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귀가 따갑도록 들어온 공부. 정작 공부의 뜻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공부란 도대체 무엇일까? 도올 김용옥 선생의 `삼국통일과 한국통일`(통나무·1994)에 따르면, `공부(工夫)`는 영어 `to study`의 번역어로 `도움을 주어서 공을 이루다`라는 의미다. 공부(工夫)의 어원은 `공부(功扶)`와 같은 것으로, `공(功)`은 `힘을 더해 이루어 내다`라는 말이고, `부(扶)`는 `돕다`라는 뜻으로, 이를 합치면 `성공에 이르도록 스스로를 돕는다`라는 의미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에서 `스스로 돕는`것이 바로 공부다.
그동안 부모님과 선생님에게 지겹도록 들었던 공부 좀 하란 말은 `스스로를 도와라!`하는, 엄청난 말이다. 이 글을 읽는 부모님과 선생님들은 앞으로 자녀와 학생들에게 `공부해라!`하지 말고 `스스로를 도와라!`라고 정확하게(?) 의미를 전달했으면 좋겠다. 심오한 뜻이 잔소리로 들리지 않게 말이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공부를 왜 해야 할까? 왜 스스로를 도와야 할까? `수인사대천명(修人事待天命)` 그 답이다. `수인사대천명(修人事待天命)`은 `삼국지(三國志)`에서 유래한 말로, 자기 할 일을 다 하고 하늘의 명을 기다린다는 뜻이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와 같은 맥락이다.
중국 삼국 시대, 적벽대전에서 제갈 량은 관우에게 조조를 죽이라고 했지만 관우는 조조를 살려줬다. 그 책임을 물어 제갈 량은 관우를 참수하려고 했으나 유비의 간청에 따라 관우의 목숨을 살려줬다. 그러면서 제갈 량은 유비에게, “천문을 보니 조조는 아직 죽을 운명이 아니므로 일전에 조조에게 은혜를 입었던 관우로 하여금 그 은혜를 갚으라고 화용도(戰場)로 보냈다. 내가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방법을 모두 쓴다 할지라도 목숨은 하늘의 뜻에 달렸으니, 하늘의 명을 기다려 따를 뿐이다”라고 했다. 하늘의 뜻에 따라서 쓰이기 위해 인간은 `스스로를 돕는`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이다. 공부하지 않으면 쓰일 수 없으니 말이다.
토론교육 전문가 유병걸 선생님은 공부가 중국말로 `쿵푸`라는데 착안해 공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머리`가 아니라 `몸`이라고 역설한다. 흔히 공부를 `지식의 습득과 축적`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많은데, 그것은 껍데기 공부일 뿐이다. 진짜 공부는 `온몸으로 배우고 익히는 것`이다. 어떤 하나의 경지에 이르기 위해 자기 몸이 가지고 있는 습관과 행동을 꾸준히 변화시켜 나가는 과정이 바로 진짜 공부인 것이다.
흔히 인간을 `호모 사피엔스`라고 한다. 이성적 존재, 생각하는 존재라는 뜻이다. 인간만이 고유한 사고 기능을 가졌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성`은 인간이 가진 한 가지 특성일 뿐이다. 사고와 행동, 이성과 몸, 생각과 느낌의 조화와 불화를 다룰 때 비로소 인간의 정체성에 대해 논할 수 있다.
오늘날의 공부가 많은 학생들을 죽음의 사지로 내모는 `고문`이 된 이유는 이성적 기능만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몸의 단련, 온몸을 통한 삶의 변화를 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고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넘어서 온몸으로 공부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새롭게 바라봐야 한다는 뜻으로 철학자 김용옥 선생님은 인간을 일컬어 `호모 사피엔스`가 아니라 `호모 모미엔스(온몸으로 공부하는 인간)`라고 한 것이다. `호모 모미엔스`는 인간의 몸을 육체와 정신의 이분법을 바라보는 서양철학과 달리, 정신과 육체는 분리할 수 없는 몸의 양태로 보고, 우리말 `몸`에서 따온 개념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공부는 `머리`로 하는 게 아니라 `온몸`으로 하는 것이다. 2월, 졸업이 한창이다. 모쪼록 `온몸으로 공부하는 아이들`이 좀 더 늘어났으면 좋겠다. 국내외 명문대학에서 `온몸으로 공부한 청소년`들을 가려내어 뽑아주면 대한민국에도 `온몸공부` 열풍이 불까? 그런 열풍이라면 쌍수를 들어 환영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