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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영국 셰필드 도심재생에서 포항이 배울 점

▲ 안병국포항대학교 세무부동산계열 겸임교수 셰필드는 런던에서 북쪽으로 250km 지점에 위치한 요오크셔 지방의 중심지이다. 인구 56만 명의 영국에서 5위권 도시로서 풍부한 공업용수의 혜택으로 일찍이 제강산업이 발달했다. 또 비행기, 군함, 전차, 총포, 철도레일, 엔진용 강재와 포크, 나이프, 광학기기 등 정밀공업과 숙련기술이 유명한 산업도시이므로 우리가 살고 있는 포항과 여러 가지 면에서 비슷하다.셰필드는 1970년대 이후 부터 전통산업의 근간이 돼 온 철강산업의 쇠퇴로 인해 맨체스터, 리즈 등 주변 대도시와의 경쟁력이 약화됐다. 또 도시 외곽에 미래를 내다보지 못한 개발로 인해 도시의 개발여력을 잃어버림으로써 1980년대 초반에는 불과 3년 만에 2만5천여명의 실업자가 발생했다. 실업률 또한 영국의 평균치를 훨씬 상회하는 등 도시의 경제적 여건이 급속히 악화된 도시로 전락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또한 도심 상주인구의 절대적 감소와 함께 도심부 내에는 저소득층이 밀집 거주하게 돼 정주환경이 악화됐다. 또 주요 공공시설 부지 내 역사 등 도시 핵심시설의 3분의1 가량이 유휴시설로 방치돼 도심부 쇠퇴현상도 경험하게 된다. 지금의 포항시 도심부와 비슷한 과정을 셰필드는 이미 30년 전에 겪었던 것이다.1984년 셰필드 지방정부는 기존의 철강 산업을 대체할 새로운 미래형 산업으로서 지식정보산업, 정밀기계산업, 관광·문화산업 그리고 현대형 레져산업을 선정해 집중 육성하는 정책방향으로 선회하게 된다. 이 정책을 위해 폐제철소 부지의 지반을 개선해 대형쇼핑센터인 메도우 홀을 유치해 도심의 활성화를 도모한다. 또한 1991년도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를 유치해 도심부내 물리적 환경을 개선하고, 도시의 이미지 쇄신을 하고자 했다. 그러나 개별적이고 상징적인 프로젝트는 개발의 파급효과가 지속적이지 못한 채 제한적인 효과에 그치고 말았다. 도심부 쇠퇴에 대한 도시정책 차원의 대응과 도시 미래에 대한 철학이 미흡한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셰필드 지방정부는 1994년 도심업무기본계획을 수립해 도심 재생을 위한 기반 조성에 착수한다. 2천300명의 신규고용인력 창출, 14%의 상점가 매출 증가, 도심 방문자 5% 증가 등 구체적 목표를 설정한 후 중심부를 4개의 지구로 나눠서 각 지구별 특성을 살릴 수 있는 개발계획을 수립하게 된다. 기본계획에 기초해 셰필드 시정부에서는 2001년 셰필드를 영국 중부지역의 중심지로 육성하기 위한 종합계획안인 도심종합개발계획을 수립해 도심부가 도시경제 활성화 및 지역혁신 견인차 역할을 담당하도록 했다. 같은 해 이를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셰필드 도시재생공사인 `셰필드 원`(sheffield one)을 결성하고, 이 기구 주도하에 셰필드 도심재생 기본계획이 수립됐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한다.셰필드 원은 셰필드 도시재생을 위해 영국에서 세 번째로 조직된 도시재생공사로, 단일재생회계, 지방교통계획회계 등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개시됐다. 도시재생공사는 영국에서 도시의 재활성화를 위해 파트너십 구조를 통해 국가와 지역의 참여자들이 협력과 연계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독립적인 민간법인으로 조직됐다. 이 조직이 효과적인 도시재생을 추진해 합리적 결과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설립되기 시작해 2000년 기준 11개의 도시재생공사가 설립됐다.포항도 도심재생 기본계획을 수립할 때가 됐다. 도심재생공사도 마찬가지이다. 이미 때가 지났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무너진 도심을 새로이 회복하려고 원도심에 사는 사람들이 추진 중인 포항도심재생추진위원회는 도심 재생을 위한 비전과 중·장기적인 전략, 마스터 플랜식 접근을 통해 구체적인 도시의 미래상을 제시하는데 초석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2013-02-28

21세기의 대안사상

▲ 정석준 수필가지난 세기까지 서구 문명을 지배했던`이성(理性)에 대한 믿음`은 근대화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를 휩쓴 자본주의, 과학만능주의의 모순이 곳곳에서 드러나면서 점차 인류를 배반해 왔다. 수많은 전쟁과 집단살육이 이성이나 정의, 또는 역사라는 미명하에 저질러졌고, 어머니의 품과 같은 자연은 이성을 신봉하는 인간의 정복대상으로 전락했다. 서구 열강들은 앞 다투어 세계를 정복해 갔고, 그 결과 지구의 환경오염과 생태계 파괴가 급속도로 진행됐다. 뭔가 잘못된 것이 분명했다. 오류의 근원에 서구인들이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여기던 이성에 대한 낙관론이 자라잡고 있음을 지적하는 지성들이 20세기 중반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근대화의 역사는 `이성의 꿈`이 낳은 수많은 괴물을 양산해온 역사라는 것이다. 그동안 서구사회를 지배해온 기독교 사상도 한계를 드러냈다. 인간과 자연 및 우주 사이의 관계정립이 새롭게 모색돼야 할 필요성을 서구 지성들이 절감하기 시작했다.20세기 서구 사상사의 전환에 중심역할을 한 아르헨티나 출신 작가 호르헤루이스 보르헤스, 대석학 막스 베버, 천재 과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등 서구 지성들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하는 새 천년 인류문명의 대안으로 불교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들 일부 지성들에 의해 새로운 대안사상으로 떠오른 불교, 특히 선불교는 점차 일반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확산되기 시작, 가속도를 더해갔다.20세기 대석학인 아놀드 토인비(1889~1975)는 죽기 몇 해 전 영국 옥스퍼드 학술회의에서 “20세기 가장 위대한 사건은 동양의 불교가 서양으로 건너온 일이다”라고 말했다.당시에 주위 사람 대부분이 이 말을 듣고 어리둥절해 했으나, 지금은 이 말이 토인비가 남긴 유명한 말 중의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생전에 불교교리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한 적이 있는 아인슈타인은 “미래의 종교는 우주적 종교가 되어야 한다. 그동안 종교는 자연세계를 부정하고 모두 절대자가 만든 것이라고만 했다. 그러나 앞으로의 종교는 자연세계와 영적세계를 똑같이 존중한다는 생각에 기반을 둬야 한다. 나는 불교야말로 이러한 내 생각과 부합한다고 본다. 만약 누군가 나에게 현대의 과학적 요구에 상응하는 종교를 꼽으라면 그것은 불교라고 말하고 싶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물질과 정신을 완전히 별개의 것으로 보는 물심이원론(物心二元論)에서 비롯된 근·현대 과학의 주류는 출발부터 그 한계를 가짐으로써, 첨단 현대과학의 발달로 새로운 돌파구를 찾게 되었다. 양자역학, 대뇌생리학, 심층심리학 등 깊은 수준의 과학세계에서는 물질과 정신은 구별할 수 없음이 밝혀지고 있다. 인식론이 과학이나 철학의 분야로 독립해 온 기독교 문명과는 달리 불교는 모든 인식론적 가능성을 수용, 철학이나 과학과 전혀 대립할 필요가 없는 사상이다. 인식론이 종교에서 분리돼 있던 기독교 문명에서 과학이 발달한 반면, 그것이 합일돼 있는 불교 전통은 오히려 과학 발전의 저해 요인이 됐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과학의 성과가 인류의 보편적 자산이 되어가고 있는 미래에는 그 양상이 달라질 것으로 학자들은 내다보고 있다. 그동안 과학이 외면해온 우주와 인간 정신세계가 과학에 의해 실증되는 시대가 오고 있고, 이런 시대에 불교는 새로운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2013-02-26

기독교와 이슬람, 대립과 갈등의 이유

▲ 정석준 수필가2001년 9월11일, 뉴욕 무역 센터 폭파 사건은 전 세계에 충격을 앉겨 줬다. 미국 부시 대통령은 즉각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이번 기회에 테러리스트를 발본색원 할 것이라고 다짐하였다. 이번 사건의 배후가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인 것이 밝혀짐에 따라 기독교와 이슬람의 `문명의 충돌`이라고들 하는데, 엄격히 말하면 타협이나 공존을 거부하고 자기만 진리와 정의를 독점하고 있다고 믿는 독선적 이슬람 근본주의자와 기독교 및 유대교 근본주의자 사이의 대결과 충돌이라 해야 할 것이다. 말하자면 문명의 충돌이 아니라 `근본주의의 충돌`이라는 말이 더욱 적절하다. 역사적으로 기독교와 이슬람은 항상 대립과 갈등을 빚어 왔는데, 실상 두 종교는 가장 많은 믿음을 공유한 종교이다. 이슬람과 기독교가 공유하는 역사적 뿌리는 아브라함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으로부터 약 4천년 전, 자그마한 무리를 이끌고 중동 지방을 떠돌던 아브라함은 팔순이 넘도록 후사가 없었다. 그의 부인 사라는 궁여지책(窮餘之策)으로 몸종인 하갈로 하여금 남편의 씨를 받게 했다. 아브라함은 86살에 하갈의 몸에서 아들을 얻게 됐고,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고 했다. 그로부터 14년 후, 100살이 되던 해에 아브라함은 사라로부터 아들 이삭을 얻었다. 사라는 이스마엘과 그의 어미를 내쫒으라고 아브라함을 졸랐다. 아브라함은 하갈 모자에게 약간의 양식과 식수를 줘 떠나도록 했다. 예수가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은 성서를 들춰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슬람의 창시자 마호메트가 아브라함의 첫 번째 아들 이스마엘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마호메트는 아라비아 반도 북부에 퍼져 살던 무다르계(係) 부족 출신으로서, 무슬림들은 무다르 부족이 이스마엘 후예라고 믿고 있다. 두 종교가 공유한 믿음의 목록은 아브라함 뿐 아니라 인류의 조상 아담, 그리고 그를 창조한 유일신 하느님에게까지 소급된다. 이 외에도 무슬림들은 성모 마리아의 동정녀 수태, 최후의 날에 있을 부활과 심판, 천국과 지옥, 천사와 악마 등에 대한 믿음을 기독교인들과 공유하고 있다.그러나 기독교와 이슬람 사이의 관계는 반목과 갈등의 역사로 점철됐다. 1차적 원인은 신학적 이견 때문이다. 기독교의 핵심교리인 삼위일체설(三位一體說)을 이슬람에서는 인정하지 않는다. 무슬림들에게 `한 분이신 하느님 안에 성부·성자·성령의 3위(位)가 계시다`는 교리는 어떠한 단서나 설명을 붙여도 하느님의 유일성에 위배되는 가르침이다. 그들은 또한 예수가`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교설을 부정한다. 예수가 치유 능력 등 갖가지 이적(異蹟)의 주인공이긴 하지만, 그는 노아·아브라함·모세·마호메트와 같은 `하느님의 예언자`한 사람일 뿐이다. 이슬람의 시각에서 봤을 때,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통해 계시된 하느님의 말씀과 역사(役事)를 오해 내지 곡해했다. 그리고 잘못된 교리를 믿는 것은 하느님의 예언자를 신격화하고, 교회의 성직자나 신학자들의 견해를 절대화하는 일종의 우상숭배 행위이다. 기독교가 이슬람을 인정할 수 없었던 보다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 유대교가 기독교의 출현으로 그리됐듯 기독교는 이슬람의 출현으로 빛을 잃게 됐으며, 하느님의 구원의 역사에 있어서 주역은 이슬람에게 주어졌다는 이슬람의 교리가 그것이다.세계 종교 분쟁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세 종교-같은 아브라함을 조상으로 하고 있어서 아브라함적 종교라 불리고, 다 같이 한 하느님을 섬기는 유일신교인 이슬람교·기독교·유대교-가 서로를 좀 더 이해하고 협력한다면 세계 평화에 크게 기여하게 될 것이다.

2013-02-20

온몸공부

▲ 김현욱 시인학창시절 귀가 따갑도록 들어온 공부. 정작 공부의 뜻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공부란 도대체 무엇일까? 도올 김용옥 선생의 `삼국통일과 한국통일`(통나무·1994)에 따르면, `공부(工夫)`는 영어 `to study`의 번역어로 `도움을 주어서 공을 이루다`라는 의미다. 공부(工夫)의 어원은 `공부(功扶)`와 같은 것으로, `공(功)`은 `힘을 더해 이루어 내다`라는 말이고, `부(扶)`는 `돕다`라는 뜻으로, 이를 합치면 `성공에 이르도록 스스로를 돕는다`라는 의미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에서 `스스로 돕는`것이 바로 공부다. 그동안 부모님과 선생님에게 지겹도록 들었던 공부 좀 하란 말은 `스스로를 도와라!`하는, 엄청난 말이다. 이 글을 읽는 부모님과 선생님들은 앞으로 자녀와 학생들에게 `공부해라!`하지 말고 `스스로를 도와라!`라고 정확하게(?) 의미를 전달했으면 좋겠다. 심오한 뜻이 잔소리로 들리지 않게 말이다.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공부를 왜 해야 할까? 왜 스스로를 도와야 할까? `수인사대천명(修人事待天命)` 그 답이다. `수인사대천명(修人事待天命)`은 `삼국지(三國志)`에서 유래한 말로, 자기 할 일을 다 하고 하늘의 명을 기다린다는 뜻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와 같은 맥락이다.중국 삼국 시대, 적벽대전에서 제갈 량은 관우에게 조조를 죽이라고 했지만 관우는 조조를 살려줬다. 그 책임을 물어 제갈 량은 관우를 참수하려고 했으나 유비의 간청에 따라 관우의 목숨을 살려줬다. 그러면서 제갈 량은 유비에게, “천문을 보니 조조는 아직 죽을 운명이 아니므로 일전에 조조에게 은혜를 입었던 관우로 하여금 그 은혜를 갚으라고 화용도(戰場)로 보냈다. 내가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방법을 모두 쓴다 할지라도 목숨은 하늘의 뜻에 달렸으니, 하늘의 명을 기다려 따를 뿐이다”라고 했다. 하늘의 뜻에 따라서 쓰이기 위해 인간은 `스스로를 돕는`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이다. 공부하지 않으면 쓰일 수 없으니 말이다.토론교육 전문가 유병걸 선생님은 공부가 중국말로 `쿵푸`라는데 착안해 공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머리`가 아니라 `몸`이라고 역설한다. 흔히 공부를 `지식의 습득과 축적`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많은데, 그것은 껍데기 공부일 뿐이다. 진짜 공부는 `온몸으로 배우고 익히는 것`이다. 어떤 하나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자기 몸이 가지고 있는 습관과 행동을 꾸준히 변화시켜 나가는 과정이 바로 진짜 공부인 것이다.흔히 인간을 `호모 사피엔스`라고 한다. 이성적 존재, 생각하는 존재라는 뜻이다. 인간만이 고유한 사고 기능을 가졌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성`은 인간이 가진 한 가지 특성일 뿐이다. 사고와 행동, 이성과 몸, 생각과 느낌의 조화와 불화를 다룰 때 비로소 인간의 정체성에 대해 논할 수 있다.오늘날의 공부가 많은 학생들을 죽음의 사지로 내모는 `고문`이 된 이유는 이성적 기능만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몸의 단련, 온몸을 통한 삶의 변화를 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고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넘어서 온몸으로 공부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새롭게 바라봐야 한다는 뜻으로 철학자 김용옥 선생님은 인간을 일컬어 `호모 사피엔스`가 아니라 `호모 모미엔스(온몸으로 공부하는 인간)`라고 한 것이다. `호모 모미엔스`는 인간의 몸을 육체와 정신의 이분법을 바라보는 서양철학과 달리, 정신과 육체는 분리할 수 없는 몸의 양태로 보고, 우리말 `몸`에서 따온 개념이다.다시 한 번 말하지만, 공부는 `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 `온몸`으로 하는 것이다. 2월, 졸업이 한창이다. 모쪼록 `온몸으로 공부하는 아이들`이 좀 더 늘어났으면 좋겠다. 국내외 명문대학에서 `온몸으로 공부한 청소년`들을 가려내어 뽑아주면 대한민국에도 `온몸공부` 열풍이 불까? 그런 열풍이라면 쌍수를 들어 환영할 것이다.

2013-02-20

제21차 `세계병자의 날`에

▲ 손경옥 포항성모병원장지난 11일은 제21차 `세계병자의 날`이었다. 이 날의 기원은 1992년 5월13일 전 교황인 요한 바오로2세가 1852년 프랑스 루르드에서 성모님이 발현해 가난한 어린 소녀인 베르나데트 수비르에게 나타나 치유의 샘물을 알려준 것을 기념해 `세계병자의 날`로 정한 데서 비롯됐다. 이 날은 단순히 병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만이 아니라 교황의 뜻에 따라 병자들의 몸 치유와 마음의 평화를 기원하며 그들을 돌보는 의료인들과 봉사자들이 보람과 사명으로 병자들에게 헌신하도록 격려하고, 가톨릭계 병원과 사회복지기관들이 서로 협력하여 더 나은 의료와 치유에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데 그 의미가 있다.2006년도 루르드를 방문하여 일주일가량 머물면서 그때 느낀 점을 함께 나누고자한다. 루르드는 프랑스 남부 스웨덴 국경과 가까운 산골도시이다. 파리에서 고속철도인 테제베로 5시간 정도 가야하는 곳이다. 이곳에는 세계에 많은 수도회가 자리 잡고 있지만 유일하게 예수성심시녀회인 우리 수녀원 분원이 자리 잡고 있다. 성모님이 발현한 동굴인 마싸비에뉴와 가까운 곳인데, 동굴 앞에는 가뷰라는 물살이 아주 센 강이 흐르고 있어 한밤중에 아주 조용할 때 물흐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밤에 도착해서 잘 보지못했다가 아침에 깜짝 놀라는 것은 여러 개의 성당과 호텔처럼 큰 건물의 병원이 여러 개 있고, 더 놀라운 것은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물결을 이루며, 환자들을 휠체어나 카트 등을 이끌고 각종 기도모임에 참석하는 광경이다.수많은 사람들이 모이지만 질서정연했고, 미사를 알리는 종소리와 정오에는 삼종기도, 저녁이면 성체거동을 알리는 아름다운 성가소리, 그리고 늘 강하게 여린 센 강물소리였다. 몇 해가 지난 지금도 그 아름다운 장면은 늘 감동으로 자리 잡고 있다.또 자원봉사자들은 어린 학생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가톨릭신자들 뿐 아니라 많은 다른 교파 비신자들이 활동하고 있었다. 많은 성당과 경당의 벽에는 치유받는 이들의 이름과 암 환자들, 그리고 감사하는 이들의 이름이 빼곡히 기록돼 있고, 그 벽에 치유를 받은 이들에게 더 이상 필요없는 목발과 의료기구들이 걸려 있었다. 병원에 관심이 많은 나는 병원내부를 구경했는데, 여느 종합병원과 똑같은 병원이었고, 수많은 의사와 간호사들, 그리고 학생들과 가족들이 있었다.이곳에서 강하게 느낀 것은 바로 전인적 치유이다. 모든 병자들은 육신의 치유를 통해 영혼과 육신을 지닌 온전한 인간으로 치유돼야 한다. 예수님이 육체의 질병치유를 넘어서 한 인간의 전존재를 치유한 것처럼 말이다. 병원을 운영하는 나로서는 늘 빠지는 고민이지만 인간은 질병으로서가 아니라 전인적인 존재로 받아들여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함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병자는 혼자가 아니라 우리 모두 함께 도와야 하는 분들이다. 병원뿐 아니라 지역사회의 모든 팀들이 함께 해야 한다. 가능하다면 모든 분야가 다 함께 병자에게 헌신하고 협력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그곳 루르드에서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의 얼굴에는 기쁨과 평화가 있었는데, 그들은 봉사하면서 우울증이 없어지고, 자살하고 싶은 마음들이 치유되어 삶의 의미를 찾게 되고, 가족이 화해하는 기적이 매일 일어난다고 한다. 참으로 신기하다. 타인을 가르치는 자가 더 많이 공부하고, 가장 많이 배우게 되고, 도움을 주는 자가 더 많은 도움을 받게 되는 것을 체험하는 것이다.보건 분야에서 일하는 이들은 `세계병자의 날`에 하느님이 주신 생명을 다루는 소중한 업무, 즉 생명의 봉사자로서의 소명감과 자긍심을 가지고 살아가면서 우리의 정체성을 돌아보는 시간이었으면 한다.

2013-02-15

졸업과 좋은 일자리 창출

▲ 하재영 시인지금보다 젊은 시절 포항으로 오기 전 특별한 재주가 없었는 데도 직장을 서울로 옮길 수 있는 기회가 몇 번 있었다. 시골에서 우둔하게 자란 난 서울의 번잡스러움과 화려함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대신 바다가 있는 포항으로 직장을 옮기게 됐다. 내 일터 자체가 전에 근무하던 곳보다 시설도 좋았고, 보수도 나았기 때문이다. 이곳에 근무하는 데도 두어 번 서울로 오지 않겠냐는 연락을 받았다. 하물며 같이 근무하다 서울로 옮긴 사람의 제안도 있었다. 그것은 달콤한 유혹이었지만 거절하고 지금까지 포항시민으로 이곳에서 생활하고 있다. 사실 서울은 우리나라의 중심도시로 정치, 경제, 교육, 문화 등 모든 분야의 중추적 기능을 갖추고 있는 도시로 한 때 우리들이 흔히 듣던 `말은 태어나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란 말을 충분히 상기시킬 수 있는 곳이다.얼마 전 포항을 떠나려는 두 분을 만났다. 한 분은 고등학교 졸업 후 포항 공단에 취직하여 30년 이상을 이곳에서 생활하다 은퇴한 분이었다. 며칠 후 포항을 떠나 고향으로 간다는 것이었다. 대학을 졸업한 아들이 몇 년 동안 이 도시에 취직하려고 노력했는데 못하고, 결국 고향 근처에 취직해 이사를 하게 됐다며 눈물까지 흘렸다. 사실 그 분은 고향에서 학교 다니던 젊은 시절보다 이곳에서 직장생활 한 기간이 긴 분이라 이 도시에 정이 많이 든 분이었다. 또 한 분은 젊은 여성으로 옮기게 될 일터의 열악한 조건 때문에 사표를 내고 옮기려 한다고 했다.그분들의 모습을 보며 많은 것을 생각했다. 최근 대학을 졸업한 졸업생들이 취직을 하려 해도 취직이 안 되어 걱정이란 보도를 심심찮게 접한다. 70년대 전후의 가난한 시절엔 젊은이들이 어떤 악조건이라도 어떻게든 취직하려고 했다. 어찌 된 일인지 오늘의 젊은이들은 힘든 곳을 기웃거리지 않는다. 어렵게 들어갔다 해도 며칠 근무하다 그만 두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 일터를 보면 열악한 환경으로, 결국 후진국의 젊은이들을 모셔오지만 그 자체에도 많은 문제를 끌고온다.새롭게 출발하는 박근혜 정부도 오죽하면 정책 지향점의 하나를 `일자리 창출`로 정하려 할까. 베이비 붐 시대의 은퇴 문제와 맞물린 젊은 백수들의 슬픈 이야기는 앞으로 오랜 기간 우리 사회문제로 그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지도자들의 혜안이 필요한 때다. 산업 현장에 젊은이가 없다면 그에 따른 문제는 곳곳으로 파생한다. 대표적인 곳이 문화계라 할 수 있다. 이 지역에서 활동하는 시인들로 구성된, 문단의 특이한 존재로 주목받는 시 동인 `푸른시`는 동인지 `푸른시` 15호를 발간했다. 회원들이 회원 확보를 위해 지역의 젊은이를 눈여겨보지만 눈 씻어도 회원으로 영입할만한 젊은 인재를 발견할 수 없다고 한다.그것은 문학판의 일만은 아니다. 무한 경쟁 시대의 모순된 사회에서 대학을 졸업한 졸업생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일터를 만들기 위한 노력은 말로만 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일자리 창출을 위한 노력은 나라뿐만 아니라 도 차원, 시 차원, 일터 차원에서 시너지 효과를 가져올 수 있도록 추진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내가 26년 전 공무원으로 일하던 아내를 그만두게 하고 낯선 도시 포항으로 옮긴 것처럼 환경과 보수와 그에 따른 문화풍토도 좋아야 할 것이다.그래도 취직 전선에 뛰어든 졸업생들이여,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창의적인 일로 새로운 세상을 열겠다는 도전정신을 갖고 출발하기를! 좋은 일터를 위해 화이팅!

2013-02-14

삶과 죽음

▲ 정석준 수필가우리에게 죽음은 불안과 고통이며, 신비의 세계이다. 죽음, 그것은 영원한 소멸인가, 아니면 그것은 새로운 윤회의 시작으로 새로운 삶의 시작인 것인가? 티벳트의 `바르도 퇴돌(死者의 書)`에서는 “인간아, 너는 너의 의사에 반하여 죽는구나. 죽음이 무엇인지 죽음을 배울지니라. 그러면 그대는 삶까지도 배우게 될 것이니라”고 말하며, 생이란 죽음에서 시작한다고 가르친다.최근 사후세계를 다룬 `히어애프터(Hereafter)`란 영화를 만든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은 “영화에서 죽음이란 주제를 다뤘지만 결국 하고 싶은 말은 한 가지다.살아있는 동안 최선을 다해 살고, 사람들과의 만남 속에서 소중한 삶의 가치를 깨달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지난 해 사망한 정보기술(IT)의 거장 스티브 잡스는 “죽음은 인생에서 커다란 선택을 내리는 데 도움을 주는 가장 중요한 도구이다. 죽음 앞에서 모든 것이 덧없이 사라지고, 진정으로 중요한 것만 남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남겨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불교의 유식학(唯識學)에서는 인간의 심층심리를 제5식·제6식(의식)·제7식(말나식)·제8식(아뢰야식)으로 구분해 설명하고 있는데, 이 중 제8식 아뢰야식이 윤회의 주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아뢰야식이란 사람이 업(행위)을 지으면 그것이 하나도 소멸되지 않고 마치 곳간에 물건을 쌓아 놓듯 저장이 되는데, 이러한 업의 처소를 아뢰야식이라고 하며, 이것이 내생에 태어나는 주체가 된다는 것이다.`미란다 왕문경`에서 대왕이 윤회에 대해서 묻자 나가세나 존자는“어떤 사람이 잘 익은 망고를 먹고 그 씨앗을 땅에 심었다고 합시다. 그 씨로부터 망고나무가 성장하여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다시 그 나무에 열린 망고를 따먹고 씨를 땅에 심으면, 다시 나무는 성장하여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이와 같이 망고나무의 계속은 끝이 없는 것입니다. 윤회도 이와 같은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불교에서는 내생을 믿고 행하는 행사로 49재를 들 수 있다. 사람이 죽으면 49일 동안 죽음의 세계를 해매이게 되는데, 돌아가신 이에게 경전을 읽어줌으로써 망령이 지혜의 눈이 열려, 좋은 곳으로 환생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불교에서 이것이 인간의 궁극적 문제 해결이 아님은 말할 것도 없다. 진여(眞如)의 세계를 대오각성(大悟覺性)하면 구름 걷힌 해와 같이 모든 상대적 갈등의 모순으로부터 벗어나 무차별한 평등의 세계임을 알게 된다. 그러나 미혹된 중생들은 완전한 지혜의 눈을 뜨기 전까지는 자신이 지은 선악의 업력에 따라 천상·인간·축생 등 삼계육도(三界六道)에 윤회하는 철저한 인과응보의 세계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이 세상 모든 위대한 성현들은 삶의 연장으로서 죽음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승찬대사는 법회하던 큰나무 밑에서 합장한 채 서서 입적했으며, 만공선사는 “나 이제 가야겠네”하며 허허 웃으며 입적했고, 인곡선사는 “오늘 떠나겠다”고 제자에게 말하자, 한 제자가 “내일이 백중명절이니 떠나시려면 내일 가시지요”라고 하자 선사는 “이날이 그날이고 그날이 이날이지 그런 삿된 생각은 말라”고 한 뒤 다음날 입적함으로써 죽음마저도 희롱해 버렸다.죽음은 삶의 완성이고, 확장이고, 휘날레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삶의 의미를 믿는다. 또한 죽음의 의미를 믿는 자만이 삶의 의미를 받아들일 수 있다. 죽음은 삶에 속하기 때문이며 죽음 속에서 삶의 의미를 분명히 알기 때문이다.

2013-02-13

원도심 활성화 더 이상 미루면 늦다

▲ 서득수포항중앙상가상인회 사무국장 한 통계에 의하면 지구촌 인구의 70% 이상이 도시에 살고 있다고 한다. 그만큼 도시는 이제 인간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는 기초 생활단위이자 삶의 기본적 터전이라는 의미이다. 전통적인 도시의 기원은 도읍(都邑), 곧 정치 또는 행정의 중심지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나 현대에 와서는 전통적인 도시의 개념에다 시장(市場), 곧 경제의 중심지라는 뜻이 내포돼있다.도심은 대개 시가지의 중심부에 형성되며, 관공서가 늘어선 관청가를 비롯해 중심상점가, 회사(본사기능), 은행, 금융가, 도매점상가 등으로 구성돼 행정기능, 업무기능 및 상업기능이 집중된 중심업무지구(CBD:Central Business District)이다. 그렇다면 우리 도시의 도심은 어디인가? 그건 의심의 여지없이 포항의 오거리에서 육거리 사이의 다운타운이 있는 죽도동, 중앙동, 남빈동, 대흥동, 신흥동, 덕수동, 동빈1·2가 지역이다. 급속한 슬럼화로 과거의 기능들이 쇠퇴하고 있기에 원도심으로 정의되는 지역이다. 포항이 도시의 형태로서 온전히 대외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행정단위가 시(市)로 승격된 1949년 이후는 물론, 그 이전(구한말과 일제강점기)부터 포항의 정치적·행정적·경제적 기능의 중심지로 기능해 온 곳이 바로 이곳이다.도시가 성장하는 시기에는 도심이 성장·발전하지지만 신도시 개발 등으로 도심지역의 주거기능 및 상업·업무기능이 외곽으로 이동되면서 도심기능이 크게 약화되는 이른바 `도심공동화`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근대 100여년의 시간 동안 포항의 시청과 군청은 물론 각종 행정기관의 밀집과 금융 및 상업기능의 집적으로 이 도시의 중추기능을 수행해 온 도심이 도시의 확장과 외곽지역으로의 주거기능 이전으로 시름시름 병들고, 슬럼화되고 있는 것이다. 도시의 확장과 팽창에 따른 주거지역의 외곽이동으로 시작된 도심공동화 현상은 결정적으로 2006년 포항시청의 이동지역 이전을 계기로 핵심 행정기능의 이탈과 함께 더욱 가속화되고 있으며, 북구청과 북부경찰서 및 북부소방서, 해양경찰서 등 도심 소재 행정기관과 중앙초등학교의 이전이 가시화되면서 이젠 회복불능의 상태로 빠져들고 있다.그렇다면 이런 현상을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도시의 발전에 수반되는 당연한 부작용으로만 치부하고 방치할 것인가? 원도심이 기능을 상실한 채 도시의 슬럼가로 방치돼 도시미관은 물론 도시정책의 암적 존재로 머물러야 하는지 우리는 고민해야 한다.이제 도시행정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과거 100여년 동안 포항시는 행·재정적, 공적 재원의 집중으로 도시기반 인프라(교통, 전기, 통신, 상하수도 등)가 잘 구축된 도심의 이용도를 사장시켰다. 한편으론 토지소유자와 민간건설업자의 사적 이익을 위해 외곽지로만 밀려나는 대규모 주택지에 소요되는 도시기반인프라 구축을 위해 포항시의 공적 재원을 투입하는 퇴행적 도시행정의 모순을 바꿔야 한다.고도산업사회의 발달로 상처받은 현대인들에게 힐링이라는 치유가 필요하듯 도시에도 도심 재생이라는 치유가 필요하다. 과거의 무분별한 도시확장을 성찰하고, 지속가능한 미래도시를 위한 시작으로서 원도심을 활성화하는 도시재생이 반드시 필요하다.다행히도 대부분의 도시에서 앞다투어 도시재생사업을 시작하고 있으며, 지난 국회에서 처리되지 못한 `도시재생 활성화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이번 2월 정기국회에서 통과되면 차기 박근혜 정부의 주요정책으로 선정된 도시재생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시기의 도시정책을 성찰하면서 친환경도시로 전환되는 시금석이 될 포항운하 복원이 완공되는 올해에 가속화되는 원도심 슬럼화를 방지하고 지속가능한 도시로 만들기 위해서는 도시재생을 즉각 시작해야 한다.

2013-02-12

문제아가 되라

▲ 김현욱 시인지난달, 포항 구룡포에서 `교문창` 겨울 모임이 열렸다. 교문창은 `교육문예창작회`의 줄임말인데, 교육 문제와 문예 창작에 관심이 많은 선생님이 중심이 돼 글쓰기와 연구를 통해 청소년의 삶을 바르게 가꾸려고 애쓰는 전국 국어교사 모임이다. 배창환, 황영진, 김윤현, 박두규, 박일환, 조재도, 김재환 선생님 등 전국에서 많은 선생님이 참석했는데, 느지막이 서울 영동일고등학교에 근무하는 유동걸 선생님이 합류했다. 지방 강연이 있어 마치고 오느라 늦었다며 인사를 건넸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강연 주제가 `토론`이었다. 마침 관심이 많던 터라 토론교육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유동걸 선생님은 원탁토론 아카데미를 통해 토론에 눈을 떴고, 전국 국어교사모임에서 `토론의 전사`연수를 기획 진행하면서 책까지 냈다고 했다. `토론의 전사 1-디베이트의 길을 열다`와 `토론의 전사 2-디베이트의 방법을 찾다`가 그것이다. 집으로 돌아와 책을 읽어보니 혼자 읽기에는 아까웠다. 무엇보다 `왜 토론인가?`에 대한 절실한 물음이 마음에 와 닿았다.저자는 서문에서 “대립과 승패를 축으로 하는 디베이트 교육의 바탕에 소통과 화합의 철학이 없다면, 디베이트 능력은 약육강식의 현대 사회에서 강자들에게는 강력한 무기가 되고, 약자들에게는 논리의 피해자가 되어 피를 흘려야만 하는 현실을 강화하는 불평등의 괴물이 될지도 모릅니다. 토론의 전사는 자본주의 시대의 괴물이 아니라 그러한 괴물과 맞서는 평화의 사도로서 토론을 배워 가는 작은 공부 과정입니다”라고 썼다. 기존의 토론 전문가들과 철학의 깊이부터 달랐다. 오늘은 `토론의 전사 1-디베이트의 길을 열다`중에서 `질문의 중요성`을 강조한 부분을 소개한다. 저자는 장안의 화제가 됐던 드라마`성균관 스캔들`의 한 장면을 예로 들었다.성균관 유생들의 첫 수업 시간, 요강을 든 정약용이 교실로 들어선다. 인사를 마치자마자 맨 먼저 나온 질문이 `성적 처리`다. 정약용은 “내 수업 시간에 불통이 다섯이면 낙제, 수업이든 활동이든 성균관에서 낙제가 셋이면 출재와 동시에 청금록 영삭인 건 알고들 있을 테고…. 그래서 준비했다”면서 요강을 내밀고 뇌물을 요구한다. 성적이라는 말에 긴장한 유생들은 금반지와 가지고 있던 돈을 요강에 넣지만 이선준이라는 유생은 문제 제기를 할 기회를 엿본다. 정약용은 돈을 걷은 뒤 요강에 든 색색의 천을 꺼내 불꽃을 일으키고, 사과를 꺼내 유생들에게 던져 주는 등 신기한 광경으로 유생의 관심을 집중시킨다. 그때 이선준 유생이 문제를 제기한다. “그만두십시오. 지금은 논어재 시간입니다” “이런, 못난 스승이긴 하나 나도 그 정도는 알고 있네” “한데 어찌 서역의 잡기로만 귀한 상유들의 시간을 탕진하십니까?”그러자 정약용은 들고 있던 요강을 떨어뜨려 산산조각 내버린다. 그리곤 이선준의 질문에 답한다. “논어 위정편, 군자불기에 대해 강했네. 진리를 탐하는 군자라면 갇혀 있는 그릇처럼 편견에 치우쳐서는 안 된다고 강했네. 서역의 잡기에서는 배울 것이 없다는 건 무슨 고약한 편견이며, 정약용이란 놈이 서학을 좀 했다 해서 고전을 싫어할 거라는 무지몽매함은…. 참 용감하기도 하군”(이하 중략)서슬 퍼런 정약용의 말에 누워있던 문재신마저 눈을 비비고 일어난다. 그리고 이어지는 성적 발표. 이선준만 통을 받고 모두 불통. 당혹해하는 유생들의 질문에 정약용은 이렇게 말한다. “그래서다. 이 엉터리 수업에 불만을 제기한 유일한 학생이니까. 진리는 답이 아니라 질문에 있다. 내가 너희들에게 보여 준 세상은 사라지고 없다. 스승이란 이렇게 쓸데없는 존재들이다. 허나 스스로 묻는 자는 스스로 답을 얻게 되어 있다. 그것이 이선준이 통인 이유다”정약용의 수업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이것이다. 항상 불만을 제기하고 문제의식을 가져라. 문제아가 되라. 문제아가 세상을 움직인다. 문제아가 답을 찾는다. 그러니 제발 좀 문제아가 되라.

2013-02-08

좋은 포도주처럼

▲ 배영희김천 효동어린이집 원장·교육학 박사 셋, 둘, 하나, 펑! 펑! 새해맞이 불꽃놀이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달력이 한 장 훌쩍 넘어간다. 골목골목 빨간 물결이 일던 대통령선거도 옛이야기가 됐고, 오늘이 입춘이니 겨울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시간은 멈출 줄도 모르고 정말이지 빨리도 간다. 오랜만에 친구와 전화를 하며 “이제는 예쁜 것도 싫고 안 아프면 좋겠다”던 말에 미스코리아도 별것이 아니구나 싶었다.얼마 전에 신년회 모임이 있었다. 지역에서 나름대로 큰일을 했던 두 분 고문이 길도 미끄러운데 지팡이를 짚고 나오셨다. 그날 식사메뉴가 오리고기였는데, 그것 한 점을 제대로 잡숫지 못해 남편이 가위로 서너 등분으로 잘라 숟가락에 올려준다. 그 창창한 패기는 다 어디로 가고 고기 한 점 씹기가 어찌 저리 힘들단 말인가!어제는 이모님이 뇌졸중으로 쓰러졌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 꽃다운 얼굴은 온데간데없고 입이 한쪽으로 돌아가 음식도 제대로 넘기질 못하신단다. “이모”하고 전화를 했더니 소리도 크게 못 내고 흐흐 울기만 하신다.생로병사(生老病死)가 새삼 피부로 절절히 느껴진다. 아무리 천하장사라도 나이 앞엔 어쩔 수 없나 보다. 인간이 나이 먹고 늙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고, 누구라도 겪게 될 과정이니 어찌 부정할 수 있겠는가.봄, 여름, 가을, 겨울의 변화처럼 인생이 그렇게 저물어 간다. 하지만 100세가 돼도 건강하게 사시는 분도 많은 것 같다. 얼마 전에 전국노래자랑에서 103세 할아버지가 나와서 그렇게 노래를 잘하더라고 어머니한테 들은 것 같다. 실제로 아침저녁으로 만나는 101세 할아버지 한 분도 특별히 아픈 곳도 없고, 아직도 여자가 손잡아주면 그렇게 좋아하신다. 가만히 옆에서 보니 장수하는 사람들의 비결이 따로 있는 것 같다. 늘 적당하게 드시고, 늘 기분 좋게 지내는 것이다. 과학이 밝혀낸 장수비결 일곱 가지에도 보면 첫째가 소식인데, 미 국립보건원(NIH)에서 실험한 결과 식사량 30%를 줄이면 수명이 40% 늘어나고, 질환 발병률이 18% 더 낮아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저체온, 적절한 자극, 성공과 학력, 긍정적인 태도, 배우자, 주거 환경 등이 영향을 미친다고 했다. 이렇듯 개인의 노력에 따라 건강하게 지내는 비결이 따로 있는 것이다.그 중에서도 아주 중요한 것은 인간은 나이를 먹으니까 노화하는 것이 아니라 이상을 잃어버렸을 때부터 늙는다는 것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도 살아남은 사람들의 공통점을 보니 몸이 건강해서가 아니라 미래를 믿고 희망을 잃지 않았던 자만이 살아남은 것으로 기록돼 있다. 그러니까 왕성하게 일하는 사람일수록 더 건강하고 더 오래 산다는 것이다.이제 누구나 맞이할 100세 시대를 준비하며 건강하게 사는 방법을 하나하나 챙기도록 하자. 이모님과 두 분 고문을 보며 건강의 중요성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아프면 본인만 손해다. 누구나 다 아는 것이지만 적당히 먹고, 운동 잘하고, 일찍 자고, 좋은 생각하고, 뭐 이런 생활습관들이 노년을 결정한다는 것을… . 곧 봄이 올 것이다. 꽁꽁 언 땅을 녹이고 연초록 새싹이 돋아나겠지. 우리 몸 세포도 하나하나 다시 깨어나는 새봄이 되었으면 좋겠다.필립스는 “사람은 나이를 먹는 것이 아니라 좋은 포도주처럼 익는 것”이라 말했다. 세월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잘 익은 좋은 포도주가 될 것이니 걱정하지 말고 오늘 하루하루를 기쁘게 살자. 가능하면 기분 좋게 활기차게 하하 웃으며 그렇게 살자. 그래서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남의 도움 받지 않고 내 몸 내가 건강하게 지니다 가는 그런 우리가 되기로 하자.

2013-02-06

주목되는 대전시 도심재생 사례

안병국 포항대학교 세무부동산계열 겸임교수구도심, 원도심, 옛도심 등은 필요한 사용처에 따라서 다르게 표현되는 같은 말이다. 도심이란 도시라는 정주공간에서 형성된 중심지로서 교통활동과 상업활동 등 도시 내 중추적 활동들의 집적체 또는 도시지역에서 전반적으로 가장 높은 접근도를 갖는 지점, 도시의 전 지역에 공급하는 모든 종류의 중심 서비스 기능이 입지하는 곳으로 도시계획학자들은 정의하고 있다. 좀 더 일반적으로 표현하자면 사무, 문화, 행정, 위락, 판매, 제조, 주거 등 다양한 활동들이 복합적으로 발생하는 지역이 도심이다. 포항의 경우 도심에 물리적 선을 긋는다면 죽도동, 중앙동, 남빈동, 대흥동, 신흥동, 덕수동, 동빈1·2가로 구획할 수 있다.이 지역의 사람들이 떠나고 돌아오질 않는다. 도심이 속수무책으로 무너지고 있다. 1990년 중반보다 인구가 3분의1 가량 줄거나 반 토막 난 곳도 있다. 초등학교 전교생이 중앙초 115명, 영흥초 229명, 죽도초 153명에 불과하다. 이는 도심인구의 고령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포항의 정신문화를 강조하는 지역인사들은 시청사 이전 후 대책을 세우지 않았던 점, 법원 등이 교외 지역에 입지했던 점을 원인으로 보고 있다. 규모는 작지만 그래도 포항역이 도심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으로 위안이 되고 있지만 그마저 내년이면 교외로 이전하게 돼 걱정이 깊어지고 있다.포항의 구도심 재생 방향을 어떻게 잡아야 될 것인가를 논의하기 전에 국내외 사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먼저 국내도시인 대전시의 사례를 보자. 대전시는 1997년 말 제3 대전청사가 건립되면서 둔산 신도심의 개발로 인해 기존 도심의 대전시청과 법원 검찰청 등 주요 행정기관이 둔산 신도심으로 이전했고, 이에 따라 중심업무, 행정기능과 연관된 각종 서비스 업종들이 연쇄 이전해 기존 도심이 급격한 쇠퇴현상을 겪었다. 대전시에서는 구도심 활성화를 위해 대전시 도심재개발 기본계획(1994년)을 비롯해 기존도심 재활성화 방안에 관한 연구(1999년)등을 통해 구체적인 대응전략 및 방법을 강구했으며, 원도심 활성화 조례(2003년)를 제정해 원도심의 도시 재생을 위한 법적 근거를 마련해 추진해 오고 있다.구체적 추진전략과 사업내용은 도시정비관리계획을 세워 중심상업축(대전역~중앙로)을 살려 중심기능을 강화했고, 주거상업이 공존하는 복합개발을 유도했다. 도심교통개선계획은 대중교통 전용지구(transit mall)를 도입해 승용차 진입을 차단하고, 대중교통수단만 출입을 허용했으며, 차선을 축소하고 보행자에 보행권을 돌려주었다. 도심상권 활성화로 주민참여를 바탕으로 한 테마거리를 조성했고, 재개발구역, 상점가환경개선지구, 가로환경정비구역, 업무개선지구, 기업유치지구 등 15곳의 특화 거리를 조성했다. 특히 기업유치지구에는 빈 건물에 벤처기업을 유치해 입주기업에 임대료 50%를 지원해주는 제도를 시행해 효과를 봤다. 이 특화거리 조성 시 중요한 사실은 민관협력사업을 시행했다는데 우리는 주목해야한다. 국내외 어느 도시이든 관 주도적 도심재생이 성공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 공공부문 위주의 도심재생이 아닌 민관협력기구인 TCM(Town Centric Management, 영국) TMO(Town Management Organization, 미국·일본) 같은 민관 파트너십과 국민, 행정, 전문가 공동협의체를 형성해 도심재생 정책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행정적 지원체계도 빠뜨리지 않았는데, 시청 조직 내 도심재생 전담기구를 설치해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도심재생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구 도심 쇠퇴의 문제는 지방도시 자체의 국부적 문제로 인식하지 않고 국가 차원의 문제로 인식해 제도정비 및 정부의 재정지원을 통해 도심재생사업이 이뤄지길 기대해 본다.

2013-02-01

국민행복시대에 행복은 어디에서

▲ 정석수 성요셉복지재단 상임이사·신부“국민행복시대를 열겠습니다”는 외침이 아직 귓전에 맴돈다. 무엇으로 국민을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 국민은 어디에서 행복을 맛보고자 하는가? 그 행복의 공통분모는 무엇일까 상념에 빠진다.내 가슴을 다시 뛰게 할, 잊혀진 질문에서 차동엽 신부는 황상민 교수의 조사(弔辭)를 전하며 “한국인은`돈=행복`이라는 공식의 포로가 되어 꼼짝달싹 못하고 있다.”고 했다. 당대 미국 최대 부호였던 록펠러의 딸에게 어느 기자가 질문을 했다. “당신은 모든 여성이 부러워하는 사람입니다. 실제로 행복하십니까?” 이에 “행복하다고요? 누가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나요?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중에는 돈의 힘으로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 얼마든지 많아요. 나는 행복하지 못해요. 나를 부러워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말을 전해주세요.”라고 록펠러의 딸은 대답을 했다.돈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 무엇일까? 돈 보다 소중한 가치는 무엇일까? 우선적으로 먹고사는 문제에 매달려 살아온 시대가 있었다. 아직도 IMF 때보다 더 심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말에 공감한다. 그렇다고 그것에만 매몰되어 살아간다면 놓치고 살아가는 그 무엇이 생기게 마련이다. 얼 쇼리스(Earl Shorris)는 `희망의 인문학(Riches for the Poor: The Clemente Course in the Humanities)`에서 먹고사는 것을 첫째에 두지 않고, 살아야 할 이유를 가르치면서 우선순위를 과감히 뒤바꿔 버렸다.먹고사는 것은 기본적이지만 그보다 `나 자신은 누구인가?`하는, 자신에 대한 존재의 의미를 발견하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어야 할 것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베스트셀러의 저자 김난도 교수는 어느 강좌에서 오늘날의 시대를 `유예된 시대`라고 했다. 곧 모든 것이 뒤로 미루어진 것이라고 했다. 지금 당장 공부에 취업에 몰두해 있으니 자신의 존재에 대한 성찰은 뒤로 미루어지는 것이다. 나아가 스마트시대로 칭할 수 있는 오늘날 그 스마트가 현기증이 날 만큼 속도에 매몰되게 해 존재의 성찰을 가로막고 있지 않은가 한다. 또한 필요로 하는 것보다 과잉 제공해 속절없이 귀중한 시간을 빼앗고 있지 않은가 한다. 최근의 어느 조사에서는 스마트시대에 오히려 책 읽기는 줄었다고 한다.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 화면에 매몰돼 더 넓은 세상의 창을 열 수 있는 책 읽기를 소홀히 한다는 것은 뒤로 미루어진 시대에 더욱 안타깝게 하는 일이다. 속도의 보드에서 내려서고, 작은 화면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소크라테스의 “반성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는 말에 멈추어 본다. 스파르타의 왕이자 헬레네의 남편인 메넬라오스는 원천, 출발점에로 회귀해 현재와 씨름하는 악전고투 끝에 자신의 미래를 향한 항해를 시작할 수 있었다.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는 당선인의 굳은 의지를 의심하는 바 아니다. 두터운 중산층을 이루겠다는 그 뜻, 꼭 성취했으면 한다. 단지 경제적 측면으로만 국민행복시대를 이루기 위한 접근법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각자의 자아에 대한 성찰에서 출발할 때, 사람의 생존은 빵만으로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기에 월리암 글라써(William Glasser)의 이론도 적용할 필요가 있겠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다양한 욕구를 현실에서 충족할 때 행복해진다고 했다. 그 다양한 욕구는 먼저 소속과 사랑의 욕구이다. 이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다양한 공동체에 참여해 활동함으로써 오는 행복이다. 둘째 힘과 성취의 욕구이다. 이 욕구를 충족하되 그 힘을 이웃을 위해 사용함으로써 주어지는 행복과 그 누군가를 위한 자원봉사자처럼 비교 경쟁 없는 자발성을 발휘함으로써 얻어지는 삶의 행복이다. 셋째 자유의 욕구이다. 이 욕구를 충족하되 책임이 동반되고, 타인의 욕구를 방해하지 않음으로써 성숙한 사회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즐거움의 욕구이다. 재밌게 신나게 살아감으로써 함께 행복을 누렸으면 한다.

2013-01-31

종교와 과학의 충돌

▲ 정석준 수필가근대과학이 발전하기 이전에는 과학은 구태여 종교와 충돌할 이유가 없었다. 과학은 아직 초보적인 단계에 놓여 있는데 반해, 종교는 궁극적인 관심사를 다룬다는 강점을 무기로 국가 권력을 능가하는 권위를 누려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르네상스를 기점으로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르네상스 이후 종교나 신학적 권위로부터 해방된 자유로운 탐구정신은 새로운 사상과 학문, 과학의 발전을 가져와 인류문명은 획기적인 발전을 이룩하게 됐는데, 이 과정에서 종교와 과학의 충돌은 필연적인 것이었다. 종교와 과학이 충돌한 첫번째 사건은 코페르니쿠스에 의해 점화되고, 갈릴레오에 의해 극화(劇化)된 코페르니쿠스 혁명이다. 창세기의 기록대로 지구를 우주의 중심에 놓고, 태양과 행성들과 붙박이별들을 지구 장식품으로 생각하는 현대인은 아무도 없다. 갈릴레오가 죽은 지 3백년 후에 교황이 갈릴레오를 파문에서 해제하고, 코페르니쿠스의 고향을 찾아가 그에게 사죄함으로써 종교는 스스로 오류를 인정해 과학과 종교의 첫 번째 충돌은 과학의 완승으로 끝났다.두번째 종교와 과학의 충돌은 유일신교의 `창조설`과 과학의 `진화론`이었다. 유일신의 `창조설`과 과학의 `진화론`의 일치는 본래적으로 불가능한 것이었다. 일신교가 과학의 진화론을 수용할 수 없고, 과학이 유일신의 천지창조에 동의할 수 없는 숙명적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인간이 원숭이와의 공통 조상에서 진화했다고 하는 데에 대해서는 아직 많은 사람들이 거부 반응을 나타내고 있지만 현대 생물학에서는 진화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설명이 되지 않는다. 또 과학자들은 진화의 속도와 메커니즘에 대해 논란을 벌이기는 하지만 진화 자체에 대해서 의문을 품지는 않는다. 이미 1996년에 교황 바오로 2세도 진화론을 수용하는 태도를 밝힌바 있다.과학의 눈으로 볼 때 진화의 문제에 대해 과학과 종교의 진지한 논의를 어렵게 하는 요인 중의 하나는 소위 창조과학이다. 창조과학들은 `성경 무오설`에 입각해서 약 6천년 전 어느 6일 동안에 천지가 창조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창조과학을 객관적인 검증을 생명으로 하는 과학이라고 할 수 없다. 그들의 주장이 믿을 만한 과학 잡지의 논문으로 실리지 못하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세번째 충돌은 영혼에 관한 문제이다. 지동설이나 진화론보다 훨씬 큰 잠재적 폭발력을 가진 이슈는 정신 내지는 영혼에 관한 문제이다. 1950년에 교황 피우스 2세는 “가톨릭 신자는 신이 어느 단계에서 인간의 육체에 불멸의 영혼을 불어 넣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한 인류의 기원에 대하여 어떤 과학적 이론을 믿어도 상관없다”고 말했는데, 이는 영혼의 문제에 대해서만은 양보를 할 수 없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그런데 이 면에 대해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인간 정신은 무의식 세계 앞에서 한없이 무력하고, 자신의 행동도 지배하지 못한다고 주장하고 있다.한편 현대의 신경과학은 인간의 감정과 정신활동까지도 신경세포의 물리·화학작용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의식이건 무의식이건 뇌세포에 물리·화학적으로 남겨진 기록이 감정과 정신을 좌우한다면 영혼이 설자리는 어디인지 궁금해진다. 다행히 인간의 두뇌 활동은 너무나 복잡해서 과학이 이 문제로 종교와 정면으로 충돌할 날이 올지조차 의문이다. 따라서 영혼은 과학이 접근할 수 없는 종교의 영역으로 오래 남아 있으리라 생각된다.

2013-01-29

행복한 포항

▲ 서임중 포항중앙교회 담임목사포항중앙교회 종탑 꼭대기에는 `행복한 포항`이라는 초대형 네온사인이 걸려 있다. 교회종탑에 `행복한 포항`이라는 간판을 걸 때 교인들조차 시청 광고판이냐고 핀잔을 하는 분들도 있었지만 53만 포항시민의 행복을 위한 교회, 그것이 목사로서의 나의 삶의 중심이다. 올해 우리 교회 표어는 `포항을 행복하게, 세계의 중앙으로`이다. 세계의 중앙에 서려면 먼저 교회는 포항을 행복하게 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역사적 당위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1만명 포항중앙교회 교인들은 무엇을 하든 종교적 이념과 사상을 뛰어넘어 포항의 53만 시민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며 생활한다.그래서 해마다 실천방안으로 소년소녀 가장과 생활보호 대상자보다 실질적으로 어려운 생활을 하는 분들을 찾아 매월 수천만 원의 구제비를 사용하고, 버스와 택시 타는 주일을 통해 대중교통 이용운동을 전개하고, 장애인을 초청해 `함께`라는 의식을 공유하고, 노인대학 여성대학 및 외국인들을 위한 다문화 가정 돌봄센터와 무료 진료시설을 운영한다. 노인요양시설과 장애인복지시설, 독거노인 돌봄시설을 설립하고, 이를 운영하기 위해 매년 수억 원을 지원하면서 소외계층 사람들의 행복한 삶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이런 노력들은 기독교에서 강조하는 사랑과 섬김의 구체적 내용이며, 불가(佛家)에서 강조하는 보시(布施)의 실천이다. 매년 1억원의 장학금 지급기관인 장학위원회, 시민 무료도서관, 저렴한 문화공간의 커피숍, 결혼상담소 등 시민들을 향한 정책과 실천은 해마다 증가해 간다.원래 포항은 1949년 8월14일까지는 포항부(浦項府)였지만 1949년 8월15일자로 포항시로 승격됐다. 그리고 1995년 1월1일부로 포항시와 영일군이 합병되면서 2구청·4읍·10면·25동으로 편제됐다. 포항이란 지명의 유래를 살펴보면 우리가 마음에 새겨볼 내용이 있다. 즉 포항은 예부터 인류가 서식하기 부적합한 곳으로 `형산강 아래 근오지현의 쪽에 거친 돌무더기가 점점히 박혀 있고, 활과 같은 긴 모래밭이 푸른 바다에 다달아 사초(莎草)가 만연하고, 도처에 습기가 차서 사람이 살기에 좋은 고을이 못 된다`고 옛 기록에 나와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포항이 지금 어떤 도시로 발전해 있는가?정치적으로 대통령을 배출한 도시이며, 경제적으로 포스코를 통한 한국경제의 도약과 세계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도시이며, 종교적으로 종교편향을 뛰어넘어 상호보완과 화합을 이루는 도시이며, 문화 교육적 상황으로도 세계적인 명문 교육기관이 있는, 희망이 넘치는 도시이다.포항의 시목(市木)은 해송이다. 해송은 항상 푸르고, 싱싱함을 유지하면서 비바람과 폭풍우에도 굳건히 견디는 늠름한 모습을 의미한다. 시화(市花)는 장미다. 장미는 아름답고, 향기롭고, 정열과 사랑을 뜻하는 꽃이다. 철강도시의 끓어오르는 용광로 같은 시민의 열정과 사랑이 꽃에도 담겨 있음을 볼 수 있다. 시조(市鳥)는 갈매기다. 갈매기의 특성은 무리를 지어 다니고, 근면하고, 진취적인 새이며. 동시에 깨끗하고 고결하고 친근함을 뜻하는 새다. 그리고 비학산을 중심으로 흥해의 도음산, 연일의 운제산, 장기의 동악산, 청하의 호학산, 기계의 운주산, 죽장의 광재산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다. 그리고 천혜의 영일만을 갖고 있고, 세계무역의 중심지역의 요건을 갖추고 있는 도시가 포항이다.포항시민이 뽑은 민선시장인 박승호 포항시장은 이 모든 것에 대해 감사하는, 감사와 나눔운동을 전개하고, 53만 포항시민은 가족개념으로 오늘도 `함께` `더불어`를 실천하고 있다. 그래서 포항은 참으로 행복한 도시다.

2013-01-28

새해 1월, 선진진입의 첫 단추를 생각하며

▲ 김부환 유럽경제문제연구소장계사년 새해 1월도 어느덧 중반을 넘어섰다. 해마다 이맘때면 필자가 어김없이 떠오르는 곳이 있다. 유럽에 머무는 동안 새해를 맞으면 꼭 찾았던 곳은 바로 독일의 메어스부르크 고성(古城)이다. 스위스 북동지역과 남부독일의 국경지역인 보덴 호숫가에 위치한 그 고성은 깊은 침묵으로 때론 무거운 웅변으로 맞아주었던 곳이기도 하다. 흔히들 유럽의 재정위기를 얘기하곤 한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흔들림 없이 굳건하게 제자리를 지키는 나라들도 있다. 서유럽의 일부국가들 가운데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는 유럽 선진국 중의 선진국들이라고 불러도 손색없는 나라들이다.공교롭게도 메어스부르크 고성은 독일·스위스·오스트리아 등 3국이 공동 관리하는 보덴 호숫가에 자리 잡고 있다. 새해면 어김없이 찾아갔던 성(城) 메어스부르크. 가끔은 지혜롭게, 때로는 인자하게, 그리고 황홀한 여인처럼 한 발짝 다가서면 한 발짝 물러서는 것처럼 신비한 성으로 느끼기에 충분했다.지나간 역사의 한 부분을 칼날로 베어낼 때면 가끔은 예전엔 몰랐던 역사의 향기가 호수처럼 출렁이며 새롭게 다가오기도 했던 곳이다. 성을 둘러보면서 한 몸이 되어 호흡을 시작하게 되면 성은 서서히 살아 꿈틀거리는 열린 공간이 되어 생명을 가지는 듯 했다. 기록되지 않고 깊이 묻혀버린 아득한 옛 이야기는 물론 오늘과 내일의 이야기를 들려줄 때도 있다.성은 옛 중세봉건사회와 15, 16세기의 절대왕정, 17, 18세기의 절대군주 그리고 20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현대복지국가의 터를 닦은 근대국가의 역사까지 한 몸에 안고 있다. 아득한 시간에 묻혀버린 오랜 과거의 역사를 들려주다가 삐걱거리는 성문을 뒤로하고 현실로 돌아올 때면 별안간 현재와 미래의 이야기를 쏟아내는 시공(時空)을 넘나들던 성이기도 했다.서유럽 선진국이면 그깟 별 것 있겠냐고 쉽게 말하는 사람도 간혹 있다. 지금 우리 한반도가 맞이하고 있는 사회, 문화, 정치 그리고 가치적인 모든 방면의 양극화나 빈부의 문제는 선진 서유럽에서도 엄연히 존재한다. 그러나 생활고로, 그것도 죄 없는 어린자식과 함께 모든 희망의 끈을 놓으며 사회를 믿지 못하는 극단적인 비정함은 적어도 그들에겐 한발 짝 비켜 서 있었다. 그것은 그들 사회의 많은 것들을 압축해주는 장면들이다.우리도 한강의 기적 아닌 기적을 갖고 있다. 앞뒤 살피지 않고 산업현장에서 땀과 가난의 울분을 삭히며 일한 역사의 대가이지, 우연히 일어난 기적은 아닐 것이다. 저개발국에서 보란 듯이 개발 국가로 줄달음쳐 왔다. 가난한 국가에서 오늘날의 발전된 대한민국과 경제규모는 세계사에서 그 유래를 찾기 어려울 정도다. 그러나 고지가 바로 저긴데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다시 뻗어가야 한다.바로 선진국 진입이다. 머지않아 새 정부도 출범하게 된다. 사회의 구조적이며 갈등적인 문제를 해결하면서 선진국 진입으로 향하는 열쇠는 역사를 올바르게 정의하는 현명한 국민과 정부에 달려있다.계사년 1월, 유럽의 한 고성의 의미를 애써 부여하면서 우리나라 선진 진입의 첫 단추를 여미는 시작의 해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

2013-01-22

선인선과(善因善果)요 악인악과(惡因惡果)다

▲ 정석준 수필가사람은 누구나 복(福)을 바란다. 사람은 누구나 화(禍)는 나에게 오지 말고 복만 내게 오기를 소원한다. 그래서 해마다 연말이 되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하고 연하장을 보내고, 새해 새아침 인사도 이 말로 시작한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불행은 싫어하고, 행복을 바라지만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단 한 번도 불행을 만나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한 달이 길면 한 달은 짧은 것처럼 불행한 때가 있으면 행복한 시절이 있고, 행복한 시절이 있으면 불행한 때가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세상살이로 우리가 겪지 않으면 안 되는 인생인 것이다. 그래서 인간만사 새옹지마(人間萬事 塞翁之馬)라 하지 않는가?우리가 흔히 쓰는 위기(危機)라는 말도 따로따로 떼어서 보면 위험(危險) 다음에는 기회(機會)가 있다는 뜻이 담겨 있다. 위험과 기회, 행복과 불행, 그것은 늘 붙어 다니는 야누스의 두 얼굴이다.이 세상 모든 사람이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 복이라면 그 복은 어떻게 해야 받을 수 있는 것인가? 불교에서는 복은 선행의 과보로 받는 것이므로 복을 받으려면 선행을 많이 쌓아야 된다고 가르치고 있다.영조대왕 때 동부승지를 지낸 이사관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어느 해 겨울, 볼 일이 있어서 한양에서 충청도 예산을 향해 가고 있는데 웬 초라한 가마가 길가에 서 있었다.날씨는 춥고 해는 저물어 가는데 가마가 오도 가도 못하고 서있는 정경이 하도 딱하게 보여서 “여보시오, 도대체 무슨 일이오?”하고 묻자 “소생은 면천(당진군)에 사는 김생원인데, 만삭된 아내를 데리고 처가로 출산하러 가는 도중에 아내가 그만 길에서 해산을 하여 오도 가도 못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노자마저 떨어졌으니…”워낙 천성이 착한 이사관은 당장 아기와 산모가 위태로움을 보고 급한 대로 자기가 입고 있던 양피 두루마기를 벗어 산모에게 덮어 주었다. 그리고 함께 가마를 몰아서 멀리 인가를 찾아가 호주머니를 털어서 쌀과 미역을 사서 해산구완을 해줬다. 김생원 내외는 뼈에 사무치도록 고마워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그 후 한양으로 돌아온 이사관은 그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어느 날 김생원이 찾아왔다.“어서 오십시오. 어찌 내 집을 찾으셨소?”“물어물어 겨우 찾았지요. 이 양피 두루마기를 돌려 드리려고 왔습니다.”“그것은 이미 드린 옷인데 내 어찌 다시 받겠소” 이사관은 끝내 받지 않았다.“세상에 이런 어른도 계시다니… 정말로 고마운 분이시다” 김생원은 뼈 속 깊이 고마움을 간직했다. 그로부터 16년 후 길에서 낳은 김생원의 딸이 왕비로 간택됐다. 당시 영조는 왕비가 돌아가서 새 왕비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새 왕비 정순왕후는 틈만 있으면 영조 임금에게 이사관의 고마움을 아뢰었다.“마마, 소녀는 그 어른이 아니었으면 노상에서 동사했을 것입니다”“허허, 착한 사람이로다. 세상에 그런 덕있는 사람이 다 있다니… 여봐라, 이사관을 호조판서에 제수하라”그러나 정순왕후는 그것만으로는 은혜 갚음이 부족하다고 여기고“상감마마, 어진 어른을 꼭 정승이 되게 하옵소서”하고 간청했다. 그리하여 이사관은 우의정이 되었다. 전날 죽을 뻔한 여아(女兒)를 살린 것이 결과적으로 이렇게 된 것이다.선인선과(善因善果)요 악인악과(惡因惡果)다. 내가 좋은 일을 하면 반드시 좋은 과보를 받고, 남을 해롭게 하면 반드시 나쁜 과보를 받게 되어 있는 것이 인생사이다.

2013-01-21

포항 도심재생과 지역공동체

▲ 서병철 포항YMCA 사무총장포항 육거리 원도심의 쇠퇴와 슬럼화는 도시개발 욕망이 빚어낸 참사이다. 도시정부가 막대한 개발이익이 발생하는 택지조성과 대형아파트 건설에 매진하면서 도심공동화는 가속화됐고, 도시의 창의성과 지속가능성은 크게 훼손됐다. 육거리 중앙동 일대는 포항에 도시가 형성될 때부터 명실공히 행정, 상업, 문화의 중심지였다. 그러나 지난 2006년 포항시청사 이전을 계기로 대잠지구가 개발되면서 원도심은 일대 혼란에 빠졌다. 거기다가 2010년 인구 50만명 이상의 지방정부에서 자체적으로 도시관리계획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면서 각종 택지조성과 도시개발 열풍이 불었다. 영일만항 건설과 함께 조성된 양덕지구를 필두로 2011년 성곡지구 개발, 남옥지구, 이인지구, 장성침촌, 중명지구 등 도시개발의 욕망은 토지소유자와 건설·금융업자를 중심으로 동시다발적으로 작열하고 있다. 이처럼 거침없는 도시개발의 욕망에 따라 도심기능의 분산과 인구이동, 오래된 물리적 시설의 노후화 등으로 육거리 원도심은 생명력을 잃고, 사람이 찾지 않는 흉물스러운 도시공간으로 변질돼갔다.캐나다의 도시학자 제인 제이콥스는 자신이 사는 그리니치 빌리지 주변주거지가 갖고 있는 다양한 건물풍경과 빽빽하게 모여 살면서 소란스럽게 교류하며 윤택하게 사는 마을의 생동감을 그의 저서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에서 경탄하고 오래된 건물을 예찬했다. 왜냐하면 도시에 새로운 건물만 들어서면 입주자는 그 높은 건물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업종들로 국한돼 도시의 다양성과 정체성, 시민성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녀는 “도시는 일회용품이 아니다”고 잘라서 말한다.최근 이탈리아의 볼로냐를 세계의 도시들이 벤처마킹하기 위해 분주하다. 볼로냐는 마을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오래된 대학으로부터 끊임없이 새로운 예술과 사상, 그리고 산업을 창조하는 활력이 넘치는 도시로 유명해졌다. 산업면에서 볼로냐는 이탈리아의 전통패션제품과 화장품 등으로부터 자동포장기계, 자동차, 오토바이 등 폭넓은 분야의 기계공업과 그것을 뒷받침해주는 고품질의 부품생산을 맡은 중소기업과 장인기업이 수평적으로 산업클러스터를 형성하며,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제품을 생산해 내고 있다. 이러한 산업정책 뿐만 아니라 볼로냐는 전통적인 시가지의 보존과 재생에 선구적인 활동으로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볼로냐의 도심재생은 지역주민협의회를 통해 주민 간의 철저한 민주적 토론을 바탕으로 주민합의를 이끌어내고, 역사적인 경관을 보존하며 생활을 배려한 창조적인 마을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볼로냐 도심에 `창조적인 문화공간`을 창출하기 위해 많은 예산을 투입, 다양한 문화행사와 시설을 정비했다. 또한 1970년대 말 무렵에 무너진 오래된 극장과 폐허가 된 궁전을 개·보수하여 전통장인의 일을 제공하고, 오래된 무대예술 집단에게는 공연장을 제공하며 문화기금을 조성·지원해 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중에서 20개가 넘는 문화협동조합의 활약은 창조도시 볼로냐를 더욱 눈부시게 하고 있다.그 외에도 도심재생에 성공한 사례들은 많다. 그러나 포항의 도심공동화에 대한 대응은 여전히 걸음마 단계이다. 선거철마다 등장하지만 말 뿐이다. 원도심 재생은 단순이익을 노리는 개발업자들의 논리에서 벗어나 새로운 도시의 비전과 전략으로 체계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 포항 원도심이 갖고 있는 독특한 역사와 문화, 오래된 건축물과 시민의 정서가 남아있는 특정 공간에 사업이 집중될 때 효과는 극대화된다.매일 YMCA 건물에서 황량해진 육거리 일대를 지켜보며 포항의 미래 희망을 품는다. 카우퍼가 `하느님은 인간을 만들고, 인간은 도시를 만들었다`고 말했듯이 포항시민의 문화는 고스란히 오래된 원도심에 살아 있다. 포항의 도심 재생은 도시욕망에서 탈주하여 지역공동체를 살리는 일이다.

2013-01-17

사투리를 들추다

▲ 조현명 시인`마카`라는 경상도 사투리가 있다. `모두`라는 뜻인데 촌부들이 다방에 가서는 여기 “마카 커피 도가”라고 해놓으니 아가씨가 `여기 모두다 커피로 주세요`로 듣지 못하고 모카커피를 시킨 줄로 알고 가져다주었다는 우스개소리가 있다. 사투리가 우스개나 개그의 소재로 등장해서 그나마 유지되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잊혀져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라고 할까. 구수하고도 정감있어 지역적인 특별한 성격을 담은 말, 한마디로 고향 냄새가 배어 있는 사투리가 사람들 사이에서 잊혀져가는 것이 매우 아쉽다. 그래서 나는 가끔 방언사전을 들여다본다. 혼자서 몇 십년을 발로 뛰며 방언을 채집하여 이루어놓은 정석호씨의 `경북동남부 방언사전`을 2008년 구입해 둔 것이다. 언제나 이런 인문학 서적은 절판이 빨리 되고, 시장에서 빨리 사라지므로 나오자마자 기다려 구입해놓은 책이다. 캐캐묵은 방언사전을 왜 들추어 보느냐고 묻고 싶을 것이다. 대답한다면 나는 이것이야말로 나를 아는 또 하나의 좋은 방편이기 때문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방언은 내가 속한 공동체가 물려준 유산으로 내 속에서 아직도 살아 숨쉬는 문화의 흔적이기 때문이다. 언어는 바로 나의 생각과 마음을 형성하는 재료이거나 바로 그 자체라고 생각하기에 내가 쓰고 있는 사투리를 들추어 보는 일은 나를 아는 방법 중 하나가 분명하다.아직도 내가 일상에서 쓰고 있는 사투리를 찾아보면 `먹었나`를 `묵았나`, `좀 전에`를 `아까제-`라고 하는 것이다. `-시더`, `-니더`, `-맨치로` 같은 말은 좀체 바꿀 수 없다. `일마가-`라든지 `잘 가래이-`같은 정감 있는 말도 툭툭 튀어나온다. 음가 없는 이응 받침은 얼마 전 개그프로에도 나와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어로 돌았는데 `-합니다잉`같이 표기되기도 했지만 사실 그렇게 표기되는 것이 아닌 독특한 말이다. 사투리 외에도 우리 말 중에는 이런 음가가 좀 남아있기도 하는데 `해죠잉` 같은 말이다.포항 사투리 중에서 `곡깨-이`라는 말이 있다. `그 사람이 곡깨이지길 때는 안윗고는 몬 배긴다`란 말에서 사용된 것처럼 `익살` 혹은 `괴짜` 란 뜻을 가지고 있는 말이다. `참말로 몰랐는데 가가 곡깨이데 글마 그거 참` 이런 말은 지금은 못 알아 듣는 포항사람이 많을 것이라 생각이 든다. “참으로 몰랐는데 그 애 익살스럽더군 그놈 참”이란 뜻이다.이왕 포항 사투리를 좀 더 늘어놓으면 `뻘쭘하다`라는 말이 있다. 방언사전에는 `형용사로 뻘쭉하다. 입이나 문이 약간 벌어진 모양`이라고 적혀있지만 사실 내가 생각하는 뜻은 `어떤 일의 결과로 어색해진 모습을 표현하는 말`이다. 비슷한 말로 사투리는 아니지만 `쪽팔려`라는 말이 있다.어머니가 목욕하라고 붉은 다라이에 덥힌 물을 붓고, 씻어주고는 “깨빈하제-깨끗하고 개운하지”라고 물었던 것이나, 할아버지가 곧 장마가 올 것 같다며 혀를 차며 건너편 들판을 바라보며 날씨가 `꾸무리해졌데이-흐릿해졌다`라고 하던 일이라든지 그 장마 속에 들판에 갔다가 자전거를 타고 돌아오던 아버지가 `동태-바퀴`에 흙이 묻어있던 일, 일은 제대로 하지 않고 왔다갔다 분주한 사람들을 보고 저 사람들이 왜 저리 `분답노-`라고 하던 할머니의 말, 오래되어서 너무 삭아버린 밥식혜를 맛본 어머니가 눈을 찡그리며 `아이고 새구라바래이- 아이고 시어라`라고 하던 모습들이 떠오른다.제 아무리 표준어가 통용되고 TV 때문에 언어가 통일되어 가는 시대에도 억센 사투리는 그 특유의 억양과 함께 전수되는 것은 분명하다. 얼마 전 수능시험을 앞둔 형을 응원하면서 `형아 시험 잘 쳐리이-` 하던 둘째 녀석이 생각난다. `래이-`나 `리이-`라고 표기해도 정확하지 않는 이 이응받침은 가장 정감있고 오래오래 없어지지 않을 사투리다. `가장 지역적인 것인 세계적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세계의 이해는 나의 이해로부터 시작된다. 나의 방언사전 들추기는 멈추지 않고 계속 될 것이다.

2013-01-15

에너지믹스와 원전

▲ 이규찬한국수력원자력(주) 월성원자력본부 홍보팀장 한국경제가 세계 최빈국에서 선진국의 문턱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힘 중 빼놓을 수 없는 하나가 `비빔밥의 원리`라고 말하고 싶다. 비빔밥을 생각해보자. 비싼 재료가 많이 들어간다고 맛있는 비빔밥이 되는 것이 아니다. 못살던 시절에 먹다 남은 반찬을 모두 모아 온가족이 양푼에 비빔밥을 비벼 맛있게 먹었다. 그 시절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너무 힘들고 가난했었기에 눈물이 나고, 가난했지만 정다웠던 그 시절이 그리워서 눈물이 난다. 비빔밥은 그 의미가 상당히 깊고 크다. 여러 가지 재료를 비벼서 맛있는 먹거리를 창조한다는 것은 바로 여러 구성요소를 잘 조합해 최적의 상품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적의 조합을 뜻하는 개념으로 `파레토 최적`이라는 것이 있다. 20세기 초에 이탈리아 경제학자 파레토가 고안한 개념으로, 자원배분의 가장 효율적인 상태를 의미한다. 이는 생산의 효율과 교환의 효율 두 가지에 대해 다음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생산의 효율은 어느 한 재화의 생산량을 증가시키기 위해서는 다른 재화의 생산을 감소시켜야만 하는 상태에 있다는 것을 뜻한다. 교환의 효율은 어느 한 소비자의 효용을 증가시키기 위해 다른 소비자의 효용을 감소시키지 않으면 안 되는 상태에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이 개념은 최적의 조합이라는 의미로 확대됐다.한국 사람들은 비빔밥 비비던 실력으로 파레토 최적을 깨우치고, 선진국에서 배운 기술과 빌려온 자본으로 상품과 비즈니스를 비빔밥처럼 잘 비벼서 내다팔았다. 그렇기 때문에 비빔밥의 원리는 한국경제의 원동력 중 중요한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아직 부자나라라고 하기에는 이르기 때문에 선진국의 문턱을 뛰어넘기 위해 비빔밥 정신으로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산업경쟁력의 기반을 이루는 에너지정책에도 비빔밥의 원리는 적용된다. 자원빈국이면서 산업국가인 한국은 에너지문제 특히 전력에 있어 최적의 전원(電源)정책을 추구하지 않으면 산업경쟁력과 그린(친환경)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으며, 사회 안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 내·외부의 정치경제적 상황에 적합한 에너지포트폴리오(에너지원별 특성을 고려한 전체 전원비율 조정)에 의한 에너지믹스의 길을 가야 한다. 원전을 기저부하로 해 안정적이고 저렴한 전력공급체계를 유지하면서 신재생에너지 분야를 육성해 미래를 대비하는 것이다.에너지믹스는 에너지비빔밥을 뜻하며, 에너지포트폴리오는 에너지비빔밥의 재료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전략을 뜻한다. 국가적으로는 에너지믹스에 대한 에너지포트폴리오가 구체적인 전략으로 마련돼 있으며, 이에 발맞춰 공기업인 한수원은 원전, 수력발전, 양수발전뿐 아니라 조력,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개발에도 발걸음을 재촉해 에너지믹스를 추구하고 있다.국가의 운명과 관련된 중요한 문제들이 많고, 전력문제도 그 중 하나이다. 단편적인 일면이 아니라 종합적으로 살펴야 한다. 근래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지만 한국의 경제 수준과 나라 형편을 생각한다면 아직은 신재생에너지 분야가 경제성이 떨어진다. 그러나 미래를 대비해 신재생에너지는 반드시 육성해야 한다. 그렇다면 지금 신재생에너지를 육성해 미래세대에게 선물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바로 원전에서 나온다. 신재생에너지에 의해 생산된 비싼 전력을 수용해도 될 만큼 원전이 저렴한 전력체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신재생에너지 육성이 가능한 것이다.그러하기에 에너지정책이 국민의 부담을 최소로 하면서 최고로 효율적인 길, 즉 최적화의 길을 흔들림 없이 나아가기 위해서는 원전에 대한 국민의 이해와 지지가 반드시 뒷받침돼야 한다. 그리고 원전 계속운전도 이러한 국가적, 국민적 필요성에 입각하여 고려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2013-01-14

액운타파

▲ 이정옥포항시축제위원장중학교 도덕시간이었다. 선생님이 나와 또 한 친구를 지목해서 성선설과 성악설에 대한 조사발표를 시켰다. 내가 해야 할 과제는 성악설이어서 불만이었다. 사람의 본성은 선천적으로 착하다는 맹자의 성선설이 옳고 더 좋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성악설은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감성적인 욕망에 주목하고, 그것을 방임해 두면 사회적인 혼란이 일어나기 때문에 수양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 학설 또한 성선설과 마찬가지로 인간에게 필요한 교육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지만, 어쨌든 난 사람은 천성적으로 악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고, 지금도 그 생각에 변함이 없다. 그러나 성인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로 들끓는 세상을 목도했다.“우리 사는 이 세상은 마음 쓰고 움직임이 죄 아님이 없는지라 혹은 선리(善利) 얻었으나 초심(初心)에서 물러가서 악한 인연 만나면 염념(念念)에 더 악해지니…” 지장보살본원경에 있는 글이다. 제 아무리 좋고 착한 일을 하고자 할지라도 악한 인연을 만나면 거기에 물들 수밖에 없어 결국 세상이 온통 죄로 뒤덮여 있다고 한다. 그것을 마치 무거운 돌을 어깨에 지고 진흙구덩이로 점점 빠져들어가는 이치로 비유했다.또 공자는 말한다. “심성이 고운 사람과 더불어 살면 그 방에 화사하게 핀 아름다운 난초가 들어오는 것 같아서 그 향이 보이지는 않지만 항상 방안에 가득한 것과 같고, 마음이 곱지 않은 사람과 더불어 살면 생선 썩는 비린내가 들어오는 것 같아서 그 비린내가 보이지는 않지만 내 몸에도 배어 있어 밖에 나가도 내 몸에서 비린내가 난다. 붉은 물감을 가슴에 품고 살면 그 사람의 옷도 붉어지고, 검은 물감을 가슴에 품고 살면 그 사람의 옷도 검어진다. 그러므로 군자는 반드시 앉을 자리와 어울릴 사람을 가려서 사귀어야 한다” 여기서 나온 말이 향 싼 종이에서는 향내가 나고, 생선 싼 종이에서는 비린내가 난다는 것이고, 또는 검은 먹을 가까이하면 검어지고, 붉은 인주를 가까이하면 붉어진다는 고사성어다.요즈음 소위 `막장드라마`를 볼 기회가 종종 있다. 아침에 3편, 저녁에 1편의 줄거리와 캐릭터가 비슷비슷한 드라마를 보다 보니 빠지게 됐다. 혈연의 비밀, 아내와 남편 바꿈, 아이를 둘러싼 친자 쟁송은 기본이고, 유전자 검사가 얼마나 흔한 일인지…. 절대 선인, 절대 악인의 구별도 없다. 권선징악의 전형적 선인과 악인이 이들 드라마에서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착한 사람이 나쁜 사람에게 억울한 일을 당하면 똑같은 방법으로 복수를 하는 것이 고대소설과 사뭇 다르다. 이들 드라마에서는 선인을 돕는 하늘도 없고, 백마 탄 왕자도 없다. 선인은 악인에게 당한 원한을 악인의 방식 그대로 되돌려 복수하는 악인이 될 뿐이다. 그러다 보니, 드라마에서는 따뜻함 대신 차디찬 냉기만 가득하다. 행복한 사람도 하나 없다. 목이 터져라 고함치는 분노의 목소리, 분노의 눈초리, 분노의 행위가 화면을 뚫고 곧장 나올 기세다. 드라마를 보면서 드라마의 인물을 배운다. 그들의 분노를 배우고, 원한을 되돌려 주는 방식을 배운다. 말 그대로 나쁜 것을 가까이 해서 같이 나빠지는 경우다. 그럼에도 카타르시스, 대리만족이라 스스로 위무하는 교활함까지 배운다.작년 호미곶 해맞이축전에 `액운타파`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1만 명을 위한 떡국솥에 불쏘시개를 넣으며, 한 해의 액운을 함께 태우는 프로그램이었다. 그 때 난 `탐진치(貪嗔恥)`석 자를 썼다. 내 안의 욕심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불살라 없애버리고 싶었다. 그런데, 난 여전히 욕심 부리고, 분노하고, 어리석다. 특히 분노해 화나는 감정을 다스릴 역량이 없다. 오히려 드라마들을 보면서 분노를 배우고 있다. 올해도 난 또 `탐진치`를 액운타파의 불쏘시개 삼아야 할 것인가.

2013-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