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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성공한 사람들의 특징?

▲ 배개화 단국대 교수·교양학부얼마 전 웹서핑을 하다가 미국의 팝스타 마돈나가 자기 팬과 인터뷰 한 것을 읽은 적이 있다. 그녀의 팬들이 한 질문 중에는`당신의 guilty pleasure가 뭔가요?`는 질문이 있었다. `guilty pleasure`는 지금 당장 즐거움을 느끼기는 하지만 마음속 한편에 `이러면 안 되는데`라는 죄책감도 동시에 느끼며 하는 행동들을 의미한다. 이 질문에 마돈나는 자기는 지금까지 한 번도 죄의식을 느낀 적이 없다고 대답했다. 최근 몇 년간 그녀가 자기보다 30살 이상 어린 연하남들과 염문을 뿌린 것을 생각하면, 나는 죄의식을 느낀 적이 없다는 그녀의 대답에서 나는 매우 강한 자기애를 느꼈다. 그리고 이런 강한 자기애와 자기 확신이 그녀가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말콤 글래드웰이라는 성공학 연구자는 성공하는 CEO의 특징으로 개방성, 성실성, 그리고 독선적 성격을 들었다. 사업을 하다보면 주위의 반대가 있을 수 있는데 성공한 CEO일수록 이런 반대를 무시하고 자기의 계획을 관철시키는 독선적 성격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말에는 `독불장군` `모난 돌 정 맞는다`와 같이 독선적인 성격에 대해서 경계하는 표현이 많다. 이런 것을 보면 보통 사람들의 모럴과 성공한 사람들의 모럴은 동일하지 않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사실 평범한 사람들을 보면 참 자기 반성을 잘하며, 누가 조금만 비판해도 금방 위축되고 자책한다. 그런데 마돈나의 경우처럼 성공한 사람들은 죄의식이나 후회 같은 것은 보기 힘든 것 같다. 이런 것을 좋게 말하면 카리스마라고 할 수도 있다. 자기 확신이 없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설득하고 이끌어나가기는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독선과 자기 확신은 같은 뜻 다른 표현인 것 같기도 하다.문학자 중에서도 이렇게 자기 확신이 강한 캐릭터를 발견할 수 있다. 사실 마돈나의 인터뷰를 보면서 머리에 금방 떠올랐던 사람은 이광수이다. 이광수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는 소설로는 그가 1938년에 발표한 `사랑`이다. 이 소설은 안빈이라는 의사가 세 명의 여자로부터 사랑을 받는 이야기이다. 첫 번째 여자는 그의 부인이고 두 번째는 그의 제자이자 여주인공인 석순옥이고 세 번째는 석순옥의 선배 인원이다. 이 세 여성들은 모두 안빈의 성자와 같은 고결한 성격과 조선 민족에 대한 사랑에 감동을 받아 그를 흠모한다. 여기에는 그의 금욕주의도 한몫하는데, 그는 석순옥과 플라토닉 한 사랑을 하며, 자기의 아내가 병으로 죽은 후로 재혼을 하지 않는다.한편 석순옥은 안빈의 아내를 독살했다는 소문이 퍼지자, 안빈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자신이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와 결혼한다. 이후 그녀는 남편의 외도를 참고 견디며 그가 낳은 아이를 키운다. 또한 시어머니의 온갖 핍박도 참고 견디며 끝까지 부양한다. 그런데 이러한 인고의 배경에는`저를 죽이고 인연 있는 자를 사랑하라`는 안빈의 명령이 있다. 순옥은 안빈에 대한 존경심과 사랑 때문에 그의 명령을 절대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이 명령에는 순옥의 행복에 대한 고려는 없다.안빈이 가진 성자에 가까운 고귀한 성격과 다른 사람들에 대해 갖는 절대적 우월성은 이광수 자신의 이미지이기도 하다. 일제 말 한 일본 지식인은 이광수를 일본인보다 더 일본인의 정신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며 그의 경건하고 격조 있는 태도를 칭찬하기도 하였다. 해방 후 많은 사람들은 이광수를 많은 조선 청년들을 일본의 전쟁으로 몰아간 `친일파 매국노`라고 비난하였지만, 정작 본인은 아마 그런 비난을 진정 마음으로 용납하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일제 말 자신의 행동은 `조선인을 위한 것`이었다고 말해 더욱 비난 받기도 했지만, 그 말을 할 때 그의 마음속에는 죄의식이 없었을 것이 분명하다.자기 확신이 강한 사람들, 그리고 자기 행동의 결과에 대해서 죄의식이 없는 사람들이 모두 성공한 사람들은 아니겠지만, 성공한 사람들 중에는 이런 경향을 갖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이런 성격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보통 사람들이 쉽게 죄의식에 빠지는 것과는 차이가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2015-03-17

힐러리 클린턴 논란에 대한 단상

▲ 배개화 단국대 교수·교양학부최근 미국의 뉴스쇼나 라디오 대담 프로그램에서는 어떤 문제로 논쟁 중이다. 그것은 힐러리 클린턴이 국무장관 재직 기간(2009-2013) 동안 정부 이메일 계정을 개설하지 않고, 개인용 이메일 계정을 사용하였다는 것에 대한 것이다. 뉴욕타임스(NYT)가 지난 2일 이러한 사실을 처음 보도한 이래로 미국 언론은 이를 힐러리 클린턴 스캔들 혹은 힐러리 클린턴 논란으로 부르고 있다. 이것이 스캔들로 발전할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미국 사회에서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뉴욕 타임즈에 따르면 힐러리가 개인 서버와 이메일 계정을 공무용으로 사용한 것은, 모든 공직자의 서신교환은 소속 조직의 기록으로서 보전되어야 한다는 `연방 기록법`을 위반했을 가능성이 있고 한다. 또한 개인 이메일 계정의 사용은 `투명한 정부`를 내세우는 오바마 정부의 정책과도 모순된다고 한다. 이 때문에, 힐러리 클린턴의 보좌관은 2달 전 5만5천페이지에 달하는 이메일을 정부에 제출했다. 하지만, 뉴욕 타임즈의 보도 이후 논란이 심해지자, 3월 4일 힐러리 클린턴은 그 메일의 공개를 정부에 요청한 상태이다.힐러리 클린턴의 개인 이메일 계정을 사용한 것이 논란이 되는 것은 무엇보다 보안 문제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의 집에 개인 서버를 설치하고 이에 토대한 이메일 계정을 개설하여 사용하였다고 한다. 사실 최근 미국 정부는 해커를 고용하여 미국 정부의 서버를 공격하였으며, 이중 취약한 일부 서버가 뚫리는 등 보안상의 문제가 불거졌다. 언론에서는 외국 해커 공격으로부터 힐러리의 개인 서버가 안전할 수 있는지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표현하였다. 나는 며칠 전부터 영어 공부를 위해서 fox new radio를 듣고 있다는데, 뉴스에서는 클리턴의 개인 이메일 계정 사용을 부정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재밌는 것은 fox new live talk는 라디오 토크쇼이다. 한국 라디오처럼 진행자가 청취자와 토론하는 것인데, 듣다보면 심각한 내용임에도 웃음이 나올 때가 있다. 대부분 청취자들은 힐러리 클린턴의 개인 이메일 계정 사용에 대해서 부정적인데 비해서 이 진행자는 그녀를 옹호하는 입장이다. 이런 이유로 진행자와 청취자 사이에서 논란이 일어나는데, 어떨 때는 진행자가 청취자의 말을 하는데도 끼어들어 말하는 바람에 과격한 코러스를 듣는 느낌이 든다.언론의 자유, 혹은 말할 자유는 미국에서는 매우 중요한 권리로 간주되며, 중요한 사회적 국가적 문제에 대해서 자유롭게 말하는 것을 누구도 말릴 수 없다. 이런 점은 우리나라와 매우 대조적이다. 언론의 자유가 많이 진전되었다고는 하지만 `설화`(舌禍)에 대한 공포는 뿌리 깊게 남아있다. 60대 중반인 우리 어머니는 항상 우리 형제에게 정치 문제에 대해서는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말 단속을 시킨다. 사적 공간인 집안에서조차도 `정치`나 `정치인`에 대해서 말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을 보면, 언론의 자유는 우리 어머니에게는 영원히 먼 나라의 이야기인 듯 같아 안타깝다.사실, 나도 이 칼럼을 쓰면서 문제가 되지 않도록 적당히 내 의견을 조율하고 있다. 뭐 정치할 것도 아니고, 될 수 있으면 티가 안 나게 조용히 살고 싶다는 보수적 심리가 작용하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 사회에서 스며들어 있는 말하기에 대한 공포는 논객이라는 대리자를 내세워서 자기 생각을 말하는 문화를 만들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누가 대신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래서 소위 논객이라는 사람들을 보면, 상대 진영으로부터 온갖 욕을 먹으면서도 꿋꿋하게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용기와 강한 정신력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힐러리 클린턴이 여론과 공화당의 비판을 극복하고 민주당의 새로운 대통령 후보가 될지 지켜보는 것도 궁금하다. 동시에 우리 사회에 뿌리 깊은 `말하기에 대한 공포`도 빨리 사라졌으면, 그래서 모든 국민이 논객이 되어 자유롭게 자기 생각을 표현할 수 있었으면 한다.

2015-03-10

신자유주의는 예외 없어

▲ 배개화 단국대 교수·교양학부요즘 한국에서는 사람들이 살기 어렵다, 많이 힘들다고 말한다. 빈부차이도 유래 없이 커져, 한국 경제가 멕시코 유형으로 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점점 커지고 있다. 정규직도 고용 유연화를 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전세 값도 점점 올라 집값의 80 아니 90%에 치닫고 있다. 88만원 세대라는 말은 이미 상식의 수준이 되고 말았다. 이런 문제를 이야기 할 때면 많은 사람들은 신자유주의 탓을 한다. 세계적 추세이니 어쩔 수 없다는 말이다.이런 당당한 자기 합리화에 화가 나곤 했는데, 이제 미국에 와서 보니 신자유주의가 우리 모두의 삶을 바꿔놓았다는 것은 실감할 수 있었다.필자는 지난 월요일 보스턴로건 공항에 도착했다. 계획대로라면 이곳에 일 년간 머무를 예정이다. 2001년 8월에도 이곳을 방문해서 한 1년 반 있었다. 예전에 체류했던 곳이라 익숙할 줄 알았는데, 1미터 남짓 쌓인 눈은 기억 속의 보스턴과는 다른 풍경을 연출해 왠지 낯설었다. 달라진 풍경만큼 이곳의 사람들의 삶도 조금 달라진 것처럼 보였다. 14년이 넘는 시간과 2008년의 서브 프라임 모기지론 사태는 이곳 삶도 많이 바꿔놓은 것을 알 수 있었다.우선, 뭔가 사람들이 바뀐 느낌이었다. 내 기억 속 하버드 대학의 학생들은 우아하고, 매너 있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들은 미소를 잃은 채 바쁘고 다소 신경질적인 모습이었다. 교내에서 인도를 걸어가다 뒤에서 오는 학생에게 좀 비켜달라는 말을 여러 번 들었다. 쌓인 눈으로 길이 좁아진 탁도 있겠지만 뭔가 달라진 인상은 지울 수 없었다. 무엇보다 학생들 중에 유색인종의 수가 많아진 것도 눈에 띠었다 예전에는 대다수의 학생이 백인이고 거기에 중국 한국 등 아시안 학생들이 섞여 있었는데, 지금은 아시아 학생들 뿐만 아니라 인도 등에서 온 학생들도 보였다. 뭔가 인종적으로 다양해진 느낌이 들었다. 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진학 상황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지인으로부터 이곳 상황에 대해 듣노라니,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10년 전만해도 일반적으로 미국 학생들은 공대에 그다지 진학하지 않았디. 몸을 많이 쓰고 때로는 밤도 세워야 하는 공대는 기피 됐고, 그 빈자리는 아시아나 인도 학생들이 채웠다. 하지만 지금은 하버드 학부생 중 30%로만 인문 예술 계열로 진학하며, 그 중 70%는 경제나 경영 등 취업이 잘되는 쪽으로 간다고 한다. 하버드 학생들도 학벌만으로는 취업이 어려워짐을 짐작할 수 있었다.이런 상황은 한국의 대학에서 취업률을 이유로 인문대가 점점 축소되는 것과 유사했다.무엇보다, 미국이 외국인에게 기회의 나라가 되지 못함을 느낄 수 있었다. 한인민박집에서 만난 한 약대 포스트 닥터로부터 외국인이 미국 약사 자격증을 따기가 매우 어렵다는 말을 들었다. 과거와 달리 미국인들 사이에서도 수입이 좋은 약사가 인기가 높아져, 자격증 취득 경쟁률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미국법에 따라 자격증을 따려면 1천500시간의 인턴을 해야 하는데, 정부가 자국민에게 인턴 자리가 우선적으로 배정되게 하다 보니 외국인은 인턴을 할 기회를 갖기가 매우 어렵다고 했다. 나는 이 말을 들으며 격세지감을 느꼈다. 1990년대 말이나 2000년대 초만해도 미국에서 약사나 간호사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해서, 한국의 약사나 간호사들이 취업이민을 많이 갔다. 내 지인 중 한 명도 이 때 미국으로 이민 와서 현재 약사로 일하고 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한국이 변한 만큼 미국도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거에는 차이점이 더 많았고 미국의 풍요와 여유에 압도당할 정도였지만,지금은 서로 좋지 않은 쪽으로 비슷해지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신자유주의의 종주국이니 오죽하랴 싶으면서도 과거의 영광이 바래가는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를 욕하며 이민 갈 거라고 토로하던 댓글이 떠올랐다. 그런 이들이 갑자기 안타깝게 느껴지면서, 동시에 이제 세상 어디에도 탈출구는 없으니, 내 나라 우리가 힘을 합쳐서 잘 고쳐 쓰는 수밖에 없다는 말이 하고 싶어졌다.

2015-03-03

빠른 것이 좋기만 한 것일까?

▲ 배개화 단국대 교수·교양학부2001년 8월이니까, 지금부터 약 13년 전에 미국을 간 적이 있었다. 미국은 신용 사회라는 말을 그 전부터 들었지만, 그곳에 가니 그 말을 정말 실감할 수 있었다. 1달러 이하도 모두 신용카드로 결제가 가능했다. 그 후 한국도 신용사회로 진입하게 되었다. 자영업자들의 소득을 투명하게 한다는 명분으로 신용카드의 사용이 장려되었고, 지금은 동네의 소형 마트에서도 천원 이하의 물건을 신용카드로 결제할 수 있게 되었다. 신용카드 한 장이면 버스나 택시와 같은 대중교통 이용도 자유롭다.이처럼 신용카드 사용해 익숙해 있던 나는 재작년 여름 일본 방문에서 큰 문화적 충격을 경험하였다. 한국에서 신용 카드 사용에 익숙하다 보니, 그리고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선진국이니 당연히 신용카드를 사용할 수 있겠지 하는 생각에 나는 엔화를 많이 환전해 가지 않았다. 한 달 숙박비 외에 약간의 경비를 엔화로 준비해 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내가 방문한 센다이(仙台)에서는 신용카드를 받는 상점이 거의 없으며, 모든 것을 현금으로 사야만 한다는 말을 들었다. 실제로 상점이나 식당에서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사람을 볼 수 없었고, 나도 신용카드로 물건을 한 번도 사지 않았다.상황이 이렇다 보니 얼마 안 가 가져간 돈이 거의 떨어졌다. 그러자 주위 사람들이 또 걱정을 하는 것이다. 이곳 은행의 ATM기에서는 외국카드로 현금인출이 잘 안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선진국 일본이 절대 그럴 리 없다고 호언하였고, 우체국 ATM기는 국가가 운영하는 것이니까 한국 카드로 현금인출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나는 우체국 ATM기로 무사히 엔화를 인출하였고, 그 이야기를 해주자 다들 금시초문인 눈치였다.짧은 시간이지만 일본에 있는 동안, 모든 것이 불편한 느낌이 들었다.이런 불편함에 대해서 이야기 하자, 그곳 대학의 한 유학생은 대학 성적 처리도 교수가 성적표를 손으로 직접 써서 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대학의 행정 직원들도 수기 성적표를 일일이 직접 처리하기 때문에 방학 내내 성적처리에 매달린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학생은 한국에서는 콘서트 예매도 모두 온라인으로 하지만, 일본에서는 우편으로 예매를 하며 표도 우편으로 받는다고 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컴퓨터를 사용할 수 없는 사람, 예를 들면 노인을 배려해서라고 한다.일본이 현금 사용과 사람에 의한 업무 처리를 고수하는 모습은 선진국 일본의 이미지와는 너무 상반되었다. 나는 은근히 일본의 미래가 걱정되기까지 했다.하지만, 이처럼 느리고 불편한 일처리가 일자리 수를 유지하는 데는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 일본의 경우 대학졸업자의 64%, 그리고 대졸 취업희망자의 95%가 취업했다고 하니, 우리나라보다 취업률이 높은 편이다.인터넷 상거래, 온라인 뱅킹, 신용카드의 광범위한 사용, 업무의 전산화 등 우리는 편리하고 빠른 속도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일본에서 내가 느낀 불편함과 답답함과 비교할 때 매우 장점이 큰 삶의 방식이다. 하지만, 빠름과 편리함으로 인해 사회가 감당해야 할 손해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전산 시스템이 사람의 노동을 대신하는 것 등으로 인해서 일자리 수가 점점 줄어들고 있을 수도 있다. 일자리가 준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적 부의 분배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도 된다.지난 2월 4일 데이비드 립튼 국제통화기금(IMF) 수석 부총재는 “한국은 소득불평등이 점점 커지면서 중산층이 줄어들고 있다”며 “재분배 정책으로 이들을 재건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득 재분배를 위해서도 우리 사회가 몰두하고 있는 `속도전`을 조금 늦춰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2015-02-24

에밀 졸라를 추억하며

▲ 배개화 단국대 교수·교양학부얼마 전, 에밀 졸라의 `나는 고발한다`를 읽다가 `애국`이라는 단어를 발견하고, 퍽 경이감을 느낀 적이 있다. 에밀 졸라(1840~1902)는 자연주의 문학의 창시자라고 일컬어지며, `목로주점`, `나나`와 같은 작품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졸라가 세계적인 유명세를 얻은 것은 `나는 고발한다`는 글 때문이다. 이 글로 졸라는 `진실을 추구하는 지식인`으로 세계인에게 각인되었다. 하지만, 이 글에서 졸라는 진실을 추구하는 한 개인이 아니라 프랑스를 사랑하는 `애국자`로서의 스스로를 표상하고 있다. `나는 고발한다`는 `드레퓌스 사건`으로 알려진 간첩조작 사건에 대한 것이다. 1894년 프랑스의 육군 대위였던 유태인 알프레드 드레퓌스는 독일에 군사 기밀을 누출한 간첩 `에스테라지`로 의심받고 기소되어, 반역죄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2년 뒤, 조르쥬 피카르 중령이 진짜 `에스테라지`를 적발하였지만, 군사 재판에서 진짜 에스테라지는 무죄로 풀려나고 피카르는 군사기밀 누설죄로 체포되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에밀 졸라는 1898년 1월 13일 프랑스 일간지 `로로르`에 `나는 고발한다!`라는 공개편지를 기고함으로써 그 사건을 폭로했다. 하지만 그는 명예훼손으로 기소되었고, 구속을 피하기 위해서 영국으로 망명을 하게 되었다.망명지에서도 에밀 졸라는 계속해서 편지를 보냈다. 이 편지에서 그는 망명자의 비애와 함께 자신의 행동이 `프랑스에 대한 사랑,` 즉 `애국심`때문이었음을 피력하였다. 에밀 졸라는 요새 용어로 말하자면, 소위 `좌파 지식인`이다. 한국전쟁, 반공교육 등으로 인해 한국인은 정서상 `좌파 지식인`을 국가를 위해서 희생, 헌신하는 사람이라는 이미지와 결합하기에는 매우 어렵다. 더구나 졸라의 행위는 `진실 추구`라는 측면만 조명되고 회자되었기 때문에, 나 또한 그런 선입견을 갖고 있었다. 이런 이유로 그의 글에서 `애국심`이라는 단어를 발견했을 때 나는 `응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졸라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간첩으로 의심받고 종신형을 받은 `드레퓌스`의 무죄를 밝히는 것이 프랑스를 위하는 길이라고 믿었다. 이 때문에 그는 국가로 받은 훈장을 박탈당하는 수모와 `가톨릭 예수회`로부터 살해 위협을 당하면서까지 드레퓌스의 무죄를 주장하고, 재판 결과를 무효화해줄 것을 대통령에게 호소하였다. 이 때, 그는 자신의 행동을 드레퓌스라는 개인의 보호가 아닌, 프랑스라는 국가의 보위라는 측면에서 생각하였던 것이다.국가가 존재하는 한 `애국 논쟁`은 필연적이다. 우리의 경우라면, 일단 행위의 주체는 대한민국 국민 모두일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애국을 할 것인가 혹은 누가 더 애국자인가에는 논란이 있다. 군대를 가야하고, 세금을 꼬박꼬박 내야하고, 국가의 기밀이나 산업 정보를 외국으로 유출하지 말아야 하고 등등이 애국 하는 행동에 들어갈 것이다. 또 졸라의 경우처럼 사법 정의를 바로 세우고, 한 개인의 출세욕과 욕망 때문에 다른 개인들이 희생당하는 것을 막는 것도 애국일 것이다. 그 밖에 `재벌과 서민 중 누가 더 애국하고 있나`는 문제도 요즘 용어로 우리 사회의 `핫한 이슈`(hot issue)이다.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과거 한 연설에서 `지식인들은 미국을 빨간 주(red state)와 파란 주(blue state)로 나누는 것을 좋아하지만,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는 애국자도 있고 찬성하는 애국자도 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빨강과 파랑은 각각 공화당, 민주당을 지지하는 주를 상징하는 색이다. 때문에 오바마의 말은 공화당을 지지하든 민주당을 지지하든 모두 `애국자`라는 것이다.애국의 가장 결정적인 판단 기준은 무엇일까? 참 쉽게 말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하지만 대략적으로는 내 행동이 `우리`를 위하는 것일 때 애국이 될 것이다. 100년 전, 졸라가 목숨을 걸고 폭로한 진실은 `개인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국가가 이용되었으며 그 사실을 은폐하려고 개인들이 국가를 다시 이용했다`는 사실이었다. 국가는 늘 우리의 문제이지, 어떤 개인에 대한 문제는 아닐 것이다. 따라서 애국도 우리를 위하는 것이지, 나와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개인 혹은 개인들을 위한 것은 아닐 것이다.

2015-02-17

공든 탑 무너져서야

▲ 배개화 단국대 교수·교양학부얼마 전, 수영 영웅인 박태환 선수가 국제반도핑기구의 도핑 테스트에서 금지약물을 복용한 것이 적발됐다는 보도가 있었다. 박태환 선수는 `마린보이`라는 별명으로 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수영 선수이다. 그는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한국 수영 사상 최초로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또, 작년에 열린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도 7개의 메달을 획득했다. 나는 박태환 선수측의, `네비도`가 금지약물인지 몰랐다는 해명을 믿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우리나라는 왜 `영웅`을 만들지 못하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국제반도핑기구는 작년 9월 중순 경 박태환 도핑테스트를 했는데, 그 결과 금지약물인 안드로스테네디올이 검출됐다고 한다. 이런 결과가 나오게 된 원인은 박태환 선수가 2014년 7월에 맞은 네비도 주사 때문이었다. 이 주사제는 주성분이 남성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 계열인 발기부전치료제라고 한다. 테스토스테론은 선수의 경기력 향상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세계반도핑기구의 금지 약물로 지정돼 있다. 국제수영연맹의 규정에 따르면, 박태환은 아시안 게임 메달을 모두 박탈당하고, 2년 동안 출전 금지 조치를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최근 검찰은 박태환 선수에게 네비도 주사를 처방한 의사를 `업무상 과실치상 및 의료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한다. 담당 의사는 네비도라는 약이 금지약물에 해당한다는 점을 알지 못했다고 한다. 이 의사는 남성호르몬은 몸에 있고, 체내에서 만들어지는 성분이기 때문에 `도핑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했고, 도핑에 걸리는 약물이 아닌지 문의하는 선수 측에도 그렇게 설명했다고 한다.이러한 조사결과를 보면, 환자는 의사의 설명을 믿고 약물을 투여 받은 잘못 밖에는 없다. 하지만, 이미 많은 언론이나 네티즌 등은 박태환 선수측이 네비도가 테스토스테론을 주성분으로 하는 발기부전치료제라는 사실을 몰랐을 리 없을 것이라고 비난하면서 선수를 의심하고 있다. 심지어 일부 언론에서는 선수를 관리하는 매니지먼트사의 운영 문제(아버지가 사장, 형이 이사)를 들먹이며, 한국수영연맹의 관리를 받지 않은 탓이라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언론의 입을 빌린 한국수영연맹의 입장은, 박태환 선수가 연맹의 관리를 받지 않고 가족이 꾸린 매니지먼트사의 관리를 받았기 때문에, 이번 도핑판정을 받는 결과가 생겼다는 것이다. 하지만, 박태환을 관심 있게 지켜본 사람이라면, 그가 수영연맹과 매끄럽지 않은 관계를 맺어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 구체적 이유는 당사자들만 알 수 있는 일이겠지만, 선수의 이익을 대리하고 그를 보호해야 할 기관이 선수와 불화를 겪고, 선수를 비방하는 보도 자료를 내고, 선수를 방임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박태환 선수의 선전으로 연맹을 포함한 수영 산업 관계자들이 얻었을 이익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선수가 경기력 향상을 위해 의도적으로 금지약물을 복용했다면 그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박태환 선수 역시 `어떤 꼼수`를 기대하면서 그 약물을 복용했다면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정말 의사의 업무상 과실 치사에 의한 것인데도, 선수가 피해를 입는다면 이는 정말 억울한 일이다. 그리고 일이 이렇게 될 정도로 선수 관리를 소홀히 한 연맹도 반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나는 박태환 선수의 도핑 논란을 보면서,`공든 탑이 작은 개미 구멍 하나로 무너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안타까웠다. 그리고 영웅을 만들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어떤 분위기가 아쉬웠다. 우리 사회에 `아기 영웅` 들이 등장할 때, 사회 구성원들은 소속 집단의 이익에 대한 손익계산만을 앞세울 것이 아니라, 그들이 진정 `영웅`으로 커가도록 도와주는 데에 더 관심을 쏟았으면 한다.

2015-02-10

학교 폭력, 피해자만 억울해서야

▲ 배개화 단국대 교수·교양학부며칠 전, 고등학교 동창생 `밴드`에 들어갔다가, 포항항도중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동창생의 아들이 1년 동안 학교에서 친구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동창생이 아고라에 올린 글이나 신문 기사에 따르면, 이미 학교의 징계 절차도 마무리 됐고, 경찰 조사도 거의 마무리 되는 상황이라고 한다. 하지만, 가해자에 대한 학교의 조치나 경찰 조사 결과가 피해자 측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것 같다. 가해 학생들은 동창생의 아들에게 볼펜으로 온몸에 낙서를 하고, 칼로 손을 찌르고, 정수리를 동그랗게 잘라 잔디라며 물을 붓고, 흙과 치약을 먹이고, 심지어는 교실 커튼 뒤에서 음모를 뽑는 가해 행위를 저질렀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을 작년 12월 초쯤 학교 측에서 인지하고 두 차례 정도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를 열어 조사했다. 그 결과, 주동자인 윤모군과 김모군은 출석정지 8일과 학급교체, 서면사과의 징계를, 나머지 학생 5명은 출석정지 3일, 접근금지 등의 징계를 받았다고 한다. 피해자의 고소로 이뤄진 경찰 조사에서도 `성폭행` 혐의는 인정되지 않은 채 사건이 종결되는 분위기라고 한다.이 사건이나 다른 학교 폭력 사건을 보면 가해자들이 `친구`라는 가면을 쓰고 있는 점을 자주 발견하게 된다. 요즘 아이들은 함께 노는 친구들이 정해지게 되면, 그 아이들과 주로 다니고 소통하게 된다. 평소 놀던 친구 무리에서 벗어나면 외톨이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아이들은 친구가 가혹행위를 해도 어쩔 수 없이 순응하게 되는 경향을 보인다. 또한, 부모나 선생님 등이 보기에도 친구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이기에 `심한 장난`으로 가볍게 생각하게 된다. 즉, 가해 당사자나 주위 관찰자들이 폭력을 장난으로 보게 되는 착시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1년 동안 지속되어온 학교 폭력이 `심한 장난`으로 치부되다 보니, 가해 학생에 대한 처분도 피해자의 `기분`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가해자에게 큰 피해가 가지 않는 수준에서 내려진다. 학교의 관대한 처분은, 자신의 행동이 형사처벌을 받을 수도 있는 `폭력`이라는 점을 가해자가 깨닫지 못하게 만든다. 동창생에 따르면, 가해 학생은 반성문에 `내가 이번 일로 교내봉사 며칠 하는 동안, 너는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고등학교에 가라. 난 반성하고 있을께`라고 썼다고 한다. 이 문장은, 가해 학생이 학교의 징계로 인해 자신의 `고등학교 입시`가 잘못될까 하는 것에만 신경 쓰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학교 폭력이 일어날 때, 가해 학생만큼 피해자에게 방어적으로 나오는 쪽이 있는데, 이는 담임선생 등 학교 측이다. 이들은 학내에서 폭력 문제가 발생하면 이것이 자신들의 승진 등 인사고과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대체로 문제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은폐하거나 확대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내 직장 동료의 경우, 조카가 전학 간 학교에서 학교 폭력을 당해 학교 측에 학교폭력대책위원회를 열어줄 것을 요구하자, 학교 측에서는 한 번도 그런 위원회를 연 적이 없다고 답변했다고 한다. 실제로 학교 측은 이 위원회를 여는 절차도 모르고 있어서, 피해자 가족들이 관련 자료를 알아보고 시교육청에도 항의하고 했다고 한다. 결국, 직장 동료의 조카는 다시 전학을 가야했다.지인들의 사례이긴 하지만, 대체로 학교 폭력은 피해자가 피해 정도를 호소하는 것에 비해서,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다소 가볍게 내려지는 듯하다.이는 가해자들이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명학하게 인지하지 못하게 만든다. 가해학생들이 쓴 `반성문`이 보여주는 것처럼, 그들은 그냥 재미로 좀 심한 장난을 쳤다는 데, 재수가 없어 처벌을 받았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가해학생들도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날들이 많이 남아있는 남의 집의 귀한 자식들이다. 그런 만큼 더욱 적절한 처벌을 통해서 가해 학생들이 자신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를 정확하게 깨닫게 함으로써 이들이 다시 그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하는 것이 좋다.가장 바람직한 훈육법은 `대화`를 통해서 가해자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진심으로 반성하고, 피해자에게 사과하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말로 훈육되지 않는 상대에서는 적절한 `벌`을 통해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깨닫게 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는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되는 것을 막는 최선의 방법이다.

2015-02-03

일베와 IS 사이

▲ 배개화 단국대 교수·교양학부최근 우리나라의 청소년 범죄 목록에 새로운 항목이 추가됐다. 그것은 바로 `테러`다. 작년 말, 오모군의 소위 `종북 콘서트 테러`사건과 지난주의 김모군의 IS 가입을 위한 시리아 밀입국 사건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를 다루는 언론의 태도는 다소 온도 차이가 있다. 오군의 테러에 대해서는 청소년의 일탈행위로 다소 가볍게 다루는 반면에, 김군의 시리아 밀입국에 대해서는 `테러의 국내 수입 가능성`을 운운하며 호들갑을 떨고 있다. 과연, 이런 이중적 태도가 바람직한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1월 10일에 한국의 10대 소년 김모군이 터키의 시리아 접경지역에서 행방불명됐다고 한다. 현지에서는 이 소년이 IS라는 이슬람 무장단체에 가담했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한국 정부는 이를 처음에는 부인했다. 하지만 소년의 컴퓨터 사용 기록이나 SNS 통신 기록 등을 조사하면서 이 소년이 IS에 가입하기 위해 시리아로 밀입국했을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10대 소년의 IS 가입 가능성을 두고 언론은 `한국인이 국제 테러단체에 가입했다니` 하는 당혹감과 `이 소년이 한국에 입국해서 테러를 하면 어쩌지`라는 두려움을 표현하고 있다.나는 김군에 대한 언론의 보도를 보면서 작년 12월 중순에 익산에 있었던 `신은미황선 통일토크콘서트 현장 사제 폭탄테러`사건을 떠올렸다. 이 사건을 저지른 오모군은 김군과 같은 10대 청소년이었다. 그는 콘서트 장에서 `북한을 지상낙원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느냐?`고 질문을 던진 후 사제 폭탄을 투척해, 콘서트 장에 있었던 청중들이 다치거나 대피했다. 일베회원이었던 이 청소년은 테러 전날 `네오-아니메`라는 인터넷 사이트에 테러 계획을 고지했다고 한다. 또한 오군의 테러가 성공하자 일베 회원들은 `이것은 의거다`라고 찬양하며 오군의 얼굴과 안중근 의사의 얼굴을 합성한 사진을 올렸다고 한다.김군과 오군의 공통점 중의 하나가 `여성 혐오`이다. 김군은 IS 가입 이유로 페미니스트가 싫어서라고 말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오군이 활동한 일베 역시 `여성`혐오 내지 비하가 난무하는 곳이다. 여성에 대한 혐오 내지 페미니스트에 대한 증오는 강한 남성에 대한 동일시를 동반한다. 김군의 경우 동일시의 대상은 IS이고, 오군을 옹호한 일베의 경우에는 우리나라의 군인출신 지도자들이다. 일베 회원들이 황선 씨의 토크 콘서트가 종북적이라는 이유로 옹호한 것에서 알 수 있듯, 이들에게는 북한에 대한 증오 정서도 강하다.많은 언론들은 김군의 IS 가입 가능성을 보도하며, 그가 귀국해서 테러를 하면 어떻게 하지라며 걱정을 한다. 반면에 오군의 테러에 대해서는 `청소년의 일탈 행위`로 볼 뿐, 그다지 걱정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상반된 태도가 발생하는 것은 IS의 테러는 대상을 가리지 않는 무차별적인 테러이지만, 오군의 테러는 `종북주의자`라는 제한된 대상에 대한 것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즉, 내가 `종북주의자`가 아니면 테러 당할 일 없으니 안심해도 좋지만, IS는 나도 테러할 수 있기 때문에 걱정된다는 식이다.그렇다면, IS테러와 오군의 콘서트장 테러가 본질적으로 다른 것인가? 오군의 옹호자들이라면 `당연히 다르지 오군은 정의를 실현한 것인데`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엡도`를 테러했던 젊은이들 역시 자신은 정의를 위해 테러했다고 주장했다. 두 정의의 진정성은 따지기 어려운 일이지만, 둘 다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무차별 폭력을 행사했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만약 오군의 테러를 옹호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IS에 대해서도 비난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과거 청소년 문제는 가출, 학교 폭력, 성문제 등이었다. 하지만 최근에 여기에 `테러`가 추가됐다.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테러`를 꽉 막힌 인생의 돌파구, 새로운 삶의 가능성으로 생각할 만큼 좋은 사회를 만들지 못한 것에 대해서 반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청소년들은 애지중지 가꾸고 키워야 할 대상이지, 정치적 목적에 이용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말하고 싶다.

2015-01-27

안전불감증은 사람 탓이 아니다?

▲ 배개화 단국대 교수·교양학부최근 우리나라에는 여러 가지 대형 사고들이 끊이지 않고 있어, 국민들의 걱정과 `안전`에 대한 불안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우선 올 1월 10일에만 해도 의정부의 `대봉그린 아파트`라는 도시형 생활주택(원룸)에서 불이 나서 4명이 사망하고 140여 명이 부상당하는 큰 사고가 발생했다. 1층 주차장에 주차했던 오토바이에서 시작된 불이 그 원인이었다. 이 빌딩에는 10층 이하의 건물에는 `스프링클러`를 설치하지 하지 않아도 된다는 규정 때문에 화재의 조기 진화가 불가능했고 덕분에 많은 사상자를 냈다.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은 것과 불에 잘 타는 외벽 단열재를 사용한 것이 화재의 규모를 키웠다고 한다. 반면에, 이런 비극에는 항상 가슴이 훈훈해지는 일도 동시에 일어난다. 마침 이 건물 세입자인 소방관이 화재 당시 집에 있다가 화재를 피해서 다른 거주민들을 옥상으로 안전하게 대피하도록 도왔다거나, 우연히 옆을 지나던 간판 설치 기술자가 자기 밧줄을 이용해 주민들을 구했다거나 하는 소식이 그것이다.이처럼 서로 대비되는 현상들을 볼 때면, 나는 우리나라에는 이렇게 용감하고 정의감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대형 사고들이 왜 이렇게 많이 발생할까? 하는 의문이 들곤 한다. 언론 보도의 내용 등을 보았을 때, 이 사건이 이처럼 큰 사건으로 번지게 된 것에는 10층 이하 건물에는 `스프링클러`를 설치하지 않아도 된다거나 불에 잘 타는 값싼 건물 외벽 단열재를 사용을 허용하는 건축 규정이 그 원인이었다. 즉 값싸게 건물을 건축할 수 있도록 허용한 건축 `규정`들이 작은 피해로 끝날 수 있는 화재를 크게 키운 원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비슷하게 이런 대형 화재가 발생할 때면 자주 보도되는 것 중에 하나가 도로에 주차된 차들로 인해서 소방차의 진입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오래된 주택이 많이 있는 지역의 경우 이런 일이 많이 발생한다. 이럴 때면, 여론은 도로에 주차를 한 사람들의 질서의식의 결여에 대해서 비난한다. 하지만 왜 차 소유자들이 자기 차를 길가에다가 주차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갖지 않는다. 이들이 집 근처 도로에다가 차를 대는 것은 집에 `주차장`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집에 주차장이 없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주차장 설치가 주택 준공 허가에 필수적이지 않기 때문이다.이런 현상들을 보면서 예전 어느 책에서 본 `죄 짓는 아담이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담이 죄를 짓게 하는 세상이 있다`는 구절이 생각난다. 집을 짓는다는 일에는 그에 따른 건축 규정이 있고, 사업자들은 그 규정 안에서 건축을 하려고 한다. 우리나라 주택에 주차장이 없는 경우가 많은 것이나, 대봉그린 아파트에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지 않은 것이나 가연성 단열재를 사용한 것은 건축 규정에 그런 조항이 없기 때문이다. 주택 사업자의 입장에서 규정에 없는데 미래의 사고를 미리 염려해 굳이 돈이 드는 것들을 설치하거나 설비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그런데, 우리는 건물에 `스프링클러`가 설치되어 있지 않으면 화재가 났을 때 건물 자체로 진화 되지 않는다는 것이나 가연성 단열재는 불에 잘 탄다는 것은 100% 예상할 수 있다. 불이 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우연` 즉 확률상의 문제이며, 예측할 수 없는 일이다. 확실히 예측되는 `필연`적 결과와 예측할 수 없는 `우연`적 결과 중에서 우리가 고려해야 할 것은 전자이고, 그에 맞는 예방 조치가 있어야 한다. 이런 것들을 우리는 긍정적으로는 `규정,` 부정적으로는 `규제`라고 부른다.이번 사건의 충격이 커서인지 지난 15일 `국민안전처`에서는 건물 외벽 불연재 사용을 의무화를 추진하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여기에 10층 이하 건물에 `스프링클러` 설치도 추가됐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그 때 그 때의 사고에 대한 대증적 조치가 아닌 좀 더 거시적인 안목을 가지고 안전과 관련된 규정들이 정비되고 제정됐으면 한다. 더 나아가 사람의 생명이 걸린 안전 문제는 정부의 `규제 완화`정책에서 예외로 했으면 한다. 이런 조치들이 경제를 살리는 데 도움이 되는 것보다는 `기업이 본의 아닌 죄를 짓게 하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15-01-20

최근 `갑질` 논란을 보며

▲ 배개화 단국대 교수·교양학부우리나라에서 1천만 관객을 동원했던 영화 `타이타닉`(1997, 2012)은 1912년 4월 14일 빙산에 부딪쳐 침몰한 여객선 타이타닉을 배경으로 한 것으로, 여주인공 로즈(Rose Dewitt Bukater)의 어머니는 몰리 브라운이라는 여자를 `뉴 머니`(new money)라고 경멸한다. 몰리 브라운은 금광 개발로 벼락부자가 된 사람이다. 반면에 `올드 머니`(old money)는 조상대대로 물려받은 재산 혹은 그런 재산이 있는 사람들로, 로즈 어머니처럼 졸부에게 우월감을 느낀다. 영화에서처럼 우리 사회에서도 `졸부`는 그다지 좋은 의미로 사용되지 않는다. 졸부는 종종 부동산 투기나 주식 투자 등으로 갑자기 부자가 되어 `돈`밖에 없는 사람을 가리킬 때 사용된다. `돈밖에 없다`는 말에는 돈 이외에 다른 중요한 가치들도 있는 의미가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돈`만 있는 것은 더 이상 부끄러운 것이 아니게 됐고, `돈`만이 유일한 가치로 확립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이런 변화의 가장 큰 계기는 1998년 `IMF 사태`이다. 당시 20프로를 넘는 금리인상과 대량 해고, 대기업 해체 등, 사회 전체가 `돈` 때문에 큰 고통을 당했다. 이후, 정부의 노동 유연화 정책으로 현재 전체 노동자의 절반 정도가 비정규직으로 일하게 되면서 생계의 안정성이 약화되고, 소위 `88만원 세대`로 표현되는 저소득 가구가 늘어났다. IMF 사태로 인한 `돈` 트라우마에 심각한 빈부격차가 더해져 `돈`을 최고라고 보는 사회 분위기가 고착화 됐다.그러면서 생겨난 현상이 소위 `갑질`이다. 내가 돈이 있으니까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생각인데, 이는 종종 `월권` 행위로 나타나며 심할 경우 `공권력 경시`로 표현된다. 작년 말 100억대 슈퍼개미가 유흥업소에서 `갑질`을 하다가 경찰 지구대로 연행됐는데, 그의 갑질은 거기서도 계속됐다. 그는 경찰관 얼굴에 물 뿌리며 “100억 중 10억만 쓰면 너희 옷 모두 벗긴다”, “아는 사람들에게 1억씩 주고 너희 죽이라면 당장에라도 죽일 수 있다” 등의 폭언을 했다는 것이다. 올해 초에는 백화점 지하주차장에서 한 모녀가 VIP임을 주장하며 주차요원의 무릎을 꿇려서 논란이 됐고, 뒤이어 한 대형마트에서 30대 여성이 역시 VIP임을 내세우며 마트 보안요원을 구타했다.이렇게 갑질 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모두 `나 돈 많으니까 대접을 잘 하라`이다. 그런데 돈 많으면 `공권력`을 무시하고, `월권`을 행사해도 좋은가? 주차요원이나 대형마트 보안요원은 그가 비정규직이냐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주차장 질서유지와 마트 보안에 관해서 권한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주차장과 마트를 이용하는 동안은 그들의 안내를 따라야 한다. 만약 모든 사람들이 주차요원과 보안요원의 안내를 무시한다면 어떻게 될까? `무질서`와 `범죄`가 난무하게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갑질 하는 자칭 VIP들은 `무질서` 유발자, `범죄` 유발자인 것이다.이런 갑질 행위를 부추기는 것 중에 하나가 소위 `서비스 만족도 조사`이다. 언제부터인가 각종 AS를 받거나 전화 상담을 하고 나면 `서비스 만족도`를 묻는 전화나 문자 메시지가 왔다. 얼마 후에는 AS 기사들이 전화가 오면 좋은 평가를 해달라고 부탁을 하고 간다. 그러자 좋은 평가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느냐는 항목이 `서비스 만족도` 질문에 추가된다. 이런 과도한 평가 내지 모니터링은 서비스의 질을 높이기보다는 `돈 내는 사람은 갑`이라는 의식을 일상화, 보편화 시켰다.영화 `타이타닉`의 졸부 몰리 브라운은 교양은 없었지만 인정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3등석 승객이었던 남자주인공 잭 도슨에게 자기 아들의 연회복을 빌려주어, 그가 옷차림 때문에 1등석 손님들과의 연회에서 창피당하지 않도록 배려해주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자칭 VIP들은 교양도 인정도 없을 뿐만 아니라, `준법의식` 마저도 점점 희미해지는 것처럼 보인다. 돈을 지불한다는 것은 서비스 이용권을 산 것이지 서비스 제공자의 인격까지 산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고, 상대방을 배려하고 존중했으면 한다.

2015-01-13

`라 쇼몽` 단상

▲ 배개화단국대 교수·교양학부 일본의 소설가 아쿠다가와 류노스케의`라쇼몽(羅生門)`이라는 소설이 있다. 소설 속 라쇼몽은 일본 헤이안 시대(794~1185)의 수도였던 교토의 남쪽 정문으로, 수년간의 기근, 화재, 그리고 지진 등으로 황폐해졌다. 그 밑에는 며칠 전 해고된 젊은 하인이 비를 맞으며 앉아있었다. 그는 “굶어죽을 것인가” 아니면 “도둑이 될 것인가”라는 문제로 고민하고 있었지만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라쇼몽 다락에 버려진 여자 시체의 머리카락을 뽑고 있는 노파를 목격하고, 죽은 여자는 살아있을 때 이런 일을 당해도 될 만큼 충분히 나쁜 사람이었으니까 머리카락을 뽑아도 괜찮다는 노파의 말을 듣자, 그도 노파의 옷을 벗겨 달아나 버린다. `라쇼몽`은 매우 짧은 소설이지만, 소설 속 상황은 지금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작년 우리나라를 매우 시끄럽게 했던 사건 중에 하나가 `송파 세 모녀`사건이었다. 송파구 어느 반지하방에서 살던 세 모녀가 한 달 월세와 공과금을 남기고 자살한 사건이었다. 각종 보도에 따르면, 큰 딸은 병, 둘째 딸은 신용불량이어서 경제 활동을 할 수 없어 어머니가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어 생계를 유지했지만, 어머니도 팔을 다쳐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세 모녀가 함께 자살했다고 한다. 이 세 모녀는 하인처럼 굶어죽을 것인가? 아니면 도둑이 될 것인가? 라는 선택 앞에서 전자를 선택한 것이다.현재 대한민국은 10년 연속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 하루 평균 자살자 40명, 10~30대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인 국가이다. 또한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2013 사망원인통계`에 따르면 자살자는 총1만 4천427명으로 이는 OECD 평균의 2배라고 한다. 그 중 여성과 노인의 자살률이 높다고 하는데, 많은 경우 생활고가 그 원인이라고 한다. 이들은 송파 세 모녀의 경우처럼 도적이 되기보다는 차라리 스스로를 파괴하는 방법을 택했던 것이다.우리 사회의 많은 자살자들은 잠재적 사회불안 요인이다. 그들은 아직까지 자신의 선량한 마음, 윤리의식에 따라서 남에게 피해를 주기보다는 자기 목숨을 끊는 쪽을 택한다. 하지만 라쇼몽 속 젊은 하인처럼 사람들이 점점 타인이 쌓아올린 `부의 정당성`에 대해서 의문을 느끼게 된다면, 그래서 자신의 범죄 행위 혹은 저지를지도 모를 범죄 행위에 대해서 윤리적 불안을 느끼지 않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라쇼몽의 지옥도가 `바로 여기서` 펼쳐질 수도 있다.우리가 `송파 세 모녀법`을 만들어 생활고로 자살에 내몰린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해주는 것은 `자선 행위`가 아니다. 사회 구성원들이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받아 사회 전반의 안정성이 높아지는 것은 곧 내 삶의 안정성을 높이는 행위가 될 수 있다. 보통 돈 많은 사람들은 `복지`라고 하면 일 안하고 노는,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내 돈 생으로 뜯기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면, 타인의 복지를 높이는 것은 곧 나의 복지를 높이는 것이며, 결과적으로 사회 전체에 이익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따라서 나는 우리 사회에서 `복지 논쟁`이 단지 선거철에 표를 얻기 위한 선전 문구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실천과 체계적인 제도 마련으로 이어졌으면 한다. 더 나아가 사람들의 생계를 위협하는 `비정규직`이나 `중규직`과 같은 고용형태를 개선하는 정부와 재계의 노력도 필요하다. 타인의 행복을 걱정해주고 대책을 마련해주는 것이 곧 나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는 관점에서 이런 문제들에 접근한다면, 좀 더 쉽게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2015-0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