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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나’하고 관계 없는 세대가 있다

무척이나 몸이 안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언제나 피할 수 없는 일이 있게 마련이다. 변호사로 이미 명성을 얻은 ‘친구’가 소설을 써냈다. 그냥 소설도 아니고 미래소설, AI가 사람을 죽이는, 문제적인 이야기다.이런 바쁜 세상에서 소설을 쓴다는 건 쉽지 않고, 그것도 시대의 추세를 앞서가는 것도 쉬운 일 아니다. 나 역시 소설을 쓰지만 낡은 시대의 끝을 살아가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며, 합정동에서 망원동 가는 쪽에 있는 전라도 음식점으로 서둘러 향했다.식당에는 이 장편소설을 펴낸 솔출판사의 임 선배가 이미 와 계셨고, 표지를 그린 오 선생도 함께 합석을 했다. 수년 동안 늘 둘이서만 술을 마시다시피 한, 평론가 이 후배도 미리 와 있다. 섬세한 그가 책을 출간한 작가를 위해 사 온 프리지아 꽃다발이 유난히 아름다워 보인다. 좋은 모임이지만 나는 우리가 모두 나이가 들어 버렸다고 생각했다. 이 평론가가 나보다 11년 후배나 되고 그래도 벌써 사십 대 후반에 접어들었으니 ‘세상’으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져 나온 셈이다. 무슨 이야긴가 끝에 임 선배가 세상에는 ‘나’하고 관계 없는 세대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말을 했다. 나는 즉각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솔출판사는 최근에 카프카 전집을 내고 버지니아 울프 전집을 냈는데, 이런 책을 읽을 수 있는 젊은 세대란 없다시피 하다. 그리고 바로 이들이 ‘세상’을 이루고 있다. 웹툰이며 웹소설 시장이 하루가 다르게 몸집을 불리고 있고, 이런 작품들이 영화가 된다.나도 그런 생각을 한 때가 있었다. 벌써 16,7년이나 된 일이다. 모교에 와서 첫날 강의에 들어간 나는 예기치 않게 심중에 담아 놓은 이야기를 토설하고 말았다. “저는 여러분 세대와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의 세대의 사연을 그대로 보따리째 싸들고 그냥 살아가다 홀연히 사라지고 싶었습니다.”그 무렵 나는 어떤 독한 외로움에 시달리고 있었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들에 관해 ‘세상’은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 것 같았다. 일본 작가 나쓰메 소세키 책 중에 ‘나의 에고이즘’이라는 것이 있어 꼭 나의 감정을 대변하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혀 있었다.지금도, 나는 사실은 외로움에 시달리고 있다. 임 선배처럼 나도 나와 관계없는 세대와 ‘함께’ 호흡하며, 한때의 신조를 어기고 때때로 그들에게 나의 세대의 사연들을 노출하고 만다.그러면서 또 생각한다. 어쩔 수 없이, 사람은 세대에서 세대로 경험과 기억을 이어주고 이어받을 수밖에 없다고. 많은 것이 그러는 사이에 잊혀지고 놓쳐지고 거부된다 해도, 그렇게 사람의 삶은 연결되는 것이라고./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 한국화가

2021-03-25

‘줌’(zoom)으로 사람 만나기

요즘에는 개강을 했어도 직접 강의실에서 학생들을 만나는 일이 없다. 수업을 세 개를 해도 학생들을 한 번도 제대로 만나본 일은 없다고 해야 한다. 수업 시간에 맞추어 ‘줌’ 회의를 개설하는 예약을 해두고, 인터넷으로 학생들에게 회의 주소를 알려주는 문자를 보내고, 수업 시간이 가까우면 줌 회의를 열어두고 학생들이 들어오기를 기다린다.학생들 수업만 그런 게 아니라 각종 회의도 직접 만나서 하는 일은 손꼽을 정도다. 학생들과 같이 하는 개강 모임은 처음부터 문제가 생길까 아예 ‘비대면’으로 전환해서 화상으로 학생들을 만나도록 한다. 선생님들끼리 모여서 뭔가 의논을 할 때도 한 번도 직접 모여서 한 일은 없는 것 같다. 학교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따질 것 없이 ‘줌’ 회의에 접속만 되어 있으면 만나 오케이다.하루 이틀 아닌 코로나 시절이다 보니 이제는 ‘비대면’이 일상이 되고, ‘대면’은 아주 이상한 일이 되어버린 것 같다. 집밖이 무서워져서 가급적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 황사나 미세먼지 때문에 그런 것도 아니고, 어느새 사람에 대한 공포증이 생긴 건지, 아니면 사람 관계에 대해 어느새 서먹해져 불편함을 느끼는 건지, 외출하는 일이 무슨 큰 모험을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뭔가 약속을 만들려면, 바깥나들이를 하려면 나도 모르게 심장이 두근거리고 이렇게 나가도 되는 건가 하는 두려운 기분이 이는 것은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게 되어 버렸다.화장실 벽에 걸린 장에 수건을 넣다가 그만 조그만 샴푸 병이 변기로 또르륵 굴러떨어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사람을 불러 고쳐야 할 일이 생겼다. 내 손으로 손수 건져낼 수 없이 보이지 않는 아래로 숨어버린 것을 어떻게 찾아낼 수 있을지, 전화 저쪽 사람은 ‘석션’이라는 것을 하면 나오는 수가 있다 한다. 밤에 약속을 정하고 아침이 되어 사람이 오기를 기다리는데 어디서 솟아나는 불안감인지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리고 조여드는 것 같은 느낌은 낯선 사람을 너무 오래 안 만나서인가?그러다 이것은 분명 병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그러고 보니 가까운 사람도 제대로 만나 시간을 보낸 적이 별로 없다.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표정을 짓고 천연덕스럽게 대화를 나누지만 돌아서고 나면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이런 식으로 또 한 학기가 가면 이제는 정말 마음이 병들어 버리는 게 아닐까 하는 무서운 마음이 든다. 나는 원래 낙천적인 사람이었던 것 같은데, 이 꽉 죄어들어오는 갑갑함은 무엇이란 말인가? 내일은, 아니면 모레라도 꼭 산에 올라가야겠다고 생각한다. 심호흡 한번 크게 하고 세상을 다른 기분으로 살아보고 싶다./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 한국화가

2021-03-18

코로나 개강

3월 하면 떠오르는 것은 뭣보다 3·1절. 그러고 나면 그 다음날 운동장에서 ‘조회’하던 옛날 광경. 그 다음엔 봄이 왔는데도 늘 추웠었다는 기억. 그때는 3월에도 손발이 시렸다. 그러니까 3월 하면 아직도 ‘맹렬하게’ 남아 있는 추위를 뚫고 학교에 가서 조회를 하고 새 교실에서 새 책을 받고 새 친구들과 왁자지껄, 우당탕탕 놀아제껴야 제 맛이었다. 대학이라서 수업이 없는 날도 있다. 월요일 하고 수요일에 수업이 있는 과목에 3.·1절이 월요일 차례가 되었다. 화요일을 건너뛰어 수요일, 3월 3일이 첫 개강날이었다.‘어김없이’ 며칠 전에는 봄을 시샘하는 늦겨울비가 제법 내려 3월을 맞을 준비는 다 된 것도 같았는데, 캠퍼스에 학생들이 ‘없다’. 이번 학기도 지난 학기, 지지난 학기처럼 ‘줌(zoom)’으로 수업을 운영하기로 한 것이다. 겨울방학중과 크게 달라진 게 없는 것 같은 한산한 캠퍼스를 가로질러 연구실 있는 건물로 향한다.코로나가 창궐하면서 건물들은 죄다 ‘자물쇠’가 채워졌다. 신분증, 전자 ID카드가 없으면 문을 열 수 없다. 바로 옆에 시스템 관리팀을 부를 수 있는 벨이 있지만 ‘규정’이라서 절대로 열어줄 수 없단다. 신분증을 잊어버린 날은 다른 사람이 드나들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데, 그 사람이 언제 나타날지 알 수 없다.학생들과 수업을 하려면 먼저 ‘줌’ 어플로 ‘새 회의’라는 것을 개설하고, 그러면 생성되는 회의 ‘주소’를 학생들에게 문자로 전송해 주어야 한다. 수업 시간이 되면 학생들은 이 주소를 따라 단체 ‘회의실’에 입장하게 되고, 그러면 이것이 인터넷 수업이 된다.겨울 내내 연구실을 정리한다, 한다 해놓고 그대로 3월을 맞은 것이 마음에 걸린다. 요즘 학생들은 ‘줌’으로 자기 사는 방의 풍경이 그대로 노출되는 것을 꺼린다는데, 나 또한 지금 내 얼굴 뒤에 ‘가상배경’을 깔아놓고 수업을 해야 할 판이다.이번 학기부터는 시간에 쫓기고 싶지 않아 미리미리 출석부도 출력해 놓고 강의계획서도 꺼내서 첫 개강 수업 준비도 하고 일찌감치 ‘줌’ 수업 주소도 학생들에게 전송한다.학생들 명부를 보는데 학번이 ‘2020’인 학생들이 많다. 작년 코로나 ‘개시’ 시절에 대학에 들어와 올해로서 2년째 ‘줌’ 수업으로 공부하고 캠퍼스는 무슨 특별한 일이 있을 때나 찾아오는 ‘운 나쁜’ 친구들이다. 더 잘, 더 자세히 수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한편으로, 앞으로 코로나가 물러가도 대학이 이런 메커니즘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이 인다.결혼식, 장례식은 확실히 그럴 것 같은데, 과연 일상은? 간단치 않다. 코로나가 우리에게 가져온 충격이 참으로 큰 것이다./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 한국화가

2021-03-04

코로나 졸업 시즌

지금은 바야흐로 겨울 졸업 시즌이다. 학교를 오가다 보면 학생들이 일주일 내내 졸업 가운을 입고 ‘삼삼사사’ 모여 사진들 찍은 풍경을 본다. 다섯 명 이상은 아직 모일 수 없으니 삼삼오오오가 될 수 없는 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어김없이 2월의 졸업 시즌은 닥쳤다. 대학 전체 차원이나 단과대학 차원에서 정식으로 졸업식을 가질 수 없는 코로나 시절이다. 어떻게 하면 학생들을 축하해 줄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아하, 이게 좋겠구나 했다.학과 홈페이지에 졸업생 명단을 띄워올리고 “여러분의 뜻 깊은 졸업을 축하합니다!” 문구 정도로 분위기를 살리는 게 좋겠다는 것이다. 조교 선생님도 이야기를 듣고는 그거 좋겠다고 맞장구를 쳤다. 다음날이다. 학과에서 만난 조교 선생님이 난감한 표정으로 말을 걸었다. 졸업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은 학생들도 있을 수 있어, 자칫 프라이버시 침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갑자기 머리가 아파오는 느낌이었다. 졸업생 이름을 다른 곳도 아니고 학과 홈페이지에 올리는 것을 꺼려 하는 학생도 있을 수 있을까?그러나 이때는 물러서는 것이 좋다. 개인의 인격권과 프라이버시가 어느 때보다 날카롭게 강조되는 요즘 졸업도 ‘개인정보’라는 인식에 맞서 좋을 것이 없다. 또 엄밀히 말하면 확실히 개인정보인 것은 맞으니까. 다시 또 생각한 것은 학과로 통하는 외벽에 졸업 축하 플래카드를 써붙여 주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말도 꺼내지 못했다. 요즘 학교 전체적으로 플래카드 ‘단속’이 여간 심한 게 아니어서 일일이 허락받아야 할 뿐더러 부착 지점도 까다롭게 제한되어 있는 까닭이다. 이렇게 해서, 코로나 ‘시즌’의 졸업생들을 축하해 주려던 아이디어들은 무위로 돌아갔다. ‘축하의 말’이나 ‘달랑’ 올려 드리고 기념품을 준비하는 것으로 졸업 시즌을 때우는 셈이 되었다. 옛날에는 사회가 이런데 졸업식이 무엇이냐고 졸업식 거부까지 했건만, 이제 그런 인식은 아예 사라졌다. 학교 학생들은 학교 마크가 찍힌 옷을 자랑스럽게 입고 다니고 졸업식은 거의 모든 학생들이 참석하는 중요 행사가 되었다. 코로나 시절은 이렇게 ‘정상’으로 되돌아온 졸업식이 없는 졸업 시즌을 만든다. 그래도 교문을 들어오고 나가면서 보는 졸업생들의 표정은 밝다.내가 혹시 졸업식 축하에 매달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글쎄, 혹시 대학 시절 이후로 코스모스 졸업밖에는 하지 못해서인지도 모르겠다. 대학원까지 세 번 졸업을 했지만 매번 가을에만 학업을 끝낼 수 있었다. 그때마다 졸업 가운이 유난히 무겁게 느껴졌다. 어서 코로나 염병이 물러나야겠다. 학생들이 학업 마치는 보람을 한껏 누릴 수 있는 그날을 위해./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

2021-02-25

백기완 선생의 추억

그때는 1987년 겨울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때 ‘6월 민주항쟁’의 강렬한 영향 속에서 한국 사회의 향방에 비상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대학교 4학년으로 학과 대표로 학생들과 함께 시청 앞 신세계 백화점 앞에서 근 이십 일 시위 끝에 ‘6·29 선언’이라는 것을 경험했다.12월까지 정세는 숨가쁘게 흘러갔다. 학생들은 그때 ‘직선제 개헌 쟁취’와 ‘제헌의회 수립’으로 나뉘어 있었다. 그리고 이는 당시 정세를 준비기로 보느냐 혁명기로 보느냐 하는 서로 다른 판단에 연결되어 있었다. NL파는 당시를 준비기로 보았지만 ND파들이 본 것처럼 당시는 분명 혁명적 시기였다. 그러나, ‘6·29 선언’은 김대중, 김영삼 두 지도자를 중심으로 한 야당과 다수파 민주화 운동 학생들의 요구를 수용하는 형태를 취했고, 때문에 ‘혁명적’ 정세에는 찬물을 끼얹어진 형국이 되었다.이럴 수도 있구나, 했다. 군사통치가 직선제 개헌을 통해서도 연장될 수 있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두 김’이 단일화해야 한다는 아우성 소리가 높아져 가는 가운데 ‘김대중 씨’가 출마한다고 했다. 민주화 운동 학생들이 ‘김영삼 씨’를 지지하는 ‘후보 단일화론’과 ‘김대중 씨’를 지지하는 ‘비판적 지지론’으로 양분되는 가운데, 백기완 선생이 민중 후보로 일단 출마했다.그날 대학로 앞에는 학생들, 시민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백기완 선생이 유세 연설에 나서 야권, 민주화 운동권의 단합을 촉구하며, ‘두 김씨’가 어떻게든 합의를 해야 한다고 했다. 백기완 선생을 실물로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고 생각된다.참 강단있게 생기셨다. 거기에 순우리말로 기지와 유머를 발휘하여 사태의 정곡을 찌르고 풍자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능력이 너무나 뛰어나셨다. 백기완 선생의 대학로 ‘요구’는, 그러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분의 ‘충정’도 경우에 따라서는 김영삼 지지의 다른 형태로 인식될 수도 있는 상황이기도 했고, 무엇보다 ‘두 김씨’가 전혀 양보할 뜻이 없었고, 각기 제 갈 길을 꿈꾸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칼 858기 폭파 사건’이라는 불가사의한 참극이 벌어지며, 그해 선거는 마침내 노 후보의 승리로 귀착되고 말았다. 당시 서울대생 양원태 군이 구로구청에서 부정선거에 항의, 점거농성을 하다 큰 일을 당하기까지 했다.그때는 백기완 같은 분들은 그냥 민주화 운동 재야 인사로만 불렸고, 나 또한 그렇게만 인식했다. 세월이 흐르니 알겠다. 진정한 사람들은 어느 패에 휘말리지 않는 굳센 정신의 소유자라는 것. 백기완 선생이 바로 그런 분이셨다./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

2021-02-18

장학금에 관하여

장학금이라는 말을 써넣자마자 밑도 끝도 없이 옛날 일이 떠오른다. 서울 상경하는데 어머니가 거기 무슨 신문사를 찾아가 보라고 하셨다. 외할머니 고향이 면천이시라 했고, 그 신문사 집안으로 시집 간 분이 계시다고 했다. 몇 년 지나 막내 동생이 또 서울로 오게 되자 어머니는 또 한 번 그 말씀을 하셨다.하지만 결국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자식 셋 대학 공부 시키는 게 얼마나 어려우실지 깨닫지도 못했고, 내 의식과 안 맞는 곳에 가 손을 빌릴 수 없는 알량한 자의식이 문제였다.사립대학과 국립대학은 등록금 차이가 예나 지금이나 크다. 그래도 사정은 제각각이다. 나 또한 다른 친구들 전액면제며 기성회비 면제 같은 혜택을 받을 때 속이 쓰리지 않은 것은 아니었을 테다. 그러면서도 학점에 악착을 부리지 못했다. 마냥 강의실 바깥으로만 떠도는 부실하고도 미련한 학생일 뿐이었다. 고등학교 교사 자식은 생활형편으로도 장학금을 받을 수 없었다. 오로지 학업 성적으로나 가능성이 있는 것을, 어떻게 그렇게 공부할 생각이 안 났는지, 터무니없이 낮은 학점을 받고도 정신은 온전히 다른 데 팔려 있었다. 이제 학생들 장학금의 추천서를 쓰는 처지가 되고 보니 여러 생각이 아니 날 수 없다.가장 많이 바뀐 점은 생활형 장학금이 대폭 늘어난 것이다. 소득분위라는 것이 있어, 일정 소득 기준 이하 학생들에게는 어느 정도 먼저 배분해 주는 돈이 있다. 또, 옛날에 비해 확실히 여러 종류의 장학금들이 생겨났다. 나라에서 주는 돈, 학교에서 주는 돈 말고도 많은 장학재단들이 있다. 서울에도, 학생들 고향에도 있어 어떻게든 혜택을 받는 학생들이 있다.또 한 가지 분명한 점이 있다. 세월 바뀐 요즘도 ‘못 사는’ 집 학생들이 여전히 적지만은 않다는 사실이다. 여기에, 가정 형편도 안 좋은데 몸까지 안 좋은 학생도 있고 보면 건강은 확실히 빈부문제이기도 하다. 옛날에는 가난한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건만 세월 흘러도 이 ‘계급’이라는 것은 여전히 문제다. 그리고 요즘 학생들은 받느냐 안 받느냐에 훨씬 더 민감하기도 하다. ‘줌’(zoom)으로 수업을 할 때도 세수 안 해서가 아니라 자기 사는 형편을 보여주기 싫어 화면을 켜놓지 않는 학생들도 많다는 시절이다.그럼 어떻게 남들 ‘다’ 받는 장학금을 받을 수 있나? 가만 살펴 보면 비결이 있으니, 무엇보다 잘 준비하는 성실함이 중요하다. 같은 값이면 뭔가 제때 성의를 보인 학생에게 차례가 가게 된다. 그러고 보니 옛날의 나는 어지간히 모자란 학생이었던 것 같다./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

2021-02-04

추천서를 쓰면서

내가 다니는 학교는 대학원생이 많은 곳이다. 국문과 가운데서는 가장 많은 축에 속할 것 같다.한번은 인문대학에서 공간 배분 문제 때문에 재적 인원을 물어본 적이 있어, 120명이라고 했더니 국문과 다 합쳐서 그런 것이냐고 했다. 아니고, 현대문학만 그렇다 했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을 정도였다. 요즘 외국 유학생이 많아 그렇기도 하지만 원래 국문학은 돈은 되지 않아도 학문적 열정만은 다른 곳 못지 않을 것이다.이렇게 학생이 많다는 건 행복한 소리지만 그만큼 마음이 아플 때도 많다고 할 것이, 이렇게 공부한 귀한 학생들이 막상 박사 졸업장을 들고 사회에 나가려 하면 받아줄 곳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어디나 그런 것이 일자리 적은 요즘 한국 사회 풍토지만 이 박사들은 남들 서른 살도 안 되어 직장을 찾을 때 공부하겠다고 학원에 남은 사람들이다. 보통 200만 원 정도 월급을 받기 시작할 나이에 책과 자료에만 매달린 사람들이다. 그네들이 박사학위를 들고 대학만 졸업한 학생들보다도 더 적은 월급밖에 주지 않는 강사 자리, 강의전임 자리를 찾아다니는 것을 어떻게 마음 편히 바라볼 수 있으랴.편할 수도, 좋을 수도 없는 마음으로 추천서들을 쓴다. 한 학기에도 여러 통 써야 하는 추천서니까 틀을 하나 정해 놓고 거기 맞춰 사람 이름만 바꾸면 될 것 같지만 가려는 대학마다 뽑는 자리도 다르고 가려는 사람도 저마다 다르다.어떤 사람은 공부도 정말 잘하고 논문 수도 많다. 어떤 사람은 논문 수는 좀 적어도 인격적으로 너무나 좋기 때문에 학생들에게는 이런 사람이 더 필요하다고도 볼 수 있다.큰 덕목을 잘 갖추지 못한 사람이라 해서 아무 노력도 없이 이 위치에까지 온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런 사람은 그런 사람대로 또 다른 ‘칭찬’이 없을 수 없다.사실, 국문학이라 그렇고, 또 인문학 중의 하나라서 더 그렇지만 요즘 한국사회는 뭐든 돈이다, 실용이다, 하는 쪽으로만 돌아가는 모양새다. 그만큼 먹고 살기 어렵지 않느냐 하지만 사람은 육체와 함께 정신을 가진 존재고 그래서 빵만으로가 아니라 생각으로 살아가는 존재라 해야 맞다. 가장 연약한 갈대지만 생각하는 갈대인 것이다.오래 준비한 학생들을 위해서 오늘도 나는 잠시 책상 위에 앉는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어느 대학 국문과에서 현대소설전공 교수로 일하고 있는 아무개입니다. 다름 아니오라…. 간곡히 요청 드립니다.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무 년 아무 일 아무개 삼가 올림”/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

2021-01-28

미국 대통령 선거 끝나도 안 끝났다

깜빡 잠든 사이에 유튜브에 몇 개 클립이 떴다. 미국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행정명령(executive order)이라는 것을 발동했다고 한다. 이 명령에 따르면 미국에는 행정 주체들의 권한 사용으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관행들이 있어 왔으며, 이에 따르는 부정한 절차와 방법으로 인해 미국 국민 스스로 자신의 대리인을 선택하는 힘이 약화되어 왔다고 했다. 이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2년 동안 미국에서 치러진 선거들에 대해 앞으로 120일 동안 조사해서 보고하라고 명령했다.이 명령은 트럼프 임기가 단 하루만을 남긴 시점이라는 점에서 의문을 야기한다. 도대체 누구에게 보고하라는 것이냐? 명령을 내린 사람은 플로리다에 내려가고 없지 않겠는가?지금 시각이 미국의 바이든의 대통령 취임을 근 하루 앞둔 시점이다. 이 행정명령은 지난 2020년 11월 3일 미국인들이 선거를 치른 이후에도 계속해서 논란이 되어 온 미국 선거 사태가 시계 제로 상태에 들어섰음을 의미한다.11월 13일 밤, 개표가 시작되자마자 이번 선거의 관건이라고 알려져 온 대여섯 개의 경합주에서 트럼프는 일방적으로 앞서 갔다. 트럼프는 승리를 선언했고 바이든은 늦게 나타나 조금 더 기다려 보자고 했다. 새벽이 되었을 때 바이든이 예언한 것 같은 현상이 갑자기 일어났다. 이 경합주들에서 일제히 바이든이 트럼프를 앞서기 시작한 것이다. 전세는 예기찮게 역전되었고 다음날, 다다음날, 트럼프는 자신이 승리한 선거를 도둑질 당했다고 주장했다. 선거 사기가 벌어졌다는 것이었다.그리고는 최근 며칠 사이에 이상한 일들이 계속되었다. 미국의 빅테크들, 트위터, 페이스북, 유튜브 등은 1월 6일의 상하원 합동회의의 바이든 인증 이후, 선거 부정을 주장한 트럼프의 계정을 삭제해 버렸다. 또 선거 부정 운운하는 유튜버들을 향해서는 삭제를 하거나 경고 딱지를 붙이는 일들이 계속되기도 했다.끝나도 끝난 것이 아니라는 말이 있다. 미국 선거 문제는 바야흐로 새로운 궤도에 진입한 것 같다. 미국 수도 워싱턴 DC에는 이미 3만 명이 넘는 군인들이 전국 50개주에서 차출, 밀집해 있다. 크기는 서울의 반의 반밖에 안 되고 인구는 60만에 불과한 행정수도에 어마어마한 숫자다. 하객이 있어야 할 자리에 깃발만 수없이 꽂아놓은 플래그 취임이 성공적으로 끝난다 해도 이번 선거는 결고 통합적 축제로 기록될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하나 얻은 것이 있다고는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사태들은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와 절차가 무엇인지, 어때야 민주주의라 할 수 있는지 재확인시켜 준 세계사적 과정이 될 것이다. 그래도 뒷맛은 여전히 쓸 것이다./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

2021-01-21

유튜브 ‘쓸데없다’

미국 대통령 선거가 점입가경이다. 공중파, 채널티비만 해도 그렇지 않은데, 유튜브를 보면 하루하루가 긴박하기만 하다. 오늘은 트럼프 대통령이 워싱턴 DC 일원에 비상사태를 선언했다고 하는데, 이를 둘러싸고 이런저런 해석이 분분하기만 하다.벌써 며칠째 유튜브를 통해서 미국 대선 현황을 지켜보고 있는지 모르는데, 그래도 유튜브가 아니고는 미국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상세한 정보를 주는 데가 없어서일 것이다. 이 중에는 오보도 많고 가짜도 많지만 있었던 일을 해석하고 며칠 뒤 일을 예측하기도 하는 까닭에 어쩔 수 없이 보고 듣게 되는 것이다.그런데도, 내가 유튜브 쓸 데 없다고 과장 섞인 이야기를 하는 까닭은 요즘 들어 유튜브가 전례없이 뜨겁다 못해 거칠고 험악해졌기 때문이다.특히 미국 대선 문제, 국내 정치 문제를 둘러싼 유튜브는 하루에도 몇 번씩 프로를 올리는데 그것도 나쁜 것은 아니지만 쓰는 말이며 표정이며 몸짓이 무서울 정도로 변했다.정작 더 큰 문제는 마냥 자유로울 것처럼만 여겼던 유튜브가 사실은 이면적인 정치공학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것은 유튜브만의 문제가 아니라 페이스북, 트위터, CNN 같은 거대 여론 주도 매체들의 공통된 문제다.며칠 전 놀랍게도 트위터에서는 ‘트통’의 계정을 영구삭제하고 그 편 드는 사람들 계정도 많이도 없앴다고 한다. 그러자 그는 ‘팔러’라는 새로운 인터넷 매체로 옮아갔고 그를 따라 수많은 사람들이 그쪽으로 옮겨가 버렸다고도 한다.이것은 독일 수상도 우려를 표명했다던데, 사실상 검열이고 언론 자유의 억압인 것이다.세상을 살아갈수록, 뭔가 세상의 안쪽을 조금이라도 볼 수 있게 되면 될수록 사람살이는 참 무섭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느 편에 서는 것도 어렵고, 어느 쪽에도 편들지 않고 사는 것도 어렵다. 중심을 잡고 사는 일이 이렇게 어려울 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디지털 세상이 더 민주적이고 더 자유로운 세상이 될 것이라던 낙관은 이제 디지털 전체주의, 디지털 통제 사회에의 공포로 변해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과연 어떻게 하면 이 ‘쓸데없다’는 과장법에서 벗어날 수 있으련지?그래도 내일 나는 또 유튜브를 보게 될 것 같다. 미국 대선도 어느 쪽이 최후 승자가 될지 알 수 없지만 그나마 시시각각 뭔가라도 던져주는 곳은 유튜브밖에 없기 때문이다. 요즘 속된 말로 영혼이 털려버리는 느낌이라고나 해야겠다./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 한국화가

2021-01-14

소를 생각한다

나는 소에 관해 얼마나 알고 있나?어렸을 때 외할머니 댁은 나의 풍요로운 기억의 원천이다. ‘차부’에서 내려 고개를 하나 건너가면 나오는 첫 번째 집 외갓집엔 없는 짐승이 없었다. 소를 키우고 돼지를 키웠다. 뒤란에는 닭장도 있고 토끼장도 있었다. 그때 외할머니 댁에 사는 소는 누런 황소였다. 아침이면 부엌에서 소 여물을 쑤는데, 쇠가마에서 김이 무럭무럭 올라오던 광경이 떠오른다.공주 살 때는 아직도 달구지가 다녔다. 행길에 말도 있고 소도 있었는데, 소달구지가 태연히 버스 옆으로 지나다녔고 길에는 소똥이 푸짐한 모양으로 떨어져 있기도 했다. 대전 살 때 소는 이제 흔한 짐승이 아니었지만 내가 사는 동네 건너편에 피혁공장도 있고 뭣보다 도살장이 있어 거기서 소를 잡는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소 잡는 게 무슨 구경거리일 것도 없는데 한번쯤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도 했지만 그 죄 없는 짐승 죽는 거 보러 차마 가지는 못했다.나중에 문단에서 사람들을 여럿 사귀었는데 그중에는 고흥이 고향인 작가 전성태도 있었다. 그가 ‘소를 줍다’라는 소설을 썼는데, 소를 못 가진 집에서 자란 아이가 홍수에 떠내려온 소를 기르다 아버지가 주인 찾아 주는 바람에 애닯아 하는 얘기였다. 지금 이 소설은 중학생들 보는 교과서에도 나온다.좀 지내다 보니, 시 평론도 하게 됐는데, 이시영 시인이 뭐라 하는 제목의 시를 쓰셨다. 정육점 주인이 육괴를 이리저리 다 처리하고 쉬는 이야기를 담았는데, 한 사람이 살기 위해 고기를 늘 다루어야 하는 생활의 정경이 자못 안쓰럽고도 역설적으로 평화롭게 다가왔던 기억이 있다. 몇 년 전에는 백무산 시인이 소를 잡는 광경을 본 이야기를 시로 담아 읽었는데, 그 처참한 광경을 담담히 서술해 놓은 것이, 시가 보일 수 있는 한 진경을 그려놓은 것 같아 여러번 되풀이 음미해 보기도 했다.‘옛날’ 성실하고도 고독해 보이는 작가 황순원의 장편소설 가운데 ‘일월’이라는 것이 있다. 백정 집안의 피를 받고 태어난 한 인텔리 청년이 자신의 가문의 ‘비밀’에 정신적인 압박을 느끼는 이야기였다. 6·25 전쟁은 한국 사회에서 백정 계급을 최종적으로 해체시킨 역사적 사변이었을 텐데, 바로 그 뒷 이야기를 그린 것이라 해도 좋았다. 그리고 그것은 일본 작가 시마자키 도손이 쓴 ‘파계’의 ‘비밀’과 소 잡는 풍경을 이어받은 것이었다.소는 말없이, 최후까지, 남김없이 주는 희생일 것이다. 소를 생각하다 보니, 올 한 해는 나보다 남을 위하는 삶을 살아봐야 하겠다고 생각하게 된다./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 한국화가

2021-01-07

서명

요즘 세상 돌아가는 일 생각하면 모든 게 허망하다는 생각 떨쳐 버리기 힘들다.정의라는 말은 이제 정의가 아닌 것을 가리키는 말, 어느 패를 지지하는 용어가 되었다. 정의를 구현한다는 것은 무슨 민정당 시절 어법 같은 느낌을 준다.진보라는 말처럼 터무니 없는 표어는 없다. 자유 없는 땅의 인권조차 문제 삼지 않는 진보가 무슨 진보며 유토피아란 말이냐.애국이란 말처럼 쉽게 더럽혀지는 말도 없다. 옛날에는 애국학생이란 말이 그렇게도 유행했다. 요즘에는 애국시민, 애국보수 등으로 말이 새끼를 쳤다. 서로 다른 극은 통한다는 것을 입증한다.시절이 이렇다 보니, 서명처럼 부질없는 행위도 없다. 어느 날 자고 일어나 654라는 숫자를 인터넷 화면에서 발견한다. 성직자들도, 교수들도 이 진흙탕 싸움에 이름을 걸었댔다. 이번에는 작가들이다.지금 벌어지는 일에 무슨 근본적인, 중차대한 함의가 있었던가를 다시 생각한다. 어딘가를 개혁하는 일이 그렇게도 중요한 일이었던가. 다른 한편에서는 문제가 거기 있지 않다고들 난리가 났다. 그럴듯한 명분으로 치부를 가리려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다. 일단 벌이는 모양부터 안 좋다고들도 한다.지난 정부 때 억울했던 일이 생각난다. 어느날 SBS 8시 뉴스에 내 이름이 버젓이 블랙리스트 명단에 올랐다.이름하여, 제주 미 해군기지 건설 반대, 성주 사드 배치에 반대 등에 서명을 했다는 것이었다. 정말 그렇다면 내 손에 장을 지져야겠다. 나는 미국이며 중국의 국제 군사전략 같은 것을 둘러싸고 어떤 의사도 표명해 본적 없다. 하물며 서명이라니 말이다.뭔가 불온해 보이는 자를 처리하는 방법일 것이다. 옛날에 작가 이상은 일본에 갔다 거기서 불령선인으로 몰렸다. 경찰에 잡혀 들어가 차가운 유치장에 갇혀 죽게 되어서야 풀려났다. 그가 세상 떠날 때 병원에서 결핵성 뇌매독이라 판정했다. 하지만 그것은 불령선인에게 억지로 뒤집어씌운 병명일 가능성이 높다.이름은 귀한 것이라 생각한다. 이돈화의 ‘천도교 창건사’에 동학 때 일어난 사람들 이름이 몇 장에 걸쳐 빼곡하게 적혀 있다. 오로지 이름 석 자가 그네들의 삶과 투쟁과 죽음을 대변할 뿐이다. 거기 그 책에 그네들의 이름이 적혀 있는 것으로, 모든 것이다.작가는 저마다 자기 한 세상을 여는 사람이다. 남의 세상 여는 데 따라다니는 사람도 아니요, 시간 지나면 헛될 싸움에 매달릴 것도 아니다.왜들 말리지 않는지? 힘든 백성들 지치고 병들어 가는 그 모든 것 다 안 보고 무엇에 매달려 싸움을 벌이는지?남정현 선생이 돌아가셨다는 부고. 인생은 덧없고 작가로 살기 어렵다.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 한국화가

2020-12-30

코로나 속에서 살아남기

며칠 전 충격적인 뉴스 하나가 전달되었다. 김기덕 영화감독이 라트비아에서 코로나로 세상을 떠났다는 것이었다. 이제 나이 육십이라 하는데, 증세가 나타난 지 불과 며칠 만에 유명을 달리했다고 한다.나는 그의 영화 스타일을 전혀 좋아하지 않았지만 ‘피에타’만큼은 이 ‘철공장’ 돈 세상에서 ‘어머니의 사랑’이라는 전통적 해법을 일신하여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했다고 생각한다. 그런 그가 ‘한갓’ 바이러스로 인해 갑자기 불귀의 객이 된 것이다.코로나가 지금 하루 확진자 일천 명을 넘어선지 벌써 며칠 되었다. ‘K-방역’이 바야흐로 호된 시험대 위에 올랐고, 방역 단계를 올림으로써 가뜩이나 어려운 사람들 살림은 더욱 압박을 받게 됐다.학교에서도 수시면접을 전후로 하여 이틀씩 학과가 있는 건물 출입을 완전히 차단한다고 하여 일이 바쁜데도 결국 오늘 학교에 갈 수 없는 상태다. 며칠 전에 학과 교수들끼리 자신의 연구를 소개하고 토론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몇 사람만 마스크를 끼고 만났고 다른 사람들은 전부 줌(Zoom)으로 참여했다. ‘문학의 오늘’ 잡지 편집기획 회의도 바로 어제 화상회의로 진행했고 곧이어 있었던 학교의 BK21 관련 회의도 비대면이었다. 학과장실 비품을 바꾸는 문제로 분당에서까지 손님이 오시는데, 그것도 날을 다시 고르느라 애를 먹기도 했다.어제는 엄동설한이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서울은 꽁꽁 얼어붙어 버렸다. 바이러스도 그러면 좋겠지만 이건 무슨 일인지 추울수록 감염이 더 쉬워진다고도 한다. 강력한 방역 대책에, 어떤 두려움으로 서울은 아홉시만 되어도 벌써 시골 마을처럼 조용하다.이런 와중에도 정치는 위축되기는커녕 더욱 살아 난리가 난 듯하다. 미국의 대통령 선거는 경합주에서 주지사와 의회가 각각 따로 선거인단을 내고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검찰총장 징계 문제에 이목이 집중되어 있다. 이 둘 다 사람살이하고는 직접 관련 없는 듯도 한데,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 표면상의 난리 밑에서는 코로나를 맞은 사람살이를 어디로 끌고 가야 하는가에 대한 첨예한 입장 대립이 꿈틀거리고 있다.코로나도 코로나지만 요즘처럼 자기를 지키는 일이 어려운 때도 없었다는 생각이다. 몸도 몸이지만 정신의 ‘나다움’을 지키는 일이 큰일이다. 정치라는 남의 말에 온통 정신을 빼앗기는 사이에 세월은 화살처럼 흐른다.모두들 안녕하시라. 무서운 염병에, 먹고살기 어려운 시절, 어지러운 정치에 휘둘리지 말고 모두들 잘 견뎌 살아남으시라./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 한국화가

2020-12-16

배운다는 것

한강 다리를 건너며 오늘은 강물이 험해 보인다고 생각했다. 가로등조차 하나도 안 켜놓은 것 같다고 느꼈다. 멀리 보이는 말없는 나무들도 어지러운 세상을 근심하고 있다.내 몸이 내 몸 같지 않다고, 내 정신이 내 정신 같지 않다고 생각하며, 그래도 내일은 대전에 부모님 뵈러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하며, 장난 삼아 산 플래시로 어두운 산숲을 비추어 본다.마음 속으로 그 ‘민주주의’라는 것이 나를 아주 망쳐 놓았다고 생각한다. 차라리 모르는 것이 나았다고, 쓸데 없는 가치의식에, 목표에, 측정에, 비판에, 분노에, 이율배반과 환멸에, 나는 그렇지 않아도 망가진 몸과 마음 상처를 덧나게 하고 있다.어두운 방에 작은 불을 켜고 가끔은 들춰 보리라 생각한 명호 형의 두꺼운 책을 심심파적 삼아, 잠도 오지 않으니까 편다. 명호 형은 참 큰 사람이다. 그는 어떻게 그렇게 ‘논어’를 새로 읽을 뜻을 세울 수 있었던 것일까?하, 배운다는 것은 무엇이냐? 하고 명호 형이 풀이해 놓은 것을 곰곰히 다시 생각해서 정리해 본다.배운다는 것은 그러니까 첫째, 그냥 지식, 정보의 존재를 아는 것이 아니요, 그것을 익히는 것, 습관으로, 실천으로 만드는 것이다. 알고 행동은 다르게 하는 겉배움은 배움이 아니요, 알았으니 행동으로 옮기는 속배움이라야 한다. 둘째, 배우는 것은 즐거운 것이다. 나처럼 함께 길 가는 친구를 알아 그가 찾아와 즐거운 것이요, 이 배움 때문에 설혹 가난해도 원망할 것 없이 즐겁게 받아들일 줄 아는 것, 내 스스로를 닦으니 내실 있어 기쁜 것이다. 셋째, 또 뭐냐, 그러니까 배움이란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지 않는 것, 그러니까 세상에는 나보다 나은 사람, 훌륭한 사람 천지요, 나만 못하다고 여겨지는 사람도 실은 그렇지 않을 수 있음을 아는 것이다. 넷째, 배운다는 것은 늘 배움의 태도를 잃지 않기에, 이것은 내 생각이지만 쓸데없이 무겁지도, 위압스럽지도 않은 것이고, 뭣보다 고루해지지 않고 나날이 스스로 새로워지는 것이다. 그것을 가리켜 절차탁마한다고도 할 수 있다.명호 형은 공자를 가리켜 기철학자라 했다. 주리론, 주기론 하는 기철학이 아니요, ‘나’를 다스리는 뜻과 방법을 알고자 하는, ‘나’ 철학자라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실제로 온전한 존재가 되는 것이 중차대한 문제니,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성낼 여가도, 여력도 없다. 다만 ‘나’를 위해 거울이 될 남을 알지 못할 것이 두려운 것이다.하, 배운다는 것이 이리도 무서운 것이라니, 나는 멀어도 한참이나 먼 것이다. 먼저 세상의 근심을 밀어내고 내 스스로를 돌아보기로 한다. 다시 살아날 수 있다면, 살아갈 수 있다면, 지난 잘못들은 악몽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 한국화가

2020-12-09

길이 인간을 넓히지 않고 인간이 길을 넓힌다

소백산 중에서 십수 년 만에 만난 명호 형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어째서 형은 서울을 등지고 형수님과 공부 잘하는 아들딸을 속세에 남겨두고 홀로 깊은 산중으로 들어갔던 것일까? 밤하늘 별빛 아래서 형은 말했다. 세상도 나를 찾을 수 없고 나도 세상을 찾을 수 없는 곳으로 가고 싶었노라고.그로부터 이십 하고도 사 년이라. 형이 산중에서 삭혀야 했던 것은 세상에 대한 원한 같은 것이었던가? 자기 자신의 내부로부터 식을 줄 모르고 솟아오르는 세상에 대한 열정 같은 것이었나?내가 조금만 더 형에게 성실할 수 있었다면 나는 형이 수 년 전에 ‘공자의 시작에 서다’라는 책을 보내오셨을 때 서가의 한가운데 꽂아 놓지만 말고 부지런히는 말고라도 하루하루 음미는 해보았어야 마땅했을 것이다.뒤늦게 읽은 서문에서 형은 공자를 가리켜 혁명가라고 했다. 그리고 자공이 그 깊은 마음을 담아 ‘논어’를 펴냈지만 편집 과정에서 그 안에는 증삼 같은 이의 ‘가짜’ 논리도 끼어든 나머지 하나의 일관된 사상만으로 이루어진 체계는 되지 못했다고도 했다. 왜 공자의 ‘시작’에 서야 하는가? 그것은 그를 잘못 읽음으로써 이 동양 세계가, 그 중요한 부분 한국이라는 사회가 잘못 이끌어져 왔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그러니까 형은 공자를 통하여 남들이 아직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그 자신의 혁명을 시도하고 있는 셈이었다. 이 혁명을 위해 또 ‘논어’를 읽는 그 자신만의 독법을 제시하고자 했다. 즉, 형은 ‘논어’는 명문장들의 집합으로 읽으면 안 되고 공자와 그의 제자들의 치열한 대화와 행위의 장으로서, 연극 무대를 바라보듯 읽어야 한다고 말한 것이다. 그래야만 그 실체에 조금이라도 더 가깝게 다가갈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형이 그토록 자공을 높게 평가하는 것은, ‘논어’의 그 전체적인 흐름에 다른 제자들과 함께 스승의 3년상을 치르고도 모자라 홀로 다시 3년상을 치렀다는 그의 성인(聖人)다운 면모가 아로새겨져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형은 산중에 오래 계신 분답게 오는 사람 반기고 떠나는 사람 소매 붙잡지 않는 도인의 경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이제 내려오실 때도 되었건만 또 형 자신도 새로운 삶이 이제는 필요한지 모르겠다고 생각하시면서도 뜻대로 되지 않는 세월이었다.나 홀로 하산하여 서울로 와 형의 ‘공자의 시작에 서다’를 진지하게 편다. 거기 ‘길이 인간을 넓히지 않고 인간이 길을 넓힌다’는 말이 써 있다. 형이야말로 길을 넓히고 싶었던 것이리라. 나는 그 넓혀진 길을 조금이라도 뒤따라 걸어봐야 하겠다./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 한국화가

2020-12-02

대학동창과 소백산 기행

대학 친구는 오래 가기 어렵다고들 한다. 철들고 보탬 되고 안 되고를 다 아는 때 만나니까. 그래도 안 그렇다고 생각될 때가 많다.언론사에서 일하는 K가 소백산에를 가자고 한 게 벌써 두어달 전이다. 약속은 시원스럽게 잡았지만 막상 날이 닥치니 앞뒤로 일정이 꽉 차 버렸다. 그래도 이번만은 가야겠다고, 아닌 말로 이를 악문다.풍기 소백산 산속에 대학 동창 하나가 굴을 파고 앉았다. 쑥마늘 먹고 사람 되겠다는 단군신화도 아니고, ‘논어’며 ‘예기’며 하는 한문 고전 공부에 어언 24년 세월이 흘렀다. 나나 K와는 학번은 같은데 나이는 물경 13년이나 많은, 시청 공무원 하다 늦깎이로 대학 들어왔던 형님.옛날엔 참 가난하기도 했다. 나도 보증금 50에 월 5만원 월셋집에 자취까지 했지만 이 형님은 더 가난해서 남들 대학 갈 때 엄두도 못 냈었다 했다. 대학 다닐 때도 남 모르게 용산역 앞에서 감자를 팔았다던가 하는 이야기가 내 기억에 희미하게 남아 있다.지금 아파트 단지들에 재개발이 거의 다 된 봉천동, 신림동, 노량진 일대에 판잣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산윗집은 물을 대려면 펌프질을 하고 ‘푸세식’ 변소가 일반인 시절이었다.그렇게 가난했는데도 그는 학교 다닐 때부터 공부를 즐겼다. 남들 놀고 데모할 때 그는 공부가 목말라 늦게 대학 온 사람답게 강의를 듣고 레포트를 길게 내는 버릇을 들였다.그래도 졸업 하고는 사회로 나가야 했다. 곧 학원 강사가 벌이가 되는 시절이 닥쳤고 그에게도 ‘황금기’가 펼쳐졌다. 대학 시절 ‘말년’에 결혼을 한 그에게는 부양해야 할 식구들이 있었다. 그때쯤에야 먹고 살 수 있었건만 그는 오히려 서울 강남 한복판에 사무실을 얻어 서당을 열었다. 스스로 한문을 공부하며 돈을 받지 않고 가르치기 시작한 것.K는 풍기 소수서원 주차장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안동이 고향인 그는 처음엔 공대에 들어갔다 다시 시험을 보고 국문과로 들어왔다. 집에서는 외무고시를 본다 하고 학교 앞에 방을 하나 얻었지만 고시는 고사하고 밤낮으로 나같은 한량들에게 시달리기 일쑤였다. 나보다 한두 살 많았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상대해 주던 그는 아버님을 일찍 여위었는데도 낙천가의 기질을 잃어버리지 않았다.소백산 산중에서는 이날 밤 사내 셋이서 밤하늘 별을 헤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형님의 백구 네 마리가 옆에 다가와 앉아 산속의 웃음소리에 귀를 있었다.속세를 떠나 이렇게 깊은 산속에서 홀로 공부를 계속하는 형님과 나를 여기로까지 이끌고 온 K. 우리는 이날 밤 세월을 잊어버린 옛날 사람들, 친구들이었다. ‘유붕이 자원방래하니 불역낙호아(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 한국화가

2020-11-25

정치적 올바름에 관하여

요즘 젊은 사람들 비평의 핵심 개념 가운데 하나가 이른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PC)이라고들 한다.그러니까 이 사조는 1980년대 미국에서 먼저 쓰기 시작한 것이다. 또 이 말은 말의 표현, 용어 사용 같은 언어적 문제에 먼저 적용되어 사용된 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하지만 요즘 한국 사회 또는 비평계에서 이 말은 그런 시작 단계의 의미에서 상당히 ‘멀어져’ “전통적 관념을 교정하기 위해 새로운 규범을 따르는 태도” 전반을 가리키는 말로 변모되었다고 한다. 또 그러면서 다문화주의, 생태주의, 페미니즘 같이 첨예한 문제를 둘러싼 비평적 경향을 ‘반드시’ 수용할 필요가 있다는, 다소 ‘강제적인’ 가치관념을 가진 입장들을 두루 사용하는 말로도 사용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최근에 프랑스에서 이슬람교, 알라, 마호메트를 풍자하는 수업 활동을 열었다가 난데없이 ‘광신’에 가까운 18세 청년에 의해 교사가 참수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여기서만 사태가 끝나지 않고 또 바다를 건너와 여러 사람의 인명을 살상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여기에 다시 말레이시아의 오래된 지도자 마하티르 모하맛은 얼핏 보편적 휴머니즘에 어긋나는 듯한 발언으로 논란이 일고 있기도 하다.그런가 하면 태평양 바다 건너 미국에서는 지금 새로운 대통령 선거가 벌어져 트럼프와 바이든이 ‘생사를 건’ 경쟁을 벌이다 마침내 바이든이 어렵게 승리를 거두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공화당과 민주당은 서로 자신들이 옳다고, 상대방이 미국사의 재앙이라도 되는 듯 난리법석을 피웠지만, 나 자신의 정치적 선호와는 별도로 과연 어느 쪽이 옳은가를 지금 간단히 판별할 수만은 없다고도 생각한다.서로 대립하는 두 세력이 커다란 힘들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또 그들 모두가 역사의 진리를 대변하고 있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해서, 그들 중 어느 한 쪽은 반드시 ‘정치적 올바름’을 담보하고 있다고는 말할 수 없는 것이다.더 나아가 나는 이 ‘정치적 올바름’의 지나친 요구가 한편으로는 사회적 교류와 교섭, 타협을 어렵게 하고 유머라는 점이지대를 소멸시키며 시민들을 모범답안 내기 쪽으로 몰아붙일 위험성도 없지 않다고 생각한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들만의 군림, 그들에 의한 통치만큼 위험한 것도 없지 않은 것이다.사회는 확실히 더 나아져야 하고 우리가 더 편견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를 위해서는 정치적 올바름에 대해 의식하지 않을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관대해지는 것, 적대하지 않는 것,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공동체적 유대감일 것이다. /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 한국화가

2020-11-18

중국 유학생을 만나다

요즘 학생들을 대면으로 만나지 못하다 보니 선생 역할 제대로 못한다는 느낌이 부쩍 강해졌다. 지난 번에는 학년별 학생들도 만나고 동아리 관계 있는 학생들도 만났는데, 다행스럽다, 아직 학생들 살아 있구나 하는 느낌이 좋았다.내친 김에 오랫동안 방치해 두다시피 한 유학생들을 만나보기로 했다. 먼저 중국에서 온 대학원생들 만나고 다음에는 다른 지역에서 온 학생들도 만날 계획이다.코로나19 때문에 방학 중 건너갔다 돌아오는데 어려움 겪은 학생들이 많았고, 어떤 학생들은 고향에 돌아가 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나는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무사한 게 다행스럽다. 한국이 낯설지만 견딜만 하기 바라고, BTS 같은 일들로 마음에 부담을 짊어지지 않기 바란다. 어디들 공부는 어떻게들 하시나? 하면 일제시대 여성 작가 이선희를 어렵게 쓰는 학생도 있고, ‘겨울여자’, ‘아메리카’의 작가 조해일을 읽은 학생도 있다. 강석경을 죄다 읽고 분석한 논문을 쓴 후 박사과정에서 이번에는 박경리에 도전장을 내민 학생, 아직 공부 주제를 잡기에는 학기가 안 찬 학생, 중국의 지도교수가 내 학생이었기도 한, 2대째 내게 지도를 받는 학생도 있다.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나의 얘기는 어느새 1996년 가을 혼자 인천에서 배를 타고 엔진으로 건너가던 과거의 일로 들어간다. 그때 나는 인생이 더 이상 살아갈 수 없을 것 같다고 느낄 만큼 괴로웠고 어떻게든 한국어가 들리지 않는 곳으로 떠나고 싶었다. 미리 비자를 받아두지 않고도 당장 외국으로 떠날 수 있는 방법은 그때 서울 신사동에 있던 진천 페리호 사무실에서 배의 티켓을 사는 길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중국은 나의 첫 외국여행지였다. 엔진에서 베이징으로 들어간 다음다음날 천안문 앞 맥도날드 체인점에 들어가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외국인들에 둘러싸인, 한국어가 하나도 들리지 않는 자유를 맛보았다.맥도날드에서 나오니 날은 어느새 어둑어둑해졌다. 그냥 하릴없이 거리를 걷는데 바로 라오사 차점이라는 상호가 보였다. 중국 작가 ‘노사’를 기념하는 찻집, 차만 팔지는 않고 다른 음식도 팔고 전통 민속 공연 프로그램도 펼치는 곳. 당시 돈 50위안을 내고 홀 맨 뒷자리 테이블에 앉아 사람들 머리 사이로 중국 노래와 연기와 묘기를 보는데, 낯선 타향에서 홀로 만끽하는 외로움은 그후에 어디에서도 비할 바가 없었다. 우리 중국 유학생들도 한 사람 한 사람 외롭고 어렵지 않은 학생들이 없으리라.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조그만 공부거리라도 가지고 얼굴 한 번 더 보는 일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코로나는 아직 가시지 않았지만 ‘우리’는 그래도 견딜 수 있을 것 같았다./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 한국화가

2020-11-04

대면으로 학생들을 만나다

오죽하면 이런 제목을 붙이랴.대학 학과의 선생님 셋과 학생들 일곱이 마주 앉아 저녁 식사를 하는데, 이런 풍경 볼 수 없었던 게 하루이틀 아니었다.코로나19 대응이 1단계로 떨어졌다 해서 모처럼 학과의 구성원들이 함께 모여 무언가 머리를 맞대보기로 했다. 매년 하던 답사도 없어지고 한글날 행사 같은 것도 축소되고 개강이다, 폐강이다 하는 모임도 사라지다시피 했다. 이런 상황을 헤쳐 나갈 뭔가 방법이 없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학과의 학생들을 한꺼번에 다 만날 수는 없다. 현재 과대표, 전임 과대표, 동아리 대표들, 각 학년 대표들에게 이야기를 들어보자. 꼭 대표가 아니어도 되고, 학과의 여러 단위를 표현해 줄 학생들이면 좋다. 만나 요즘 상황이 어떤지 뭐가 필요한 지 들어보기로 하자. 대략 이런 생각이었다. ‘정육식당’이라고 일종 실비식당에 둘러들 앉았다. 전임 과대표는 1학기 때 스페인에 어학연수를 가서 스페인 코로나를 직접 겪었다. 창작 동아리 ‘창문’의 일원으로 나온 학생은 대학원 진학을 계획 중인데 부전공으로 중문학을 한다. 올해 과대표는 코로나 덕분에 정상적인 학생 활동은 엄두도 못냈단다. 제주에서 올해 대학에 입학한 새내기 학생을 ‘줌’ 아닌 식당에서 대면으로 만나기는 처음이다. 지금 기숙사에서 생활한다고 한다. 1학년 시절은 얼마나 빛나던가? 그런 시기를 갇혀 지낸다니 딱하디 딱할 따름이다. 언론정보학부 학생으로 국문학을 복수전공하는 학생, 국문과반 ‘출신’으로 서양사학과에 진입한 학생, 중학생 때까지 그림을 전공하고 싶었는데 이제는 심화전공 코스를 택할 정도로 국문학에 빠져 버렸다는 학생 등등.얼굴들, 어깨들이 사랑스럽다. 귀해 보인다. 여느 때 같으면 캠퍼스에 ‘차고 넘치던’ 학생들 아니던가. 하건만, 이번 학기도 1학기 때처럼 캠퍼스는 썰렁, 국문과 건물 강의실 있는 층들은 고적하기만 하다. 대면이니, 비대면이니, 얼마나 낯선 한자어들이던가. 그 어색한 말이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다. 선생님과 학생은 마주 앉아야 하는 법인데, 요즘에는 ‘줌’으로 화면도 안 켜놓고 이야기를 듣는지 안 듣는지 모를 지경이다.어떻게 해야 하나? 하고 아이디어를 듣자 하니, 그렇잖아도 불려 나온 게 아니라 다들 제발로, 반기면서 나온 학생들이라 한다. 그만큼 할 얘기들이 많았다는 뜻이다. 코로나 시절을 슬기롭게 넘길, 학생들의 자발적 학습 프로그램들을 만들어 보자고 얘기들 한다. 과연 잘 될까?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도 뭔가 살아있음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식당을 나오자 ‘샤로수’ 길이라 불리는 이 대학촌 골목은 아직도 어딘지 모르게 쓸쓸하기만 하다. 어서 빨리, 학생들 넘쳐나는 골목 거리가 보고 싶다. 내년 봄이면? 아니 가을이라도, 겨울이라도, 포스트 코로나 시절 만나보고 싶다./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 한국화가

2020-10-21

책은 이제 어디에 쓰나

며칠 전 나의 파주 책 ‘공장’에서는 큰 행사가 있었다. 새로 책이 들어온 것이다.파주 책 공장이라 하니 그 유명한 파주 출판단지 얘기인가 하시겠지만 그것과는 거리 멀다.출판단지에서도 줄잡아 사십 분은 더 들어갈 곰쓸개 웅담리에 서울에 있던 책을 옮겨 놓은 것이다.원래는 식품공장으로 쓰던 곳이었다. 거기 꽉 찬 기계며 비품들을 비워내고 책을 정리해 두려고 만든 새 공간이 바로 책 공장 그것이다. 산뜻, 깨끗하면 좋겠지만 아직도 공장 먼지를 털어내지 못한, 누추하기 짝이 없는 곳. 여기에 우체국 박스로 60개 넘는 책들이 새로 들어왔다. 전날부터 부산에서 책을 트럭 한가득 싣고 오시는 분과 시간을 맞추어 두었다. 아침부터 불광동에서 파주를 향해 출발, 문발리에서 잠깐 다른 일 보고 올라오는 차보다 늦을세라 종종걸음을 쳤다. 가면서 전화해 보니 아직 신갈쯤 오셨단다. 거기서 오려면 서울을 에둘러서 한 시간은 더 있어야 한다. 비로소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이윽고 차가 오는데 1톤 트럭에 책 박스가 그득히 실렸다. 곧 또 부산까지 내려가야 한다고 두 분이 서둘러 짐을 부리는데 제법 큰 우체국 박스가 공장 바닥에 두 줄로 길게 늘어섰다. 이 많은 책을 다 어떻게 하나? 원주인이 남기신 책들 앞에서 앞으로 정리할 걱정이 태산 같다. 아무려나 문방칼과 가위를 가져다 몇 박스 개봉을 해본다. 나와 약 십 년은 연배 차이가 있으셨건만 당신의 지적 ‘재산’은 놀라울 정도로 나의 것과 같다. 많은 책들이 이미 내가 갖고 있던 책들과 겹쳐 그분과 나의 공동의 정신을 가리키고 있다.옛날부터 전해져 오는 말로, 옛날 이야기를 좋아하면 가난하게 된다던가 했다. 오늘 여기 하나 덧붙여 책을 좋아하면 가난을 면키 어렵다 할 것이다. 얼마나 귀한 책인가. 옛부터 사람들은 책을 숭상했으니 그 속에 든 온갖 것이 사람의 정신을 살찌게 해준다 믿었다. 이런 책의 ‘위의’가 무너져내리는 오늘이다. 묵직한‘물성’이 환대받던 시절은 갔다. 여기저기 처치 곤란이라는 투정들이 많다. 젊었을 때는 책을 그렇게 좋아하던 사람들도 차차 나이가 참에 책의 부피와 무게를 감당하기 힘들어 한다. 급기야 학교를 그만두거나 새 집으로 이사라도 할 량이면 어떻게든 한꺼번에 처분하고 싶어진다. 받을 곳도, 받을 사람도 없어 수소문이라도 할 지경이다. 그나마 좋은 책은 가려 갖고 넘기려 하니 누군들 반기워할 수만도 없다.책이 천덕꾸러기가 된 시대에 나는 왜 아직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나? 이 많은 책들은 나중에 어떤 처분을 받으려나? 어느덧 남은 날이 살아온 날보다 훨씬 적을 지경이다. 이 책들의 쓰임을 위해 없는 지혜를 짜내야 할 판이다./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 한국화가

2020-10-14

트럼프 씨, 코로나에 걸렸다 살아나다!

미국 대통령 트럼프 씨가 ‘드디어’ 코로나에 걸렸다 퇴원했다는 뉴스가 티비를 떠들썩하게 장식하고 있다.의료진은 그가 멀쩡하다고 했지만, 입원하기 전에 산소호흡기를 했다는 둥, 앞으로 48시간이 고비라는 둥 하는 얘기들도 있었으니 결코 안심할 수만은 없었던 모양이다.더구나 74세 고령에 비만도 있어 고위험군이라 하지 않았던가. 미국 국민이 백만 명 넘게 감염에 이십만 명 넘게 사망한 코로나가 그마저 덮쳤으니 예삿일은 아니었을 것이다.사실, 정치적인 ‘입장’ 같은 것을 따져 보면 트럼프 씨를 좋아할 일은 없을 것도 같다. 대통령 하기 전부터 유럽에서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고 미국도 지식인들은 많이들 한탄을 했다고 한다.그런데 미국 백인 남성들, 부유층은 그를 상당히 지지한다던가? 또 그가 코로나 걸렸다는 뉴스 전까지만 해도 이번 선거도 알 수 없다는 얘기들도 심심찮게 들렸다. 지금은 그가 재선되기는 쉽지 않은 모양새지만. 하건만, 바이든 민주당 후보는 어쩌면 그렇게 재미도 없어 보이는지. 일점 그에 대한 어떤 흥미도 안 생기는 것인지. 항간에는 그가 또 친중파라는 분류법을 구사하는 사람들도 많고.요즘 왜 그렇게 친중파니, 친북파니, 친미파니, 친일파니 하는 소리들이 많은지, 구한말 정국이 따로 없는 듯도 하고.코로나 걸리기 전만 해도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 문제로 선거를 끌고 가려고 한 듯 했다. 화웨이가 어떻고, 틱톡이 어떻고, 대만이 어떻고, 바이든이 어떻고 하는 것이 다 그런 맥락이다.그런데 이 중국 문제가 간단치 않은 것이, 트럼프 씨가 이 이슈를 만들기 전까지만 해도 한국 사람들은 중국의 힘에 전전긍긍해야 했다. 수출을 못할까, 남북 문제 헝클어질까, 동북공정에, 일대일로에, 중국의 힘은 무한정 뻗어나갈 것만 같고, 한국은 조공이라도 바쳐야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그런데 갑자기 다시 코로나로 돌아와 버렸다. 트럼프 씨의 발병은 그의 ‘생사’에, 그가 치료제로 무얼 쓰는지에, 미국 대선이 과연 무사히 치러질 것인지에, 사람들 촉각을 곤두세우게 했다. 코로나는 과연 무섭고 전파력 강하고 예측불가능한 질병이라는 것이다.그렇게 허풍선이 같은 데도 어째 밉지만은 않아 보이는 트럼프 씨가 과연 인생 최대의 위기를 넘기고 선거를 무사히 치를 수 있으련지? 바이든에는 관심이 안 가고 트럼프 씨 동정에만 눈과 귀를 기울이는 나는 과연 정치 의식 불분명, 불투명한 사람인 것일까?그런데 요즘 국제정치, 특히 미국의 세계전략, 그 역학이 간단치만은 않다. 각국에서 트럼프 씨를 향한 위로전문들을 선두 다툼 벌이듯 보냈던 것은 또 뭔가? 짙은 안개 속 같은 세상을 꿰뚫어 볼 혜안이 필요한 시대다. 트럼프 씨, 코로나에 걸렸다 살아돌아온 일, 강 건너 불구경하듯 ‘즐길’ 일만은 아니다./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 한국화가

2020-1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