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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상하이를 다녀와서

▲ 배개화단국대 교수필자는 지난 주말 상하이를 다녀왔다. 여행을 목적으로 간 것은 아니고 학회에 참석하기 위해서 갔다. 학회 이름은 ‘하버드-옌칭 연구소 90주년 기념 동창생 학회’였다. 하버드-옌칭 연구소가 학회 설립 90주년을 기념해 지금까지 옌칭 연구소에서 연구를 했던 학자들을 초대해서 학회를 한 것이다. 상하이에서 연구소 스태프들과 친구들을 다시 만나면서 진정한 ‘노블리스 오블리제’란 이런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보았다. 하버드-옌칭연구소는 1928년 찰스 마틴 홀 (Charles Martin Hall)의 유언에 의해서 설립되었다. 찰스 마틴 홀은 알루미늄을 정제하는 과정을 발명한 화학자로서 그의 발명 덕분에 알루미늄이 대중화될 수 있었다. 그는 또 세계 여섯 번째로 큰 알루미늄 회사인 the Aluminum Company of America (ALCOA)의 창립자이다. 홀은 가족이 없이 중국인 집사와 오랫동안 같이 살았다. 그래서인지 1914년 5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 그는 중국인 집사에게 “아시아의 인문학과 사회 과학” 연구를 위해 자신의 돈을 사용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홀의 피신탁자들은 그의 유언에 따라 하버드대학교와 중국의 연경대학교(지금의 북경대학교)에 각각 하버드-옌칭연구소를 세웠다. 중국쪽 초대 연구소장은 중국의 백화문 운동으로 유명한 후스(胡適)다. 그런데 연경(옌칭)대학교는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으로 폐교되고 북경대학교가 됐기 때문에 지금은 미국에만 연구소가 있다.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전에는 주로 중국에 있는 기독교 계열 대학교에 연구비를 지원했다. 하지만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미국과 중국의 국교가 단절되면서 일본, 한국, 베트남 그리고 인도 등의 국가의 연구를 지원했다. 하버드-옌칭연구소의 설립 이후 연구소의 소장들이나 피신탁자-이사들은 여러 차례 바뀌었지만, 이들은 모두 홀의 뜻을 존중하고 아시아의 인문학과 사회과학의 발전이라는 목적에 부합하는 운영을 해왔다. 연구소가 자금을 출자해 설립한 옌칭도서관은 미국 내에서 아시아 관련 도서관으로는 최고라고 말해지며 각국의 희귀본들을 많이 소장하고 있다. 또한 연구소는 아시아 학자들을 초대해서 미국에서 연구할 수 있는 경험을 쌓게 지원한다. 연구소는 중국, 일본, 한국, 베트남 등에 있는 파트너 대학의 학자들이나 대학원생을 초청해서 연구비를 지원한다. 지금까지 1천명 이상의 학자들과 300명 이상의 박사후보생들이 이곳에서 연구를 했다. 필자도 2001~2003년 그리고 2015년에 이곳에서 연구를 했다.필자는 하버드-옌칭연구소는 90년 동안 신탁자의 뜻에 따라서 잘 운영되고 있다는 것은 한국에서 본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 한국에서는 기금 신탁자의 뜻에 따라 기금이 운영이 잘 안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최근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명박 대통령의 ‘청계재단’은 실제 장학금 지원보다는 재단 운영비에 더 돈을 많이 지출했다고 한다. 다른 사례로 2006년 충남대학교가 정심화국제회관을 충남대국제회관으로 바꾸려고 하다가 논란을 빚은 적이 있다. 정심화국제회관은 정심화 할머니가 기부한 50억원으로 지은 것으로 그녀는 김밥 장사로 모은 돈을 작고하기 전에 충남대학교에 기부했다.아시아의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연구하는 하버드-옌칭연구소는 알루미늄 발명자이자 기업가인 홀의 유언으로 만들어졌다. 홀은 자신이 이룩한 부를 힘없는 사람들(그 때 아시아는 대부분 유럽의 식민지였고, 중국도 반식민지 상태였다)의 가장 쓸모없어 보이는 인문학에 사용되기를 희망했다. 그리고 홀의 유지는 그의 피신탁자들에 의해서 90년 동안 지켜져왔다. 이런 부분에서 필자는 아직 한국과 미국이라는 나라와의 격차를 느낀다. 앞으로 한국에서도 홀과 같은 존경할 만한 사례들이 많이 나왔으면 한다.

2018-06-27

한국사회에서 교육이란?

▲ 배개화단국대 교수6월 13일 지방선거의 결과는 놀라웠다. 자유한국당이 경북과 대구를 제외한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패배했다. 이번 선거에 대해서 언론이나 비평가들은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는 것이지 더불어민주당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라고 여당을 경계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대해서 책임을 지지 않고 반성하지 않는 자유한국당에 대한 탄핵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런 정치적 변동의 출발점에 ‘교육 문제’가 있었다는 점은 흥미롭다.2016년 가을 박근혜 대통령 탄핵의 출발점이 되었던 것은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의 이화여대 부정 입학’ 문제였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최순실씨가 딸 정유라를 이화여대에 입학시키기 위해서 당시 김종 문화체육부 차관에게 부탁했고, 그가 김경숙 이화여대 교수에게 청탁을 해서 정유라를 입학시켰다는 것이다. 입학 면접을 볼 때, 정유라는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걸어 자신이 정유라임을 암시했다고 한다. 또한 언론보도에 따르면 최순실씨는 딸을 체육 특례로 입학하기 위한 국내 승마 경기 및 국가대표 선발전 등에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한다.한국에서 교육은 오랫동안 신분 상승의 중요한 수단이었다. 과거 박정희 대통령 때부터 실시한 고교평준화 제도 및 학력고사 그리고 대학수학능력시험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교육 제도들은 모두 ‘학생의 실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해 공평하게 학생을 선발하자’는 취지에서 나왔다. 이 덕분에 1960, 70년대 농촌 출신 젊은이들은 부모님이 소를 팔아 마련한 돈으로 서울 명문대학에 입학하고, 한국사회의 경제성장과 더불어 사회의 주류계층이 되었다.요즘 언론이나 전문가들은 한국 사회가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는 사회가 아니며, 교육은 신분이 재생산되는 수단으로 전락되었다고 말한다.언론보도에 따르면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의 재학생 중 국가장학금 미신청자(최상류층 추정)와 9·10분위(상류층) 인원을 합친 비율이 서울대 74.73%, 고려대 72.27%, 연세대 72.56%’ 였다. 그리고 이러한 상류층 입학의 수단으로 학생부종합전형이 지목됐다. 이것은 수시선발 중 학생부종합전형 비율이 가장 높은 서울대 입학생의 최상류층 비율이 가장 높았다.그런데 ‘정유라 사건’은 이런 상류층의 기분을 매우 상하게 했다는 점이다. 현 교육 제도 하에서는 상류층 자녀들도 소위 명문대에 입학하기 위해서 부모의 전폭적인 금전적 지원을 받으면서 어린이집 시절부터 많은 준비와 노력을 해야 한다. 정유라씨는 2014년 12월 초 이화여대 입학이 결정된 후, 페이스북에 “능력 없으면 니네 부모를 원망해! 돈도 실력이야!”라고 적었다고 한다. 그런데 정유라가 이 말을 쓸 때 자기 어머니가 ‘권력’을 이용해서 자신을 대학에 입학시켰다는 점은 몰랐던 것 같다.한국 사회는 어느 정도 시스템화되어 있는 사회이다. 다른 부분은 몰라도 교육에서는 특히 더 그렇다. 요즘 언론에서는 ‘학생부종합전형’이 상류층에 유리한 제도라고 한다. 그런데, 아무리 상류층이라도 자녀를 대학에 입학시키기 위해서는 이 제도 안에서 자녀 입시 계획을 짜고 교육한다. 이것은 이들이 제도를 무시하면 소위 ‘정유라 사건’과 같은 일이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고, 나의 아이가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들도 예측 가능하고 준비 가능한 교육 제도 안에서 자신의 자녀를 교육하기를 원한다. 갑자기 철 지난 정유라 사건을 끄집어내 이야기하는 것은 왜 이번 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이 참패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보기 위해서다. 한국사회의 상류층은 제도를 통해서 기득권이 보호되고 유지되는 사회를 원한다. 그런데 여당이 당의 이익을 위해서 이 제도가 몇몇 하찮은 개인에 의해서 농단되는 것을 묵인했다고 생각한다면 아마 누구도 참지 않을 것이다. 자유한국당이 이 점을 깨닫지 않는 한 그 미래는 밝지 않을 것이다.

2018-06-20

폭력은 사랑이 아니다

▲ 배개화 단국대 교수우리나라 속담에 “여자와 북어는 삼일에 한 번씩 패야 맛이 좋아진다”가 있다. 이 속담을 한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해 보니, “여자를 자기 입맛에 맞게 길들이려면 패는 수밖에는 없다는 난폭한 여성관을 이르는 말”이라고 뜻풀이가 나온다. 이것은 남성들의 가정폭력이나 여성에 대한 폭력을 합리화하는 말이다. 그런데 이런 폭력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우선, 친밀한 관계의 남성(남편, 연인)에 의해 살해당한 여성들이 지난 9년간 총824명이라고 한다. 한국여성의전화가 3월 8일에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6년까지 남편 또는 연인에게 살해당한 여성은 최소 739명다. 그리고 작년에도 85명의 여성이 남편 또는 연인에게 살해되었고, 103명의 여성은 살해당할 뻔했다고 한다. 이것은 언론에 보도된 사건만을 분석한 최소치로, 실제로 남편이나 연인에게 살해당한 여성의 수는 더 많을 수 있다.살인 또는 살인 미수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는 ‘데이트 폭력’은 더욱 만연한 현상이다.홍영오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에 따르면 설문(2016년)에 응한 성인남성 2천명 중 80%(1천593명)가 연인에게 한번이라고 폭력을 행사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 데이트 폭력이 올해 들어 더 심해졌다고 한다. 지난 5월 17일 여성가족부 발표에 따르면 올해 1~4월 데이트 폭력 관련 여성긴급전화(1366) 상담 건수는 총 3천903건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2배 이상(107%) 올랐다고 한다.이러한 수치들은 일부 남성들이 친밀한 관계의 여성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범죄라고 인식하지 않는 것에서 기인한다. 2016년 통계청 설문조사에 따르면 부부간의 폭행에 대해서 19.7%의 남성이 용인될 수는 없으나 법에 의해 처벌될 일은 아니다, 그리고 3.8%는 상황에 따라 용인될 수 있다고 답했다. 그리고 데이트 폭력에 대해서는 13.5%의 남성이 법으로 처벌될 일이 아니다, 그리고 2.3%의 남성이 상황에 따라 용인될 수 있다고 답했다.부부폭력이나 데이트 폭력을 범죄로 생각하지 않는 것은 ‘폭력도 사랑의 표현’이라는 매우 오래 되고 일상화된 의식도 한 원인이다. 필자는 이런 사례를 대중문화에서 종종 발견하고 작가와 평자가 서로 용인하는 것에 종종 놀란다. 예를 들어 1969년에 출판된 ‘유자약전’이라는 소설에 대해 같은 나이의 평론가는 “속물인 ‘나’는 유자(여성)를 마구 때리는데, 이것은 이 세계의 타락성과 그처럼 타락한 세계에 동화되어 속화된 자기 자신에 대한 분노와 절망의 몸부림이다. 유자는 그의 분노와 절망을 함께 나누며 ‘이제 우린 깨끗해졌어요’라고 말한다”라고 해석했다. 이에 필자는 왜 남자는 세상에 대한 분노를 여성에게 풀지? 그리고 이 여자는 왜 자기를 때리는 남자에게 공포를 느껴 도망가지 않고 이 남자를 감싸나? 라는 문제제기를 대학원 수업시간에 했다. 그랬더니 나이 많은 한 대학원생이 이것은 사디즘(가학증)이며 사디즘도 사랑의 한 유형이라는 식으로 해석한다. 다른 50대 중반의 대학원생도 모성애가 있는 여성은 이런 가학적 사랑도 감싸줄 수 있다고 덧붙인다. 즉, 엄마가 아이들의 괴롭힘을 참고 감싸주듯이 연인이나 남편이 그런 것도 받아줄 수 있다는 것이다.필자의 교실에서 있었던 이런 문답은 데이트 폭력과 가정 폭력이 벌어지는 원인들을 조금은 설명해주는 것 같다. 남자가 여자를 때릴 때는 자기보다 강한 어떤 것에 대한 좌절감과 분노를 자기보다 약한 여자에게 푸는 것이다. 그리고는 여자가 자신을 사랑하니까 때리는 자기를 이해하고 감싸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부 여성들 중에도 이런 논리에 세뇌된 사람이 있다. 하지만 데이트 폭력과 가정 폭력은 범죄일 뿐 거기에 ‘사랑’은 없다. 착각하지 말자.

2018-06-13

민주주의의 꽃 선거, 그러나 주민들은 불편하다

▲ 배개화 단국대 교수오는 13일 지방자치단체선거와 국회의원보궐 선거가 있다. 선거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와서 그런지 길거리에서 각 후보들의 유세차량이나 가로펼침막 등을 볼 수 있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한다. 자신의 소중한 투표권을 행사함으로써 지역 사회나 국가를 운영할 인물이나 정책 방향을 결정하는데 간접적으로나마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자가 사는 지역의 주민들만 해도 선거를 즐기지 못하는 모습이다. 주민들을 불편하게 하는 것 중 하나는 후보 측에서 보내는 문자 메시지이다. 필자에게도 지역의 시의원이나 도의원 후보 혹은 시장 후보 등으로부터 문자 메시지가 온다. 문자 메시지는 여당, 야당 후보 구분없이 골고루 온다. 그런데 그 메시지가 필자에게 주는 것은 ‘도대체 내 핸드폰 번호는 어떻게 알았지?’ 하는 의문이다. 후보들은 필자의 거주지와 전화번호 등을 제대로 알고 정확하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그런 만큼 필자는 개인정보가 어떤 경로로 누구에 의해서 이들 후보에게 전달되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개인정보가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에 불안하기도 하다. 요즘 언론에서는 이것을 ‘모바일 선거 공해’ 라고 하는데 전국적인 현상인 듯하다.유세차량들도 주민들을 불편하게 한다. 필자가 거주하는 지역은 새로운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면서 입주민들이 갑자기 늘어나서 작년부터 교통정체가 매우 심하다. 운전자들은 차량이 없는 시간이면 5분에 갈 수 있는 거리를 출·퇴근 시간에는 20~30분 이상 소비해야 갈 수 있다. 문제는 선거 유세 차량이 이렇게 교통량이 많은 시간대를 골라서 선거 유세를 한다는 점이다. 며칠 전부터 지역 커뮤니티 게시판에는 선거 유세 차량이 도로를 서행하면서 선전을 하는 바람에 안 그래도 막히는 도로가 더 막힌다고 성토하는 글들이 올라온다. 그러자 이렇게 매너없는 후보는 여야를 막론하고 찍고 싶지 않다는 댓글들이 줄줄이 달린다. 댓글을 읽어보면 좋은 말이 하나도 없다.유세 차량의 마이크 소리도 주민들을 괴롭힌다. 아침부터 유세 차량에서 후보를 선전하고 공약을 알리는 방송을 한다. 때로는 후보가 마이크를 잡고 유세를 하기도 한다. 문제는 이런 유세들이 아파트 밀집 지역에서 이뤄지다보니 주민들이 불편을 겪는다는 것이다. 특히 필자가 사는 지역은 젊은 부부가 많다보니 자녀들도 다들 어리다. 간난아이가 유세 방송에 자다가 깼다거나 하는 불평 글이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라온다. 그래도 이 점에 대해서는 선거철에 일시적으로 그런 것이니 좀 참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이런 방법이 아니면 어떻게 후보가 자기를 선전할 수 있겠느냐는 댓글도 달린다.우리 지역에서는 그렇게 심각하지는 않지만 후보들의 가로펼침막 공해도 만만치 않다. 월요일 저녁에 한 공중파 뉴스에 따르면 과거보다 펼침막 설치가 2배 정도 많이 허용되어서, 보도나 횡단보도 혹은 지하철 입구 등에 마구 걸려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주민들이 불편해 하고, 교통사고의 위험도 높인다고 한다.선거는 국민들이 주권자로서 자신의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중요한 행사이다. 하지만 어떤 후보자들이 있는지, 그 사람들의 공약은 무엇인지 알 수 있는 방법은 매우 제한되어 있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선거철이 아니면 자기 지역에서 활동하는 정치인들을 만날 기회나 방법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니 후보들이 자신을 알릴 수 있는 방법은 유세 차량이나 펼침막을 이용한 선전 혹은 모바일 문자 메시지를 이용한 선전이다. 이런 것들이 홍보효과는 있겠지만, 주민들에게 불편함이나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걱정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선거를 통해 민주주의의 꽃을 피우기 위해서 우리 주민들은 그로 인한 불편함을 지금 견디고 있다.

2018-06-06

미북정상회담과 패러다임의 전환

▲ 배개화 단국대 교수필자도 다른 국민들처럼 지난 주말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은 시간을 보냈다. 지난 24일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다음 달 12일로 예정된 미북정상회담을 취소했다. 27일 오후 3시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의 북한쪽인 통일각에서 제2차 정상회담을 했다. 그리고 28일에는 미국과 북한의 실무자가 통일각에서 미북정상회담을 위한 실무접촉을 가졌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흥미진진한 사건 전개는 어떤 영화도 소설도 능가한다. 이와 더불어 필자는 자유한국당의 대응을 보는 것도 매우 흥미진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6월 12일의 미북정상회담을 취소하는 편지를 발표했을 때 자유한국당의 대변인은 ‘당의 공식적인 논평을 자제하겠다’고 말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6월에 있을 지방선거를 의식해서 그렇게 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27일 홍준표 대표는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김정은이 문재인 대통령을 구해주기 위한 쇼’라고 말했다.지금까지 자유한국당은 미국의 강경파들이 주장하는 것과 같이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를 주장해왔다. 그리고 이런 기준에서 남북정상회담의 성과를 계속해서 비판해 왔다. 제1차 남북정상회담 때에도 자유한국당은 회담 내용이 ‘완전한 비핵화’를 포함하지 않고 있고, 핵무기 폐기가 확실하지 않다는 이유로 매우 부정적인 반응을 내놨다. 또한 제2차 정상회담에 대해서도 김성태 원내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이 CVID를 수용했는지 묻는 질문에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거듭 말하며 미북회담 실무과정에서 확인할 것이라고 즉답을 회피했다”며 “결국 문재인 대통령이 CVID원칙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의심할 상황”이라고 지적했다.그러나 우리는 대한민국이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해서 실질적인 협상을 할 수 있는 주체가 될 수 없는 상황인 것을 알고 있다. 오직 미국만이 북한과 비핵화에 대한 실제적인 논의를 할 수 있고, 그에 대한 대가로 북한이 원하는 체제보장을 약속할 수 있다. 대한민국은 한국전쟁 때 정전협정에 서명한 당사국이 아니기 때문에, 종전협정도 북미 간에 협의할 문제이다. 미북정상회담이 열리지 않는다면 북한의 비핵화도 종전협정도 실현 불가능하다. 이런 것을 알면서 계속해서 CVID를 고집하는 것은 자유한국당이 ‘북한 리스크’(전쟁 가능성, 북한에 의한 남한의 사회주의화 등)의 소멸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사실 자유한국당은 ‘북한 리스크’를 이용해 오랫동안 그리고 효과적으로 대중적 지지를 확보해왔다. 하지만 미북회담의 결과로 종전협정이 맺어지고 한반도가 평화체제로 이행하게 되면 지금까지 이 당이 생존의 자양분으로 삼아왔던 ‘북한 리스크’의 소멸을 의미하는 것이다.필자는 자유한국당도 대한민국에서 북한 리스크와 관련해서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는 현실을 빨리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당장 6월 12일 미북정상회담이 성사되느냐 마느냐와는 관련이 없는 문제이다. 우리 국민들은 제1차 남북정상회담을 생중계로 보면서 한반도에서 종전이 선언되고 평화체제가 구축될 수 있는 가능성을 ‘실감’했다. 이런 ‘실감’은 대체로 이데올로기를 능가한다. 더구나 다수의 국민들은 이‘실감’을 ‘현실’로 만들고 싶어 한다. 자유한국당은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이 ‘통일은 대박’이라고 말했던 것을 떠올리고, 자신의 대중성을 회복할 수 있는 새로운 방안을 빨리 마련해야 할 것이다. 즉, 자기 당의 장점(경제는 자유한국당)을 살려 패러다임 전환을 선도하는 쪽으로 방향전환을 해야 할 것이다.

2018-05-30

고민만 느는 대학교육

▲ 배개화 단국대 교수최근 필자가 재직중인 학교에서 ‘대학 교육의 미래와 자연과학’이라는 주제로 포럼이 열렸다. 수학을 전공하는 연세대 특임교수, 물리 전공의 포스텍 교수, 화학을 전공하는 경북대 교수 세 사람이 발표를 했다. 발표와 토론을 들으면서 도대체 ‘우리나라의 대학교육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대학 교수의 역할은 연구 중심 혹은 교육 중심인지’에 대한 의문만 늘어났다. 포럼에서 제일 큰 문제로 지적된 것은 대학교 학생들이 기초과학 과목의 수준을 따라잡지 못한다는 것이다. 발표자 중 한 분이 지금 필요한 교육은 ‘지식’이 아니라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교육하는 것이며, 교수는 한 학기 동안 학습 진도를 다 나가야 하는 강박관념을 갖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청중들 중에서 학생들에게 전공교육에서 필요한 정도의 기초과학 교육은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반문이 있었다. 특히 아주대 학부대학(대학교 1학년에게 기초교양과목을 교육하는 대학) 학장이 ‘자기는 기초 화학을 교양필수로 강의하는데 15년 전부터 수업 시간에 잠자는 학생들이 생겨나고 있고, 학생들의 성적도 10점에서 90점까지 너무 수준 차이가 난다’며 고충을 토로하였다. 이에 발표자들은 현재 교육부가 사교육을 완화하기 위해서 교과과정을 쉽게 만들어서 아이들에 될 수 있으면 적게 가르치게 한다는 점을 원인으로 지적했다. 다수의 대학 신입생들이 고등학교에서 대학교수들이 기대하는 수준의 기초과학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입학하기 때문에 수업 내용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발표자들은 해결책으로 수준별 학습을 도입해 기초반, 심화반으로 나눠서 교육하고, 대학교수들도 고등학교 교육과정 위원회 등에 참여해 과학교육 수준을 높이도록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해결책을 제시했다. 결국, 발표자, 청중 모두 좀 더 수준 높은 기초과학 교육을 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이처럼 토론 과정에서 반대 결론에 도달한 것은 교수들이 ‘연구’를 자신의 역할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 사회가 교수들에게 보다 많은, 그리고 영향력이 있는 연구를 하라고 압력을 넣고 있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 문화교육부는 교수들이 사이언스나 네이처 등과 같은 1급 국제 학술지에 논문을 싣거나 국제적으로 인용지수가 높은 논문을 출판할 것을 독려하고 있다. 언론에서는 이 부분에서 지표가 낮은 것을 국가 경쟁력과 연결시켜 걱정하고 있다. 대학교수의 연구업적은 교육부의 대학평가의 중요 기준이기도 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대학은 승진 및 재계약을 위한 논문 편수의 기준을 점점 높이고 있다.반면에 학생들은 대학에 학문 연구를 위해서 입학하지 않는다. 현재 70% 내외의 대학입학률은 모두 취업을 위해서이다. 그러다보니 대학이나 사회가 대학교수에게 두 개의 요구를 동시에 하고 있다. 교수는 연구도 잘해야 하지만 학생들 교육도 잘해서 취업도 잘 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중의 부담은 필자의 대학과 같은 중상위 대학이 SKY 대학교보다 더 크다. 청중으로 참석한 물리학과 교수는 자신은 일주일에 서로 다른 물리수업 9시간 하고, 나머지 시간은 연구를 해야 하는데, 솔직히 둘 다를 잘 해나가는 것이 힘들다고 토로했다.그러면서 우리 사회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세계적 추세에 뒤처지지 않도록 학생들을 교육하라고 요구한다. 이에 따라 필자의 대학도 다양한 전공 역량을 갖춘 학생들을 양성해야 한다는 트렌드에 맞춰 학제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개편의 참조는 ‘하버드대’와 같은 초일류 대학교이다. 이 학교의 교육 목표 중 하나는 사회를 이끌어나갈 지도자 양성이다. 이런 대학의 기준을 필자의 대학에 적용한다고 한들 학생들이 그것을 따라갈 수 없다. 고등학교 졸업생의 70%가 대학에 진학하는 상황에서 이 모든 학생이 우리 사회의 지도자가 될리도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별 뾰족한 해결책은 없는 것 같다.

2018-05-23

저녁 시간이 있는 삶

▲ 배개화단국대 교수오는 7월부터 우리나라는 주 52시간 근무제를 도입한다. OECD 회원국 중 두 번째로 긴 우리나라 근로시간을 줄이기 위해서이다. 주당 근로시간이 줄게 되면 주중 하루 최대 근무 시간은 8시간이 되고, 야근 또는 주말 근무를 12시간까지만 할 수 있다. 근로시간을 주 52시간으로 제한하는 것은 우선, 300인 이상 기업부터 적용되고, 그 이하 사업장은 순차적으로 시작할 예정이다. 이렇게 근로시간이 줄면 저녁 시간이 있는 삶이 가능하다. 한국의 노동문화는 예전에 국민들이 황우석 교수의 ‘월화수목금금금’이라는 말에 열광했던 것처럼 쉬지 않고 일하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휴식 없는 과도한 노동은 생산성의 약화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OECD에 따르면 2017년도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34.3달러로 OECD 회원국 22개 중 17위였다. 이것은 1위인 아일랜드(88달러)의 38% 수준에 불과했고, OECD 평균(47.1달러)보다도 낮다.현재 정부에서 노동시간을 줄이는 정책을 실시하는 것은 노동시간을 줄이면 노동생산성이 높아진다는 연구결과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개발연구원의 연구조사에 따르면, 2004년 주 40시간 근무제를 시행하면서 노동생산성(1인당 실질 부가가치)이 1.5% 증가했다고 한다. 국회예산정책처의 조사에서도 근로시간이 1%로 줄면 시간당 생산성은 0.79%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휴식이 없는 노동은 노동생산성을 떨어뜨리고 노동자의 건강과 행복감을 줄어들게 한다. 필자만 해도 ‘저녁이 있는 삶’의 효용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필자는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어서 주중에는 보통 9시에서 10시에 퇴근했다. 그리고 한 때는 강의 준비로 일주일에 이틀은 새벽 3~4시에 자고 아침 9시에 출근했다. 이러다보니 운동할 시간도 없고 체력은 점점 고갈되었다. 이렇게 과로하다 보니 어느 순간 낮 시간에 졸음이 와서 낮잠을 자야했고, 주말에는 늘 집에서 잠을 잤던 것 같다. 집중력도 떨어져서 앉아있는 시간에 비해서 실제 한 일의 양은 별로 많지 않았다.하지만 저녁 시간에 학교에서 일을 하는 대신 운동을 하면서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필자는 오후 6시에 퇴근해서 저녁에 주 3회 이상 한 시간 정도 운동을 하고 있다.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다 보니 체력도 좋아지고 피로감도 많이 줄었다. 체력이 좋아지다 보니 일할 때 집중도도 높아지고 일하는 것도 힘들지 않게 느껴진다. 몸 상태가 좋아지니까 항상 기분도 좋고 행복감도 증가했다. 비로소 필자는 ‘저녁이 있는 삶’의 뜻을 이해하게 되었다.현재 언론에서는 노동시간 단축의 단점을 열거하며 기업(늘 그렇듯 중소기업)의 걱정을 많이 하고 있다. 노동시간이 단축되면 기업은 부족한 노동자를 더 고용해야 하는데, 이럴 경우 노동자를 구하기 어렵고 늘어난 임금 지출로 부담이 된다는 것이다. 한국의 기업은 노동시간의 절대량을 많게 함으로써 노동생산성이 낮은 것을 보충해왔지만, 정부가 시간당 최저임금을 높이는 정책을 쓰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시간을 단축해서 생산성을 높이는 쪽으로 가는 것이 더 이익이라고 생각된다.

2018-05-16

비혼족 현상

▲ 배개화단국대 교수며칠 전 필자는 평소 알고 지내던 20대 후반의 여성과 길게 대화를 했다. 이 친구는 남자친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는 ‘비혼족’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자기는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친구들과 많이 놀고 싶다고 한다.친구들 중에도 ‘비혼족’이 많다면서 결혼이나 취업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 모습이다. 말로만 듣던 ‘비혼족’이 여기에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다음 백과사전에 따르면, 미혼은 결혼하지 않은 상태나 그런 사람을 일컫는 말이고, 비혼(非婚)은 ‘결혼하지 않은 상태’를 뜻한다. 미혼은 결혼할 마음은 있으나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면, 비혼은 적극적으로 결혼을 선택하지 않는다는 의미도 있다.따라서 비혼족 혹은 비혼주의자들은 결혼이라는 ‘제도’ 속에 들어가는 것을 거절하는 사람들이다.그렇다고 요즘 젊은이들이 연애에 관심이 없는 것도 아니다. 대학내일20대연구소에 따르면 20대 3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51%가 썸(친구에서 연인으로 발전하는 단계)을 타고 있으며, 그중 50%는 실제로 연인이 된다고 한다.즉, 요즘 젊은이들은 연애는 하고 싶고 하고 있지만 결혼은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원에 따르면 미혼남녀의 혼인연기 이유 중 50%는 경제적인 이유이다. 결혼에 따른 의무 때문에 결혼하지 않겠다는 사람은 9% 정도로 결혼 생활 자체가 싫어서 결혼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강유진 총신대 교수의 지난해 연구에 따르면, 비혼 성인남녀 중 자발적으로 비혼을 택하는 사람은 20% 가량에 불과하며, 80%는 경제적인 이유 등으로 결혼을 못하는 것이라고 한다.이것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평균적으로 결혼에 드는 평균 비용이 2억 3천여만 원이라는 것과도 연관이 있다. 이 때문에 통계청의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혼인비율은 인구 1천명당 5.2명으로 역대 최저치의 혼인율을 보이고 있다.이렇게 본다면 비혼은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사람이기보다는 결혼을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더 맞아 보일 지경이다. 비혼은 혼자 사는 사람은 물론, 혼인 관계가 아닌 동거 상태 등을 포함한다.따라서 비혼주의자는 법적 혼인 관계에 들어가는 것을 피하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한 가지 사례이긴 하지만, 필자에게 자기는 비혼족이라고 말한 친구도 동거와 같은 것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지 않았다. 이 친구의 생각은 ‘법적으로 혼인관계’에 들어가는 것은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현재 우리나라의 통계조사나 정부 대책들은 너무 법적인 혼인관계 위주로 되어 있는 것 같다.혼인율은 통계청에 의해서 꾸준히 발표되고 있지만 동거율에 대한 조사는 어디에서도 발견하기 어렵다. 이것은 법적인 혼인만을 가족으로서 인정하고, 동거는 잠시 살다가 헤어지는 관계로 생각하고 법적인 부부가 아닌 사이에서 자녀가 태어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사회적 분위기와 연관되어 있다.우리나라의 결혼과 출산의 경향도 점점 유럽을 따라갈 가능성이 높다. 유럽에서도 결혼을 꺼리는 남녀가 늘어나면서 2016년에 역내 10개국에서 혼외출산 신생아 수가 전체 신생아의 절반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프랑스에서는 59%가 혼외 출산이었다. 이런 혼외출산 덕분에 유럽은 우리나라보다 높은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다.비혼족은 결혼을 자체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법적 혼인 관계는 싫다는 것일 수 있다. 낮은 출산율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비혼족 속에 숨어있는 동거족에게 좀 더 관심을 기울이고 대책을 세우는 것이 필요하다.

2018-05-09

대륙횡단열차로 유럽에 가고 싶다

▲ 배개화단국대 교수고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다. 전혜린(1935~1965)의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는 수필집을 읽다가 필자는 문화적인 충격을 경험했다. 그것은 전혜린이 어릴 때 아버지와 함께 간도쪽이 보이는 두만강 근처 어느 음식점에서 러시아 여성이 가져다주는 음식을 먹었다는 이야기였다. 그 글을 통해서 필자는 처음으로 식민지 시대 때는 한국 사람도 육로로 만주까지 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때 필자는 대한민국이 섬나라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현재의 정전(停戰) 체제는 우리가 한반도와 대륙이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잊게 만든다. 대한민국 헌법에 의하면 북한은 우리의 영토를 무단으로 점유하고 있는 괴뢰 정권이다. 또한 대한민국 국민이 국가의 허가를 받지 않고 북한을 방문하면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것이 되어 처벌받는다. 이렇게 북한 지역이 갈 수 없는 곳이 되면서 기차를 타고 만주로, 중국으로, 혹은 유럽으로 간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됐다.이런 상황은 우리의 지리적 상상력을 위축시켰다. 필자가 국어국문과에 입학하고 대학원에 다니면서 식민지 시대 때 출판된 문학 작품들을 읽다보면 기차로 만주를 가는 이야기들이 많이 나온다. 심양이나 하얼빈과 같은 곳은 남의 나라 같은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로 빈번하게 등장한다.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고 손기정 선생은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참가할 때 기차를 이용해서 서울에서 독일까지 갔다고 한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없는 여행을 식민지시대 사람들은 한 것이다.그런데 이제 우리도 손기정 선생처럼 기차로 유럽에 갈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다. 지난 27일 남한과 북한의 두 정상이 발표한‘판문점 선언’에 따르면 남, 북한의 철도가 연결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판문점 선언은 “경의선(서울∼신의주)과 동해선(부산∼원산)을 비롯한 철도와 도로를 연결하고 현대화해 활용하기 위한 실천적인 대책을 취해 나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경의선과 동해선은 모두 식민지 시대 때 건설된 철로이다. 이 철로들을 현대화 하고 남·북한의 종전이 선언되고 한반도가 평화체제로 이행한다면 우리들도 기차를 타고 유럽으로 갈 수 있다.또한 경의선과 동해선이 연결되면, 남한 사람들은 백두산도 육로를 이용해서 갈 수 있다. 현재 남한 사람이 백두산을 가려면 중국을 거쳐야 한다. 보통은 인천에서 북경까지 비행기를 타고 가서 거기서 고속 기차나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연변에 간다. 아니면 대련이나 심양까지 비행기를 타고 가서 거기서 버스나 기차를 이용해 백두산에 간다. 이렇게 불편하게 중국을 통해서만 백두산을 갈 수 있는 것은 정전(停戰)체제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27일 정상회담 때 김정은 위원장에게 육로로 백두산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이것은 대통령만 바라는 것이 아닐 것이다.‘판문점 선언’이후 사람들이 많은 반응을 보인 것이 경의선과 동해선 현대화 및 연결 문제였다. 경제 협력이나 비핵화 등은 전문가가 아닌 국민들이 생각하기에는 어려운 문제이다. 하지만 철도 여행은 보통의 한국 사람들도 쉽게 생각할 수 있다. 더구나 남한과 북한의 철도가 연결되면 서울이 국제역이 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설레게 한다. 대구, 광주 혹은 부산을 가듯이 북경, 모스크바, 베를린 혹은 파리를 간다는 상상만으로도 이미 ‘국제인’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10년 전 남북관계가 경색되기 전에 필자의 어머니는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타고 유럽에 가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하지만 어머니의 여행 계획은 오랫동안 실현되지 못했다. 이번에는 꼭 남북 철도가 연결되고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어 필자의 어머니가 기차를 타고 유럽에 가기를 기대한다. 필자도 당연히 같이 갈 것이다.

2018-05-02

남북정상회담의 성공을 기대하며

▲ 배개화단국대 교수이틀 후면 남북정상회담이 판문점에서 열린다. 오는 27일 남북분단의 상징인 판문점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만나는 것이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번 정상회담의 의제는 북한의 비핵화와 평화체제구축이라고 한다. 필자는 두 정상이 이 문제에 대한 의미 있는 합의를 함으로써 ‘휴전 체제’가 끝나기를 기대하고 있다. 북한의 비핵화 가능성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23일 아사히신문 보도에 따르면, 3월 30일부터 1일까지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 지명자가 미국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북한을 방문했다. 1일 폼페이오 지명자는 김정은 위원장과 회담했으며, 김 위원장은 “완전한 핵 폐기 의사”를 표명했다고 한다.북한은 또한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사전조치로서 ‘핵실험 중단’을 결정했다. 20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는 “핵 시험 중지를 투명성 있게 담보하기 위해 공화국 북부(풍계리) 핵시험장을 폐기할 것”과 핵-경제 병진 노선을 폐기하고 군을 포함한 전 사회적 자원을 경제건설에 총력 동원할 것을 결정했다.이번 회담에서 두 정상은 평화협정 체결을 할 가능성도 높다. 19일 언론사 사장단 오찬간담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65년 동안 끌어온 정전체제를 끝내고 종전선언 거쳐 평화협정의 체결로 나아가야 한다”고 밝혔다. 한반도에서 한국전쟁은 중지 상태인 것이지 끝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한국전쟁이 끝났다는 선언 없이 한반도의 평화를 말할 수 없다. 종전선언은 법적인 효력이 없는 정치적 선언이지만 정전체제를 종식하기 위한 관련국 정상들의 의지와 방향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에 따라 북미 회담에서 종전협정에 대한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한다.각종 여론조사에서 국민들은 남북정상회담에 대해서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이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tbs의 의뢰로 14일 전국 성인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남북 정상회담 찬성 의견이 61.5%로 집계됐다. 반면 ‘대북 제재와 압박이 우선이므로 반대한다’는 응답은 31.2%이었고, 잘 모르겠다는 응답은 7.3%였다. 17일 리서치뷰가 뉴시스 의뢰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전국 유권자 1천명에게 ‘남북·북미 정상회담 전망’을 물은 결과 68%가 ‘성과가 있을 것’이라고 응답했다. 하지만 북한에 대한 우리 국민의 신뢰가 완전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부정적 의견이 30%나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북한이 비핵화에 진정성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은 여전히 남아있다. 과거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비핵화를 약속하고 영변 경수로를 폐쇄하기도 했지만, 그 후에도 북한은 핵실험을 계속했다. 이런 경험들을 근거로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는 이번 회담은 ‘남북평화위장쇼’이며, 핵 폐기 없는 정상회담은 이적행위라고 비난하기도 했다.이런 의구심에도 불구하고 이번 남북정상회담에 대해서 기대를 갖게 되는 것이 이 회담을 바탕으로 북미회담이 진행될 것이기 때문이다. 북미회담의 의제가 “완전한 핵 폐기”가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사전 협상격인 남북정상회담에서 비핵화와 종전선언에 대한 의미 있는 합의가 도출되지 않는다면 북미회담도 잘 진행되기 어렵다. 필자 같은 비전문가가 보기에도 김정은 집권 이후의 핵실험 및 장거리 미사일 실험은 북한의 몸값을 최대한 올려 비핵화 협상에서 최대한의 반대급부를 얻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지난 20일 ‘경제발전’으로 당의 노선을 정한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필자는 휴전 상황이 대한민국 내의 의사소통을 언제나 왜곡하는 요소라고 생각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빨리 종전이 선언돼서 한반도의 문제와 관련해서 정치권이나 국민들이 좀 더 생산적이고 건실한 논의를 할 수 있게 되었으면 한다.

2018-04-25

드루킹, 온라인 사이비 교주?

▲ 배개화 단국대 교수지난 일요일부터 드루킹의 구속 및 댓글 조작에 대해서 언론에서 연일 많은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드루킹이라는 파워 블로거가 평창올림픽에 대한 기사 2건에 악성 댓글을 달고 그것의 조회 수를 조작했다가 이것을 민주당이 고발하여 며칠 전 경찰에 검거되었다. 그런데 이 사람이 민주당원이고 2017년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했다는 것이 밝혀지면서, 사건에 대한 사회적 궁금증이 커졌다. 필자도 이 사람의 정체가 궁금해서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이미 이 사람은 인터넷 세계에서 상당히 알려진 인물이었다. 이 사람은 10여 년 전 ‘서프라이즈’라는 온라인 사이트에 경제 관련, 국제 관계 관련 글을 쓰기 시작했으며 이후 자신의 개인블로그인 ‘드루킹의 자료창고’에서 주식 관련 글을 썼는데, 이것이 꽤 잘 맞아서 점점 인지도가 높아졌다고 한다. 2014년부터는 ‘경제적 공진화’라는 온라인 카페를 만들고 소액주주 운동을 벌였다고 한다.지금 이 카페의 회원이자 이 사람의 지지자들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하는 말을 들으면 거의 사이비 교주에 가까운 행태를 보이고 있다. 그는 ‘송하비결’이라는 예언서를 신봉하며 그 예언서의 내용에 근거해서 여러 가지 예언(그 중 하나가 일본 침몰)을 하였다고 한다. 송하비결은 조선말부터 천지가 개벽하는 말세 전후까지의 기간을 연도별로 분석하고 기술한 예언서로 2008년에 출판되어 일반인도 서점에서 살 수 있는 책이다. 또한 회원들만 사용하는 주문도 있어서 모임에서는 늘 그 주문을 암송한다고 한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회원들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정치인들에게 접촉하거나 그들을 초대해서 강연회를 열기도 했다고 한다. 2014년에는 노회찬 의원의 선거를 지원하기 위해서 그의 부인에게 운전수를 보내기도 했고, 더불어 민주당의 김경수 의원과 접촉하고 안희정 지사를 초대해서 올 1월에는 카페 회원들을 대상으로 강연회도 했다고 한다.지금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지난 대선에서 드루킹이 대통령 선거 관련 댓글 지원을 김경수 의원에게 제안했고 그 대가로 ‘오사카 총영사’와 ‘청와대 행정관’ 자리를 요구했다는 것이다. 이런 추천에 김경수 의원이 청와대 관계자에게 검증을 요청했고 모두 부적격 판정을 받아서 거절됐다는 것이다. 이에 드루킹이 앙심을 품고 올 초 네이버에서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댓글 조회 수 조작을 해서 문재인 대통령을 비판하는 댓글을 상위에 올렸다는 것이다.그런데 송하비결이라는 듣도 보도 못한 예언서를 믿고 주문을 외는 이 집단에 상당한 지식인들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오사카 총영사로 추천된 사람은 유명 로펌의 변호사로 일본 유학생 출신이라고 한다. 당사자는 드루킹에게 그런 일을 청탁한 적이 없으며, 드루킹에게 법률 자문을 해준 사이라고 말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드루킹의 자문 변호사는 여러 명 된다고 한다.이런 인물은 온라인 게시판에서 주택 가격 동향을 예측하거나 주식 가격 동향을 예측하는 인물이 악성으로 진화한 경우이다. 필자가 몇 년 전에 집을 마련할 때도 한참 집값 폭락설이 있었기 때문에 불안해서 한 온라인 카페에 가입한 적이 있다. 거기 카페 주인도 부동산 중개사였는데 거의 나만 믿으라는 어투였고, 회원을 모아서 부동산 강연회를 열기도 했다. 다른 지역 커뮤니티에도 이런 예측을 하는 소위 전문가들이 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예측이 아니라 예언을 하고 회원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정치권을 ‘이용?’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번 청탁 및 보복도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다. 드루킹의 대선 댓글 의혹은 야당이 거품을 물지 않아도 밝혀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정치권 주위에 이런 인물들이 많이 있다는 것이고, 과거 오프라인의 정치 브로커가 이제는 온라인 사이비 교주로 진화할 만큼 우리 사회가 정서적으로 안정되지 못하다는 것이다.

2018-04-18

자본주의의 요지경

▲ 배개화단국대 교수고등학교 때 괴테의 희곡 ‘파우스트’를 읽은 적이 있다. 파우스트 박사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팔아 다시 젊어진다. 젊어진 파우스트 박사는 현실 정치에 뛰어들어 한 나라의 재상이 된다. 그는 악마의 힘으로 하룻밤에 거대한 간척지를 만들고, 돈 만드는 기계를 만들어 모래로 무수한 금화를 찍어낸다. 필자는 이 장면을 보면서 전율을 느꼈는데, 괴테가 자본주의의 본질을 꿰뚫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19세기 초(1808) 괴테의 희곡에서 묘사된 일이 21세기인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다. 지난 6일 삼성증권이 우리사주 조합원인 직원 2천18명에게 28억1천만 주를 잘못 배당하는 금융 사고를 일으켰다. 삼성증권 직원이 우리 사주의 배당 단위인 원을 주로 잘못 입력해서 생긴 일이라고 한다. 이 주식을 당일의 주가로 계산하면 112조원어치나 된다.더구나 이 주식을 배당받은 직원들 중 16명은 이것을 주식시장에 팔아서 현금으로 만들었다. 보도에 따르면, 이들은 당일 오전 9시 35분∼10시 5분 사이에 잘못 입고된 주식 중 501만2천주를 주식시장에서 매도했다. 당일 최저가인 3만 5천 150원으로 계산해도, 매도금액은 1천762억원 수준이다. 있지도 않은 주식을 팔아서 1천762억원의 현금을 만든 셈이다. 이 사고가 보도된 후 언론은 배당받은 ‘유령 주식’을 시장에 판 직원들의 모럴 헤저드를 비난하고 있다. 이것은 자기 소유의 주식이 아닌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것을 팔아 금전적 이득을 얻고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것만을 문제시 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삼성증권에게 직원들의 처벌을 촉구하고 있다.하지만 이 사태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관점은 다른 것 같다. 사람들을 가장 경악하게 한 것은 컴퓨터의 배당 프로그램으로 주식을 28억 주나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삼성증권의 발행 한도는 1억2천만 주인데 이 한도를 넘어서는 주식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보면서 사람들은 증권사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자기 필요에 따라 주식을 만들어서 시장에 팔 수 있고, 실제로 그렇게 해 온 것이 아니냐고 의심을 하고 있다.이런 의심은 주식 ‘공매도’ 금지 여론으로 이어지고 있다. ‘공매도’는 주식을 실제 보유하지 않는 사람이 주식을 파는 것을 의미한다. 매도자는 주가하락을 예상하고 주식을 빌려서 판 뒤 주가가 하락하면 같은 종목을 싼값에 다시 매수하여 차익을 챙기는 매매 방식이다. 공매도 후 주식의 가격 하락이 클수록 매도자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이번 삼성증권의 경우처럼, 없는 주식을 시장에 판 후 11% 하락한 가격에 주식을 되사서 갚으면 그 차익만큼 이익을 얻게 된다. 문제는 공매도로 인한 주식 가격 하락으로 손해를 보는 사람이 생긴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기관과 외국인만이 공매도를 할 수 있고 개인은 할 수 없다. 이번 사고처럼 ‘공매도’ 제도를 이용해 기관이 없는 주식을 매도할 수 있는 상황에서는 개인투자자는 무조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때문에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공매도 제도를 폐지해 달라는 청원이 올라왔고 현재 20만 명이 참여했다.필자는 20년 전 종합주가지수가 800선일 때 모 증권사의 삼성전자 펀드(이후 사기 펀드로 물의를 일으켰다)에 투자했다가 반년 만에 30% 손해 보고 판 이후 주식을 하지 않고 있다. 그래서 이번 사고에 대한 보도를 보면서 ‘내가 이런 세상을 살고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파우스트는 금화를 만드는데 모래라도 사용했지만 우리나라 증권사는 키보드와 프로그램으로 돈을 만들고 있다. 정말 멋진 신세계이다. 나도 파우스트처럼 ‘시간아 멈춰라’를 외쳐야 할 것 같다.

2018-04-11

한국의 여자문제

▲ 배개화 단국대 교수올해 초부터 소위 `미투 운동`, 즉 권력형 성폭력(성희롱, 성추행, 성폭행 등)에 대한 여성들의 고발이 이어지고 있다. 각 언론에서도 성폭력에 대해 고발하는 여성들의 기사를 연일 보도하고 있다. 그런데 미투 운동이 한국의 성 평등 의식을 높이고 남성과 여성이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문화를 정착시키는 것이 아니라, 여성이 사회생활을 하는 것을 더 어렵게 만드는 쪽으로 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든다. 요즘 언론에서 미투와 더불어 새롭게 떠오르는 키워드는 `펜스 룰`이다. 이것은 미국의 펜스 부통령이 자신은 아내 외의 여자와는 일대일로 만나 식사나 대화를 하지도 않는다고 한 것에서 비롯된 용어이다.최근 언론보도에 따르면, 미투 운동이 일어나면서 남자 상사가 여자 직원에게 업무 지시를 메신저로 하고, 부서의 회식이나 회의에서 여자 직원을 배제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굳이 언론 보도가 아니더라도, 미투 운동 초기부터 필자는 주위의 여성들로부터도 여러 차례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어제만 해도 필자의 수업을 듣는 대학원생이, 남편이 로펌에 다니는데 요즘 회식 자리에 여성을 부르지 않는다며 다들 여성들과 거리를 두는 분위기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 회사는, 대학원생의 말에 따르면, 사내 성폭력 문제가 있는 곳이라고 한다.이런 반응은 애초에 문제가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지 않음으로써 `성폭력` 논란이 일어나는 것을 원천 봉쇄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이 속에는 매우 왜곡된 의식이 작동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조치에는 마치 성폭력의 책임이 가해자인 남성이 아니라 피해자인 여성에게 있다는 생각이 담겨있다. 마치 여성 자체가 성폭력 유발자라는 식의 사고 말이다. 미투 운동의 핵심은 남성이 자신의 우월한 지위를 이용하여 자기보다 힘이 없는 여성, 주로는 부하 직원이나 학생 등을 성적 도구로 삼지 말아달라고 사회적으로 호소하는 것이다. 이 운동은 다수인 남성들의 묵인과 방관 하에서 일어나는 여성에 대한 폭력이 이제는 좀 그만 일어났으면 하는 바람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여성들에 대한 성차별적 의식에서 나온 불법 행위를 반성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차별 의식을 더욱 강화하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현재 한국사회 남성들의 성차별적 의식은 식민지 시대의 남성들의 의식에 비교해서 크게 개선된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최근 필자는 수업에서 학생들과 김동인의 `마음이 옅은 자여`와 염상섭의 `제야`를 읽은 적이 있다. 소위 `고백체 소설`(자기의 잘못을 편지를 통해 고백하는 소설)의 예로 읽은 것이다. `마음이 옅은 자여`에서 기혼인 남자 주인공은 자신의 불륜을 친구에서 편지로 고백하고, 이후 친구와 금강산으로 여행을 간다. 반면에 `제야`에서는 기혼 여성이 자기 남편에게 두 남성과의 불륜 사실을 편지로 고백하고 자살한다. 이런 대조적인 결론에는 성 관련 문제에서 남성에게 관대한 남성 우월적인 사고가 반영되어 있다.최근 미투 운동에 대한 사회적 반응도 젠더 문제와 관련해서 남성에 대해서는 관대하고 여성에 대해서는 쉽게 용서하지 않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회사 내에서 남성 동료들이 집단적으로 `펜스 룰`을 적용해 여성동료를 따돌림 하는 것도 그 하나이고, 미투 운동을 통해서 자신이 성폭력을 당한 경험을 고백한 여성들을 `꽃뱀`으로 모는 시선(악용이 의심되는 정황도 없지 않아 있다)도 그 하나이다.미투 운동은 젠더 문제뿐만 아니라 한국의 조직 문화까지도 바꿔야 할 필요를 보여준다. 펜스룰 때문에 여성들이 회식에서 배제되는 것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업무와 관련 없는 회식 `자체`를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직장 동료들은, 서로 사귀는 사이가 아닌 이상, 업무가 아닌 일로 일대일로 만나지 않고 만남을 요구하지 않는 것이 서로 좋겠다.

2018-03-28

스티븐 호킹 박사의 죽음을 애도하며

▲ 배개화 단국대 교수지난 14일 영국의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가 76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전신 근육이 서서히 마비되는 루게릭병으로 투병하면서도 물리학에서 천재적인 업적을 낳았다. 세계적인 과학 학술지 네이처는 “21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물리학자이자 현대 과학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스티븐 호킹이 세상을 떠났다”고 애도했다. 전 세계의 사람들도 그의 죽음을 같이 슬퍼했다. 필자 역시 그의 타계 소식을 알리는 기사를 읽을 때 마치 오랫동안 알던 지인이 세상을 떠난 느낌을 받았다. 스티븐 호킹 박사를 대중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것은 그가 1988년 출판한 `시간의 역사(A Histroy of Time)`이다. 이 책에서 호킹 박사는 우주의 탄생에 대한 이론인 `빅뱅 이론`을 제시했다. 필자도 대학교 1학년 때 `시간의 역사`를 읽고 큰 감동을 받았다. 그 때는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직후라 물리학에 대한 기본 지식을 갖고 있어서인지 책의 내용이 잘 이해되고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 같은 평범한 독자도 재미를 느끼게 해서인지, 이 책은 전 세계적으로 1천만권이 팔렸다고 한다.`시간의 역사`에서 호킹 박사는 “블랙홀은 그다지 검지 않다”고 주장했다. 일반적으로 블랙홀(black holes)은 강한 중력으로 인해 빛조차도 빠져나올 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호킹 박사는 양자 효과로 인해 방출되는 흑체 분광 열복사선 때문에 블랙홀은 빛을 내며, 시간이 흐르면 블랙홀의 에너지는 모두 빛으로 바뀌게 되어 블랙홀이 사라진다고 주장했다.하지만 스티븐 호킹 박사가 대중에게 알려진 것은 그의 `빅뱅이론` 때문이라기보다는 그가 루게릭병을 앓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주이론을 연구하는 천재물리학자가 근육이 서서히 마비되는 루게릭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이 대중들에게 큰 흥미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는 케임브리지 대학원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던 21살 때 루게릭병으로 불리는 근위축성측색경화증 진단을 받았다. 호킹 박사의 첫 번째 아내인 제인 와일드는 루게릭병 진단에도 불구하고 그와 1965년 결혼했고, 25년간 결혼생활을 했다. 이 부부의 이야기는 영화 `사랑에 대한 모든 것(The Theory of Everything, 2014)`으로 만들어지기도 하였다.스티븐 호킹 박사는 루게릭병을 처음 진단받았을 때 2년밖에 살지 못한다고 했지만 55년을 루게릭병과 투병하며 물리학에서 많은 업적을 남겼다. 영화에서도 묘사되고 있지만, 루게릭병이 진행되면서 그는 점점 걸을 수 없게 되었고 결국 휠체어 생활을 하게 된다. 더구나 1985년에는 폐렴에 걸려 기관지 절개 수술을 받은 뒤 목소리를 잃었다. 이후 그는 30여 년간 고성능 음성 합성기를 통해 의사소통했다. 호킹 박사는 생전에 자신은 영국의 국민보건서비스(NHS) 덕분에 생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국민보건서비스(NHS)는 영국의 복지시스템의 하나로 누구나 평등하고 저렴하게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영국 정부는 또한 그가 연구를 계속하고 루게릭병과 투병을 할 수 있도록 특수 휠체어를 만들어주었으며, 그가 목소리를 잃었을 때는 자판으로 글자를 치면 그 내용이 음성으로 나오는 음성 합성기를 만들어주었다. 덕분에 그는 루게릭병과 투병하며 연구와 대중 강연 등을 계속할 수 있었다.국가의 보살핌과 자신의 숭고한 의지로 호킹 박사는 55년의 세월을 병과 투병하면서 연구를 계속해서 인류에게 많은 공헌을 했다.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연구를 계속해서 타계 2주전에 논문을 학술지에 투고했다고 한다. 하지만 언론에 따르면 그는 생전에 많이 외로워했다고 한다. 또 왜 이런 병이 나에게 생겼는지 원망하기도 했다고 한다. 호킹 박사가 위대한 것은 시련과 고독을 견디며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소명을 다하려고 하는 것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2018-03-21

한반도에 평화가 오는 걸까?

▲ 배개화 단국대 교수요즘 뉴스 미디어를 통해서 4월에 남한과 북한 정상 회담, 그리고 5월에 미국과 북한과의 정상 회담이 있을 것이라는 것이 계속 보도되고 있다. 이 소식으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몇 달 전만 해도 서로 “리틀 로켓맨” “늙은 미치광이”라고 서로 설전을 벌였던 것이 거짓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무엇보다 이 소식들은, 사람들이 이제 한반도에 평화가 오는 걸까? 하는 기대를 하게 한다.한반도의 평화를 기대하게 만드는 놀라운 소식의 시작은 지난 주 초부터였다. 지난 6일 대북특사 정의용과 서훈은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남한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싶다는 소식을 갖고 돌아왔다. 문재인 대통령은 즉각 이 제안에 동의하고, 4월 판문점에서 정상회담을 하기로 결정했다. 두 특사는 이틀 뒤인 미국으로 출국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김정은 위원장의 정상회담 제안을 구두로 전달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 역시 즉각(45분 정도 걸렸다고 한다) 정상회담을 하기로 결정했다.현재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회담이 큰 성공을 거둘 것이라는 자신감을 갖고 있다고 한다. 언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어제 펜실베이니아에서 있었던 대중 연설에서 “나는 북한이 매우 잘 해내리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엄청난 성공을 거둘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언론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과 자신을 `우리`라고 표현한 것에 주목하고, 서로를 문제 해결과 대화의 상대방으로서 인정하고 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이 같은 낙관적인 분위기는 북한의 비핵화가 두 번의 정상회담의 의제가 될 것이라는 점 때문이다. 두 특사는, 북한 방문 때 김정은 위원장이 “북한의 비핵화는 선대의 유언이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두 특사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한 내용에도 북한의 비핵화와 대륙간미사일 실험 중단이 들어있다는 추측성 보도도 있다. 미국이 북한과의 대화의 조건으로 비핵화 약속을 끈질기게 요구했다는 점에서, 이런 언론의 추측은 가능성이 매우 높다. 지금까지 국내외의 많은 전문가들은, 북한이 절대로 핵을 포기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이 장거리미사일 실험을 계속해서 하는 것은, 김정은 위원장이 정권의 안전보장을 위해서 북한이 실질적인 핵보유국임을 인정받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남북 대화나 북미 대화와 같은 것은 실현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예측했다.김정은 위원장이 절대로 수용할 수 없는 비핵화를 의제로 제시한 이유는 뭘까? 그것은 비핵화보다 더 심각한 정권에 대한 위협 요인이 북한 내부에 있다는 것이고, 그가 비핵화로 이것을 해결하기를 원한다는 것이다.이 내부 불안 요인은 경제문제이며 정상회담 제안은 유엔의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 특히 석유 거래 금지-90년대초 북한의 경제 붕괴의 원인 중 하나-에 대한 대응임은 짐작할 수 있다.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정상회담이 실질적인 비핵화를 이끌어내서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될 수 있는 결과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 김정일 위원장도 “비핵화는 선친의 유언”이라고 말하며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고, 상당히 많은 대북지원을 얻어냈다. 이런 경험들은 정상회담이 국내 문제, 경제 위기로 인한 정권의 불안정을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당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하지만 필자는 김정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과의 대화도 추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번 정상회담이 단순히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를 완화시키려는 수단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필자는 김정은 위원장이 진정한 `실용주의자`이기를, 그래서 그가 핵을 포기하고 북한 경제를 살리고 주민들의 생활을 향상시키는 것이 진정한 정권 안정화의 길임을 정확하게 알고 실천하는 지도자이기를 희망한다. 그래서 한국전쟁 이후 60년 넘게 지속되어온 한반도의 휴전 상황이 해소되고, 진정한 종전 그리고 평화가 실현되기를 기대한다.

2018-03-14

평창동계올림픽이 보여준 우리 사회의 지향점

▲ 배개화 단국대 교수평창동계올림픽이 막을 내린지 10일이 넘었지만 아직도 경기 영상이 머릿속을 지나지 않는다. 필자는 스피드스케이팅이나 쇼트트랙처럼 저녁 시간에 하는 경기나 아니면 밤늦게 틀어주는 경기 하이라이트를 보면서 올림픽을 즐겼다. 이런 경기들을 보면서, 그리고 경기 중계나 시민들의 반응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나아가고 있는 지향점이랄까 그런 것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었다. 먼저 필자의 관심을 끈 것은 금메달 획득만 강조하지 않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에 떠도는 말 중 하나가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이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올림픽 경기에서도 마찬가지여서, 예전에는 금메달 외에는 크게 축하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은메달을 따면 해설자들은 아쉬운 은메달이라고 말했고, 은메달을 딴 선수 본인도 금메달을 따지 못해 죄송해했다. 하지만 지금은 해설자들이 선수들이 메달을 따면 모두 축하해주고 `값진 메달`을 따줘서 고맙다고 말한다. 두 번째는 메달을 딴 종목이 다양해졌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동계 올림픽에서 우리나라는 빙상 종목에서만 주로 메달을 따왔다. 스피드스케이팅과 쇼트트랙 경기 그리고 여자피겨스케이팅 등에서 주로 금메달이 나왔다. 하지만 이번 올림픽에서는 스켈레톤에서 윤성빈 선수가 금메달을 땄고, 스노보드 남자 평행대회전에서 이상호 선수가 은메달을, 봅슬레이 오픈 4인승에서 한국남자팀, 그리고 컬링에서 여자팀이 은메달을 땄다. 이 중 스노보드와 봅슬레이는 아시아인으로서는 최초의 메달이라고 한다. 이처럼 낯선 분야에 `도전`하여 새로운 것을 이뤄내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세 번째는 배려 없는 경쟁보다는 서로를 존중하고 품위를 지키면서 경쟁하는 모습을 강조하는 태도이다. 예전에는 해설자들은 우리 선수가 메달 가능성이 있을 때 상대방 선수가 이렇게 하면 우리 선수가 금메달을 따고 저렇게 하면 은메달을 따고 하는 등의 경우를 열거하면서, 상대방 선수가 못해주기를 바라는 속마음을 슬쩍 비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해설자들이 경쟁 선수가 우리 선수보다 잘하더라도 진심으로 그의 성취를 축하해 주었다. 이 모든 것들은 다른 사람의 성공을 같이 기뻐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나 자신감 이런 것들을 보여주어 더욱 마음에 남는다.네 번째는 팀원들이 화합하고 서로 존중하는 모습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이다. 이것은 여자 컬링과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팀 추월에 대한 여론에서 잘 나타났다. 여론은 한쪽에는 찬사를, 다른 한쪽에는 비판을 보냈다. 여자 컬링은 올림픽에 두 번째 참가에서 예선에서 세계 1, 2위 하는 팀을 이기고 최종적으로 은메달을 땄다.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은 팀워크였다. 이들은 모두 경북 의성 출신으로 가족이거나 친구라고 한다. 경상도 사투리로 팀원의 이름을 부르면서 경기를 하는 모습들이 서로에 대한 애정과 신뢰를 느끼게 한다. 반면에 여자 스피드스케이팅 팀 추월은 앞선 두 선수(김보름, 박지우)가 세 번째 선수(노선영)를 한참 뒤에 둔 채 결승선을 통과해서 여론의 비난을 받았다. 언론에서는 노선영 선수가 팀 내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는 것 아닌가라는 의문을 제기했고, 여론은 경기 규칙에 맞지 않는 경기 운영을 한 다른 선수들과 코치진이 비난을 보냈다. 이처럼 이번 올림픽은 우리 사회가 지향하고 있는 가치를 잘 보여 주었다. 경기를 통해서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여 성취하는 빛나는 의지를 볼 수 있어서 좋았던 시간들이었다. 그리고 경기 해설이나 중계 그리고 기사 등을 통해서 우리 선수를 포함한 모든 선수 한 사람 한 사람의 노력과 성취를 소중히 여기고 그것에 박수를 보낼 수 있는 건강한 마음의 여유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참가한 모든 선수와 우리 국민 모두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다.

2018-03-07

임효준과 사브첸코

▲ 배개화 단국대 교수요즘 평창동계올림픽이 한창 진행 중이다. 필자도 평창올림픽의 다양한 경기들을 열심히 TV로 시청 중이다. 한국 선수들의 경기뿐만 아니라 외국 선수들의 경기도 가끔 보게 된다. 그 중에서 필자의 마음에 들어온 두 명의 선수가 있다. 한 명은 쇼트트랙으로 금메달을 딴 임효준 선수(한국)이고 다른 한 명은 피겨스케이팅 페어에서 금메달을 딴 알리오나 사브첸코 선수(독일)이다. 이 둘은 7전 8기의 정신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임효준 선수는 쇼트트랙 1천500m에서 금메달을 따면서 언론에서 `7전 8기`의 선수로 알려졌다. 그 이유는, 그가 초등학교 때 선수생활을 시작한 이후로 지금까지 7차례 수술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중학교 1학년 때 정강이뼈가 골절되었고, 고2 때는 오른쪽 발목이 부러져 수술을 받았다. 이후에도 그는 발목 인대 파열상, 허리 압박골절, 그리고 손목 등을 다쳐 총 7차례나 수술을 받았다. 많은 꿈나무 선수들이 운동을 포기하는 이유가 부상이다. 선수 생활로 복귀하기 위해서는 힘든 재활치료를 거쳐야 하고, 훈련 공백을 극복하고 기량을 전 상태로 회복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 쇼트트랙은 내부 경쟁이 매우 치열하기 때문에 이러한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꾸준한 자기 관리와 기복 없는 경기 능력이 필요하다.임효준 선수가 잦은 부상을 극복하고 금메달을 딸 수 있었던 것은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싶다는, 금메달을 따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과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갖은 부상이라는 불운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런 소망과 의지를 갖고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었던 데는 그의 뛰어난 기량도 받침이 되었다. 작년에도 부상으로 그는 쇼트트랙 월드컵 2, 3차전을 불참할 정도였지만 국가대표 선발전에서는 전체 1위로 올림픽 티켓을 획득했다.피겨스케이팅의 페어 종목 독일팀의 한 명인 알리오나 사브첸코도 7전 8기의 주인공이 될 만하다. 현재 사브첸코 선수는 1984년 1월생으로 만34세이다. 보통 피겨스케이팅 선수들의 전성기가 10대 후반 20대 초반인 것을 고려할 때 사브첸코 선수는 피겨 스케이터로는 매우 나이가 많은 편이다. 나이가 많은 만큼 그녀는 지금까지 5번의 동계올림픽을 경험했는데, 5번째 참가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손에 거머쥐었다.알리오나 사브첸코는 이전에도 올림픽 메달을 획득한 경험이 있지만, 금메달은 아니었다. 알리오나 사브첸코는 로빈 졸코비와 짝을 이뤄 2010 밴쿠버 올림픽과 2014 소치 올림픽에서 연달아 동메달을 딴 적이 있다. 만약 필자가 사브첸코 선수라면 두 번의 동메달에 만족하고 피겨스케이팅을 은퇴했을 것 같다. 하지만 사브센코 선수는 파트너를 바꿔서 올림픽에 다시 참가했고, 결국은 금메달을 땄다. 두 선수 모두 자신의 핸디캡을 극복하고 금메달을 땄다는 공통점이 있다. 임효준 선수는 잦은 부상으로 인한 훈련 공백을 극복하고 선수로서의 기량을 높여왔고, 사브첸코 선수는 피겨선수로서는 환갑에 가까운 나이를 극복하고 훌륭하게 자기의 기량을 유지 향상시켜왔다. 두 선수 모두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기까지 누구보다 피나는 노력을 했을 것이라고 믿는다.`누울 곳을 보고 발을 뻗으라`는 속담이 있듯이 자신의 능력을 무시한 채 무작정 7전 8기를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두 선수들은 모두 최고의 기량을 가진 선수들이고 `운`의 영향으로 일찍 금메달을 못 딴 것뿐이다. 이들 선수의 경우처럼,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분야인데 노력이 부족해서 혹은 운의 영향으로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했다면 섣불리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해보는 것도 좋은 것 같다. 두 선수가 필자의 마음에 들어온 것은 필자도 요즘 `7전 8기`를 생각하기 때문이다. 두 선수처럼 필자도 이번에는 마음먹은 일을 무슨 일이 있어도 꼭 해내고 싶다.

2018-02-21

한 여검사의 폭로

▲ 배개화 단국대 교수지난 1월 29일 서지현 창원지검 통영지청 검사가 10년 전에 있었던 검찰 조직 내 성추행 피해를 폭로했다. 이후 이재정 국회의원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고 고백했다. 서 검사의 고백으로 검찰 조직 내의 여성 검사에 대한 성폭력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이것을 보면서 조직의 구조 변화에 맞는 구성원들의 인식변화도 필요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지현 검사의 폭로는 여성에 대한 차별적 인식과 태도는 대한민국의 초 엘리트 조직에서도 예외가 아니구나 하는 점을 보여준다. 검사라고 하면 우리나라 최고의 엘리트 집단이자 권력기관으로 여성 검사들도 분명 그러한 곳에서 일한다는 자긍심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하지만 검찰이 남성 위주의 조직이고 조직 내에서 여성이 소수이다 보니, 남자 검사들이 여자 검사를 동료라기보다는 `남성인 자신들이 봐주지 않으면 승진할 수 없는 약자`로 보는 것 같다.검찰에서 여성이 일하기 시작한 것이 1990년 이후이고, 모든 승진과 지위 임명의 주도권을 남성이 쥐고 있는 것이 여성 검사에 대한 성폭력 문제를 발생시키는 원인이라고 생각한다.현재 여성 검사 중에서 가장 높은 지위에 오른 것은 `검사장`이라고 한다. 이분은 바로 조희진 검사로 그는 2014년 여성 최초로 검사장의 지위에 올랐고, 현재는 서울동부지방검찰청 지검장이라고 한다. 이 분은 1987년에 제29회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1990년에 사법연수원을 제19기로 수료했다고 했는데, 사법연수원 19기 가운데 유일한 여성 검사였다고 한다. 이 것은 사법시험이 시작된 후 29년 동안 한 번도 여성이 검사로 임용된 적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최근 임은정 서울북부지검 부부장 검사는 선배검사로부터 성폭행(강간)의 위기에 처했던 경험을 고백하면서 “서지현 검사와 제가 겪은 성폭력 문제는 검찰 내 성별 갈등이기도 하나 기본적으로는 갑·을 갈등이다”라고 말했다. 조직 내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윗분들이 끌어주어야 하는데 그 대가로 윗분들이 남자에게는 우정과 충성을 요구하는데, 여자에게는 애인이 되어줄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남성 위주의 조직생활은 남성 중심적인 사고와 여성에 대한 성적 대상화를 만들고 이것이 조직에 새로 진입한 여성들에 대한 성폭력을 낳는 원인이 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황명진 교수(고려대학교 사회학과)는 “우리 사회 전반에서는 여성의 대상화가 만연한 실정이다. 남성들은 남성 중심적인 집단에서의 생활을 통해 여성을 은연중에 대상화하게 된다”고 말했다. 또한 허민숙(이화여자대학교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교수는 “직장 내 성희롱 문제는 단순히 손버릇 나쁜 한 사람의 실수나 무례가 아니다. 전체 사회에서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기인하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남성위주의 사고방식이 조직의 인적 구성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검찰 조직의 경우 여성의 비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대략 전체 검찰 인원 가운데 약 30%가 여성 검사이고, 간부급을 빼면 평검사 가운데 절반이 여성이라고 한다. 현재 검찰 내부에서의 성폭력 논란은 여성을 동료로 인정해야만 하는 현실을 조직 모든 구성원들이 인정하고 그에 맞는 예절과 매너를 갖출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요즘은 1970년대 이전처럼 남자 형제를 위해서 여성 형제의 희생을 요구하는 시대가 아니다. 한 자녀 시대이기 때문에 부모들도 딸들에게 과거와 달리 많은 투자, 특히 교육 부분에서 많은 투자를 하며 한 명의 독립된 인간으로 훌륭히 살아가기를 바란다. 현재 대학 입학생의 43%가 여성이며, 공무원과 같이 시험으로 신규채용을 하는 곳에서 여성의 비중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런 사회적 변화에 맞춰 이제 남성들도 여성이 조직 내 동료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그들을 우정과 신뢰를 쌓아갈 대등한 인격체로 인식해야 하며, 이런 인식 변화를 뒷받침할 법적 장치도 마련되어야 한다.

2018-02-07

왜 젊은 세대는 비트코인 투기에 빠지나?

▲ 배개화 단국대 교수30일부터 인터넷 가상화폐인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을 거래할 때 거래자의 실명을 밝혀야 한다. 이것은 최근에 가상화폐에 대한 `묻지마 투자`열풍을 조절하기 위한 정부의 한 조치이다. 원래 정부는 비트코인 등과 같은 가상화폐 거래를 금지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언론에서 투자자들의 반발을 연이어 보도하자 정부는 투기 과열을 막기 위해 가상화폐 거래 실명제를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정부의 가상화폐 거래금지안에 가장 반발한 사람들은 2030세대라고 한다. 2030세대들이 5060세대가 부동산과 주식 투자 등으로 돈을 벌어서 부자가 됐으면서 자기들이 비트코인 투자로 돈을 벌려고 하는 것은 막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 보도에 따른다면 2030세대들은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화폐투자를 흙수저에서 금수저로 가는 마지막 기회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비트코인(bitcoin)은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온라인 암호 화폐이다. 중앙은행 없이 전 세계적 범위에서 P2P 방식으로 개인들 간에 자유롭게 송금 등의 금융거래를 할 수 있게 설계되어 있다. 비트코인은 2008년 10월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가명을 쓰는 프로그래머가 개발했는데 전 세계적으로 유통될 수 있는 비트코인의 양은 2천100만 비트코인으로 제한했다.거래할 수 있는 양의 유한성으로 인해서 비트코인의 거래가격이 점점 높아졌다. 한국의 경우, 비트코인은 지난해 말 연초 대비 19배 넘는 상승률을 보였다. 덩달아서 이더리움과 라이트코인 등 기타 알트코인-비트코인의 기술을 모방한 또다른 가상화폐-시장으로 투자 열기가 이전해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그런데 비트코인은 가격 변동성이 매우 크다는 문제점이 있다. 국내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거래소에 따르면 1비트코인 당 시세는 26일 오전 10시 54분 1천296만2천원이었다. 이는 21일 오전 1천600만원대와 비교하면 5일새 400만원가량 급락한 것이다. 이처럼 급락한 이유는 미국 금융기관 평가사인 와이스 레이팅스가 최대 가상화폐인 비트코인 등급을 `C+`로 발표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급락의 폭이 큰 것은 한국만이 아니다. 미국의 가상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에 따르면 비트코인 가격은 작년 한해 약 1천100% 치솟았지만 현재는 최고치보다 약 40% 이상 낮은 1만1천달러에 머무르고 있다.이런 변동성은 투자 전문가들이 가상화폐에 대한 투자를 자제할 것을 권고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제2의 워런 버핏이라고 불리는 세스 크라먼은 가상화폐는 디지털 시대의 튤립으로, 높은 가격 상승세와 변동성으로 인해 교환·거래의 수단이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저장의 가치도 획득할 수 없다며 자신은 비트 코인에 투자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리처드 코바세비치 전 웰스파고 회장은 비트코인 거래는 일종의 `다단계 수법`으로 “사람들은 다른 누군가가 비트코인을 구매하리라 믿고 내기를 걸면 베팅을 한다”고 주장했다.작년 한 해 비트코인의 거래가격이 19배 상승했다는 것은 많은 투자자들을 비트코인 시장으로 끌어들이는 요인이다. 개인 투자로 19배의 수익률을 얻을 수 있는 투자처는 현재 우리나라에 비트코인 시장 말고는 없다. 그리고 현재는 이 시장에 먼저 일찍 투자하여 19배의 수익률을 얻은 사람들을 보면서 신규 투자자들이 몰렸다. 하지만 하룻밤새 가격 폭락으로 엄청난 손실을 본 사람들의 이야기도 보도되고 있다.필자는 이런 높은 수익률에 끌려 2030세대가 은행 빚을 내서까지 비트코인에 투자를 한다는 것이 걱정스럽다. 지금이 젊은이들에게 노력해서 좋은 일자리를 얻기 어렵고 쉽게 부를 축적하기 어려운 시대다보니 쉽게 돈을 벌고 싶은 마음이 이런 투기로 몰리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모두 우리사회가 젊은이들에게 좋은 일자리와 미래를 계획할 수 있는 삶을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긴 현상인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

2018-01-31

유치원 때부터 영어 교육이 필요한가?

▲ 배개화 단국대 교수최근 정부는 `선행학습금지법`에 따라 실시하려고 했던 유치원, 어린이집의 영어 수업 금지를 철회했다. 부모들이 이 조치를 철회해달라고 청와대의 게시판에 청원을 한데다가 언론에서는 `사교육을 막으려는 조치가 사교육을 부추긴다`는 제목으로 연일 이 조치의 문제점을 보도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유치원, 어린이집의 영어수업을 금지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한 포털사이트의 인터넷 카페에서였다. 올해 초쯤인가 한 엄마가 이에 대한 글을 게시한 것을 읽고서야 영어교육 금지 조치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얼마 후, 영어수업 금지를 철회해달라는 청원에 서명해달라는 글도 올라왔다. 이 인터넷 카페는 필자가 살고 있는 지역 커뮤니티인데 초등학교 이하의 어린 자녀를 둔 가정이 많다. 이 카페에서 교육 관련해서 가장 자주 올라오는 글 중에 하나가 영어교육이다. 영어 교육 어떻게 시키세요, 영어 학원 소개해주세요, 혹은 영어유치원 보내야 하나요 등과 같은 질문들이 많이 올라온다.부모들이 많은 관심을 갖는 것은 영어 학원보다는 영어유치원이다. 영어유치원에서는 원어민 교사가 아이들에게 영어를 교육하며, 영어공부만 하는 것은 아니고 놀이도 하고 소풍도 간다. 이렇게 영어유치원을 1년 정도 다니면 아이들이 영어로 말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영어유치원을 다녔다고 수능시험에서 높은 영어점수를 받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이가 어릴 때부터 영어를 배웠기 때문에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고 한다.이 영어유치원은 유치원보다 원비가 최소 5배쯤 비싸다. 많은 부모들이 영어유치원을 보내지 않는 이유의 대부분은 이 비싼 원비 때문이다. 그 대신에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서 하는 영어 특별활동 등으로 이를 대신한다. 지금은 철회되었지만 만약 유치원, 어린이집의 영어 수업이 금지되었다면 많은 부모들이 아이들을 영어유치원에 보내야 하는 것 아닌가 고민을 많이 했을 것이다.영어유치원은 선행학습금지법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 그 이유는 영어유치원이 영어학원 유치부이기 때문이다. 만약 정부가 유치원, 어린이집 영어교육을 금지한다면 많은 부모들이 이 비싼 원비를 감수하고라도 아이들을 영어유치원에 보내게 될 가능성이 높다. 더불어 방과 후의 영어 학원 수업도 지금보다는 더 수요가 늘 것이다. 따라서 영어 교육이 금지되면 부모들의 사교육 비용이 더 늘어나는 것은 분명하다.이렇게 유치원, 어린이집의 영어 교육에 대한 관심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정규 수업 과정에 영어 과목이 있기 때문이다. 즉, 아이들은 초등학교 1학년 때 받게 될 영어수업에 대한 선행학습으로 유치원, 어린이집에서 영어를 배우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정부가 유치원, 어린이집 영어 교육을 `선행학습`으로 파악한 것은 정확하다.엄마들이 영어유치원을 추천하는 이유 중에 하나도 초등학교 영어 교육 때문이다. 영어유치원을 다닌 아이들을 보낸 경험이 있는 엄마들은 아이들이 초등학교에서 영어를 배울 때 학습 스트레스를 적게 받는다고 말한다. 이미 선행학습을 했기 때문에 영어 수업에 빨리 적응하고, 다른 것을 공부하는 데에 더 신경을 쓸 수 있다는 점을 장점으로 내세운다.현재 정부는 초등학교 1, 2학년 영어수업을 금지하겠다고 발표했다. 언론에서는 유치원, 어린이집 영어교육은 나두면서 왜 초등학교 1, 2학년 영어수업은 금지하느냐고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유아 영어 교육이 초등 영어 교육에 대비한 선행학습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이런 조치가 반드시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영어를 학습해야 한다는 부담이 준다면 자연스럽게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의 영어 교육도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2018-0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