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과학이 발전하기 이전에는 과학은 구태여 종교와 충돌할 이유가 없었다. 과학은 아직 초보적인 단계에 놓여 있는데 반해, 종교는 궁극적인 관심사를 다룬다는 강점을 무기로 국가 권력을 능가하는 권위를 누려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르네상스를 기점으로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르네상스 이후 종교나 신학적 권위로부터 해방된 자유로운 탐구정신은 새로운 사상과 학문, 과학의 발전을 가져와 인류문명은 획기적인 발전을 이룩하게 됐는데, 이 과정에서 종교와 과학의 충돌은 필연적인 것이었다.
종교와 과학이 충돌한 첫번째 사건은 코페르니쿠스에 의해 점화되고, 갈릴레오에 의해 극화(劇化)된 코페르니쿠스 혁명이다. 창세기의 기록대로 지구를 우주의 중심에 놓고, 태양과 행성들과 붙박이별들을 지구 장식품으로 생각하는 현대인은 아무도 없다. 갈릴레오가 죽은 지 3백년 후에 교황이 갈릴레오를 파문에서 해제하고, 코페르니쿠스의 고향을 찾아가 그에게 사죄함으로써 종교는 스스로 오류를 인정해 과학과 종교의 첫 번째 충돌은 과학의 완승으로 끝났다.
두번째 종교와 과학의 충돌은 유일신교의 `창조설`과 과학의 `진화론`이었다. 유일신의 `창조설`과 과학의 `진화론`의 일치는 본래적으로 불가능한 것이었다. 일신교가 과학의 진화론을 수용할 수 없고, 과학이 유일신의 천지창조에 동의할 수 없는 숙명적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원숭이와의 공통 조상에서 진화했다고 하는 데에 대해서는 아직 많은 사람들이 거부 반응을 나타내고 있지만 현대 생물학에서는 진화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설명이 되지 않는다. 또 과학자들은 진화의 속도와 메커니즘에 대해 논란을 벌이기는 하지만 진화 자체에 대해서 의문을 품지는 않는다. 이미 1996년에 교황 바오로 2세도 진화론을 수용하는 태도를 밝힌바 있다.
과학의 눈으로 볼 때 진화의 문제에 대해 과학과 종교의 진지한 논의를 어렵게 하는 요인 중의 하나는 소위 창조과학이다. 창조과학들은 `성경 무오설`에 입각해서 약 6천년 전 어느 6일 동안에 천지가 창조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창조과학을 객관적인 검증을 생명으로 하는 과학이라고 할 수 없다. 그들의 주장이 믿을 만한 과학 잡지의 논문으로 실리지 못하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세번째 충돌은 영혼에 관한 문제이다. 지동설이나 진화론보다 훨씬 큰 잠재적 폭발력을 가진 이슈는 정신 내지는 영혼에 관한 문제이다. 1950년에 교황 피우스 2세는 “가톨릭 신자는 신이 어느 단계에서 인간의 육체에 불멸의 영혼을 불어 넣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한 인류의 기원에 대하여 어떤 과학적 이론을 믿어도 상관없다”고 말했는데, 이는 영혼의 문제에 대해서만은 양보를 할 수 없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그런데 이 면에 대해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은 인간 정신은 무의식 세계 앞에서 한없이 무력하고, 자신의 행동도 지배하지 못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현대의 신경과학은 인간의 감정과 정신활동까지도 신경세포의 물리·화학작용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의식이건 무의식이건 뇌세포에 물리·화학적으로 남겨진 기록이 감정과 정신을 좌우한다면 영혼이 설자리는 어디인지 궁금해진다. 다행히 인간의 두뇌 활동은 너무나 복잡해서 과학이 이 문제로 종교와 정면으로 충돌할 날이 올지조차 의문이다. 따라서 영혼은 과학이 접근할 수 없는 종교의 영역으로 오래 남아 있으리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