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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쇼몽` 단상

등록일 2015-01-06 02:01 게재일 2015-01-06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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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개화단국대 교수·교양학부
일본의 소설가 아쿠다가와 류노스케의`라쇼몽(羅生門)`이라는 소설이 있다. 소설 속 라쇼몽은 일본 헤이안 시대(794~1185)의 수도였던 교토의 남쪽 정문으로, 수년간의 기근, 화재, 그리고 지진 등으로 황폐해졌다. 그 밑에는 며칠 전 해고된 젊은 하인이 비를 맞으며 앉아있었다. 그는 “굶어죽을 것인가” 아니면 “도둑이 될 것인가”라는 문제로 고민하고 있었지만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라쇼몽 다락에 버려진 여자 시체의 머리카락을 뽑고 있는 노파를 목격하고, 죽은 여자는 살아있을 때 이런 일을 당해도 될 만큼 충분히 나쁜 사람이었으니까 머리카락을 뽑아도 괜찮다는 노파의 말을 듣자, 그도 노파의 옷을 벗겨 달아나 버린다.

`라쇼몽`은 매우 짧은 소설이지만, 소설 속 상황은 지금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작년 우리나라를 매우 시끄럽게 했던 사건 중에 하나가 `송파 세 모녀`사건이었다. 송파구 어느 반지하방에서 살던 세 모녀가 한 달 월세와 공과금을 남기고 자살한 사건이었다. 각종 보도에 따르면, 큰 딸은 병, 둘째 딸은 신용불량이어서 경제 활동을 할 수 없어 어머니가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어 생계를 유지했지만, 어머니도 팔을 다쳐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세 모녀가 함께 자살했다고 한다. 이 세 모녀는 하인처럼 굶어죽을 것인가? 아니면 도둑이 될 것인가? 라는 선택 앞에서 전자를 선택한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은 10년 연속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 하루 평균 자살자 40명, 10~30대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인 국가이다. 또한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2013 사망원인통계`에 따르면 자살자는 총1만 4천427명으로 이는 OECD 평균의 2배라고 한다. 그 중 여성과 노인의 자살률이 높다고 하는데, 많은 경우 생활고가 그 원인이라고 한다. 이들은 송파 세 모녀의 경우처럼 도적이 되기보다는 차라리 스스로를 파괴하는 방법을 택했던 것이다.

우리 사회의 많은 자살자들은 잠재적 사회불안 요인이다. 그들은 아직까지 자신의 선량한 마음, 윤리의식에 따라서 남에게 피해를 주기보다는 자기 목숨을 끊는 쪽을 택한다. 하지만 라쇼몽 속 젊은 하인처럼 사람들이 점점 타인이 쌓아올린 `부의 정당성`에 대해서 의문을 느끼게 된다면, 그래서 자신의 범죄 행위 혹은 저지를지도 모를 범죄 행위에 대해서 윤리적 불안을 느끼지 않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라쇼몽의 지옥도가 `바로 여기서` 펼쳐질 수도 있다.

우리가 `송파 세 모녀법`을 만들어 생활고로 자살에 내몰린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해주는 것은 `자선 행위`가 아니다. 사회 구성원들이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받아 사회 전반의 안정성이 높아지는 것은 곧 내 삶의 안정성을 높이는 행위가 될 수 있다. 보통 돈 많은 사람들은 `복지`라고 하면 일 안하고 노는,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내 돈 생으로 뜯기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면, 타인의 복지를 높이는 것은 곧 나의 복지를 높이는 것이며, 결과적으로 사회 전체에 이익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나는 우리 사회에서 `복지 논쟁`이 단지 선거철에 표를 얻기 위한 선전 문구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실천과 체계적인 제도 마련으로 이어졌으면 한다. 더 나아가 사람들의 생계를 위협하는 `비정규직`이나 `중규직`과 같은 고용형태를 개선하는 정부와 재계의 노력도 필요하다. 타인의 행복을 걱정해주고 대책을 마련해주는 것이 곧 나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는 관점에서 이런 문제들에 접근한다면, 좀 더 쉽게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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