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가기 버튼
오피니언

저 이런 사람입니다만….

박화진지킴랩 기업탐정본부장전 경북지방경찰청장처음 만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파악하는 일이란 만만찮다. 예고된 만남인 경우에는 직장, 지위, 세평 등 여러 정보를 가지게 되어 상대에 대해 어렴풋이 알게 된다.우연한 만남에서는 상황이 다르다. 상대에게 자신을 구구절절 소개하는 것, 상대방이 인내하며 듣고 있을 리 만무하고 예의도 아니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했던가? ‘oo물산 대표 홍길동’, ‘ oo부 국장 아무개’ 사회활동을 하는 사람 대부분은 자신의 직장, 직위, 이름이 새겨진 명함을 가지고 있다. 가벼운 인사말과 함께 ‘저는 이런 사람입니다’라는 명패 교환이 이루어진다. 눈길은 순간 상대의 이름 앞에 새겨진 수식어에 먼저 가게 된다. ‘기업대표군’,‘꽤 높은 나랏일 하는 사람이네’,‘쳇, 월급쟁이잖아’, ‘오잉, oo사!, 전문직 고소득자’ 짧은 시간 안에 인간상품 등급이 매겨진다.허름한 차림과 어눌한 말투 탓에 가볍게 대접받을 것 같은 사람이었다. 이름 앞 수식어 때문에 순식간에 상대로부터 겸양의 말과 상석을 양보 받는 간사한(?) 리액션이 펼쳐진다. 비난하거나 비아냥거릴 일은 아니다. 직업으로 등급 매겨진 인간역사는 유구하니까. 누구나 이삼만원 정도의 비용으로 100여명에게는 족히 뿌릴 수 있는 명함이 사회생활 기초용품이 된 지 오래다.명함이 어느 날 벼랑 끝에서 갈 길을 잃게 된다. 이직, 실직, 퇴직이 되면 이름은 있는데 이름 앞에 붙는 수식어가 날아가게 된다. 명함이 슬그머니 사라진다. 슬픈 눈동자의 소녀처럼 유폐된 자신을 바라보는 일상에 사람 만나기가 꺼려진다. 막상 알지 못하는 사람과 접촉하게 되면 구차해진다. ‘한 때 이런 사람이었습니다.’ 과거형 문장이 왠지 어색함을 넘어 비굴함마저 든다.퇴직한 선배와 조우한 적이 있다. ‘oo기획 감사 왕선배’ 새로 취업했다며 명함을 건넨다. 새로운 일자리로 뒷방노인 신세를 탈출했다는 사실이 부러웠다. 그런데 명함 뒷면에 노안이 원망스러울 정도로 읽기 힘든 빽빽한 활자가 가득 차 있었다. 현역시절 본인의 화려한 경력이 이력서처럼 빼곡히 순차적으로 새겨져 있었다. 제법 거물로서 활동했던 이력이 맨 위에 올라 있었다. 지금은 이런 일하지만 한때 ‘저 이런 사람이었습니다.’라고 메마른 성대로 최대한 힘을 주어 웅변을 내뱉는 것 같았다. 그의 빛바랜 투혼에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잊혀져가는 자신을 소개하는 친절한 방법을 구사하는 재빠른 재사회화의 기법을 마다할 이유는 없다. 명함에 새겨진 이름 앞의 수식어로 사람을 오롯이 등급매기는 세태가 현실이기 때문이다.‘oo엄마’의 실종된 명함은 어쩔건데? 전업주부들의 항의가 귓전에 아른거린다. 앞면에 ‘위대한 대한민국 전업주부 ooo’. 뒷면에는 ‘아들 둘 모두 현역병에 차출시킨 위대한 애국엄마, 찌질이 남편을 대기업 사장반열에 올린 내조의 여왕, 동네방네 정보수집과 밑바닥 민심을 샅샅이 꿰차고 있는 열혈 아줌마 등등’, 전업주부로서 화려하고 찬란한 직책과 이력을 새겨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눠주면 어떻겠습니까?(급 존대어를 쓰게 된다)

2020-08-18

떨어진 꽃 보기

박화진영남대 객원교수·전 경북지방경찰청장‘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열흘 넘게 피는 꽃은 없다. ‘권불십년(權不十年)’. 10년을 넘기는 권력은 없다. 아무리 화려한 꽃이라도 10일을 넘기지 못하고 나는 새를 떨어뜨린다는 권세 역시 10년 넘게 지속될 수 없다는 말이다.주역의 이치를 들지 않더라도 세상이 변한다는 것은 상식적인 일로 받아들인다. 아침 산책길에 철 보내는 꽃들이 이곳저곳 떨어져 있다. 몇몇은 즈려밟힌 자국들이 선명하다.화려한 날은 가고 사람의 발자국이 주홍글씨처럼 찍혀 있음에 울먹이는 것 같아 산책 내내 떨어진 꽃들이 눈에 밟힌다. 사람의 발에 밟히고 눈길에 외면당한 꽃의 말년이 안타깝기까지 하다.모진 긴 겨울 남몰래 버티고 새봄에 잠시 폼 좀 잡은 날이 겨우 10일이라니 야속한 마음이 들었을 듯하다. 사람들은 꽃이 겪은 지난겨울 인고의 시간을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화려하게 핀 모습을 즐길 뿐이다. 다가와 향을 맡는다.배경삼아 사진을 찍는다. 고운 자태에 감탄사를 연발한다. 언제까지나 곁에 있을 것 같이 그 가벼운 친근감을 맘껏 즐겼다. 짧은 몇 날이 가고 계절을 재촉하는 비바람에 뚝뚝 떨어져 길바닥에 나뒹굴게 된다. 언제 그랬냐는듯 사람들의 눈길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하는 신세로 전락한다. 사람 마음이 다 그런거려니 받아들이기엔 아쉬움과 회한이 밀려온다.하지만 이 또한 세상 이치다. 정승집 개가 죽은 경우와 정승이 죽은 경우가 다른 것이 세태다. 명심보감에 ‘주식형제 천개유(酒食兄弟 千個有), 급난지붕 일개무(急難之朋 一個無)’란 말이 있다, 술 마시고 밥 먹을 땐 형동생 하는 사람이 천 명이 넘는데 어려운 일을 당할 때 같이할 친구는 한 명도 없다는 말이다.잘 나갈 때는 너도 나도 친분을 과시하다가 정작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땐 사람이 썰물처럼 다 밀려가고 없다는 말이다. 세상인심으로 맞는 말인 것 같은데 왠지 서글픈 생각이 든다. 평소 너의 행실도 문제가 있어 그런 것 아니냐고 되받는다면 더욱 할 말을 잃고 비참함만 느끼게 될 뿐이다.인생살이도 꽃처럼 한 때 만개할 때가 있다. 나의 화려한 날은 언제까지나 지속될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이 만개한 꽃이 시들거나 떨어지듯 어느 시점엔 퇴락의 때를 맞이한다. 물론 때가 되어 물러남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지혜는 자신의 몫이다. 자연스러워야 할 퇴장의 시간이 백세시대를 맞아 때 이른 퇴장그늘로 짙게 드리우고 있다.정신적·육체적 활동 능력이 아직은 청장년같은 사람들이 퇴장의 긴 시간들에 시달리고 있다. 근교 산에 평일 등산객으로 출몰(?)한다. 출근시간이 훨씬 지난 시간에 산책로가 붐빈다. 평일 골프장 내장객으로 퇴장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은 제법 호사를 누리는 부류에 속한다. 아직 자녀들 교육과 독립을 위해 이곳저곳 2진으로 뛰어들어 남은 구간을 뛰는 처지가 되면 말년 삶이 신산함을 넘어 처량해진다.이제 나의 아름다움과 향기를 맡기 위해 몰려들던 상춘객은 어디에도 없다. 시들고 떨어진 꽃이지만 한 번 더 바라봐 줬으면 하는 바람뿐이다.한 때는 당신들이 좋아하고 열광했던 꽃이었으니 한 번 더 눈길을 줬으면 한다.

2020-05-19

감속 운행

박화진영남대 객원교수·전 경북지방경찰청장코로나19가 다소 소강상태였는데 갑작스런 유흥업소 전염이 다시 긴장감을 가지게 한다. 그럼에도 집안에서 장기간 움츠린 생활에 지친 사람들이 바깥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주말 근교 나들이 차량들이 도로에 점점 늘어난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던 시점엔 상습 정체지역이 오히려 차량 속도가 빨라지는 듯했다. 모임 연기 같은 사회적 속도가 느려지니 이동 흐름은 빨라지는 기현상이다. 그 기간 차량속도 변화에 대한 측정 자료가 있으면 코로나 전후 사회적 변화 현상을 알아볼 수도 있을 것이다. 몇 년 전 경찰이 최고 시속 100㎞의 고속도로 주행속도를 시속 110㎞로 상향조정한 적이 있다. 100㎞로는 도저히 성에 차지 않는 민심을 반영해야 했다. 나날이 성능이 좋아지는 승용차로 고속도로에서 시속 110km로 달리더라도 상당한 인내가 필요하다. 인내심이 부족한 사람들은 단속카메라를 벗어나면 울분을 발산이라도 하려는듯 총알처럼 날아간다.그런 광기를 달래기 위해 ‘구간단속’이라는 날렵한 방패를 세웠지만 여전히 역부족이다. 규정 속도로 주행 중인 내 차량 앞을 추월하여 쌩 내달리는 차를 본다. ‘×친 놈’이라는 상스런 말이 부지불식간에 툭 튀어나온다. 조금 느리게 가는 차가 내 차 앞을 주행하는 것에는 심한 더딤을 느낀다. ‘남녀가 노닥거리며 가는 것 같다’라는 근거 없는 빈축의 중얼거림을 하게 된다. 나도 모르게 속도 병에 걸려있는 것이다. 모든 운전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주행속도는 없는 것 같다. 주행속도는 생명과 직결되는 안전문제다. 준수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세상이 워낙 빨리 내달리니 뒤처질세라 너도 나도 내달리는 속도전이 가속화돼 왔다. 외국인들이 ‘빨리빨리’라는 말을 한국인의 속성을 대변하는 말로 여길 정도니 우리는 속도전에 강한 민족임은 맞다. 신속성의 무기로 한강의 기적을 이룬 것일 수도 있다. 퀵서비스와 ‘배달의 민족’ 시스템이 신성장동력으로 자리 잡은 것도 한국인의 신속성 취향에 딱 맞아 떨어졌기 때문일 수 있다. ‘좀 더 빨리’는 모든 경제활동의 구동력이 된 지 오래다. 신속성은 정확성과 충돌하게 된다. 건물붕괴, 다리붕괴, 지하철화재, 세월호사건과 같은 것도 신속성이 정확성을 짓누른 결과가 아닌가 싶다. 도로의 주행속도를 늦추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학교 앞, 노인보호구역 등 속도가 안전을 집어삼키는 것을 막으려는 조치다.느림의 지혜를 되돌아보게 된다. 바쁜 일상을 당연히 여기던 직장생활을 마감하고 퇴임 후의 일상이 다소 느려진 듯하다. 시속100㎞ 이상으로 내달리던 삶이 절반으로 뚝 떨어진 시속 50㎞ 생활이 되었다. 이렇게 느리게 달려도 되나 하는 불안감이 아직도 남아있다. 내 삶의 속도 병이 다 나은 것은 아닌 것 같다.코로나19로 세상의 속도가 줄어들고 있다. 빨리 회의하고, 빨리 물건 만들고, 빨리 돈 벌고 등등. 모든 일들이 뒤로 미뤄지거나 취소된다. 지구촌이 느려지고 있는 상황이다. 모두가 느려지면 느려진다고 느낄 수 없을 것이다. 치열한 생존 현장에서 벌어지는 탈(脫)인간화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감속운행도 좋은 묘수다. 뒤처진 자에게 희망을 주는 찬스가 될 수 있다. ‘천천히’를 약속하고도 다른 사람이 쌩하고 추월하면 어쩌지?

2020-05-12

꽃길을 걷게 되거든

박화진영남대 객원교수·전 경북지방경찰청장완연한 봄, 꽃들이 만개하고 군데군데 꽃길이 눈에 띈다. ‘길’이란 말은 중의적이다.‘꽃길’이란 말,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처럼 아름 따다 가시는 길에 뿌려진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이 있는 길이다.비유적으로는 일이 잘 풀리거나 좋은 일을 의미한다.반대되는 말로 가시밭길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꽃길만 걸어가세요.’라는 말이 인구에 회자된다.좋은 일만 생기기를 바란다는 덕담이다.대중가요의 노랫말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꽃의 아름답고 향기로운 이미지가 길이라는 단어에 덧붙여져 참 아름다운 말이 되었다.주변의 크고 작은 공원이나 아파트 단지에 있는 산책길을 걷다보면 길 양쪽으로 잘 가꿔 놓은 꽃길을 드물지 않게 만난다.산책하는 기분이 꽤 좋아진다.길에 뿌려진 꽃을 ‘사뿐히 즈려 밟고’ 가게 되는 길은 아니지만 꽃향기에 취할 수 있는 길이다.길 어귀에 ‘꽃길만 걸어가세요.’라는 글귀라도 마주치게 되면 덩달아 발걸음에 흥겨움이 더해지게 된다.그런데 길 귀퉁이에 웅크리고 앉아 길 단장에 여념이 없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관리하는 사람들의 분주한 손놀림이 보인다. 흥겨움에 젖어 걸어가는 꽃길은 그들에게는 노동의 현장이다.슬쩍 미안함이 밀려온다. 꽃길에는 그들의 땀이 녹아들어 있는 것이다.꽃길을 걸을 사람들을 위해 묵묵히 꽃길을 만드는 사람들이다.꽃길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잘 걸어가던 사람이 생각난다.큰 건물에는 건물 내외를 청소하거나 시설물을 관리하시는 분들이 있다.고용조건이 열악함에도 궂은 일을 하시는 분들이다.특히 청소일은 대부분 아주머니들이 한다.직장인들이 출근하기 전 이른 시간에 청소를 마쳐야하고 사무실은 물론 화장실, 복도 등 구석구석 청결을 유지하는 일은 쉽지 않은 노동이다.어느 날 아침, 계단을 오르는데 청소하시는 아주머니가 계단 끝에 달린 미끄럼 방지 요철물을 닦는 작업을 부지런히 하고 있었다.이물질이 끼어있어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그럼에도 아주머니는 열심히 닦고 광택을 내고 있었다.직원들의 출근길을 상큼하게 해줄 꽃길을 만든다고 볼 수 있다.출근시간에 쫓기는 사람들이 무심코 계단 끝을 밟고 지나가는 바람에 작업한 자리가 다시 더럽혀지곤 했다.그런데 요철부분을 밟지 않으려고 까치발을 하고 계단을 오르는 사람의 뒷모습을 보게 되었다.‘아주머니, 수고 많으시네요.’라는 아침인사까지 곁들였다.짧은 순간 일어난 일을 보면서 ‘꽃길을 잘 걸어가는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다.누구일까 얼굴을 보고 싶었지만 환하게 빛나는 뒷모습만 보았다.계단 끝 요철을 볼 때면 흐뭇한 기억으로 떠오른다.누구나 꽃길을 걷고 싶어 하지만 인생의 긴 여정을 가노라면 꽃길만 걷게 되지 않는다.설령 자신의 능력과 노력으로 걷게 된 꽃길일지라도 결코 혼자만의 꽃길이 아님을 알았으면 한다.산책길 가장자리 꽃처럼 누군가 소리 없이 꽃길을 단장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걸어가면 좋겠다.“딸, 아들아! 꽃길을 걷게 되거든 꼭 꽃길 만든 사람도 생각해라.”“저희 아직 가시밭길 가고 있습니다. 취업도 해야 하고….”

2020-05-05

족발정치

박화진영남대 객원교수·전 경북지방경찰청장먹지도 않은 족발사진을 SNS에 올린 국회의원 당선자가 사과를 하고 사진을 삭제하는 해프닝이 있었다.족발가게들로 유명한 선거구 지역에서 서민과 함께 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치며 ‘당선되면 1주일에 한 번씩 들러 족발을 먹겠다’는 공약을 성급히 이행하려다 자초한 망신이었다. 물론 직접 그 족발 가게에 들러 음식을 먹었지만 해당 사진은 보좌관의 보고를 믿고 남의 사진을 올렸다며 정중히 사과했다.역시나 정치는 쇼의 일종이라는 생각을 굳히게 된다. 직장인이나 서민에게 사랑받는 족발이 얼떨결에 본의 아니게 정치에 소환된 것 같다. 서울의 장충동 족발은 한국 족발의 대명사처럼 알려져 있다. 원조의 원조 경연이 이어지고 있는 장충동 족발골목. 한국 전쟁당시 피난민이었던 분이 북한의 족발과 중국의 오향장육 조리법으로 만든 것이 시초라고 한다.실향의 아픔과 그리움을 족발 한 점으로 달랬을 것으로 생각하니 손발 잘린 돼지의 아픔(?)보다 더 짠한 마음이 생기게 된다. 새우 장에 찍은 족발 고기 한 점을 상추쌈에 말아 꼭꼭 씹어 삼킨 뒤 소주 한잔으로 입을 가시는 소소한 식도락 일상은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재료로서 손색이 없다. 임산부들의 모유분비를 촉진시키고 여성의 피부미용에 좋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장수를 비는 국수와 건강을 비는 족발로 생일상을 차린다고 한다. 독일 사람들은 맥주와 즐겨 먹는 삶은 돼지정강이 부위 고기인 ‘아이스바인’이 우리의 족발과 흡사하다. 살인사건과 같은 강력사건이 발생하면 경찰서 강력형사들의 시간은 분주해진다.사건관계인, 기자들이 북새통을 이루고 형사들은 용의자 추적, 상부보고 등 끼니를 거른 채 밤을 지새우기 십상이다. 어느 경찰서 강력반 사무실. 밤늦은 시간에 야근으로 끼니를 거른 부하직원들을 위해 형사반장이 검정 비닐봉투 하나를 들고 사무실에 들어선다. 늦은 시간 반장의 출현에 형사들은 피곤한 눈총을 쏘며 반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막내 형사가 반사적으로 비닐봉투 꾸러미를 받아든다. 그리고 봉투를 벌린다. 야근하는 부하를 위해 야식을 챙겨온 상사에 대한 감동을 주체하지 못하고 다른 동료들이 들으라는 듯 큰소리 외친다.“반장님 웬 족발입니까?” 머뭇거리던 반장이 한마디 던진다.“글쎄, 왼쪽발인지 오른쪽발인지 잘 모르겠는데 맛은 있을거야”반장의 썰렁한 한마디에 장내는 족발 같은 구수한 웃음과 함께 밀려오던 피곤을 잠시 떨치게 되었다. 정치가 오른쪽, 왼쪽과 같은 편 가리기에 너무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념논쟁 속에 정작 국민의 가려움을 제대로 긁어주지 못할까 걱정이다. ‘왼쪽발인지 오른쪽발인지 모르겠지만 맛은 있을 거야’라고 했다는 형사반장의 말이 자꾸 되뇌어진다. 어떤 이념도 국민을 등 따습고 배부르게 하는 것보다 앞설 수 없다. 퇴근길에 족발 하나 사가야겠다. 소주 한잔 곁들여 사회적 거리두기 탓에 제 혼자 지나가는 봄바람 붙들고 세상다리 건너가는 얘기나 나눠야겠다.

2020-04-28

때(時)와 때의 공통점

박화진영남대 객원교수·전 경북지방경찰청장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들이 한국어가 어렵다고 한다.물론 오랜 시간을 투자하고도 잘 늘지 않는 영어도 우리에겐 만만치 않은 언어다.외국인 입장에서 한국어의 어려움을 생각해본다.‘배’라는 단어 하나만 보더라도 신체부위, 선박, 과일과 같은 동음이의어(同音異義語)를 외국인이 익히는 일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때’라는 단어도 같은 경우다.한자로 시(時)라는 의미와 사람의 몸에 붙어 있는 찌꺼기라는 의미를 가진다.한 때 소리는 같은데 의미가 다른 단어들이 썰렁한 아재개그 소재로 사용되기도 했다.말(言)과 말(馬)이 말장난 개그의 일반적 소재가 된 것은 익히 아는 일이다.한국인이라면 음의 고저장단이나 대화상황을 감안하여 비록 같은 음의 단어라 해도 그 의미에 혼란이 없을 것이다.한국어를 익히는 외국인에게는 대략 난감이겠다.그런데 전혀 다른 의미의 ‘때’라는 단어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니 꽤 공통점이 있어 보인다.바닷가 작은 포구에는 썰물 때 갯벌에 삐딱이 누워있는 고기잡이배가 있다. 밀물이 밀려와야 뜰 수 있다.‘때(時)를 기다려라’는 말을 실감케 된다.썰물인데 먼 바다로 나가려면 그 배를 갯벌위에서 밀고 나가야되는데 현실적으로 어렵고 꼭 나가야한다면 대단히 힘든 작업을 해야 한다.공중목욕탕에서 목욕관리사에게 때를 밀 때 탕에서 몸을 불리는 절차가 있다.급한 마음에 바로 때를 밀어달라고 하면 때가 잘 밀리지도 않아 두 사람 모두에게 힘든 작업이 된다.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목욕탕의 흐릿한 조명아래 잡티나 검버섯과 같은 것을 때인 줄 알고 밀다가 피부가 따가운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이 역시 때가 아닌 것에 대한 부작용으로 본다면 지나친 갖다붙이기일까? 때가 되지 않았는데 서둘러 어떤 일을 성취하려는 경우에 이런 저런 폐단이 생긴다.직장에서 승진도 적당한 때에 해야 좋다고 한다.성과와 능력에 과분하게 지나친 승진욕심으로 무리해서 때 아닌 승진을 하면 뒤탈에 시달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최선을 다하고 하늘의 명을 기다린다는 말 역시 때를 기다리는 삶의 지혜의 다른 표현일 것이다.선거가 끝났다. 승자도 있고 패자도 있는 게임이었다.승자의 축배 소리가 귀에 거슬리는 소음으로 들리며 석패의 분루를 삼키는 후보자와 그들을 지지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게임의 공정성에 대한 의심의 눈길과 남 탓하기에 혈안이 되어 있기도 할 것이다.사람 사는 세상이기에 있을 수 있는 감정표출이다.하지만 한발치만 물러서서 생각하면 오늘의 패배가 결코 영원한 패배가 아니라는 자기위로가 가능하다.아직 ‘때(時)가 아니다’, ‘때가 덜 불어서….’라는 말로 재기를 꿈꾸면 된다고 본다.패인을 분석하고 보충하여 나를 위해 기다리는 때(時)를 만들면 될 것이다.사회 초년병 시절, 승진시험에 물을 먹고 풀죽어 고개 떨군 채 복도를 걸어가는 나에게 ‘사람은 다 때가 있는 법’이라고 한 상사의 말이 다시 생각난다.그리곤 잠시 뒤 “박 반장! 그런데 그거 누가 한 말인지 아는가? 목욕관리사 말이라네.”

2020-04-21

쉘 위 악수?

박화진영남대 객원교수·전 경북지방경찰청장‘쉘 위 댄스’ 춤추실래요? 감미롭고 낭만적인 말이다. ‘쉘 위 악수’ 악수 가능하세요? 공생을 위한 몸부림의 말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변한 생활 패턴 중 하나가 악수하는 것을 주춤거리는 것이다. 가장 효과적인 방역 방법이라는 ‘사회적 거리두기’에 대한 경각심이 일상화 되고 있다. 신체적 접촉 행위인 악수 관행이 타격(?)을 입고 있다. 평소처럼 손을 내밀다가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서로 눈치를 보게 된다. 현대인의 악수는 만남의 전위행위이다.악수란 신체적 접촉행위로 친근감과 신뢰감을 표시한다. 더하여 서로의 온기를 느낄 수 있어 그 유래에 비해 간편하고 좋은 인사 방법이다. 악수는 손에 무기가 없다는 표시로 상대방에 대한 적의가 없음을 표시하는 행위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무기는 오른 손으로 잡으니 악수는 오른 손으로 하는 것이 원칙. 또한 전쟁행위는 주로 남자들이 하니까 악수는 두 남자의 행위였다고 한다. 연장자, 상사, 여성이 먼저 청하는 것이 악수예절이다. 선거철이면 선량 후보자들이 갑자기 친한 척하기 시작한다. 유권자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며 표를 호소한다. 대선주자급이면 너무 많은 사람과 악수를 하여 손이 퉁퉁 붓고 밤이면 그 통증에 시달린단다.그 통증이 대수랴? 한 표가 중요한데. 선량 후보자들은 유권자들과 악수를 하다가 보면 감이 온단다. 그래서 더욱 악수에 매달리게 된다. 악수와 목례의 반복행위를 하는 선량후보자들의 눈길을 살펴본다. 그들이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선량의 마음인지 표를 얻기 위한 제스처인지. 악수하는 사람과의 눈맞춤에서 진심어린 마음을 나눌 수 있을 터인데 눈길은 다음 악수할 사람에게 미리 옮겨가 있는 것을 보게 된다. 표를 얻기 위한 쇼를 하는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이 든다. 권위주의 시절 사관학교나 경찰간부 임용식 예행연습이 떠오른다. 정부의 고관들이 참석하는 행사에서 신임장교나 초임경찰 간부들이 고관들과 돌아가며 악수를 하는 순서가 있다.‘손은 잡는 듯 마는 듯할 것이며, 눈은 상대의 인중을 봐야한다’는 엄격한 악수통제로 예행연습 때 진땀을 뺀 적이 있다. 악수가 친근감과 격려의 표시보다는 충성서약을 하는 의식이었던 것 같다.몸에 밴 일상속의 악수가 코로나 바이러스사태로 변이를 일으키고 있다. 손바닥을 펼쳐서 무기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던 행위가 전염이 두려워 주먹을 쥐고 서로 마주치는 것으로 바뀌고 있다. 현재 상황을 서로 의식하고 공유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이 있다. 하지만 주먹을 상대방에게 보인다는 사실이 자칫 전투태세를 연상시킨다. 가뜩이나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인사가 전투적으로 변하는 건 아닌가하는 감정비약까지 하게 된다. 상황의 위중함을 감안하면 손을 잡는 악수가 주먹을 치는 인사로 바뀌는 것이 당연한 일일지 모르겠다. 일상의 무료함을 달래려는 ‘쉘 위 댄스’ 영화 제목처럼 ‘쉘 위 악수’라는 말로 상대방의 동의를 얻고 악수하는 불편을 감수하거나 주먹치기하는 어색한 인사를 피하려면 코로나 바이러스 조기종식을 위해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접촉을 삼가는 사회적 거리두기에 올인 하는 게 낫겠다. ‘쉘 위 사회적 거리두기’.

2020-04-14

커피에 관한 짧고 얕은 지식

박화진영남대 객원교수·전 경북지방경찰청장‘지옥처럼 검고, 죽음처럼 강하며, 사랑처럼 달콤하다’는 커피. 커피가 우리의 일상을 차지한지 오래다. 손에 커피를 들고 식후 시간을 나누는 직장인들의 모습은 도시의 한 풍경이 되었다.들녁에서도 막걸리로 축이던 목을 커피로 대신하고 있으니 커피제국이 된 것 같기도 하다. 커피의 최초 발견은 에디오피아. 염소가 따먹는 열매에서 발견했다는 것이 정설이다.‘모카커피’는 예멘 모카항을 경유하는 커피의 대명사였다고 한다.오스트리아 빈에 가서는 비엔나커피를 주문하면 모른다고 한다. 아인슈패너라고 해야 한단다.이슬람 음료였던 커피를 기독교인들은 초기에는 ‘악마의 음료’라고 금지령을 내려 못 마시게 하려했으나 오히려 교황이 맛을 보고 세례를 주었다는 얘기까지 전해진다.터키에서는 남녀가 선을 보는 자리에 대접하는 커피 맛으로 혼인을 맺을지 의사표시를 하는 문화가 있다고 한다.미국인들의 커피는 남북전쟁 당시 군용품으로 보급되었다고 한다.각성효과와 잠을 쫒아 병사들의 전투력을 높이는 것으로 인식되었다.미국 커피박물관에는 소형 커피드립기를 장착할 수 있는 소총이 전시되어 있다고 하니 커피는 중요한 군용품이었던 것이 맞는 것 같다.커피 이름에는 에스프레소(빠른제조), 카푸치노(머리두건), 마키아토(얼룩진), 아보카도(퐁당 빠진 덩어리) 등등 이탈리아어가 많다.이탈리아 사람들은 에스프레소를 커피의 원형으로 알고 마신다.미국사람들이 물을 타서 연하게 마시는 것을 보고 아메리카노라 불렀다는데 고증된 이야기인지 모르겠다.한 겨울에도 한국 젊은이들의‘얼죽아(얼어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마시기는 또 다른 패기와 발랄함이다.커피를 마시는 공간 카페는 초창기에는 사회적 논쟁과 교류의 장이었다.철학자 사르트르가 카페 드 플뢰르에서 사유하고 볼테르가 하루 40잔씩 마시며 혁명의 이념을 고뇌한 곳도 커피를 마시는 공간 카페 드 프로코프였다.학생들의 공부방이 되어 여유보다는 치열한 삶의 전투장으로 변해가는 오늘날 우리의 카페모습과 대비된다.커피에 대한 느긋한 인문학적 고찰에도 불구하고 아동착취나 문화제국주의와 같은 그늘짐에 대한 논쟁은 끊이지 않고 있다.얼마 전 커피전문점 개업에 대한 규제를 알게 되고부터 마냥 호사를 부리기에는 마음 한 곳에 무거움이 있다.시장점유율이 확장일로에 있는 외국 유명브랜드 커피전문점은 직영체제로 거리제한 없이 개업을 할 수 있다고 한다.가맹점 체제인 국내 토종 브랜드 커피전문점은 골목상권 보호차원에서 신규 지점 개점은 기존 점포와 거리제한을 두고 있어 고전을 한다는 뉴스를 접하게 된 것이다.선거철이다. 선량후보자들이 ‘손톱밑가시’, ‘전봇대’라며 규제철폐를 외치는 화려한 수사로 공약을 남발할 것이 아니라 불합리한 규제 철폐를 위한 진지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커피전문점 개업규제처럼 짧은 지식이지만 알고 나면 단순하게 즐기며 마시는 커피라도 의미를 더할 수 있을 것이다.그런데 “토종 커피브랜드는 어떤 게 있는 거지? 다 외국말인데?”

2020-04-07

적자생존 단상

박화진포세이스트·전 경북지방경찰청장코로나19 사태로 2020년 봄의 모든 일상이 우선멈춤 표지판 앞에 섰다. 화사한 봄꽃 향기도 우울감에 휘청거린다. 부대끼며 정 나누고 살아가기 좋아하는 우리 이웃들에게 ‘거리두기’는 고통 아닌 고통이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다보니 집안 구석구석 묵은 때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참에 봄맞이 집안 대청소를 해본다.책장 한쪽에 종갓집 된장독마냥 의뭉하게 떡 버티고 있는 것들이 보인다. 35년 공직생활 내내 아귀처럼 붙어 다니던 업무수첩 뭉텅이다. 1년에 한두 권 쓰게 되니 줄잡아 50여권이 된다. 입직한 첫 해인 ‘1986년’ 이라고 표시된 빛바랜 업무수첩 한 권을 집어 들고 슬며시 겉장을 넘겨봤다.사회 초년병으로서 다짐의 글을 시작으로 빼곡히 받아쓴 상사들의 지시사항, 처리할 업무, 군데군데 일상의 고단함을 푸념하며 내뱉은 낙서 조각들이 낯설지 않다. 세월의 편린들이 돌탑처럼 하나둘씩 위태롭게 쌓여 있다. 반평생 삶의 찌든 때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전근으로 이사를 다닐 때나 해외근무를 하면서도 귀한 골동품처럼 한 권도 빠짐없이 가지고 다녔다. 구닥다리 같은 짐이라며 폐기하거나 스캔하여 보관하라는 가족들의 타박에도 아랑곳 않고 지금까지 소장(?)하고 있다.역사라는 소명의식도 한 몫 했다. 직장인들의 업무수첩은 적자생존(適者生存이 아닌 ‘적는 자가 살아남는다’)의 치열한 도구다. 상사의 지시나 해야 할 업무를 적지 않고 있다가 깜박하고 놓친다는 것은 스스로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일이다. 적어도 내가 경험한 바로는 공직자들은 유난히 열심히 적는 편이다.상사의 입이 구동되면 바로 적기모드에 돌입한다. 적지 않고 머릿속에 저장한다는 것은 심히 불경스러운 일로 간주될 수도 있다. ‘네가 내 말을 가볍게 생각하는 거지?’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간 큰 부하가 되기 때문이다. 상사의 시선 회피용으로 맹렬한 눈빛을 업무수첩에 쏟아 붇기도 한다. 경쾌하고도 꼼꼼한 손놀림은 당연히 보조 작동한다. 반도 위쪽 땅에서 나이 어린 최고 존엄의 말을 한 단어도 놓치지 않겠다며 메모장을 들고 따라 다니는 노구의 모습이 겹쳐져 괜한 웃음이 돈다.잘 나가던 적자생존의 법칙이 철퇴를 맞은 적이 있다. 고위공직자 메모수첩이 형사사건의 결정적인 증거물로 되었다. 적자생존 법칙이 적자창살 법칙으로 변질되었다. 이후 공직자들이 업무관련 된 일을 잘 적지 않는다고 한다.머릿속의 기억으로 남기든 적더라도 일을 처리하고는 바로 폐기한다고 한다. 아예 시비 거리를 남겨두지 않으려는 풍조가 된 것이다. 공직자의 업무수첩은 개인사이면서도 역사적 기록이 될 수 있다.비록 비공식적 개인기록일지라도 사료적 가치가 있을 수 있다. 기록을 하지 않는 민족은 역사가 없다고 하는 데 안타까운 현실이다. 막연한 두려운 생각으로 기록을 주저하거나 폐기하는 일은 말았으면 한다.나의 저 의뭉한 뭉텅이들도 이번 기회에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시대 상황에 맞게 스캔해서 디지털 기록으로 보관해야겠다. ‘한쪽 귀퉁이에 적자망신살만한 흔적들이 보이면 지워야 되나? 문화재 훼손은 처벌받는데….’

2020-03-31

드라이브 스루와 던지기 수법

박화진영남대 객원교수·전 경북지방경찰청장“이번 주말 맞선이 있는데 아직 장소를 못 정했어. 사람이 많이 드나드는 호텔이나 카페에서 하기가 좀 꺼림칙해!”“드라이브 스루로 하면 어때?, 수어 몇 가지 익혀서 주차장 넓은 곳에 차 세워두고 차안에서 창문 조금 열어 둔 채 서로의 의사를 전달하면 어떨까? 어차피 마스크를 끼고 있어서 의사소통은 쉽지 않잖아.”지나친 과장일까? 맥도날드 가게에서 차를 타고 음식을 사는 ‘드라이버 스루’가 역수출되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 검사를 위해 피검사자가 차에서 내리지 않고 검사를 받는 것을 미국에서 벤치마킹하겠다고 한다. 피검사자와 접촉을 최대한 줄이는 방법으로 효율성과 신속성을 한꺼번에 해결하는 방법이다. 한민족의 순발력과 현실적응력을 세계에 과시한 듯해 으쓱해진다. 포항지역에서 전국 최초로 드라이브 스루로 횟감을 사고파는 재치를 보였다. 여러 가지 드라이브 스루 생활 패턴은 당분간 이어질 것 같다. 112순찰차로 순찰을 시작하던 시절이 떠오른다. 지금과 같은 112순찰차 제도가 도입되기 전 경찰의 순찰활동은 주로 도보, 자전거로 이루어졌다. 주민들과 대면 접촉 할 수 있는 도보, 자전거 순찰은 당시로서는 가장 효과적인 순찰제도였다. 범죄의 기동화, 광역화 추세에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 순찰차 도입이 시급했고 대체로 지금까지 잘 정착된 순찰제도가 되었다. 하지만 순찰차 안에서 차창을 통해서 하는 순찰로는 지역주민과 거리감이 있게 된다. 좀 더 깊이 있게 지역 치안사정을 파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도보순찰을 하면 순찰 중 만나는 지역민과 이런저런 대화로 구석구석의 치안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 순찰차 순찰은 이런 점이 다소 소홀해 질 수 있다. 그래서 112순찰차량으로 순찰을 하더라도 일정시간은 차량에서 하차하여 근무하는 형식으로 보완하기도 한다. 하지만 도보순찰의 대면접촉만큼 될 수 없다. 광활한 관할과 기동성 있는 대응을 위해 일찍이 순찰차 제도를 도입한 미국에서는 차창 안 순찰에서 차창 밖 순찰을 권장하고 있다고 한다. ‘던지기 수법’이란 마약거래 범행 수법이 있다. 수사기관의 감시를 따돌리기 위해 대금을 차명계좌로 송금을 하고 물건(?)은 일정한 장소에 두고 매수자에 알려주어 찾아가게 하는 방법이다. 최대한 서로의 접촉을 차단하여 감시의 추적을 피하려는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로 배달음식도 현관에 두고 가게 한다고 한다. 앞으로 현관도 안심치 못하겠다며 소독기능이 있는 배달함을 아파트 입구에 설치하고 찾아가게 하는 신종 던지기 배달법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접촉에 대한 공포심 확산이 걱정이다. 코로나19 사태로 어떤 생활 패턴이 또 생길지 궁금하다. 악수로 반가움을 표시하던 인사가 손등치기나 심지어 발을 치는 농담반 진담반 행동들이 웃픈(웃기면서도 슬프다)현실이다. 엉덩이 치기로 발전해서 혹시 성희롱 문제까지 비화되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기우이길 빈다.

2020-03-24

색깔 이야기

박화진영남대 객원교수·전 경북지방경찰청장봄이 성큼 다가왔다. 코로나19도 봄을 이기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벚꽃, 개나리 꽃망울들이 봄의 전령사를 자처한 듯 꿈틀거리더니 어느새 만개하고 있다.연푸른 나뭇잎 사이로 새색시 볼 같이 피어오르는 분홍 빛깔에 쑥스럽게도 중년의 가슴이 살며시 설렌다. 병아리 속 털 같은 노란빛 꽃들을 보노라면 코로나19 시름마저 잊게 해준다. 머지않아 형형색색의 꽃 잔치가 펼쳐질 것 같다.사회적 거리두기 같은 심리적 고립감을 동네 주변 봄꽃들을 보면서 탈출해봄직하다. 봄가을 꽃이나 낙엽의 색깔을 보고 있노라면 어떻게 저런 고운 색깔을 내는지 궁금해진다.사람이 보고 느끼는 색깔은 물질이 가진 근원에 굴절된 빛이 시신경을 통해 뇌가 인식하는 구조라고 한다. 그렇게 인식되는 색들은 자연에서 내뿜는 본연의 색은 아닐 것이다.어떤 뛰어난 화가도 자연의 천연색을 담지 못한다고 한다.인상파 화가들도 자연의 색을 담지 못한 한계에 부딪쳐 새로운 색과 빛을 창출한 것 아닐까 싶다. 자연의 위대함에 경외감이 들게 된다. 하지만 색깔에 이념이 채색되고 있다.자연의 아름다움과 순수함이 퇴색되는 시대가 된 것 같다. 색이 원치 않는 편 가르기에 동원되었다. 열정과 사랑의 상징이었던 붉은색은 공산주의자의 피의 혁명을 상징했다. 자유진영에서 거부감을 가진 적이 있다.이를 꼬집고 이야기하면 색깔논쟁으로 비화된다. 희망과 따뜻함을 나타내던 노란색이 진보의 가치를 내세우던 정당의 상징색이 된 적이 있다. 보수진영으로부터 반감을 갖는 색으로 된 인식의 변질도 있었다.오랫동안 보수성향 정당이 누리던 파란색이 진보성향 정당의 상징색으로 채택되는 아이러니도 경험하고 보니 색에 덧칠해진 이념은 고착되는 것은 아닌가보다. 색깔을 통한 소속과 정체성 알리기가 더욱 가열되고 있다.경선에서 탈락하고도 무소속 출마를 강행하는 후보자는 이전 소속 정당 색의 근사치 색으로 덧칠한다. 정체성이 완전히 다르지 않다는 것을 역설한다. 색(?)들의 전쟁이다. 그래서 선거철에는 자리에 따라 옷차림조차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속칭 ‘깔맞춤’(색깔맞춤)을 해야 한다. 남자들은 넥타이 색깔 고르기까지 신경을 써야한다고 하니 씁쓸한 기분이 든다. 색의 상징화가 권력투쟁의 치열한 도구가 되었다. 색으로 이념을 세뇌시킨다.자연이 준 순수한 아름다움에 취할 행복감을 박탈하는 결함을 가진다. 색으로 편 가르기 하는데 휘둘려 봄의 아름다움을 놓치지 말아야겠다. 코로나19로 거리의 색이 변하고 있다. 현란한 채색의 도심이든 시골의 한적한 동네든 사람이 있는 곳에는 직사각형 작은 흰색이 움직이고 있다.순결과 청결을 상징하는 흰색이다. 중환자들이 감염되지 않기 위해 착용하던 마스크를 많은 사람들이 착용하고 다니는 모습. 온통 중환자들이 거리를 다니는 것 같다. 흰색에 대한 혐오증을 불러일으킬까 걱정된다.우울감이 더해간다. 고생하는 흰색에게 순결과 청결의 고귀함을 빨리 찾아주고 싶다. 마스크 앞면에 스마일 표시라도 해서 오가는 사람들이 ‘씨익’ 눈웃음이라도 나누었으면 좋겠다.

2020-03-17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주름살

박화진영남대 객원교수·전 경북지방경찰청장“나도 보톡스 좀 맞아야겠어요.”(먼 쓸데없는 소리고?)쌩하고 날아오는 아내의 원망어린 말(言)화살을 한번쯤 맞아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처녀시절 곱디고운 얼굴이 당신하고 살면서 다 망가졌다며 들이대는 고소장 같은 느낌이 든다. 여성의 경우 나이 들고 있음을 가장 잘 알게 되는 것이 목둘레에 슬며시 찾아드는 주름살이란다. 남자 역시 비갠 날 지렁이 지나간 자국 같은 인생 계급장이 벗겨진 이마 위에 쌓여간다. 남자든 여자든 노화현상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할 일인데도 그다지 즐겁지 않다. 특히 영원토록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싶은 여성의 경우에는 더 그런 마음일 것이다. 쌓여가는 주름살을 보노라면 ‘그 동안 멀 해놨지?’하는 회한과 자괴감이 밀려오게 된다. 성형 열풍에 부응하여 주름살을 살짝 제거해 볼까하는 유혹에 빠져든다. 하지만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 부모로부터 받은 신체를 소중히 여기라는 공자님의 지엄한 말씀에 눌려 감히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살았다. 세계 최고의 성형수술 실력을 자랑하는 이 땅에서 쌍꺼풀, 코, 입 나아가 원판을 갈아치울 수 있는 호시절에 옆지기의 주름살 정도는 지워줘야 할 것 같다. 2+1원 옵션을 받아 슬쩍 같이하면 더 좋을 듯하다. 부작용으로 그나마 있던 밑천(?)마저 탕진하면 어쩌지 하는 마음을 떨쳐버리고 과감하게 한번 시도해보자고 마음먹는다. 가정의 무궁한 평화를 위해서 옆지기의 손을 잡고 보무도 당당하게 병원 문을 박차고 들어가야지 다짐해본다. ‘나이 먹으면 얼굴에 주름살 생기고 허리 굽어지는 거 자연스러운 거야.’ 지난 날 어른들의 말씀이 뒷덜미를 잡는다. 오! 자연미, 위대한 철학자 루소도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하지 않았는가? 자기합리화를 하고 또다시 물러선다. 자연스럽다는 것은 어떤 의미로든 좋게 받아들여질 일이다. 얼굴의 주름살도 열심히 살아온 자신의 아름답고 값진 훈장으로 여긴다면 굳이 성형으로 제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그런데 며칠 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값진 주름살을 보게 됐다. 코로나19 전염 차단에 사투를 벌이는 젊은 여성의료인 두 사람의 이마에 생긴 주름살이다.(평소에는 분명 주름살이 없었을 것이다) 30대 중반의 나이로 보이는 두 여성 의료인은 장시간 마스크와 방호복을 착용한 탓인지 방호모자의 끈에 눌린 이마에 주름살이 생긴 것 같았다. 땀에 젖은 얼굴과 흐트러진 머리카락, 이마에 강제로 생긴 주름살의 지친모습이었다. 하지만 보톡스를 맞아 어색하게 펴진 세상의 어떤 얼굴보다 아름다고 값진 모습으로 보였다. 대구 경북지역으로 전국의 의료진들이 자원봉사를 위해 모여들었다고 한다. 갓 임관된 간호장교들이 전부 코로나19 차단 현장으로 뛰어들었다고 한다. 이들이 진정한 대한민국의 영웅이다. 위기 상황에 몸을 던져 희생하는 사람이 있기에 세상은 살만하다. 여성의료진의 이마에 맺힌 땀과 주름살 자국에 대한민국의 미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짝! 짝! 짝! 격려박수를 보내본다.“제 주름살도 만만찮은 것이거든요!” 옆지기의 말이다.

2020-03-10

거리두기

박화진영남대 객원교수·전 경북지방경찰청장국토가 좁다는 것을 평소에는 잘 느끼지 못하고 살다가도 주차공간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면 나라 땅덩어리 좁은 탓을 하게 된다. 아파트, 백화점, 빌딩, 상가할 것 없이 주차 공간부족으로 웬만해서는 한 번에 주차를 하지 못한다. 다들 바쁜 일상 탓인지 주차의 불편을 감수하면서 살아가는 것 같다. 절대 공간이 부족하니 차량 1대가 차지하는 면적이 필요최소한으로 구획되어 있다. 주차장의 옆 차량과 주차간격이 차문을 열고 한 사람이 겨우 빠져나올 정도로 협소하다. 짐이라도 가지고 내릴 땐 고도의 유연성이 요구된다. 옆 차량이 운전석 쪽 경계선에 치우쳐 주차되어 있을 경우엔 아예 운전석 출입문 하차를 포기해야한다. 사이드 브레이크 손잡이에 엉덩이가 찔리지 않도록 월담하여 조수석 출입문으로 내릴 때면 온 몸에 땀이 밸 지경이다. ‘체중을 줄여라’는 가족의 애정 어린 충고까지 감수해야한다.옆 차량 운전자의 무사려(無思慮)에 대한 비난을 뱉어본들 갈 길이 바쁘기에 못이긴 척하고 넘어간다. 진짜 낭패는 양쪽 주차경계선을 기준으로 정중앙에 주차하고도 후발 주차 차량의 거리두기 실패의 경우다. 추운 겨울날 한밤중 차를 빼라는 연락을 받았을 때의 억울함을 어디 가서 하소연하겠는가? 네 탓이란 증거 찾기의 수고로움을 감내하며 원흉을 끌어내 한밤의 결투를 벌일 수는 없지 않은가? 침략전쟁으로 영토를 넓히지 않는 이상 운전자의 양식 있는 주차습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후진으로 자로 재듯이 정중앙에 주차하여 옆 차량과 정확한 거리두기를 해야 한다. 쉽지 않은 작업이다. 30년 운전경력에도 후진 주차에 젬병인 나 같은 사람은 늘 전·후진을 몇 번하는 불편을 안고 살 수 밖에 없다. 별것 아닐 것 같지만 주차간격을 유지하는 것은 함께 살아가는데 지켜야할 일종의 에티켓이다.‘팔길이(arm-length)’라는 말이 있다. 영화관이나 운동경기장 관람석에서 팔을 함부로 벌려 옆 사람에게 불편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라는 말로 쓰인다.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면서 서로에게 상처나 스트레스를 주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적당한 간격을 두고 지내야 된다는 말로 해석되기도 한다. 이처럼 사람과 적당한 거리두기는 생활의 지혜이며 때로는 규칙이다.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로 사람사이 거리두기가 관심거리다. 비말(침)로 전파된다는 속성으로 마스크로 예방을 한다고 하지만 그래도 미심쩍어 적당히 거리를 두고 대화를 해야 한단다. 전문가들은 방역당국이나 의료진들만으로 한계가 있으므로 증상이 있으면 자가에 머물도록 하고 회식과 같은 사회적 활동을 최대한 자제하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통해서 전파를 막도록 해야 한다고 한다. 연인들도, 금슬 좋은 부부도 서로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 전에 눈물을 머금고 당분간 적당히 떨어져 있는 게 좋을 것 같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빨리 종식되기를 갈망한다. 위기 때마다 불굴의 의지와 지혜로 극복했던 한민족의 저력을 이번에도 보여줄 것으로 믿는다.

2020-03-03

개, 돼지가 고(告)함

박화진전 경북지방경찰청장‘민중은 개, 돼지다’라는 막말로 비난 여론이 들끓어 어떤 고위 공직자가 곤욕을 치렀다. 잊을만하면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말이다. 정치인 등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그릇된 행태에 대해 일반국민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비판할 때 자주 인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을 ‘개, 돼지’라고 빗대는 표현은 말하기 뿐 아니라 듣기도 거북하기 짝이 없다. 국민의 의식이나 수준을 비하하는 말의 극치다. 개와 돼지의 말을 엿듣게 되었다.개 : 너 인간들에게 잘 못한 거 있냐?돼지 : 글쎄, 특별히 잘못한 거 없는데 너는?개 : 나도 하느라고 했어!개·돼지 : 인간들이란…. ㅠㅠ“살아서는 냄새나는 집에서 열악한 환경마다 않고 주는 대로 불평 없이 열심히 먹어주고 부위별로 육질 좋게 만들어 죽어서 충성하잖아. 고사 상에서는 힘든 거마다 않고 웃으며 분위기 띄워주지. 뼈가 으스러지면서 진국 만들어주는 건 어떻고? 심지어 발이 뚱뚱 부어도 분칠해서 인간들 입 즐겁게 해주고. 어떤 인간들은 껍질이 쫄깃하다며 술 마실 때 꼭 찾잖아. 이 정도면 하느라고 한 거 아니야?” 돼지의 하소연.“참 고생 많네. 나도 마찬가지야. 발가락 날아갈 거 감수하며 비무장지대 지뢰밭 누벼야지, 지진이니 건물붕괴 현장에 코 들이대며 피 냄새 맡아야지, 역겨운 폭탄, 마약 냄새는 어떻고. 심지어 낙하산타고 적진에 뛰어들어 자폭하는 일도 우리 할 일이거든. 꼴랑 사료 한 주먹 챙겨주고는 갖은 포즈로 사진 찍게 만들지. 밖에서 짜증난 일 있는 인간들 집에 돌아오면 내 기분 팽개치고 꼬리 흔들어 줘야지. 보신하겠다고 삶아먹는 인간들은 어쩌고?” 개의 맞장구.말은 그 사람의 품격이다. 무심결에 날린 말들이 칼보다 상처를 깊게 한다. 들녘을 순시 중이던 황희 정승이 누렁이 두 마리가 밭을 가는 것을 보고 농부에게 물었다. “두 마리 중 누가 더 일을 잘하느냐?” 농부가 황희정승에게 다가와 귀에 말로 속삭였다. 멀리서 얘기해도 될 일을 다가와 귓속말을 하는 농부가 의아스러워 물었다. 그러자 농부는 일을 부려먹는데 짐승이라도 알아들을 수 있으니 귓속말을 해야 된다고 했다. 일개 농부였지만 황희정승은 농부의 사려 깊음에 감탄했다는 익히 아는 일화가 떠오른다. 선거철이다. 상대 후보에 대한 무분별한 말 비방이 걱정된다. 특히 품격 떨어지는 말 사용은 안했으면 한다. 정정당당하고 품위 있는 대결로 국민들에게 믿음을 주는 선량들이 탄생하기를 기대해본다. 말 못하는 짐승일지라도 따져보면 인간에게 유익한 존재가 되기도 한다. 하물며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됐다는 인간을 향해 선거 때문에 상스러운 말을 해서는 되겠는가? 세상을 살맛나게 하겠다는 선량후보자들이 오히려 말 팔매질로 세상을 혼탁하게 하지 말았으면 한다. 지금 그들의 입을 통해 듣고 싶은 말은 “우린 이겨 낼 수 있습니다. 힘내십시오.”, “위기 때마다 대한민국 국민은 힘을 합쳐 헤쳐 나갔습니다!”와 같은 말이 아닐까 싶다. 잘들 하시겠지만.“사는 것도 팍팍한데, 삼겹살에 소주 한잔 할까?”, “아니, 몸도 허해졌는데 보×탕 한 그릇 하지!”개, 돼지라는 말, 사람을 향해 함부로 빗대어 쓰지 말았으면 좋겠다.

2020-02-25

‘기생충’ 찬스! “애비야, 머라카노?”

박화진전 경북지방경찰청장‘기생충’ 아카데미상 4개 부문 석권, 92년 오스카상에 처음 있는 외국어 영화의 수상! 세상의 모든 수식어를 동원하더라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는 일이다. 얼마 전 70세를 훌쩍 넘기신 숙모님을 모시고 영화관을 찾았다. 인기리에 상영 중인 ‘남산의 부장들’이란 영화를 선택했다. 숙모님과 함께 역사적 사건이 있던 동시대에 살았기에 비록 영화적 픽션이 가미되었지만 몰입도는 상당했다. 영화 중간 중간에 숙모님은 “애비야, 머라카노?”라며 놓친 대사를 물으셨다. 노령에 따른 약간의 난청과 빠른 대사 때문이다. 숙모님보다 더 난청인 나 역시 효과음이 깔린 대사는 놓치기 일쑤다. 그런 탓인지 모처럼 몰입하며 본 영화의 감흥이 오래 가지는 않았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평소처럼 편치 않은 마음이 밀려왔다. 영화내용 때문이 아니었다. 어느 날 불쑥 40대의 나이에 난청이 찾아왔다. 보청기를 착용해야 할 정도의 난청, 기계적으로 증폭된 음으로 듣게 되니 뇌의 청각작용과 달리 모든 소리를 듣게 되어 혼음현상이 있다. 효과음이 깔리는 영화대사를 듣는 것과 같은 것은 청취에 지장이 생긴다. 영화대사나 음악을 정확하게 듣는 것은 작품 감상의 중요한 요소다. 난청이 있는 사람들은 결국 작품성에 상관없이 보통 사람들보다 질이 떨어진 예술품을 감상할 수밖에 없게 된다. 난청은 대개 노인성 질환으로만 여겨졌으나, 지나친 생활소음에 노출되는 현대생활에서 연령과 관계없이 많은 사람들이 난청을 겪고 있다고 한다. ‘한국영화는 왜 한글자막이 없지’하는 아쉬운 생각을 갖게 된다. 이번에도 흥미로운 영화를 감상하고도 감흥이 오래가지 않았다.국내에서 개봉되는 외국 영화는 대개가 한글 자막이 있는데 한국 영화는 대부분 없다. 관객이 모두 다 한국말을 잘 알아듣는다고 전제하기 때문일 것이다. 작품의 완성도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면 TV처럼 자막을 넣으면 어떨까? 청각장애인, 난청인, 노년층(청력의 문제가 아니라도 젊은 층의 랩과 같은 빠른 말투를 잘 못 알아듣겠다고 한다)을 위해 한글 자막이 있었으면 좋겠다. 백세 시대를 맞아 영화관람, 음악회 같은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노년층이 늘고 있음을 감안하면 꼭 필요한 일이 아닐까 싶다. 시각장애인용 보도블록, 휠체어 이동시설 보호대 등등, 장애인을 위한 시설들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는 부족한 것 같다. 장애인으로서 겪게 되는 단순한 불편해소 차원을 넘어 정상인과 같은 삶의 질을 누릴 정도가 되어야 진정한 선진국이라고 생각된다. 영화감상을 하며 “머라카노?”라고 동행한 사람에게 자꾸 묻는 사람이 많이 있다면 아직은 더 분발해야 할 일이다. 세계적인 거장과 작품을 낸 나라의 자존심을 세우고 세종대왕의 위대한 업적도 알릴 겸 한글 자막 삽입은 성숙된 공동체 의식을 보여줄 기회다. 물론 졸다가 효과음에 놀라 ‘자기야, 머라카노?’라며 흘린 침을 슬쩍 닦는 사람은 해당 없겠지만….‘기생충’ 찬스, 살렸으면 좋겠다.

2020-02-18

배려의 각도

박화진전 경북지방경찰청장민족의 명절인 설날이 다가왔습니다. 설을 준비하는 모습도 많이 변했습니다. 방앗간 가레떡, 장터 뻥튀기, 설빔 같은 것들이 흑백 영사기가 돌리는 빛바랜 모습이 된 것 같습니다. 완성된 제수용품을 마트에서 준비하는가 하면 심지어 차례를 대행하는 업체까지 생겼습니다. 조상님께서 제대로 적응하고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설 명절은 즐겁고 행복한 날입니다. 그런데 가끔씩 즐겁고 행복해야할 명절에 형제간 말다툼, 부모와의 갈등으로 예기치 않은 끔찍한 사건이 발생하고 있어 안타깝습니다. 평소 왕래가 뜸한 핵가족 시대에 익숙한 탓인지 모처럼 대가족 행사가 서로에게 짐이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혹시 가족, 친지간 잘못된 배려로 생긴 건 아닌지 생각해볼 일입니다.# 장면1(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김상사)월남전에서 돌아온 일가친척 아저씨, “이 놈 많이 컷구나!”라며 당시 5살인 나의 여린 갈비뼈가 짓눌릴 정도로 잡고서 번쩍 들어올렸다. 아저씨의 사랑표현에도 불구하고 빨리 내려놓기만을 기다렸다. 이후 갈비뼈 통증 트라우마가 생겼다. 조카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표현이었을 것이다(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쪼그리고 앉아서 얘기를 하는 어른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장면2(기분 좋아 회식하자는 서장님)아침 회의시간, 서장님께서 상부로부터 칭찬 전화를 받고 과장들에게 그 소식을 전했다. 회의 분위기는 급상승하고 서로 수고했다는 덕담을 나눴다. 서장님께서 자축하는 의미라며 그날 저녁 회식제안을 불쑥 던졌다. 회의실 안은 갑자기 정적이 감돌았다. 서장님은 과장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회식을 제안했다(과장들 중 일부가 동창모임, 결혼기념일 등 개인 일정이 있었다).# 장면3(오! 아버지 같은 원사님)어느 신병훈련소, 훈련병 A는 겨울날 찬물로 식기를 세척하고 있었다. 옆을 지나가던 하사는 A에게 “식당에 가면 더운 물이 있으니 가져와서 씻어”라고 했다. A는 감읍하고 식당으로 달려가 더운물을 찾았다. 취사반장으로부터 “쫄병이 군기가…”라는 문전박대를 당했다. 다시 찬물로 식기를 씻던 A를 본 원사님, “손 씻으려는데 식당에 가서 더운 물 좀 가져와” 이후 일사천리로 물공급이 진행돼 원사님 앞에 대령된 더운물 한 바케스, “응 이걸로 식기 씻어”사람의 본성이 선하다면 누구나 약자를 향해 마음을 엽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가끔 잘못된 배려로 상대에게 상처를 주게 됩니다. 배려한다는 것은 남에게 우월적 지위에서 내려 보며 베푸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수평적이거나 오히려 위를 보며 이뤄져야 합니다. 남에게 배려함은 상대의 입장에서 해야 합니다. 위의 장면 #1, #2처럼 배려받지 않은 것이 나을 수 있습니다. 배려는 각도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명절에 대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서로를 위한 배려는 세심하게 해야겠습니다. ‘가족이니까’ 쉽게 생각하며 내 위주로 배려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볼 일입니다. 잘못된 배려가 가족관계를 배리게할 수 도 있지 않을까요?“설겆이 다했냐? 수고했다! 가족화목을 위해 즐겁게 윳놀이 한판하자”“…….”

2020-01-21

해외 어학연수를 떠나는 엑소더스에 대한 단상

서정목 대구가톨릭대학교 교수·번역학 전공지난 1월 초 뉴질랜드 오클랜드에 출장을 다녀왔다. 뉴질랜드는 남반구에 있어 한국과 계절이 반대여서 1월이면 그곳은 여름이다. 오클랜드 시내에는 대학교에서 운영하는 어학원과 사설 어학원 등 영어교육 기관과 관련 업체들이 많다. 뉴질랜드는 한국 학생들이 어학연수를 위해 많이들 가는 나라중의 하나이다. 그래서인지 뉴질랜드 시내 곳곳에는 한국 학생들을 비롯하여 많은 아시아계의 학생들로 가득했다. 시내 여기저기에 보이는 한국어 간판과 도처에서 들리는 한국어 말소리로 여기가 지구의 반 바퀴를 돌아온 외국이라는 이질감을 느끼지 못했다.지금은 방학이라 초, 중, 고, 대학생들이 해외로 어학연수를 많이 떠나는 시즌이다. 문득 필자는 한국 학생들이 어학연수를 위해 전 세계에 뿌리는 돈은 과연 얼마나 될까? 그리고 과연 한국에 돌아와 취업을 하게 되면, 업무를 진행하는데 실제 영어를 사용하는 인력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과거 영어공부라면 책으로 문법을 공부하고 소설을 읽고 하는 것이 유일했다. 당시의 시청각 교재는 영어회화 테이프, 그리고 주한미군 방송이었던 AFKN, 그리고 외화가 전부였다. 요즘은 멀티미디어로, 온라인으로 다양한 방법으로 영어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를 공부하는 시대이다. 그러나 수십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사실은 지금은 초등학교 3학년부터 고3까지 총 9년을 공부하지만, 여전히 말못하는 영어를 배운다는 것이다. 흰 와이셔츠에 명찰을 달고 한국에 와서 선교활동을 하는 미국의 선교사들은 몇 년 지나지 않아 한국어를 유창하게 한다. 동남아시아, 서남아시아, 중앙아시아에서 한국으로 온 외국인노동자들도 한국에 온 지 몇 년 되지 않았는데도 한국어를 곧잘 한다. 그런데 왜 한국인들은 초등학교에서부터 고등학교 졸업때까지, 그리고 대학에 와서도 영어로 인해 학교를 휴학하고 외국으로 어학연수를 가는 것일까? 전국에 초, 중, 고, 대학생들이 영어가 모국어인 미국, 영국,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등으로 어학연수를 가서 쓰는 학비와 생활비는 과연 얼마나 될까? 가히 천문학적일 것이다.10여년 전 필자가 지금 근무하는 학교에 오기 전에 근무하던 대학교에서의 일이다. 영어 원어민 교수들에게 한국의 실제 수능영어 문제를 시험삼아 치르게 해보았더니 이들은 독해지문을 보고 그 어려움에 혀를 내두른다. 이것은 영어 문제가 아니라 시험을 위한 문제, 그리고 영어로 쓰여진 철학 문제라는 것이다.외국어를 학습하는 궁극목적은 의사소통이다. 통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현재의 난해한 영어지문 해독 방식은 누가 어려운 영어단어를 잘 알고, 누가 어려운 영어문장 퍼즐을 잘 풀어내는가 하는 것을 평가하는 것이다. 필자는 해외로 컨텐츠를 배우러 가는 것이 아니라, 수단인 영어를 배우러 가는 한국 학생들의 엑소더스(exodus)를 안타깝게 바라본다. 정말 이제는 누구나 말을 잘할 수 있는 영어, 통할 수 있는 영어, 그냥 어렵기만 할 것이 아니라 콘텐츠를 전달하기 위한 실용적인 영어를 가르치도록 바뀌어야 할 것이다.

2020-01-14

2020년 포항경제가 나아갈 길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매년 새해를 맞이할 시기가 되면 무사히 한 해를 보낸 것에 감사하기보다는 다가오는 새해에 뭔가 새롭고 희망적인 일들이 실현되기를 기대하는 마음이 더욱 부풀어 오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포항의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감사할만한 일이 많았다. 시 승격 70주년을 맞이하여 연중 다양한 문화, 예술 행사가 끊이지 않았고, 포항지진특별법 제정을 위한 국민청원에 시민들이 일치단결하였으며, 암각화 특별전을 개최하면서 뿌리 깊은 역사유적을 지녔다는 자긍심을 가지기도 하였다. 또 강소연구개발특구와 영일만 관광특구의 지정 등 지속 가능한 도시 포항의 미래먹거리도 착실히 마련한 성공적인 한해였다고 자평할 수 있을 것이다.그렇다면 새해는 어떠할까. 먼저 포항 지역경제를 둘러싼 대내외 여건부터 점검해 보자. 현시점에서 확실한 것은 정치 일정뿐이다. 21대 총선과 관련한 예비후보자 등록 신청이 어제부터 개시되면서 지역의 정치 시계는 이미 빠르게 돌아가고 있어 국내의 정치정세는 내년 4월 중순이면 마무리된다. 다만, 세계 정치경제정세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칠 미국의 대통령 선거와 관련하여서는 2월에 예비선거가 있지만 11월에 선거가 있어 연중 미국 정세의 변화에 따라 국내외 금융시장은 상당히 민감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영국의 브렉시트이행기한도 12월이어서 정치정세와 관련한 불확실성은 연말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그렇다면 포항의 경제정세는 어떠할까. 지역의 주력부문인 철강산업은 주요 국제 철강재 가격이 하락 경향인 데다, 올해 들어 다시 상승하기 시작한 국제철광석 가격도 높은 수준을 지속하고 있어 적어도 내년 상반기까지는 매출 감소와 원가상승에 따른 수익성 악화요인이 해소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게다가 지역 철강업체의 내부요인도 상황은 만만치 않다. 숙련기능직의 정년 도래로 기술력 보존이 쉽지 않은 데다 직원들의 고령화와 더불어 3년간 최저임금이 32.8%가 상승하면서 평균 인건비 부담이 커진 점까지 고려하면 철강을 중심으로 하는 포항경제의 내년 기상도는 대체로 흐린 날씨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결국, 포항경제를 조금이라고 회복시키려면 비철강, 비제조 부문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그러한 맥락에서 내년에는 지진재해 복구 관련 사업을 최우선 추진할 필요가 있다. 지역 건설업체가 주도하는 토목, 건설사업이 활발해지면 지역 철강의 부진도 다소 완화시킬 수 있다. 이왕이면 지금 시범 운항에 나선 국제크루즈산업의 육성을 위한 기반조성사업도 동시에 추진하였으면 한다. 크루즈산업의 경제효과는 영일만항에서 도보로 이동하거나 가까운 지역에 위치한 최상급의 요리를 제공하는 음식점, 포항에서만 체험하거나 볼 수 있는 독특한 관광상품, 크루즈선이 제공하는 최고 수준의 숙박여건을 경험한 관광객이라도 만족할 만한 특급호텔 등과 같은 기반인프라에서 창출되는 것이다. 크루즈선의 기항은 항만의 접안능력의 대소가 아니라 기항지가 지닌 소비기반의 매력에 좌우되는 것이다. 적어도 2020년은 포항경제가 지닌 약점을 보완하고 인내하면서 밝은 미래를 대비하기 위한 기반 조성에 매진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2019-12-17

지금부터 후계자를 키우자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최근 지역에서 개최되는 학술세미나는 물론 다양한 이벤트에 이르기까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계 등 어떠한 분야든 그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대부분 같음을 새삼 느낀다. 물론 재임기한이 있는 주요 임명직 기관장들이야 바뀐다. 하지만 그들을 제외하면 지역 각계의 유지라고 불리는 각 기업체의 임원진이나 단체 대표, 학계의 전문가 등은 대부분 같다. 그저 다들 얼굴의 주름살만 하나씩 늘어날 뿐이다. 그런데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것이 하나 있다. 지역에서 매번 마주치는 사람들이라고 하더라도 필자와 같은 급여생활자들은 가령 본인이 은퇴하더라도 그 역할은 당연히 후임으로 임명되는 그 누군가에 의해 앞으로도 꾸준히 지역 경제를 연구하는 일을 수행하게 될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우리나라 전체 기업의 99%를 차지하는 중소기업이라면 사정이 다르다. 사실 사람만 나이가 드는 것은 아니다. 100년 기업이라는 말처럼 기업들은 세월의 흐름과 함께 업력이 쌓이는 것이다. 다만, 그동안 기업이 100년 동안 이어지려면 그 구성원만큼은 꾸준히 물갈이를 해 줄 필요가 있다는 점만 다르다.문제는 지역경제와 한 몸이나 마찬가지인 지역의 향토 중소기업들은 대부분 대표나 사장 한 사람의 사정에 따라 기업의 존속 여부가 결정되기 쉽다는 점이다. 지금 지역의 유지라고 할 수 있는 지역 중소기업 사장들은 젊을 때 창업하여 불철주야 노력해 비록 손에 기름때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나름 일가를 이룬 분들이다. 그런데, 그들 자녀 중 비록 작은 공장이라도 부모가 일구어낸 중소기업을 가업으로 삼아 그 뒤를 이으려는 이들은 많지 않다. 지금 포항에서 이삼대에 걸쳐 가업을 잇고 있는 곳은 소수의 음식점을 빼면 제조업체에서는 손에 꼽을 정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어느 정도 안정화된 향토 중소기업 중에는 사장, 종업원이라는 금을 긋지 않고 서로가 한 몸이 되어 수없이 다가온 위기를 함께 극복해온 전우애로 다져진 중소기업들이 적지 않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기업들이 지금까지 포항경제를 뒷받침해 왔다. 바로 그것이 문제다. 포항의 우수한 중소기업일수록 숙련된 기능공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지만, 이들 중소기업의 경영자부터 종업원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함께 지난 세월을 보냈기에 고령화라는 피할 수 없는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유독 우리나라나 포항만 그런 것도 아니다. 세계적인 기술력을 자랑하는 일본도 중소제조업체의 약 70% 이상이 후계자 부재에 허덕이고 있다.우리는 그동안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이라는 화두에 매달려왔다. 하지만 정작 지역경제를 지탱해왔던 향토 중소기업의 지속가능성에 대해서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대기업이나 재벌가가 아니라 자신이 일으켜 세운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철공소라고 하더라도 그들이 생존해야만 지역경제가 순환하는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지역 중소기업 경영자는 자신이 평생 일군 기업이 100년 기업이 될 수 있도록 자식이 아니더라도 뒤를 이을 지역 인재들을 발굴해 후계자로 삼아야만 한다. 지역 각계의 전문가도 자신의 후계자를 미리미리 육성해 나가야 할 책무가 있다.

2019-12-10

포항의 시티즌 브랜딩을 시작하자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부국장어느 나라나 기업이건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을 담보하기 위해 가장 필요로 하는 자원을 꼽는다면 인재라고 할 수 있다. 우수한 인재에 대한 수요는 국가나 기업의 발전 정도나 규모를 불문한다. 그들 모두가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에 따라 요구하는 인재상은 다를지 모르겠지만 지금처럼 청년들이 취업하기 어렵다는 시기에도 기업들은 언제나 인재난에 고심하고 있다. 그러하기에 기업들은 자사의 매력을 높여 재능이나 경험이 풍부한 우수 인재의 고용을 쉽게 하고 이직을 억제하며 사원과 기업 간 강력한 유대감을 형성하기 위해 기업의 이미지를 높이는 임플로이어 브랜딩(employer branding)이라는 홍보 전략을 구사한다.최근 포항시의 인구유출이 심상치 않다. 도시 인구의 이동은 농어촌 인구와 달리 비교적 이동을 준비하거나 결정하는 것이 매우 탄력적이다. 도시인구는 일종의 생물과 같아서 충분한 먹거리가 있으면 몰려들고, 그렇지 않으면 흩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그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직장생활을 하다 은퇴해 새로운 지역으로의 이주를 꿈꾸기도 힘든 지역에 충성도가 높은 이른바 애향시민의 비율이 높은 경우라면 이야기는 다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수도권을 제외하면 대부분 먼저 자녀들이 이탈하고 이후 그 자녀들이 성공적으로 이탈한 지역에 정착하게 되면 농어촌과는 달리 직장근로자들이 밀집한 도시의 부모가 함께 이주를 선택하는 것은 비교적 자유롭다. 그러한 맥락에서 이제 포항은 여느 지자체들과는 달리 새로운 전략을 구사할 때가 오지 않았나 싶다. 지금까지 전국 지자체들은 국제적인 이벤트 개최 안내, 지역 관광지나 특산품을 홍보하는데 그치고 있다. 물론 지역 관광객의 유치와 특산물을 알리는데 지자체가 적극 나서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러한 마케팅은 해당 생산 기업이나 농어촌의 협동조합 차원에서도 충분히 자신들의 생계가 걸린 만큼 스스로 최선을 다해 광고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지자체는 보고만 있으라는 것인가. 아니다. 우선순위를 지역의 관광객유치, 특산물판매보다는 이왕이면 지속 가능도시를 담보하기 위한 신규 시민의 확보와 이주억제를 위한 부분에 좀 더 주목하였으면 하는 것이다.기업들이 우수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임플로이어 브랜딩이라는 전략을 구사하듯이, 포항시도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포항이 살기 좋은 고장, 자녀를 키우고 양육하기에 좋은 도시, 은퇴이후 삶의 질과 만족도가 높은 바닷가의 그러나 대도시이고 국제항만도시라는 다양한 장점을 알리는 전략이 필요하다.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시티즌 브랜딩(citizen branding)이라고 부르고 싶다. 지금의 포항시민들도 다른 도시로 이주하지 않고 계속 살기 좋은 도시로 만들어 나가겠다는 비전. 전국에 소재한 예비 포항시민들에게 포항의 장점을 알리는 홍보.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도시마케팅이 절실한 시점이다. 외국의 방송에서 대통령이 한국을 알리는 광고를 본적도 있다. 포항시도 시장이 직접 출연해 ‘포항으로 이사 오이소.’라고 나서는 적극적인 도시마케팅을 할 때가 왔다. 포항의 각계각층 모두가 새로운 이웃을 맞이하기 위한 시티즌 브랜딩에 동참하자.

2019-1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