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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계절에 생각나는 `님의 침묵`

윤희정 기자
등록일 2012-01-19 23:58 게재일 2012-01-19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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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의포항CBS 본부장·소설가
요즘 들어 불쑥 한용운의 시 `님의 침묵`이 떠오른다.

개인적으로 이 시 가운데 가장 인상 깊은 구절이 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이다. 아마 이 시를 좋아하는 대부분의 독자들이 공감하는 부분일 것 같다.

회자정리(會者定離)와 거자필반(去者必返)의 상징을 시적 이미지로 노래한 것이다. 만나면 반드시 헤어지게 되고, 떠난 사람은 반드시 돌아온다는 보편적인 진리다. 누구나 잘 알고 있는 당연한 순환의 논리인데, 모두가 잊고 살아갈 뿐이다.

그러다가 어떤 사회적 현상이나 개인적인 일로 고통을 당하게 되면 비로소 `회자정리`와 `거자필반`의 당연한 진리를 돌이키게 된다.

4월 총선을 앞둔 정치의 계절에 `님의 침묵`이 생각나는 것은 아련한 옛사랑의 추억 같은 감정도 아니고 후회 어린 반성 때문도 아니다. 안타깝지만 체념에 가까운 한숨이 절로 나오기 때문이다. 왜 그런 감정이 드는 것인지 가만히 돌이켜보니, 헤어졌거나 흩어졌던 정치인들이 반드시 다시 만나기 시작하고, 떠나간 정치인들이 반드시 다시 돌아오는 모양새가 똑같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말기가 살얼음판 위를 걷듯이 아슬아슬한 것이 노무현이나 김대중, 김영삼, 노태우, 전두환 정부 때와 도무지 다르지가 않다. 반드시 다시 돌아오는 정권 말기의 부정과 부패의 사슬이 고구마줄기처럼 드러나는 것이 어쩌면 그리도 똑같은지`거자필반`의 상징이 신기할 정도다

여당과 야당이 숨 가쁘게 그려내는 정치 지도도 너무나 똑같다. 떠나간 자가 반드시 돌아와서는 새로운 인물처럼 등장한다. 떠났다가 돌아온 것뿐인데도 국민들은 외계인이 온 것처럼 환호하고 새로운 정치를 기대한다. 그런 일들이 내게는 도무지 감동이 없다.

`님의 침묵`에 나오는 시구처럼 새롭게 바뀌는 지금의 정치지형도 결국은 반드시 떠나가고 반드시 헤어지게 된다는 것을 안다면, 호들갑떨 일만은 아닌데 정치인들은 춤을 추고 국민들은 덩달아 자기 취향에 따라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어깨를 들썩이고 있다.

`거자필반`이 주는 교훈은 사랑스럽고 소중하고 귀중한 것들이 언제나 항상 변하지 않고 우리 곁에 머물기를 바라는 의미다. 그런데도 국민을 화나게 하고, 싫증나게 하고, 그런 뒤 욕을 먹고 떠나간 자리로 다시 돌아오는 모습을 보게 되니 실망하다 못해 체념하게 되는가 보다.

한나라당은 선관위 디도스 공격과 전당대회 돈 봉투사건으로 만신창이가 된 당을 살리겠다며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을 등장시켰다. 모 일간지는 며칠 전 열린 민주통합당의 대표와 최고위원 선출 결과를 놓고 `노무현이 돌아왔다`는 제목을 달았다. 우리의 터전인 지방도 다를 바 없다. 떠나간 사람, 헤어진 사람들이 다시 돌아왔다. 표를 달라며 발품을 산다. 이들 모두가 제발 떠나가지 말고 우리 곁에 머물러주기를 바라는 사랑스럽고 소중한 사람들이었더라면 얼마나 정겨운 상봉이었을까!

김광섭의 시를 가수 유심초가 노래한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도 거자필반의 상징을 드러내고 있다.

“저렇게 많은 별들 중에 별 하나가 나를 내려 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에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너를 생각하면 문득 떠오르는 꽃 한 송이. 나는 꽃잎에 숨어서 기다리리.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나비와 꽃송이 되어 다시 만나자(….)”

4월 총선에 출마하겠다고 돌아온 정치인들 가운데 유심초의 노래처럼 우리의 가슴에 많은 별들 중에 별 하나가 되고, 나비와 꽃송이가 되어 다시 만나기를 바라는 `정다운 사람`이 나타나기를 기다려 본다. `정치인은 별 수 없다`는 통념을 깨는 인격이 그립다. 나의 생각이 너무 이상적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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