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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방학을 맞아 학부모님께

등록일 2012-07-27 21:38 게재일 2012-07-27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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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욱 시인·달전초 교사

안녕하세요, 학부모님. 6학년 담임교사 김현욱 입니다. 여름방학이 이제 며칠 남지 않았네요. 조금 전에 생활통지표 출력을 끝내고 책상에 앉아 지난 1학기를 돌아보는 중입니다. 돌이켜보니 짧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일이 있었네요. 하지만 흐뭇하게 웃을 수 있는 건 순수하고 정 많은 아이들 덕분입니다. 학부모님 한 분 한 분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네요. 참 잘 키우셨습니다. 이렇게 키우기까지 얼마나 애쓰고 희생하셨을까요? 거듭 감사합니다.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아이들이라 생활통지표 종합의견란에도 저절로 희망의 메시지를 많이 쓰게 되었습니다. 사실, 격려와 칭찬이면 무얼 못하겠습니까?

존경하는 학부모님, 항상 기억해주세요. 자라나는 아이들에겐 비난보다는 격려를, 꾸중보다는 칭찬을 많이 해주세요. 못난 것은 작게 보시고 잘 난 것은 크게 봐주세요. 마찬가지로 못하는 것은 작게 보시고 조금이라도 잘하는 것은 크게 짚어주세요. 사람마다 타고난 기질과 재능이 모두 다르다는 것은 익히 알고 계시지요? 자녀도 모두 다릅니다. 그러니 `엄친딸`이나 `엄친아`와 비교하는 건 처음부터 어처구니없는 일이지요. 매미는 매미대로, 나비는 나비대로의 기질과 장단이 있습니다. 매미에게 “너는 왜 그렇게 시끄럽냐? 나비처럼 좀 우아할 수 없냐?”고 다그치는 우를 범하지 말았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그런다고 매미가 나비가 되고, 나비가 매미가 되는 일은 절대로 없으니까요.

`여름방학` 하면 떠오르는 아이가 한 명 있습니다. 여름방학과 동시에 서울 친척집으로 혼자 간다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죄송하지만 몇 가지 방학과제는 못해오겠다는 겁니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모 집이 OO도서관 바로 옆인데, 방학동안 도서관에서 책을 마음껏 읽고 싶어요. 숙제 신경 안 쓰고 실컷요. 선생님, 그래도 될까요?”

평소에 학교에서도 책을 부지런히 읽는 아이라 그 말이 무척 진실하고 간절하게 다가오더군요. 그래서 호기롭게 그러라고 했습니다. 겨울방학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아이에게 방학이란 `책을 마음껏 읽는 시간`이었습니다. 그 아이는 지금 대학생입니다. 누구나 부러워하는 대학에 사교육 한 번 없이 당당히 장학금을 받으며 입학을 했습니다. 출세나 성공이 아니라 인류 공헌에 이바지하는 과학자의 꿈을 꾸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지요. 앞서, 모든 사람은 타고난 기질과 재능이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인 방식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제가 강조했습니다. 그렇다면 학부모님께 하나만 여쭤볼게요? 방학 때마다 도서관에서 책과 사는 아이는 특별한 아이인가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책을 좋아하고 즐겨 읽게 하는 것은 교육의 차원이 아니라 아이 인생의 차원에서 접근해야할 중차대한 문제입니다. 동시에 모든 부모와 교사가 고민하고 노력해야 할 교육의 바탕입니다.

존경하는 학부모님! 여름방학을 하면 잠시 시간을 내어 시내 서점이나 근처 도서관으로 가십시오. 가서 자녀와 함께 방학동안 읽을 책을 구입하거나, 방학동안 도서관에서 마음껏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배려해주세요. 어떤 목적도 기대도 가지지 마시고 아이가 마음껏, 실컷 책에 빠질 수 있도록 해주세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습니다. 토론, 체험, 글쓰기 등등 더 드리고 싶은 말씀은 많지만 저 또한 욕심 부리지 않겠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족합니다. 혹시나 싶어서 드리는 여담입니다만, 여름방학을 맞아 본격적으로 학원 특강이나 학습지, 그룹과외를 계획 중인 학부모님이 있다면 한 가지만 자문해보십시오. `정말 아이를 위한 일인가? 나 자신을 위한 일인가?` 초등학생 때부터 사교육을 맹신하고 강요하다 중고등학생이 된 자녀와의 심각한 갈등으로 괴로워하는 학부모님을 많이 보아왔습니다.

욕심 부리지 마세요. 학부모님. 정말 책 속에 길이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그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모쪼록 도와주고 지켜봐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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