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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스타트업을 제대로 키우려면

김진홍한국은행 포항본부 기획조사팀장제4차 산업혁명의 시대적 조류를 각국 정부나 기업들이 적절하게 대응해 나가면서 하루가 다르게 기발한 아이디어로 무장한 스타트업들이 태어나 성장하고 있다. 기업가치가 무려 1조원 이상으로 추정되는 비상장 스타트업을 유니콘 기업이라 부르는데, 미국의 우버, 에어비엔비, 에버노트, 중국의 샤오미, 디디추싱 그리고 우리나라의 쿠팡, 야놀자 등이 그 사례라 할 수 있다.비록 우리나라도 유니콘 기업들을 보유하고는 있으나 이처럼 스타트업 기업의 성공사례는 아직까지는 미국 등 선진국이 중심이다. 이러한 현상은 창업 아이디어가 부족한 때문일까 아니면 벤처캐피탈, 엔젤투자와 같은 창업자금 지원체계가 부족한 때문일까. 아니면 스타트업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부딪치는 법적 제도적인 규제 등이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일까. 어쩌면 그 모든 것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뛰어난 정보통신기술(ICT)의 인프라를 갖추고 있는 만큼 적어도 정보통신기술의 인프라가 스타트업의 성장 저해 요인은 아닐 것이다. 스타트업이 창업 아이디어를 가지고 비즈니스모델을 만들어 사업화하여 성장하기까지 수많은 난관이 존재한다. 그래서 최근 정부는 물론 대기업들도 사내벤처나 스타트업 지원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있어 우리나라의 경우 스타트업을 둘러싼 여건만큼은 점차 개선되고 있다. 실제 이미 많은 유니콘 기업이 탄생한 것만 보더라도 스타트업의 성장 환경 자체가 선진국에 비해 크게 처지는 것도 아닐 것이다.그렇다면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지역에서 상대적으로 미국 등 선진국에 비해 스타트업 성장이 쉽지 않은 요인은 좀 더 다른 곳에서 찾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아마도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성장프로세스에서 나타나는 자금조달과 집행, 시장조사방법론, 마케팅전략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흔히 스타트업이나 벤처가 모험이라고 한다. 바로 거기에 해답이 있는 것은 아닐까. 세대와 자라난 환경이 다른 청년들이 기발한 아이디어로 스타트업을 출범시켰지만 정부나 대기업의 의사결정과정 내지는 의사결정권자들의 입장에서는 스타트업이 추구하는 비즈니스모델에 이상적인 자금투입 시점, 시장조사, 마케팅 모든 부분에서 어쩌면 자신들의 지금까지의 경험상 성공했던 종전까지의 자금지원방식, 시장조사방법론, 마케팅기법을 적용하는 관성이 최대의 걸림돌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스타트업은 종전까지 없었던 아이디어로 비즈니스모델을 만들고자하는 기업이다. 이러한 아이디어의 사업화에는 당연히 자금도 필요하겠지만 그것만으로 성공을 담보할 수는 없다. 이들은 기존의 시장에서 벗어나거나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던 시장을 창출하는 등 이른바 틈새시장을 노리는 경우가 많다. 반면 이들을 지원하는 정부 기관의 고위관료나 대기업의 자금담당임원 내지는 지원조직의 부서장은 정통적인 과거 산업이나 과거 대기업의 성장과정에서의 경험과 지식에 뛰어난 인재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그러한 지원체계도 종전방식의 시스템을 갖추고 있을 것이다. 결국 성공여부는 과거의 지식과 경험과 전혀 무관하게 아이디어의 사업화에 가장 필요한 적절한 타이밍,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시장분석, 전형적이지 않은 새로운 마케팅기법 등 스타트업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정부나 대기업이 제공할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포항도 스타트업지원에 열심인 도시다. 하지만 지역내 스타트업이 성공하기를 원한다면 자금지원 그 이상이 필요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가 상식으로 알고 있는 그 어떠한 방법과 경험이라도 스타트업에는 전혀 통하지 않는 방법일수도 적용하기 어려울 수도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어쩌면 가장 합리적이고 최적이라 여겼던 지원방식조차 스타트업을 구속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2019-07-02

이제부터는 주변을 자세히 살피자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기획조사팀장최근 포항은 연구개발특구, 첨단과학비즈니스벨트 등 그동안 유치에 실패했던 사업들 대신 ‘강소연구개발특구’ 지정에 성공하였다. 포스텍과 포항산업과학연구원을 중심으로 ‘첨단신소재’ 분야의 혁신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사실 포항은 ‘산업의 쌀’이라 불리는 ‘철강’을 오래 전부터 공급해온 가장 원천적인 ‘소재’의 생산기지였던 만큼 ‘소재’라는 말이 붙은 특구를 가볍게 여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포항은 보다 더욱 세심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소재가 최종제품으로 탈바꿈하기까지 단계별로 부품, 반제품, 최종제품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생산 공정은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모든 제품의 생명주기와 재고관리의 시간만큼은 크게 단축되었다. 과거처럼 단일 소재가 더 이상 단일 제품군에만 쓰이지 않게 되었고 유일무이한 핵심소재가 아닌 한 시장지배력도 완성품업체가 소재업체보다 우위에 서게 되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크다. 결국 어떠한 소재기업이라도 종전과 같이 시장의 변화와 다양화에 무관심해서는 생존하기 힘든 시대가 왔다.포항은 그동안 ‘철강’ 소재만으로도 충분히 먹고 살았다. 지금까지 소재 생산업체들은 시장 즉, 소비자 기호와 감성 변화 등은 완성품 제조업체의 몫이라 여기고 그저 자신의 입맛대로 소재를 공급하면 그뿐이었다. 그러니 부품이나 반제품, 부분품을 만드는 중간재업체가 소재를 가공, 조립할 때 어떠한 불만이 있는지도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결국 자동차, 조선, 건설자재 등 최종 공급업체들만이 극심한 시장의 변화를 조기에 감지하며 현실적인 전략적 대응체계를 구축했을 뿐이다.그러는 동안 전 세계는 하나의 네트워크로 이어지고, 소비자들의 감성과 기호는 매우 다양해졌다. 가격이 싼 것만으로 통하는 시대는 지났다. 우리는 매일같이 신제품이 쏟아지고 그에 적합한 신소재도 실시간으로 진화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자동차산업이 환경규제에 대응하여 초경량 소재로 철강을 대체하는 가운데 가전부터 항공우주분야까지 아우르는 고기능성과 범용성을 지닌 첨단신소재 시장의 수요는 폭발적인 성장을 거두고 있다. 이 치열한 경쟁분야인 첨단신소재를 연구 개발하고 이를 통한 혁신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최적의 특구로 포항이 선정된 것이다.그런 맥락에서 포항은 지금까지의 연구개발론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의 신소재는 단지 개발만 하고 활용방안을 전방산업에 맡겼던 종전 소재분야의 방식만으로는 살아남기 힘들다. 연구 개발단계부터 그 신소재가 어떤 시장과 제품에 사용될 것인지도 염두에 두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당연 소재사용기업의 필요나 소비자시장의 수요를 면밀히 파악하고 이에 부합하는 최적의 첨단신소재를 개발해야만 한다. 즉 무엇을 연구할까가 아니라 어디에 어떻게 쓰일 연구인가를 고민해야만 한다. 음식점의 소재라고 할 수 있는 농산물을 생산하는 농가조차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무농약 채소라며 흙이 묻은 채로 식당에 넘겼지만, 이제는 식당에 따라 필요한 규격대로 세척하고 다듬어 납품하는 시대가 되었음을 깨달아야만 한다.모처럼 강소특구로 지정되어 기회를 잡게 된 포항이 첨단신소재를 개발하고 이를 이용한 완성품을 지역에서 생산하여 팔아야만 지역 경제가 활성화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6개 강소특구 가운데 반제품이나 부품분야의 특구들에 대해서는 더욱 자세히 살펴보아야만 한다. 그래야만 다른 특구가 필요로 하는 맞춤형 소재까지 포항에서 생산하는 확장성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소재수요처에 대한 면밀한 관심과 소통을 통해 그들이 요구하는 맞춤형 첨단신소재를 연구 개발하고 그것을 포항이 생산하여 공급할 수 있게 되는 순간 이미 포항에는 혁신생태계가 구축되어 있을 것이다.

2019-06-25

외풍에 흔들리지 않는 법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기획조사팀장기업 경영자들은 지금쯤 ‘여름이라는 계절’의 느낌보다는 자신이 앞으로 나아가야할 사방이 모두 날카로운 칼날로 덮여있어 한발만 잘못 내디디면 베일까 가슴이 서늘해지는 ‘정치라는 계절’임을 깨닫고 있을 것이다. 2020년은 수많은 1년 중 하나에 불과하지만 미국과 우리에게는 묵직한 한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4월 15일이면 제21대 국회의원 총선거를 치르게 된다. 그로부터 6개월 정도, 11월 3일이면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할지 아니면 수많은 오바마 전 대통령의 후계자 중 하나가 정권을 잡을지 결정될 것이다. 선거는 내년이지만 이미 이를 의식한 정치인들은 분주하다. 우리는 이미 정치의 계절에 살고 있는 것이다.지난 6월 11일 미 법무부는 반독점법(Antitrust Laws)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공표하였다. 과거 반독점법은 독점상태에서 부당하게 높은 가격을 매겨 ‘소비자의 불이익’을 일으키는 기업을 단속하기 위해 탄생하였다. 그런데 이 ‘소비자의 불이익’에 대한 개념을 이전보다 더욱 확장한 것이다. 경쟁상대방을 매수함으로써 혁신적인 제품이나 서비스를 시장에서 퇴출시키거나 기업이 개인정보를 독점하여 프라이버시 보호에 방심할 우려, 경쟁기업 부재에 따른 ‘저품질의 경쟁’상태를 유발하는 것까지도 ‘소비자의 불이익’으로 보겠다는 것이다.미국 사법당국의 이러한 움직임은 가파(GAFA)에 화살을 겨냥하고 있다. 즉 구글(G), 아마존(A), 페이스북(F), 애플(A)이라는 세계적인 대형IT기업을 대상으로 반독점법에 따른 규제를 검토한다는 것이다. 일례로 페이스북이 인스타그램이나 왓츠앱을 인수한 것도 경쟁상대를 미연에 방지하는 행위로 간주해서 반독점법 적용을 검토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움직임은 미국의 정책변화를 암시한다. 지금까지 미국 IT산업의 성장과 경쟁력의 원천이 정부의 ‘자유방임’정책이었음은 누구도 부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제 ‘규제강화’로 정책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는 것이다. 다양한 배경이 있겠지만 이 또한 2020년 미국의 ‘대선’이라는 ‘정치의 계절’이 다가온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물론 우리나라는 대선과 같이 국가적인 경제정책의 기조변화까지는 발생하기 어려운 ‘총선’이기 때문에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서는 긴장감이 그리 크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총선이 1년도 남지 않은 현 시점에서 각 지역별 현안사항을 중심으로 국회의원과 소속 정당 등의 공약, 지지계층의 반응 등이 얽혀 있는 데다 선거결과에 따라 해당 지역경제의 향방에 영향을 줄수도 있다는 점에서 지역 기업의 경영자의 입장에서는 어쩌면 대선보다 총선이 더욱 민감하게 느낄 가능성도 있다.이러한 정치의 계절에서 지역 기업들은 과연 어떠한 선택을 할 것인가. 사실 아무리 ‘정치의 계절’이 오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기업의 요건은 항상 변함이 없다. 게다가 과거처럼 정치적 배경만으로 승승장구하기도 어려운 시대다. 미국 정치인들이 ‘소비자의 불이익’을 내세우고 있지만 결국 기업의 생존은 자사의 제품, 자신의 서비스로 ‘소비자의 만족’을 이끌어내는가에 달려있다. 경기가 최악이라는 포항이지만 시내 곳곳에는 줄지어 대기하며 예약해야만 이용할 수 있는 음식점도 있고, 2호점 3호점으로 도리어 확장하는 가게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결국 ‘소비자의 눈’은 정확한 것이다. 정치의 계절에 정치인들이 정치소비자인 ‘시민’을 의식하듯이 기업가는 소비자인 ‘수요기업’이나 ‘구매자’를 의식하여야만 한다. 정치의 계절이라고 좌충우돌할 필요는 없다. 언제나 ‘소비자’만 바라보는 기업이라면 비록 정치의 계절이라 하더라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소비자 우선주의는 언제나 최고의 방법이며 유일한 방법이다.

2019-06-18

인위적인 자생적 생태계를 만들자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기획조사팀장우리 경제는 그동안 주요산업의 성장 과정에서 이른바 따라잡기, 체질개선, 구조조정, 합리화 등 시기별로 요구되는 상징적인 개념들에 대해 그 때마다 적절한 대응조치를 마련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이러한 개념들은 대체로 일정한 시한이나 목적이 달성되면 더 이상 불필요한 일종의 일시적 내지는 일과성 현상이었다고 할 수 있다.그러나 최근 주목받고 있는 ‘생태계(ecosystem)’라는 개념은 다소 맥락을 달리한다. 경제 산업측면에서 본다면 자유로운 창업과 성장, 기업 간 흡수합병, 기업공개와 퇴출, 연구개발을 통한 신기술개발이나 혁신 등으로 경쟁력을 갖추며 확대재생산에 성공하는 일련의 순환과정 모두를 포괄하는 복잡하고 지속적인 현상을 나타내는 개념이다. 이는 결국 우리 경제가 특정 산업이나 분야에 대해 지금까지와 같은 단편적인 일과성의 정책만으로는 제대로 대응할 수 없는 시스템으로 확장되었음을 상징하는 반증일 것이다.사실 특정 산업이나 분야에 대해 경제적인 측면에서 생태계라는 개념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산업클러스터라는 것도 비슷한 개념이다. 다양한 기업들이 기술과 혁신을 기반으로 경쟁력을 갖추어 흡수, 합병, 자회사 분할 등을 통해 확대 재생산과정을 거쳐 주변 지역까지 경제적 영향력이 확산되는 클러스터야말로 산업생태계 그 자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거 우리나라는 상대적 후진성을 무기로 저렴한 노동력, 혁신기술보다는 기능적 숙련도에 입각한 효율성, 다양한 면세 등 보호조치가 적용되는 특정지역의 ‘산업단지’를 조성하여 선진국에 대한 경쟁력을 갖추었다. 기업들이 자연발생적으로 필요에 따라 모여든 생태계가 아니라, 정부 주도로 유사, 동종 기업체들을 모아 일견 ‘클러스터’로 보이는 ‘산업단지’정책은 당시로서는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한 여파로 지금도 전국 각지에는 다양한 목적을 가진 산업단지들이 많이 개발되고 있는 실정이다.포항은 그러한 산업단지 정책의 초기 모델로 성장한 산업도시 중 하나다. 그동안 일부 학자나 전문가들은 철강 산업단지를 철강클러스터로 표현하거나, 각 지역들도 산업단지를 조성하면서 아예 클러스터라는 이름을 붙이는 경우도 많았다. 하지만 산업단지와 클러스터는 다른 것이다. 산업단지는 ‘기업 집적’에 불과하다. 자율적인 기업의 분할과 합병이 이루어지고 연구개발과 혁신을 통한 경쟁으로 확대재생산이 이루어지는 ‘클러스터’와 기업을 모은 ‘산업단지’는 다를 수밖에 없다.한국은행 포항본부가 금년 세미나 주제로 삼은 것은 ‘자생적 생태계의 조성’인데 이것도 같은 맥락이다. 흔히 들었던 주제일 것이다. 문제는 왜 또다시 제기할 수밖에 없는지를 깨달을 필요가 있다. 지금은 아무도 모르는 100년전 포항 영일만의 유명 특산물 중 ‘돌김’이 있었다. 당시 영일만 어가들은 특정 시기의 청어 잡이만으로는 연중 소득에 한계가 있어 바닷가 암초에 시멘트를 발라 돌김을 양식하였다. 최고 품질의 이 돌김은 일본, 미국까지 수출되었다. 처음에야 일부 어가에게만 인위적으로 돌김 양식을 장려하였지만, 이후 대부분 어가들이 합류함으로써 포항 영일만의 특산품 ‘돌김’의 자생적인 생산생태계가 조성되었던 것이다.포항의 철강 산업도 처음에는 이러한 인위적인 조성 노력이 필요하다. 비록 기업이라 할 수도 없을 작은 철공소라도 재료인 철만 있으면 어떤 시제품이라도 만들 수 있는 기초 생태계부터 조성해야만 한다.어떠한 창업가라도 철을 이용한 제품을 생산하고 싶을 때면 먼저 포항부터 찾아와 시제품이라도 만들어볼 생각을 가질 수 있는 자생적 생태계를 먼저 인위적이라도 만들어 나가야만 포항경제는 지속가능해질 것이다.

2019-06-11

새로운 지역 기업과 정치행정의 관계 설정

김진홍한국은행 포항본부 기획조사팀장정치행정과 경제는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시장경제가 충분한 성장경로와 기회를 가지고 있더라도 기업이 속한 지역·국가의 정치행정과 배타적이면 기업 활동이 제대로 이뤄지기 힘들다. 이와 반대로 특정 기업이 정치행정과 밀월관계를 가지면 시장경제는 교란되고 비효율적인 자원배분과 더불어 다른 기업들은 아예 투자결정을 보류하거나 철회하기도 한다. 이는 경기장에서 뛰는 선수인 기업들이 특정 팀이나 선수를 옹호하는 심판인 정치행정으로 인해 반칙을 하지도 않은 자신이 시장인 경기장에서 쫓겨날지도 모른다는 불확실성과 시장에 대한 불신만 커지기 때문이다.결국 이러한 분위기가 확산되면 시장에는 연구개발과 기술혁신을 통한 공정경쟁 대신 규칙을 무시하고 정치행정과의 밀월관계 형성에만 몰두하는 기업들만 늘어나게 된다. 기술혁신과 시장변화에 주목해야할 기업들이 특정 정치행정의 향방에만 안테나를 세우기 시작하는 바로 그 순간부터 해당 기업들은 자연 세계경쟁시장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 사실 각종 선거 때마다 이른바 테마주라는 것이 나타나 급등락을 거듭하는 현상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는 것은 아마도 주식시장에서 이러한 밀월관계가 아직도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일지도 모른다.정치행정이 굳이 기업에만 신경쓸 필요는 없다. 사회, 복지, 환경, 교육, 문화 등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다만 경제문제는 투표권을 가진 주민들에게 가장 민감한 분야인데다, 기업 경영에 가장 중요한 것은 보다 예측 가능한 정치행정일수록 시장의 불확실한 위험이 줄어들기 때문에 경제의 최일선에 있는 기업과 정치행정이 좀 더 의식될 뿐이다. 때문에 정치행정의 ‘깜짝쇼’는 경제 분야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과거 고도성장단계에서는 대통령제가 긍정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흔히 ‘즉각적인’, 그리고 ‘단호한’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정책결정이 일사불란하게 집행될 때 하나의 목표달성을 위해서는 일부 부작용이 있더라도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그러나 세계경제가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지금, 그때와 같은 ‘단호한’ 정책결정은 선진국들처럼 수년에 걸친 다양한 공청회와 전문가의 견해를 수렴하여 이루어지는 ‘느긋한’ 정책들에 비해 실패에 따른 기회비용이 상대적으로 클 가능성도 있다. 최근 지역 기업의 오염물질 배출과 관련한 지역 정치행정의 ‘단호한 조치’가 있었다고 한다. 반드시 필요한 행정조치는 지역경제가 어려운 것과 무관하게 이루어져야만 불확실성이 해소된다는 점에서 전혀 문제가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오염물질이 배출되었다면 그것이 과연 관련 산업의 특성상 기술적, 물리적으로 완전한 차단이 불가능한 태생적 한계인지 여부에 달려 있다. 그리고 이와 관련한 가장 합리적인 접근방법은 어떠한 사안이 발생하였을 때 상황을 파악한 후, 오염물질 배출이 불가피하다면 선진국의 사례도 참고하면서 해당 기업과 같이 대책을 논의하고, 단계별로 실행 가능한 감축계획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행정과 기업 간의 약속을 정치행정이 위반하면 기업은 ‘행정소송’으로, 기업이 위반하면 정치행정은 그때서야 법률에 의거한 ‘단호한 조치’를 발휘하는 것이 순리다.지역행정과 지역기업의 관계가 배타적이거나 친밀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세계경제가 미국과 중국 간의 패권경쟁으로 흔들리는 이때 지역경제의 흥망성쇠는 정치행정과 기업과의 관계가 바람직한 관계로 설정되었는지 여부에 좌우되기 쉽다. 때문에 적어도 앞으로의 지역 기업과 정치행정과의 관계설정에서는 어느 쪽이건 일방통행이 아니라 적어도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면서, 상호 배척도 상호 유착도 아닌 상호 협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만 할 것이다.

2019-06-04

포항이 강소연구개발특구가 되어야 하는 이유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기획조사팀장과거 고도성장 시기에는 공단과 같은 특정지역 내에 입주한 기업의 제조공장에서 수출제품에 필요한 원자재 수입에는 관세를 유예하거나 제품을 수출하였을 경우 납부했던 세금을 환급해주기도 하였다. 같은 기업 활동이라도 특정 지역에 입주한 기업에 차별화된 혜택을 주는 곳을 우리는 특별구역 내지는 특구라 부른다. 이러한 특구들은 대체로 지리적인 공간제약 속에 속해 있는 특정 기업이나 특정 제품에 대해 특혜가 적용되는 것이 일반적이어서 그 지역경제발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제도이기도 하다.하지만 이러한 특구 가운데 지리적 제약을 뛰어넘는 영향력을 발휘하는 제도도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연구개발 특구다. 가장 중요한 지정조건으로는 정부출연연구기관이 몇 개 이상 존재하는가이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대덕연구개발특구’가 있다. 흔히 우리가 대덕 연구단지라고 부르는 이 특구는 자연발생적인 연구기관의 집적보다는 중앙정부의 의지로 연구소의 집적이 이루어졌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럼에도 이 특구는 적어도 우리나라가 고도성장을 하는데 필요하였던 과학기술을 개발하여 각 기업에 기술을 이전하면서 국가경제 발전을 이끄는 첨병의 하나였음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만큼 물리적인 특구보다 연구개발특구의 효과는 매우 큰 것이다.반면 포항은 그동안 무관의 제왕과도 같은 존재였다. 지역 내에서야 포항이 엄청난 연구개발기능을 보유하고 있다고 자부심을 가지고 있지만, 중앙정부나 국가 전체적인 인식으로는 그저 포항에 제철소가 있고, 포스텍이라는 유명한 공과대학이 있다는 정도의 인식만 있는 듯하다. 거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정부가 연구개발특구라는 ‘공식이름표’를 붙여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은행 포항본부는 6년 전인 지난 2013년 포항지역 산업연관표를 이용하여 포항의 연구개발부문에 대해 전국적으로 수요가 일어났을 때 전국 각 지역에 미치는 외부확산효과를 분석한 바 있다. 이에 따르면 포항의 연구개발효과는 영남권의 조립가공제품과 호남권의 자동차, 그리고 통신서비스부문에 상대적으로 플러스의 효과를 발생시키는 것으로 밝혀졌다. 말하자면 포항에서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를 늘리면 그 편익이 포항만이 아니라 영남과 호남 등에도 고르게 긍정적인 파급효과를 미치는 이타적인 연구개발지역이라는 뜻이다.즉 포항은 그동안 포항은 물론 국가경제 전체에 도움을 주는 연구개발지였다. 게다가 포항은 기초자치단체임에도 불구하고 포항과 나머지 광역자치단체 전부를 포함한 연구개발의 외부확산효과가 4개 지역으로 5개인 대구에 이은 전국 2위를 기록하였다. 결국 포항의 연구원들은 정부가 연구개발특구라는 공식마크를 주지 않았는데도 묵묵히 우리 경제에 긍정적인 외부효과를 가져다주던 이름 없는 용사였던 것이다.그런데 국내 경제체질과 성장패러다임의 변화로 철강산업의 활력이 많이 떨어지게 된 여파로 연구개발부문에 대한 지원체계에도 적신호가 켜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반면, 국내의 경제체질은 단순한 비용절감과 효율성만으로는 더 이상 지속가능한 성장이 불가능하며, 연구개발과 혁신이 뒤따라야만 가능한 시대를 맞이하였다. 이러한 때에 사실상의 전국구급 연구특구기능을 수행해 왔던 포항에 지금이라도 ‘강소연구개발특구’라는 작은 이름표라도 붙여준다면 지금까지 기여해온 이상으로 지속가능한 포항경제는 물론 지속가능한 국가경제에 더욱 큰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수년전 노벨사관학교라 불리던 독일의 막스플랑코 한국연구소가 포항에 들어온 사실 하나만 보더라도 포항을 강소연구개발특구로 지정함에 있어 더 이상 검증이 불필요함을 입증하기에 충분하다고 본다.

2019-05-28

문화의 도용과 독창성

김진홍한국은행 포항본부 기획조사팀장최근 구찌(Gucci)가 발표한 새로운 디자인 하나가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지난 봄 패션쇼에서 구찌는 터번형태의 모자를 선보였는데 이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시크교에서는 시크교도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터번이 지닌 신성한 종교적인 의미를 무시하고 구찌가 이것을 단지 패션의 한 형태로 모방 내지는 도용한 것을 비난한 것이다. 결국 이 모자는 전 세계 매장에서 품절표시 등으로 판매를 중단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구찌는 이 사건 이전에 선보였던 패션쇼에서는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적인 색채가 보인다는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이는 한 지역이나 나라의 독특한 풍습, 문화, 예술 등이 지구 반대편에 전달되기까지 짧게는 수개월 길게는 십년이 지나도 어려웠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전 세계 구석구석까지 거의 실시간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도 한 원인일 것이다. 현재는 국제적으로도 저작권법 등이 정비되어 있지만 정보 전달이 원활하지 않았던 불과 수십 년 전만 하더라도 일부 국내 대학교수들 중에는 해외의 저작물을 번역하고는 버젓이 자신의 저작물로 둔갑시키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이처럼 지식정보는 물론 문화, 예술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어느 특정 지역이나 사회가 자신들만의 고유한 문화적 독창성을 보호,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은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리고 다른 지역이나 다른 국가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독창성을 주장하기도 쉽지 않은 시대이기도 하다. 결국 새로운 문화 사조를 받아들일 경우 얼마나 자신의 정체성을 훼손시키지 않으면서 융합시킬 수 있는 가에 문화적 도용 여부가 결정되는 것이다.포항에서는 최근 철강경기 부진이 장기화됨에 따라 철강에 더하여 지역경기를 뒷받침할 수 있는 새로운 성장 동력의 발굴에 고심하고 있다. 가속기 기반의 바이오신약산업, 이차전지산업 등이 그것이다. 이외에도 바다와 국내 최초의 도심형 운하크루즈를 중심으로 하는 해양관광산업에 대한 기대감도 부풀고 있다. 이에 따른 새로운 볼거리를 위한 아이디어도 적지 않다. 수년전에는 파리의 에펠탑을 세운다, 독도와 같은 인공 섬을 조성한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최근에는 케이블카의 설치를 추진한다고 한다.하지만 이번 구찌의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가 벤치마크라는 미명하에 다른 지역이나 다른 나라에서 성공한 사례를 도입함에 있어 해당 지역의 산업생태나 문화적 독창성을 도외시한 채 다른 지역과 거의 흡사한 형태 그대로 도입하는 것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후발주자가 지니는 유일한 기회이자 장점은 철저한 분석으로 선발주자가 보인 문제점에 대한 대안이 있을 때뿐이다. 그러므로 따라만 하는 것은 이른바 ‘짝퉁’에 불과할 뿐이다. 게다가 그것이 지역사회에서 오랫동안 형성된 지방색과 조화되지 못하면 더욱 관광자원으로서의 역할은 기대하기 어렵다.포항이라는 도시 자체는 비교적 신흥도시에 속한다. 하지만 서울시 면적보다 1.8배나 큰 포항의 넓은 구석구석에 흔적을 남기고 있는 향토역사는 무척 오래된 역사문화도시라 자부할 만하다. 선사시대의 고인돌, 암각화는 물론 신라비, 유배지, 서원 그리고 일제강점기 시절의 독특한 흔적들도 적지 않다. 새로운 관광테마의 도입이나 개발에 굳이 다른 지역의 사례만 찾아다닐 필요는 없다. 누가 보더라도 ‘아, 포항이구나!’라고 다른 지역에 없는 독창적인 관광시설이면 제일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다른 지역의 선진사례를 도입할 때에는 최소한 외형적인 디자인에서라도 포항의 역사와 문화적 정체성을 은연중 나타내어야만 외부방문객이 관심을 가지는 관광테마의 하나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2019-05-21

님비와 핌피의 융합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기획조사팀장포항, 경주, 울진 등 경북 동해안지역에는 굵직한 위험 시설들이 많다. 중앙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주창한 이후 신규 원자력발전소 건설에 대한 향방은 불투명한 상황이지만 경주에는 방사성폐기물저장소까지 있다. 사실 행정구역상 시군 간 지역이 구분되어 있기는 하지만 원전과 관련한 것은 일본의 사례를 보더라도 큰 의미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때문에 탈 원전 이후 이 지역의 항구적인 안전 확보를 위해서는 가동 종료와 해체에 관한 연구도 꾸준히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범국가적인 사업 가운데 위험, 혐오시설 등을 특정지역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떠안게 될 경우에는 이에 상응하는 반대급부도 당연히 주어지기 마련이다.하지만 국가사업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자신의 주거지역 주변에 없기를 바라는 기피대상시설은 수없이 많다. 이러한 이기적인 행동을 님비(NIMBY) 현상이라고 부른다. 이와 반대로 누구나 선호하는 이기적인 행동은 핌피(PIMFY) 현상이라 부르는데 이러한 시설에 대한 지자체 사업은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기도, 때에 따라서는 특혜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포항시뿐만 아니라 앞으로는 거의 모든 지방도시에서 고령화가 급격하게 진전됨에 따라, 과거 젊은이들이 넘쳐나던 시절에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거나 부족함이 없이 큰 불편을 느끼지 못했던 시설들이 많이 필요해질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이러한 시설들의 부족현상이 점차 확대될 가능성도 크다. 그중 대표적인 것으로는 장례시설과 화장시설 등을 들 수 있다. 포항시의 경우에도 시 승격 70주년을 맞이할 정도로 도시 나이도 들었고 인구도 50만 명이면 적지 않은 규모지만 그동안 도시가 발전, 성장하는 과정에서 인구가 순차적인 확장을 하였다면 이와 같은 필수시설도 당시에는 도시외곽에 만들어 졌더라도 다시 도시의 확장단계를 지난 시점에서는 결과적으로 편리한 부도심지역에 이러한 시설들이 이미 충분히 적절하게 포진하고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하지만 포항의 경우에는 특이하게도 1994년까지는 인구 30만 명 수준의 도시였지만 1년 후인 1995년 도농복합도시로 주변 읍면지역을 통합하면서 일시에 50만 명이 넘는 대도시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 문제다. 이에 따라 인구 30만 명 수준을 감당하던 시설들로는 50만 명 수준의 수요를 감당할 수 없게 된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바로 이러한 장례시설 등인 것이다. 포항시가 지금 추진하고 있는 다양한 사업들 중에는 공원과 같은 핌피 대상은 가까이, 장례시설과 같은 님비 대상은 멀리 갔으면 좋겠다는 주민의 반응은 인간인 이상 어쩔 수 없는 민원의 대상으로 나타나기 마련이다.그렇다면 이와 같은 님비와 핌피의 갈림길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만 할 것인가. 정답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러한 주민반대를 상호 해소시키는 정책은 가능할 것이다. 요즈음 유행하는 1+1과 마찬가지로 님비와 핌피를 묶은 패키지로 동반시키는 융합정책도 하나의 대안으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포항의 경우에는 앞으로 도시의 역사가 깊어져 갈수록 지역에 대한 연구도 강화될 것이다. 지역만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역사의 유물과 흔적들을 관광객과 방문객들이 많이 드나들 수 있는 멋진 역사문화박물관의 건립요구도 높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박물관과 조화로운 건물의 디자인과 다양한 편의시설, 외형적으로도 미관을 갖춘 장례시설이나 화장시설을 함께 건립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모두들 과거의 역사를 되새김하고 선조들의 흔적을 살피는 박물관의 옆에는 언젠가 우리도 가야할 그러한 시설이 있다면 눈을 찌푸리지 않고 오히려 다시 한 번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는 교훈을 주는 시설로 자리매김할 수도 있을 것이다.

2019-05-14

밀레니얼세대의 물결을 타야 한다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기획조사팀장우리는 그동안 다양하게 세대를 정의하여 왔다. 통기타와 그룹사운드라고 하면 7080세대라는 말이 떠오른다. 컴퓨터를 기준으로 삼은 386세대라는 말은 정치적 영향력을 의미하기도 한다. 고령화가 진전되는 동안에는 베이비붐세대라는 말이 오래 지속되었다. 이 베이비붐세대의 자녀세대라고 할 수 있는 1981년부터 1996년 사이에 태어난 세대를 미국의 퓨 리서치에서 밀레니얼세대라고 명명한 바 있다. 현재 나이로 치면 25세부터 39세에 이르는 연령층이다. 이들 세대가 점차 자신들의 취향에 맞게 행동하기 시작하면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방면에서 서서히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하였다.이러한 흐름에 미국도 예외는 아닌듯하다. 전 세계가 혁신의 상징으로 여기던 미국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해안 일대의 첨단기술 연구단지인 실리콘밸리에서 최근 이들 세대가 이탈하려는 조짐을 보인다고 한다. 얼마 전 한 리서치회사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이 베이에어리어에 거주하는 18∼34세의 밀레니얼세대들 가운데 5분의 2는 향후 1년 이내에 다른 지역으로 이전할 생각이라고 응답하였다. 실제 지난 수년간 이 지역을 포함한 캘리포니아 전체 인구의 증가세도 점차 둔화되고 있다고 한다. 미국 전체 국내총생산의 12%에 해당하는 2.6조 달러 규모의 경제력을 지닌 캘리포니아주 당국도 밀레니얼세대들의 의사결정과 행동에 영향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이 밀레니얼세대들은 자라는 과정에서 그전까지 비교적 순탄한 성장을 이루었던 것과 전혀 다른 수많은 사건과 위기를 모두 겪었다. 2001년 911테러부터 이라크전쟁,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을 부모세대와 함께 겪었다. 우리나라의 이 세대는 심지어 IMF외환위기까지 경험하였다. 게다가 PC는 물론 휴대폰이 스마트폰으로 바뀌는 동안 함께 나이를 먹었고, 다양한 SNS를 통해 적극적으로 자신의 생각과 일상을 공개하고 정보를 공유하면서 부모들이 이해하기 힘든 세대이기도 하다. 미국의 비즈니스기술전문 사이트인 비즈니스인사이더가 이들 세대의 특징을 11개의 추출한 바 있다. 몇 가지 살펴보면 요리보다는 테이크아웃을, 맥주보다는 와인이나 증류주를, 강의 출석보다는 온라인학습을 선호한다. 육아는 어르신보다는 구글에 의존하며 백화점쇼핑대신 패스트패션으로 치장한다.이들 세대는 전 세계 인구의 25% 수준인 18억 명에 달하며 중국에만 3억5천100만 명이 존재한다. 우리나라도 2019년 4월 주민등록기준으로 비슷한 연령층(25∼39세) 인구는 1천만 명이 넘는 20.5%에 이르렀다. 포항도 9만1천890명으로 18.1%에 이른다. 다만 아직은 부모세대의 비중이 높아 포항의 전 부문에서 이루어지는 의사결정에서는 아마도 이들 세대보다는 부모세대의 가치관에 좌우될 가능성이 높다.그러나 이미 세계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거의 전 분야에 걸쳐 이들 밀레니얼세대 중심으로 움직이는 상황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이제 포항도 이러한 물결에 늦지 않게 올라타야만 한다. 최근 포항에서는 관광산업의 육성을 산업다변화의 대안 중 하나로 추진하고 있다. 문제의 핵심은 이 세대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정책인지 여부다. 그들이 관심을 갖는 볼거리, 그들이 좋아하는 먹거리, 그들의 취향에 맞는 쇼핑거리를 어떻게 부모세대의 취향과 균형을 맞출 것인가에 달려있다. 어떠한 조형물을 세우거나 과거 성공하였던 관광인프라가 베이비붐 세대들과는 전혀 가치관이 다른 이들 세대들에게도 그대로 통용될지 여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최소한 이들의 취향과 선호를 염두에 둔 의사결정이 이루어져야만 포항이 추진하고 있는 청년층의 유입, 청년창업 유도, 지속가능한 관광산업의 육성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보다 긍정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2019-05-07

포항의 새로운 역사의 흐름

김진홍한국은행 포항본부 기획조사팀장2019년 5월 1일은 우리에게는 수많은 일상 중 하루에 불과할 것이다. 굳이 의미를 부여한다면 일부 근로자들은 노동절로서 하루 휴식할 수 있는 날 정도의 감흥뿐일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다르다. 새로운 연호(元號)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일본은 1867년 메이지(明治) 이후 일왕(天皇)이 바뀔 때마다 연호가 바뀐다. 이후 다이쇼(大正), 쇼와(昭和)를 거쳐 4월 30일까지는 헤이세이(平成)였다. 이번의 연호 변경은 금년 85세인 일왕이 고령으로 사임하고 황태자인 나루히토(1960년생)가 새로 즉위한 때문이다. 일본 당국은 일본이 국가승인을 하고 있는 195개 각국 정부 등에게 새로운 연호인 레이와(令和)를 영문으로는 ‘Beautiful Harmony’로 로마자표기로는 ‘Reiwa’로 한다는 통지를 마쳤다. 우리에게야 큰 느낌이 없지만 의외로 일본에서는 이러한 변화가 정치, 사회, 문화 등 모든 방면에서 변화를 촉진시키는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한다.포항은 올해가 시 승격 70주년을 맞이하는 해다. 그에 따른 기념행사도 다방면에서 진행되고 있다. 다만 이러한 일상적인 행사들이라도 지역 주민들이 진지하게 귀중한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면 그것은 더이상 하나의 행사로 그치지 않게 된다. 그것이 새로운 변화를 촉발시키는 힘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사실 포항(浦項)이라는 지명 자체는 비교적 신흥도시여서 경주와 같은 천년 단위의 역사성은 없다. 구한말인 1900년 전후만 하더라도 연일군 북면 포항동(浦項洞)이라는 작은 어촌부락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 포항동이 지금의 50만명이 넘는 지방의 대도시로 성장 발전하기까지는 결과적으로 보면 역사적 분기점이라고 할 수 있는 충격유인이 적어도 4차례는 있었다.포항동이 포항면, 포항읍 그리고 포항시로 승격하기까지는 물론 해방 이후 지금까지도 포항의 역사는 대체로 20년에서 25년을 주기로 분기점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일제강점기시절에 찾아온 제1차 충격으로 포항의 역사적 분기점을 이룬 것은 1923년 4월 12일의 폭풍우였다. 당시 공식인명피해만 하더라도 689명이었는데 이는 당시 포항인구의 9.8%에 이르는 대참사였다. 물론 이를 계기로 포항항 축항과 형산강 개수가 이루어지면서 포항읍은 이후 발전을 거듭하여 1949년 8월 15일 포항시로 승격하게 되었다. 제2차 충격은 27년 후인 1950년의 한국전쟁이었다. 또 다시 전쟁의 폐허에서 포항은 재건에 성공하였다. 그로부터 23년 후 찾아온 제3차 충격은 1973년 포항제철의 제1고로 준공이었다. 당시 인구 6만명에서 32만명의 철강도시 포항으로 대도약을 이루었다. 제4차 충격은 1995년 도농통폐합으로 주변 읍면을 흡수하면서 일약 50만명의 대도시로 탈바꿈하게 된다.그로부터 20년차인 2015년에는 KTX동해선이 개통되고, 22년차인 2017년에는 포항지진이 발생하였다. 이 두 개의 사건이 제5차 충격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포항에는 어떠한 위기가 다가와도 이를 극복해온 DNA를 갖고 있다. 최근 발생한 두 개 사건 중 KTX개통은 포항을 누구든 드나들 수 있는 개방도시로 만들었다. 그리고 두 번째 포항지진은 얼마 전 특별법 제정 국민청원기간 동안 어려운 전자기기 사용법을 감내한 어르신들까지 합세하며 21만2천675명이 서명을 마쳐 여전히 대결집의 DNA가 존재함을 증명하였다. 이제 도시 포항은 새로운 역사의 흐름을 맞이할 준비가 끝났다. 부디 다양하게 펼쳐질 70주년 행사가 단순한 이벤트에 그치지 않기를 바란다. 이번 행사를 통해 시민 각자가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제6차 충격이 오기전까지의 새로운 25년 동안 시민들 스스로 재건해 나갈 또 다른 모습의 포항을 그리면서, 새로운 도약을 위해 각 분야가 각오를 다지는 기회로 삼았으면 한다.

2019-04-30

포항의 야시장(夜市場)이라면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기획조사팀장최근 대한민국의 밤은 어쩌면 예전보다 활기찬 모습을 보일 것 같다. 전국 각지에서 유행처럼 ‘야시장(夜市場)’을 개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야시장은 생각보다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일제 강점기 시절이던 192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비교적 산업과 경제가 활발하게 움직이며 주요 도시에는 전기가 제대로 공급되었기 때문에 서울, 부산, 대구는 물론 포항 등 주요 도시에서는 야시장이 개설되었던 것이다. 포항도 야시장의 역사는 이미 100년 가까이 되는 셈이다.당시 포항의 상거래는 조선인들이 중심이 되는 여천시장과 지금의 중앙상가 위치에 즐비하였던 일본인 상점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여천시장에서는 해가 뜨면 시장이 북적이다가 해가지면 철수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당시 신문기사 등을 살펴보면 시장에는 노점들도 많았다. 주로 여인네들이 지역의 유명한 특산물이었던 돌김이나 청어의 머리를 자르고 몸통을 절반으로 갈라 내장을 제거한 후 염장 조미하여 말린 신흠(身欠)청어 등을 가지고 나와 호객하는 모습은 흔한 풍경이었다.지금 철강경기의 변동에 따라 지역경제가 흔들리듯이 당시에는 청어 어획이 풍어(豊漁)냐 불어(不漁)냐에 따라 포항읍내 경기가 결정되었다. 여름철에는 시장을 여는 시간이 늘어나기는 하였지만 취급하는 것이 부패하기 쉬운 수산물이어서 어려움이 많았고, 선선한 저녁에는 어두워서 장사할 수 없었다. 이에 지역 상인들은 스스로 값비싼 전기료와 전등임대료를 감내하며 사활을 걸고 깜깜한 밤을 밝혀 손님을 끌어 모으기 위해 시작한 것이 바로 야시장이었다.1930년대에 전국적으로 유행하였던 야시장은 대체로 성공적이었다. 물리적으로 장사하는 시간이 연장된데 다 야밤에 환하게 전등으로 밝혀진 시장거리는 당시로서는 대단한 볼거리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최대한 짧은 시간동안 값비싼 전기료비용을 건지려는 상인들의 조바심으로 인해 아이들과 함께 나온 부인들을 단순 구경꾼으로 지레짐작한 상인들이 막말하거나 무시하는 사례, 큰손이 아닌 군것질하는 아이들을 홀대하는 사례들도 많았던 모양이다. 당시 야시장을 둘러싸고 ‘부인손님에 대한 응대 특히 공손하게 하자’, ‘태도문제, 언사와 함께 중요’, ‘모처럼 온 손님 고마운 생각을 가져라’등 지금도 그대로 인용할만한 기사들도 눈에 띄고 있다.서울시에서 시행하고 있는 밤 도깨비 야시장은 이제 자리를 잡은 것 같다. 올해도 4월5일부터 시내 곳곳에서 개최하고 있다. 2015년에는 20만 명, 2016년에는 330만 명, 2017년에는 505만 명이 다녀갔다고 한다. 야시장이라고 해도 푸드 트럭과 같은 단순히 먹거리만 있는 것이 아니어서 외국인들에게도 인기가 높다고 한다. 야시장은 과거처럼 상인들이 사활을 건 단판승부가 아니라 일종의 축제와 같은 성격을 지니게 된 셈이다. 과거에는 그저 깜깜한 밤을 밝히기만 해도 신기함에 사람들이 몰리는 매력이 있었지만 지금은 시간은 적고 가볼 곳은 많은 시대가 되었다. 결국 지자체가 주도하는 행사이기는 하지만 성공여부가 지자체의 역량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지자체의 역할은 하드웨어인 자리를 마련해주는 데 그쳐야 한다. 야시장에 한번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질 수는 있겠지만 그것만으로 두세 번 재방문하거나 관광방문객이 반드시 찾게 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이번에 포항에서 개최하는 야시장은 이왕이면 의미 있는 야시장이 되었으면 한다. 예를 들어 먹거리라면 적어도 구룡포 대게, 흥해 부추, 곡강 시금치, 청하 돌미역, 신광 흥곡주, 장기 산딸기 등 반드시 지역산 농수산물을 이용하였다는 원산지표시까지 있었으면 좋겠다. 비록 도심의 행사지만 지역 특산물도 함께 알리는 도농복합도시 포항다운 야시장으로 성공하기를 기대한다.

2019-04-23

도심 재생프로젝트가 성공하려면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기획조사팀장지방에 소재한 도시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모두들 지역경제 활성화에 목을 매고 있다. 당연히 야심찬 프로젝트가 성공하기도 실패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수많은 사례들의 공통된 성공요인은 단 하나다. 그것은 해당 지역 주민 내지는 프로젝트 대상의 진정한 참여다. 그것이 특정한 건축물일 수도 있고 지역의 무형의 자원일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존재하는 이유, 그리고 그것이 지역에 의미하는 바가 정확하게 어떠한 것인지를 해당 지역 주민이나 프로젝트의 당사자들이 알고 있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의 결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이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즉, 어떠한 지역에서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였는데 그것이 성공하였다고 해서 동일한 벤치마크를 통해 마치 외형적으로는 같은 것처럼 보이더라도 그것을 그대로 도입한 지역에서도 동일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포항시도 최근 다양한 사업들을 추진 중에 있다. 그중에서도 도심재생 내지는 상권 활성화는 수년에 걸친 현안과제다. 상권이라는 것은 사실 생물이나 마찬가지다. 시장 또는 상가라는 것은 지리적 공간적으로 고정되어 움직이지 못하고 있지만, 그곳에 소재하고 있는 상가에 드나드는 소비자나 외부에서 유입되는 방문관광객은 언제든지 밀물처럼 밀려오다가는 순식간에 썰물이 빠지듯이 빠져 나갈 수도 있는 항상 변화하는 존재다. 이와 같이 변덕이 심한 소비자들의 발길을 과거의 번화가를 떠올리며 활성화시킨다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다. 왜냐하면 사람의 발길은 한번 되돌려지면 특별한 일이 아니고서는 되돌리기 힘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지금 신중하게 살펴보아야하는 것은 상권의 본질이지 단순하게 노후화된 거리의 환경개선이나 건축물들 사이의 간판의 통일과 같은 외견적인 것이 아니다. 그러한 것들은 그저 사업을 추진하는 사람에게는 뿌듯한 만족감을 줄지는 모르지만 상권의 핵심인 소비자의 발길을 돌리고 지갑을 열게 할 정도의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그렇다면 우리가 신경써야할 상권 활성화의 본질이란 과연 무엇이며, 어떻게 추진해야할 것인가. 많은 조건들이 있겠지만 적어도 다음 네 가지는 반드시 필요하다. 첫째, 왜 그곳에 가야만 하는가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적어도 온라인쇼핑 등에서 더 싸고 더 다양한 물건을 편하게 집에서 받을 수 있는 물품을 취급하는 상가는 아니어야만 할 것이다. 굳이 소비자들이 교통 불편을 감수하며 그곳에서 사고 싶은 이유를 해당 상가 스스로 만들어 내어야만 한다. 즉 유니크함을 갖추어야한다는 이야기다. 둘째, 건물주와 입주자 간 공동의 번영을 추구해야만 한다. 다소 낮은 임대료라도 모든 상가가 입주하면 건물주는 임대수입이 확보되고 입주상가는 그만큼 가격경쟁력이 높아져 상권회생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셋째, 네트워크의 연결성을 확보해야 한다. 가령 앞 상가에서 물건을 살 경우 적립된 포인트를 옆 상가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업종과 업태가 전혀 다름에도 상가들이 이러한 연결성을 확보하게 된다면 특정 지역상권 전체가 하나의 종합백화점과 같은 시너지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주차장에도 적용할 수 있는 문제다. 상가의 어느 가게를 찾더라도 소비자가 주차서비스를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다면 상가 활성화에는 플러스 요인이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재생이나 활성화의 프로젝트가 성공하려면 실제 당사자이자 주인공인 건물주나 상인들이 무엇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 무엇을 해야만 할 것인지를 고민해야만 가능하다.

2019-04-16

무엇을, 그리고 누구를 위한 특별법인가

김진홍 한국은행 포항본부 기획조사팀장최근 포항지진과 관련하여 정치권, 재계, 시민 등 각 계층별로 각자가 추구하는 목적은 다를지 모르나 특별법 제정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모두 공감하고 있는 모습이다. 실제 법을 제정하는 것은 입법부인 국회에서 이루어지겠지만 우리나라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청와대 홈페이지에서 이루어지는 국민청원제도는 무시할 수 없는 민의를 수렴하는 하나의 장치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포항 지진과 관련한 특별법 제정을 청원하는 항목은 ‘안전·환경’분야에 청원기간만료가 4월 29일인 “11·15 포항지진 피해배상 및 지역재건특별법 제정을 간곡히 요청합니다.”라는 다소 긴 제목인데 4월 2일 오후 6시 현재 10만5천251명이 동참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그런데 다소 이상하다는 의문이 들었다. 불과 몇 해 전, 정확히는 2015년 9월 10일 모 방송사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당시 포스코의 화력발전소 건설을 위해 상공회의소를 주축으로 70여 개 단체가 2주간에 걸쳐 이루어진 서명운동에는 무려 32만 명의 시민들이 서명하였다. 그런데 이번 포항지진과 관련한 범시민적인 운동은 생각만큼 폭발적이지 않은 모습이다. 이는 아마도 무엇을, 그리고 누구를 위한 특별법인가라는 것에 대해 명확하게 인식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첫째, 오해를 하지 말자. 포항시민은 물론이고 다른 지역민을 포함한 모든 국민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지만 이번에 특별법을 제정하고자 하는 것은 단돈 1원이라도 포항지진에 따른 보상금을 더 받기 위한 목적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어떠한 국가적인 차원에서 시행하는 프로젝트가 정상적인 절차와 단계를 밟아 사업이 추진되고, 포항지진이 발생하기 까지 철저한 관리감독과 더불어 국민의 안전을 저해하는 행위는 없었는지, 그리고 앞으로도 이러한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국가시스템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포항지진을 반면교사로 삼아 특별법을 제정하자는 취지인 것이다. 때문에 포항시민가운데 나는 피해를 받은 것이 없고, 보상을 요구할 것도 없으므로 국민청원이나 특별법 제정은 나와 무관하다는 오해를 하지 않았으면 한다. 내가 아닌 우리 사회 전체의 안전을 도모한다는 시각에서 이번 특별법 제정을 인식해야할 필요가 있다.둘째, 대의명분을 잊지 말자. 국민청원의 제목에서는 피해배상과 지역재건이라는 핵심적인 요청사항도 들어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번에 특별법이 제정된다면 적어도 그 포괄범위는 포항이라는 지역을 벗어나야만 의미가 있는 특별법이 될 것이다. 지열발전에 대한 시험연구 프로젝트는 범국가적인 차원에서 미래 먹거리를 찾기 위한 새로운 에너지원 발굴을 위한 사업의 하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앞으로도 첨단과학기술 등 국가 차원의 프로젝트에서 국가가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미처 예견하지 못한 부작용이 발생하였을 때 합리적인 피해의 산정과 사회적 안전을 최대한 보장할 수 있는 투명한 관리체계를 확립하기 위해서라도 그와 관련한 특별법을 이번 기회에 제정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지난 몇 년간 온 국민이 관심을 가졌던 세월호에 관한 특별법의 정식명칭은 “4·16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이다. 단순히 세월호 피해자를 보상하기 위한 특별법이었다면 국민적 관심에서 많이 벗어났을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이러한 일이 어디의 누구에게도 발생할 수 있다는 대의명분에 국민 모두가 동참하였던 것이다.이제 지진피해를 자신이 직접 받았는지 아닌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적어도 국가의 사업보다 국민 안전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특별법 제정에 대해서는 포항 시민은 물론 다른 지역의 국민들도 적극 동참해야만 할 것이다.

2019-04-02

다시 한 번 포항인의 뚝심을

김진홍한국은행 포항본부 기획조사팀장포항의 근현대사를 돌아보면 수많은 재해와 재난의 연속이었다. 그때마다 포항사람(浦項人)들은 특유의 기질로 그때마다 위기를 새로운 도약의 밑거름으로 삼아왔다. 굵직한 재해 가운데 가장 첫 번째 사건이라면 1923년 4월 12일에 발생하였던 유례없는 폭풍우로 인한 재해였다. 당시 포항경찰서가 피해상황을 공식 집계한 기록만 보더라도 사망자 311명, 행방불명자 355명으로 인명피해는 공교롭게도 ‘666명’이었는데 이는 당시 1만명이 조금 넘었던 포항면 인구의 6% 가까운 수치에 해당한다. 그밖에 바다 속으로 가라앉은 조난 선박도 95척에 달하였다. 당시의 경제상황은 청어, 고등어와 같은 영일만 앞바다의 어획량에 따라 좌우되던 시기였기 때문에 도시 전체가 쓸려나간 당시 포항면의 실상을 일부 자료에서는 현세의 생지옥이었다는 표현이 있을 정도였으므로 전무후무한 대참사였다. 그러나 그때의 선조 포항인들은 일치단결하여 자신의 이익보다는 도시 전체의 기능 회복에 매달려 포항항을 축조하고 형산강 대개수 작업을 통해 약 600만평 규모의 수혜지역을 확보함으로써 이후 포항읍으로 포항시로 발전하는 뚝심을 발휘하였다.두 번째 사건으로는 한국전쟁을 빠뜨릴 수 없다. 당시 낙동강전투의 최후 방어선이 포항이었던 만큼 포항은 괴멸적인 피해를 입었다. 당시 시가지 사진을 살펴보면 도시가 모두 파괴되고 오직 교회건물 하나만 지평선에 나타나 있었을 정도였다. 그 때에도 포항인은 대한민국의 수호자라는 자부심과 전후복구를 위해서는 동해안 유일의 무역항을 조기 수습해야한다는 사명감, 거친 파도와 상어를 두려워하지 않고 고기를 잡아 올리던 강인한 정신력으로 두 번째 위기도 슬기롭게 극복하였다.포항시는 이제 포항지진이라는 역사적인 세 번째 사건을 겪었다. 포항지진의 모습이 영상으로 전국에 전파된 데다 인구까지 감소하였다고 하니 모르는 사람들은 과거 70, 80년대에 타지에서 흘러들어왔던 산업인력들이 위기가 닥치자 삶의 터전을 버리고 포항을 떠났을 것으로 오해하기 쉽다. 하지만 실제 지진피해가 극심했던 포항 북구, 그중에서도 흥해 지역 등에는 오히려 인구가 늘어났다. 지진발생 전부터 전국적으로 진행되었던 국내 철강업체의 구조조정 등으로 인한 공장 통폐합과정에서 일자리를 중심으로 남구지역의 인구가 유출된 것에 불과하다. 일종의 오비이락인 셈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경기요인으로 기업체와 연동되는 인구는 지역경제가 다시 활성화되면 다시 돌아오기 쉽다. 어지간한 자연재해로는 피해가 없는 풍요로운 현대사회에서 생활하던 포항인 들에게 발생한 세 번째 사건은 유례가 없던 지진이었기에 그 충격은 더욱 컸다. 그리고 살기 좋은 도시 포항으로 이사하려던 이들의 발걸음도 주춤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합동조사단의 발표는 이와 같은 우려를 말끔히 씻어주었다.이제 포항인은 과거의 뚝심을 다시 한 번 발휘해야 할 때가 왔다. 물론 ‘피해보상’도 중요하다. 그것은 전문성을 지닌 분들에게 믿고 맡기면 된다. 모든 시민단체가 거기에 매달릴 필요는 없다. 그보다는 앞으로 포항시가 어떠한 이미지의 도시로서 정체성을 확립해야 할지, 어떤 프로젝트로 포항의 경기를 살리고 재도약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을지에 주목해야 한다. 포항인이 과거 근현대사를 통해 겪었던 괴멸적인 재해에서도 불굴의 의지로 새로운 도시 포항을 만들어내었던 것처럼 포항인의 기질을 다시 한 번 발휘해야 할 때다. 모처럼 다가온 포항의 도시재생, 도시재개발로 도약할 최고의 타이밍을 보상이나 소송이라는 문제에만 쏠려 놓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2019-03-26

이제 새로운 한 발자국을 내딛자

김진홍한국은행 포항본부 기획조사팀장2017년 11월 15일 포항의 역사에 하나의 선을 그은 포항지진이 발생한지는 불과 1년 4개월 정도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자신이 처한 상황이나 입장에 따라 체감하는 정도에는 큰 차이가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 아직도 지진에 따른 피난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포항지진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일 것이다. 오랫동안 생고생을 하면서 대학입시를 준비하였던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이었던 수험생들은 어쩌면 자신의 예상과 다른 대학에서 공부하면서 인생이 바뀌게 되었다고 분통을 터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미 포항지진을 겪고 난 이후 불안에 떨면서 포항과 인연을 끊은 사람도 있을 것이며, 반대로 위기는 기회이고 이참에 부동산가격이 하락한 것을 계기로 포항을 은퇴지로 삼아 이전해온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떠한 사건사고가 발생하게 되면 그로 인한 작용과 반작용이 각자 처한 상황과 인식에 따라 다양한 방향으로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다.아마도 오늘 예정대로 정부합동조사단에서 포항지진의 발생 원인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하게 될 것이다. 지진이라는 것은 지층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에너지의 축적과 계기로 인해 지각에 영향을 주는 그야말로 지각변동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번에 정부가 발표하는 보고서에서 자연적인 발생이냐 아니면 어떠한 사유로 인해 그것이 인위적인 영향으로 인한 유발지진이냐 하는 데 대해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더라도 포항시민은 물론 지질학자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에게는 또 다시 활발한 논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학자들의 입장에서야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이 하나의 현상에 대해 새로운 지식적인 데이터를 입수하여 학문적 성과를 높이는데 도움이 되겠지만, 앞으로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이며,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물적, 정신적 피해에 대한 보상에도 이 원인규명이 초미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당연히 얻는 자가 있으면 잃는 자도 있기 마련이므로 이번 정부의 발표로 인해 당분간 포항 시내가 들썩일 가능성은 크다.지진발생의 원인은 반드시 규명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책임한계와 그 책임의 소재에 대한 논의도 결론을 내리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철저한 규명과 앞으로의 대처방안을 마련하여 시민의 안전을 도모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그러나 거기에만 몰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앞으로 포항을 어떠한 도시로 만들어나갈 것인지, 포항은 과연 지진이 발생하였던 도시였는지 조차 의심이 들 정도로 면목을 일신해야만 한다. 지금 포항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후손의 미래를 위해 충분하게 고민하고 노력해야할 시기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이제 우리 모두 한 발자국을 더 내딛자. 그렇게 수많은 지진이 매일같이 발생하고 있는 이웃 일본의 경우에는 매년 해외에서 방문하는 관광객이 지속 증가하고 있다. 어떤 지역은 지진이 발생하는 상황을 진도별로 체험하는 체험관을 운영하기도 한다. 결국 인간은 용감한 동물인 셈이다. 단순히 지진이 자연적으로 발생하였건 인위적인 개입이 있었건 그 원인을 불문하고 지진과 무관하게 전혀 다른 시각에서 포항 전체의 도시 분위기를 일신하는데 노력하여야만 한다. 우리나라가 전후 한국전쟁의 폐허에서 전쟁의 아픔과 고통, 슬픔에만 잠겨있었다면 이른바 ‘한강의 기적’은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시민은 물론 우리 모두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신선한 아이디어를 모으고 내국인 외국인 모두 편안하게 포항을 방문할 수 있도록 서로 협력하고 돕는다면 마찬가지로 포항지진의 아픔과 피해에서 우리 모두 탈출하여‘형산강의 기적’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2019-03-19

지역철강업계 부활의 프로세스

김진홍한국은행 포항본부 기획조사팀장포항 경제계는 그 어느 지역보다도 남북관계개선과 북미정상회담 등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특히 이를 계기로 한반도 동해안철도와 북한을 경유하는 한·러 간 가스파이프라인이 연결될 경우 미국의 수입규제나 조선 등 철강수요 부진을 대체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작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러나 북핵문제와 유엔 등의 제재조치가 모두 해결되어 북한이 중국처럼 개혁개방에 나서더라도 우리나라가 대북 투자나 대북경협을 독점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남북 당사자에게만 해당되는 프로젝트가 아닌 한 북한도 자신들에게 가장 유리한 투자조건이나 협력방식을 택할 것이기 때문이다. 당장 가시화되고 있는 남북한 철도현대화사업과 한·러 가스파이프라인 건설만 하더라도 사업예산과 북한 측의 사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보면 저가의 중국산 철강자재를 배재하고 한국산 자재만을 고집하거나 미국과 러시아 업체가 동참하려 할 때 지속적인 한반도 평화를 고려한다면 무조건 한국의 배타적인 독점권을 고집하기 어려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따라서 국내외 정세변화에 일일이 실망할 필요도 과도한 기대도 가질 필요는 없다. 그보다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지역 철강자재가 가격, 품질, 기술면에서 절대 우위의 경쟁력을 갖추는데 주력해야만 한다. 지금까지 포스코의 기본 강재를 2, 3단계 정도까지 절삭, 가공, 조립 등 중간재 형태로 생산, 판매하며 포항 지역경제를 성장시켰던 프로세스는 더 이상 통용되지 않게 되었다. 이러한 프로세스는 중국을 비롯한 인도, 베트남 등 후발국에서 이미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포항지역경제가 그동안 부진에 빠지게 된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가 철강 산업을 사양 산업이라고 이야기하는 근거는 바로 이와 같은 과거의 성장 프로세스만을 연상하기 때문이다. 물론 앞으로도 철강은 ‘산업의 쌀’의 위치를 고수하겠지만 이 ‘쌀’을 씻어 단순하게 밥을 짓기만 하면 되던 시대는 분명히 끝났다.그렇다면 지역철강업계는 어떠한 프로세스로 부활할 수 있을까. 철강이라는 산업의 ‘쌀’을 ‘밥’이 아닌 그 이상으로 활용하도록 해주거나 직접 새로운 용도의 최종제품으로 만들어 내면 되는 것이다. 쌀을 곱게 갈아 케이크를 만들 수 있게 해준다거나 녹차가루와 견과류 등을 혼합한 ‘철이 포함된 복합재료’로 재탄생시켜 ‘떡’처럼 다양한 모습으로 제품화할 수 있도록 재료의 복합화, 용도의 다양화, 사용의 편리성 등을 높여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준비는 아이러니하게도 과거와 같이 생산 공정을 풀가동하는 성장단계에서는 불가능하다. 쌀에 불순물이 들어있어도 물량이 부족할 때에는 그것으로 만족하기 쉽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금처럼 자신과 무관한 외부여건으로 기업이 어려움을 겪으며 시간과 인력이 남을 때, 용돈벌이라도 하겠다는 은퇴한 숙련기술자가 남아돌 때 이 가용자원들을 활용하여 연구개발에 힘써 자사의 기술력 향상과 고부가가치 신제품개발, 품질경쟁력 강화 등 체질개선에 힘쓸 절호의 기회다.이와 같은 체질개선과 연구개발로 품질과 기술경쟁력을 갖추는데 투입된 비용은 지역 철강제품의 가격에 그대로 반영하면 된다. 이러한 경우에는 최소한 가격 덤핑문제에서는 자유를 얻게 되어 수출경쟁력도 한 단계 높아질 것이다. 포항 경제와 지역 철강업계가 부활하려면 이 기회를 결코 놓쳐서는 아니 된다. 물론 남북관계 개선에 따른 특수나 영일만대교 건설 등과 같은 단발적인 프로젝트를 굳이 거부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메인 식사가 아닌 디저트로 여겨야만 한다. 앞으로도 세계적인 철강수요의 급증은 기대하기 어렵다. 이번 기회를 놓칠 경우 지역철강업계는 정치적인 개발 사업과 가격경쟁에만 목숨을 거는 사양 산업으로 시계를 되돌리게 될 것이다.

2019-03-05

포항의 역사에서 돌파구를 찾자

김진홍한국은행포항본부 기획조사팀장과거 독일이 그러하였듯이 어떠한 지역·국가를 불문하고 총체적인 위기상황에 부딪치면 새로운 분야에 눈을 돌리고 역사 등 인문학에 대한 연구에 주목하면서 민족적 지역적 자긍심과 정체성을 조망하기 마련이다. 최근 ‘포항지역학’에 대한 연구와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데는 경제부진이 장기화되면서 이와 같은 맥락에서 출발한 점도 있기는 하겠지만 그보다는 그동안 오랜 세월 축적되어왔던 지역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는 에너지가 3·1운동 100주년 기념, 시 승격 70주년 기념이라는 하나의 상징적 사건을 계기로 자연스럽게 분출되기 시작한 것이라고 본다.지방색이라고도 할 수 있는 특정 지역이 지닌 정체성은 같은 나라라고 하더라도 다소의 이질감을 띠게 마련이며 이것이 방문객에게 신선한 문화적 충격을 주기도하고 볼만한 볼거리, 특이한 먹을거리, 생소한 즐길 거리가 되기도 한다. 전국 어디에 가도 똑같은 모습이 아니라 반드시 여기에는 해당 지역에서 자신들이 지닌 전통, 풍습, 내지는 역사적 사실을 일반인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선행적인 연구의 축적이 있어야함은 물론 이것을 기반으로 하는 스토리텔링이 갖추어져야만 가능함은 물론이다. 지금도 국내외에서 인기를 끄는 대표적인 관광지들 가운데 바로 이와 같은 해당 지역만의 역사적 유물을 쉽게 보이고 이해할 수 있도록 현대적 재해석을 더하여 성공적으로 관광 상품화한 사례는 적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그러한 의미에서 포항에는 과연 어떠한 이야기가 잠자고 있을까? 천년수도 경주와 직접 비교하면 남겨진 문화유산 자체는 터무니없이 적지만 스토리텔링화할 각 시대별로 굵직한 이야기 거리 자체는 차고 넘친다. 그럼에도 최근 지역에서는 산업단지 분양 문제, 새로운 성장 동력의 발굴, 육성에만 연연하는 조급함만 가득한 것 같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본다면 무에서 유를 창조하기보다는 과거를 살펴보고 그중에서도 존재감이 컸던 것들을 발굴하여 재현하거나 재해석한다면 포항도 역사성과 더불어 포항만의 독특한 스토리텔링을 창출하여 관광 상품으로 만들 수 있다고 본다.얼마 전부터 포항의 근대 산업 경제 발달과정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자료를 찾아보던 중 재미있는 기사를 발견하였다. 일본 오사카아사히신문이 1931년 6월 25일자로 보도한 기사를 발췌하여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전략) 지금 일본에서는 이제 포도주라고 하면 ‘조선 경북이지’라고 정정할 필요가 있다. (중략) 조선 경북도 포항의 대포도원에서 생산된 포도주는 고급 포도주로 품질이 프랑스제 최우량품에 결코 뒤지지 않으며 (생략)”과거 영일군 동해면과 오천면 일대에 대규모로 포도밭이 조성된 것은 1918년 2월이다. 당시 이 포도농원에서는 레드와인, 화이트와인, 샴페인 등 최고급 포도주가 생산되어 일본 동경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당연히 이 농원에는 화이트와인의 원료인 청포도가 대량 재배되고 있었다. 유명한 저항시인 이육사는 1929년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른 후 포항에서 요양생활을 하였는데 이후 1937년 동인지 자오선을 통해 발표한 ‘청포도’라는 시는 포항생활 속에서 탄생한 듯하다. 이 시에 등장하는 ‘하늘 밑 푸른 바다’는 동해면 앞바다를, ‘이 마을 전설’은 연오랑 세오녀 전설과 일월지 등이 당시 포항의 청포도 밭을 거닐던 시인의 시상에 담기지 않았을까.포항의 역사에서 돌파구를 찾자. 포항에서 100년 전 크게 번성하고 당시 프랑스와인에 버금갔던 와인생산지로서 포항의 브랜드가치는 어마어마하다. 포도밭이 없으면 영천의 포도를 사용하면 양 지역 모두 윈-윈이다. 동해바다를 바라보며 강력한 스토리텔링을 갖춘 포항산 와인을 마시며 청포도의 시를 읊는 관광객이 넘쳐나길 기대한다.

2019-02-26

포항시를 진정한 ‘시(市)’로 바꾸자

김진홍한국은행포항본부 기획조사팀장흔히 노동자는 노무 제공의 대가로 소득을 얻고 사업가는 자본 투입의 대가로 잉여를 얻는데 그것이 바로 경제활동에서 창출되는 부가가치다. 이 경제주체들이 창출하는 부가가치를 합하면 지역단위로는 지역내총생산, 국가 단위로는 국내총생산이 된다. 이것이 전년보다 커지면 경제성장률은 플러스로, 줄면 마이너스가 된다. 지난 10년간 포항경제는 마이너스 경제성장률을 수차례나 겪었다. 지역 가계의 소득이나 기업의 이윤이 줄어들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포항지역 내 각계각층에서는 모두 머리를 맞대고 철강 산업의 경쟁력을 어떻게 높일지, 어떤 산업을 발굴 육성해야만 부가가치를 늘릴지 고심하고 있는 것이다.그런데 이에 앞서 포항지역에서 부가가치 창출이 어려워진 원인을 보다 근본적으로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과거 우리는 지금의 중국, 베트남 등 개발도상국들과 마찬가지로 자본과 노동을 투입하기만 하면 그 이전보다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원하는 소비자 즉 수요는 많은데 그것을 공급하는 생산자는 적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소비자들이 좋아하는 형태, 색감, 취향, 감성 등을 전혀 고려할 필요도 없는 ‘공급자 우선’ 시장이 형성될 수밖에 없다. 즉 소비자나 고객이 ‘왕(王’)이 아니라 판매자나 공급자가 ‘왕’이었던 것이다. 옛날 ‘시(市)’라고 불렸던 수요와 공급이 만나는 시장에서는 흔히 “깎아 달라”, “밑지고 판다”는 이야기들이 난무하고 구경하는 재미도 있었던 것이지만 그러한 흥정 자체가 형성되지 않는 ‘불평등한’ 시장이었다는 이야기다.이와 같은 ‘시(市)’는 교통이 발달하고 유동인구가 모이기 쉬운 당시로써는 비교적 번화한 지역에 형성되었다. 포항은 올해로 시 승격 70주년을 맞이한다. 포항은 현재 인구 50만 명이 넘는 지방의 대도시지만 포스코가 들어서지도 않았던 70년 전에도 이미 포항은 시로 승격될 정도로 지방에서는 번화한 대도시였다. 문제는 포스코가 들어선 이후 포항의 인구가 10년마다 2배수로 늘어날 정도로 급격히 팽창하고 우리나라 고도성장기의 경제성장률 이상의 성장세를 보이는 동안 포항지역 내 음식숙박업, 유통업 등 전 분야에 걸쳐 형성된 ‘시장(市場)’에서까지 모두 ‘공급자 우선’ 시장이 형성되었다는 점이다. 달리 말하면 포항의 소비자들은 적어도 2000년대 이전까지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철저한 ‘을(乙)’의 지위에 놓여있었던 것이다.그러나 정보통신기술이 급격하게 발달하고 육해공의 교통물류 인프라가 확충된 지금은 포항의 어떠한 ‘시(市)’에서도 공급자나 판매자가 ‘왕’이 아닌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더 이상 ‘왕’으로 군림하였던 공급자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거나 수틀리면 다른 선택을 하면 그뿐이다. 최근 포항에서도 변화의 조짐은 보인다. 소비자를 ‘왕’까지는 아니더라도 ‘왕자’정도까지는 인식하는 업체들이 나타나 일정한 사업성과를 거두고 있지만 여전히 부족하다. 포항경제가 앞으로 서비스, 관광 등의 분야에서 부가가치를 늘리려면 이러한 변화에 무조건 순응해야만 한다. 철저한 서비스정신으로 무장하고 고객 우선, 소비자 우선이 통하는 진정한 ‘시(市)’로 탈바꿈하여야만 한다.그러한 의미에서 올해 시 승격 70주년을 맞이하여 방문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다양한 기획들이 추진되고 있다. 우리는 그 행사들이 철저한 ‘시(市)’가 되도록 노력해야만 한다. 준비하는 측의 시각에서 ‘와 보이소!’가 아니라 방문객의 시각에서 ‘가보고 싶네!’, ‘또 와야지’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그들의 취향과 감성을 자극하고 그들을 ‘왕’으로 모신다는 의식을 가져야만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2019-02-19

경북 수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자

김진홍한국은행포항본부 기획조사팀장세계 각국이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관세 및 비관세장벽을 높이 세우고 있어 우리 산업들도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경북 경제를 견인하였던 구미와 포항 지역경기도 여전히 흐린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때일수록 가계, 기업 등 경제 주체들은 불투명한 시야에 갑갑해하는데 그치지 않고 시야가 밝아졌을 때 주저 없이 달릴 수 있도록 체력관리에 힘써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이 지닌 약점이 무엇인지 진단하여 철저히 보완하는 한편 장점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필요한 연구개발과 혁신을 하나하나 준비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그러한 의미에서 경북 수산업도 앞으로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보다 철저하게 영세성을 탈피하고 기업화를 위한 노력을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아마도 대부분의 어가들은 지금이 위기상황이라는 것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왜냐하면 수입적인 성과가 다른 지역 어가보다 나쁘지 않기 때문이다. 2017년도 경북 어가 가구의 어업종사원 1인당 연간 생산금액은 1억3천533만2천원으로 전국 어가가구의 어업종사원 1인당 평균 생산금액인 8천454만3천원의 1.6배 수준에 이른다. 금액기준으로만 보면 높은 생산성으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것처럼 착시현상을 일으키고 있다. 이는 사실 어획량이 감소하여 수요를 맞추지 못하면서 가격이 폭등한 결과에 불과하다. 일례로 오징어가 그 대표적인 사례라 하겠다. 하지만 이와 같은 수산물 중 특종 어종의 가격 급등현상은 장기간 지속되지 못한다는 약점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잡히지 않아 공급이 부족하면 언제든지 어디에서건 수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갈치, 홍어, 고등어 등의 수입이 늘어나면서 우리 식탁이 국제화되고 있다는 것이 그 증거다. 때문에 생산금액의 높낮이는 절대적인 경쟁력으로 판단하기 어렵다.그렇다면 물량적인 수치는 어떠한가. 결코 안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경북 수산업을 책임지는 어가 수는 2017년 기준 2천898가구, 어가종사원수는 4천 3백33명으로 1997년 대비 어가 수는 -57.2%, 종사원수는 -51.1%로 20년간 절반 이상 줄어들었다. 전국도 마찬가지지만 같은 기준으로 비교하면 어가수와 종사원수는 각각 -47.1%, -49.4%로 경북보다는 나은 편이다. 어선 수도 2017년 3천3백87척으로 20년 전에 비해 30.0%가 줄었는데 이는 전국의 -17.6%보다 훨씬 많이 줄어들었다. 어획량이 감소한 탓으로 돌리고 싶지만 어선 수가 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큰 폭 감소하였는데도 2017년 어선 1척당 평균생산량은 전국 49.1t, 경북 33.9t이고 같은 기준 어가 1가구당 생산량도 전국 62.1t, 경북 41.0t으로 물량적인 경쟁력은 뒤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결국 경북 수산업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해 필수라고 할 수 있는 생산인력, 생산자본(선박) 모두 현재의 감소추세를 고려한다면 앞날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물량면의 부족한 수치는 경북 어가의 고령화와 어선의 노후화가 동시 진행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앞으로 경북 수산업이 생존하고 지속 발전해나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젊은 피를 수혈하면서 보다 최신형의 어선도 함께 갖추어야만 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잡는 어업에 그치지 않고 기르는 어업도 함께 육성시켜야함은 물론이다. 또한 청년 어부를 확보하고 활어중심에서 벗어나 이를 가공 식품화하고 유통판매는 물론 수출까지 염두에 두는 경북 수산업의 6차산업화가 시급하다. 하루하루 어획량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미래를 생각하면서 지역별 어가들이 힘을 합쳐 회사나 조합형태의 법인화를 통해 생산, 가공, 유통, 판매까지 책임지는 수산분야의 서플라이체인 일원화를 지금부터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해야만 한다.

2019-02-12

과메기 그 이상을 만들자

김진홍한국은행 포항본부 기획조사팀장포항 영일만에서 생산되는 가공식품으로서의 청어는 관목청어, 관목어로 불리며 궁중에 진상되기도 하던 포항 지역의 특산품이었다. 효전 심노숭(孝田 沈魯崇 1762-1836년)이 유배생활(1801~1806년)을 기록한 남천일록(南遷日錄)에도 계해(1803년) 2월 24일 김귀선이 관목어 3개를 가져다주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효전 선생이 기록으로 남겨둘 만큼 인상 깊은 귀한 선물이었다는 것이다.이와 같은 수백 년의 역사 속에서 이름을 남겨왔던 청어가 최근 다시 어획량이 많아지면서 대체품이었던 꽁치과메기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청어과메기로 재탄생하고 있다고 하니 매우 고무적이다. 고 정문기(1898~1995년) 박사가 일제강점기였던 1931년 동아일보 지면(2월 6일~2월 13일)에 6회에 걸쳐 발표한 소논문(바다를 회유하는 청어이야기)에는 포항 영일만에서 잡히는 청어의 습성과 해중생활, 이용 등에 대한 다양한 정보가 담겨 있다. 영일만은 청어가 가장 산란하기 좋은 바다지형을 지니고 있어 러시아해역까지 이동하였던 청어들이 일본 홋카이도와 오츠크해역을 돌아다니다가 산란 후 4~5년이 경과하여 산란 가능한 성어가 되면 무리를 이루어 산란지로 회귀하기 위해 한반도 동해안을 따라 남하하다가 영일만에서 한 마리당 약 5만개를 산란한다고 한다. 다시 말해 청어의 고향이 포항 영일만인 것이다.청어는 약 4세에서 5세가 되면 22~24㎝ 크기가 되고 11세까지는 35㎝까지 자라는데 연령 20세 정도에 이르면 약38㎝의 대청어가 되는 것도 있다고 한다. 알까지 밴 25㎝ 전후의 청어 무리들이 영일만에 도래할 때에는 청어의 천적인 상어들도 같이 따라와 그물을 물어뜯고 훼손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어쩌면 신라시대부터 포항, 울산, 경주, 경산 등지로 이어지는 상어문화권은 청어에 의해 형성된 것이 아닐까 상상해본다. 상어 자체는 그 껍질과 뼈를 이용하는 공예품들도 많지만 영일만에서 잡히는 청어의 천적인 상어는 어부들의 입장에서는 반드시 잡아야만 하는 가문의 숙적이었는지도 모른다. 또한 위험한 상어잡이는 어부들에게는 일종의 전사의 자격증명과도 같았을 수도 있고, 청어 잡이를 위해 필요한 생존과 직결된 사투였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이 지역에서 제사음식에 올리는 상어고기(돔배기)가 갖는 전통적인 의미에는 조상에게 상어를 잡는 자랑스러운 후손으로서 전사가 되었다고 신고하고, 가문의 생업인 청어 잡이의 천적인 상어를 잡아 없앤 증거를 올리니 안심하고 영면하시라는 엄숙한 의식의 하나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일제강점기이기는 하나 겨울철에 영일만에서 잡히는 청어는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상품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정 박사에 글에 따르면 생선상태 그대로 포항역을 통해 기차로 수백리 도시까지 공급하게 되는데 이와 같은 생선상태 외에도 염장하여 식용으로 제공하거나 천일을 이용하여 건조시킨 건청어, 염장할 때 후추, 정향, 육두관 등의 향료를 같이 더하여 풍미를 깊게 한 후 훈연 건조시킨 것도 있다고 한다.그런데 지금은 그때보다 훨씬 기술이 많이 발전한 상태인데도 단순히 천일 건조한 제품으로만 생산되고 그것만 전통적인 식품으로 비춰지는 점이 아쉽다. 청어는 풍부한 비타민A, 비타민D 등을 함유한 좋은 식재료지만 지방질이 풍부한 만큼 반건조 상태에서는 비린내도 많이 나 소비자에게는 호불호가 갈리고 있음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청어의 고향인 포항이라면 일제강점기에 생산되었던 염장과정에서 향신료를 가한 다음 훈제하여 맛의 풍미를 깊게 하였다는 방식은 지금부터라도 더욱 연구하여 재현하였으면 한다. 이제는 과메기 그 이상을 만들자.

2019-0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