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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투리를 들추다

등록일 2013-01-15 00:25 게재일 2013-01-15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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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현명 시인

`마카`라는 경상도 사투리가 있다. `모두`라는 뜻인데 촌부들이 다방에 가서는 여기 “마카 커피 도가”라고 해놓으니 아가씨가 `여기 모두다 커피로 주세요`로 듣지 못하고 모카커피를 시킨 줄로 알고 가져다주었다는 우스개소리가 있다. 사투리가 우스개나 개그의 소재로 등장해서 그나마 유지되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잊혀져가는 것들에 대한 아쉬움이라고 할까. 구수하고도 정감있어 지역적인 특별한 성격을 담은 말, 한마디로 고향 냄새가 배어 있는 사투리가 사람들 사이에서 잊혀져가는 것이 매우 아쉽다. 그래서 나는 가끔 방언사전을 들여다본다. 혼자서 몇 십년을 발로 뛰며 방언을 채집하여 이루어놓은 정석호씨의 `경북동남부 방언사전`을 2008년 구입해 둔 것이다. 언제나 이런 인문학 서적은 절판이 빨리 되고, 시장에서 빨리 사라지므로 나오자마자 기다려 구입해놓은 책이다.

캐캐묵은 방언사전을 왜 들추어 보느냐고 묻고 싶을 것이다. 대답한다면 나는 이것이야말로 나를 아는 또 하나의 좋은 방편이기 때문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방언은 내가 속한 공동체가 물려준 유산으로 내 속에서 아직도 살아 숨쉬는 문화의 흔적이기 때문이다. 언어는 바로 나의 생각과 마음을 형성하는 재료이거나 바로 그 자체라고 생각하기에 내가 쓰고 있는 사투리를 들추어 보는 일은 나를 아는 방법 중 하나가 분명하다.

아직도 내가 일상에서 쓰고 있는 사투리를 찾아보면 `먹었나`를 `묵았나`, `좀 전에`를 `아까제-`라고 하는 것이다. `-시더`, `-니더`, `-맨치로` 같은 말은 좀체 바꿀 수 없다. `일마가-`라든지 `잘 가래이-`같은 정감 있는 말도 툭툭 튀어나온다. 음가 없는 이응 받침은 얼마 전 개그프로에도 나와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어로 돌았는데 `-합니다잉`같이 표기되기도 했지만 사실 그렇게 표기되는 것이 아닌 독특한 말이다. 사투리 외에도 우리 말 중에는 이런 음가가 좀 남아있기도 하는데 `해죠잉` 같은 말이다.

포항 사투리 중에서 `곡깨-이`라는 말이 있다. `그 사람이 곡깨이지길 때는 안윗고는 몬 배긴다`란 말에서 사용된 것처럼 `익살` 혹은 `괴짜` 란 뜻을 가지고 있는 말이다. `참말로 몰랐는데 가가 곡깨이데 글마 그거 참` 이런 말은 지금은 못 알아 듣는 포항사람이 많을 것이라 생각이 든다. “참으로 몰랐는데 그 애 익살스럽더군 그놈 참”이란 뜻이다.

이왕 포항 사투리를 좀 더 늘어놓으면 `뻘쭘하다`라는 말이 있다. 방언사전에는 `형용사로 뻘쭉하다. 입이나 문이 약간 벌어진 모양`이라고 적혀있지만 사실 내가 생각하는 뜻은 `어떤 일의 결과로 어색해진 모습을 표현하는 말`이다. 비슷한 말로 사투리는 아니지만 `쪽팔려`라는 말이 있다.

어머니가 목욕하라고 붉은 다라이에 덥힌 물을 붓고, 씻어주고는 “깨빈하제-깨끗하고 개운하지”라고 물었던 것이나, 할아버지가 곧 장마가 올 것 같다며 혀를 차며 건너편 들판을 바라보며 날씨가 `꾸무리해졌데이-흐릿해졌다`라고 하던 일이라든지 그 장마 속에 들판에 갔다가 자전거를 타고 돌아오던 아버지가 `동태-바퀴`에 흙이 묻어있던 일, 일은 제대로 하지 않고 왔다갔다 분주한 사람들을 보고 저 사람들이 왜 저리 `분답노-`라고 하던 할머니의 말, 오래되어서 너무 삭아버린 밥식혜를 맛본 어머니가 눈을 찡그리며 `아이고 새구라바래이- 아이고 시어라`라고 하던 모습들이 떠오른다.

제 아무리 표준어가 통용되고 TV 때문에 언어가 통일되어 가는 시대에도 억센 사투리는 그 특유의 억양과 함께 전수되는 것은 분명하다. 얼마 전 수능시험을 앞둔 형을 응원하면서 `형아 시험 잘 쳐리이-` 하던 둘째 녀석이 생각난다. `래이-`나 `리이-`라고 표기해도 정확하지 않는 이 이응받침은 가장 정감있고 오래오래 없어지지 않을 사투리다. `가장 지역적인 것인 세계적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세계의 이해는 나의 이해로부터 시작된다. 나의 방언사전 들추기는 멈추지 않고 계속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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