽는 가족`이다. `책 읽는 가족`이 전제되지 않으면 아무리 떠들어봐야 헛수고다. 책 읽는 가족과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이 지자체다. 고향 마을에, 아파트 단지에, 우리가 사는 동네에 작은 도서관이 활발하게 운영된다면 국가차원의 독서운동도 성공할 확률이 높다. 불은 언제나 아래로부터 활활 타오르게 마련이다.포항시는 지난 2006년부터 `한 권의 책, 하나의 포항(One Book, One Pohang)` 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해왔다. `한 권의 책, 하나의 포항(One Book One Pohang)` 운동은 시립도서관에서 해마다 한 권의 책을 `올해의 원북`으로 선정해 시민의 독서문화 공감대를 조성하는 독서진흥운동이다.포항시가 지금까지 선정한 `올해의 원북`은 다음과 같다. 2006년에는 고 박완서 작가의 `읽어버린 여행 가방`, 2007년에는 황선미 작가의 `마당을 나온 암탉`, 2008년에는 지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김일광 작가의 `귀신고래`, 2009년에는 세계적은 작가로 거듭난 신경숙 작가의 `엄마를 부탁해`, 2010년에는 권비영 작가의 `덕혜옹주`, 그리고 지난해에는 수많은 청춘의 가슴에 따뜻한 불씨를 지핀 김난도 서울대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선정돼 지역민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며칠 전 시립도서관으로부터 2012년 포항시 원북 선정을 위한 후보도서 추천을 해달라는 연락받았다. 개인적으로는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되 마음에 울림이 있는 책을 추천하고 싶은데 그런 책이 어디 흔한가. 집 가까이에 있는 포은도서관을 들락날락 거리며 오늘도 궁리 중이다.그러다 문득, 포은도서관을 바라보니 애처로운 생각이 든다. 옛 시청부지가 포은도서관이 됐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마음 한구석으로는 이런 희망을 품어 보는 것이다. 지금의 포항 신청사 같은, 경북학생문화회관 같은, 포항문화예술회관 같은, 그리하여, 세계 어느 지자체에 있는 도서관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 그런 멋진, 다목적 도서관 하나쯤 가질 수 있다면, 포항 시민으로서 얼마나 자랑스러울까?그건 그렇고, 2012년 올해의 포항시 원북으로 어떤 책이 뽑힐까? 포항 시민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바란다.

2012-03-16

외국인학교가 성공하려면

▲ 손진대 영문학박사얼마 전 포항에 외국인 학교 건립을 추진한다는 뉴스가 발표됐다. 지난달 포스코에서 출연키로한 학교부지가 남구 지곡동 효자아트홀 인근 부지로 최종 결정됨에 따라 포항외국인학교 설립이 본격 추진된 것이다. 결론부터 밝히면 지자체가 너도나도 외국인학교건립에 나서는 모양이 썩 반갑지만 않다.포항시 관계자는 첨단 과학 인프라 구축과 외국자본의 투자유치 기반조성으로 외국기업 유치는 물론 지역의 우수한 첨단과학 RD 인프라와 연계한 국제연구소 등 해외인재 영입과 정주여건 확충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이들 자자체가 지역 글로벌화와 외국인 투자 유치를 목적으로 경쟁적으로 추진하고 있지만 기대 보다는 우려가 앞서는 것이 사실이다. 외국인 학교와 국제학교 설립은 투자규모와 예상학생수에 대한 정확한 수요조사에 근거하지 못하고 명분과 기대효과만으로 학교설립을 추진하는 듯 해서 하는 말이다. 학생의 영어실력향상을 위해 잘못된 사교육난립이 우려되고 있는 것 역시 우려되는 대목이다.송도, 대구, 제주 등에서 이미 외국인 학교나 국제학교가 개교를 하고 있으나 인프라부족, 학생 부족 등으로 개교가 지연되는 등 난항을 겪었으며 학생확보에 어려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학교 이름이 외국인학교 라고 하지만 학생들의 대부분은 내국인으할 구성되어 있다.`외국인학교`는 말 그대로 외국인을 위한 학교기 때문에 아무나 입학할 수 없다. 대개, 내국인일 경우 해외에서 3년 이상 거주하거나 부모 중 한 쪽이 시민권자일 경우 입학 자격이 생긴다. 따라서 조기 유학에서 돌아온 학생들이 많이 선택한다. 해마다 입학 조건이 완화됨에 따라 내국인 간 경쟁률은 더 높아진다. 모집 정원은 해마다 얼마나 결원이 생기느냐에 따라 뽑는 게 정해진다. 대부분 학력을 인정받지 못하므로, 국내 대학 입학을 염두에 둔다면 검정고시를 통해야 한다.외국인학교에 다니려면 실제로 학생의 영어실력이 가장 중요하지만 이것을 바탕으로 지방에서는 잘못된 사교육이 난립하게 된다. 실제로, 필자가 지방에서 올라온 관련 학생과 학부모들을 상담하는 과정에서 잘못된 교육정보를 알고 오시는 분들이 있어 안타까움과 우려를 한 적이 있다.현재, 국내에 있는 외국인 학교는 약 50여개가 운영 중이며 외국자본의 투자유치 기반조성으로 외국기업 유치는 물론 지역의 우수한 인프라와 해외인재 영입과 정주여건 확충을 위한 것이다.그러나 최근에 개교한 학교들은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일부 학교는 지방에 위치해 있다는 불리함을 안고 있다. 포항의 외국인 학교가 개교를 하게 된다면, 동일한 미국 학제를 바탕으로 하는 한동국제학교와 함께 두 개의 유사한 학교가 존재하게 된다. 입학할 수 있는 학생들이 분산되어 운영상의 어려움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수준 있는 학교를 설립하는 것도 방안이겠지만 적은 지원으로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기존의 학교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안도 필요할 것이다.지방에 위치한 외국인 학교가 겪게 될 잦은 교사 이동과 너무 경험이 적은 젊은 교사의 문제점을 극복할 우수한 교사 유치가 선행되어야 한다. 교육과정 부족으로 인한 인재유출을 막고 학생들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AP, IB와 같은 국제공인교육과정과 WASC와 같은 국제인증확보에 주력해야 한다. 다양한 문화체험과 예체능 교육이 가능한 시설과 교육과정, 다양한 방과후 특별프로그램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결론적으로, 외국인 투자자들이 찾는 우수한 외국인 학교가 되기 위해서는 교육환경과 교사의 질, 학교 운영자와 학생들의 다국적 대표성으로 오는 세계적인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외국인 학교의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적절한 융합이 필요하다.

2012-03-15

스토리텔링과 설화

▲ 김현욱 시인·달전초 교사오디션 프로그램이 대세(大勢)다. 대세다 못해 넘친다. 2009년 Mnet 슈퍼스타 K 1을 시작으로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텔레비전만 틀면 최후의 승자를 가리기 위한 피 말리는 경쟁이 펼쳐진다. 거액의 상금과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향해 부나비처럼 몰려드는 참가자들이 해를 거듭할수록 부지기수다. 그런데 문제는 살아남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뛰어난 실력 말고도 한 가지가 더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스토리텔링이다. 구구절절한 사연이 아니더라도 눈에 띄는 사연이 없다면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끝까지 살아남기가 어렵다.심지어 대학의 입학사정관들도 지원 학생의 스토리텔링을 원한다.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어떻게 살아왔고 무엇을 했는지 일목요연하게 보여주고 들려주기를 원한다. 어느 대학 어느 학과를 전공하기 위한 자신의 노력이 자연스러우면서 감동적인 스토리로 드러나면 합격은 떼 놓은 당상이다. 비단 대학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스토리텔링을 원한다. 우리는 그 어느 시대보다 스토리텔링이 중요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스토리는 구체적인 인물과 구체적인 시공간 그리고 플롯(plot)을 필요로 한다. 플롯은 필연적 인과관계라고 할 수 있다. 플롯이 없으면 스토리가 될 수 없다. 예를 들어, `왕이 죽었다`와 `왕비가 죽었다`라는 두 문장은 나란히 늘어놓아봤자 어떠한 스토리도 만들어내지 못한다. 그러나 플롯을 주면 달라진다. `왕이 죽었다. 왕비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앓다가 마침내 죽었다`로 바꾸면 왕을 향한 왕비의 애정이 깊었음을 알 수 있게 된다.그렇다면 스토리텔링을 잘 하려면 무엇을 알아야 할까? 섣불리 서양이나 현대의 수사나 기교를 배우려 하기 보단 이야기의 원형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 이야기의 가장 기본적인 틀을 가지고 있으면서 오랜 세월 전해져 내려온 것은 바로 설화(說話)이다. 설화는 짧은 내용과 간단한 구조를 바탕으로 구전되기 쉽도록 만들어졌다. 이야기의 원형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설화를 공부하면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는 든든한 기본기를 익힐 수 있다.모든 이야기의 기본 속성은 `특이성`이다. 쉽게 말해서 개가 사람을 물면 사건이 못되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사정이 달라진다. 이야기가 되고 안 되고는 두 가지 조건에 달려 있다. 하나는 `특별한 주체`이며, 다른 하나는 `특별한 상황`이다. 설화도 마찬가지다.한국 구비문학을 집대성한 `한국구비문학대계`의 부록인 `한국구비문학대계 별책부록(I) 한국설화유형분류집`에 따르면, 한국설화는 `주체가 특이한 설화`와 `상황이 특이한 설화`로 나뉜다. 주체(인물)가 특이한 설화는 대체로 주체가 능력이 뛰어나거나 모자라는 경우를 말한다. 신령, 영웅, 바보, 못난이 등이 그렇다. 구두쇠, 거짓말쟁이는 성격이 특별한 경우고 벙어리, 장님 등은 어떤 신체적 결함이 있는 경우다.상황이 특이한 설화는 그 상황이 누구와 누구 사이에서 펼쳐지는가에 따라 둘로 나뉜다. 하나는 사람이 아닌 특별한 주체와 사람 사이 펼쳐지는 경우고 또 하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펼쳐지는 것이다. 사람이 돌이 된다든가 동물이 사람이 된다든가 하는 이야기가 전자라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잘 맺어서 행운이 오거나 잘 못 맺어서 불행이 오는 등의 이야기는 후자다.스토리텔링을 잘하고 싶으면 동양과 서양의 설화를 깊이 공부하면 좋다. 이야기의 기본을 잘 닦아놓으면 언제 어디서나 실력을 발휘하게 마련이다.여담이지만 포항소재 문학작품 공모가 지난해로 3회째를 맞았다. 소기의 성과가 있었던 걸로 알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조각난 거울을 모아봤자 조각난 거울일 뿐이다. 손거울이든 벽거울이든 온전한 하나의 거울을 공모해야 하지 않을까? 장편 소설이든 동화(청소년소설)든 시집이든 온전한 스토리텔링이 필요한 시점이다.

2012-03-09

`글기지개` 읽는 즐거움 2

▲ 김현욱 시인·달전초 교사시절이 하 수상하긴 수상한 모양이다. 아이들 글기지개 몇 편을 이곳에 소개하고 나서 여기저기서 전화를 받았다. 그중엔 무슨 출판사라는 곳도 있었는데 요즘 초등학교 고학년 학생들의 생각과 고민을 책으로 엮어보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때가 때 인만큼 정체불명의 `초딩`과 소통의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중·고등학생에 비해 초등학생은 어른의 막연한 환상, 이를테면 아무 근심 걱정 없이 잘 웃고 잘 놀고 잘 지내고 있을 거라는 오해와 확신의 울타리에 오랫동안 갇혀 있었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매우 놀랄 것이다. 특히, 우리는 열세 살이라는 나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예전에 중·고등학생이 겪던 질풍노도의 시기를 오늘날에는 열세 살을 전후해서 맞고 있다. 급격한 심리적 육체적 변화의 시기에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줄 무언가가 필요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늘날의 학생들에게는 대중매체와 전자기기(스마트폰, 컴퓨터)가 그 노릇을 한다. 보고 듣고 겪는 모든 것들이 자극적이고 폭력적이어서 짐짓 한탄스러울 따름이다.머리 아픈 얘기는 각설하고, 지난번에 이어 두 번째로 학생들의 글지기개 몇 편을 소개할까 한다.“어제 수학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내가 모르는 문제가 있어서 선생님께 물으러 가니깐 선생님이 “왜 이런 문제를 못 푸냐!”고 나한테 소리를 질렀다. 공식 하나만 잘 쓰면 이런 문제는 다 풀 수 있다고 하셨다. 나도 이렇게 크게 혼난 적은 없었는데 왠지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모르는 게 있어서 물으러 왔는데 혼만 나고` 내가 혼나는 순간 학원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날 쳐다봤다. 선생님이 너무했다. 그리고 숙제로 틀린 거랑 다 고쳐오라고 했다. 하나도 빠짐없이. 정말 슬프다”김민경이 쓴 `수학학원`이라는 글기지개다. 모르는게 있어서 물으러 갔는데 뜻밖에 야단을 들은 모양이다. 이 글을 읽고 만감이 교차했다. 심지어 학교 퇴근하고 교사들이 학원으로 출근하면 어떨까, 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잠시 얘기를 나눠보니 학원에서는 체벌도 심심치 않게 하는 모양이었다. 숙제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렇게 해줘야 부모가 좋아하고 입소문이 퍼진다는 말에 더는 할 말이 없었다.“어제 도서관을 나서는 길에 4-1반 선생님이 내 시를 칭찬하셨다. 쑥스러웠다. 집에 와서 내가 쓴 시를 낭독하니 어머니와 동생이 웃는다. 그런데 선생님이 아버지 드리라고 한 봉투엔 예쁘게 꾸며진 내 시가 들어 있었다. 아버지가 보셨는지 모르겠다. 기뻐하시면 좋겠다. 오늘 정봉학 선생님이 `균영아, 니 시 좋다` 라고 하셨다. 도대체 몇 분이 읽어 보신 건지. 난 그냥 진심을 담아 썼는데 어쩌다 잘 써진 것 같다. 앞으로도 멋진 시를 쓸 수 있으면 좋겠다”한균영이 쓴 `내가 쓴 시`라는 글기지개다. 필자는 글기지개(아침 5분 글쓰기)를 비롯해 시 암송과 시 쓰기를 학급 특색으로 운영해오고 있는데 그때는 `아버지`를 주제로 함께 시를 썼었다. 주제와 어울리는 맛보기 시 몇 편과 e-지식채널 동영상을 감상한 후 시를 썼는데 균영이가 쓴 시가 그중에 눈에 확 띄었다. 별생각 없이 읽었는데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혼자 보기 아까워 오후에 쪽지창으로 동료 선생님께 균영이가 쓴 시를 보냈더니 답장이 빗발쳤다.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이런 아들을 둔 아버지, 누군지 모르겠지만 참 부럽다”였다. 균영이가 쓴 시가 궁금하면 네이버 카페 `시와 노는 교실`을 찾으면 된다. 늘 느끼는 바지만 문학의 힘은 진심에 있다는 것을 제자를 통해 또 한 번 확인했다. 어느 아파트 광고 문구처럼 진심은 반드시 통하기 마련이다.3월, 새 학기가 시작됐다. 초등학교 6학년과 중등 담임교사의 걱정도 함께 시작됐다. 근데 별 뾰족한 수가 없다. 진심 밖에는. 필자도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6학년을 맡았다. 솔직히 자의는 아니었지만 이제 어쩔 수 없다. 진심으로 다가가 하나 됨을 꿈꾸는 수밖에.

2012-03-02

`글기지개` 읽는 즐거움

▲ 김현욱 시인·포항교육청영재교육원 팀장하루 5분, 글 쓰는 시간을 꾸준히 가져보자는 의미에서 시작한 것이 `아침 5분 글쓰기`다. 매일 아침 교실에 앉아 어제 있었던 일 중에 보았던 것, 들었던 것, 의문을 품었거나 억울했던 것, 기분이 좋거나 나빴던 것 중 한 가지를 손바닥만 한 수첩에 쓰게 했다. 그걸 뭐라고 칭할까 궁리하다가 `글+기지개`를 떠올렸다. 매일 아침 글로 기지개를 켠다, 라는 의미를 담고 싶었다. 아무튼 달전초등학교 6학년 3반 학생들과 그렇게 시작한 글기지개가 드디어 1년을 맞았다. 지난 1년 동안 학생들이 하루도 빼놓지 않고 쓴 글기지개 중 몇 편을 독자에게 소개할까 한다. `내가 엄마한테 “Mother, I want a water, please”라고 했다. 엄마는 “뭐라카노?”라고 했다. 내가 다시 “엄마, 물을 따르다가 영어로 뭐야?”라고 물으니까, 엄마가 하는 말. “음…. 좌알좌알좌알!” 우리 가족은 웃었다`전동재가 쓴 `물`이라는 글기지개다. 엄마와 나눴던 말을 잘 붙잡아서 썼는데 읽는 이에게 웃음을 준다. 엄마의 재치 있는 대답을 잘 기억했다가 썼기 때문이다.`오늘 신체검사라는 걸 한다고 했다. 나는 살을 빼기는커녕 더 찌고 싶다. 성환이처럼 찌고 싶다. 하지만 성환이는 빼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성환이 몸무게가 한 60kg 정도 나가는 것 같다. 나도 찌고 싶다. 성환이가 부럽다. 그리고 좋겠다`김기훈이 쓴 `신체검사`라는 글기지개다. 기훈이는 우리 반에서 몸집이 왜소하고 마른 편이다. 반면에 성환이는 키도 크고 몸집도 제일 크다. 아마도 기훈이는 그런 성환이가 부러웠나 보다. 무언가 부럽고 아쉬운 것, 자신의 콤플렉스는 글쓰기를 통해 풀어내면 참 좋은 글감이다. 하지만 그것을 솔직하게 드러내려면 누구나 용기와 자신감이 필요하다. 기훈이의 솔직한 고백이 읽는 이의 입가에 미소를 띠게 한다.`오늘 화장실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먼저 아빠 칫솔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리고 내가 그걸 주웠는데 엄마 칫솔이 떨어졌다. 그리고 내가 내 칫솔 씻어 넣고, 엄마 칫솔 주우니까 내 칫솔이 떨어졌다. 불길한 징조다`이승호가 쓴 `칫솔`이라는 글기지개다. 읽고 나면 정말 불길하다. 승호는 장래희망이 심리학자다. 성격이 예리하고 날카롭다. 아침에 일어난 이런 일이 예민한 승호에게는 예사롭지 않았을 것이다. 무심한 아이들은 그냥 넘기는 일을 승호는 참 잘 붙잡아 썼다.`새벽 기도를 갈려고 차를 타니깐 앞이 안 보였다. 안개 때문이었다. 뿌연 게 도로를 삼킨 거 같았다. 꼭 무대 위의 드라이아이스 같았다. 교회에 가는 데 고생했다`도지량이 쓴 `안개`라는 글기지개다. 지량이는 교회에 열심히 다니는 학생이다. 많은 학생이 아침에 이불을 둘둘 말고 게으름을 피우는 것에 비하면 지량이는 참 부지런한 학생이다. 새벽기도까지 다닌다니 더욱 그렇다. 그런데 그날 새벽에 안개가 짙었던 모양이다. 지량이가 보기에 안개가 도로를 삼킨 것처럼 보였으리라. 무대 위의 드라이아이스처럼 말이다. 안개가 자욱하게 낀 새벽 어스름의 도로 풍경이 눈에 그려지는 듯하다.“`엄마, 우리 크리스마스 때 장사하나?``어, 해야지` 이 말을 듣자 나는 눈물이 핑 돌았다. 크리스마스라도 우리 가게는 쉬지 않고 간판에 불을 켠다. 크리스마스 때만은 우리 가게도 쉬었으면 좋겠다”김민희가 쓴 `눈물이 핑 돌았다`라는 글기지개다. 민희네는 치킨집을 한다. 그런데 크리스마스에도 가게 문을 연다는 엄마의 말에 민희는 눈물이 돌았던 모양이다. 그동안 크리스마스 때마다 속상하고 외로웠을 민희가 떠오른다. 마음 한쪽이 찌릿하다.손바닥만 한 작은 수첩에 쓴 짧은 글이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그렇지 않다. 글기지개를 일 년 동안 꾸준히 해왔더니 학생들의 생각과 글쓰기가 몰라보게 좋아졌다. 모두에게 권하고 싶다.

2012-02-24

예술도자의 생산과 소비

예술은 아름답다. 예술은 멋있다. 예술은 특이하다. 또 예술은 무엇일까. 예술에 대한 논의가 예술가뿐만 아니라 미학자나 철학자들을 통해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지만, 어찌 보면 대중들에게 예술이란 아주 간단한 것이다. 즉 예술은 보기 좋고, 훌륭하고, 완벽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랬을 때 그들은 흔히 예술적이라고 말한다.예술의 경제적 가치에 대해 또는 경제활동으로서의 예술 행위에 대해 이야기 하는 자체가 불경스러운 일일는지도 모른다. 만약 경제적 보상책으로 예술을 수단으로 삼고 있다면 그것은 순수하지 못한 것을 받아들여질 것이다. 일반적으로 예술을 일반적인 사회적 생산물과는 다른 어떤 고상한 것, 초월적인 것, 예술 이외의 어떠한 목적에도 부합하지 않은 순수한 그 자체로의 미적인 것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제 행위를 예술 행위에 대입시킨다는 것 자체가 예술을 모독하는 일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과연 예술이 경제적 가치와 전혀 무관한 것인가.우리나라의 공예품 중에서 가장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것이 무엇인가. 도자기다. 크리스티 같은 경매에서도 백자 등은 중국·일본의 것들보다 훨씬 비싼 값에 팔린다. 지금 우리는 한국 음식문화의 세계화에 열중하고 있다. 그러려면 우리의 대중음식이 세계화돼야 하고, 그러기 위해 필수적으로 국내 대중음식점에서 모두 우리의 도자기를 사용해야 한다. 우리보다 아직도 일인당 소득이 적은 중국도 어느 시골 식당에서나 이가 빠졌을지언정 도자기를 쓰고 있다. 일본은 심지어 각 지역마다 패턴이나 색상이 다른 것으로 지역성을 대표하는 도자기를 사용하고 있다.인도이지정(因陶以智政)이라 했다. 그릇을 보면 그 나라의 형편을 알 수 있다는 옛말이다. 한 시대의 문화의 높낮이를 가늠하기에 그릇이 좋은 지표가 되는 셈이다. 문화사의 중심 학문인 미술사와 고고학의 주된 연구 대상이 당대의 그릇 양식이고 보면 이 말이 실감난다. 당대의 기술과 예술의 총화로 빚어 써온 것이 그릇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그릇다운 그릇을 쓰는 시대는 문화적이다.도예는 다시금 일상적인 삶의 세계를 축으로 한 사회적인 문화 생산물임을 자부해야 한다. 그리하여 경제활동으로서 도예가의 생산 활동이 장인정신에 올바르게 기초해 이윤추구에만 연연하는 자본주의 경제법칙의 비도덕성을 견제하는 문화적 파수꾼임을 자처한다면 이는 지나친 기대일까.예컨대 자동차나 옷을 고를 때는 자신의 취향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면서도 정작 쓰임의 빈도가 가장 높은 그릇에 대해서는 격을 따져 선택하는 일을 번거롭게 여긴다.값이 질을 담보하지는 않으니 반드시 비쌀 필요가 없다. 문제는 값보다 안목이다. 일정한 수준의 문화 인식이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좋은 그릇을 분별하려면 써봐야 한다. 좋은 그릇을 만드는 도예가와 그 가치를 아는 눈 밝은 수요층이 우리 시대의 생활문화를 영혼이 담긴 아름다운 그릇이게 하는 힘이다.창조적 대상으로서 도예는 구체적인 형태보다는 봄날의 화사한 산수유나 풍란처럼 은근한 향기로 배어난다. 문화가 특수한 능력을 지닌 천재 예술가의 작품에 붙는 훈장이 아니라 일상적인 삶의 실천이라는 데 동의한다면, 예술도자의 문제는 특정한 전문가의 영역으로 미룰 일이 아니다.옛 것을 본받는 `법고`는 때묻을 병폐가 있고, 새로이 창조하는 `창신`은 상도(常道)에서 어그러지는 병폐가 있으니, 법고하되 변화를 알고, 창신하되 전거(典據)에 능해야 한다고 주장한 북학파 학자 박제가의 법고창신(法古創新)은 우리문화를 대하는 오늘의 자세를 설득력 있게 전해준다. 계승하되 시대의 옷으로 갈아입고, 창조하되 전통에 원형을 두는 지혜를 잃지 않아야 하겠다.

2012-02-17

감각적 어휘 학습

▲ 손진대 영문학 박사영어를 가르치는 교육기관에서는 영어 단어를 암기하는 일이 수업시간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경우를 가끔 보게 되는데, 과거 어느 강사가 한 말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 “단어를 외우게 하고 확인하는 방식이 영어 수업을 진행하기에는 제일 쉬운 방식이에요. 그런 경우, 대단한 실력이 없어도 쉽게 가르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암기한 단어는 곧 잊게 될 뿐 아니라 책을 읽다가 그렇게 외운 단어를 마주쳐도 언젠가 보았었다는 기억만 희미하게 날 뿐 그 의미가 감각적으로 즉시 떠오르지 않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별로 쓸모없는 지식을 익힌 것이 될 수 있다. 영어 단어를 전화번호나 역사적 사실을 외우듯이 하면 하루에 100~200개씩도 암기할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는 그 단어들의 사용방법이나 이미지가 익혀지지 않기 때문에 기억에 오래 남지도 않을뿐더러 1분에 600단어 이상을 읽고 흐름을 꿰맞춰야 하는 독서환경에서는 별 도움이 안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서 그렇게 외운 단어는 진정한 의미에서 언어의 기능을 갖추지 못한 것이기도 하다.오래전 한국에서 미국으로 조기 유학을 간 학생들 중에서 기억력이 다른 학생들보다 좋아서 단어를 잘 외우는 학생이 있었다. 하루에 200개도 거뜬히 외울 수 있는 학생이었고 SAT시험에 나온다는 단어는 하나도 빠짐없이 알고 있었다. 그러나, SAT시험을 치는데, 영어 독해영역에서 나오는 지문이 무슨 내용을 말하는 건지 아무것도 이해가 안됐다고 한다. 심지어 스페인어로 쓴 글을 읽는 것도 마찬가지였다고 한다. 모두가 그 학생은 적어도 고득점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장담했지만 그렇지 못했다.국내 영어 교육시장에서 지금까지 널리 알려진 단어 학습교재는 Vocabulary Workshop와 Wordly Wise이다. 학년별 시리즈로 편집되어 있어서 미국 내에서도 널리 사용되는 교재이기도 하다. 각 학년마다 250~300단어에 대해 학습을 하게 돼 기계적으로 암기해도 누구든지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는 평가방식, 부적절한 예문들, 복습과정이 없다는 단점 때문에 장기적인 학습효과가 없다고 본다. 실례를 든다면, SAT 시험의 독해영역에서 나오는 어휘 대부분이 이 교재들에서 암기했을 것이다. 그런데 시험을 칠 때가 되면 학생들은 그 중 대부분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마치 처음 보는 단어인 듯이 다시 공부하게 된다. 그나마 시험이 끝나면 그 단어들을 다시 잊게 된다. 이렇게 망각과 재학습이라는 순환을 덧없이 반복할 뿐이다. 물론 독서를 많이 하는 학생들은 이런 영역에 속하지 않는다.공부한 것이 안개처럼 사라진다면, 그리고 길을 잃는다면, 목적도 함께 사라질 것이다. 어떻게 공부해야 외운 단어들이 영어의 기초가 되고, 글을 읽을 때 자연스럽게 그 의미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게 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해결책은 단어를 감각적으로 터득하는 것이다. 능률은 좀 떨어질지라도, 어휘력을 익히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독서이다.단어가 지닌 감각적 이미지는 예문 안에서 짧은 드라마처럼 드러날 것이다. 그 예문 전체를 반복해서 읽어서 암기하는 경우에는 그 단어의 감각이 각인되는 것은 물론 그 단어의 사용법을 함께 익히기 때문에 작문 실력도 향상될 것이다. 그러나 아무 예문이나 다 좋은 건 아니다. 단어의 감각은 상황이 알맞게 설정된 예문들 안에 살아있다. 좋은 예문들은 대개 복문이나 중문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단어만이 갖는 독특한 상황이 그 안에 설정되어 있어서 그 단어가 가진 느낌을 더욱 강렬하게 만드는 효과를 발휘한다. 이러한 방식은 독서광들이 사전을 이용하지 않고도 많은 책을 읽으며 어휘력을 쌓아온 방식과 유사하다. 우리가 ”책을 많이 읽어라“는 학습방식에서 멀리 벗어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영어를 감각으로 익히는 최고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2012-02-16

하루 15분, 책 읽어 주기의 힘

▲ 김현욱 시인·포항교육청영재교육원 팀장“당신이 아무리 큰 부자일지라도 그래서 금은보화가 넘쳐날지라도 결코 나보다 부자가 될 수는 없어요. 내겐 책 읽어 주는 어머니가 있으니까요” 스트릭랜드 길리언의 `책 읽어 주는 어머니`에 나오는 구절이다. 책 읽어 주는 어머니를 가졌다는 건 아이에게 정말 축복이 아닐 수 없다.흑인 학자이며 하버드에서 강의하고 있는 로날드 페르구손은 `학교 내에서 볼 수 있는 인종 간의 성취도의 차이`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해 왔다. 페르구손은 연구 결과를 이렇게 정리했다. “진짜 문제는 여러 세대에 걸쳐 전해진 부모 역할의 차이에 있다. 인정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그것이 실력의 차이를 만드는 근본 원인인 것은 분명하다”페르구손에 따르면, 흑인 가정에서는 전통적으로 학업을 교사의 몫으로 보는 반면, 백인 가정에서는 부모가 아이의 학업에 좀 더 깊이 개입한다.연구 결과를 종합해 볼 때, 학교에 진학하기 훨씬 전에 이미 가정에서 읽기를 포함한 학업 성적의 씨앗이 뿌려진다는 말이다. 부모가 텔레비전보다 책을 가까이하고, 도서관에 아이를 데려가며, 책을 자주 읽어 줄수록 아이의 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이다. 그 모든 조사 자료는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속담을 확인시켜 주는 결과일 뿐이었다.1979년 `하루 15분, 책 읽어 주기의 힘`을 출간한 짐 트렐리즈에게는 어린 시절 책을 읽어 준 아버지가 있었다. 그때의 느낌과 추억을 아련하게 간직하고 있던 그는 마찬가지로 아버지처럼 자녀에게 매일 밤 책을 읽어 줬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많은 아이들이 책 읽기를 즐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 이유가 부모와 교사에게 있음을 깨달은 트렐리즈는 자비로 이 책을 냈다. 그 후 트렐리즈의 책은 스테디셀러에 올랐고, 전 세계의 교실 풍경까지 바꿔 놓았다. 특히, 일본에서는 지금도 2만여 개가 넘는 학교가 매일 아침을 책 읽기로 시작하고 있다.많은 부모들이 자녀교육에 대해 노심초사하지만 어릴 때부터 침대 머리맡에서 책을 읽어주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사실, 읽기는 모든 학습의 기초요 주춧돌이다. 책 읽기와 학업 성취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수많은 통계가 그것을 뒷받침한다. 읽기가 교육의 중심이고, 읽기가 최우선이다. 읽지 못하면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다.필자가 사는 아파트 앞 어느 보습학원에는 이런 현수막이 걸려있다. “모든 공부의 시작은 독서입니다” 언젠가 유심히 보니 수학을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학원이었다. 학원장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읽기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은근히 믿음이 갔다.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아이의 읽기 능력을 키워줄 수 있을까? 가장 좋은 방법은 어릴 때부터 소리 내어 책을 꾸준히 읽어 주는 것이다. 트렐리즈는 요람에서 10대 중반까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줘야 한다고 주장한다.핀란드 아이들은 여덟 살이 되어 글을 배우지만 읽기 능력과 학업성취도는 세계 최고이다. 왜 그럴까? 무엇보다 핀란드의 많은 가정은 책을 읽는 분위기이고,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일을 매우 강조한다. 또한 조직적인 공공도서관 시스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지난해, 포항시립 포은도서관에서는 책 읽는 가족 시상식이 있었다. 포항시 북구 용흥동에 거주하는 김은종 씨 가족이 선정됐는데, 연간 대출 권수가 2천636권이다. 김은종 씨 가족을 만나보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다. 그들 가족은 분명 알고 있을 것이다. 책 읽어 주기의 힘을 그리고 책 읽기의 즐거움을.2012년도 벌써 2월이다. 무엇을 시작하든 아직 늦지 않았다. 잠자리에 든 아이의 머리맡으로 가 책을 읽어주자. 하루 15분, 책 읽어주기를 실천해보자.

2012-02-10

지금 알고 있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 김현욱 시인·포항교육청영재교육원 팀장만날 때마다 요긴한 정보를 주는 친구가 한 명 있다. 모 대학원 철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올해 복직을 앞둔 미혼의 친구다. 대학 시절부터 총학생회 활동을 열심히 했고 나름의 신념으로 당당하게 세상을 살아가는 벗이다. 지난해에는 `나꼼수`를, 올해는 `강신주`를 소개받았는데 그로 인해 삶에 미치는 영향력이 만만치 않았다. `나꼼수`는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우리 시대의 뜨거운 감자다. 지난해 숱한 구설에 올랐지만 `나꼼수`는 인터넷과 SNS 정치의 서막을 연 선봉장 역할을 톡톡히 했다. 올해 총선과 대선에서의 영향력을 결코 간과할 수 없을 정도로 젊은 층의 폭발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이따금 낯 뜨거운 욕설과 막말로 눈살을 찌푸리게도 했지만 그들은 전혀 쫄지(?) 않는 눈치다. 하긴 `나꼼수`의 태생은 `골방`이 아니던가. 묵은 정치적 체증을 까스명수처럼 속 시원하게 내려준 그들의 직언(直言)은 권력에 빌붙어 스스로 정론직언의 붓을 꺾은 언론매체에 비하면 쌍수를 들어 환영할만하다. 편파와 왜곡, 선동, 과장을 밥 먹듯이 하는 언론매체를 접할 때마다 느끼는 부끄러움보다는 `나꼼수`를 들으면서 느끼는 부끄러움이 한결 값지다. `나꼼수`로 인해 지금 아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괜찮다. 그저 제2의, 제3의 `나꼼수`가 나와 소통과 진실의 민낯이 우리 사회에 자주 드러나기를 고대한다.올해는 `강신주` 이야기가 나왔다. 허름한 막창 집에서였다. 어쩌다 `강신주`라는 이름이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누군가 “삶의 철학이 없으니까 마음이 헛헛하다”라고 말했던 것 같다. 그렇다. 롤러코스터처럼 마구 돌아가는 일상에서 많은 이들이 `왜?`를 잊고 산다. 우리의 삶터가 놀이동산인가? 결코 아니다. 우리가 매일 타는 롤러코스터 또한 놀이기구가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인가? 왜 우리는 헛헛한가?`강신주`는 연세대 대학원 철학과에서 장자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철학을 우리 삶의 핵심적인 사건과 연결시켜 풀어 간 `철학, 삶을 만나다`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노장사상을 전공한 동양철학자이면서 서양철학의 흐름에도 능한 그는 삶에 밀착한 철학, 쉽게 읽히는 인문학을 지향하며 늘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서는 젊은 철학자이다.그는 “철학적 사유란, 자명한 것을 문제 삼는 것, 자명한 것에 거리를 두는 작업이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낯설게 만드는 작업”이라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철학을 불편하고 어려운 것이라고 여긴다는 그는, “삶을 제대로 영위하기 위해서는 철학적 사유를 통해 삶을 낯설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삶을 낯설게 돌아보도록 만드는 불가피한 사태가 도래하기 전에, 철학적 사유를 통해 미리 삶에 낯설어지는 방법을 배울 수 있기 때문에 철학은, 우리에게 `내가 나중에 알게 될 것을 지금 알 수 있게`해주는 힘을 갖게 해준다고 고백한다.우리는 항상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생각이란 오직 기대하지 않았던 사건과 조우할 때만 발생하는 것이다. 늘 집에 있던 엄마가 저녁 늦게까지 없을 때, 생전 아프지 않던 발바닥이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에 시달릴 때, 매일 아침 7시45분이면 오던 통학버스가 오지 않을 때 등등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예외적인 사건의 발생, 그 사건과의 우연한 마주침, 그리고 그 사건에 대한 해석의 과정이 바로 `생각`이다.올해는 젊은 철학자, 강신주와 함께 나와 너와 우리의 삶을 `생각`해보려 한다. 삶의 비밀은 언제나 `만남`에 있는 모양이다. 오랜 친구로부터 `나꼼수`와 `강신주`까지. 입춘이 얼마 남지 않았다. 봄꽃처럼 화사한 만남의 순간마다 `철학적 사유`의 꽃을 팡팡 피우시길.

2012-02-03

우리 아이 영어 영재로 …

▲ 손진대 영문학 박사최근 대한민국은 영재에 대한 관심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과학영재, 수학영재, 영어영재 등의 예를 언급하면서 그에 대한 조기 교육이 집중되고 있다. 이 현상에 대해 여러 거창한 이유가 있겠지만 더 현실적인 이유는 명문대학과 취직 경쟁에서 비교우위를 점하기 위함일 것이다.“자동차 바퀴(타이어)와 공, 이 두 가지의 공통점이 뭘까?” 보통 아이들은 “둘 다 동그란 모양이에요” 또는 “굴러가요” 라고 대답하기 마련이고 물론 정답이다. 그런데, 많은 책을 읽으면서 학습한 아이는 금방 여기에 몇 마디 더 붙인다. “또 둘 다 공기가 들어가 있어서 물 위에 놓으면 뜨잖아요. 그리고 둘 다 고무로 만들어요.” 언어적으로 우수한 아이들이 많지만 앞서 언급한 아이의 경우는 언어 추론 능력과 외국어 습득 능력이 특히 뛰어난 아이였다. 언어 능력은 지능 검사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도 하지만 앞으로 우리 자녀들이 살아가면서 해야 할 사회 활동과 학문적 활동에서의 성공을 좌우하는 중요한 지표이다. 또한 수학이나 과학 분야에서 얼마나 공부를 잘하고 성취할 수 있을까를 예측하는 데에도 언어 능력 지수는 필수적이다. 영어 영재와 같이 언어 추론 능력이 뛰어난 아이들은 덩달아 수학과 과학에서 우수한 능력을 보이곤 한다.이러한 언어 능력은 다른 분야 즉 수학, 과학, 음악 등과 같은 분야보다 부모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크게 향상될 수 있는 여지가 많다. 언어 능력을 향상시키는 방법은 크게 말하기, 읽기, 외국어 습득, 창작, 언어 추론 등으로 나누어지는데 최근 가장 많이 시행되는 `읽기` 훈련에 대해서 언급하겠다. 영재들은 보통 아주 일찍부터 책을 읽기 시작하고 또 많은 책을 쉽게 읽는다. 어린데도 어려운 문학 책을 읽는다든가, 높은 수준의 과학서적을 읽는 것이다. 책 읽기가 가장 흔하고 어린이들이 가장 즐기는 방법이지만, 아이들에게 효과적으로 언어적 능력을 키워주려면 적어도 다음 두 가지는 만족되어야 한다.먼저 수준에 맞는 책인가 하는 것이다. 아무리 어려도 높은 수준의 책을 읽고 좋아한다면 거기에 맞춰주어서 책을 공급해야 한다. 흔히 제시하는 나이별 권장 독서보다는 아이 수준에 맞는 책을 선별해 공급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수준에 맞는 책과 함께 `조금 더` 어려운 책을 빌려다가 읽도록 격려해주는 것이 포인트이다. 수준에 맞는 것만 고집하다가는 계속 같은 수준에 머무르게 되고 너무 어려운 책을 갖다 주면 흥미를 잃게 된다. 조금만 더 어려운 책을 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부모의 지혜이다.두 번째로 `분석하는` 독서를 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책 내용을 그대로 답습하거나 요약하는 것은 `분석하는 독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제목과 그림을 보고 “어떤 내용의 책일까” 추측하게 하고 책을 중간까지 보게 하고 결말을 예측하게 해보는 것은 분석 독서의 좋은 연습이 된다. 책을 다 읽은 다음에는 다른 하이라이트나 결말을 생각해보게 하는 것도 좋다. 또 한 주제에 대해 다른 시각을 지닌 글을 여러 개 읽어보는 것도 큰 도움이 된다. 사람들의 주장이 각자 시각에 따라 다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어느 쪽이 더 옳고 그런지를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어린이는 지식을 꽉꽉 채워야 하는 그릇이 아니다. 깊게, 다양하게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접하게 해야 한다. 책을 하나 읽더라도 지식을 익히고 외우고 답습하기 위해 읽는 것과 깊게 새로운 생각을 하기 위해 읽는 것에는 차이가 많다.

2012-02-01

칼 비테의 자녀 교육법

올해로 교직 10년 차에 접어든다. 초임 발령을 받은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시간이 그렇게 흘렀다. 그동안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고 깨달았다. 수많은 사고와 시행착오가 있었고 앞으로도 아마 그럴 것이다. 청하, 구룡포, 죽장, 상옥, 달전 등을 거치면서 만난 아이들의 해맑은 얼굴이 떠오른다. 그와 동시에 아이들의 부모님도 몇몇 떠오른다. 학교에 있으면서 느낀 것 중의 하나는 아이를 보면 부모를 알 수 있고, 부모를 보면 아이의 장래를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매주 화요일마다 SBS에서 방영하는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라는 프로그램은 `내 아이의 문제는 어디서부터 비롯됐나?`를 섬뜩하게 보여준다. 문제는 늘 부모에게 있었다. 곱씹어보면 참으로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농사 중에는 자식 농사가 가장 어렵고, 노릇 중에는 부모 노릇이 가장 어렵다. 부모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고스란히 아이의 마음에 쌓인다고 하니 지난해 첫딸을 얻은 필자부터도 어깨가 무거워짐을 느낀다. 가뜩이나 학교폭력과 무한경쟁으로 흉흉한 세상이니 부모의 올바른 가정교육은 더욱 절실하다.그런 의미에서 `칼 비테의 자녀교육법`은 일독할만하다. 사실 이 책은 지난 200년 동안 영재교육의 경전으로 불리며 많은 사람에게 읽혔다. 하지만 오늘날의 관점에서 봤을 때 영재교육보다는 올바른 가정교육의 한 예로 소개하는 것이 더 적절할 듯하다. 무엇보다 이 책의 가치는 칼 비테가 손수 실천한 가정교육의 면면에 있다. 200년이나 지났지만 칼 비테와 그의 아내가 보여준 자녀교육에 대한 소신과 헌신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칼 비테(1748~1831)는 19세기 독일의 유명한 천재였던 Jr. Witte의 아버지이자 목사였다. 그는 미숙아로 태어난 아들을 가정교육을 통해 훌륭하게 길러 낸 경험을 바탕으로 1818년 `칼 비테의 교육`이란 책을 썼다. 당시 루소와 페스탈로치는 재능과 환경의 중요성을 각각 강조했다. 칼 비테는 페스탈로치의 견해에 가까웠지만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았다. 다만 모든 아이들이 서로 다른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지만 잠재력을 개발할 수 있는 교육을 받는다면 누구나 80~90%까지 재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는 누구나 잠재력(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고 특히, 4세 이전의 환경이 아이의 인격과 재능, 소질에 큰 영향을 준다고 칼 비테는 굳게 믿었다.“그렇다면 아이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할까? 첫째는 언어, 음악, 문자, 그림과 같이 지능을 형성하고 대뇌 활동의 기초가 되는 것과 둘째는 올바른 인성과 태도다” 칼 비테는 가난한 시골의 목사였지만 아이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또한 성공적인 자녀교육의 첫걸음은 “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부모가 금세 알아차리는 것”에 있고, 이는 “부모와 아이가 하나의 띠로 연결되었다는 뜻으로 훗날의 교육에 감정적인 기초”가 된다고까지 말한다. 오늘날의 교육이론에 견주어 봐도 전혀 모자람이 없다. 이밖에 아이가 즐겨 먹는 음식과 식습관의 중요성, 청각으로부터 시각, 미각에 이르는 오관 훈련, 카드를 통해 게임하듯이 가르친 신화와 성경과 역사, 무엇을 물어도 인내심을 가지고 대답해줌으로써 기를 수 있었던 창의력과 상상력…. 칼 비테는 늘 아이의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문제를 제기하도록 동기를 부여했다. 한 번은 아들이 바다에 관한 책을 읽고 바다를 무척 보고 싶어 했다. 내륙지방에 사는데다 가난한 목사였던 칼 비테는 아들에게 바다를 보여주기 위해 돈을 조금씩 모았고 마침내 지중해를 향해 떠났다. 처음 바다를 본 아들은 매우 기뻐했다. 칼 비테는 늘 `백문이불여일견`의 신념을 지켰다. “책을 만권 읽는 것보다 천릿길을 돌아다니며 직접 보는 것이 더 낫다. 자연과 현실은 책보다 더 풍부하고 생동감 있는 지식과 지혜를 가르친다”를 믿고 실천한 것이다.칼 비테의 자녀 교육법을 읽다 보면 어느 부분에서 머리가 숙연해진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렇다고 쉽게 포기할 수는 없다. 부모란 그런 것이 아닐까?

2012-01-27

홀로 있기 연습

조중의소설가설 연휴 때 모처럼 혼자 지낼 시간을 가졌다. 물론 설날 당일은 가족과 함께 고향을 다녀왔지만, 이틀 동안은 온전히 혼자였다. 비워둔 시골집으로 들어가 밀린 청소를 하고, 연탄보일러를 피우고, 마당을 정리하느라 한나절을 분주하게 보냈다. 진공청소기를 돌리다보니 장판 위를 굴러다니는 먼지 덩어리가 만만치 않았다. 먼지라는 것이 사람이 살 때보다 비어 있을 때 더 생기는 것이 신기했다. 일주일을 비워두었을 뿐인데, 사람이 자취를 감추니 먼지도 외로워서 서로 엉겨 붙어 켜켜이 쌓인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마지막 일은 연탄재를 수레에 실어내 산길의 움푹 파인 곳에 깨뜨려 메우는 일이었다. 그러다 보니 산 위에서 땅거미가 내려와 주위는 금방 어두컴컴해졌다. 빈 수레를 끌고 마당으로 들어서는데 이름 모를 새 한 마리가 어둑한 처마 아래서 삐! 삐! 하고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다.방으로 들어와 조용히 앉아 있으려니 문득 외로움이 밀려와 마음이 심란했다. 설 명절이면 유독 그리워지는 부모님 생각에 고향 생각까지 겹쳤으니 그럴 법도 했다. 떨어져 있는 가족 생각도 유난했기 때문에 마음이 아렸다. 그럴 때 마음을 모으고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자칫 우울과 고독을 떨치려고 집을 뛰쳐나갈 수가 있다. 시내에 나가 사람의 훈기가 가득한 카페에 들려 커피를 마시며 외로움을 잊거나, 친구를 불러내 수다를 떨거나, 영화를 보면서 혼자라는 것을 잊는 것이다.그러나 그런 방법은 당장의 외로움을 잊게는 해주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집 나서기를 멈추었다. 대신 고요한 저녁의 풍경을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 여기고 들여다보았다. 한 겨울의 저녁 풍경은 무심(無心)했다. 바짝 마른 단풍나무와 울타리로 심어 둔 조팝나무와 아직 잎이 붙어 있는 복자기 단풍나무의 초연함이 나의 심난한 마음을 부끄럽게 했다. 새들이 나뭇가지 사이를 날아들고, 서쪽 하늘에 별이 반짝이는 풍경도 아름다웠다. 보아주는 사람이 없어도 그들은 저마다 생생하게 자신의 시간을 엄격하게 즐기고 있는 것이었다. 마음이 가라앉았다. 나도 그들의 저녁 풍경 속으로 스며들었다. 하나님이 주신 하나의 선물이 되자고 했다.대다수 사람들은 홀로 있는 것이 두려워 이런저런 모임을 만들고, 서로 정기적으로 만나 수다를 떨고 위로를 받고는 한다. 저마다 직장과 환경에 따라 하루, 한 주일, 한 달, 일 년을 바쁘게 사느라 정작 혼자 놓여있을 때가 드물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 온전하게 홀로 있는 시간이 과연 얼마나 될까 궁금하다.그러나 우리 모두는 언젠가는 온전히 홀로여야 할 시간을 저마다 가지고 있다. 고독의 시간이 저만치서 기다리고 있는데도 모를 뿐이다. 고독을 향해 가면서도 정작 고독을 피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꼴이다. 수십 년을 다니던 직장에서 정년퇴직을 하거나, 갑자기 일자리를 잃거나 하면 어느 날 갑자기 고독의 시간이 온몸을 감쌀 것은 자명한 일이다. 굳이 그런 것들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반드시 나이가 들고 체력이 떨어져 문득 `나 혼자 이 세상에 놓여 있다`는 사실에 소름끼치는 고독을 맞보게 될 것이 분명하다.그래서 `월든`의 저자 소로우와 같은 선지식은 홀로 있기의 소중함을 체험을 통해 전해주고 있는 것 같다. 눈코 뜰 새 없이 분주한 하루하루의 흐름이 인생의 전부인 것으로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일상의 분주함이 갑자기 멈출 수 있음을 준비해야 한다. 바쁜 시간이 느릿느릿해지고, 친한 친구들이 자취를 감추고, 지구 위에 혼자만 뚝 떨어져 있다는 소외감이 소나기처럼 다가올 시간을 대비해야 한다면 너무 노인네 같은 소리일까?설날 연휴 홀로 집을 지키면서 모두가`홀로 있기 연습`을 해둘 필요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새해는 일부러라도 홀로 있는 시간을 한번 쯤 가져보았으면 좋겠다. 정치인의 경우 더욱 더 그런 을씨년스러운 고독 연습이 좋은 약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2012-01-26

정치의 계절에 생각나는 `님의 침묵`

조중의포항CBS 본부장·소설가요즘 들어 불쑥 한용운의 시 `님의 침묵`이 떠오른다. 개인적으로 이 시 가운데 가장 인상 깊은 구절이 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이다. 아마 이 시를 좋아하는 대부분의 독자들이 공감하는 부분일 것 같다.회자정리(會者定離)와 거자필반(去者必返)의 상징을 시적 이미지로 노래한 것이다. 만나면 반드시 헤어지게 되고, 떠난 사람은 반드시 돌아온다는 보편적인 진리다. 누구나 잘 알고 있는 당연한 순환의 논리인데, 모두가 잊고 살아갈 뿐이다.그러다가 어떤 사회적 현상이나 개인적인 일로 고통을 당하게 되면 비로소 `회자정리`와 `거자필반`의 당연한 진리를 돌이키게 된다.4월 총선을 앞둔 정치의 계절에 `님의 침묵`이 생각나는 것은 아련한 옛사랑의 추억 같은 감정도 아니고 후회 어린 반성 때문도 아니다. 안타깝지만 체념에 가까운 한숨이 절로 나오기 때문이다. 왜 그런 감정이 드는 것인지 가만히 돌이켜보니, 헤어졌거나 흩어졌던 정치인들이 반드시 다시 만나기 시작하고, 떠나간 정치인들이 반드시 다시 돌아오는 모양새가 똑같기 때문이다.이명박 정부 말기가 살얼음판 위를 걷듯이 아슬아슬한 것이 노무현이나 김대중, 김영삼, 노태우, 전두환 정부 때와 도무지 다르지가 않다. 반드시 다시 돌아오는 정권 말기의 부정과 부패의 사슬이 고구마줄기처럼 드러나는 것이 어쩌면 그리도 똑같은지`거자필반`의 상징이 신기할 정도다여당과 야당이 숨 가쁘게 그려내는 정치 지도도 너무나 똑같다. 떠나간 자가 반드시 돌아와서는 새로운 인물처럼 등장한다. 떠났다가 돌아온 것뿐인데도 국민들은 외계인이 온 것처럼 환호하고 새로운 정치를 기대한다. 그런 일들이 내게는 도무지 감동이 없다.`님의 침묵`에 나오는 시구처럼 새롭게 바뀌는 지금의 정치지형도 결국은 반드시 떠나가고 반드시 헤어지게 된다는 것을 안다면, 호들갑떨 일만은 아닌데 정치인들은 춤을 추고 국민들은 덩달아 자기 취향에 따라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어깨를 들썩이고 있다.`거자필반`이 주는 교훈은 사랑스럽고 소중하고 귀중한 것들이 언제나 항상 변하지 않고 우리 곁에 머물기를 바라는 의미다. 그런데도 국민을 화나게 하고, 싫증나게 하고, 그런 뒤 욕을 먹고 떠나간 자리로 다시 돌아오는 모습을 보게 되니 실망하다 못해 체념하게 되는가 보다.한나라당은 선관위 디도스 공격과 전당대회 돈 봉투사건으로 만신창이가 된 당을 살리겠다며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을 등장시켰다. 모 일간지는 며칠 전 열린 민주통합당의 대표와 최고위원 선출 결과를 놓고 `노무현이 돌아왔다`는 제목을 달았다. 우리의 터전인 지방도 다를 바 없다. 떠나간 사람, 헤어진 사람들이 다시 돌아왔다. 표를 달라며 발품을 산다. 이들 모두가 제발 떠나가지 말고 우리 곁에 머물러주기를 바라는 사랑스럽고 소중한 사람들이었더라면 얼마나 정겨운 상봉이었을까!김광섭의 시를 가수 유심초가 노래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도 거자필반의 상징을 드러내고 있다.“저렇게 많은 별들 중에 별 하나가 나를 내려 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너를 생각하면 문득 떠오르는 꽃 한 송이. 나는 꽃잎에 숨어서 기다리리.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나비와 꽃송이 되어 다시 만나자(….)”4월 총선에 출마하겠다고 돌아온 정치인들 가운데 유심초의 노래처럼 우리의 가슴에 많은 별들 중에 별 하나가 되고, 나비와 꽃송이가 되어 다시 만나기를 바라는 `정다운 사람`이 나타나기를 기다려 본다. `정치인은 별 수 없다`는 통념을 깨는 인격이 그립다. 나의 생각이 너무 이상적인 걸까?

2012-0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