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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명(天命)의 거부

등록일 2012-09-11 20:50 게재일 2012-09-11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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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석준 수필가

나관중이 쓴 `삼국지`를 읽어보면 제갈량은 유비의 유지를 받들어 위나라를 정복하고자 했으나 번번이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한 번은 유인계를 써서 위군을 상방곡에 몰아넣고 계곡입구를 차단한 뒤 불화살을 쏘아대니 상방곡은 온통 불바다가 됐다. 위군은 달아날 구멍을 찾지 못하고 전멸할 지경에 이르렀는데, 갑자기 사방에서 검은 구름이 몰려들더니 장대같은 소나기가 쏟아졌다. 사마의(위군의 대장군)는 제빨리 군사를 이끌고 탈출에 성공했다.

사마의 부자가 탈출했다는 보고를 받은 제갈량은 이렇게 말했다.

“일은 사람이 꾸미지만 성공여부는 하늘에 달려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천지의 운행과 인간의 운명은 하늘의 뜻에 달려 있다는 `천명사상(天命思想)`은 주공(周公)에 의해 제기되고 공자에 의해 확립돼 충(忠)·효(孝)·인(仁)·의(義)와 함께 유교사상의 근간을 이루며 2천년 이상 동양 3국에 큰 영향을 끼쳤다. 공자는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이 명(命)에 있고 부귀도 하늘에 있다”고 했으며, 송에서 환퇴에 의해 죽음을 당할 뻔 했을 때에는 이렇게 말했다. “하늘이 덕을 나에게 주셨거니, 환퇴가 나를 어찌하랴” 비슷한 말이 논어 자한편 5장에도 나온다. 이것은 명백히 초월적인 존재를 인정한 것이 되며 자기의 운명을 하늘의 뜻으로 돌린 것이다.

공자의 천명사상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은 사람은 `유학의 이단자`라고 불리는 순자였다. 순자는 그의 제자가 “스승님 기우제를 지내니 비가 왔습니다”라고 물었을 때 “기우제를 지내지 않아도 비가 왔다”라고 대답했다. 이 말은 분명히 천명(天命)에 대한 거부요, 도전이라고 하겠다.

사마천 또한 `사기` `백이숙제열전`에서 천도(天道)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천도는 공평무사하여 언제나 착한 사람 편을 든다고 한다. 그렇다면 백이숙제와 같은 사람을 착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가? 그들은 인과 덕을 쌓고 청렴 고결하게 살다가 굶어 죽었다. 그리고 공자는 칠십 제자 중에 오직 안회만을 학문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추상했다. 그러나 그는 가끔 뒤주가 비어 있었으며, 지게미나 쌀겨도 배불리 먹지 못하다가 끝내 요절했다. 하늘은 착한 사람에게 보답한다는데, 이것은 도대체 어찌된 셈인가? 한편 도척은 날마다 죄없는 사람을 죽이고 사람의 간을 회치는 등 포악 방자해 수천 사람의 도당을 모아 천하를 횡행했지만 천수를 누렸다. 그렇다면 그가 도대체 어떤 덕행을 쌓았단 말인가? (중략) 그래서 나는 의심한다. 천도는 과연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노자는 한걸음 더 나아가 “천지는 어질지 않다. 만물을 풀강아지처럼 여긴다”라고 했다. 여기서 풀강아지란 제사에 쓰고 버리는 것으로서 하찮은 것을 의미한다. 천지가 만물을 하찮은 것으로 여긴다는 말은, 곧 자연을 도덕적으로 판단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천지가 어질다고 보는 것은 바로 유가이다. 유가는 자연마저도 인간 사회의 가치의식을 투영하여 인간 중심적 시각에서 이해하고자 했다.

김부식이 지은 `삼국사기`를 보면 일식이나 지진이 일어난 것을 빠짐없이 기록하고 있는데, 양(洋)의 동·서를 막론하고 옛날에는 일식이나 월식이 일어나는 원인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이를 하늘이 내리는`경고`, 또는 `재앙`으로 받아들였다.

19세기 독일의 철학자 니체는 “운명아 비켜라. 용기있게 내가 간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지만, 김유신은 이미 1천300년 전에 천명이나 운명 따위를 거부하고, 오히려 천명을 역이용해 전세를 유리하게 바꾼 탁월한 전략가였다.

그러나 21세기 최첨단 과학시대에 살고 있는 오늘날에도 지진이나 해일 등 천재지변이나 에이즈나 백혈병 같은 난치병, 신종 플루같은 질병을 가리켜 `말세의 징조`니, `하늘이 내리는 벌`이니 하며,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또 이러한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이 많이 있다. 인간은 현명한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존재라고 아니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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