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내 생애의 아이들

등록일 2012-08-10 21:44 게재일 2012-08-10 22면
스크랩버튼
▲ 김현욱 시인·달전초 교사

몇 년 전 상옥분교에서 만난 유경이는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좀 더 엄밀히 말하자면, 유경이 가족이 그렇다. 그중에서도 특히 유경이 어머니를 잊을 수 없다. 2학년 예경이와 3학년 준경이, 6학년 유경이, 중학생 현경이까지 사 남매를 구김살 없이 바르게 키워 낸 것도 대단하지만, 병원에서도 손 놓은 남편을 산골로 데려와 사시사철 약초와 산나물로 극진히 돌보는 모습에서 자못 경건함까지 느꼈다.

언젠가 유경이 어머니와 상담하던 중이었다. “많이 힘드시죠, 어머니?” “아니요. 오히려 감사하지요. 저는 남편을 하느님이라고 생각합니다. 예경이, 준경이, 유경이, 현경이도 모두 제가 모시는 하느님입니다. 하느님을 모시고 사는데 힘들 이유가 있나요? 오히려 감사해야지요.” 그러고는 환하게 웃으셨다. 그처럼 따스하고 충만한 웃음을 본 적이 없었다. 상담이 끝나고 빈 교실에 있는데, 마음이 자꾸만 울렁거렸다. 그날 나는 유경이 어머니에게 큰 가르침을 얻었던 것이다.

유경이가 써 오는 일기는 그야말로 하느님 가족의 동화다. 다슬기를 주우면서도, 오디를 따면서도 모든 이야기는 아빠를 걱정하는 마음과 엄마를 위하는 마음으로 마무리된다.

상옥분교를 떠날 즈음, 유경이 집에 들렀다. 글쓰기 지도를 잘해 줘 감사하다는 뜻으로 초대를 받았다. 어머니 마음이 느껴지는 고봉밥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고 나오는데, 유경이 아버지가 불편한 몸을 이끌고 나오셨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로워 보이는 유경이 아버지는 내 손을 꼭 잡더니 고맙다고 하셨다. 예경이, 준경이, 유경이, 현경이가 빙 둘러섰고, 어머니도 계셨다.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 별자리처럼 손 꼭 붙잡고 사는 이들이 하느님 가족이라는 것을.

지난해에는 수학여행을 다녀온 직후, 지현이가 날 찾아왔다. 다리가 너무 아파서 병원에 가야겠다고 하기에 다녀오라고 했다. 수학여행 동안 무리를 했나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다음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뼈에 악성종양이 생겨서 입원해야 한다고 했다. 며칠 후, 골육종 진단을 받은 지현이는 서울 큰 병원으로 올라갔다.

나로서는 처음 겪어보는 일이라 한동안 망연자실했다. 반 아이들도 마찬가지여서 지현이와 친하게 지내던 몇몇 여학생들은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학급 장기 자랑시간에 동요를 맛깔나게 부르던 지현이가 자꾸만 눈에 어른거려 마음이 아팠다.

지현이가 힘들다는 항암치료를 시작할 즈음, 반 아이들이 지현이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고 했다. 다들 어디서 구해왔는지 참 예쁜 편지지와 봉투였다. 평소 악필로 유명하던 남학생들이 또박또박 “힘내!”, “네 동요가 듣고 싶어!”, “건강한 모습으로 교실로 돌아와라!” 를 쓰는 모습을 보고는 콧잔등이 시큰했다. 그걸로 부족했던지 반 아이들은 강당에 모여 지현이를 위한 몸짓도 연습했다. 여학생들은 응원도구까지 준비해 열심히 안무를 짰고, 코밑이 거무스름한 남학생들은 익살스러운 동작도 마다하지 않았다. 며칠 후 아이들 진심이 담긴 편지와 동영상을 담은 USB를 서류봉투에 넣어 지현이에게 부치고 오는데, 왜 그리 가슴이 먹먹하던지….

이제 그 아이들은 어엿한 중학생이 되었다. 항암치료를 꿋꿋하게 견뎌낸 지현이는 거의 완치가 되어 집에서 떨어진 체력을 기르고 있다. 올 초, 지현이가 보내온 메일에 이런 구절이 있다. “…절대로 절망하지 않을 거예요. 이런 일을 겪었으니 더 강해져야겠죠? 그리고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거예요.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이유는 원래 사랑하기 위해서래요.”

우리는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왔다고,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고 말하는 지현이의 메일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서로 아끼고 사랑할 줄 아는 가슴 따뜻한 이 아이들을 오래 기억하고 싶다. 그리고 지현이의 말처럼 `우리는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왔다는 것`도 잊지 않으려 한다.

아침을열며 기사리스트

더보기
스크랩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