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1천만 관객을 동원했던 영화 `타이타닉`(1997, 2012)은 1912년 4월 14일 빙산에 부딪쳐 침몰한 여객선 타이타닉을 배경으로 한 것으로, 여주인공 로즈(Rose Dewitt Bukater)의 어머니는 몰리 브라운이라는 여자를 `뉴 머니`(new money)라고 경멸한다. 몰리 브라운은 금광 개발로 벼락부자가 된 사람이다. 반면에 `올드 머니`(old money)는 조상대대로 물려받은 재산 혹은 그런 재산이 있는 사람들로, 로즈 어머니처럼 졸부에게 우월감을 느낀다.
영화에서처럼 우리 사회에서도 `졸부`는 그다지 좋은 의미로 사용되지 않는다. 졸부는 종종 부동산 투기나 주식 투자 등으로 갑자기 부자가 되어 `돈`밖에 없는 사람을 가리킬 때 사용된다. `돈밖에 없다`는 말에는 돈 이외에 다른 중요한 가치들도 있는 의미가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돈`만 있는 것은 더 이상 부끄러운 것이 아니게 됐고, `돈`만이 유일한 가치로 확립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변화의 가장 큰 계기는 1998년 `IMF 사태`이다. 당시 20프로를 넘는 금리인상과 대량 해고, 대기업 해체 등, 사회 전체가 `돈` 때문에 큰 고통을 당했다. 이후, 정부의 노동 유연화 정책으로 현재 전체 노동자의 절반 정도가 비정규직으로 일하게 되면서 생계의 안정성이 약화되고, 소위 `88만원 세대`로 표현되는 저소득 가구가 늘어났다. IMF 사태로 인한 `돈` 트라우마에 심각한 빈부격차가 더해져 `돈`을 최고라고 보는 사회 분위기가 고착화 됐다.
그러면서 생겨난 현상이 소위 `갑질`이다. 내가 돈이 있으니까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생각인데, 이는 종종 `월권` 행위로 나타나며 심할 경우 `공권력 경시`로 표현된다. 작년 말 100억대 슈퍼개미가 유흥업소에서 `갑질`을 하다가 경찰 지구대로 연행됐는데, 그의 갑질은 거기서도 계속됐다. 그는 경찰관 얼굴에 물 뿌리며 “100억 중 10억만 쓰면 너희 옷 모두 벗긴다”, “아는 사람들에게 1억씩 주고 너희 죽이라면 당장에라도 죽일 수 있다” 등의 폭언을 했다는 것이다. 올해 초에는 백화점 지하주차장에서 한 모녀가 VIP임을 주장하며 주차요원의 무릎을 꿇려서 논란이 됐고, 뒤이어 한 대형마트에서 30대 여성이 역시 VIP임을 내세우며 마트 보안요원을 구타했다.
이렇게 갑질 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모두 `나 돈 많으니까 대접을 잘 하라`이다. 그런데 돈 많으면 `공권력`을 무시하고, `월권`을 행사해도 좋은가? 주차요원이나 대형마트 보안요원은 그가 비정규직이냐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주차장 질서유지와 마트 보안에 관해서 권한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주차장과 마트를 이용하는 동안은 그들의 안내를 따라야 한다. 만약 모든 사람들이 주차요원과 보안요원의 안내를 무시한다면 어떻게 될까? `무질서`와 `범죄`가 난무하게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갑질 하는 자칭 VIP들은 `무질서` 유발자, `범죄` 유발자인 것이다.
이런 갑질 행위를 부추기는 것 중에 하나가 소위 `서비스 만족도 조사`이다. 언제부터인가 각종 AS를 받거나 전화 상담을 하고 나면 `서비스 만족도`를 묻는 전화나 문자 메시지가 왔다. 얼마 후에는 AS 기사들이 전화가 오면 좋은 평가를 해달라고 부탁을 하고 간다. 그러자 좋은 평가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느냐는 항목이 `서비스 만족도` 질문에 추가된다. 이런 과도한 평가 내지 모니터링은 서비스의 질을 높이기보다는 `돈 내는 사람은 갑`이라는 의식을 일상화, 보편화 시켰다.
영화 `타이타닉`의 졸부 몰리 브라운은 교양은 없었지만 인정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3등석 승객이었던 남자주인공 잭 도슨에게 자기 아들의 연회복을 빌려주어, 그가 옷차림 때문에 1등석 손님들과의 연회에서 창피당하지 않도록 배려해주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자칭 VIP들은 교양도 인정도 없을 뿐만 아니라, `준법의식` 마저도 점점 희미해지는 것처럼 보인다. 돈을 지불한다는 것은 서비스 이용권을 산 것이지 서비스 제공자의 인격까지 산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고, 상대방을 배려하고 존중했으면 한다.