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겨냥해서 대선에 출마할 후보들이 전략적인 행보를 보였다. 가족들이 모이면 정치나 사회문제에 대한 토론의 장이 벌어져 영향력이나 파장이 만만치 않기 때문일게다. 오죽하면 `추석민심`이라는 말을 쓸 정도다. 이런 사실들을 두고 보면 `우리나라는 토론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풍토`라는 주장에는 동의하기 힘들다는 생각이다.
어릴 때 밥상머리에서 숟가락을 떠는 것이나 밥을 입에 넣고 말하는 것도 금기였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그저 조용히 밥만 먹고 어른들이 말을 하면 공손히 듣기만 하는 것이 예의범절이었던 것이다. 추석 차례상 앞이나 제사를 지내고 난 뒤 음복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엄숙한 자리에서 예를 지키지 않는 것은 큰 잘못으로 여겨졌다. 학교에서도 정숙이란 글귀가 사방에 씌어 있었고, 예를 지키지 않고 자기주장이라도 강하게 하면 건방진 놈, 무례한 놈으로 간주됐다. 꼬박꼬박 말대꾸하는 녀석을 선생님들도 싫어했고, 말수가 적으며 고분고분하면 점잖은 녀석이라고 칭찬까지 하는 판에 우리는 자기주장이 있더라도 꾹 참고 남의 말을 잠자코 듣는 것에 익숙해졌다. 그래서 토론에 익숙하지 않은 분위기에서 자랐고, 그것 때문에 `토론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풍토`라 말하는 것 같다.
현재 대한민국 교육은 토론에 주목하는 듯하다. 경상북도 교육청은`어울림 삼담꾼(입담, 재담, 정담)`이라 하는 독서토론교육을 구상하고, 연차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하향식 정책은 현장에 잘 뿌리내리지 못한다는 어려움이 있을 텐데,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실천하고 있어 기대가 된다. 어떤 정책이나 다 그럴 것이지만 특히 토론문화는 앞에서 말했듯 오래된 관습이라는 높은 장벽이 가로놓여있다. 그러므로 오랜 시간과 공을 들여 토론의 기본적인 바탕인 비판정신을 길러내는 교육에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다시 `추석민심`으로 돌아가서 생각해보면 SNS나 여러 언론들에서 부족했던 부분을 추석명절이란 한국고유의 전통 시공간이 만들어낸다는 이야기다. 대선에 대한, 폭발력 있는 남녀노소의 소통과 토론이 추석이란 전통공간에서 어떻게 만들어 지는걸까. 꾹 참고 잠자코 듣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소통은 서로 의견을 내어놓는 순간 시작될 것이다. 인간은 입으로 들어가는 만큼 입 밖으로 내어 놓는 동물이 아닌가. 음식 앞에서 만들어지는 이야기의 모닥불은 엄청난 소문과 영향력을 만들어 낼 것이다. 어른들 이야기를 주워 들었던 아이들도 한마디 보탤 수 있을테니 `추석민심`으로 큰 표가 왔다갔다할 것이다.
한 인디언 부족은 회의를 할 때면 막대기를 잡아야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규칙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다른 사람이 말을 하고 있을 때 말을 끊거나 참견하지 못하게 한 이런 규칙은 토론에서 매우 중요한 것이다. 토론장에서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생각에 빠져서 남의 말은 듣지 않고, 자기주장만 늘어놓기 쉽다. 건강한 토론이란 남의 말을 듣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어쩌면 오랫동안 잠자코 어른들의 말만 듣는 훈련을 한 우리는 토론자의 자질을 이미 반쯤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막상 마이크를 잡았을 때, 예리한 비판력과 유창한 말솜씨로 자기주장을 늘어놓지 못한다면 토론자로서 남은 반쪽 자질은 형편없는 셈이다. 이번 추석에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토론회를 한번 열어보는 건 어떨까. 토론 주제는 `이번 대선엔 ○○○이 대통령으로 당선 될 것이다.`란 내용으로 찬반토론을 벌이는 것이다. . 물론 한 번에 한사람씩 말하고 다른 사람들은 경청하는 인디언식 토론법이 좋겠다. 유대인들은 밥상머리에서 자녀들의 비판력을 길러주기 위한 토론을 벌인다고 한다. 그런 교육이 힘을 발휘해서 노벨상을 석권하는 기적을 낳은 것은 아닐까. 세대와 세대가 서로 공감하고 여러 계층의 갈등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에 이런 토론문화가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