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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의 역사에서 돌파구를 찾자

등록일 2019-02-26 18:56 게재일 2019-02-27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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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홍 한국은행포항본부 기획조사팀장
김진홍한국은행포항본부 기획조사팀장

과거 독일이 그러하였듯이 어떠한 지역·국가를 불문하고 총체적인 위기상황에 부딪치면 새로운 분야에 눈을 돌리고 역사 등 인문학에 대한 연구에 주목하면서 민족적 지역적 자긍심과 정체성을 조망하기 마련이다. 최근 ‘포항지역학’에 대한 연구와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데는 경제부진이 장기화되면서 이와 같은 맥락에서 출발한 점도 있기는 하겠지만 그보다는 그동안 오랜 세월 축적되어왔던 지역의 정체성이라 할 수 있는 에너지가 3·1운동 100주년 기념, 시 승격 70주년 기념이라는 하나의 상징적 사건을 계기로 자연스럽게 분출되기 시작한 것이라고 본다.

지방색이라고도 할 수 있는 특정 지역이 지닌 정체성은 같은 나라라고 하더라도 다소의 이질감을 띠게 마련이며 이것이 방문객에게 신선한 문화적 충격을 주기도하고 볼만한 볼거리, 특이한 먹을거리, 생소한 즐길 거리가 되기도 한다. 전국 어디에 가도 똑같은 모습이 아니라 반드시 여기에는 해당 지역에서 자신들이 지닌 전통, 풍습, 내지는 역사적 사실을 일반인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선행적인 연구의 축적이 있어야함은 물론 이것을 기반으로 하는 스토리텔링이 갖추어져야만 가능함은 물론이다. 지금도 국내외에서 인기를 끄는 대표적인 관광지들 가운데 바로 이와 같은 해당 지역만의 역사적 유물을 쉽게 보이고 이해할 수 있도록 현대적 재해석을 더하여 성공적으로 관광 상품화한 사례는 적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포항에는 과연 어떠한 이야기가 잠자고 있을까? 천년수도 경주와 직접 비교하면 남겨진 문화유산 자체는 터무니없이 적지만 스토리텔링화할 각 시대별로 굵직한 이야기 거리 자체는 차고 넘친다. 그럼에도 최근 지역에서는 산업단지 분양 문제, 새로운 성장 동력의 발굴, 육성에만 연연하는 조급함만 가득한 것 같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본다면 무에서 유를 창조하기보다는 과거를 살펴보고 그중에서도 존재감이 컸던 것들을 발굴하여 재현하거나 재해석한다면 포항도 역사성과 더불어 포항만의 독특한 스토리텔링을 창출하여 관광 상품으로 만들 수 있다고 본다.

얼마 전부터 포항의 근대 산업 경제 발달과정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자료를 찾아보던 중 재미있는 기사를 발견하였다. 일본 오사카아사히신문이 1931년 6월 25일자로 보도한 기사를 발췌하여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전략) 지금 일본에서는 이제 포도주라고 하면 ‘조선 경북이지’라고 정정할 필요가 있다. (중략) 조선 경북도 포항의 대포도원에서 생산된 포도주는 고급 포도주로 품질이 프랑스제 최우량품에 결코 뒤지지 않으며 (생략)”

과거 영일군 동해면과 오천면 일대에 대규모로 포도밭이 조성된 것은 1918년 2월이다. 당시 이 포도농원에서는 레드와인, 화이트와인, 샴페인 등 최고급 포도주가 생산되어 일본 동경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당연히 이 농원에는 화이트와인의 원료인 청포도가 대량 재배되고 있었다. 유명한 저항시인 이육사는 1929년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른 후 포항에서 요양생활을 하였는데 이후 1937년 동인지 자오선을 통해 발표한 ‘청포도’라는 시는 포항생활 속에서 탄생한 듯하다. 이 시에 등장하는 ‘하늘 밑 푸른 바다’는 동해면 앞바다를, ‘이 마을 전설’은 연오랑 세오녀 전설과 일월지 등이 당시 포항의 청포도 밭을 거닐던 시인의 시상에 담기지 않았을까.

포항의 역사에서 돌파구를 찾자. 포항에서 100년 전 크게 번성하고 당시 프랑스와인에 버금갔던 와인생산지로서 포항의 브랜드가치는 어마어마하다. 포도밭이 없으면 영천의 포도를 사용하면 양 지역 모두 윈-윈이다. 동해바다를 바라보며 강력한 스토리텔링을 갖춘 포항산 와인을 마시며 청포도의 시를 읊는 관광객이 넘쳐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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