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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발간하려는 사람에게

등록일 2012-10-12 20:27 게재일 2012-10-12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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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재영 시인

밤 이슥토록 시를 읽었다.

도회지 고층 아파트라 그런지 가을밤인데도 귀뚜라미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여러 권의 시집을 늦도록 넘기며 많은 생각을 했다. 그 중 예순 넘은 나이에 시 공부를 시작해 고희를 넘긴 분의 시도 읽었다. 삶의 후반부에 머문 그분의 시는 젊은이들의 장기라 할 실험정신은 없었지만 살아온 지난날들의 애환을 작품에 고스란히 담으려 노력했다.

많은 사람들이 나이 들어 하고 싶은 것 중의 하나가 `자서전`격인 책을 묶고 싶어 한다. 물론 능력이 될 때 가능한 일이지만 자신이 쓰지 못하면 누군가를 통해 대필까지 하여 발간하려 한다. 노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들의 지난 삶이 몇 권의 소설이 되고, 드라마가 된다고 들려준다. 어찌 보면 일제강점기를 거쳐 남북전쟁을 겪은 우리나라 사람치고 파란만장한 삶을 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렇다고 모두가 책을 낼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다. 자비 출판이라 하더라도 책을 내는 데는 경제적 문제부터 시작해 여러 가지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옛날과 비교한다면 요즘은 책 내기가 쉽다.

컴퓨터 출현으로 누구든지 자신의 이야기를 자판으로 두드리고, 저장하고, 다시 꺼내 퇴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판에 뛰어든 사람들의 단골 메뉴가 선거를 앞두곤 책 발간과 함께 출판기념회를 연다. 자신을 홍보할 뿐만 아니라 정치적 후원금을 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을 묶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는 말이 떠오른다. 책은 자신의 이름을 오랫동안 남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중의 하나다.

책을 발간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시 읽기를 권하고 싶다. 시는 산문과 달리 많은 것을 함축한다. 장구하게 긴 이야기를 풀어놓는 것도 좋지만 그것보다 긴 이야기를 몇 줄로 요약할 때 글은 아름답다. 짧은 시 한 편에는 책 한 권의 내용도 담을 수 있다. 함축된 문장으로 빚은 시는 병원을 찾은 환자에게 처방하는 약처럼 인간의 마음을 후련하게 해주는 카타르시스도 있다.

그것과 함께 자신의 진솔한 삶을 책으로 엮으려는 사람들에게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을 꼭 들려주고 싶다.

“노란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습니다/안타깝게도 나는 두 길을 갈 수 없는/한 사람의 나그네 오랫동안 서서/한쪽 길이 덤불 속으로 꺾여 내려간 데까지/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보았습니다/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선택했습니다/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거기에는 풀이 더 우거지고 사람이 걸어간 자취가 적었습니다/하지만, 그 길을 들어감으로 해서/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입니다만” - 후략.

풀이 더 우거지고 사람이 걸어간 자취가 적은 길을 선택함으로써 모든 것이 달라졌다는 시는 우리에게 많은 회한과 아쉬움을 갖게 한다. 모든 사람들이 살아오면서 경험했을 것이다. 내가 그 때 이것을 선택하지 않고 저것을 선택했다면….

한층 길어지고 깊어지는 가을밤이 우리 곁에 있다. 맑은 종소리 같은 시 한 편 가을밤 가운데 촛불처럼 켜보자. 정신이 맑아지면서 우리의 영혼에 이슬처럼 영롱한 물방울이 맺힐 것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지는 온갖 출판물로부터, 언론을 통해 듣게 되는 사회 폭력으로부터 시는 우리의 마음을 평화롭게 할 것이다. 그런 것들이 더 좋은 자신의 책을 발간하는 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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