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어렸을 때는 비가 참 좋았다. ‘날궂이’라는 말이 있쟎던가? 날씨 안좋을 때 괜한 일 벌이는 거. 대개는 비오는 날 쓸데없는 짓 하는 걸 가리킨다.
어렸을 때 비오면 괜히 기분 좋아졌다. 비맞으러 바깥으로 뛰쳐나가곤 했다. 옷이 흠뻑 젖고 신발이 철럭철럭 소리가 나게 물이 들도록 놀았다. 자전거 몰고 나가 웅덩이란 웅덩이이는 죄다 갈라가며 달리기도 했다.
그러다 비가 성가셔졌다. 나이 들어 청년이 됐을 때다. 머리 젖는 게 싫고 옷이 누굴누굴해져서 불편했다. 거리며 캠퍼스며 자유롭게 나다닐 수 없어 싫고, 젊은 기운에 참을 수 없는 외로움이 일층 자극되는 것도 좋다 할 수 없었다.
더 나이가 들었다. 자, 이제 웬만한 비는 자포자기다. 우산 받는 불편함을 택할 테냐 젖는 불편함을 감수할 테냐. 이도 저도 싫지만 비 맞는 쪽을 택한다. 차를 운전하면 차 있는 데까지만 걸으면 된다. 비를 안 맞아도 되는 곳까지 조금만 맞으면 되는 때도 많다. 우산 챙기는 일도 번거롭다면 번거롭다. 에라. 머리 좀 빠지면 어떠냐. 그렇잖아도 빠지는 머리. 황사비면 어떠냐. 그보다 독한 ‘놈’도 많은데. 대개는 이 자포자기식 비 대처법, 성공적이다. 비는 견딜 수 있는 만큼 적당히 내려준다. 나도 독일 사람들처럼 친수성’ 인종, 수생 동물이 된 것 같다. 그러다 얼마전 큰 낭패를 당했다.
주차장에 차를 댈 때만 해도 멀쩡했다. 하늘에 먹구름은 끼었지만 당장에 쏟아지랴. 늑장 부리며 그날 따라 느릿느릿 걸었다.
어라!
비가 한번 쏟아지는데 양동이로 퍼부었다. 처음엔 점잖은 척 걸었지만 대책없는 빗줄기에 일단 앞에 보이는 농협 처마 밑으로 긴급 대피한다. 눈앞에 보이는 학관까지 불과 백여 미터. 그래도 뛰어갈 엄두는 나지 않는다. 단번에 물에 빠진 새앙쥐 꼴 되기 십상이다.
누가 우산을 함께 써줄 사람 없나? 아침 여덟 시. 학교에 올라오는 학생은 적다. 남학생도 퉁명스러운 학생도 많고 여학생 우산 밑으로 들어갈 수도 없다.
대책 없다. 그냥 비가 잦아들길 기다려 볼 밖에. 그 사이에 농협 직원분들 두셋이 나를 지나쳐 저쪽 통행문 뒤로 사라졌다.
ㅡ저, 우산 좀 빌려 주실 수 있을까요? 있다 가져다 드릴게요.
이 말이 입안에서 맴돌았다. 하지만 말을 붙일 용기는 나지 않았다.
그냥 이렇게 서 있는 것도 좋지. 오랜만에 좋은 비구경도 하고.
그때다. 건물 안으로 사라졌던 은행 직원 분이 우산을 들고 나타났다.
ㅡ왜 여기 서 계세요?
은행 셔터문 앞에 나는 서 있었다.
ㅡ비가 와서요.
ㅡ그러신 것 같아서요. 이 우산 안 갖다 주셔도 됩니다.
ㅡ앗. 고맙습니다.
그분은 내게 버젓하게 생긴 장우산 하나를 건네주고 돌아선다.
음.
그 비 많이 오시던 날 나는 또 한번 세상사를 익혔다. 남이 뭐라고 호소하지 않아도 내편에서 먼저 헤아려 주기. 이럴 수 있으면 세상은 살 만하다. 그렇지 않을까. 모든 일이 그렇게 돌아간다면.
/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 /삽화 = 이철진<한국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