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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과 설화

등록일 2012-03-09 21:55 게재일 2012-03-09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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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욱 시인·달전초 교사

오디션 프로그램이 대세(大勢)다. 대세다 못해 넘친다. 2009년 Mnet 슈퍼스타 K 1을 시작으로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텔레비전만 틀면 최후의 승자를 가리기 위한 피 말리는 경쟁이 펼쳐진다. 거액의 상금과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향해 부나비처럼 몰려드는 참가자들이 해를 거듭할수록 부지기수다.

그런데 문제는 살아남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뛰어난 실력 말고도 한 가지가 더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스토리텔링이다. 구구절절한 사연이 아니더라도 눈에 띄는 사연이 없다면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끝까지 살아남기가 어렵다.

심지어 대학의 입학사정관들도 지원 학생의 스토리텔링을 원한다.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어떻게 살아왔고 무엇을 했는지 일목요연하게 보여주고 들려주기를 원한다. 어느 대학 어느 학과를 전공하기 위한 자신의 노력이 자연스러우면서 감동적인 스토리로 드러나면 합격은 떼 놓은 당상이다. 비단 대학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스토리텔링을 원한다. 우리는 그 어느 시대보다 스토리텔링이 중요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스토리는 구체적인 인물과 구체적인 시공간 그리고 플롯(plot)을 필요로 한다. 플롯은 필연적 인과관계라고 할 수 있다. 플롯이 없으면 스토리가 될 수 없다. 예를 들어, `왕이 죽었다`와 `왕비가 죽었다`라는 두 문장은 나란히 늘어놓아봤자 어떠한 스토리도 만들어내지 못한다. 그러나 플롯을 주면 달라진다. `왕이 죽었다. 왕비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앓다가 마침내 죽었다`로 바꾸면 왕을 향한 왕비의 애정이 깊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스토리텔링을 잘 하려면 무엇을 알아야 할까? 섣불리 서양이나 현대의 수사나 기교를 배우려 하기 보단 이야기의 원형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 이야기의 가장 기본적인 틀을 가지고 있으면서 오랜 세월 전해져 내려온 것은 바로 설화(說話)이다. 설화는 짧은 내용과 간단한 구조를 바탕으로 구전되기 쉽도록 만들어졌다. 이야기의 원형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설화를 공부하면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는 든든한 기본기를 익힐 수 있다.

모든 이야기의 기본 속성은 `특이성`이다. 쉽게 말해서 개가 사람을 물면 사건이 못되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사정이 달라진다. 이야기가 되고 안 되고는 두 가지 조건에 달려 있다. 하나는 `특별한 주체`이며, 다른 하나는 `특별한 상황`이다. 설화도 마찬가지다.

한국 구비문학을 집대성한 `한국구비문학대계`의 부록인 `한국구비문학대계 별책부록(I) 한국설화유형분류집`에 따르면, 한국설화는 `주체가 특이한 설화`와 `상황이 특이한 설화`로 나뉜다. 주체(인물)가 특이한 설화는 대체로 주체가 능력이 뛰어나거나 모자라는 경우를 말한다. 신령, 영웅, 바보, 못난이 등이 그렇다. 구두쇠, 거짓말쟁이는 성격이 특별한 경우고 벙어리, 장님 등은 어떤 신체적 결함이 있는 경우다.

상황이 특이한 설화는 그 상황이 누구와 누구 사이에서 펼쳐지는가에 따라 둘로 나뉜다. 하나는 사람이 아닌 특별한 주체와 사람 사이 펼쳐지는 경우고 또 하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펼쳐지는 것이다. 사람이 돌이 된다든가 동물이 사람이 된다든가 하는 이야기가 전자라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잘 맺어서 행운이 오거나 잘 못 맺어서 불행이 오는 등의 이야기는 후자다.

스토리텔링을 잘하고 싶으면 동양과 서양의 설화를 깊이 공부하면 좋다. 이야기의 기본을 잘 닦아놓으면 언제 어디서나 실력을 발휘하게 마련이다.

여담이지만 포항소재 문학작품 공모가 지난해로 3회째를 맞았다. 소기의 성과가 있었던 걸로 알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조각난 거울을 모아봤자 조각난 거울일 뿐이다. 손거울이든 벽거울이든 온전한 하나의 거울을 공모해야 하지 않을까? 장편 소설이든 동화(청소년소설)든 시집이든 온전한 스토리텔링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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