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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파스칼을 생각하는 시간

계산기를 발명한 파스칼은 오래 살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는 1623년에 이 세상에 와 1662년에 떠났다. 40년이 다 안 되는 길지 않은 생애였다.그는 누구나가 알고 있듯이 ‘팡세’의 저자다. 그의 기하학, 계산기, 진공론이 다 유명하지만 그 무엇보다 역시 ‘팡세’다. 여기서 ‘팡세(Pens00E9es)’란 ‘사색집’이라는 뜻, 이 책은 그가 구상한 기독교 호교론의 체계를 보여준다.그는 뛰어난 학자요, 이성적 정신의 소유자였지만 그 자신만만한 이성의 비참함을 누구보다 처절하게 인식한 사람이었다. 백과사전에 신을 간구한 그의 처절한 고행을 묘사한 문장들이 있었다. “그는 고통과 고문을 고안해 내려고 애썼다. 뾰쭉뾰쭉한 못 끝이 박힌 쇠띠를 차고, 말털로 짠 고행의(苦行衣)를 입고, 단식을 한 것이다. 그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교묘하게 꾸며진 가혹한 수단으로 자기 자신의 육체에 학대를 가했다.”나는 이 파스칼을 생각하면 독실한 천주교 신자 시인 한 분을 떠올린다. 그는 뚝섬 부근에 살았는데 어떤 해에 지독한 수해가 났다 한다. 제주도에서 일하다 그 소식을 듣고 서울에 급히 올라왔더니 세든 집이 온통 물바다라 했다. 책꽂이 윗단만 겨우 물에 젖지 않고 있어 거기서 그중 아끼는 책 한 권만 젖지 않게 가지고 나왔노라 했다.“그 책이 무슨 책이었어요?”나는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로아네 남매에게 보내는 서한집이었죠.”그러나 그런 책은 한국에 번역된 적이 없다. ‘파스칼 소품집’이라는 이름의 책이 몇 번 출간되었는데 그 중 하나에 ‘로아네 남매에게 보내는 서한’이 실려 있다. 오래 전 일이니 기억이 완전치 않으셨던 모양.오늘은 주문한 헌 책이 배달되어 왔다. 이때 나는 쾌락을 느낀다. 오늘의 책은 이환이라는 분의 ‘파스칼 연구’(민음사, 1980)이다. 그에 따르면 파스칼은 “스스로 억누르기에 벅찬 이를테면 지성의 과잉에 허덕이”는 사람이었다. 이러한 지성의 소유자는 이렇게 유명한 문장을 남겼다.“인간은 자연에서 가장 연약한 한 줄기 갈대일 뿐이다. 그러나 그는 생각하는 갈대이다. 인간은 자기가 죽는다는 것을, 그리고 우주가 자기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우주는 아무 것도 모른다.”오늘은 헌책을 받은 것만 좋다. 치과에서 호된 신경치료를 받았고 일산 어느 병원에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은 분을 뵈오러 다녀왔다. 컵라면을 먹고 칼럼을 쓴다. 목디스크가 어깨를 짓누른다.인간은 얼마나 비참한 존재인지 모른다고 파스칼은 역설했다. 사소한 일들에 신경 쓰는 대신 죽음이 있음을 의식하라고 했다. ‘파스칼 연구’를 들춰보니 그 중에 한 챕터, 루시앙 골드만의 ‘숨은 신’이 있다. 이 챕터를 읽고 오늘은 그만 쉬어야겠다. /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삽화 = 이철진한국화가

2018-08-03

하얼빈, 안중근, 731 부대

뜨거운 여름에 만주 4박 5일은 쉽지 않다. 여정표가 나올 때 심사숙고 해볼 것을. 토지학회라고, 박경리 선생 대하소설 ‘토지’의 공간을 찾아 공부하는 사람끼리 30명 단체 여행. 창춘으로 들어가 길림대학에서 공부, 집안의 환도산성, 광개토왕비와 왕릉, 장수왕릉 보고, 인삼 집산지 통화 거쳐 다시 창춘, 하얼빈.만주는 이번이 네번째? 그동안 창춘, 하얼빈이 고작이요, 그 ‘흔한’ 백두산 한 번 못 가봤고, 아하, 한번은 그래도 단동, 신의주의 압록강 맞은 편에도 갔다. 그때 지방도 어디쯤 식당에서 직접 담근 들쭉술이 아주 맛있었다. 단동의 옛날 이름은 안동, 일제 때 백석이 머무르기도 했던 곳. 중국은 일본이 물러간 후 봉천은 심양으로, 안동은 단동으로, 신경은 창춘으로 바꾸어 놓았다. 당연한 일.집안에서 옛 고구려 흔적을 둘러보고 애달픈 마음을 안고 창춘에서 고속철 타고 ‘부여’역 지나 하얼빈으로 향했다. 다 고조선, 고구려, 옛 부여의 애환 서린 곳들이다. 하얼빈 첫날은 이효석의 옛 기타이스카야, 중국인 거리와 박경리 선생의 흔적 남은 쑹화강변 돌아보고 지쳐 쓰러졌고.다음날 아침부터 일행은 안중근 기념관으로 향한다. 서른한 살의 의병 부대장 출신, 옛 한중 국경 근처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절치부심, 열두 사람이 왼쪽 무명지를 잘라내며 일본과 목숨을 바쳐 싸울 것을 다짐했다. 그리고 마침내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응징하기 위한 그날이 닥쳤다. 안중근, 우덕순, 조도선 세 청년 중 만약을 위해 두 사람은 채가구로 가고 안중근 혼자 하얼빈 역두에 남았다.만약 이토 히로부미의 행선이 달라졌다면 안 의사의 생명은 지상에 더 오래 머물렀을 수도 있었겠다. 그렇다고 많이 달라지지는 않았으리. 목숨을 바쳐 적을 응징하지 않고는 풀릴 수 없는 응어리 안고 어떻게 오래 견딜 수 있었으리. 남의 나라의 국권을 빼앗기 위해 일제가 짓밟은 목숨 무릇 ‘기해’던가.현장에서 러시아 군에 의해 일본에 인계된 안 의사는 제네바 의정서조차 무시된 법정에서, 판사, 변호사는 물론 통역조차 일본인에, 일본 정부가 비밀리에 사형 판결 지침을 내린 재판을 받았다. 그들의 뜻대로 사형 선고를 받았지만 항소하지 않았다. 목숨을 구차하게 구걸하지 않겠다는 뜻이었으리라.루쉰 감옥에서 최후의 날을 앞두고 흰 한복 옷을 수려하게 걸친 안 의사의 얼굴은 모든 삿된 욕망을 온전히 내려놓은 기품이 흐른다. 안 의사는 뜻을 이루었고, 온건파 이토를 잃은 일제는 강경파들의 계속된 전쟁으로 치달아 마침내 패망하고 만다.이제 우리는 악명 높은 731 부대 흔적을 찾아 한 시간 정도 달린다. 몇 년 전만 해도 현장만 남았던 곳에 ‘기념관’이 섰다. 일본이 세균전을 벌이기 위해, 이길 수 없는 부도덕한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저지른 짓들이란. 그것은 차마 동물에게조차 가할 수 없는 짓들이라 할 것이다. 그것은 일본의 일이지만 6.25 전쟁 중에 일어난 일들을 생각하면 결코 남의 일만이라 할 수는 없다. 역사의, 국가의, 명분과 논리와 욕망을 접으면 짓밟히고 희생당한 무고한 생명들의 ‘벌거벗은’ 모습을 제대로 볼 것이다.공항으로 향하는 길이다. 서른한 살 청년의 모습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다. 자기 자신의 생명을 공동체의 제단에 바쳐 모두를 ‘구하고’ 홀연히 떠난 사람, 그 넋을 기린다. /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

2018-07-27

목포·진도·윤선도

지난 12일이다. 진도에 갔다. 팽목항에 가느라 세번은 갔었다. 이번에는 다른 일이다. 유배문화를 가지고 이야기하자는 것이다. 유배문화요? 제가 뭘 알 수 있겠어요. 현대문학도 아닌데요. 시문학파 문학관 일 하시는 김선기 선생님, 일단 해보라신다. 그게 벌써 몇 달 전이다.유배라. 간단치 않다. 호남 도서, 해안으로 유배들 많이 간 건 물론 안다.제주도, 흑산도, 추자도, 완도, 진도 같은 곳. 건너편 남해에도 많이들 갔고. 이런 알량한 지식으로 무얼 말할 수 있나? 조동일 선생 논문에 유배는 서양의 추방 같은 것이라 하던데, 추방이라, 유배라.추방은 도편 추방이라는 말 있듯 고대 그리스부터 있었고, 기독교 쪽에도 추방은 에덴 동산 시절부터 있다. 누군가 논문에 쓰셨다. 추방은 추방인 것만 아니요, 해방도 해방인 것만은 아니다. 애굽에서의 해방이 그렇고 바빌론에 끌려간 추방도 그렇단다.바빌론이라. 그러면 1970년대 독일 그룹 보니엠이 생각난다. ‘바빌론 강가에서’가 바로 그 노래였던 것.좋다. 유배를 호남 해안, 섬들로 와 그곳에서 문화를 이루고 저작을 남긴 것들, 그렇다 치고, 유배 많이도 갔던 윤선도, 해남 윤씨, 85세까지 산, ‘어부사시사’ 40수의 작가를 이야기해 보자.진도는 4년 전이나 지금이나 멀다. 용산발 목포행 케이티엑스 새벽 5시 10분발. 목포에 7시 반에 도착, 여러 경험을 살려 차를 빌린다. 역에서 버스터미널 가서 시간 기다려 진도 버스 타고 여기저기 서면서 가다가는 아침 10시 시작하는 행사에 늦기 십상. ‘거금’을 냈지만 속은 편타. 목포에서 진도까지 중간에 한 밥집에 들러 차돌박이 된장찌개도 먹고.“천천히 드셔이.”서울에서는 요즘 이런 인삿말은 없다. 안쪽 앉는 식탁에 바닷가 풍경 끼고 앉아 호젓한 아침 밥상을 받는다. 마침 에어컨도 틀어줘 이만저만 호강이 아니다.윤선도, 호사스럽게 살았다고만들 안다. 하지만 서른에 정계에 처음 나가 상소 한 번 올리고 저 북쪽 끝 경원으로 7년 유배, 인생 막바지에도 다시 북쪽 끝 삼수로 쫓겨났다. 세상 뜨기 3년 전에야 풀려나 돌아온 ‘고향’부용동. 사실 그는 서울 태생이다. 그러나 부용동을 고향이라 해보자.유배의, 추방의 가장 큰 의미, 고향에 돌아와도 돌아온 것이 아니다. 추방이 곧 추방만이 아니듯 유배가 유배인 것만이 아니요, 귀향이 귀향만은 아니다. 그의 고향은 단지 고향이 아니었다. 젊어서 ‘소학’을 좋아했다는 그다. 한편에 유학적, 성리학적 원리를 염오하기도 했던 그다. 그래도 포즈는 늘 군왕주의, 표면을 믿지 말자. 사람은 깊을수록 복잡하다.국가와, 권력과, 세속 정치와의 끈질긴 대결. 그의 ‘강호가도’시가라는 것들, ‘산중신곡’, ‘산중속신곡’, ‘어부사시사’. 어찌 단순한 음풍농월일까.멀리 떠남은 그냥 떠나는 길만은 아니리. 검은 흙속 뿌리에 목마름이 있으니, 타는./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

2018-07-20

스펙터클 민주주의와 ‘호모 사케르’

2002년 무렵 다들 민주주의가 무르익어 간다고 생각할 때 문제가 간단치만은 않다고 생각했다. 민주주의란 과연 무엇인가, 하고 물으며 자명한 것 같은 이것이 아주 어려운 문제로 둔갑하는 것이다.1990년을 전후해서 세상이 한 번 용트림을 할 때 무엇이 좌고 무엇이 우인지도 간단치 않게 됐다. 좌인 것이 언제까지나 좌인 것이 아니요, 우도 그러했던 것이다. 어떤 정책이, 태도가, 세상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진보냐 하는 것도, 지키는 보수냐 하는 것도 그때부터 이미 매 순간 하나하나 잘 짚어 봐야 할 문제가 되었다.지난 두 정부를 거치며 민주주의에 목이 말랐다. 아니, 둘 다 선거로 정당성을 가지고 집권했는데, 민주주의가 없었다는 말씀이냐? 무슨 망발이냐?조르조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는 ‘주권 권력과 발가벗은 생명’이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여기에 이런 표현이 있다. “근대 민주주의가 포스트 민주주의적 스펙터클 사회 속에서 점차 쇠퇴하면서 전체주의 국가와 수렴되는 현상”, 또 “민주주의와 전체주의는 내적으로 결탁되어 있다.”여기서 말하는 포스트 민주주의적 스펙터클 사회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하면 바로 우리 사회 같은 정치 현상을 두고 말하는 것이리라 생각한다. 말하자면 ‘우리는’ 민주주의를 하노라고, 떠들썩하게 보여주는 것이 많은 사회, 선거가 수도 없이 빈번하게 치러지고 그럴 때마다 언론이 자지러질 듯이 난리법석을 피우고 거리에는 온갖 구호와 이상이 난무하고, 결과를 접하고는 엎드려 용서를 구하기도 하고 환호성을 지르기도 한다. 그런데 이렇게 ‘국민’을 하늘처럼 높이 떠받드는 것 같은 사회, 민주주의가 범람하는 사회인 것 같은데, 사실 그 국민은 자유롭지 못하고, 멱살이 잡혀진 것처럼 체제가 무서울 수밖에 없는 사회, 이런 것을 가리켜 이 스펙터클한 민주주의 사회에서 어쩐지 ‘익숙한’, 지긋지긋한 전체주의 냄새가 난다는 것이다.그렇다고 바로 지금 우리 사회가 전체주의적이라는 식의 언어도단을 행하자는 것은 아니고 지난 두 정부에서 신물나게 보았듯 민주주의 형식을 어엿하게 충족시키는 것 같아도, 말짱 도루묵, 하늘같아야 할 국민은 감시와 통제와 여론 호도의 객체로 취급되고 마는 것이다.‘호모 사케르’는 현대 정치에, 사람들의 권리를 통제할 ‘예외 상태’가 너무 많이 등장하는 것에 주목한다. 긴급조치가 필요하고, 비상사태고, 유사시에 해당하고, 공공의 안녕과 질서가 해로워질 수 있는 때가 너무 많은 것인데, 이 ‘예외상태’가 상시화 되고 규칙화 되면서 국민은 그 공인된 헌법적 권리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는 늘 어떻게든 ‘처분되고’ 만다.지금 다시 민주주의를 낙관하는 사람들이 많다. 향후 십 년은 괜찮으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미래는 늘 불투명하다. 또한 ‘벌거벗은 생명’으로서 사람들, 국민들은 어느 시대든 녹록할 수가 없다.‘벌거벗은 생명’, 호모 사케르, 이 말처럼 정치 앞에, 제도 앞에, 권력 앞에 놓인 백성들의 상황을 투명하게 표현해 주는 말도 없다./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삽화 = 이철진한국화가

2018-07-13

평화롭게 축구 보기

사람들 함께 있는 자리에서 누가 축구보다 야구가 좋다 했다.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나는 말했다. 이런 취향 문제야 간단히 반박해도 누가 뭐라지는 않으니까.사실 야구는 언제 멀어졌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한화가 대전 팀이라고 해서 깜짝 놀라고 나서 생각하니 그런 것도 같았다. 한화한테 미안하다.야구도 축구도 열광하는 사람은 못 돼지만 그래도 어느 쪽이냐 하면 축구다. 국내 경기는 잘 안 봐도 월드컵은 보니까 말이다. 옛날에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대전 구장에서 히딩크, 안정환 등등이 이탈리아를 3대2로 꺽을 때 이탈리아 응원팀 바로 옆에서 땀을 쥐고 소리를 질러 보기도 했다. 축구 전용구장의 매력이라는 게 있었다. 선수들이 몰려오면 무슨 말발굽 소리가 나는 것 같고 숨소리도 그랬다.이 두 주간은 월드컵 보는 재미로 살았다면 살았다. 덥다. 일은 손에 안 잡히고 정치는 벌써 흥이 떨어졌고, 밤 열한 시, 새벽 한 시, 새벽 세 시, 이렇게 건너 건너 재밌게 해주는 바람에 밤잠을 설친다. 지난 밤만 해도 스페인과 러시아, 크로아티아와 덴마크가 연장전까지 가는 혈전을 치르고 승부차기 끝에 환희와 절망의 쌍곡선을 그렸다.지난밤은 16강 통과한 팀끼리 8강 진출을 놓고 격돌을 벌인 것이었다. 아쉽게도 일본은 16강에 안착했지만 한국은 벌써 탈락해 버렸다. 하지만 이번 러시아 월드컵만큼 사람들에게 감동을 준 한국 축구팀도 많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모두들 그러리라 생각한다. 피파 랭킹 56위 한국팀, 본선에 나갈 때까지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했던 팀이 지난 해 우승팀 랭킹 1위 독일팀을 99분을 넘기는 긴 혈투 끝에 2대 0으로 잡아버린 것이다. 그럴리야 없겠지만 심판은 독일 좀 이겨 보라고 전후반 90분에 6분을 더 주고 독일이 한 골을 먹자 3분을 더 주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이 6분, 3분에 오히려 한국이 골을 넣은 것이다.처음에 스웨덴과의 싸움은 정말 졸전도 그런 졸전이 없었지만 멕시코부터는 한국팀은 달라졌다. 너무나 위축되고 전략이고 전술이고 아무 것도 없어 보였던 스웨덴 전과 멕시코 전은 달랐다. 비록 2대 0으로 졌지만 열심히 했다고 다독거려 주고 싶었다. 그래도 그것으로 16강은 물건너 간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고 나서 독일전이었다.감동이 컸다. 선수들은 죽을 힘을 다해 싸운 것이었다. 사실을 말한다면 나는 이번에는 16강 같은 것은 관심에 없었다. 독일이 잘해도 “잘한다!”하고 박수 쳐 줄 마음의 태세가 되어 있었다고나 할까. 정치가 초미 관심에서 물러가면서 축구도 죽고 사는 스포츠는 더 이상 아니게 된 것 같다.이 평온함이 좋다. 원래 사람 사는 일에 죽고 사는 피비린내는 없어야 한다. 좋은 것을 함께 나누고 즐기는 것, 아쉬움을 함께 달래는 것, 그런 것이 좋다. /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삽화 = 이철진한국화가

2018-07-06

비 많이 오시던 날

아주 어렸을 때는 비가 참 좋았다. ‘날궂이’라는 말이 있쟎던가? 날씨 안좋을 때 괜한 일 벌이는 거. 대개는 비오는 날 쓸데없는 짓 하는 걸 가리킨다. 어렸을 때 비오면 괜히 기분 좋아졌다. 비맞으러 바깥으로 뛰쳐나가곤 했다. 옷이 흠뻑 젖고 신발이 철럭철럭 소리가 나게 물이 들도록 놀았다. 자전거 몰고 나가 웅덩이란 웅덩이이는 죄다 갈라가며 달리기도 했다.그러다 비가 성가셔졌다. 나이 들어 청년이 됐을 때다. 머리 젖는 게 싫고 옷이 누굴누굴해져서 불편했다. 거리며 캠퍼스며 자유롭게 나다닐 수 없어 싫고, 젊은 기운에 참을 수 없는 외로움이 일층 자극되는 것도 좋다 할 수 없었다.더 나이가 들었다. 자, 이제 웬만한 비는 자포자기다. 우산 받는 불편함을 택할 테냐 젖는 불편함을 감수할 테냐. 이도 저도 싫지만 비 맞는 쪽을 택한다. 차를 운전하면 차 있는 데까지만 걸으면 된다. 비를 안 맞아도 되는 곳까지 조금만 맞으면 되는 때도 많다. 우산 챙기는 일도 번거롭다면 번거롭다. 에라. 머리 좀 빠지면 어떠냐. 그렇잖아도 빠지는 머리. 황사비면 어떠냐. 그보다 독한 ‘놈’도 많은데. 대개는 이 자포자기식 비 대처법, 성공적이다. 비는 견딜 수 있는 만큼 적당히 내려준다. 나도 독일 사람들처럼 친수성’ 인종, 수생 동물이 된 것 같다. 그러다 얼마전 큰 낭패를 당했다.주차장에 차를 댈 때만 해도 멀쩡했다. 하늘에 먹구름은 끼었지만 당장에 쏟아지랴. 늑장 부리며 그날 따라 느릿느릿 걸었다.어라!비가 한번 쏟아지는데 양동이로 퍼부었다. 처음엔 점잖은 척 걸었지만 대책없는 빗줄기에 일단 앞에 보이는 농협 처마 밑으로 긴급 대피한다. 눈앞에 보이는 학관까지 불과 백여 미터. 그래도 뛰어갈 엄두는 나지 않는다. 단번에 물에 빠진 새앙쥐 꼴 되기 십상이다.누가 우산을 함께 써줄 사람 없나? 아침 여덟 시. 학교에 올라오는 학생은 적다. 남학생도 퉁명스러운 학생도 많고 여학생 우산 밑으로 들어갈 수도 없다.대책 없다. 그냥 비가 잦아들길 기다려 볼 밖에. 그 사이에 농협 직원분들 두셋이 나를 지나쳐 저쪽 통행문 뒤로 사라졌다.ㅡ저, 우산 좀 빌려 주실 수 있을까요? 있다 가져다 드릴게요.이 말이 입안에서 맴돌았다. 하지만 말을 붙일 용기는 나지 않았다.그냥 이렇게 서 있는 것도 좋지. 오랜만에 좋은 비구경도 하고.그때다. 건물 안으로 사라졌던 은행 직원 분이 우산을 들고 나타났다.ㅡ왜 여기 서 계세요?은행 셔터문 앞에 나는 서 있었다.ㅡ비가 와서요.ㅡ그러신 것 같아서요. 이 우산 안 갖다 주셔도 됩니다.ㅡ앗. 고맙습니다.그분은 내게 버젓하게 생긴 장우산 하나를 건네주고 돌아선다.음.그 비 많이 오시던 날 나는 또 한번 세상사를 익혔다. 남이 뭐라고 호소하지 않아도 내편에서 먼저 헤아려 주기. 이럴 수 있으면 세상은 살 만하다. 그렇지 않을까. 모든 일이 그렇게 돌아간다면./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

2018-06-29

설악 무산 스님

부음은 연합뉴스 있는 권영석 형에게서 왔다. 한동안 그분이 어떠신지 애써 무관심하려 했었다.토요일에는 북한산을 아침 아홉시 반부터 저녁 여섯 시까지 탔다. 산에서 내려와 카톡을 볼 수 있었다. 일요일에는 대학로 토즈에서 고전 인문 강의를 하기로 되어 있었다. 최동호 선생과 통화해 보니 강의 끝나고 속초로 넘어가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일요일 저녁 김추인, 김종훈, 한세정, 이은봉 같은 분들과 이광수와 그의 홍지동 산장 시대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광수는 불교 행자처럼 살아가겠다고도 했지만 그런 삶을 완성할 수는 없었다.월요일에는 하루 종일 책들을 정리했다. 쌓아놓은 책들은 이제 새로 꽂지 않으면 뭐가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없을 지경, 일을 도와주기로 한 사람들과 약속이 오래전에 정해져 있었다. 화요일에 신입생 세미나 수업이 끝나자 다섯 시 반, 루마니아에서 온 유학생 안드레아와, 또 다른 출판사 대표와의 약속은 미리 취소해 두었다. 일곱 시 반 넘어 서울 북쪽에서 세 사람이 만나 마침내 속초 신흥사로 넘어갈 때 비가 내렸다. 홍천 지나 태백산맥 너머 밤하늘은 구름 사이로 달이 비쳤다.이미 시간은 밤 열 시 반이 넘었다. 가로등조차 없는 산길을 타고 신흥사 경내로 들어가자 사방은 이미 고요하다. 어디가 어딘지 알 수 없는 가운데 어두운 사람 그림자를 우연히 만나 빈소를 물으니 이렇게 저렇게 가라 한다. 이미 시간이 많이 늦어 개울 건너 올라 들어간 빈소에는 조문객이 끊겼다. 홍사성 선생도 방금 잠깐 어딘가 가셨다고, 혼자 남아있던 김명섭 선생이 안내를 해준다. 스님 세 분이 서 계시고 불경 외는 스님 한 분 앉아 계신 빈소에 불이 환하게 켜졌는데 영정 속 무산은 활짝 웃고 계시다. 정성 들여 삼배를 드리고도 마음은 못내 허전해서 발길 차마 돌릴 수 없다.미련 떨치지 못한 우리를 안타깝게 여긴 그 분이 무산 스님 들어 계신 안쪽으로 인도를 해주신다. 비구니 스님 한 분만 좌정하신 그곳 병풍 뒤에 그 분은 고요히 누워 계시다. 생전에 스님은 활기차고도 개구진 때가 많으셨는데, 이번만은 만나고도 웃지 않으시겠다는 듯 입술 꼬옥 다물고 두 눈도 지그시 감고 계시다. 그때다. 유리관 안에서 스님이 문득 눈을 깜빡이신다. 분명 눈을 깜빡 뜨셨다 감으셨다. 그럴 리가. 하지만 정말 그러셨다고 느꼈다. 우리 가운데 어른께서 유리에 이슬이 맺혀 있어 그렇게 보인 모양이라고, 당신도 처음에 그렇게 느꼈다고 하셨다. 그래도 스님은 분명 내게 눈을 깜빡여 보이신 것만 같다. 옛날에, 거금 18,9년 전에 충북대학교에서 강의 마치고 네 시에 떠나 밤 열시 반 넘어 백담사 한 곳에 계신 어떤 노승을 뵈러 길을 물어물어 찾아간 적이 있다. 그 분이 바로 이 무산이셨다. 이번에 주민 분들이 걸어 놓은 듯 플래카드에 “설악산 호랑이 무산 스님”이라 했다. 사실 생기시기를 울툭불툭하셨다. 처음 만나 뵈올 때 한 밤이더니 떠나 보내드리는데도 한밤중이다. 마음 착잡하기 이를 데 없는데, 듣자니, 이번에, 기어이 가시겠다고 곡기를 여러 날 끊으셨다고 한다.“천방지축 기고만장 허장성세로 살다보니 온몸에 털이 나고 이마에 뿔이 돋는구나 억!” 무산 스님 열반송은 스스로의 삶을 완전히 태워 얻으신 것이다. 그 사이의 깊지 못한 인연으로 나는 그것을 알 것 같다고 생각한다. 오늘밤은 유난히 달빛이 밝다. /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

2018-06-15

옛 노래 듣는 기쁨

어떻게 하다 보니 요즘에는 옛날 노래를 잔뜩 듣게 된다. 처음 발단은 110볼트나 듣는 컬럼비아 포터블 LP 플레이어를 오랜만에 꺼내 본 것. 그러자 옛날 음반을 다시 들어보고 싶어졌다. 헌책방에 가서 보니 ‘노래를 찾는 사람들’ 음반이 나와 있고 그렇게 비싸지 않은 것도 봤다. 유튜브 접속률이 네이버 접속률을 훌쩍 뛰어넘었다던데, 그러고 보니 나도 지난 정부 때는 ‘팟빵’이나 잔뜩 듣던 것이 최근에는 뭐든지 유튜브다. 최근에 두 달 무료 시험이라는 말에 ‘넘어가’ 화면 없이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되기도 했다. 김민기 노래를 새로 듣는 기쁨이 예사롭지 않아 ‘꽃 피우는 아이’도 듣고, ‘금관의 예수’도 듣고, ‘공장의 불빛’도 들었더니 사람이 새 사람이 된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이다. 옛날로 돌아가면 새사람이 되는 건가? 조용필이 김민기 세대 가까울 텐데 두 사람 음악이 그렇게 다른데, 얼마 전까지 조용필이 좋다고 하던 게 무색, 이번에는 역시 김민기가 귀하다고 고개를 여러번 끄덕인다.그러다 갑자기 이번에는 외국으로 튀었다. 존 바에즈라는 옛날 포크송 가수, 누구나 사랑할 만한 음색을 가진 여성 가수다. ‘파이브 헌드레드 마일즈’, ‘솔밭 사이로 강은 흐르고’, ‘고향의 푸른 잔디’ 같은 노래가 그녀의 것인데, 일종의 미국 민요 같은 것이고, 민중들, 흑인들의 애환을 노래한 것들이다. 그런데 그중 유별난 곡 하나, ‘Diamonds and Rust’(다이아몬드와 녹)라는 것이 있는데 옆에 옮겨 놓기는 했지만 참 묘한 제목이다. ‘녹슨 다이아몬드’라고 해야 차라리 맞을 것 같은데, 어떤 가사 번역은 ‘행복과 불행’인가 하는 식으로 완전히 의역을 해버렸다. 보통 노래가 아니다. 옛날 남자에게서 장거리 전화가 와서 통화하는 이야기지만 사랑을 읊은 노래 중에도 이만한 노래는 있기 힘들지 않나 한다. 이 장거리 통화의 주인공이 밥 딜런이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누가 주인공이냐가 문제 아니라 이 가수의 음색과 ‘어조’, 가사의 아름다움이 보통 아니다.내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나? 옛날 노래에 감읍하는 나이병? 당연히 그런 것만은 아니겠지? 생각해 보니 이게 다 비주얼 만능시대인 때문인 것도 같다. 옛날 같으면 외국 노래는 듣기는 들어도 리듬과 음색만 들었던 게 아닌가 싶다. 보니엠이 부르는 ‘바빌론 강가에서’라든가 그 유명한 ‘원웨이 티켓’을 가사 음미하면서 좋다고 부르고 듣는 사람이 한국 청년 가운데 몇이나 되었을까? 요즘에 유튜브 같은 곳에서 보면 판이 달라졌다. 옛날에 라디오나 테이프로만 듣던 것을 동영상으로 듣게 된다. 김민기는 그런 게 별로 없지만 존 바에즈가 그렇고 모리타 도지도 그렇다. 보니엠은 ‘써니’나 ‘대디 쿨’, ‘라스푸틴’ 같은 노래를 가사에 그들의 공연까지 함께 듣다 보면 그들 그룹의 존재 의미를 완전히 새롭게 느낄 수 있게 된다.옛날에는 그런 노래를 옮겨 번안해 부르던 가수나 몇몇 전문적인 귀를 가진 사람들만이 알던 노래를 가사까지, 공연 실황까지 시청각적으로 ‘완전히’ 새롭게 보게 되는 기쁨. 간단치 않다. 세상의 이기가 발달한다는 것, 역시 나쁜 일만 있는 것 같지 않다. 명암, 음양을 함께 보는 눈이 필요한 시대다./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

2018-06-08

강해진, 허클베리핀, 비돌

새것은 늘 환영받지만 오래된 것, 사라져 가는 것은 그리움의 대상이 된다. 청계천 동묘 앞 벼룩시장은 날이 갈수록 넓어지고 호황을 누린다. 경제가 바닥에서 좀처럼 나아질 줄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있는 사람들은 무슨 말이냐 하겠지만 위에서 나아진 것이 아래로는 좀처럼 내려올 줄 모른다. 이것이 요즘 경제의 이상한 재흥이다.몇 년 전 그 청계천에서 ‘컬럼비아 포터블 플레이어’라는 것을 산 적이 있다. 컬럼비아 사에서 만든 LP판 듣는 기기다. 그때 얼마 주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휴대용처럼 간편하게 생겼는데 가격이 꽤 높았다. 내 커다란 흠 가운데 하나는 오래된 것에 대한 애착을 버리지 못한다는 것. 결국 샀다. 십여 만원 했던 것 같다.아주 오랜만에 이걸 듣고 싶어졌다. 가지고 있는 엘피판이라야 남들 다 갖고 있는 김광석 것, 그리고 들국화 것. 110볼트 전용이기 때문에 변압기를 찾아 연결하고 엘피판을 올리니, 소리가 정말 나온다. 가짜를 산 것 아니었으니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그런데 무슨 일이든 겹쳐서 오는 법인지, 이날 바로 엘피 판 전시해 놓은 곳에 가게 됐다.행선지는 대전. 카페는 ‘비돌’이라는 신기한 이름을 가진 곳. 전시된 엘피 판은 강해진이라는 바이올리니스트가 만든 엘피판 일곱 장. 강해진은 즉흥 연주에 강한 연주자로 나는 그를 몇 주 전에 영화 관계로 만났다. 내 졸작 어떤 것을 영화로 만드는데 음악을 그에게 부탁했다는 것이었다.비돌 윗층에서는 이 엘피판을 전시하고 아래층에서는 연주회를 열었다. 무슨 일이든 늦기 잘하는 내가 이날은 한 시간이나 일찍 가서 둘러본다. 엘피판 하면 헌책방 앞에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고물이나 7080 카페에 빼곡히 꽂아놓은 장식물들을 생각하기 쉬운데, 새로 만든 엘피판이다.일주일에 한 번씩 몇 주 동안 일요일마다 대전에서는 비돌에서 연주회를 갖는다고 들은 게 몇 주 전이었다. 부산에서 시작해서 대전 지나 얼마 후에는 서울에서도 연다고 했다. 혼자만 바이올린 연주를 하는 게 아니고 함께 작업한 사람들이 나오기도 하고 초대 가수 같은 사람들도 나온다는 것인데. 이날의 출연자는 그룹 ‘허클베리핀’. 그들과 강해진 바이올리니스트는 아주 오래 전에 작업을 같이 한 적 있다고 한다.허클베리핀 하면 한국의 대표적인 인디 록밴드 가운데 하나다. 비돌 1층은 비좁고 그들이 ‘뛰놀기’에는 확실히 작다. 그러나 바로 그래서 연주와 노래가 꽉 차 오른다. 허클베리핀의 대표작 ‘사막’은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그러고는 강해진의 작품을 그들이 함께 연주하는 것으로 무대는 막을 내렸다.연주회가 끝나고 나오자 밤이 깊다. 은행나무는 봄에도 잎이 아름다움을 밤 조명 속에서 느낀다. 록밴드와 바이올린과 엘피 판. 오랜만에 다른 세상을 만난 것이 좋다. 세상은 험해도 음악은, 예술은 아름답다./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삽화 = 이철진한국화가

2018-06-01

수의를 짓다

서울에 광장시장이라고 있다. 종로 4가 및 5가와 청계천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아주 오래된 곳이다. 유래가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때 지금의 남대문 시장보다도 훨씬 큰 곳이었다고 한다. 이 시장에 대해서 그럼에도 아는 것은 별로 없었다. 백화점 체질도 아니라서 거기서 물건 사본지가 까마득하지만 시장 체질도 아닌 까닭이다. 광장시장 입구에 약국들이 늘어서 있어 제법 싸다는 것, 꽃가게와 종묘 가게가 볼 게 좀 있다 할 정도다.이곳에 며칠 전에도 약을 사야 할 일이 있어 갔다. 고혈압 약 먹기 7년차, 이제는 허리 디스크, 목디스크, 당뇨 경계 지수에 통풍, 백내장까지 왔다. 이대로 가면 오래 못 가지 하면서도 산에는 제대로 못 가고 약으로 근근히 버티는 중이다. 인생은 성장해서 무성해졌다가는 쇠하고 병들어 삶을 다하게 마련이다.사야 할 것을 샀다 하고 모처럼 ‘시내’에 나온 김에 잠깐 어스렁거리는데, ‘광장시장’이라는 간판이 붙은 큰 골목이 보인다. 바로 골목안 왼쪽 옆으로 포목점들이 보이는데 ‘수의’라고도 썼다. 그러자 연로하신 부모님 생각이 난다. 여든여섯, 여든하나, 연세가 깊다. 어머니는 그래도 건강하신 줄 알았는데 최근 들어 갑자기 안 좋아지셨다. 아버지는 7,8년 됐나, 몸 두 군데에 암이 동시다발, 수술 후 항암치료 받고 매일 초등학교 운동장을 걸으셨다.가게 안을 기웃거리는데 들어와 보란다. 수의는 요즘 국산 베는 찾기 힘들고 중국산 베가 싼 건 한 이십만원도 하고 칠팔십만원이면 좋은 걸 살 수 있다 한다. 삼베라면 티비에서 아주 비싼 데다 바가지 쓰기도 다반사라고 들은 터였는데, 이 정도면 감당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파는 사람도 나쁘지 않아 보여 내심 가까운 시일에 여유가 생기면 찾아보리라 한다.기왕 시장골목 들어온 김에 좀 구경이나 하자 하고 몇 걸음 더 안쪽으로 들어가니 오른쪽에도 포목점이 붙어 있다. 그중 하나는 삼베만 쌓아 놓았는데, 가지런하기가 앞서 가게 하고도 영 다르다. 그 삼베들 참 좋다 하고 감탄을 하고 섰는데, 옆에 있던 아주머니가 볼 게 있으면 들어가 보란다.등 떠밀려 들어간 격, 엉거주춤 하는데 가게 안쪽에 한 노인이 앉아서 뭔가를 쓰고 있다. 고향이 어디냐고, 수의는 제 지방 것을 써서, 호남 사람은 보성 베를 쓰고 충청도 사람은 서산 베를 쓴단다. 하필 아버지 고향이 서산이다. 대답을 하면서도 눈은 두리번거려지는데, 이 가게는 아까 가게와도 달라서 삼베만 있다. 그렇다고 한다. 국산 베만 취급한다는 것이다.‘갖은 수의’라고 쓴 목록을 보니, 망자에게 입힐 것이 많기도 많다. 또 망자를 위한 베는 넉넉하게 써야 해서 키보다 십 센티는 크게 잡아야 한단다. 그러고 보니 수의를 해 놓으면 오래 사신다는 말도 떠오르고, 새삼 생각나는, 하필 내가 장남이라는 사실. 중국 베도 어떻겠냐만, 말씀하시는 분이 보통 사람 같지 않고, 이미 팔십줄, 세상 속이며 살 연세도 아니다.언제 해도 할 것이라면, 하는 마음으로 예약을 해버린다. 며칠 후면 목돈이 나가야 하겠지만 마음은 한결 더 편해지는 것 같다. 사람이 나고 떠나는 일만큼 귀한 사건이 없다. 마음의 준비를 두고두고 해야 한다./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삽화 = 이철진한국화가

2018-05-25

작가 김남천과 ‘1945년 8·15’

현재는 과거 없이 존재하지 않을 뿐 아니라 어떤 현재는 사람들로 하여금 과거를 반드시 되돌아보게 한다.요즈음에는 1945년 8월 15일 해방 이후의 한국 문학사를 새롭게 볼 수 있는 방법을 ‘고안’ 중에 있다. 그 동안 써온 방법으로는 왠지 부족한 것 같아 하는 일이다.그래서 ‘해방 후 8년사의 문학’처럼 해방공간과 한국전쟁을 함께 아우르면서 그 사이의 시간까지도 함께 논의할 수 있는 개념이 필요하다, ‘전후문학’이란 한국에서 무엇이었느냐를 다시 따져보아야 한다, ‘분단문학’, ‘월북문학’ 같은 개념 외에도 ‘월남문학’ 개념을 새로 도입하는 것도 좋겠다, 같은 생각들을 하고 있다.월북 작가 김남천의 장편소설을 새롭게 읽은 것도 그 연장선이다. 그는 1945년 10월 15일부터 1946년 6월 28일에 이르는 격동의 시기에 ‘자유신문’이라는 신문에 장편소설 ‘1945년 8·15’를 연재했다. 비록 미완으로 끝났지만 이 소설은 실제 현실과 불과 한두 달 사이의 간격을 두고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야심찬 기획을 보여주고 있다.이 소설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김남천은 1930년대 후반에 카프(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동맹)을 해산하지 않을 수 없는 정세 아래서 리얼리즘의 본의를 새롭게 생각하기 위한 발자크 연구 프로그램을 제시한 바 있다. 리얼리즘의 정수를 보여준 작가로 평가되는 발자크 탐구를 통하여 과연 리얼리즘이란 무엇이며, 카프의 사회주의 리얼리즘(또는 유물변증법적 리얼리즘)이 결여한 것은 무엇이었는지를 생각해 보자 했던 것이다.이제 새롭게 보는 ‘1945년 8·15’를 통하여 생각한다. 과연 김남천은 발자크를 비롯한 서구 작가들에게서 무엇을 보았던가? 발자크 같은 작가를 연구한 끝에 생각한 리얼리즘의 정신이며 소설의 운명에 대한 생각은 어디로 갔는가? 과연 그가 해방의 감동과 격동 속에서 부여잡은 진보적 리얼리즘은 얼마만한 깊이를 가졌던가?임화처럼 김남천에 깊은 연민과 동정을 느끼는 사람으로서, 그가 한국전쟁이 끝나기도 전에 월북해 간 곳에서 비참하고도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한 것을 고통스럽게 여기면서, 한편으로 냉정한 판단력을 잃어버려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한다.만약 카프의 리얼리즘에서 한계를 보았고, 그래서 고발, 자기고발, 모럴, 관찰, 풍속소설에의 길 같은 여러 깊은 모색을 했던 작가였다면 8·15라는 ‘격절’이 있었다 해도 모든 것을 잊고 다시 극복해야 했던 과거로 회귀해서는 안 되었다. 단순한 회귀, 반동은 새로운 차원의 문학을 열어 보일 수 없다는 것이다.남북평화 무드는 문학과 문학연구에 다시 한 번 깊은 변화를 요청할 것이다. 만약 종전선언이 현실화된다면, 우리는 이제 ‘전후’가 아니라 ‘전후후’를 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전후후’는 기묘한 전후후, 전후의 연장이면서 탈연장인 전후후가 될 것이다. 냉정한 이지를 작동시켜야 할 때다./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

2018-05-04

평화 무드 속 한 생각

남과 북 사이에 정상회담이 열린다고 한다. 이를 앞두고 두 정상을 연결하는 직통전화가 개설되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작년까지만 해도 남북 사이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특히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당장이라도 북한 핵 시설 같은 곳을 향해 폭격을 감행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올초에 연세 드신 분들이 함께 하는 어떤 회의에 갔더니, 평창 올림픽이 있어 그렇지 이것만 치르고 나면 미국이 조만간 무슨 결단이라도 내릴 것이라는 예측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었다.하지만 정국은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갔다. 북한에서 현송월이라는 공연 책임자가 오고 올림픽에 북한 수뇌의 누이 되는 김여정이라는 사람이 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크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태도가 180도 바뀌고 남과 미국 사이에 새로운 밀월 시대가 열리면서 전쟁, 폭격 위기는 썩 물러갔다. 남북 정상 회담 뒤에는 북미 간에도 최고 책임자들이 만날 것이라 하는데, 며칠 전 열린 미일 정상들 만남에서 아베 총리는 빈손 귀국을 했다고 한다.다시 뉴스에 따르면 북한에서는 “주체107(2018)년 4월 21일부터 핵시험과 대륙간탄도로켓(ICBM) 시험발사를 중지할 것”이라 했다는데, 이 핵시험 중지는 북부 핵시험장 폐쇄를 의미한다고 한다. 이른바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 핵시험장으로 알려진 곳으로, 그 동안 방사능 누출 등 심각한 오염이 우려된다고 보도되어 왔다.지난 두 정부에서 남북 관계는 완전히 냉각되었고, 이는 천안함 참사, 개성공단 폐쇄 등을 촉매제 삼아 왔다. 정권이 몰락하는 와중에 경북 성주에 사드라는 것을 기습 배치한다 하면서 중국도 난리를 쳤고 군민들이 데모에 나섰고 한반도에는 더욱 짙은 먹구름이 드리웠다.잇따른 좋은 소식들로, 이로써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는 완전히 달라졌다고 할 수 있다. 평화는 전쟁보다 나은 것이므로 천만다행이라 생각하며 이 무드가 부디 정전협정 체제의 종식과 평화 정착으로 연결되기 바란다. 정치와 군사 분야에서 대화와 타협은 언제나 중요하다. 긴장과 압박과 전쟁이 능사일 수 없고, 어떤 목적을 위해 인명을 대량 희생시키는 일은 최악의, 마지막 고려 사항이 되어야 한다. 이번 정부는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냈다. 문학예술에서는 어떨까? 좋아하는 가수 조용필이 북한에 가 공연하는 것을 보면서 예술도 긴장 완화에 도움이 될 수 있음을 실감한다. 하지만 문학은 역시 까다롭고 예민하며 생각이 많다. 내 귀에는 인권 유린 상태 아래 살아가는 북한 주민들의 소리없는 숨죽임이 들리는 것 같다. 긴장 때도 평화 무드 속에서도 그들은 동원될 뿐 말을 할 수 있는 입이 없다. 문학이 정신 바짝 차려야 할 때다. /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삽화 = 이철진한국화가

2018-04-27

그날, 바다

오후 5시 40분. 용산역 CGV. 세월호 참사 진상을 추적한 다큐멘터리 영화 ‘그날, 바다’가 상영되는 첫날이다. 놓치고 싶지 않았다. 놓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벌써 한 2주 전부터 상영 예고, 광고가 계속되었으므로 꽤나 관객이 많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객석에는 불과 서른 명쯤, 실망스럽다고나 할까. 벌써 많이들 잊었다는 것일까.세월호 참사가 난 것에 관해 오래 반복되면서 지속되는 오해들이 있다.하나, 그날 바다가 풍랑이 쳤을 것이라고들 생각한다. 그날 오전 티비 화면에 비친 바다 풍경은 그렇지 않았다. 하지만 세월호가 가라앉은 후 밤바다를 비춘 화면들, 배를 건져 올릴 수 없다는 소식들은 마치 풍랑이 있었던 것만 같은 착각을 선사한다. 둘, 지나치게 많은 짐을 실은데다 급히 뱃머리를 돌린 것이 원인이 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몇 년 동안 계속된 지난 정부의 공식 견해이기도 하다. 영화 ‘그날, 바다’는 바로 이 견해를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셋, 구원파를 이끈 유병언이라는 이와 청해진 선박회사의 경제적 동기가 배경이라고도 한다. 그때 경찰 병력이 안성 금수원을 에워쌌는데, 전혀 다른 곳에서 그는 풀밭 위에 백골이 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죽음이 ‘전시’된 듯한 그 무렵 숱한 유언비어들과 검거 ‘쇼’는 사람들의 눈과 귀를 성가시게 가렸지만 지금 그 구원파니 유병언이니 하는 말은 저만치 뒤로 물러섰다.그날 아침에 왜 선원들은 아이들에게 선실에서 나오라고 하지 않았을까. 그러기는커녕 움직이면 더 위험하니 안에 가만히 있으라고들 했다. 헬리콥터도, 해경선도, 해군배도, 어떤 구조대도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데, 배가 다 가라앉을 때까지 가만히 있으라는 거다.해경 123정은 탈출 방송을 했다고 거짓말을 했지만 곧 탄로가 나고 말았다. 무엇보다 과연 그 김경일이라는 이와 그 대원들은 무슨 특수 임무라도 띤듯 선원들만 달랑 데려갔고, 그들은 참사의 최종 책임자들처럼 재판에 회부됐다. 123정 사람들은 공무원들이고 구조가 기본 임무일 텐데 과연 다른 ‘명령’ 없이, 구조활동을 안 하는 게 가능했을까?‘그날, 바다’의 메시지에 따르면 그날 세월호는 ‘공식’ 조난 시각보다 훨씬 일찍부터 이상한 항적을 그리고 있었다. 오늘 KBS 단독 보도에 따르면 침수에 대비해 닫혀 있어야 할 수밀구들이 모조리 열려 있었다. ‘그날, 바다’는 수상한 항적에, 왼쪽 닻도 수상하다고 했다. 학생들이 유황냄새 가까운 계란 냄새가 난다고도 했다.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의혹들, 의문들은 아직도 전혀 해소되지 않았다. 그날만은 모든 것이 여느 때와 달랐다. 정부 요인들도, 구조 실무 담당자들도, 선원들도 정상적인 행적을 남기지 않았다.무엇 때문에? 왜?이번 정부는 많은 사람들이 품고 있는 이 질문에 성실히 답할 의무가 있다. 새롭게 출발한 세월호 진상조사 위원회의 활동이 보장되어야 하고 또 적극 지원되어야 한다. 세월호 참사는 정치적으로 해석되거나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 그날의 진실에 대한 성실한 접근이 모든 해결의 첫 걸음이다./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삽화 = 이철진한국화가

2018-04-20

‘로아네 남매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서

파스칼은 잘 알려진 수학자요, 종교철학자요, ‘팡세’의 저자이기도 하다. 어찌어찌한 일로 파스칼의 책 중에 ‘파스칼 소품집’이라는 것을 찾아보게 되었다. 우리나라에 세 번 나온 것으로 되어 있다. 하나는 청산서림이라는 곳에서 1960년에 출간된 것이요, 다른 하나는 입문사에서 1974년에 나온 것이다. 하나는 내가 지금 들고 있는 정음사 판 ‘파스칼 소품집’이다.인터넷 헌책방을 통해 이 책을 구하려 하니, 뜨는 것은 청산서림 판 심재언 옮김 ‘파스칼 소품집’, 가격은 1만5천원, 배송비까지 해서 1만7천500원이다. 이 책이 한 사흘만에 날라왔는데 정작 내가 원하던 그 ‘로아네 남매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장은 없다. 꼭 이 장을 찾는데는 이유가 있다.같은 ‘파스칼 소품집’인데, 정음사 판에는 있는 그 장이 여기에는 없는 것이 이상하기는 했다. 그렇다면 이 ‘파스칼 소품집’들은 역자의 취향에 따라 다르게 편집, 번역된 모양이다. 하는 수 없이 정음사 판 ‘파스칼 소품집’ 목차를 도서관 웹사이트를 통해 찾아보니 다행히 있다. 그것은 파스칼이 로아네 남매와 신앙 문답을 주고 받은 아홉 편의 서한이다.이 중 가장 인상적인 대목을 하나 읽어 본다.“우리는 우리의 지난 과오를 뉘우침으로써 충분하기 때문에 과거는 조금도 우리를 괴롭히는 것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하지만 미래는 그보다 더 우리를 다치지 말아야 하지요. 왜냐하면 미래는 전혀 우리의 소관사가 아니라, 아마도 결코 그리 되지 않을 터이기 때문입니다. 현재야말로 진정 우리에게 속하며 신의 뜻에 따라 우리가 사용해야 하는 유일한 시간입니다. 우리의 생각이 주로 문제되어야 하는 것은 바로 현재에서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은 너무나 불안하여, 사람들은 현재의 생각이나 현재 살고 있는 순간을 생각하는 법이 거의 없습니다. 앞으로 살게 될 순간을 생각하려고 듭니다. 그 결과로 사람들은 언제나, 결코 현재에 살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미래에 살고 있다는 상태에 처해 있습니다. 우리 주께서는 우리의 예견이 우리가 놓여 있는 당일보다 더 멀리까지 뻗는 것을 바라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이야말로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그리고 우리 자신의 휴식을 위해서 지켜야 할 경계선이지요.”또다른 문장 하나.“만약 신께서 계속적으로 인간들에게 드러나 보이신다면, 그를 믿음이 조금도 공이 되는 일이 아닐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신께서 한번도 드러나 보이지 않으신다면, 믿음이란 거의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께서는 여느 때는 숨어 계시다가 자신을 섬기도록 하시려는 사람들에게 드물게 드러나 보이시는 것입니다. 신께서 그 안에 잠적하고 계시는 이 기이한 비밀, 인간들이 봄에는 불가해한 이 비밀은 인간들의 시선에서 멀리 떨어진 고독으로 우리를 이끌고 갈 수 있는 큰 교훈입니다.”요즘 세상이 어렵고도 혼란스럽다. 무엇에도 믿음을 품기 힘든 때, 자신의 과거에도, 미래에도 확신을 갖기 어려운 때다. ‘나’는 얼마나 참된가? ‘내’게 신의 빛의 아주 작은 부분이라도 깃들어 있는가? 신은 자연이며 세속 바깥의 숭고한 진리일 것이다. 자신을 채찍질하여 구원을 갈구하던 파스칼의 ‘고행’을 생각하게 된다. /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삽화 = 이철진한국화가

2018-04-13

책 만들기

책은 참 좋다. 원래 나무여서 그런지 냄새가 좋다. 사각진 모양도 좋다. 흰 종이 위에 까맣게 글자만 가득한 것도 좋다. 그림책도 물론 나쁘지 않다. 비좁은 방안에 책을 쌓아두는 것도 좋다. 책이 바깥 세상으로부터 방음막이 된다. 심리적 안정감도 준다. 지금 나는 책을 쓴 사람들의 세계 속에 들어 있다, 하는.좋은 책이건만 책 만들기는 결코 쉽지 않다. 우선 원고가 좋아야 한다. 노는 책, 쉬는 책도 원고가 일단 문제, 소설책, 공부책은 두 말할 나위 없다. 원고가 좋은 다음에야 어떻게 만들어도 제 향을 낼 수 있다.다음, 교정이나 교열의 몫은 상상 이상이다. 편집자가 어떤 성정의 소유자인가? 어느 만큼 볼 수 있는가? 에 따라 하늘과 땅 차이가 난다. 좋은 작가가 제 자신에서 나지만은 않음을 열 가지 사례로 말할 수 있다. 소설은 특히 편집자 손에서야 귀한 옥이 된다. 그만큼 문장과 어휘를 세심하게 다루는 편집자 몫이 크다.그 다음엔 오탈자다. 작은 것 같으면서 무섭게 큰 문제가 오자, 탈자다. 책 한 권에 오탈자 한두 개는 응당 있을 수 있는 법? 어림없다. 오자, 탈자 한줌씩 있는 책은 책이랄 것도 없다. 잘못 박히고 있어야 할 게 없는 것이 책에서만큼 끔찍하게 보이는 곳도 없다.이제 또 디자이너, 그는 본문과 표지를 멋지고 아름답게 환골탈태 시켜주는 사람이다. 옷 만드는 디자이너는 화려하기라도 하지. 착각일까? 아무튼 책 디자인은 노동도 이런 상노동이 없다. 그러면서도 아이디어 좋아야 하고 세심함, 엄격함에 인내력까지 몽땅 갖춰야 한다. 하나 고치면서 두 개 흔드는 디자이너는 골치덩어리, 정신 사나운 사람은 책 디자이너로는 아예 낙제점이다.어느덧 마지막 인쇄와 제본. 그냥 찍어내면 될 것 같아도 그런 법은 없다. `감리`라 해서 실제로 책이 어떤 빛깔로 어떻게 나오는지 살펴야 한다. 인쇄만큼 값이 들쭉날쭉한 것도 없고 사장님 성품이 그야말로 큰 몫을 차지한다. 책을 돈으로만 절대 안보는 분이어야 한다.세번째 시집을 내겠다고, 아홉 번을 킨코스에 가 비싸게 주고 가제본을 묶었다. 한숨이 난다. 자꾸 보다 보니 닳고 단물이 빠졌다. 아무 맛도 안 난다. 그쯤 되어야 낼 만하게 된 것이라 위안 삼아 본다.그러자 이번에는 평론집이다. 그게 언제였더라? `감각과 언어의 크레바스`는 2007, `행인의 독법`은 2005년, 묵혀 놓은 평론들이 200자 원고지 3천매가 넘었다. 책이 되기는 되야겠다. 헌데, 매끈하고 잘생기기는 애시당초 글렀다.좋은 글을 먼저 써야겠다. 좋은 공부를 해야겠다. 숨을 천천히, 깊이 쉬어야겠다./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삽화 = 이철진한국화가

2018-04-06

호텔, 모텔, 여인숙, 펜션, 민박

외국이라고 처음 가본 것이 1996년 가을이었다. 배 타고 황해 바다 건너 텐진으로 들어갔다. 1박 2일 끝에 뭍에 상륙, 한밤에 마이크로 버스로 베이징 중국 교포 민박집으로 들어갔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더러웠다. 벽이며 문이며 화장실이 이럴 수 있을까 싶었다. 밤늦게 식사라고 나왔지만 밥도 콩나물도 냄새가 나서 먹을 수가 없었다.며칠 후 내몽고 수도인 후허하오터[呼和浩特]까지 기차를 타고 갔다. 역 앞에서 `旅店`(여점)이라는 피켓을 든 사람들이 수십 명씩 승객들을 맞이하려 안감힘을 썼다. 그때 중국은 호텔 아니면 외국인은 잘 수 없던 시절, 그래도 그중 한 사람을 따라 집단주택 중 하나에 들어갔다. 화덕 있는 곳 옆의 침상에서 혼자 자면 15위안, 그때 한국 돈으로 1천500원, 미닫이문 안 침상 서너 개 중 하나에 자면 10위안이라 했다. 역시 발을 뻗고 잘 수 없는 시설이었다. 입은 옷 그대로 침상에 들어 발을 웅크리고 겨우 서너 시간 눈을 붙였다.지금은 중국도 달라졌다. 어딜 가나 별 몇 개짜리 호텔들이다. 시설도 월등히 좋고 규모는 말할 것도 없다. 한국 같은 작은 나라 사람은 눈이 커질 정도로 호화로운 곳도 많다. 하지만 세심하게 따지면 아직 멀었다고 할 수 있다. 비누나 샴푸, 수건 같은 세면 도구, 욕조나 샤워 시설 같은 데서 불만족스러운 게 여전히 남아 있다.중국 얘기는 이 정도에서 그만, 사실은 이 나라 여행 시설 얘기를 하고 싶다. 그 핵심에는 숙박 문제가 있다.호텔, 모텔, 여인숙, 펜션, 민박. 자유 국가답게 다종다양한 시설들이 여행객들을 맞이한다. 시설도 외관상 좋아 보이는 곳도 아주 많다. 얼마 전 평창 세계 작가 대회로 어떤 리조트에 묵었는데 나쁘지 않았고 쾌적하기도 했다.아쉽게도 다 그렇지는 않다. 여행을 좋아하고 타지로 떠도는 일이 많다. 그때그때 되는 대로 머무르다 보면 생각되는 게 많다. 무엇보다 더 깨끗해져야 하겠다는 것이다.내 집 아니라 여행객들의 공간이다. 서로다른 사람들이 수없이 오가는 곳이다. 누군지 모르는 남의 몸이 머물렀다 가는 곳인 것이다. 어떤 수준의 시설이든 단 두 가지 갖춰져야 할 게 있으니, 하나는 청소 상태요, 둘은 침구의 교환이다. 펜션에 얼마나 멋진 장식과 화려한 비품이 들어 있는가가 관건일까?전혀 아닐 것이다. 무엇보다 내가 깨끗한 곳에 몸을 눕히고 있다는 안도감이 중요할 것이다. 만약 이불 따위를 갈 수 없다면 커버, 시트는 반드시 교환되어야 하고, 타인들의 머리카락이 그대로 떨어져 있는 식은 정말 곤란하다. 호텔, 모텔, 여인숙, 펜션, 민박. 이런 유형과 등급은 제각기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아무리 좁고 허름해도, 안심하고 들어가 등을 붙일 수 있어야 한다.처음 일본의 체인 호텔 도요코인에 들었던 때가 생각난다. 일본은 위생병 환자들의 나라인 것은 맞다. 그러나 문제가 간단치만은 않다. 이 나라는 아직도 중국에 가까운 것이다. 달라질 것이다, 달라져야 한다. 바닷가 펜션에 머무르는 이 한밤의 생각이다./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

2018-03-30

별 아저씨 호킹박사

얼마 전에 유튜브를 뒤지다보니 닐 암스트롱이 달에 갔다 온 게 아니라고 했다. 미국이 안 갔다 오고 갔다온 척 꾸몄다는 것이다. 음모론의 일종이다. 왜 공기도 없는 달에서 성조기가 나부끼느냐. 지구를 감싸고 있는 벤엘런대라는 자기장 띠를 어떻게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느냐, 거기 가득한 방사능이 우주인들을 그냥 놔둘리 없는데. 당시 우주인들은 알루미늄과 유리로 만든 얇은 우주복을 입었다. 그것으로 방사능을 피할 수 있었을까. 또 달은 태양이 비치는 곳은 250도나 되고 안비치는 곳은 마이너스 250도나 된다. 이런 것도 극복 가능했겠는지?과학자들에 언론까지 휘말린 진위 논란에 판별할 능력은 없다. 아직도 달에 사람이 가지 못했다면 차라리 다행이다. 그렇다면 달은 사람들에게 여전히 신비 그 자체일 것이기 때문이다.달을 떠나 더 먼 우주로 시선을 돌려보자. 담박에 막막해진다. 몇 년 전에는 명왕성이 태양계에서 퇴출을 당했다. 그런 `가까운` 별에 대해서도 알지 못할 것이 수없이 많다. 하물며 은하계들 수없이 펼쳐진 우주에 대해서는?어떤 책을 보면 이제는 그런 은하계가 우리 은하계 말고도 수없이 많다. 우리 은하계만 해도 항성이 어림잡아 1천억 개 이상, 우주에는 그 은하계가 수천 억 개 흩어져 있다. 그러나 그뿐? 초끈이론이다, 막우주론이다 하는 첨단 이론의 논리적 귀결은 이 우주조차 하나가 아니어야 한단다.우리가 얻어들은 이야기로는 우주의 나이 137억년 또는 138억년쯤. 그 태초에 대폭발이 있었고 우주는 그때부터 지금껏 팽창 중이다. 상상하기 힘든 이야기다. 도대체 그 대폭발은 어디서 일어났단 말이냐?이 공간에 대한 의문은 나를 막막한 절망에 빠뜨린다. 그런데 이 우주가 또 하나가 아니고 우주밭에는 우주가 포도밭의 포도송이처럼 다닥다닥 열렸다는 것이다. 빅뱅은 이 우주들이 서로 근접할 때 충격으로 일어나는 것이고, 그러니 빅뱅은 하나일 수도 없다는 것이다.무한은 그 바깥이라는 개념을 허용하지 않는다. 우주가 무한하다면 그 바깥에는 아무 것도 `없다`. 바깥이 없으면 안도 없어야 하겠다. 하지만 우주 그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한갓 지구인들이 어떻게 다 알랴. 우리는 이 공간의 한없는 넓이를 극복할 수 없다! 우리는 차원의 벽을 넘나들 수도 없으리라. 스티븐 호킹이 세상을 떠났다. 루게릭병을 앓으면서도 76세까지 장수를 누렸고, 낙천적이었다 한다. 그가 내놓은 이론 가운데 `호킹 복사`라는 것은 블랙홀에서도 뭔가가 흘러나올 수, 빠져 나올 수 있는 것이라 한다. 그렇다면 블랙홀도 영원한 수렁이 아니요, 사라질 수 있는 어떤 것이 된다.별 아저씨 호킹 박사. 사람 중에 그렇듯 의지 굳고 밝고 상상력 큰 사람도 없었던 듯하다. 지구를 사는 미물 사람의 하나로서 명복을 빈다. 당신이 있어 우리는 행복했소. 아니, 불행의 질량을 많이 줄였소./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삽화 = 이철진한국화가

2018-03-23

아우슈비츠, `위안부`, 세월호

조르조 아감벤의 책 `아우슈비츠의 남은 자들`. 여운이 짙고 길게 남는 책이다. 프리모 레비라는 이탈리아 유태계 작가가 있었다. 그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살아남아 그 나날들의 이야기를 썼다. 아감벤은 레비의 문학을 다루면서 `증언`에 관해 이야기한다.그는 말한다. 증언은 증인들이 하는 것이라고. 그러나 아우슈비츠에서 그 인류의 참상을 완전히 경험한 이들은 그곳에서 죽었고, 따라서 증언할 수 없다. 완전한 증언은 말로 구성되지 못한 채 그들의 죽음과 더불어 세상의 어둠 속에 묻혀 버렸다. 살아남은 자들이 증언한다 해도 그것은 잃어버린 완전함을 대신하는, 일종의 대체재일 뿐이다.이렇게 깊은 자의식이 레비로 하여금 아우슈비츠에 관한 심오한 증언의 문학을 가능케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책은 단순한 레비론이 아니다. 이 책은 아우슈비츠 이전과 이후는 다르다고 말한다. 이전에는 윤리학의 자명한 가설처럼 통용되던 것들도 여기 이르러서는 시효를 상실한다. 왜냐. 이곳은 삶과 죽음이 맞붙은 곳, 죽음이 살아 있고 삶이 죽는 곳이기 때문이다.현대 이전에 권력은 통치되는 자들을 죽이거나 살도록 내버려 두었다. 현대 권력의 생명정치는 원리가 바뀌어 사람들을 살리거나 죽게 버려 둔다. 이제 아우슈비츠는 또다른 지대다. 여기서 권력은 삶을 죽음으로 만들고 죽음을 살게 한다. `무젤만`(아우슈비츠에서 영양실조와 고문, 노역 등으로 마치 시체처럼 돌아다니는 죄수들)이 바로 그 징표다.이 책에 인용된 나치 장교가 죄수들을 향해 말한다. 여기 있었던 일들은 기억되지 않을 것이다. 모두 인멸될 테니까. 설혹 너희들이 살아남아 증언한다 해도 사람들은 믿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없었던 일처럼 취급될 것이다. 태평양전쟁의 처절한 현장에서 살아남은 `위안부`들이 할머니가 되어 겪은 일들을 말하자, 일본은 그런 일이 없다 하기 바쁘고 한국의 어떤 여성학자는 학문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가설`을 `실재화` 하고, 고소받은 그에게 벌금이 선고되자 국내외의 저명한 `멍충이`들까지 나서 서명을 한다. 한국에서 학문의 자유가 위기에 봉착했다는 것이다. 이 나라에서는 그 훌륭한 자유가 현대 이래 위기 아닌 적이 없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는 듯이.그렇게 위안부의 `증언`은 `묻혀간다.` 정부는 기이한 비밀협상으로 흙더미를 끼얹기까지 했다.여기에, 세월호 참사. 진실은 시간의 흐름 속에 묻힐 위기에 처했다. 완전히 증언해야 할 이들은 바다에서 살아 돌아오지 못했고, 남은 자들의 목소리는 진지하게 청취되지 못했다. 의심치 않건대, 여기는 또다른 현대판 생명정치의 현장이다./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삽화 = 이철진한국화가

2018-03-16

춘한

한밤에 잠도 잘 오지 않고 해야 할 일은 쌓였는데 손도 잡히지 않아 이것저것 생각에 잠겨 본다. 방도 좁고, 어둡고, 사위 고요한데 내가 지금 어디 와 섰나, 무엇을 하고 있나 한다. 열정적으로들 사는 한가운데 춥고 스산한 기운 속에 잠겨 있는 것 같다.많이 아픈 사람에게 낮에 전화를 해봤지만 신호는 몇번 가지도 못하고 끊겼다. 상황이 여의치 않다는 신호인 것 같아 마음이 영 놓이지 않았다.요즘 주변에는 아픈 사람이 하나 더 있다.“위로 대신 공감이야.”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위로라는 또다른 `가르침`보다 그냥 함께 감각한다, 느낀다는 의미에서의 공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언뜻 들으니 정월 대보름이란다. 음력으로 따지니 겨울은 겨울이다.그래도 삼월인데.봄도 삼월 봄은 따뜻하지 않고 춥다. 겨울도 이월 겨울은 춥지 않고 따뜻한 것과 같다.이제 따뜻하려니 하는 섣부른 기대에 얇은 옷 걸치고 나섰다가는 큰코 다치기 쉽다. 바람도 겨울바람보다 끝이 날카로워 살갗 속 뼈속으로 깊이 스며든다.춘한.봄추위라고 말해야 할까. 나는 봄추위라는 말대신 춘한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훨씬 더 은근하고도 깊은 맛이 난다.아침 적당한 때 일어나 외출 준비를 했다. 창밖으로 날이 화창해서 아무런 고생도 없을 것 같았다. 점퍼에 청바지나 입고 얇은 목도리만 걸치고 길을 나섰다.바람이 맵찼다. 예상 밖으로 날카로운 바람에 찔리며 서둘러 걸었다. 이제 봄은 왔고, 오늘은 삼일절, 내일부터는 새로운 날이 그래도 시작될 것이다.애써 좋은 생각을 하며 목적지에 당도했다. 이제 오늘의 일을 시작해야 한다. 그런데 `작업장`이 너무 차다. 마치 겨우내 묵혀두고 불 한번 안 때운 온돌방처럼 사면 벽에서 냉기가 세다.너무 오래 비워둔 것 같은 `작업장`은 그러나 어제도 와 있었고 그저께도 들렀다. 그럼에도 이렇게 공기가 차갑게 느껴짐은 마음이 이곳을 오래 비웠음인가.책장을 열어본다.`돈황의 사랑`이라는 윤후명 작가 소설이다. “달밤이다. 먼 달빛의 사막으로 사자 한 마리가 가고 있다. 무거운 몸뚱어리를 이끌고 사구를 묵묵히 오르내린다.”무엇을 할 것인가.자신이 고독하다고 느껴지는 지독한 춘한 속에서 나는 생각한다. 견디고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추위에 지쳐 쓰러질 때까지는. 다행히 봄은 올 것이다./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

2018-03-09

겨울도 끝, 곧 봄

오늘 오랫만에 밤하늘을 보았다. 가느다란 초승달이 구름에 흐렸지만 춥지 않다. 이제 설도 지났고 곧 봄이 오려는가 보다. 이번 겨울에는 눈도 많이 오지 않고 춥기만 했다. 그래도 평창에는 제법 눈도 쌓였고 인공 눈을 만들어 동계 올림픽은 거뜬했다.옛날을 생각하면 확실히 우리나라는 겨울 되면 눈나라였다, 얼음나라였다. 까마득히 어릴 때 눈 가지고, 얼음판 위에서 놀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연못 대신 방죽이라고 불렀던 곳, 벼 농사 짓고 물 가두어 놓은 곳, 이런 곳들이 옛날에는 아이들 놀이터였다. 썰매를 만들어 타도 단순하지 않아서 무릎 꿇고 타도록 넓적하게 만든 썰매도 있고, 외날 썰매로 서서 스키를 타듯 타야 하는 것도 있었다.팽이도 얼음판 위에서 날렸던 기억도 나고, 쥐불놀이도 눈밭, 얼음판 위에서 하던 것도 생각난다.그때는 다들 해질 때까지 친구들과 바깥에서 놀다 부모님이나 친척 어른이 찾으러 올 때쯤 되어야 집으로 놀아갔다. 손발이 시려웠던 시절이었다. 겨울이면 손이 곱다 못해 터져 안티프라민을 바르던 옛날이었다.지금은 86세로 연로하신 아버지와 함께 스케이트 장 갔던 일도 떠오른다. 겨울에 임시로 물을 가둬 얼려 만든 스케이트 장. 아버지는 우리 식구들을 데리고 그런 야외 스케이트 장에 데려 가셨다. 아들들이 노는 걸 보시고 흥이 생기셨는지 직접 스케이트를 타시는데, 맙소사, 뒷짐을 지고 허리를 숙이고 스케이트를 쓱쓱 밀고 가시는 게 아닌가.그건 다른 사람들이 타는 스케이트와는 완전히 달랐다. 어린 마음에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 어쩐지 남부끄럽게 느껴졌는데, 나중에 보니 그게 바로 진짜 스피드 스케이팅 폼이었다. 고등학생 때 럭비 선수였고 대학에서 체육을 전공하신 아버지다운 늠름한 모습이셨던 것이다. 평창 동계 올림픽이 잘 마무리됐다. 평창에서는 주로 눈 위에서 하는 경기들을 하고 강릉에서는 얼음 위에서 하는 경기를 한다.빙상 경기라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이번에 설상 경기라는 말을 새롭게 들었다.빙상 하면 역시 스피드 스케이팅이나 쇼트 트랙 스피드 스케이팅이다. 김연아 씨의 피겨 스케이팅은 말할 것도 없겠지만 말이다.이상화 선수 눈물 흘리던 모습이 떠오른다. 값진 은메달을 따내고도 복받쳐 오르던 눈물 뒤에는 지난 몇 년 동안의 피나는 연습 과정이 있었을 것이다. 이 선수는 더없이 훌륭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힘겨운 훈련 과정을 십 년 이상 지속한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일까. 사람이 최선을 다했을 때만 보여줄 수 있는 표정이나 행동, 그것을 이 선수에게서 엿볼 수 있었다.여자 쇼트트랙 3천m 계주에서 2연패를 달성했던 순간도 떠오른다.뭐든 열심히 하면 잘하는 한국사람들이지만 동계 올림픽에서 그렇게 스케이팅도 잘하는 걸 보면 역시 봄, 여름, 가을 말고 겨울도 있는 이 나라의 기후 덕이 아닌가 한다. 우리네 몸 속에 그 긴 겨울을 얼음 지치며 어린 시절을 보낸 오랜 문화적 체질이 배여 있는게 아니던가.올림픽 중에도 뉴스에 오르내리는 소식들은 살벌한 것도 많았다. 평창 올림픽이 끝났다. 겨울도 끝, 곧 봄이다. 따뜻한 봄바람처럼 우리네 마음도 계절의 순환을 타야 할 것 같다./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삽화 = 이철진한국화가

2018-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