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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기지개` 읽는 즐거움 2

등록일 2012-03-02 21:33 게재일 2012-03-02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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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욱 시인·달전초 교사

시절이 하 수상하긴 수상한 모양이다. 아이들 글기지개 몇 편을 이곳에 소개하고 나서 여기저기서 전화를 받았다. 그중엔 무슨 출판사라는 곳도 있었는데 요즘 초등학교 고학년 학생들의 생각과 고민을 책으로 엮어보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때가 때 인만큼 정체불명의 `초딩`과 소통의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중·고등학생에 비해 초등학생은 어른의 막연한 환상, 이를테면 아무 근심 걱정 없이 잘 웃고 잘 놀고 잘 지내고 있을 거라는 오해와 확신의 울타리에 오랫동안 갇혀 있었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매우 놀랄 것이다. 특히, 우리는 열세 살이라는 나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전에 중·고등학생이 겪던 질풍노도의 시기를 오늘날에는 열세 살을 전후해서 맞고 있다. 급격한 심리적 육체적 변화의 시기에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줄 무언가가 필요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늘날의 학생들에게는 대중매체와 전자기기(스마트폰, 컴퓨터)가 그 노릇을 한다. 보고 듣고 겪는 모든 것들이 자극적이고 폭력적이어서 짐짓 한탄스러울 따름이다.

머리 아픈 얘기는 각설하고, 지난번에 이어 두 번째로 학생들의 글지기개 몇 편을 소개할까 한다.

“어제 수학학원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내가 모르는 문제가 있어서 선생님께 물으러 가니깐 선생님이 “왜 이런 문제를 못 푸냐!”고 나한테 소리를 질렀다. 공식 하나만 잘 쓰면 이런 문제는 다 풀 수 있다고 하셨다. 나도 이렇게 크게 혼난 적은 없었는데 왠지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모르는 게 있어서 물으러 왔는데 혼만 나고` 내가 혼나는 순간 학원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날 쳐다봤다. 선생님이 너무했다. 그리고 숙제로 틀린 거랑 다 고쳐오라고 했다. 하나도 빠짐없이. 정말 슬프다”

김민경이 쓴 `수학학원`이라는 글기지개다. 모르는게 있어서 물으러 갔는데 뜻밖에 야단을 들은 모양이다. 이 글을 읽고 만감이 교차했다. 심지어 학교 퇴근하고 교사들이 학원으로 출근하면 어떨까, 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잠시 얘기를 나눠보니 학원에서는 체벌도 심심치 않게 하는 모양이었다. 숙제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렇게 해줘야 부모가 좋아하고 입소문이 퍼진다는 말에 더는 할 말이 없었다.

“어제 도서관을 나서는 길에 4-1반 선생님이 내 시를 칭찬하셨다. 쑥스러웠다. 집에 와서 내가 쓴 시를 낭독하니 어머니와 동생이 웃는다. 그런데 선생님이 아버지 드리라고 한 봉투엔 예쁘게 꾸며진 내 시가 들어 있었다. 아버지가 보셨는지 모르겠다. 기뻐하시면 좋겠다. 오늘 정봉학 선생님이 `균영아, 니 시 좋다` 라고 하셨다. 도대체 몇 분이 읽어 보신 건지. 난 그냥 진심을 담아 썼는데 어쩌다 잘 써진 것 같다. 앞으로도 멋진 시를 쓸 수 있으면 좋겠다”

한균영이 쓴 `내가 쓴 시`라는 글기지개다. 필자는 글기지개(아침 5분 글쓰기)를 비롯해 시 암송과 시 쓰기를 학급 특색으로 운영해오고 있는데 그때는 `아버지`를 주제로 함께 시를 썼었다. 주제와 어울리는 맛보기 시 몇 편과 e-지식채널 동영상을 감상한 후 시를 썼는데 균영이가 쓴 시가 그중에 눈에 확 띄었다. 별생각 없이 읽었는데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혼자 보기 아까워 오후에 쪽지창으로 동료 선생님께 균영이가 쓴 시를 보냈더니 답장이 빗발쳤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이런 아들을 둔 아버지, 누군지 모르겠지만 참 부럽다”였다. 균영이가 쓴 시가 궁금하면 네이버 카페 `시와 노는 교실`을 찾으면 된다. 늘 느끼는 바지만 문학의 힘은 진심에 있다는 것을 제자를 통해 또 한 번 확인했다. 어느 아파트 광고 문구처럼 진심은 반드시 통하기 마련이다.

3월, 새 학기가 시작됐다. 초등학교 6학년과 중등 담임교사의 걱정도 함께 시작됐다. 근데 별 뾰족한 수가 없다. 진심 밖에는. 필자도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6학년을 맡았다. 솔직히 자의는 아니었지만 이제 어쩔 수 없다. 진심으로 다가가 하나 됨을 꿈꾸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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