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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story 발굴로 역사 속 여성 멘토를 찾자

등록일 2012-09-20 21:11 게재일 2012-09-2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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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명화 경북여성정책개발원 연구위원

“마리아 스클로도프스카!”“예!”“스타니슬라스 오거스투스에 대해 말해 보아라.”

방사능 분야의 선구자이자 노벨상을 수상한 여성 화학자 마리 퀴리의 어린 시절 이야기다. 당시 폴란드는 러시아에게 점령당한 상태로 폴란드어를 몰래 공부하던 교실에 들이닥친 러시아 장학사는 러시아어와 러시아 역사를 테스트하려고 이것저것 질문은 던진다. 다행히 마리아가 대답을 잘하여 아찔했던 상황은 모면할 수 있었지만, 장학사가 교실 밖으로 나간 뒤 설움에 겨워 울던 모습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 있다. 나라를 잃은 슬픔 속에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던 마리 퀴리의 의지와 강인함도 오랫동안 마음에 남았다.

학교를 졸업한 지 꽤 오래되어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마리 퀴리의 이 일화는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만났던, 거의 유일한 여성인물에 대한 이야기였던 것 같다. 이 일화를 아직 기억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커가면서 한 번씩 그런 의문을 가졌다. 왜, 여성인물에 대한 이야기는 이다지도 빈약할까? 지도자이든, 학자이든, 예술가이든 히로(Hero)에 대한 이야기는 넘쳐나는데 히로인(Heroin)에 대한 이야기를 만나기란 쉽지 않았다. 수많은 남성들의 이야기 속에 가뭄에 콩 나듯 어쩌다가 한둘 만나볼 수 있으면 다행이었다. 흔히들 “역사는 승자의 것이다”라고 말하는데, 이제까지의 역사가 주류인 남성중심적 관점에서 기술되고 해석됐기에 초래한 결과가 아닐까 한다.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의 2007년 연구결과를 보면 중학교 교과서에 등장하는 역사 속 여성인물은 2% 정도라고 한다. 매우 미미한 수준이다. 그나마 소개된 여성인물 대부분도 현모양처 등의 고정화된 이미지나 전통적 성역할에 국한돼 있다는 점이 아쉽다. 하지만 늦게나마 이런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고, 여성사(Herstroy)에 대한 인식과 관심을 가지게 됐다는 것이 지금 단계에서는 중요한 성과가 아닌가 싶다. 앞으로 이 분야에서 더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 역사를 이전보다 균형적인 시각에서 이해하고, 지금까지 관심을 갖지 않았던 여성들의 역할과 역사를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으면 좋겠다. 이러한 성과위에서 여성들의 롤모델도 한층 더 풍부해 질 수 있을 것이다.

경상북도와 경북여성정책개발원에서도`경북여성사`발간을 시작으로 지역여성들의 Herstory를 발굴하고 조명하려는 노력을 지속해 오고 있는데, 지난 해`경북여성인물사 : 이야기로 만나는 경북여성`이란 제목으로 의미있는 책을 한 권 발간했다. 지역 여성 인물들의 삶과 행적을 테마별로 조명한 전국 최초의 연구이다. 이 책에는 신라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 역사 속에서 여성리더, 여중군자, 독립운동가, 사회사업가, 예술가로 활발한 활동을 펼쳤던 지역여성 20명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동안 역사 이면의 숨은 내조자로서 머물렀던 여성들의 활동을 각 테마에 따라 면밀히 조명했을 뿐만 아니라 독자들이 읽기 쉽도록 이야기식으로 쉽게 풀어써 가독성을 높였다는 특징이 있다. 지역여성사 연구에 목말라 있었던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겠지만, 발간되자마자 2쇄를 인쇄해야 할 정도로 독자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시대적 제약`과 `여성`, `지역`이라는 이중, 삼중의 굴레를 극복하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간 이들 여성의 이야기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여성들에게 더없이 훌륭한 롤모델이 돼 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앞으로 이러한 연구가 보다 활발해 지기를 희망하며, 바라건대 성인 일반 독자를 염두에 두고 발간된 책이지만 청소년들이 읽기 쉽도록 개작돼 많은 학생이 이 책을 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학창시절,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꼿꼿함을 잃지 않았던 마리 퀴리의 모습이 내게 훌륭한 귀감이 돼주었던 것처럼 자라나는 우리 청소년들에게 20명의 선배 여성들이 든든한 멘토가 되어 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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