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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평창, 김연아, 존 레논의 `평화`

평창 올림픽이 열렸다. 개막식 공연을 제때 보지 못했다. 대단했다고들 했다. 뒤늦게 찾아보니 1천218개의 드론으로 흰빛 오륜을 허공에 띄우는 멋진 무대였다. 영원한 피겨 챔피언 김연아 씨가 대회 성화에 불을 붙인 것은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그녀는 테크닉과 인내력과 음악과 춤을 고도의 예술로 승화시킨 최고의 명인이었다.평창 올림픽은 평화 올림픽이라고들 한다. 소치 올림픽의 마지막 피겨 갈라 쇼에서 김연아씨는 존 레논(John Lennon, 1940.10.9~1980.12.8.)의 `이매진(imagine)`을 배경음악으로 선택하여 아름답고도 순수한 기원의 연기를 펼쳐 보였다. 감동적이었던 이날의 노래 가사는 이렇다.“천국이 없다고 생각해 보세요…. 우리 아래 지옥도 없고…. 위에는 오직 하늘뿐이죠…. 모든 이들이 오늘만을 위해 살아가죠…. 나라도 없다고 생각해 봐요…. 무엇인가를 위해 죽이거나 죽지도 않고…. 또 그런 종교도 없는…. 모든 이들이 평화롭게 살아가는 삶.”올림픽은 국가 간의 경쟁을 부추기고 큰 나라와 작은 나라의 차별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아왔다. 그러나 김연아 씨의 그날 갈라 쇼는 존 레논의 못다 이룬 상상을, 그 비난 받는 올림픽의 현장에서 새롭게 살려낸 환상적인 예술이었다.유튜브로 김연아 씨의 그날 연기를 새삼스럽게 재생해 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평화는 그 어떤 가치보다 높은 곳에 있노라고.몇 주 전 서울에서 열 명 남짓의 인사들이 어떤 자리에 모여 남북 관계, 북미 관계 등에 관해 환담을 나누었다. 거기서는 이런 이야기들이 오갔다. 지금 한국이 생각하는 북한 문제와 미국이 생각하는 북한 문제는 그 심각성이나 해결 방법에서 완전히 다르다는 것에 모두들 동의했다. 그 다음이 문제였다.만약 미국이 평창 올림픽 이후에 북한을 폭격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과연 전쟁이 일어날 것인가? 서울은 무사할 수 있을 것인가? 북한군의 통신을 무력화시키는 방법이 휴전선에서의 서울에 대한 재래식 포격을 막을 수 있을 것인가? 북한의 반민주적 지배 체제를 종식시키는데 아무 희생도 치를 수 없다고 생각해서 될 것인가?지난 11일 새벽, 포항에서 진도 4.6의 지진이 일어났다. 충격이 컸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전쟁을 견딜 수 있을까? 전쟁은 분명 지진보다 참혹할 텐데 말이다. 북한을 제어하는 것이 극도로 어렵고 우리로 하여금 인내하기 어려운 상황들이 닥친다 해도 증오와 적대와 살상으로 문제를 풀 수는 없다. 평창 올림픽이 끝난 후 3월, 4월의 위기를 어떻게, 슬기롭게 넘길 수 있을지 생각해야 할 때다./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삽화 = 이철진한국화가

2018-02-23

역사를 움직이는 거대한 실체는…

서울 용산역에 큰 쇼핑몰이 있다. 거기 영화관도 있는데 프랜차이즈 극장 중 하나다. 낮 열두시가 채 못된 시간,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이미 흥행이 고비를 훨씬 지나 저점으로 내려간 때다. 1987년이라면 대학 4학년 때다. `1987`영화를 보러가는 것은 그때의 기억으로 되돌아감을 뜻한다. 많은 사람들이 보았고 영화평도 나쁘지 않은데 참 오래 망설였다. 돌아보고 싶지 않은 마음도 컸고, 그보다 영화가 내 자신의 기억을 해칠지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었다.기록이나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두되 허구적 요소를 함께 가진 영화는 늘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해할 수 있다. 영화는 관객을 앉혀 놓아야 한다. 그러려면 스토리 라인이 재밌어야 한다. 역사적 사건은 영화적 스토리를 위해 발생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적당한 가공이 필요할 것이다.`1987`은 젊은 두 죽음이 혁명의 동력이 된 것처럼 묘사하고 있었다. 박종철과 이한열. 내가 아는 한 이한열의 죽음은 6월 10일의 대규모 시위를 직접 자극한 것은 아니었다. 박종철 고문 치사가 축소 은폐되었음이 드러나고 천주교 정의 구현 사제단이 날짜를 `고시`하자 정국은 삼엄하다 못해 꽁꽁 얼어붙었다. 1987년 6월 10일은 빙판 위에 불이 붙을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나는 이한열의 죽음과 수많은 군중이 운집했던 장례식을 똑똑히 기억한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7월의 일이었다. 그의 죽음이 6월 10일을 촉발한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영화 속 스토리와는 달리. 물론, 이한열이 부상을 당한 시점이 6월 10일 혁명의 직접적 자극제가 되지는 못했다는 나의 판단은 다시 검토되어야 할지도 모른다.그보다 더 민감한 문제는 역사를 움직이는 실체는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실존인물 최환 검사, 부검의 황적준 박사, 영등포 교도소의 한재동 교도관 같은, 충분히 알려지지 않은 개인들의 숨은 역할이 민주항쟁을 가능케 했다는 논리를 `1987`은 보여준다. 이는 당시 학생운동을 지배하고 있던 민중사관과는 사뭇 다른 것이다. `1987`은 민중사관을 비판하는 대신 개인들의 중요성을 부각시킨다. 이 개인들은 집합적 개념에서 보면 노동자도, 농민도, 학생도 아니다.물론 그날의 함성 이면에는 군부와 그와 결탁된 독점 자본에 `짓눌려 있던` 민중들, 지식 집단의 고통과 저항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원혼이 된 박종철 군을 위해 부검을 하도록 하고 용기 있게 사실을 사실대로 적어 넣고 이를 세상에 알려 시위를 끌어낸 개인들이 없었다면 6월 10일의 혁명은 일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때 나는 국문과의 과대표, 박종철 군은 언어학과의 과대표였다. 인문대학 각 과의 과대표들은 자주 그의 하숙집에 모여 숙의를 하고 유인물을 나누었다. 그는 그 모임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었지만 그가 `민민투`의 정식 조직원은 아니었을 것이다.삶도, 역사도, 많은 것이 우연에 부쳐진다. 종철 군은 불행히 안타까운 죽음을 맞고 나는 아직 살아 있다. 그러나 나 또한 죽어 그를 만나지 않을 수 없으리라. 삼가 박종철 군의 명복을 빈다./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삽화= 이철진 한국화가

2018-02-09

삶, 우리는 `삶`을 살아내야 한다 다시 삶 자체의 삶으로 돌아오라

경북매일신문은 이달부터 매주 금요일 책마을 지면에 `살며 생각하며`코너를 신설합니다. 이 코너에서는 방민호 서울대 교수의 신변, 문단, 세상에 관한 에세이가 이철진 작가의 삽화와 함께 게재됩니다. 길한 해라는 황금 개띠해 무술년 한해의 바탕이 되는 행복한 삶의 여정이 되시길 바랍니다.정부가 바뀌고 해가 바뀌었다. 북에서는 현송월이라는 여자가 내려왔다. 사법적 처리가 계속되고 있다. 이 격류 속에서 나는 전혀 다른 바뀜을 꿈꾼다.정치가 삶의 근본문제가 아님을 다시 한 번 깨닫고야 말았다. 삶 자체의 문제가 돌아가야 한다. 니체에서 출발한 사람, 그가 마르크스에서 불교를 지나 니체로 다시 회귀하고자 한다. 두 개의 책이 지금 내 앞에 있다. 하나는`니체―그의 사상의 전기`(꿈결, 2017), 다른 하나는 니체의 고전적 저작`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 이 책들을 앞에 놓고 나는 열심히 역사철학에서 삶의 철학으로, 정치의 삶에서 삶 자체의 삶으로 돌아오고자 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눈에 띄는 대로 명문장들을 뽑아보자.“나는 그대들에게 정신의 세 가지 변화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어떻게 하여 정신이 낙타가 되고, 낙타는 사자가 되며, 사자는 마침내 아이가 되는가를.” 니체는 상징적, 비유적으로 쓰는 사람이었다. 이 문장 뜻의 해석은 여러분께 맡긴다.니체는 인간의 창조적 능력을 무엇보다 중히 여겼다. 정신에 의해 억압된 인간성을 회복하고 싶어 했다. “창조하는 자기가 스스로 존경과 경멸, 쾌락과 고통을 창조했다. 창조하는 몸이 자신의 의지의 손으로 삼기 위해 정신을 창조했다.”니체는 파괴자였다. 그는 민족이나 국가를 절대시하는 습벽도 경계했다. “모든 민족은 선과 악에 대해 말하는 혀를 가지고 있으나, 이웃 민족은 그 혀를 이해하지 못한다. 각각의 민족은 관습과 법 안에서 자신의 언어를 만들어 내었던 것이다.” “국가가 없어지는 곳. 그곳을 보라. 형제들이여! 그대들에게 무지개가, 초인으로 이르는 다리가 보이지 않는가?”이`경전`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절은 `자유로운 죽음에 대하여`. “모든 사람들이 죽음을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죽음은 아직도 축제가 되지 못하고 있다. 인간은 가장 아름다운 축제를 벌이는 법을 아직도 배우지 못했다.…. 삶을 완성시키는 자는 희망을 가진 자와 맹세하는 자들에 둘러싸여 승리에 찬 죽음을 맞는다.” 그렇다. 우리는 죽어야 할 운명을 이고 사는 존재. 우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역사도, 정치도 아닌 `삶`을. 그리고 니체는 이런 말을 남겼다.“베푸는 덕이야말로 최고의 덕이다.”/방민호 서울대 국문과 교수/삽화= 이철진 한국화가

2018-02-02

견음(犬音)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마치 세상이 개벽할 것 같은 대선이 끝난 지도 꽤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세상은 달라진 게 없다. 적폐에 어느 편은 졌고, 그리고 반대로 다른 편은 뜬 것뿐. 그리고 그 다른 편이 새로운 적폐가 되어가고 있는 것 정도. 여의도 정치는 예나 지금이나 당리당락에 의한 이전투구의 장이 되고 있고, 안타까운 안전사고도 여전하고, 학생들의 행복지수는 변함없이 OECD 국가 중에서 꼴찌이고, 내 탓이고 아닌 “네 탓이오!”를 외치는 분위기는 더 심해지고 있고, 정말 뭔가 하나 달라 진 것이라고는 눈을 씻고도 찾아 볼 수 없다.그런데 자신들의 성향과 맞지 않은 사람들을 내몬 언론들은 세상이 나아졌다고, 앞으로는 더 좋아질 것이라고 희망고문을 하고 있다. 또 어느 신문은 2017년을 정리하는 한자로 “사악하고 그릇된 것을 깨고 바른 것을 드러낸다”는 의미의 `파사현정(破邪顯正)`을 선정했다. 이것을 지금 나라 돌아가는 이야기에 대입하면 바로 신(新)블랙리스트 사건이요, 여론 조작이다. 현 정부에 대한 암묵적인 지지, 그것이 결코 객관일 수는 없다. 조작(造作)이 되었건 조성(造成)이 되었건 그것은 모두 이현령비현령에 지나지 않는다.우리말에는 동음이의어들이 많다. 때로는 그 말들의 언어유희 작용으로 힘든 사람들을 웃게 하기도 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반대도 많다. 대표적 예가 2016년을 나타내는 말이었다. 병신년(丙申年)! 사람들은 병신이라는 말에 불길함을 느꼈다. 그런데 그 불길함이 현실이 되어버렸다. 그 때의 불길함을 예언했던 사람들 입에서 2018년에 대한 더 험한 말들이 나오고 있다. 2018년 무술년(戊戌年) 황금 개띠 해! 사람들은 말한다. “아니래도 개판인 사회가 더 개판이 되겠구나!”라고.필자는 2017년을 시작하는 칼럼으로 “AI도 막지 못할 새벽이여!”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 그리고 이육사 시인의 시 `광야`를 인용했다. 그래도 2017년을 시작 할 때는 희망의 닭 우는 소리라도 들렸다. 그런데 지금 이 나라에는 촛불에 아부(阿附)하는 개 짓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 누군가는 촛불이 우리 사회의 어둠을 몰아내고 새로운 역사를 열었다고 말한다. 그런데 왜 우리나라는 아직도 칠흑 같은 어두운 밤일까. 물론 다는 아니겠지만 촛불에 눈이 먼 사람들에게는 다른 것은 보이지 않는다. 마치 그들의 모습은 특정 종교를 믿는 신도 같다. 그 중심에는 언제나 정치인들이 있다. 정치인들은 종교의 원리를 너무나 잘 안다. 그래서 자신들을 믿는 신도를 열광케 할 이야기를 계속 생산한다. 그 대표적인 이야기가 `지붕 푸른 집`에서 내보내는 영상들이다.새로운 해가 밝았다지만 이렇게까지 마음이 움직이지 않은 적은 없었다. 예전 같으면 해넘이와 해맞이의 현장에 직접 가진 못하더라도 TV를 보면서라도 보내는 아쉬움과 맞이하는 기쁨을 느꼈다. 그런데 올해는 그런 마음이 전혀 없다. 필자만 그런가 했더니 정말 많은 사람들이 새해에 대한 기대 같은 것은 없다고 한다. 그리고 말했다. “벌써 1년 갔다. 이제 얼마 안 남았다. 공무원 더 늘린다고 다음 선거에서 그들이 모두 자기들을 찍어 줄 거라 착각하고 있는데, 웃기지 말라 그래라.”귀를 솔깃하게 하는 신년사들이 남발되고 있다. 다음은 교육부 장관의 신년사다. “교육부는 국민 여러분과 함께 `모든 아이를 우리 모두가 함께 키우는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하여 `책임, 미래, 소통`의 세 가지 핵심을 바르게 정립하고자 합니다.” 이 신년사가 허언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데 필자는 안다. 그 `모든 아이`에 대안학교 학생들은 빠졌다는 것을.

2018-01-04

웃픈 한국, 찬행봄!

▲ 이주형 시인·산자연중학교 교사신조어들이 많이 생긴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 변화가 심하다는 뜻이다. 신조어들만 봐도 그 사회의 변화 방향, 사회 이슈를 알 수 있다. 이태백(이십대 태반이 백수), 장미족(장기간 미취업자), 청년실신(청년실업이 심하다 보니 학자금 대출도 못 갚는 신용불량자로 전락한다) 등을 통해 불안한 청년 고용시장의 모습을 알 수 있다. 반퇴(半退·은퇴 이후에도 또 다시 일자리를 찾아 나서는 경우가 많아 온전한 은퇴가 아닌 반만 은퇴했다는 뜻)라는 말이 경제 용어처럼 쓰이고 있는데, 이 또한 우리나라 경제가 그만큼 불안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세월호 사건 이후에는 관피아(관료+마피아), 정피아(정치+마피아), 교피아(교육 관료+마피아) 등 마피아가 사회의 모든 곳에 접미사처럼 붙었다. 이들은 그만큼 우리 사회 전반에 부정과 비리가 만연해 있다는 것을 말해 주었다. 부정부패 척결을 위해 관피아 방지법(공직자 윤리법) 등 나름대로 제도적 개선책이 마련되고 있으나 실효성 면에 있어서는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왜냐하면 아직도 관피아와 교피아들이 판을 치고 있으니까.가장 최근에는 `갑질`, `슈퍼 갑질` 등 이 사회가 약육강식의 밀림사회라는 것을 보여주는 단어들이 많은 사람들을 아프게 하고 있다. 민주주의니 평등사회니 하는 말들은 분명 교과서에서나 나오는 말이라는 것을 언론은 국민들에게 각인시켜 주었다. 밀림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갑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언론은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다. 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다는 것을 국민들은 장그래를 통해 배웠다.필자는 `웃프다`는 말을 듣고 우리 사회를 이보다 더 잘 표현한 말은 없다 싶어 큰 탄성을 질렀다. `웃프다`는 `웃기다`와 `슬프다`의 합성어이다. 웃기는데 슬픈 경우는 과연 어떤 경우일까. 멀리서 예를 찾을 필요가 없다.이미 우리는 땅콩 비행기와 백화점 사건을 통해 보았다. 그리고 가장 최근 국회를 통해 `웃프다`의 의미를 확실히 알았다. 정말 한동안 국민들은 청문회라는 것을 보면서 웃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너무나도 큰 슬픔을 느꼈다. 창과 방패, 반대를 위한 반대, 나만 아니면 돼, 신상 털기, 이전투구(泥田鬪狗) 등 국민의 힘을 모조리 빼놓은 블랙 코미디, 이보다 더 웃픈 것이 어디 있을까. 누군가가 말했다. “이 나라에서 청문회를 통과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신생아뿐이다”라고. 정말 웃프다.`웃다`의 의미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기쁘거나 만족스럽거나 우스울 때 얼굴을 활짝 펴거나 소리를 내다`, `같잖게 여기어 경멸하다` 분명 지금 우리 주변에 누군가가 웃고 있다면 그 웃음의 의미는 전자가 아닌 후자일 것이다. 국민을 바보로 만든 사람들에 대한 웃음. 그 웃음이 더 이상 커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런데 위정자들은 지금 국민들이 웃고 있는 웃음의 의미를 알기나 할까.허탈함을 넘어, 허무하기까지 한 웃음은 어느 노래 가사처럼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다. 국민들이 마음껏 웃을 수 있는 날은 언제 올지? 민족 최대 명절 설이라고 하지만 국민들의 표정은 그 어느 해보다 어둡다, 아니 슬프다. 누가 이들을 이토록 슬프게 만들었는가.아직 잔인했던 말의 해인 2014년이 끝나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말 많은 사회에서 언제나 문제는 말인데, 그 말이 아직 끝나지 않고 있다. 국민들은 빨리 말이 가고 행복 가득한 양이 오기를 간전히 기다리고 있다. 말 많은 사회가 아닌, 진정 국민을 행복하게 할 양 많은 사회가 하루빨리 오길 기원한다. 그런데 왜 김영랑 시인의 시가 입속에서 떠나지 않는지.“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 삼백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 모란이 피기까지는 /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부디 올 봄만큼은 찬란한 슬픔의 봄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찬행봄`(찬란한 행복의 봄)이라는 신조어를 기다리며, 국민 여러분 복 많이 받읍시다.

2015-02-18

일상을 떠나 다른 생각과 감정을 받아들이며

▲ 정석수 성요셉복지재단 상임이사·신부일상을 떠나 바다가 호수처럼 보이는 아름다운 교육관에서 피정을 했다. 첫날 창문 열듯이 마음의 문도 열리기를 자연의 바람이 방을 통과하듯이 내 마음도 새로운 정신으로 소통되기를 침묵으로 머물렀다. 모든 것에 마음을 열어 놓고 기다리면서 피정에 참가한 이들의 모습 하나하나를 살펴보니 기도를 하고 성경을 읽고 있었다. 그들을 통해 일에 빠져 소홀히 한 나의 모습을 발견했다. 다음 날부터 성경말씀을 묵상했다.“참으로 하느님께서 여러분 가운데 계신다”는 현존을 믿고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는 구절이다. 모든 것을 덮어 준다는 것은 따뜻한 이불처럼 공간을 만들어 주고 시간을 주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다시 찾아보니 `생각이나 감정을 받아들이다`는 뜻도 내포되어 있다. 사랑은 모든 것을 거는 행위임에는 틀림없으나 그 시작은 생각과 감정을 받아들임으로써 시작된다는 점이다.괴테는 “후세에 태어나는 사람들은 방황해서는 안 된다. 노인의 충고를 받아들여 앞을 똑바로 보고 멋진 길을 걸어가야 한다”고 했다. 내 인생에 있어 충고를 해 줄 노인은 누구인가? 괴테의 질문에 괴테에서 답을 찾으면 한 마디로 책이다. “책이란 새로운 지인과 같다”한 괴테의 말에 공감하며 책은 새로운 관점과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비추어 주고 있다.오프라 윈프리는 삶의 질곡에서 생부를 통하여 독서라는 선물을 받았다. 책을 읽으면서 삶의 희망을 되찾을 수 있었다.“나처럼, 심지어 나보다 더 괴롭고 힘든 시기를 보냈지만 결국 훌륭한 인물이 된 사람이 세상에 많다는 사실을 알려준 것도 책이었습니다. 슬픔과 절망이 찾아왔을 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도 책에서 얻었습니다. 그래서 나에게 독서란 미래를 향해 활짝 열린 커다란 문입니다”유대인들은 토라(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끊임없이 읽고 이해하기 위하여 수많은 질문을 하고 있다. 그 자체가 기도가 되고 생활이 되도록 그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있다. 특히 쿰란 공동체를 운영했던 에세네 파 유대인들은 토라를 필사하고 재산을 공동 소유할 뿐 아니라 식사 기도 공부를 함께 했다.고건의 공인 50년 국정은 소통이다라는 칼럼에서 보면, 함께 현장을 방문하면서 답을 찾아가는 공직자의 부단한 노력을 나타난다. 책을 통한 공부는 주로 젊을 때 하는 것이라면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시민과의 토요데이트`에서 소통을 이루면서 설득과 설득당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답을 만들어 가는 공부도 참으로 매력 있어 보인다. 그로인하여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계기가 됐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점이다. 일본의 공직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서 하시모토 오사카 시장은 위안부할머님들의 생의 질곡을 겸허히 듣고 어디서부터 첫 단초를 마련할 것인지 진짜 공부 좀 하기를 바란다.예수님은 모든 관계가 단절되어 상여에 뉘여 있는 젊은이에게 말씀을 건넨다. “젊은이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이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한 말씀이기도 하지만 북송된 그 청소년들에게도 해당될 것이다. 그들이 체험한 세상을 평양의 놀이공원을 둘러보고 평양 시내를 둘러본다 하여도 때로는 생업에 빠져 살게 되겠지만 그래도 온 몸으로 한 공부를 잊혀질리 있겠는가.다른 세상을 경험하는 것은 그 누군가가 독점적으로 묶어 둘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삶의 무게로 죽은 듯이 살고 있는 북한의 동포들에게 끊임없이 사랑으로 이불을 덮어 주듯이 그들에게 작은 공간을 마련해 주고 나아가 그들의 다른 생각까지도 포용할 수 있는 넓은 마음으로 대화를 지속할 필요가 있겠다. 그리고 만남의 장에서 그들에게 더 발전적이기 위하여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서 궁극적 답에 도달하도록 시간을 줄 필요도 있겠다.

2013-06-24

거룩한 도전 정신

▲ 서임중포항중앙교회 담임목사 오래 전에 영화 `국가대표`를 보았다. 열악한 환경을 딛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스키점프 선수들의 이야기는 종영이 될 때까지 잔잔한 감동이 온 몸과 마음을 감싸는 경험을 했다. 올림픽 꿈을 이루기 위한 도전정신은 열악한 선수구성, 기막힌 훈련 여건,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주변의 무관심을 극복하고 자신과의 싸움에서부터 이겨내고 태극마크를 달고 정진(精進)하는 국가대표 이야기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교통사고로 몸의 55%에 3도 중화상을 입고 의료진에서도 살 수 없다고 판단을 했던 이지선씨는 살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으로 30회가 넘는 수술과 재활 치료를 이겨내고 UCLA에서 사회복지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기막힌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지선아 사랑해`, `오늘도 행복합니다`의 책을 엮어낸 그녀는 “사고로 인해 나는 삶, 고난, 기적, 감사, 사랑, 희망이라는 여섯 가지 선물을 받았다”고 고백하면서 불평과 불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사람들을 부끄럽게 했다.2009년 당시 68세의 차사순 할머니는 자동차 운전면허증을 따기 위해 무려 960번 만에 필기시험에 합격하여 세간의 화제가 됐다. 959차례나 떨어지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면허증 취득의 투지를 불살라 5년 만에 960번째 시험에서 드디어 필기시험 합격 도장을 받았다. 응시를 위한 인지대만 500만원이 넘었고 오가는 교통비와 식비를 합하면 1천만 원이 족히 넘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반드시 운전면허증을 따서 차를 운전하면서 장사를 하고 싶다는 소망은 할머니에게 도전정신을 심어줬던 것이고 결과는 소망을 이뤘던 것이다.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화가 단원 김홍도는 산수, 도석인물(道釋人物), 풍속, 화조 등 여러 분야에 걸쳐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으며, 그의 화풍은 조선 후기 화단에 큰 영향을 끼쳤다. 김홍도 작품의 특징은 독창적 화풍이다. 당시 화가들은 대부분 중국화가의 영향을 받았지만 단원은 차별화되는 독창적 화풍과 구도로 그림을 그렸다. 그러한 단원의 화풍은 정규 화가로서의 틀에 박힌 교육을 받지 않고 화가 집안에서 태어나지도 않은데서 비롯된 것이지만 단원이 당대 최고의 화가로 자리매김을 한 것은 단원의 그림에는 창의성, 도전정신, 자신감과 같은 다양한 내용이 감겨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정평이다.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좁은 길을 걷는 것을 회피하고 넓은 길을 택하는데 익숙해 졌다. 도전정신을 발휘하여 새로운 길을 개척하기 보다는 이미 잘 닦여진 포장도로를 선택하다보니 대학진학도 인문학이나 이공계를 기피하고 의대나 법대를 지향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는 것을 본다. 이것은 이타주의에서 이기주의로의 이동현상이며 그 결국은 공리의 이치가 세워지지 않게 되는 공멸의 위기를 가져오는 것이다.이러한 현상은 교회도 예외가 아니다. 교육, 복지시설들을 건축한다거나 선교를 비롯한 미래를 열기위한 많은 일을 하는 교회는 성도들이 기피한다. 그리고 잘 지어놓은 예배당, 헌금에 부담 없는 교회, 일상에서 자신에게 유익한 것만을 우선해 철새처럼 찾아다니는 이기적인 조건적 교인들이 많아지고 있다.예수님은 요한복음 12장 24절에서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하시고 친히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은 거룩하고도 지고한 도전정신이요, 사랑이다. 그 제자들이 이 정신으로 세상을 바꿨고, 오늘도 세상 곳곳에서 선교사들이 역사를 바꿔 가고 있다. 거룩한 도전정신, 이것이 교회의 사명이며 그리스도인의 삶의 자세이다.

2013-06-17

여성 일자리가 넘치는 행복 경북을 위해

▲ 박은미 경북여성정책개발원 성별영향평가센터장대한민국 역사상 최초 여성대통령이라는 세계의 집중 속에서 출범한 박근혜 정부는 앞으로 5년간 펼쳐야 할 다양한 정책들을 공약에 담았다. 그 중 가장 핵심은 역시나 경제정책이었다. 경기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 경제는 새로운 미래 먹거리 마련, 중소기업 지원 강화, IT 등 과학기술 개발을 통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충해 일자리까지 늘린다는 내용이다. 무엇보다도 여성일자리 창출을 위해 여성인력에 대한 투자 및 적극적인 활용이 지역경쟁력 제고에 중요한 과제로 주목되고 있다.한편, 우리나라는 고학력 여성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여성 경제활동참가율이 낮아 국가적으로 손실을 보고 있다고 판단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의하면 평균 여성 경제활동참가율은 64.0%, 경북은 52.9%에 불과하다. 여기서 여성은 결혼과 육아로 인해 직장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으며 한번 경력이 단절된 후에는 일자리를 구하기가 더욱 어려운 환경에 직면하게 된다.또한 공급되는 여성인력과 노동시장에서 필요로 하는 여성인력이 불일치하고 있는 실정이므로 여성인력을 전략적으로 양성하여 활용해야 할 것이다. 국가경쟁력 항목 중에서 여성인력의 활용이 기업효율성 평가에서 중요한 지표이다. 2012년 IMD(International Institute for Management Development)에 의하면, 여성인력 활용이 높을수록 국가경쟁력이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500대 기업 중 여성인력을 전략적으로 활용한 기업이 그렇지 않은 기업에 비해 높은 실적을 나타내는 것으로 나타났다.때문에 경북지역 여성일자리 창출을 위한 몇 가지 지원 방안을 들자면 첫째, 경북지역내 보육시설의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본다. 자녀보육 문제로 인한 직장생활의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직장내 보육시설을 지원하고, 구직을 희망하는 여성의 보육부담 또한 경감하기 위해 시간연장형 보육서비스 활성화(야간보육), 영아 및 장애아 전담보육시설 확충, 방과후 학교 및 보육 프로그램 확대가 필요하다.둘째, 여성친화적인 유망직종 개발이 무엇보다도 시급하므로 타겟 맞춤형 여성일자리 지원이 필요하다. 즉 고령 여성은 서비스 위주의 다양한 일자리, 고학력 여성은 산업별 유망 직종 발굴, 경력단절 여성은 여성취업에 대한 보수적 분위기 타개, 미취업 청년 여성은 몰마스터, 웹디자이너·웹마스터, 자동차검사원, 컴퓨터프로그래머 등의 특화된 직종의 일자리 지원이 필요하다.셋째, 양질의 단시간 일자리 확대가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고학력 여성이 희망하는 일자리 유형은 시간제 근무를 원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었으며 단시간 근로를 하는 양질의 일자리를 많이 확보함으로 인하여 고학력 여성인력이 노동시장에 많이 진출할 수 있다고 본다. 즉 직장내 탄력근무제를 실시 및 확산하여 노동시장에 여성의 참여를 유인함과 동시에 일과 가정의 양립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아울러 앞으로 다양한 전문분야에서 배출된 여성인력들이 노동시장으로 이행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직무능력 및 경력을 관리하고 지원해야 할 것이다. 생애주기별 지속적인 경력 관리프로그램을 개발하여 고숙련, 고임금의 전문분야에 여성인력이 좀 더 많이 진입 가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여성이 핵심인재로 성장할 수 있도록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2013-06-10

관심과 연민

▲ 이관홍 포항 죽도성당 부주임 신부 다문화가정가톨릭지원센터 담당지난 3월 새로 선출된 교황 프란치스코 1세는 서민적이고 소탈한 행보로 사람들에게 큰 호감을 주고 있다. 그의 부드러운 이미지와는 달리 현대 세계의 여러 가지 문제들 특히 빈곤에 대한 문제, 자본주의의 폐단, 국가 간의 불균형 문제 등에 대해서는 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예를 들어 바티칸의 한 빈민 보호소를 방문한 자리에서 “야만적 자본주의는 이익만을 최우선시 하며 주는 것도 이득을 보기 위해서고 인간성을 배려하지 않고 착취하는 논리를 가르친다”라고 역설했다.프란치스코 교황의 소박한 행보와 세상의 불의에 대한 단호한 태도들은 가톨릭 신자들뿐만 아니라 종교를 초월해서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숙고해보고 반성해야 될 문제가 아닌가 생각을 해본다.교황의 이러한 세상을 향한 직언은 어디에서 시작될까? 무엇이 교황으로 하여금 세상을 향한 날카로운 직언을 하게끔 하는가? 지난 5월18일 교황은 “오늘날 추위에 숨진 노숙자나 먹지 못해 굶는 아이들은 뉴스거리도 아니다”라며 “이를 말하는 것만으로도 내 가슴이 찢어 진다”라고 말했다. 여기서 우리는 세상을 향한 교황의 날카로운 직언 속에는 세상을 향한 부드러운 관심과 연민이 담겨져 있음을 느낀다.관심과 연민, 현대 사회의 우리가 겪고 있는 모든 문제의 해답인 것 같다. 오늘도 우리는 누군가의 죽음에 대한 소식들과 각종 부정부패와 끔찍한 범죄에 대한 소식들을 접한다. 당장은 애석해하고 분노하지만 우리는 쉽게 잊고 또 무감각해진다. 망각과 무관심 속에 우리 사회는, 아니 우리 자신은 더욱더 병들어 가는지도 모른다. 세상에 관심을 가지고 누군가의 고통에 연민을 가지는 것만이 우리 사회의 병을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아닐까?우리가 살아가는 대한민국은 애석하게도 OECD국가 중 자살률이 1위이다. 2010년에는 전체 사망원인 중 31.2%가 자살이었으며, 자살 사망자가 모두 1만5천566명으로 33분마다 1명이 자살로 생명을 잃었다고 할 수 있다. 자살을 선택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외로움이 시달렸다고 한다. 누군가가 작은 관심을, 다시 말해 누군가가 고민을 들어주고 함께 아파했다면 자살을 선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대다수의 국민들은 대한민국 정치인들과 사회지도층 인사들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 연일 신문 1면을 장식하는 부정부패와 비리 문제 때문이다. 신문 일면을 장식하지만 이내 우리의 관심 밖에서 사라져버린다. 부정부패를 저지르고 윤리적인 결함이 있는 정치인들과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솜방망이 처벌을 받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얼굴에 철판을 깔고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탐욕스러운 얼굴을 다시 들이미는 모습을 우리는 아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골치 아픈 일이니 아예 관심을 끄자!`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이와 같은 정치적 무관심은 더 큰 비리와 부정부패의 싹이 되고 있다.관심과 연민이 필요한 시대이다. 사전적인 의미에서 `관심`이란 `어떤 것에 마음이 끌려 신경을 쓰거나 주의를 기울임. 또는 그런 마음이나 주의`란 뜻이고, `연민`은 `가엾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가리킨다. 관심과 연민은 마음을 두는 것이다. 달리 표현해본다면 관심과 연민은 서로에게 마음을 두는 것 그 이상으로 서로에게 `책임감을 느끼는 마음`이다.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그물처럼 서로 연결돼있다. 서로가 서로를 위해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관심과 연민이 없다면 서로에 대한 책임감과 세상에 대한 책임감이 없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더욱 더 삭막하게 될 것이고, 결국에는 사람이 살 수 없는 세상이 되고 말 것이다. 관심과 연민만이 이 세상의 죄악과 부정부패를 치유할 수 있는 해독제임을, 더 살기 좋은 세상을 위한 밑거름임이라는 것을 함께 생각하며 살아갔으면 좋겠다.

2013-06-03

황금률을 생각하며

▲ 이관홍 포항 죽도성당 부주임 다문화가정 가톨릭지원센터 담당가톨릭에서는 혼인을 하나의 거룩한 일, 성사(聖事)라고 한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가정을 이루고,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켜 돌보는 일 자체가 거룩하고, 숭고한 일이기 때문이다. 사실 성직자로서 혼인 성사를 주례하면서 강론을 한다는 것이 참으로 부담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왜냐하면, 평생을 독신으로 살겠다고 서약하고, 결혼이라는 것을 생각해보지도 않고 성장해 성직자가 된 내가 누군가의 결혼식에서 한 말씀 한다는 것이 모순이라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경험이 없는데 어찌 좋은 이야기를 해 줄 수 있으랴?가정 문제로, 부부간의 문제로 어려움을 호소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해보면 결혼을 하고, 자녀를 낳고, 함께 살아가는 것이 풀리지 않는 신비라는 것을 종종 느낀다. 특히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함께 살아온 노부부들을 볼 때면 경이로움과 존경심이 느껴진다. 어느 젊은 부부의 이야기다. 남편은 아침에 일어나 이빨을 닦을 때, 치약을 중간에서부터 짠다고 했다. 그러나 아내는 치약을 항상 끝에서부터 짜서 쓴단다. 이 때문에 매일 아침 서로 다툰다고 했다. 부부 생활을 30년 넘게 해온 노부부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젊으니까 그래요. 한 15년 정도 넘어가면, 서로 포기하면서 살아요.”라고 한 뒤 깊고 그윽한 미소를 지었다.`부부 사이의 문제 때문에, 가정의 여러 가지 문제 때문에 힘겨워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 줄 수 있을까?` 라는 고민을 해보았다. 문득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남기신 주례사가 생각이 났다.“아내는 남편에게 덕을 보고자하고, 남편은 아내에게 덕을 보겠다는 이 마음이, 살다가 보면 다툼의 원인이 됩니다. 아내는 30% 주고 70% 덕을 보자고 하고, 남편도 자기가 한 30% 주고 70% 덕을 보려고 하니, 둘이 같이 살면서 70%를 받으려고 하는 데, 실제로는 30% 밖에 못 받으니까 살다 보면 결혼을 괜히 했나? 속았나? 하는 생각을 십중팔구는 하게 된다. 속은 것은 아닌가, 손해를 봤다는 생각이 드니까 괜히 했다, 이런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 덕을 보려는 마음이 없으면 어떨까? 좀 적으면 어떨까? 아이고 내가 저분을 좀 도와줘야지, 저분 건강이 안 좋으니까 내가 평생 보살펴 줘야겠다. 저분 경제가 어려우니 내가 뒷바라지 해 줘야겠다, 아이고 저분 성격이 저렇게 괄괄하니까 내가 껴안아서 편안하게 해 줘야겠다.”이 말씀을 한 단어로 표현하면,`황금률`이라고 할 수 있다.`황금률`이란 황금처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계명, 또는 황금처럼 가치 있는 계명이다. 그리스도교의 황금률은 예수의 말과 행적을 기록해놓은 복음서에 등장한다.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 주어라”(마태오 복음 7장 12절), 이것이 바로 황금률이다.부부 사이에서부터 황금률을 실천했으면 좋겠다. 추기경님의 주례사처럼 서로 덕을 보려고 안간힘을 쓴다면, 두 사람은 모두 채워질 수 없는 공허함 때문에 다툼이 생기고, 서로가 서로에게 덕이 되고, 서로가 서로를 채워주려고 노력한다면 두 사람 모두 충만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가정은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공동체이자 세상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사랑의 학교`다. 부부가 서로 서로를 채워주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자녀들에게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비춰질 것이고, 부모가 사랑하고 배려하는 모습은 자녀들의 삶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더 나아가서 건강한 가정은 이 사회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5월은 가정의 달이다. 우리 모두가 가정 안에서부터 이 황금률을 실천할 수 있도록 노력해보았으면 좋겠다. 남편이 아내를, 아내가 남편을 배려하고 생각해주고, 자녀들이 부모의 마음을, 부모들은 자녀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노력할 때, 가정은 평화로워질 것이고, 우리 사회 역시도 조금씩 밝아질 것이다.

2013-05-27

미치지 않으면 미칠 수 없다

▲ 김제간 포항대학교 학생입학처장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대학 진학을 하고 취업해 나 자신을 키워가는 일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대학과 학과 선택에 고민할 수 밖에 없다. 요즈음 같은 변화무쌍한 시대에 미래를 예측하고 진로를 선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최근 반값 등록금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면서 대학이 변하고 있다. 급격한 대입 학령인구 감소와 정부의 퇴출대학,학자금 대출제한 대학 명단 공개 등으로 대학가에 큰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이러한 대학 환경 변화에 지역의 전문대학에서도 현실을 직시하고 기업의 요구와 변화의 트랜드로 취업중심의 현장 교육과정으로 바꾸고 졸업과 동시에 기업이 바로 쓸 수 있는 인재양성을 위한 취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또한 전문대학은 지역 산업 발전을 지원하는 지역인재 육성을 위해 산업체와 산학협력을 강화하고 특성화하고 있다.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도 학과 선택에 대한 기준이 바뀌어야 한다.`불광불급(不狂不及)`이라는 말이 있다. `미치지(狂) 않으면 목표에 도달할(及) 수 없다`는 뜻이다. 어느 분야에서나 성공한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꽂힌` 분야에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몰입하는 성향이 있다. 스티브잡스는 IT에, 포드는 자동차에, 파브르는 곤충에 미쳤고 에디슨은 전기에 미쳤다. 학생 여러분은 어디에 미치고 싶은가? 왜냐하면 미쳐있는 그것은 반드시 실현되기 때문이다. 최근에 많이 나오는 이야기 중에 “평생 직장은 없고 평생 직업은 있다”라는 말이 있듯이 그만큼 평생동안 나를 보장해 줄 수 있는 대학과 학과 선택이 중요하다. 학생들이 지금 당장 결정해야 할일 가운데 하나는 대학과 전공 선택이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수십년간 직업 활동을 해야 하는데, 그 첫 단추가 바로 올바른 전공 선택이기 때문이다. 주위의 권유로 본인의 적성을 무시하고 대학에 입학해 좀처럼 적응하지 못하고 내내 방황하거나 재입학 또는 U턴하는 학생들을 볼때 너무 안타깝다. 더욱 성공적인 삶을 위해 대학 전공 선택에서 고려해야 할 몇가지를 짚어 주고 싶다. 우선,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것과 잘할 수 있는 것을 전공으로 선택하는 것이 좋다. 앞으로 무한경쟁 시대에는 결국 자신이 잘할 수 있거나,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해야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그만큼 자신이 잘하고 경쟁력 있는 분야를 전공으로 선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를 위해 그동안 실시한 적성검사 결과를 검토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둘째, 인기나 유행을 따르기보다는 앞으로 10년 뒤, 혹은 자신이 30대에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한 뒤 선택을 해야 한다. 수험생들이 본격적으로 활동하는 시기는 지금 당장이 아니라 10년 뒤일 것이다. 그때는 지금과 다른 산업, 직업 활동 형태가 다양하게 나타날 것이므로 이에 대비하는 전공 선택이 바람직하다. 지금 인기 있는 학과라 할지라도 10년 뒤에는 선택한 학과, 그 직업을 보장할 수 없다. 셋째, 전공 선택도 전략적으로 할 필요가 있다. 친구 따라 강남 가는 식이나, 아무런 고민도 없이 합격 위주로 성적에 맞춰 진학하는 것은 결코 현명한 전공 선택이 아니다. 결정하기 전에 체크리스트를 만들어서 학생부, 수능점수, 적성 등을 고려해 자신의 강점을 살릴 수 있는 전공을 선택해야 한다. 학생 입장에서는 전공 선택이 사실상 인생 최초의 중요한 선택이고 첫 출발인만큼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두려움을 가질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일단 합격만 하고 보자는 식이거나, 누군가의 강요에 의해 전공을 선택해서는 안 된다. 21세기 세계화 시대의 경쟁력은 자기가 좋아하고 원하는 일에 미치지 않고서는 그 분야에 최고가 될 수 없다. 학생 여러분은 어디에 미치고 싶은가? 다시 한번 더 묻고 싶다.

2011-1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