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포항 구룡포에서 `교문창` 겨울 모임이 열렸다. 교문창은 `교육문예창작회`의 줄임말인데, 교육 문제와 문예 창작에 관심이 많은 선생님이 중심이 돼 글쓰기와 연구를 통해 청소년의 삶을 바르게 가꾸려고 애쓰는 전국 국어교사 모임이다. 배창환, 황영진, 김윤현, 박두규, 박일환, 조재도, 김재환 선생님 등 전국에서 많은 선생님이 참석했는데, 느지막이 서울 영동일고등학교에 근무하는 유동걸 선생님이 합류했다. 지방 강연이 있어 마치고 오느라 늦었다며 인사를 건넸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강연 주제가 `토론`이었다.
마침 관심이 많던 터라 토론교육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유동걸 선생님은 원탁토론 아카데미를 통해 토론에 눈을 떴고, 전국 국어교사모임에서 `토론의 전사`연수를 기획 진행하면서 책까지 냈다고 했다. `토론의 전사 1-디베이트의 길을 열다`와 `토론의 전사 2-디베이트의 방법을 찾다`가 그것이다. 집으로 돌아와 책을 읽어보니 혼자 읽기에는 아까웠다. 무엇보다 `왜 토론인가?`에 대한 절실한 물음이 마음에 와 닿았다.
저자는 서문에서 “대립과 승패를 축으로 하는 디베이트 교육의 바탕에 소통과 화합의 철학이 없다면, 디베이트 능력은 약육강식의 현대 사회에서 강자들에게는 강력한 무기가 되고, 약자들에게는 논리의 피해자가 되어 피를 흘려야만 하는 현실을 강화하는 불평등의 괴물이 될지도 모릅니다. 토론의 전사는 자본주의 시대의 괴물이 아니라 그러한 괴물과 맞서는 평화의 사도로서 토론을 배워 가는 작은 공부 과정입니다”라고 썼다. 기존의 토론 전문가들과 철학의 깊이부터 달랐다. 오늘은 `토론의 전사 1-디베이트의 길을 열다`중에서 `질문의 중요성`을 강조한 부분을 소개한다. 저자는 장안의 화제가 됐던 드라마`성균관 스캔들`의 한 장면을 예로 들었다.
성균관 유생들의 첫 수업 시간, 요강을 든 정약용이 교실로 들어선다. 인사를 마치자마자 맨 먼저 나온 질문이 `성적 처리`다. 정약용은 “내 수업 시간에 불통이 다섯이면 낙제, 수업이든 활동이든 성균관에서 낙제가 셋이면 출재와 동시에 청금록 영삭인 건 알고들 있을 테고…. 그래서 준비했다”면서 요강을 내밀고 뇌물을 요구한다. 성적이라는 말에 긴장한 유생들은 금반지와 가지고 있던 돈을 요강에 넣지만 이선준이라는 유생은 문제 제기를 할 기회를 엿본다. 정약용은 돈을 걷은 뒤 요강에 든 색색의 천을 꺼내 불꽃을 일으키고, 사과를 꺼내 유생들에게 던져 주는 등 신기한 광경으로 유생의 관심을 집중시킨다. 그때 이선준 유생이 문제를 제기한다. “그만두십시오. 지금은 논어재 시간입니다” “이런, 못난 스승이긴 하나 나도 그 정도는 알고 있네” “한데 어찌 서역의 잡기로만 귀한 상유들의 시간을 탕진하십니까?”그러자 정약용은 들고 있던 요강을 떨어뜨려 산산조각 내버린다. 그리곤 이선준의 질문에 답한다. “논어 위정편, 군자불기에 대해 강했네. 진리를 탐하는 군자라면 갇혀 있는 그릇처럼 편견에 치우쳐서는 안 된다고 강했네. 서역의 잡기에서는 배울 것이 없다는 건 무슨 고약한 편견이며, 정약용이란 놈이 서학을 좀 했다 해서 고전을 싫어할 거라는 무지몽매함은…. 참 용감하기도 하군”(이하 중략)
서슬 퍼런 정약용의 말에 누워있던 문재신마저 눈을 비비고 일어난다. 그리고 이어지는 성적 발표. 이선준만 통을 받고 모두 불통. 당혹해하는 유생들의 질문에 정약용은 이렇게 말한다. “그래서다. 이 엉터리 수업에 불만을 제기한 유일한 학생이니까. 진리는 답이 아니라 질문에 있다. 내가 너희들에게 보여 준 세상은 사라지고 없다. 스승이란 이렇게 쓸데없는 존재들이다. 허나 스스로 묻는 자는 스스로 답을 얻게 되어 있다. 그것이 이선준이 통인 이유다”
정약용의 수업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이것이다. 항상 불만을 제기하고 문제의식을 가져라. 문제아가 되라. 문제아가 세상을 움직인다. 문제아가 답을 찾는다. 그러니 제발 좀 문제아가 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