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서 원목신부로 근무하면서 많은 환자들을 만났다.
어느 날 휠체어를 타고 오신 분인데 젊었을 때 하고 싶었던 일이었다며 어려운 이웃을 위해서 사용하라고 성금을 주셨다. 삶의 끝자락에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성찰을 하는 삶을 보여준 것이다.
또 한 분은 가족에게도 안구의 각막을 기증하자며 권하던 분이다. 이미 전신에 암이 펴져 이웃에게 도움이 될 것이 없지만 다행히도 각막에는 이상이 없어서 앞을 볼 수 없는 이들에게 도움이 된다며 웃으시던 분이다. 그분의 기증으로 두 분의 안과 환자가 다시 빛을 보게 됐다.
“누구나 다 가는 길”이라며 다윗은 임종을 앞두고 아들 솔로몬에게 담담하게 죽음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 줬다. 예외 없는 죽음에 이르는 길이지만 그 삶의 마지막 모습은 제각각 다른 모습을 띤다. 그렇지만 임종자들을 가까이 하면서 하나의 동일한 모습을 발견했다. 그것은 누구나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성찰의 자세를 지닌다는 점이다.
자신을 돌이켜 보는 것이 가장 인간적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공자의 제자 증자(曾子)는 하루를 마무리 할 때, 세 가지 기준에서 자신을 살폈다. 첫째 다른 사람(가장 가까운 가족부터)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살았는가. 둘째 친구와 이웃에게 신뢰를 얻으며 살았는가. 셋째 오늘 배운 것을 내 몸에 익혔는가. 오일삼성(吾日三省)의 자세를 실천한다면 자신의 생에 마지막까지 성장하는 아름다운 모습이 될 것이요, 이웃과의 관계에서 신뢰가 쌓일 것이다.
가까운 이웃이라 할 수 있는 일본과 먼 이웃이라 할 수 있는 독일은 과거에 대한 태도가 확연히 다르다.
1971년 폴란드의 바르샤바에서 독일총리 빌리 브란트(Willy Brandt)의 사과이후 일관된 자세를 통해 진심이 다가오지만 일본의 속내는 그렇지 않게 느껴진다. 나가사키의 평화 박물관에서 원폭에 대한 자료에서 일본의 속내를 알게 해 주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은 원래 독일을 겨냥한 미국 맨허튼 계획인데, 그것이 떨어졌다는 식으로 표현돼있었다. 일일의 성찰과 일사의 성찰은 이웃과의 관계에 대한 신뢰와 희망의 바로미터가 될 수 있겠다.
햄릿 킨타나(Hamlet Quintana)는 “한 마디 말로 불을 밝히고 장미꽃을 피우는 이가 있고, 말 한 마디로 영혼의 끝까지 다다르며 꽃을 키우고 멋진 꿈을 꾸게 하며 포도주를 익게 한다”고 했다. 빌리 브란트의 침묵의 한 마디는 세상에 용서와 화해의 물결을 일으켰지만 우경화되어가는 지도층 행동은 장미꽃을 피우기엔 여전히 거리가 멀게 느껴진다.
르네 바르자벨Rene Barjavel)은 “사랑의 부재보다 더 큰 죽음은 없다”고 했다. 오히려 더 넓은 자세로 이웃을 포용해 시인 베르길리우스(Vergilius Maro)의 말대로 사랑으로 모든 것을 이겨내었으면 한다.
죽음을 앞에 두고 가족과 화해하는 모습은 감동적이다. 그간 쌓여온 짐을 털어버리는 것과 아울러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어느 방송에서 군대생활이후에 처음으로 모친에게 편지를 쓰고 낭독하는 소리를 들었다. 사랑한다는 말보다 의견이 달라 싸운 것에 대한 소회와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표현하지 못했던 자신을 돌이켜 보며 사랑을 고백하는 아들의 진심은 듣는 이로 하여금 가슴에서 눈물이 솟구치게 했다.
그처럼 죽음의 자리에서 사랑을 나누는 것은 더욱 의미가 있다.
일상의 작은 일에서 서로 사랑을 표현하는 나날이었으면 한다. 그러면 언젠가 삶의 마지막 자리에서 서로의 아름다움을 추억하는 별리의 시간이 될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