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세기까지 서구 문명을 지배했던`이성(理性)에 대한 믿음`은 근대화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를 휩쓴 자본주의, 과학만능주의의 모순이 곳곳에서 드러나면서 점차 인류를 배반해 왔다. 수많은 전쟁과 집단살육이 이성이나 정의, 또는 역사라는 미명하에 저질러졌고, 어머니의 품과 같은 자연은 이성을 신봉하는 인간의 정복대상으로 전락했다. 서구 열강들은 앞 다투어 세계를 정복해 갔고, 그 결과 지구의 환경오염과 생태계 파괴가 급속도로 진행됐다.
뭔가 잘못된 것이 분명했다. 오류의 근원에 서구인들이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여기던 이성에 대한 낙관론이 자라잡고 있음을 지적하는 지성들이 20세기 중반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근대화의 역사는 `이성의 꿈`이 낳은 수많은 괴물을 양산해온 역사라는 것이다. 그동안 서구사회를 지배해온 기독교 사상도 한계를 드러냈다. 인간과 자연 및 우주 사이의 관계정립이 새롭게 모색돼야 할 필요성을 서구 지성들이 절감하기 시작했다.
20세기 서구 사상사의 전환에 중심역할을 한 아르헨티나 출신 작가 호르헤루이스 보르헤스, 대석학 막스 베버, 천재 과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등 서구 지성들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구하는 새 천년 인류문명의 대안으로 불교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들 일부 지성들에 의해 새로운 대안사상으로 떠오른 불교, 특히 선불교는 점차 일반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확산되기 시작, 가속도를 더해갔다.
20세기 대석학인 아놀드 토인비(1889~1975)는 죽기 몇 해 전 영국 옥스퍼드 학술회의에서 “20세기 가장 위대한 사건은 동양의 불교가 서양으로 건너온 일이다”라고 말했다.
당시에 주위 사람 대부분이 이 말을 듣고 어리둥절해 했으나, 지금은 이 말이 토인비가 남긴 유명한 말 중의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생전에 불교교리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한 적이 있는 아인슈타인은 “미래의 종교는 우주적 종교가 되어야 한다. 그동안 종교는 자연세계를 부정하고 모두 절대자가 만든 것이라고만 했다. 그러나 앞으로의 종교는 자연세계와 영적세계를 똑같이 존중한다는 생각에 기반을 둬야 한다. 나는 불교야말로 이러한 내 생각과 부합한다고 본다. 만약 누군가 나에게 현대의 과학적 요구에 상응하는 종교를 꼽으라면 그것은 불교라고 말하고 싶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물질과 정신을 완전히 별개의 것으로 보는 물심이원론(物心二元論)에서 비롯된 근·현대 과학의 주류는 출발부터 그 한계를 가짐으로써, 첨단 현대과학의 발달로 새로운 돌파구를 찾게 되었다. 양자역학, 대뇌생리학, 심층심리학 등 깊은 수준의 과학세계에서는 물질과 정신은 구별할 수 없음이 밝혀지고 있다. 인식론이 과학이나 철학의 분야로 독립해 온 기독교 문명과는 달리 불교는 모든 인식론적 가능성을 수용, 철학이나 과학과 전혀 대립할 필요가 없는 사상이다. 인식론이 종교에서 분리돼 있던 기독교 문명에서 과학이 발달한 반면, 그것이 합일돼 있는 불교 전통은 오히려 과학 발전의 저해 요인이 됐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과학의 성과가 인류의 보편적 자산이 되어가고 있는 미래에는 그 양상이 달라질 것으로 학자들은 내다보고 있다. 그동안 과학이 외면해온 우주와 인간 정신세계가 과학에 의해 실증되는 시대가 오고 있고, 이런 시대에 불교는 새로운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