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을 창제하신 세종대왕의 위대함은 누구나 다 느끼고 인정하는 바이다. 나는 첫 아이의 이름을 지을 때 고민을 하면서 세종대왕의 위대함을 새삼스럽게, 그리고 뼈저리게 느끼게 됐다.
나는 첫아이의 이름을 순수한 우리말로 짓겠다고 다짐했다. 이름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삶이 가장 온전하게 담겨 있는 고유어로 짓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이름에는 들으면 그 의미를 바로 알 수 있게 해주는 자명함이 있다. 가령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朴赫居世)라는 이름도 당시 사람들이 부르던 `불구내(弗矩內)`의 음차로 알려져있다. `밝은 누리`를 뜻하는 `밝은뉘`의 음을 번역한 것이 혁거세이며, `박`이라는 성은 우리말 `밝`을 임시로 표기한 것이다. `밝은뉘`를 한자 `혁거세`로 표기하고 부르는 것은, 영어가 대세가 된 지금으로 치자면 영어로 `브라이트 월드(Bright World)`라 표기하고 부르는 것과 같다. `혁거세`나 `브라이트 월드`와 달리 `밝은뉘`에는 그냥 들으면 그 뜻을 알 수 있는 자명함이 있다.
순수 우리말로 이름을 지으면 한자를 외워야 하는 불필요한 노력도 없앨 수 있다. 당연히 오행(五行)에 따른 돌림자를 쓰지 않아도 된다. 족보에 따르면 내 이름의 `수(洙)`(물 이름 수)가 돌림자인데, 이는 오행의 수(水)를 반영한 것이다. 오행의 순서가 `목(木)-화(火)-토(土)-금(金)-수(水)`이니, 아버지의 돌림자는 금(金)을 반영한 `종(鍾)`이었다. 그러다 보니 쇠 금자의 경우 가문마다 현(鉉: 솥귀 현), 석(錫: 주석 석), 철(鐵: 쇠 철), 호(鎬: 냄비 호), 진(鎭: 누를 진), 은(銀: 은 은) 등이 사용된다. 이런 경우에는 이름의 자명함은 물론이고, 한 사람의 개성이나 그에 대한 존중이 부족하다.
첫아이가 태어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우리말 사전과 각종 시집을 뒤져 몇 가지 이름을 지었다. 가슴 한편으로 뿌듯함을 느꼈다. 그러나 아이의 탄생을 축하하러 온 형들의 충고가 잇따르면서 뿌듯함은 곧 불안감으로 바뀌었다. 형들은 너무 별나게 하지말고 보통 사람들처럼 한자어로 이름을 짓는 게 좋다고 충고했다.
그래도 나는 순우리말 이름을 선택했다. `아름답고 예스럽다`는 말에서 `예`를 따오고, `슬기롭다`에서 `슬`을 따와서 `예슬`이라 지었다. 일말의 불안감 때문에 한자어와 비슷한 맛이 나게 지은 셈이다. 동사무소 직원이 “한자는 없냐”고 할 때 마치 죄지은 사람처럼 조그맣게 “예”라고 대답하고, 겨우 출생신고를 마쳤다. 그런 후에도 나는 `아이의 이름이 너무 낯설고 어색해서 놀림감이 되면 어쩌나`하는 불안감을 떨치지 못했다. 그러다 인터넷에서 `박예슬` 이름을 검색하고 나서는 불안감을 깨끗이 떨쳐버렸다. 세상에, `박예슬`이란 이름이 그렇게도 흔할 줄이야. 흔하다는 사실에서 위안을 얻은 경우는 이때가 처음이었다.
우리말로 아이 이름 하나 짓는 데도 이처럼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세종대왕이 새로운 문자를 만드는 일은 얼마나 큰 고난의 길이었을까. 한글 창제를 반대한 사람들은 지금까지 한자를 쓰며 잘 살아왔는데, 새 글자를 만들어 외교문제를 일으킬 필요가 있느냐고 했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니었다. 한자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세종대왕으로서는 한글이 없어도 문자생활을 하는 데 아무런 불편이 없었다. 오로지 백성들의 편의를 위해서 만든 것이다. 훈민정음 서문에 `내 이를 위하여` 하고 주어를 분명하게 밝힌 것도 이 때문이리라. 바로 여기에 세종대왕의 위대함이 있다.
나는 여기서 대왕의 더 위대한 업적은 새로운 시도를 마음껏 할 수 있는 시대를 만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새로운 시도 앞에 장벽을 쌓아놓지 않은 사회, 새로운 문으로 들어가기에 문턱이 없는 시대, 그런 열린 시대를 만든 것이야말로 세종대왕의 위대함을 웅변하는 게 아닐까. 아이 이름 짓는 것처럼 사소한 일이건, 새로운 글자체계를 만드는 위대한 일이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